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turn of a Crazy Genius Composer RAW novel - chapter (65)
망나니 천재 작곡가 회귀하다-65화(65/482)
김 실장은 몇 시간 텀으로 현승의 작업실을 들락거렸다.
“정말 출연하려고 마음먹은 거야?”
“너무 섣불리 선택한 거 아니야?”
“지금이라도 보류하고 다시 생각해 봐.”
현승은 입이 닳도록 걱정을 쏟아 내는 그를 보며 고개를 절레절레 내저었다.
“어째 잔소리가 날이 갈수록 심해지시는 것 같아요.”
“인마, 이게 다 네 걱정 돼서 하는 말이지.”
“방송 타서 인지도 높아지면 오히려 좋은 거 아닌가요?”
“너 얼굴 팔리는 거 싫어하는 거 아니야?”
그 물에 현승이 “그렇긴 하죠.”하고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분명 이번 삶에서는 최대한 세간에 노출되지 않으려 했다. 즐겁게 하고 싶은 음악하고, 적당한 부를 축적하여, 가족들과 함께 단란하고 자유로운 삶을 살고자 했다.
다만.
전생 저편에 남겨 두었던 아쉬움이라는 감정의 끝자락이 제 발목을 잡고 늘어졌다.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놓쳐 버렸던 악기… 그래, 그 여자를 얼른 연주해 보고플 따름이었다.
무엇보다 헬멧을 쓰고 방송을 나간다면, 얼굴이 노출될 걱정도 크게 하지 않아도 되고 말이다. 인간관계 덕분에 알아보는 이도 없을 테니 크게 걱정되진 않았다.
“뭐, 인생이 제 뜻대로만 흘러갈 수 있나요? 모쪼록 재미도 있을 것 같고….”
현승은 차마 전생을 들먹이며 설명해 줄 수는 없는 노릇이니, 두루뭉술하게 답할 뿐이었다.
“하여간, 그놈의 재미는….”
김 실장은 탐탁지 않은 표정으로 고개를 내저었다. 매번 현승이 선택하는 기준은 ‘재미’였다. 그 모호한 기준으로 아슬아슬 외줄 타기를 행한다.
물론 그 끝은 항상 최고의 퍼포먼스를 선사했다지만, 이번만큼은 지금까지의 작업과는 아예 다른 이야기다. 그렇게나 얼굴 노출에 예민하던 놈인데….
일회용으로 사용될 인터뷰 사진도 아니고, 실시간 방송으로 진행될 수 있는 오디션 프로그램의 심사위원으로 출연한다니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아무리 헬멧을 쓰고 나간다고 한들….
그래, 단순히 상업적으로 바라봤다면 이왕 나가는 거 살짝 얼굴 노출도 권해 봤겠지만, 현승만큼은 자신에게 단순한 비즈니스 관계가 아니었다.
김 실장은 자신이 걱정한다 한들 이미 선택을 끝낸 현승이 번복할 리 없을 거라는 걸 잘 알았다. 그저 묵묵히 지지해 주는 수밖에 없다는 것도.
그때.
“이제 겨울은 다 지나갔겠죠?”
현승이 뜬금없는 물음을 던졌다.
“응? 뭐, 2월이 다 지나가고 있으니….”
“그럼 이제 봄이 오겠죠?”
“그렇지? 왜 자꾸 당연한 소리를 해?”
그 물음에는 답하지 않았다. 현승은 그저 씩 웃어 보일 뿐이었다. 어느덧 봄이 한 뺨 가까이 다가왔다. 이제는 품 안에 넣어 두었던 이 곡을 세간에 공개할 때가 되었다는 얘기다.
“조만간 어머니랑 함께 이사한 집 스피커로 들으시죠.”
현승이 USB 하나를 내밀며 말했다.
“이게 뭐야?”
김 실장은 USB를 받아서 들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일전에 작업하던 봄시즌 곡이요.”
“고새 완성한 거야?”
“예, 근데 가수 선정을 아직 못 했네요.”
“그럼 얼른 가수부터 찾아봐야겠네.”
이윽고.
현승이 김 실장 손에 들린 USB를 바라보다 씩 웃음을 지었다.
“예, 얼른 녹음해서 발매해야죠.”
그래, 저 USB 안에 담긴 제 곡은….
“벚꽃이 만개하기 전에.”
매년 벚꽃과 함께 울려 퍼지게 될 거라 확신할 수 있었다.
