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turn of a Crazy Genius Composer RAW novel - chapter (482)
망나니 천재 작곡가 회귀하다 외전 10화(482/482)
외전 10화
김우현의 결혼식이 끝난 뒤.
“제이블.”
현승은 미셸의 어깨에 다정하게 팔을 두른 채 걸어가는 제이블을 발견하고는, 곧장 불러 세웠다.
“아니, 이게 누구야?”
누구긴, 누구야. 왜 안 어울리게 넉살스러운 말투를 쓰는 거지?
“우리 미셸 씨의 보스 아니야?”
미셸 앞이라고 저러나.
“오랜만입니다.”
현승은 옆에 선 미셸과 가볍게 눈인사를 나눈 뒤, 제이블에게 정중히 인사를 건넸다.
“그러게. 민현승이 돌아왔다는 소식은 들었는데, 이렇게 사람 북적거리는 곳에 얼굴을 비출 거라고는 생각도 못 했네. 안 본 새 많은 심경 변화가 있던 모양이야.”
제이블은 안 본 새, 부쩍 더 느끼해진 것 같기도 하고.
“제이블과 미셸의 관계도, 못 본 새 많은 변화가 있던 모양입니다.”
제이블은 현승에게 관계를 한 번 더 확인시켜 주기 위해, 미셸의 허리를 바싹 당겨 안았다.
미셸은 조금 놀란 기색이지만, 싫지는 않아 보였다.
그렇게 들이대더니….
결국 미셸의 마음을 얻어 냈나 보군.
“어떻게 보면 네 덕분이니, 감사하다고 해야 하나? 결혼하게 되면 가장 먼저 알리도록 하지.”
사실 둘의 관계가 조금 놀랍기는 하나, 발길을 붙잡고 싶을 만큼의 흥미가 생길 만한 일은 아니었다.
그저.
제이블을 보자마자, 꽤 좋은 아이디어가 떠올랐을 뿐이다.
“시간 가능하시면, 커피라도 한잔하시는 건 어떠십니까?”
“지금 보시다시피, 나는 미셸 씨와 달콤한 시간을 보내야 해서, 커피 한잔할 시간이 없는데.”
이렇게 비협조적이면 좀 곤란한데.
“없어도, 빈치스와 오엔이 협업 관계인 만큼 시간을 내주시면 감사할 것 같은데요.”
그 말에 제이블은 움찔하며, 미셸의 눈치를 살폈다.
미셸이 한국말로 오가는 대화를 알아들었을 리는 없지만, 그녀는 눈치가 몹시 좋은 편이다.
둘의 표정에서 심상치 않은 듯한 느낌을 받았는지, 편히 얘기하라는 듯 슬쩍 자리를 비켰다.
이윽고.
제이블이 아쉬운 듯 미셸의 뒷모습을 바라보다 입을 열었다.
“레이디와 데이트를 포기한 만큼, 값진 시간이어야 할 거야.”
참나.
“예, 그럴 겁니다.”
레이디와 데이트를 포기한 건, 나도 마찬가지인데….
“제가 아는 제이블이라면, 값진 시간이 아니라 생각할 리가 없거든요.”
* * *
제이블은 현승의 뒤통수를 노려보며 따라갔다.
이 녀석만 아니었음, 오랜만에 만난 미셸과 분위기 좋은 곳에 가서 시간을 보냈을 텐데.
다 망했잖아.
원래라면 미셸을 두고 오진 않았을 테지만, 협업 관계를 운운하는 탓에 따라나서지 않을 수 없었다.
더군다나.
남에게 관심 없는 제이블이라지만, 다른 이도 아닌 민현승이다.
지난 1년간 현승이 대체 무슨 연유로 잠적을 했던 것인지 물어보고 싶기도 했다.
특히나─.
자신에게 시간을 내 달라고 말하던 현승의 눈빛이 예사롭지 않은 걸 보면, 그저 시시껄렁한 안부나 묻자는 것도 아닌 듯 보였고.
무엇보다.
미셸이 먼저 눈치껏 자리를 비켜 줬으니, 안 따라나설 수도 없는 상황이 되어 버렸다.
하여튼, 우리 미셸 씨는 눈치도, 센스도 좋다니까?
“잠시만.”
팔불출마냥 미셸을 생각하며, 하염없이 따라 걷던 제이블이 현승을 불러 세웠다. 분명 커피나 한잔하자기에, 따라나선 걸음이었다.
그런데.
막상 현승을 따라 도착한 곳이 스튜디오인 까닭이었다.
“여긴 왜 온 거야?”
그것도 서울에서 규모가 월등하다고 소문난 대형 스튜디오.
보통 오케스트라 녹음이라던가, 가수가 대거 투입되는 프로젝트 앨범을 녹음할 때 빌리는 곳이다.
