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turn of a Crazy Genius Composer RAW novel - chapter (72)
망나니 천재 작곡가 회귀하다-72화(72/482)
이두석은 자택 정원 정자에 바둑판을 둔 채 홀로 앉아 있었다. 한 손에는 기보를 쥔 채, 다른 한 손으로는 흑 돌과 백 돌을 번갈아 두기를 잠시.
“날이 참 좋네.”
그는 바둑을 두다 말고 고개를 들어 하늘을 바라보며 “정말 좋아.”하고 연신 중얼거렸다.
그때.
직속 수행비서가 곁으로 다가와 말을 건넸다.
“선생님, 아침부터 나와 계셨군요.”
“어, 날이 너무 좋지 뭔가.”
“그러니 말입니다. 정말 봄이네요”
휘이이이잉-.
이두석은 자신이 입은 개량 한복이 바람에 의해 가볍게 펄럭거리자, 기분 좋은 미소를 머금은 채 말을 이었다.
“맞지, 바람을 타고 봄 내음이 나는 걸 보니, 다시 또 봄이 온 모양이야.”
그의 말에 수행비서가 고개를 끄덕이기를 잠시.
“아!”
불현듯 무언가 떠올랐는지 곧장 옆구리에 끼고 있던 태블릿 PC를 빼내며 말했다.
“선생님, 당일 현승 군의 신곡이 발매된 모양입니다.”
이두석은 기다려왔다는 듯이 “오, 그런가?” 하며 곧장 비서에게 시선을 옮겼다.
“당일 자정 기준으로 디지털 싱글 ‘벚꽃 한 줌’이 국내 음원 플랫폼은 물론이고 해외 플랫폼에도 유통된 상황입니다.”
“현재 성적은?”
“오전 7시 국내 최대 플랫폼인 사과를 기준으로 확인해 본 결과, 차트 100위 안으로는 순조롭게 진입한 상태였습니다.”
스윽, 스윽-.
“어….”
말을 마친 수행비서가 태블릿 PC를 훑어보더니 잠시 머뭇거리다 말고 말을 이어 나갔다.
“딱히 문제랄 건 아닙니다만, 현승 군의 일부 팬들은 개인 앨범에 비해 ‘벚꽃 한 줌’은 다소 대중적인 색깔이 짙어서 아쉽다는 의견도 있나 봅니다.”
이두석은 눈길도 주지 않은 채 기보를 살피며 “대중적이라….”중얼거렸다.
“더군다나 방송 출연을 고사하던 현승 군이 갑자기 방송 출연을 한 게 하필 시기가 딱 신곡 발표와 맞물리다 보니, 방송 활동에 더 치중되어 곡 작업에 소홀해지는 게 아니냐는 우려의 목소리가 있다고 합니다.”
수행비서는 말을 마친 뒤 걱정이 묻어나는 얼굴로 이두석을 지그시 바라보았으나….
‘녀석이라면 어디에 착수해서 마(馬·말)를 늘렸으려나?’
이두석은 그저 흑 돌을 손안에 움켜쥔 채 국면(局面)을 면밀하게 살펴볼 뿐이었다.
쩔그럭, 쩔그럭-.
잘 짜 놓은 포석 위로 행마(行馬)의 흐름이 보기 좋고 유연하게 이어졌고.
탁-!
이내 흑 돌을 착수한 이두석은 흡족한 양 입가에 옅은 미소를 머금었다.
그래.
아마 자신이 아는 녀석이라면 이곳에 착수하여 대마(大馬)를 만들었을 터였다.
‘대마불사(大馬不死)’
바둑판에서 덩치가 큰 대마(大馬)는 결국 살길이 생겨 쉽게 죽지 않는다는 뜻으로.
으레 몸짓이 큰 기업은 쉬이 망하지 않는다는 비유적인 표현으로 사용되기도 한다.
자신이 생각하는 현승은 ‘대마불사(大馬不死)’였다.
국내 간판 기업이랄 수 있는 ‘S전자’나 ‘L전자’가 망한다는 게 상상이나 되는가?
그래, 녀석도 마찬가지다.
녀석의 속에 똬리를 틀고 앉아 있는 마(馬·말)는 정확한 방향으로 유려하게 나아갈 수 있는 능력을 지닌 대마(大馬)이므로, 대중의 사소한 잡음 따위에 무너질 리도 없거니와, 쉬이 제집을 빼앗길 리도 없다.
이윽고.
이두석은 제 옆에 묵묵히 서 있던 수행비서에게 시선을 옮기며 굴곡 없이 차분한 어조로 물었다.