* * *
“그럼 확정되면 말씀해 주세요.”
남자는 단정한 인사를 남긴 채 뒤돌아 회의실을 나섰다.
“흐-음.”
박 전무는 그런 남자의 뒷모습을 바라보다 흥미로운 침음을 흘렸다.
그 남자의 이름은 강하준.
이번 매니지먼트 1팀에서 야심 차게 밀고 있는 솔로 데뷔 예정자였다.
“그래, 저놈 이번 하반기에는 화려하게 데뷔시키자고.”
박 전무가 제 두 손을 파리마냥 비벼대며 흡족한 표정을 내 지었다. 더 나아가 아주 만족스럽다는 듯이 책상까지 두들기며 호탕하게 웃어 보였다.
“아주 물건이야, 물건.”
이렇게나 좋아하는 데는 이유가 있었다.
얼마 전 1팀 소속 연습생이 된 강하준은 비주얼부터 실력까지 당장 솔로 가수로 데뷔해도 손색없을 만큼 좋았다. 반짝이는 스타성도 충분해 보였고, 무엇보다 흔히들 말하는 있는 집 자제였다.
강하준이 연습생 계약서를 쓰던 날….
그의 부모님이 함께 찾아왔었다. 제 아들을 데뷔만 시켜 준다면 금전적인 지원은 얼마든지 가능하다며, 잘 부탁한다고 신신당부를 거듭했었더랬다.
그들의 유별난 아들 사랑은 가수 하나를 데뷔시키는데 어마어마한 투자금을 태워야 하는 엔터테인먼트 입장에선 듣던 중 반가운 소식이었다.
“맞습니다, 맞습니다. 정말 찾기 힘든 인재에요.”
“하준이는 이미 완성형에 가까운 뮤지션이랄 수 있죠.”
박 전무의 눈치를 살피던 1팀 직원들은 모두 고개를 거세게 끄덕이며 공감을 표시했다.
“아, 맞다.”
때마침 박 전무는 무언가 떠오른 듯 손가락을 탁 튕기며 말을 이었다.
“내가 듣기로는 이번에 K-싱어스타라고 대형 오디션 프로그램 하나 나오는 것 같던데.”
“네, 맞습니다. 안 그래도 저희 소속 아티스트 몇 명한테도 섭외가 들어온 모양이더라고요.”
직원의 말에 박 전무가 “그래?”하며 되묻고는 상념에 잠겼다.
“흠…….”
이 바닥이 떠들썩할 만큼 엄청난 제작비와 투자를 받았다는 는 요즘 엔터 관계자들 사이에서 화젯거리였다. 유명 PD인 김영호까지 붙어서 사활을 걸고 기획 중이라고 하니 더욱 기대가 클 수밖에 없었다.
으레 연예기획사들은 이런 오디션 프로그램에 인맥과 청탁을 동원하여 데뷔를 앞둔 연습생을 심어 놓기 마련이다. 그렇게만 된다면 자연스레 방송을 통해 얼굴도 많이 노출되고, 홍보 효과를 톡톡히 누린 덕분에 데뷔 때부터 절로 인지도를 품고 시작할 수 있게 되니까 말이다.
그래.
어쩌면 이건 아주 좋은 기회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스쳤다.
“다들 이건 어떤가?”
박 전무를 마른 입술을 축이며 본격적으로 말을 이었다.
“K-싱어스타에 우리 하준이를 참가자로 내보내는 거지. 혹시 모르니 LS 측 사람 하나도 심사위원에 앉혀 놓고 말이야. 그럼 설령 떨어지게 되더라도 LS 측에서 좋게 봐서 영입하게 되었다.”
그리고는 책상을 손끝으로 톡톡 두들기며 덧붙였다.
“이러면 그림 좋잖아? 우선 우리 애들 중에 심사위원으로 섭외 들어왔다는 사람이 누구야?”
“K0K 리더인 세훈이한테 들어오긴 했는데 아시다시피 지금 세계 투어 준비 중이라 거절했습니다.”
박 전무가 “그럼 2팀은?”하고 되묻자, 직원 하나가 슬쩍 눈치를 살피며 답했다.
“2팀이라면… 문범재 선생님한테 들어왔다고 들었습니다만, 그분은 방송 출연이라면 질색하시는 분이잖아요.”
“그렇지, 그 양반이라면 어차피 내 부탁은 듣는 시늉도 안 할 거야. 둘 말고 다른 사람은 더 없고?”
그때.
