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turn of a Crazy Genius Composer RAW novel - chapter (61)
망나니 천재 작곡가 회귀하다-61화(61/482)
김 실장은 약속된 시간 전부터 미리 카페에 와 있었다. 무슨 말을 할지는 이미 정해 놨다. 그대로 얘기만 하면 된다. 그래, 더도 말고 덜도 말고 딱 할 말만.
“우현이, 빨리 와 있었네?”
옆에서 들려온 목소리에 고개를 들어보니 미소를 짓고 있는 김우석이 보였다.
“아, 오셨어요?”
그는 늦어서 미안하다는 형식적인 인사치레를 끝낸 뒤 자신이 커피를 사겠다며 지갑을 꺼내 들었다.
“아닙니다. 이번에는 제가 살게요.”
“음, 그럴래? 그럼 따듯한 아메리카노로 부탁해.”
김 실장은 그의 행동을 제지하고는 계산대로 향했다. 아직 늦겨울인 만큼 따듯한 아메리카노로 두 잔을 주문한 뒤 자리로 돌아왔다.
“좀 걸릴 줄 알았는데, 금방 연락이 와서 좀 놀랐어. 그래, 결심이 좀 선 거야?”
“예, 그래서 연락드렸어요.”
“그래, 그래. 아무리 생각해 봐도 아니지? LS 엔터는 오래 머무를 만한 둥지가 아니야.”
김우석은 잔뜩 올라간 어깨를 들썩이며 “당연히 그렇겠지.”라며 재차 중얼거렸다. 김 실장이 자신의 제안을 받아들이는 쪽으로 결심을 세웠을 거라 확신했기 때문이다. 거절할 이유가 하나도 없는 제안이기도 하거니와, 당장 잡아야 하는 일생일대의 기회라 불러도 될 만큼 완벽한 계약 조건을 제시했으니까.
설령.
제안을 거절한다면 헛똑똑이라며 훈수를 둬서라도 회유해 볼 생각이다.
“우선 저를 좋게 봐 주시고 먼저 제안해 주신 점, 다시 한번 감사하게 생각합니다.”
“뭘 새삼 감사 인사는! 그만큼 김 실장이 좋은 사람이고 능력 있는 사람인 거지.”
그때.
지이이이잉-!
테이블 위에 놓여 있던 진동벨이 울린 탓에 둘의 대화는 잠시 중단되었다. 김 실장은 “잠시만요.”하고 양해를 구한 뒤 카운터로 향했다.
“흐음.”
그런 김 실장의 뒷모습을 바라보던 김우석은 고개를 비스듬히 기울였다.
분명 거절할 리 없다고 확신했는데….
제 예상과 달리 반응이 너무 냉랭했다. 비즈니스적인 표정과 고저 없는 목소리, 형식적이리라 만큼 올곧은 자세가 자꾸만 거절의 메시지를 전해오고 있었다. 설마?
그래, 그저 제 감이 틀린 거라 여겼다.
김 실장이 머그잔 두 개가 올려진 쟁반을 테이블 위에 올려놓고 자리에 앉을 때까지도 제 착각이리라 생각했다.
그러나.
“길게 시간 뺏지 않겠습니다.”
눈이 마주친 순간.
“마음은 감사하지만, 제안은 거절하겠습니다.”
전혀 제 예상에 없던 답변이 돌아왔다.
“아, 아니… 잠깐만.”
거절하는 상황을 어렴풋이 상상만 해 봤지, 실제로 일어날 줄은 꿈에도 몰랐다. 그래, 은연중 김 실장이 거절할 일은 절대 없을 거라고 자만에 차 있었다.
원래대로라면 “그래, 인마. 잘 생각했다. 우리는 이제 같은 배를 탄 거야. 앞으로 잘 부탁한다.” 같은 말들을 늘어놨어야 하는데 이젠 무슨 말을 해야 하지?
사고회로가 정지한다는 느낌이 이런 걸까? 아니, 이런 생각이나 할 때가 아니지. 김우석은 제 목을 옥죄는 넥타이를 느슨하게 풀어 재끼며 다음 말을 이었다.
“우현아, 다급하게 결정할 필요 없어. 시간을 좀 더 가지고 다시 생각해 보는 게 어때?”
“몇 번을 다시 생각해 봐도 제 답은 같을 겁니다. 더 이상 이사님의 시간을 뺏고 싶지도 않고요.”
