Return of a Crazy Genius Composer RAW novel - chapter (475)
망나니 천재 작곡가 회귀하다 외전 3화(475/482)
외전 3화
밥알과 미숫가루.
만나지 말아야 할 두 사람이 만나 버린 탓인지….
장내 안으로는 싸한 냉기가 감돌았다.
둘은 현승을 사이에 두고 때아닌 눈싸움을 벌였다.
“우선 우리 올라가서 얘기하자.”
현승은 흘끔흘끔 바라보는 직원들의 눈길이 신경 쓰인 탓에, 그런 둘을 재촉하며 걸음을 옮겼다.
둘은 아웅다웅하면서도, 그런 현승의 뒤를 열심히 쫓았다.
이내.
작업실 안에 들어서자, 사라는 현승을 노려보기 시작했다.
‘이런.’
현승을 온몸으로 본인의 화를 분출하고 있는 사라를 보아하니, 지난 일 년의 공백을 단 몇 마디만으로 풀어낼 수 없을 거란 판단이 섰고.
“밥알.”
자말을 불러세웠다.
“예, 형님!”
그러자, 자말은 본인이 먼저 불린 게, 내심 뿌듯한지 힘차게 대답하고는 사라를 바라보며 한쪽 입꼬리를 씩 올려 보였다.
마치.
내가 이겼어. 라고 말하는 듯한 눈치였다.
“오늘은 얘랑 할 얘기가 좀 있으니, 다음에 다시 와.”
하나, 바로 이어진 현승의 말에 자말은 세상이 무너지는 듯한 기분을 느껴야만 했다.
“예?”
먼저 찾아온 사람은 본인이 아니던가?
“그, 그래도….”
아까 둘의 반응으로 보아, 선약 같아 보이진 않았는데.
“너랑도 할 얘기 있으니까, 가능하면 내일 다시 와.”
하지만, 현승이 덧붙인 말에 자말은 하는 수 없다는 양 알겠다고 고개를 끄덕거렸다.
물론, 형님을 가장 존경하고, 동경하고, 아끼는 건 본인이 으뜸이라지만 연인의 영역까지 채워줄 수 있는 건 아니니까.
오늘은 이쯤에서 물러 나주기로 했다.
둘이 오가는 미묘한 시선을 읽어 버린 이상.
더 머무르는 건, 너무 눈치 없는 짓일 테니.
“그럼, 내일 뵙겠습니다. 형님!”
그렇게 자말이 아쉬움을 뚝뚝 흘리며, 작업실을 나섰고.
“큼, 흠.”
안에는 현승과 사라만 남게 되었다. 그런 둘 사이에 돌던 정적은 그리 오래가지 않았다.
“목걸이 안 잃어버렸네.”
현승이 먼저 입을 열었기 때문이었다.
“그냥, 뭐, 디자인이 예뻐서….”
사라가 그 말에 괜히 헛기침하며 목걸이를 만지작거렸다.
그러고는 이내 현승의 눈치를 흘끔 살피다 말고, 말을 이었다.
“그, 왜, 유니스로는 안 와?”
아, 이게 아닌데.
“유니스가 복귀하기엔 더 좋지 않나?”
왜 이런 말만 나오는 거야.
“유니스는 내가 없어도 잘 돌아가잖아. 조슈아가 대표 맡은 이후로 기업 매출도 오른 것 같던데.”
“그런 것도 다 확인해 본 거야? 아니, 그런 거 확인할 시간에 연락이라도 한 통 해 주면 덧나? 내가 얼마나 걱정하고, 힘들었는지 알…!”
닦달하지 말아야지.
캐묻지 말아야지.
책망하지 말아야지.
땍땍거리고, 귀찮게 굴지 말아야지.
수십 번을 다짐하고 왔건만, 또 빽하고 소리를 지르고야 말았다. 뒤늦게 입을 틀어 막아봤으나.
이미 현승의 동공이 크게 확장되어 흔들리고 있었다.
“아니, 내 말은…! 다들 네가 갑자기 사라져서, 무슨 일 없는지 걱정하고 그랬으니까….”
