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turn of a Crazy Genius Composer RAW novel - chapter (55)
망나니 천재 작곡가 회귀하다-55화(55/482)
김 실장은 요즘 현승이 식음을 전폐한 채 작업실에 며칠 밤을 꼬박 새우며 작업하고 있다는 소식을 전해 듣게 되었다.
그래.
아마도 맨 레코즈와 맺은 협업 작업 때문이겠지. 변태스러울 정도로 집요한 성향인 놈이 제 건강도 해치며 몰두하고 있는 모습이 눈앞에 훤했다.
걱정되는 마음에 오전 업무를 빛의 속도로 처리한 뒤 커피와 먹거리를 사 들고 작업실로 향했다. 가까워질수록 발걸음은 점차 빨라져 갔다.
“하이고.”
작업실 문을 열자마자 보이는 뒤통수에 한숨을 내쉬었다. 요즘 결혼은커녕, 연애도 제대로 못 해 본 자신에게 아들이 하나 생긴 느낌이다.
“요즘 씻긴 씻냐?
“아, 오셨어요.”
제 물음에 현승이 고개를 돌려 아는 척을 해 왔다. 눈 아래로 자리한 어두운 그림자와 대조되어 눈동자가 더욱 반짝인다. 김 실장은 두툼한 제 손으로 잔뜩 흐트러진 현승의 뒷머리를 정리해 주며 재차 물었다.
“잠은 고사하고, 씻지도 못할 정도로 집중한 거야?”
“예, 하다 보니 그렇게 됐네요.”
“그 프로젝트는 얼마나 더 작업해야 끝나는 건데?”
“글쎄요? 대략 한두 달 정도?”
김 실장은 놀란 얼굴로 “그렇게 오래?” 하고 반문했다.
“타이치 상 계실 때 완성한 메인 OST 제외하고도, 만들어야 할 테마곡이 열네 곡이나 되거든요. 새로운 컨셉과 장르의 작업이라 생각보다 좀 걸릴 것 같네요. 근데 정말 재밌어요.”
작업이 재미있어 봐야 얼마나 재미있다고 얘기하는 것만으로도 입가가 점점 보기 좋은 호선을 그린다. 제법 이십 대 초반 같은 싱그럽고 화사한 미소라고 생각했다.
처음에는 웃음 한 점 없는 날카로운 입매와 인생을 통달한 듯한 눈빛이 나이와 맞지 않아 이질감을 느꼈건만, 근래 접어들어서는 소년처럼 익살스럽고 짓궂은 표정도 보여 주곤 했다.
긍정적인 변화였다.
그래, 그런 얼굴을 계속 보다 보니 점차 정이 들었나 보다.
“밥은 좀 먹고 해.”
현승의 끼니를 걱정하여 사 온 먹거리가 테이블 위를 가득 채울 만큼 많은 걸 보면 말이다.
“이야, 실장님 최고!”
헤드셋을 내려놓은 현승이 테이블 앞으로 달려와 김밥 하나를 집어 들어 입에 욱여넣었다.
“이게 뭐야.”
김 실장은 현승의 새하얀 후드티 위에 묻어 난 얼룩을 물티슈로 문질러 쓱쓱 닦아 냈다. 가만 보면 은근히 손이 많이 가는 놈이다.
“커피 마시다가 좀 흘렸었나 봐요.”
“야, 넌 나 없이 어떻게 살래?”
“계속 옆에서 서포트 해 주실 거잖아요.”
“모르지, 그걸 어떻게 확답해.”
연예계란 자고로 가변성이 심한 곳이다. 영원할 수 있다면 좋겠다지만 더 좋은 조건으로 둥지를 옮긴다면 서로서로 응원해 줘야 하는 미덕 역시 존재한다. 그래, 사람 인연이라는 게 만남이 있으면 이별 또한 존재한다는 건 김 실장도, 현승도 알고 있는 사실이자 세상의 이치다.
“언제는 저 보고 절대 은퇴하지 말라고, 평생 함께해야 한다면서요.”
“인마, 은퇴와 이직은 엄연히 다르지. 그리고 너도 그때 확답 안 했잖아.”
둘이 피식 웃음을 흘려보냈다. 더 이상의 말은 잇지 않았다. 그저 먹거리를 씹는 소리만 들릴 뿐이었다. 그렇게 얼마나 지났을까? 현승이 무슨 생각을 하는지 모를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만약 이직하게 될 것 같으면 미리 말해 주세요.”
“왜? 따라오려고?”
“아니요? 저한테 꿔 가신 식권 달라고 하게요.”
그 말에 김 실장이 제 뒷목을 잡은 채 “아이고, 혈압아.”하며 중얼거렸다.
“근데 왜 실장님은 밥 안 드세요?”