제이블 또한 말로만 들어 봤지, 직접 와 본 건 처음이었다.
“여기 캡슐 커피가 맛있어요.”
“갑자기 웬 시시한 농담이야?”
“농담 아니고, 진짜 맛있어요.”
현승은 진심이라는 듯, 커피 머신과 정수기가 갖춰져 있는 휴게실로 걸음을 옮겼고.
“정수기에서 얼음도 잘 나오고.”
싱긋 웃으며, 일회용 컵에 얼음을 내려받았다.
“아니, 머신으로 커피나 내려 마시자고, 이 대형 스튜디오를 빌려서 날 초대했다고?”
“아무래도 그러기엔 배보다 배꼽이 크긴 하죠.”
제이블은 능글스럽게 커피를 내려받는 현승을 쏘아보다 말고, 이내 웃음을 터트렸다.
이 자식이, 누구 놀리나?
데이트 시간을 빼앗은 것도 모자라, 허튼소리나 늘어놓는 현승이 미운 건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마냥 밉거나 싫은 건 아니었다. 그래, 마음 한편으로는 보고 싶기도 했으니까.
아아.
엄청나게 보고 싶던 건 아니고, 그냥 아주 조금?
“날 부른 진짜 이유를 얘기해. 너는 미셸 씨를 매일 볼 수 있을지 모르지만, 난 장거리라 자주 볼 수 없단 말이야. 일분일초가 소중하다고.”
그리고, 녀석이 진짜 캡슐 커피나 마시자고 부른 게 아닐 거라는 것 또한 알고 있었으니까.
“걱정하지 마세요. 한동안은 자주 볼 수 있을 겁니다.”
“뭐?”
“미셸은 제 비서고, 제가 한국에 한동안 있을 거니까요.”
그럼, 그렇지.
“그럼, 지금부터 네가 앞으로 한국에서 뭘 하려는 건지, 내가 뭘 해 주면 되는지 짧게 얘기해 봐.”
녀석이 나를 아무런 이유 없이 불렀을 리가 없지.
“짧게라….”
현승이 중얼거리기도 잠시.
“이거 한번 보시겠어요?”
제이블을 데리고 컨트럴 룸으로 향했다.
작업 모니터 위에는 프로그램과 함께 파일 창이 켜져 있었다.
“이게 뭐야….”
제이블은 천천히 모니터 앞으로 걸음을 옮겼고.
이내 파일 창에 나열된 음원 파일을 천천히 눈으로 훑었다. 이게 대체 몇 곡이야?
얼핏 흘겨보더라도, 열댓 곡이 넘어 보였다.
복귀한 지, 얼마나 됐다고.
이 많은 곡을 언제 준비해 온 거지?
“드, 들어 봐도 될까?”
제이블은 자신을 기다리고 있을 미셸을 까먹은 채, 무언가에 홀린 듯 헤드셋을 집어 들며 물었다.
끄덕끄덕.
현승은 얼마든지 들어 보라는 듯, 고개를 잘게 끄덕이고는 빈 의자에 여유롭게 몸을 기댔다.
달칵, 달칵.
제이블은 어느 때보다 신중하게 마우스를 조작해, 넘버링이 매겨진 음원 중 하나를 클릭했다.
꿀꺽.
그러고는 마른침을 삼켰다. 왠지 모를 긴장감이 든 까닭이었다. 그도 그럴 게, 어찌 보면 이 음원들은 현승의 복귀작인 셈이지 않나?
그가 사라진 지난 일 년간, 어떤 시간을 보내 왔는지 여과 없이 보여 줄 결과물이기도 했다.
─ ♬ ♬ ♬
이내 헤드셋을 통해, 제이블이 선택한 03번 트랙이 흘러나왔고.
“하, 진짜….”
제이블은 양손으로 얼굴을 가린 채, 한숨을 푹 내쉬었다.
한편.
현승은 아닌 척, 그런 제이블을 흘끔 쳐다보며 반응을 살폈다.
이윽고.
제이블이 천천히 고개를 돌려, 현승을 바라봤고.
둘이 공중에서 시선이 맞닿아 떨어진 그 순간.
“재수 없는 놈이, 또 내 자리 뺏으러 왔네?”
“설마요.”
“미국에나 있지, 왜 또 한국을 들쑤시러 온 거야.”
제이블이 묘한 흥분감으로 일그러진 얼굴 위로 미소를 띠었다.
“그건 그렇고, 아무래도 미셸 씨한테 많이 늦을 것 같다고 미리 연락해 놔야겠다.”
헤드셋을 통해 흘러나오는 멜로디를 듣고 있자니….
확실히 값진 시간이 될 것 같은 예감이 든 까닭이었다.