횡설수설하던 사라는 결국 매무새 짓지 못한 채, 말끝을 흐렸다. 현승은 금세 차분해진 눈매로 그런 사라를 바라만 볼 뿐이었다.
고요하게 가라앉은 눈동자는 무슨 감정을 담고 있는지조차 알 수 없었다. 그래서 더 불안했다.
딱, 딱, 딱.
사라가 두 손을 꼼지락거리며, 거스러미를 뜯어내던 그때.
“저번에 발매한 곡, 괜찮더라.”
현승이 나지막이 말했다.
“어? 진짜 드, 들어 봤어?”
사라는 올 것이 왔다는 양, 두근거리는 심장 깨를 부여잡은 채 조심스레 물었다.
“어, 근데 마지막 하이라이트 코러스 구간에서 네 목소리 핀트가 조금 거슬렸거든? 혹시, 다시 녹음해 볼 생각은 없고?”
물론, 심장이 차갑게 얼어붙는 것도 한순간이었다.
“뭐? 감상평이 그게 다야?”
“장난이고, 곡 하나 부를래?”
그러나, 다시금 싱긋 웃으며 되묻는 현승의 얼굴을 보자, 사라는 두 뺨이 화악 뜨거워짐을 느꼈다.
하여간.
가만 보면, 생각보다 능글스럽기 짝이 없는 남자였다.
“갑자기 무슨 곡이야?”
현승이 돌연 던진 제안에, 사라가 당황하며 되물었고.
“미숫가루 사줄게, 부를 거지?”
현승이 코를 찡긋거리며 물었다.
“Fuck….”
저런 표정으로 물어보면, 어떻게 안 한다고 하냐고.
“아주 그놈의 미숫가루 때문에, 너한테 아주 평생 발목 잡혀 살게 생겼다니까?”
“나한테 평생 잡혀 있을 생각까지 한 거야?”
“아, 아니, 그런 게 아니라!”
악을 쓰는 사라의 두 뺨은 이미 타오를 듯 붉어진 채였다.
* * *
올 게 왔군.
현승은 사옥 유리창 너머로 보이는 잘 빠진 리무진 세단을 보고 그렇게 생각했다.
저리 거창하게 찾아올 줄은 몰랐는데 말이야.
찰칵, 찰칵.
고급 리무진 세단 두 대가 나란히 사옥 대문을 통과하자, 기자들은 연신 플래시를 터트렸다.
그러고 보면, 기자들은 언제까지 진을 칠 생각이지?
이제 올 만한 이들은 다 왔건만.
아니지.
아마 저들이 나타날 때까지 기다린 거일 수도 있겠다.
조슈아 그리고 킬리언.
한 마디로, 유니스의 사람들을 기다린 거겠지.
알만 하다, 알만해.
현승은 고개를 좌우로 내젓고는, 빈치스 대표실 소파 상석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거기, 내 자리인데.”
빈센트가 그 모습을 못마땅하다는 양 바라보며 중얼거렸으나.
“손님분들 오셨으니, 차 좀 부탁해.”
결국 현승의 지시 한마디에, 구시렁거리면서도 비서를 통해 따듯한 차를 내어 왔다.
“혹시 빈, 빈치스 대표로 다시 오고 싶다거나 그런 거야? 아니, 나는 네가 온다면 환영인데, 아무래도 그러면 절차상 또 까다롭기도 하고, 저번에 인터뷰 보니까 자유롭게 살 거라고 해서, 혹시나 하고….”
그러고는 현승의 눈치를 살피다 말고, 참아왔던 말을 줄줄이 토해냈다. 물론, 현승의 눈초리 한 번에 금세 말끝을 흐렸지만.
“올 생각 없어. 해보니, 대표는 내 체질이 아니더라.”
이내 현승의 대답에 두 주먹을 불끈 쥐며, 좋아했다.
사실 빈센트는 대표 자리가 체질상 딱 맞는다고 느꼈다.
물론.