“난 오늘 점심 약속이 있어서.”
그리고는 곧장 자리를 털고 일어나며 덧붙였다.
“이직하신 전 본부장님이랑 식사하기로 했거든.”
“헐? 실장님, 벌써 이직 각 잡는 거예요?”
“그런 거 아니야, 인마. 쓰레기만 한쪽으로 치워놔.”
제 말에 현승이 대충 “눼눼.”하며 익살스럽게 대답하자 공중에 꿀밤을 쥐어박는 시늉을 해 보이고는 작업실 문을 향해서 걸음을 옮겼다.
“아빠 간다, 이놈아. 밥 좀 잘 챙기고 잠 좀 자 가면서 해.”
이윽고.
쿵 하는 소리와 함께 무거운 작업실의 방음문이 닫혔다.
“흠.”
현승은 김 실장이 나간 문을 바라보며 마지막 김밥 한 조각을 입에 욱여넣었다.
“아빠라….”
그래, 흡사 그의 뒷모습이 어린 자식을 두고 일을 나가는 아버지의 초상과 닮아 있었다.
* * *
“상부에서 저를 눈여겨보고 계신단 말씀이십니까?”
김 실장은 제 귀를 의심했다. 제 앞에 있는 LS 엔터의 전 본부장인 김우석이 건네온 제안 때문이었다.
“그래, 내가 예전부터 자네를 좋게 봤었잖아. 회사 내에서 내 입지가 잡히자마자 김 실장부터 찾아온 거야.”
김우석이 계약서가 담긴 봉투를 내밀었다.
“계약 조건 한번 꼼꼼히 살펴봐. 뭐, 말 안 해도 김 실장이라면 어련히 잘 확인하겠지만 말이야. 나도 언뜻 살펴봤지만, 이 정도면 사실상 업계 최고 조건이야. 아마 김 실장도 내 말에 공감할걸?”
이윽고.
“아, 예….”
김 실장이 손이 베일 듯 날카로운 계약서류를 꺼내서는 꼼꼼하게 훑기 시작했다. 이직 제안을 하리라 예상하긴 했지만 반신반의하는 마음이었다. 자신은 이직이 잦은 연예계 내에서 몇 안 되는 순혈 직원이었으니까.
설마 정말 이직 제안을 하겠어?━분명, 이런 가벼우면서 무거운 마음으로 자리에 나왔다. 그냥 밥이나 먹는 자리겠지, 밥도 먹고 커피도 한잔 마시면서 오랜만에 서로 속에 품은 고충이나 불만을 늘어놓는 자리겠지.
한데, 반쪽짜리 예상이 맞아떨어졌다. 아직 이직을 수락하지도 않았는데, 그저 호기심에 계약서를 살피고 있다는 이유만으로 괜한 죄책감이 들었다. 중간중간 목이 탈 때마다 커피를 들이켜다 보니 잔은 벌써 바닥을 드러낸 채였다.
쪼옥, 쪼옥-.
빨대에서 바람 빠지는 소리가 났다.
‘왜 내게 이런 제안을 한 거지.’
호의적인 내용으로 꽉 차 있는 계약서다. 실적에 따라 매 분기 유의미한 인센티브를 지급하겠노라는 조항을 시작으로, 자신에게 유리해 보이는 내용만이 가득했다. 독소조항은 눈을 씻고 찾아도 발견할 수 없었다. 가장 마음에 드는 건 1.5배나 되는 연봉이었다.
“다 읽어 봤어?”
김우석이 채근했다.
“우현아, 솔직히 말해서 네가 LS에서 배출한 애들이 한둘이냐? 걔네는 지금 스타랍시고 떵떵거리며 사는데 솔직히 억울하잖아?”
“억울할 게 뭐가 있어요? 그 애들한테는 그만큼 빛나는 재능이 있었잖아요? 들여다보면 다들 누리는 만큼 고생하는 애들입니다.”
밥 한 끼, 집 앞 산책조차 마음 편히 못 하며 산다. 그들에게 열등감도, 박탈감도 느껴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다. 어쩌면 당연한 말일지 모른다지만 모두가 별이 될 순 없는 법이다. 그들의 빛나는 재능을 유감없이 뽐내려면, 누군가는 서포터 역할을 맡아야 한다.
별 주변을 맴도는 인공위성처럼.
반면, 김우석은 강경한 투로 거듭 설득을 시도했다.
“그래, 맞는 말인데 툭 까놓고 얘기하자. LS 엔터 성과금이라고 해 봐야 쥐꼬리만 하지 않아? 사내 정치도 심하고, 진급도 어렵고, 하는 만큼 받기는 해야 할 거 아냐. 그냥 이직해. 우리 회사는 말 그대로 성과 중심이야. 대우부터가 아예 다르다니까?”