* * *
강하준은 아침 일찍 일어나, 나갈 준비를 마친 뒤, 늘 그랬듯 현승을 위한 기도를 올렸다.
현승이 잠적한 이후로, 그의 기도는 더욱 열렬해졌다.
“오늘 또한 그에게 모든 행운을 바치나니….”
그도 그럴 게, 현승이 잠적하기 전, 스케줄이 바쁘다는 이유로, 그를 위해 올리는 기도를 거르는 날들이 점차 늘어났고.
그런 날들이 쌓이던 차에, 돌연 현승이 잠적해 버리자 강하준은 잠적이 자신 때문이라며 자책했다.
머리로는 아니라는 걸 알지만.
마음을 짓누르는 죄책감이, 강하준을 광적인 신도처럼 만들었다. 그렇게 그는 현승이 잠적한 순간부터, 다시 돌아온 이후에도 그를 위한 기도를 매일 거르지 않고 올렸다.
비록 이런다고 현승에게 실질적인 도움이 되는 것은 아니라지만, 결혼식에서 마주한 현승의 얼굴빛이 막 복귀했다는 소식을 듣고 찾아갔을 때보다 훨씬 좋아진 듯하여 마음이 좀 놓였다.
그리고.
열렬한 기도 끝에 부름을 받듯이, 현승에게 연락이 왔다. 그것도, 심장을 뛰게 할 만한 연락이.
[ 내일 넉넉히 짐 싸서 보내 준 주소로 와 ]이리 와라, 저리 와라. 이런 연락은 받아 봤지만 짐을 싸서 오라니! 이런 연락은 또 처음이다.
대체 뭘 하시려고 이러는 걸까? 작업이었다면 짐을 챙겨 오라는 말은 안 하셨을 것 같은데….
그럼, 설마 진짜 여행이라도 떠나시려고 그러는 걸까?
“후우….”
강하준은 이 문자를 받은 어젯밤부터 지금까지 줄곧 심장이 떨려 제대로 잠을 이루지 못했다.
물론 무슨 의도로 짐을 챙겨 오라는 건지, 알 수 없었지만.
회사에 연락해 우선 당분간 스케줄을 비워 놓았다. 잔소리를 좀 들을 줄 알았건만, 순순히 그렇게 하겠다는 답변까지 받았다.
이제 맘 편히 현승과 함께 시간을 보내기만 하면 된다.
이윽고.
강하준은 마치 처음 수련회를 떠나는 학생처럼, 설레는 마음으로 짐을 가득 챙긴 가방을 어깨에 둘러멘 뒤, 집을 나섰다.
[ 잠시 여행 다녀올게요. ]자신의 집에 청소하러 와 주는 아주머니에게 전하는 쪽지를 테이블 위에 올려놓은 채로.
여행길에 올랐다.
.
.
.
여행길이 아니라도 좋다고 생각하긴 했다지만.
“자, 모두 모였나?”
처음 수련회에 가던 때처럼, 설렌다고 생각은 했지만.
“부름에 응답해 주어 고맙다.”
정말 수련회에 온 것 같은 기분이 들 줄을 몰랐다.
아니.
이건 수련회라기보단, 극기 훈련이라고 해야 하나?
스─윽.
주위를 둘러보니, 다 아는 얼굴이었다. 그래, 소위 현승 사단이라고도 불리는 ‘현승의 악기들’이었다.
그들의 옆에는 캐리어 또는 짐으로 불룩해진 가방이 놓여 있었다.
“짧게 설명하겠다. 여기에 모인 악기들은, 이제부터 합숙 녹음에 들어가게 될 거다.”
그들 또한 자신처럼 영문을 모르고 찾아온 것인지, 어안이 벙벙한 채로 맨 앞줄에 모자를 푹 눌러쓴 채 서 있는 현승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리고.
현승의 옆으로는, 흉흉한 미소를 띠고 있는 제이블이 서 있었다. 대체, 이게 무슨 상황이지?
“다들 날 잘 아니까, 더 설명은 하지 않겠다.”
강하준이 지금, 이 상황을 판단하려 눈알을 굴리던 그때.
“참고로, 이곳에서는 강한 악기만이 살아 나갈 수 있다.”
현승은 마치 훈련병 시절, 자신이 무서워했던 호랑이 교관처럼 각 잡힌 모자를 다시 한번 고쳐 쓰며, 위엄 가득한 목소리로 으름장을 늘어놓았다.
“버텨 내지 못할 악기라면, 지금이라도 나가도 좋다.”
그 말에 강하준을 비롯해, 다른 이들이 서로 눈치를 주고받기도 잠시.
“아, 아닙니다! 버텨 낼 수 있습니다!”
미리 약속이라도 한 듯, 군기 바짝 든 훈련병처럼 대답했다.
그렇게.
지옥의 합숙 녹음이 시작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