가수로서 활동도 이어 나가고는 있다지만, 비즈니스적인 일도 제 옷을 입은 양 잘 맞았다.
그래서.
현승이 돌아왔다는 사실에, 기뻐했으나 내심 걱정됐다.
대표 자리에서 쫓겨나는 거 아닌가?
하지만.
실질적 권한이라던가, 능력적인 측면으로 봤을 땐 또 양보하는 게 맞는 건가 싶었기에, 요 며칠 빈센트는 홀로 고민에 빠졌었다.
그러나.
이제 현승에게 확답도 들었으니, 이렇게 종종 대표실 상석쯤이야 기꺼이 내어줄 생각이다.
그때.
대표실 문 너머로 손님이 왔다는 비서의 목소리가 들려왔고.
“들어오세요.”
현승이 제법 근엄한 목소리로 답했다.
끼이이익.
그러자, 천천히 문이 열리고 조슈아가 먼저 앞장서 들어왔다. 대표 물 좀 먹어서인지, 전보다 얼굴도 훤하니, 살도 조금 오른 듯 보였다.
아무래도.
전생과 달리, 현생에선 마약에 손대지 않고 잘살고 있던 모양이다.
“오랜만입니다.”
조슈아는 사람 좋은 미소와 함께 점잖은 인사를 건네왔다.
다만.
뒤이어 들어온 킬리언은 그렇지 못했다. 헤어진 옛 연인이라도 마주한 것마냥 문 앞에 멍하니 서서, 현승을 애틋하게 바라봤다.
이윽고.
킬리언이 현승을 향해 성큼성큼 걸음을 옮겼으나.
“아니?”
현승은 손을 뻗어 그런 킬리언의 걸음을 제지했다.
그가 무슨 행동을 할지, 미래가 예측된 까닭이었다.
너무 익숙하다.
거구의 남성이 자신에게 다가오는 저 모습.
저 모습을 보는 건, 박 전무와 자말로 충분하다.
“어찌, 살이 빠지신 것 같습니다.”
어중간한 위치에 멈춰버린 킬리언은 촉촉한 눈으로 현승을 바라보며 말했다.
덕분이랄지.
현승은 팔뚝에 소름이 돋아야만 했다.
왜.
내 주변에는 저런 남자밖에 없는 거지? 사람이 좀 평범하고, 담백할 수는 없는 걸까?
그런 생각을 하던 찰나.
“오랜만에 인사드립니다.”
현승이 아는, 가장 담백한 사람이 모습을 드러냈다.
“미셸?”
그녀는 일 년 전과 변함없는 모습 그대로, 현승의 앞에 섰다.
아, 맞다.
이제 조슈아의 비서였지.
“잘 지내셨습니까?”
미셸은 다른 이들처럼 애틋한 마음을 과격하게 표현한다거나, 잔소리를 퍼붓는 대신.
잔잔한 미소를 곁들여, 형식적인 안부 인사를 건네왔다.
“네, 미셸 씨도 잘 지내셨나요?”
“네, 그랬던 것 같습니다.”
“조슈아 씨와 일은 할 만하신가요?”
“네, 열정 넘치는 대표님을 만나, 저 또한 열심히 임하고 있습니다.”
아주 담백하고 짤막한 대화가 오갔다. 이게 참 편했다.
일 처리도 깔끔하고, 사담 없고, 로봇처럼 칼 같아서.
“우선, 미셸 씨도 같이 앉으시죠.”
이젠 제 비서가 아니라는 게 다소 아쉽지만, 어차피 이제 대표도 아닌 이상 비서를 동행할 필요는 없었다.
이윽고.
조슈아와 킬리언 그리고 미셸까지 소파에 모두 둘러앉자, 현승도 다시 상석에 엉덩이를 붙이고 앉았다.
이들과 이렇게 다시 마주 앉게 될 줄은 몰랐는데.
피식.
현승은 왠지 모르게 웃음이 나왔다. 다행히, 찻잔으로 입가를 가린 덕분에 아무도 보지 못한 모양이었다.