비록 자존심이 상하더라도, 다시 한번 붙잡아야 할 만큼 아쉬운 인재다. 김우현을 처음 만났을 적, 그의 눈은 늘 악에 차 있었다. 제 눈썰미가 틀리지 않았다는 걸 증명하듯, 김우현은 악착같이 제 영향력을 넓히며 차곡차곡 올라와 실장직에 앉았다.
하물며 업계에서는 김우현이 배출해 낸 가수들은 스타 반열에 오른다는 말이 나돌 정도로 그가 가진 눈썰미나 촉은 모두가 부러워하는 ‘재능’이자 ‘능력’이었다. 그런 그가 가져다줄 미래의 이득과 성과까지 모두 계산해서 제안한 계약서였다.
그런데….
제 노력과 입김이 들어간 이 계약서가 단순히 종이 쪼가리가 되어 버렸다.
“혹시 최 이사님에게 등 돌리고 싶지 않아서 그러는 거냐?”
이렇게 된 이상, 훈수를 두어서라도 김우현의 마음을 돌려놓는 수밖에 없다. 당장은 감정적인 관계에 휩쓸렸을 거다. 하지만 다시 한번 이성적으로 생각해 본다면 자신이 제안한 계약을 거절해서는 안 된다는 걸 알게 될 터였다.
그래, LS 엔터에서는 이 정도 조건을 절대 맞춰 줄 리 없으니까.
“내가 너 책임감도, 충성심도 강한 거 다 아는데, 단순히 그런 마음으로는 이 바닥에서 오래 살아남을 수 없어.”
“예, 그런 말랑한 마음으로는 제 밥그릇 하나 챙겨 먹을 수 없는 험난한 곳이라는 거, 아주 잘 알고 있습니다.”
“그래, 인마. 머지않아 후회하게 될 선택은 하지 말자. 이제 네 나이도 생각해야지. 마냥 청춘이 아니라고.”
김우석은 다시 한번 계약서를 꺼내어 그가 볼 수 있도록 올려놓으며 덧붙였다.
“당장은 네 앞길만 생각해.”
김 실장은 제 앞에 놓인 계약서를 빤히 내려다봤다. 자신도 안다. 이 계약서는 현재 연봉의 1.5배, 높은 성과금, 독소조항 하나 없이 시작부터 본부장이라는 감투를 부여한다는 내용까지….
결점 하나 없는 최상의 계약서라는 걸.
다만.
전쟁터나 정글과 다를 바 없는 차가운 콘크리트 바닥에서 제게 밥그릇을 나눠 주겠노라 손을 내밀어 준 이를 대차게 두고 떠날 만큼 자신은 이기적이고 모질지 못했다. 그래, 자신을 향해 모자란 놈이라며 헛똑똑이라고 해도 괜찮다.
“김우석 이사님, 저는 제 앞길에 뒤를 돌아보며 후회할 순간을 만들지 않고자 이런 선택을 한 겁니다.”
“그렇다면 더욱 내 제안을 받아들여야지. 거기선 더 이상의 희망이 없다는 거, 너도 잘 알고 있잖아.”
김 실장의 손을 떠난 계약서는 다시금 김우석의 앞으로 주르륵 밀려났다.
“아니요. 여기에도 있습니다, 제 희망.”
그 말을 끝으로 자리에서 일어난 김 실장은 가볍게 고개를 숙여 보였다.
“모쪼록 신경 써 주셨는데 죄송하게 됐습니다. 이만 바쁜 일정이 있어서 가보겠습니다.”
그리고는 가벼운 발걸음을 옮겨 카페를 나섰다. 뒤에서는 “야, 우현아!” 하는 외침이 들려왔지만 더 이상 제게 불필요한 부름이었다.
이윽고.
김 실장이 휴대폰을 꺼내 단축키 1번을 꾹 누르자 화면에는 ‘금쪽이’라는 글자가 떠올랐다.
“어, 현승아. 오늘 구내식당 메뉴 끝내주던데 같이 갈까?”
* * *
일본 유명 게임 스트리머인 히요리는 방송을 시작하기에 앞서 자신만의 시간을 보내는 중이었다.
“아, 진짜 너무 좋다….”
히요리는 마치 사랑에 빠진 소녀처럼 제 두 뺨을 감싸 쥔 채 발을 동동 굴렀다. 이토록 그녀가 신난 이유는 헤드셋을 통해 흘러나오는 ‘Dear my Beethoven’이라는 곡이 너무 좋은 탓이었다.