“아, 그, 확실한 건 아닌데….”
직원 하나가 뒷머리를 긁적이며 우물쭈물 입을 열었다.
“뭔데?”
“저도 2팀이 하는 말 슬쩍 들은 건데요.”
“근데?”
“전속 작곡가가 메인 심사위원으로 나간다는 것 같더라고요.”
“작곡가?”
별안간 ‘전속 작곡가’라는 말에 박 전무의 머릿속에는 재수 없는 얼굴 하나가 스쳤다.
에이, 설마 아니겠지.
그래, 작년 한 해 동안 2팀에 수많은 성과를 안겨다 준 장본인이자, 자신에게는 눈엣가시 같은 존재.
민현승.
그러나 민현승은 이해가 안 갈 정도로 얼굴 노출을 꺼리는 놈이다. 사내에서도 주요 인원 말고는 HS의 본명이 민현승이라는 사실조차 모를 정도니, 그가 방송 출연을 할 리는 없다.
설마….
요즘 대중들의 인기를 얻다 보니 맘이 바뀌었나? 하기야, 녀석은 한참 관심받는 게 좋을 나이지 않나? 출연 섭외야 당연히 들어왔을 거라 짐작되는 바이고.
그렇지만 설령 진짜 민현승이 K-싱어스타의 메인 심사위원으로 한자리를 꿰차고 앉는다고 하더라도, 제 청탁을 들어줄 만큼 융통성 있는 녀석도 아님을 잘 알고 있었다.
그래.
차라리 문범재의 바짓가랑이를 붙잡고 늘어지는 쪽이 더 수월하다고 느껴질 정도였다.
“작곡가, 누구?”
박 전무는 어딘가 불안해 보이는 눈매를 좁히며 재차 물었다.
“왜 이렇게 뜸을 들여? 누구냐고!”
“그, 그게…….”
직원은 박 전무 앞에서 그 이름을 말하는 것 자체로 눈치가 보이는 듯 계속 입술만 달싹거렸다.
이윽고.
그는 닦달에 못 이겨 힘겹게 쥐어 짜내듯 입을 열었다.
“HS 씨요…….”
장내의 이들은 마치 역사적으로 금기시돼 온 이름이라도 들은 표정을 지어 보일 따름이었다.
* * *
다음 날이 밝아 오고, 점심시간을 앞둔 김 실장은 무언가를 다급히 찾아 헤매기 시작했다.
“아니, 이게 어디로 간 거야 대체….”
자신의 차부터, 사무실, 카페테라스, 로비, 복도, 화장실까지 쥐잡듯이 찾아 헤매고 따로 혹시 분실물을 주운 사람은 없는지 사내 게시판에 글을 올려봤지만, 보관 중이라는 사람은 없었다.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현승이 준 USB가 사라져 버린 것이다.
아무리 기억을 곱씹고 더듬어 봐도 사내 안에서 잃어버린 것 같은데, 행방이 묘연한 탓에 불안함이 일었다.
터벅, 터벅-.
어딘가 불안정한 발걸음 소리가 복도에 울려 퍼지고.
똑, 똑, 똑-.
USB를 찾아 헤매던 김 실장이 마지막으로 향한 곳은 현승의 작업실이었다. 매도 빨리 맞는 게 낫다고 하질 않나?
“현승아, 나 왔다.”
“점심시간 딱 맞춰서 오셨네요.”
현승의 얼굴을 보자 미안함이 밀려든 김 실장은 쭈뼛대며 입구에서 서성거렸다.
“왜 그러세요, 똥 마려운 강아지마냥?”
“아니, 저, 그게 있잖아….”
김 실장은 아랫입술을 잘근 씹어 대며 망설이다가 끝내 눈을 꾹 감은 채 뒷말을 덧붙였다.
“아무래도 네가 준 USB를 잃어버린 것 같다.”
그리고는 고개까지 푹 숙여 보였다. 저작권에 대한 관리를 제대로 못 해냈다는 죄책감의 무게에 짓눌려 한동안 고개를 들 수가 없었다. 예술인의 재능과 열정이 담긴 작품은 그 정도의 무게니까.
“정말 미안, 미안하다.”
김 실장이 재차 앵무새처럼 미안하다는 말을 되풀이하던 찰나였다.
“난 또 뭐라고.”
현승이 특유의 무심한 투로 중얼거렸다.
“상관없으니까 이만 고개 드시고, 밥이나 먹으러 가죠.”