“인터뷰 내용은 확인했습니다.”
조슈아는 대표답게, 제일 먼저 입을 열었다.
그래.
그는 사적으로 보고 싶어서 찾아온 걸음이 아닐 줄 알았다. 나쁜 의미는 아니었다.
그래.
욕망 있고, 셈이 빠르며, 본인이, 혹은 본인의 회사가 취할 이득을 먼저 생각하는 건….
대표로서 갖춰야 할 덕목이랄 수 있으니까.
물론.
그게 전부는 아니라지만 중요한 건 사실이다.
그런 의미에서 조슈아를 차기 대표로 추천한 거고.
아아.
물론, 대표라는 자리가 주는 고독의 무게에 대해 알게 해주고 싶은 고약한 마음도 있었다.
그래도.
보란 듯이 잘 적응해서, 잘 해내고 있으니 다행이었다.
“그래도 한 번 더 확인하기 위해 찾아왔습니다.”
조슈아의 말에, 현승이 아무것도 모르겠다는 양 뻔뻔하게 눈을 깜빡이며 “뭘요?”하고 되물었다.
아마 조슈아는 지금쯤 속이 끓겠지.
나름의 복수였다. 그래도 이 정도면 귀여운 복수지.
“흠, 유니스에 다시 오실 마음이 정녕 없으십니까?”
조슈아가 헛기침과 함께, 다시 한번 점잖게 물었다.
“으음.”
현승이 그 물음에 고민하는 시늉을 해 보이기도 잠시.
“네, 없습니다.”
“아니, 왜죠?”
“없으니까요.”
단호하게 거절했다.
“대표 자리가 껄끄러운 거라면, 이사 자리로 오셔도 됩니다.”
“네, 안 가요.”
“그도 아니면 전속 작곡가로서 자유롭게 활동할 수 있도록 전폭적인 지원과 업계 최고 대우를 약속드리겠다고 해도요?”
“네, 안 사요.”
마치 잡상인 취급하듯 거절하는 현승의 태도에, 결국 조슈아의 점잖은 얼굴이 와그작 구겨졌다.
“아니, 대체 왜 안 오신다는 거예요?”
킬리언은 그런 조슈아를 말리곤, 직접 말을 이었다.
“유니스에 오는 건, 자유입니다. 하지만, 유니스만큼 좋은 곳도 없는 거 아시잖아요.”
“알죠.”
“그래요. 어차피 유니스와 빈센트가 경쟁 기업도 아니고, 협업 관계이니 다시 오신다고 한들, 문제 될 것도 없지 않습니까?”
킬리언이 언제부터 이렇게 말을 잘했더라?
묵직하니, 음악밖에 모르는 바보였던 사람이 자신을 꿰어내기 위해 처세술을 쓰다니.
“네, 그것도 압니다.”
제법 놀라웠고, 모두 맞는 말이었으나.
“하지만, 안 갑니다.”
현승에게 먹힐 리 없었다. 우선, 어느 기업에 소속되지 않고 싶은 이유가 가장 컸고.
현승이 돌아온 이유는, 딱 하나.
단독 콘서트를 열기 위함이었다. 그것도, 철저히 준비한, 아주 완벽한 단독 콘서트.
물론.
그런 것까지 이들에게 술술 불고 싶지는 않았다.
“제가 작업한 곡의 유통은 유니스에게 맡기겠습니다. 하나, 유니스에 귀속되진 않겠습니다.”
물론 도움이야, 좀 받겠지만.
“이유라도, 정확히 말해주십쇼.”
그러나 조슈아는 쉬이 포기하지 않을 기세로, 물었다. 어지간히, 현승을 붙잡고 싶은 모양이었다.
미셸이 가져온 두꺼운 서류 뭉치만 봐도 알 수 있었다.
그래.
나를 잡기 위해, 모든 루틴으로 준비해 온 계약 서류겠지.
“유니스는….”
“유니스는?”
하지만, 별수 있나? 난 그 서류에 사인을 해줄 수 없는걸.
“사내 연애 금지잖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