처음에는 일본 가수인 ‘신노스케’의 신곡인 줄 알았다. 그러다 서지니가 올린 ‘Dear my Beethoven’의 커버 영상을 접하면서 한국 작곡가의 개인 앨범 타이틀곡이라는 걸 알게 되었다.
이후 곡에 흠뻑 매료된 그녀는 앨범의 다른 수록곡을 찾아 듣는다거나, 제 개인 스위터에 추천글을 매일 같이 써서 올린다거나 방송에서 재차 언급하는 방식으로 남다른 애착을 드러냈다.
뭐든 원조가 최고라 했나?
누군가 로컬라이징 된 일본 버전과 원곡인 한국 버전 중 어떤 게 더 좋냐고 묻는다면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한국 버전이라 답할 거다. 본래 좋은 곡 앞에서 국경을 구분 짓는 게 무슨 의미가 있겠나.
“목소리 미쳤다.”
그래, 이거지. 고요하고 담담하지만 무겁게 자신을 압도하는 곡의 분위기, 그리고 그 분위기를 최대치로 끌어 올려주는 문범재의 목소리가 미치도록 좋았다. 곡을 듣고 있노라면, 시간 감각을 잃어버릴 정도였다.
“엉?”
그때 흠뻑 곡에 빠져든 히요리의 눈을 사로잡는 게 있었다.
[ 동섬 이번 시즌 메인 OST만큼은 다들 꼭 들어 보시기를! ]자주 즐겨 찾는 게임 커뮤니티에 올라온 글이었다. 맞다, 이번에 동물의 섬이 새로 개편되었다고 했지? 원래 동물의 섬은 삽입된 사운드트랙들이 좋기로 유명하다. 그래서 자신조차 예전에는 밥도, 잠도 포기한 채로 그렇게 푹 빠져든 때가 있었다.
지금은 모종의 이유로 다른 게임 방송을 하고 있지만….
“뭐, 대체 얼마나 좋길래….”
분명 자신이 하는 게임의 커뮤니티인데 잘 살펴보니 동섬 OST에 대한 글이 한두 개가 아니었다.
[ 이번 동물의 섬 OST을 맨 레코즈가 제작했다고 들었습니다 . 흠 ? 확실히 들어보니 잘 만들었네 www ] [ 동물의 섬 이번 시즌 수록된 사운드트랙 다 좋은 듯 , 확실히 지난 시즌보다 퀄리티가 높습니다 ! ] [ 동물의 섬 플레이는 안 하는데 노래만 따로 다운받아서 듣는 중인데 참으로 좋다 . 유행할 것 같은 조짐이 보입니다 . ]히요리는 시간을 슬쩍 확인했다. 아직 방송 시작하려면 15분가량의 시간이 남아 있는 채였다.
이 정도면 충분하겠지?
궁금한 건 참지 못하는 히요리는 그 길로 곧장 뉴튜브에 동물의 섬 OST를 검색하기에 이르렀다. 보기만 해도 아기자기하고 마음이 평온해지는 그래픽이 담긴 영상을 재생하자 스피커를 통해 꽃잎이 하늘거리는 봄이 흘러나왔다.
“아….”
왜 그토록 다들 잘 만들었다고 칭찬을 해댔는지 알 것 같았다. 봄에서 여름, 여름에서 가을, 가을에서 겨울로 넘어가며 이뤄지는 곡의 변조는 동물의 섬 그 자체를 담아내고 있었다.
이윽고.
곡의 말미가 찾아오고, 화려하게 모여들었던 선율이 아득하게 멀어지자 공허함이 밀려왔다.
게임 방송을 시작하기 전.
대인관계에 어려움을 겪던 히요리는 사람을 피해 이 섬에 숨어들었다. 동물의 섬은 그래서 기록적인 히트를 할 수 있었을 거다. 많은 이들이 어른이라는 단어가 주는 무게로부터 회피하기 위해 이 섬에 숨어들었으니까.
연속 재생으로 들려오는 선율을 듣고 있노라니, 이 곡이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가 들려왔다. 섬은 항상 여기에 있어. 언제든 찾아와도 좋아. 하지만 너의 세상은 섬 바깥에 있지. 네가 해야 할 일은 잊어선 안 돼. 잔인한 위로였다.
그래, 연극은 언젠가 끝나기 마련이다.
막이 내리고, 조명이 꺼지면 다시금 현실로 돌아와 잠시 미뤄 두었던 어른의 무게를 등에 업고 무대에서 내려와야만 한다. 그리고 나면 허망함이 밀려온다. 내 삶으로, 내 세상으로 돌아가야만 하는데 쉽사리 발길이 떨어지지 않는다.