그리고는 작게 덧붙였다.
“넘어와. 넘어오면 내가 당겨 줄게. 우리 LS에서부터 궁합 잘 맞았잖아? 계약서 짤 때도 내 입김이 얼마나 많이 들어갔는데.”
김 실장이 계약서를 뚫어지라 들여다봤다. 사내에서 차기 임원 후보로 거론되고 있다고는 하지만 언제가 될지는 모를 노릇이다. 더군다나 한두 번이라도 헛발질했다간 가뜩이나 언제일지도 모를 언제가 더 미뤄질 거다.
“우현아.”
김우석이 마른 제 입술을 한번 축이고는 본심을 꺼내 들었다.
“근데 너 정도라면 데려올 애들도 좀 많지?”
“예?”
“네가 키운 애들 많잖아? 다 너 잘 따르고.”
LS에 남은 이들도 있고 다른 둥지로 떠나간 이들도 있다지만 자신이 발굴한 스타가 꽤 많은 편이기야 했다. 그런 이유로 자신이 로드 출신임에도 불구하고 초고속 승진을 할 수 있었던 거고.
“애들 몇 명 데려오라는 겁니까?”
“그럼 더할 나위 없이 좋지.”
“데려와야 이 조건인 거고요?”
김 실장이 재차 첨언했다.
“이직 결정한 것도 아니라지만 누구 데리고 갈 순 없을 겁니다. 그런 부탁할 깜냥도 못 되고 상도의에 어긋나는 일은 못 합니다.”
소속 연예인들이 자진하여 자신을 쫓아오겠다고 한다면야 말릴 수는 없겠지만, LS 엔터 혹은 다른 엔터와 좋은 계약 관계를 유지하고 있는 이들에게 자신을 쫓아 오라고 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좁은 업계다.
어차피 정해진 이들이 살아가고, 움직이고, 마주치고, 좌지우지 흔드는 업계다. 괜히 소탐대실하며 적을 만들 필요도 없을뿐더러 미움을 살 필요도 없는 곳이다. 그래 봐야 부메랑처럼 돌아올 테니
“음.”
김우석이 침묵을 깨며 말을 덧붙였다.
“HS, 그 친구라도 데려올 수 있으면 금상첨화일 텐데.”
“예?”
“그 친구도 네가 영입했다면서? 나, 귀 밝은 거 알잖냐.”
아직 이직 여부도 결정치 못했다만 안 되는 건 안 되는 거다.
“안 됩니다.”
설령 이직하게 된다고 하더라도 비단 현승뿐만이 아니라 어떤 소속 연예인도 끌고 갈 생각이 추호도 없다. 둥지를 떠나는 이가 알을 훔치는 건 상도덕에 완벽하게 어긋나는 일이나 마찬가지다.
“누차 말씀드리지만, 소속 연예인을 빼 가는 건 안 됩니다. 만약 그런 이유로 저를 영입하시려던 거라면 그냥 이 자리에서 정중히 거절하겠습니다.”
김 실장이 슬쩍 계약서를 밀어내자 김우석의 손끝이 황급히 서류를 막아냈다.
“거참, 성급하게. 꼭 그러라는 게 아니야. 있잖아? 나는 김 실장 능력 정말 높이 산다? 그냥 자네 능력만 측정해서 짠 계약서야. 상부 통과도 끝났어. 그냥 자네가 도장만 찍으면 말 그대로 끝나는 계약서야.”
그가 지갑에서 명함을 꺼내 건네줬다.
“우현아, 지금 당장 결정하라는 거 아니야. 천천히 생각해 보고 잘 결정해서 연락해 줘. 기다리고 있을 테니까. 대신 그거 하나만 좀 알아 둬라. 이직하고 나면 본부장에서 시작하는 거야, 본부장에서. 나도 끗발 안 떨어지는 임원이다? 너 충분히 밀어줄 수 있다고.”
김 실장이 그의 명함을 물끄러미 내려다봤다.
「 사내 이사. 김우석 」
안 그래도 오늘 만나자마자 그의 겉치레가 예전보다 확실히 더 태가 난다고 생각하긴 했는데, 다른 둥지로 옮긴 그는 본부장에서 사내 이사직으로 한 걸음 더 높이 발돋움에 성공한 모양이었다.
그래, 솔직히 말하자면 저 명함이, 직급이, 너무 부럽고 탐이 난다. 그러니 더욱 신중하게 판단해야 한다. 너무 맛있어 보인다고 덥석 집어 먹었다가 탈이 날 수도 있으니까.
이윽고.
김 실장이 명함을 집어 들며 답했다.
“예, 생각해 보고 연락 올리겠습니다.”
그런데….