“아니, 누군가 주워서 혹여나 나쁜 마음을 먹고….”
“어차피 원본 음원은 제가 가지고 있잖아요.”
“그래도 누군가 의도를 가지고 훔친 거일 수도 있고….”
“괜찮아요. 이미 저작권위원회에 등록해 놨거든요.”
김 실장은 “어?”하며 놀라서 되물었다.
“대체 언제 그런 걸 준비한 거야?”
“USB로 음원을 복사해서 전해 주면서, 그 정도 준비도 안 해 놨겠습니까?”
그 말에 김 실장은 “허-.”하며 작게 탄식 섞인 헛웃음을 내 지었다. 보통 저작권 등록 및 신탁 같은 부분은 사 측에서 유통사로 넘기는 동시에 저작권협회를 통해 진행하는 사안이라 전속 작곡가인 현승이 해야 할 일은 아니다.
그러나 혹시 모를 일까지 대비해서 스스로 저작권위원회에 음원 등록을 해 놨다는 사실이 놀라울 따름이었다. 아니, 아니지. 가만 보면 설렁설렁 구는 것처럼 보여도 매사 철저한 녀석이니 썩 놀라울 일도 아니었다.
“근데 어디서 잃어버리신 것 같은데요?”
“사옥에서 잃어버린 것 같기는 한데….”
“그럼 뭐, 설마 누가 주워서 쓰진 않겠죠.”
현승은 정말 괜찮다는 듯 엉덩이를 툭툭 들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김 실장은 그런 현승을 따라 시선을 옮기며 “그렇겠지?” 하고 중얼거렸지만, 계속 마음 한구석이 불편했다.
아니.
사실대로 말하자면 찝찝하다고 해야 할까?
외부인 출입이 까탈스러운 만큼 외부인이 주웠을 확률은 현저히 낮았다. 그렇다면 주웠어도 내부인이라는 이야기인데, 같은 LS 소속이라면 돌려주지 않을 이유가 없다.
보통 음원이나 영상 같은 게 담기는 만큼, USB가 크기는 작지만 아주 중요한 저작물이 오가는 매개체라는 걸 누구보다 제일 잘 아는 사람들이 모인 곳이기 때문이다.
여기서 드는 합리적인 의심은….
‘의도적으로 가지고 갔거나, 일부러 돌려주지 않고 있거나.’
둘 중 하나일 수도 있다. 그 가능성을 아예 배제할 수는 없었다. 물론 저작권협회에 등록되었기에 추후 문제가 생기더라도 충분히 대응이야 할 수 있겠지만.
정말 이 사건이 누군가의 의도에 의해서 벌어진 일이라면 예측할 수 있는 범인은 아마도 2팀과 경쟁 구도인 1팀, 혹은 그 팀을 이끄는 사람이겠지.
더 나아가 제 염려처럼 1팀 내에서 정말 현승의 곡을 표절한 곡을 발표하는 일까지 벌어진다면 그건 사내 밥그릇 싸움 수준이 아니라 개싸움이 될 터였다.
제발, 그렇게는 되지 말아야 할 텐데.
김 실장은 이 모든 근심이 자신의 노파심에서 비롯된 것이길 바라며 현승의 어깨를 다독였다.
“그래, 겁도 없이 누가 사용하겠어. 얼핏 들어도 HS 곡이던데.”
“어머니랑 같이 들어 보라 했는데 혼자 들으셨구나?”
“아니, 참을 수가 있어야지. 사무실 돌아가자마자 들어봤지.”
그리고는 그대로 어깨에 팔을 감싸며 넉살을 부렸다.
“사람 많아지기 전에 얼른 점심이나 먹으러 가자. 오늘은 내가 미안하니까 식권 쏜다.”
“당연한 소리를.”
“근데 또 허밍으로만 가이드 따 놨던데, 얼른 본 녹음하고 발매일 잡아야지. 아직도 가수 못 정했어?”
“후보는 정해 놨어요. 근데 아무래도 봄시즌 곡인 만큼 정아린이 잘 어울릴 것 같기도 하고.”
“좋은 생각이네. 아마 아린이는 네 곡이라면 버선발로 뛰어와서 녹음하겠다고 할걸?”
그 말에 둘은 동시에 정아린의 얼굴을 한번 떠올리고는 피식 웃음을 터트렸다.
“맨발로만 안 오면 다행이겠네요.”
이윽고.
둘은 USB에 대한 걱정은 뒤로한 채 구내식당으로 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