“하….”
예전에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동물의 섬을 플레이하다 보면 이따금 세한 기운과 헛헛한 마음 같은 이질적이고, 께름직한 감정들이 해일처럼 밀려 들어왔더랬다.
아기자기한 그래픽, 사소한 일상, 내가 스스로 가꾸고 꾸민 마을과 정원 속에 숨어서 일상을 계속 밀어낸 채로 외면하고 있노라면 느껴지곤 하던 감정들이었다.
그래.
이 곡을 듣고 나서야, 그 예전 형용할 수 없이 느끼던 감정에 이름을 붙여 줄 수 있게 됐다.
허무(虛無)
현실을 살아야 하는데 자신의 가치와 마음을 가상공간에 두고 있으니 계속 무의미하고 무가치하게 느껴지는 허무한 감정들이 불쑥불쑥 올라왔던 거다. 그러나 애써 모른 척 방학 숙제처럼 미뤄 뒀었다.
회피하고, 도망치고, 미뤄두고, 못 본 척 말이다.
하지만.
끝내 난 돌아왔고, 견뎌 냈고, 버텨 냈고, 현실을 살았다. 그러다 문득 동물의 섬이 생각났었다. 일이 힘든 날, 대인관계로 복잡한 날, 마음이 고달픈 날이면 돌아가고 싶었다.
따듯했고, 뜨거웠고, 포근했던 나의 섬으로.
“아….”
행복과 허무, 기름과 물처럼 섞이지 않는 단어이지만 너무 행복하기에 자연스레 수반되는 감정이 바로 허무(虛無)일 터였다.
한편.
히요리의 방송은 뜨겁게 달궈지고 있었다.
: 히요리, 지금 방송 켜진 줄 모르고 있는 것 같은데 ?
: 그런 듯 ? 아까부터 멍하니 저러고 앉아있어. 뭔 일 생겼나?
: 히요리 , 설마 지금 우는 거 아니지 ? ;_;
: 어떤 슬픔인지라도 말해줘 . 그럼 우리는 공감할 수 있어 .
: 설마 지금 틀어놓은 이 노래 듣고 우는 거 아닐까?
: 저 노래 이번에 개편되면서 발매한 동섬 메인 ost 입니다 .
: 에이 , 어린애도 아니고 저걸 듣고 운다고? 말도 안 됩니다 .
: 난 무슨 맘인지 알 것 같은데? 듣다 보면 묘하게 울컥해요 .
예약해둔 캠이 자동으로 켜지면서 실시간으로 방송이 진행되고 있던 까닭이었다.
히요리는 그런 사실조차 까맣게 잊고 곡에 이미 심취하여 깊은 수면 속으로 빠져들었다.
: 근데 진짜 이번 동섬 OST 하나같이 다 좋습니다 . good!
: 맨 레코즈가 유명 작곡가랑 협업해서 만들었다고 들었어 !
: 동섬 OST 작곡가 어딨나요? 그 방향으로 절 좀 올립시다 .
: 히요리, 눈물 방송 중이라길래 성지 순례하러 왔어 wwwww
: 윗윗 님! 한국 방향으로 절하면 되실 것 같네요 . www
: 웬 갑자기 한국입니까 ? 설마 작곡가가 한국인이야?
: 예, 맞아요 , HS라는 한국 작곡가입니다 ! 서지니의 저번 앨범 제작한 작곡가이기도 하지 . 한국에서는 꽤 유명하대 !
: 와,, 검색해 보니 디어마이베토벤 원곡 작곡한 사람도 HS 내요. 이 사람 어쩌면 곧 오리콘을 휩쓸어 버릴 지도 . .? WWW
댓글 창은 히요리의 눈물로 시작하여 갑자기 ‘HS’라는 작곡가로 더욱 열기가 달아올랐다. 시청자들은 궁금증을 참지 못하고 포털사이트 창을 켜 ‘작곡가 HS’를 검색해 대기 시작했다.
비단 검색한 것은 히요리 방송의 시청자들뿐만이 아니었다. 일본 내에서 동시다발적으로 이루어진 검색은 뜬금없이 ‘HS’의 이름을 검색어 10위 안에 오르게 했다.
그래, 뜻하지 않았지만….
‘HS’라는 이름은 일본 내에서도 서서히 퍼져 나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