이상하게 명함 위로 계속 현승의 얼굴이 겹쳐 보일 따름이었다.
* * *
김 실장은 일정을 끝낸 뒤 췌장암으로 투병 중인 어머니가 입원해 계신 병원을 찾았다.
“어머니, 저 왔어요.”
“피곤할 텐데 뭐 매일 같이 와.”
창가를 보며 누워 있던 어머니는 자신을 보자 방긋 웃으며 몸을 일으켰다.
“괜찮아요. 배 좀 깎아 드릴까요?”
“좋지, 아들이 깎아 주는 배.”
김 실장은 그릇과 과도 그리고 냉장고에 넣어 놨던 배 하나를 꺼내 어머니 옆에 앉았다. 그리고는 능숙히 배의 껍질을 깎으며 곁눈질로 어머니의 상태를 살폈다.
그래도 황달은 많이 잡혔네. 김 실장은 아주 작은 희망을 품은 채 배를 썰었다. 어머니는 썰어 놓은 조각 하나를 낼름 들고 가 한입 베어 물며 물었다.
“아들, 요즘 만나는 사람은 없어?”
“예, 뭐….”
“얼른 참한 색시 하나 데려와야지.”
김 실장은 대답 대신 묵묵히 남은 배를 조각냈다.
사실….
마음에 품은 여자가 있다. 차마 어머니에게는 말할 수 없었다. 아직 그렇게 진지한 사이도 아니거니와, 어린 나이가 아니니 더욱 현실적으로 상황을 바라봐야만 한다.
자신은 아픈 홀어머니를 모시고 있는 외동아들이자, 제 명의로 된 집 하나 없는 놈이다. 이대로라면 결혼은 할 수 있을지, 자식을 책임질 자격이 있을지조차 막막한 미래뿐이다.
그런 자신에게 미연 씨는 한없이 과분한 여자다. 그래, 이런 막막한 제 현실에 끌어들여 아픔도, 슬픔도, 고통도, 역경도 함께 이겨내자고 할 만큼 염치가 없지는 않다.
달그락.
다 깎은 접시를 침대맡에 내려놓고는 과도를 치웠다. 삐딱한 제 마음과는 달리 과일은 반듯하니 먹음직스럽게도 잘렸다. 어머니는 그런 제 눈치를 보며 조심스럽게 물었다.
“아들, 엄마 이제 정말 괜찮은 것 같은데 퇴원할까?”
그 잔인한 물음에 김 실장은 고개를 들어 어머니의 얼굴을 빤히 바라봤다. 아마도 아들인 자신의 눈치를 보고, 감당하기 어려운 병원비를 걱정하며 하는 말일 게 분명했다.
사실 아무것도 괜찮아지지 않았으면서 하는 말이다. 검사 수치가, 야위어 가는 얼굴이, 힘없이 빠지는 머리카락들이 어머니는 전혀 괜찮아지지 않았다는 증거였다.
“어머니, 제발 그런 말 마세요.”
어머니가 넌지시 묻는 “퇴원할까?”라는 말이 그저 제 귀에는 “엄마, 이제 그냥 서서히 죽을까?”라고 들릴 따름이었다. 그래, 아버지도, 형제도 없는 자신에게는 홀로 감당하기 너무 잔인한 물음이었다.
“저 내일도 빨리 나가 봐야 해서 먼저 가 볼게요. 얼른 주무세요. 치료 잘 받고, 약도 꼬박꼬박 다 챙겨 드시고요.”
그 말을 끝으로 김 실장이 곧장 병실을 빠져나왔다.
탁-!
복도 벽에 기대어 돌아오지 않을 물음을 던졌다.
대체….
왜 어머니는 자꾸만 왜 저런 거짓말을 하시는 걸까?
“돈 때문이지, 다.”
그래, 다들 돈이라는 사슬에 발목이 묶인 채 하루하루를 버틸 뿐이다. 돈 때문에 머리를 조아리고, 마음에 없는 말을 지껄이고, 가고 싶지 않은 곳에 가고, 꼭 해야 할 말은 참고, 하지 말아야 할 말은 하며 산다. 사실 어지간한 문제는 전부 다 돈 때문인 거다.
“미치겠네….”
마음이 복잡해진다. 이직하고 싶은 마음은 없는데 조건이 너무 매혹적이다. 어머니는 점점 야위어 가고, 현실은 어째 날이 갈수록 무겁게 느껴진다. 그런 와중에 휴대폰이 울렸다.
「 금쪽이 」
현승에게 온 메시지였다. 평소였으면 바로 답장을 확인하고 답장했겠지만, 깊게 한숨을 내쉬고는 휴대폰을 도로 주머니에 집어넣었다.
“하아-.”
모든 게 복잡하게 느껴진 까닭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