“그 모든 게 녀석을 향한 관심이자, 시기 아니겠는가?”
한차례 고개를 크게 끄덕여 보인 수행비서가 답했다.
“예, 아무래도 HS 군의 인지도가 오르면서 잡음이 부쩍 많아지는 것 같습니다.”
“시간이 지나면 알아서 꼬리를 감춘 채 사라질 소음 따위에 불과한 잡음이지.”
이두석은 고개를 내저으며 “쯧.”하고 가볍게 혀를 차 보였다.
애초부터 그들이 말하는 대중적인 색깔이 짙어서 아쉽다는 말 자체가 모순이랄 수 있었다. ‘대중적’이라는 기준은 대체 누가 정한단 말인가?
그래.
그저 수많은 이들이 찾아 듣는 음악이 비로소 시대를 관통하는 ‘대중성’을 지니게 될 뿐이지.
요즘은 대중에게 가장 많이 소비되는 작품이 가장 예술적이라는 말도 있지 않나?
이내.
수행비서가 텀을 두고 “예, 맞습니다.”하고 답하자, 이두석은 다시금 바둑판 위로 시선을 옮겼다.
쩔그럭, 쩔그럭-.
하나, 금세 흥미를 잃었는지 한 움큼 쥐고 있던 바둑돌을 내려놓으며 아예 몸을 정원 쪽으로 틀어 앉았다.
“그건 그렇고, 한동안 또 방송 출연 핑계 대면서 바둑 상대해 주러 안 올 테니 나만 애달파지겠군.”
“현승 군에게 촬영 없는 날 한번 들어오라고 연락 넣을까요?”
“괜찮네, 아직은 내가 이길 자신이 없어서 말이야. 나중에 녀석 숨 좀 돌릴 때 직접 부르도록 하지.”
그리고는 정원을 훑으며 요청했다.
“그럼 이왕 얘기 나온 김에 신곡 한번 들어 볼까?”
“예, 선생님. 바로 준비하겠습니다.”
대답과 함께 머지않아 정원에 설치된 스피커를 통해 잔잔하면서도 산뜻한 봄바람의 선율이 흘러나왔다.
─ 살랑이는 봄바람과 함께 불어온 벚꽃 잎을….
곡을 듣는 순간 이두석은 흥미롭다는 듯 눈썹을 들썩였다. 현승이 만들었다는 상상이 가지 않을 만큼 몽글몽글한 선율이 온몸을 포근히 감싸는 듯한 감정이 솟구쳐 오른 까닭이었다.
“음….”
귀로는 곡을 들으며, 두 눈으로는 정원에 만개한 벚꽃과 유채꽃을 담았다.
그리고 콧구멍 안으로 꽃향기를 한가득 들이켜자, 어지러울 만큼 달큼했다.
곡의 따사로운 선율과 청아한 목소리, 정원에 한가득 핀 벚꽃과 꽃내음까지….
그래.
모든 요소가 지금의 날씨와 완벽하게 딱 어우러지며 눈앞에서 부유하는 벚꽃잎처럼 심장이 넘실거렸다.
쪼르륵-.
이두석이 따듯한 차 한 모금으로 목을 촉촉하게 적시며 곡에 젖어 들던 찰나였다.
‘아까 수행비서가 뭐라고 했더라?’
대중적인 색이 짙어 아쉽다는 의견이 있다고 했던가? 현승이 방송 활동에 치중하느라, 곡 작업에 소홀해지는 게 아니냐는 우려를 했다던가?
‘아서라.’
으레 방송가 사람들은 걱정하는 게 아니란 말이 있다. 그중에서도 더욱 걱정할 필요가 없는 이가 현승 같은 사람이다. 반짝반짝 빛나는 재능을 지닌, 언제 어떻게 위기에 몰리더라도 그 재능 덕에 구사일생하리란 생각이 드는 천재들.
“현승 군 걱정은 말게.”
이두석이 나긋하게 부연했다.
“내가 저 친구 곡을 계속 듣고 싶거든.”
“예?”
“내가 두 눈 뜨고 있는 한은 말일세….”
말끝을 흐리기를 잠시.
“그 어떤 타의도 저 친구를 흔들 수 없을 걸세.”
자의로 몰락하는 게 아니고서야, 그 어떤 훼방이나 협잡질로부터 현승을 지켜 주겠노라고 선언한 거나 마찬가지였다.
이내 수행비서가 옅은 미소를 머금었다. 다른 사람도 아니고, 이두석 선생님의 입에서 나온 말이지 않나?
“예, 정말 걱정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다.”
살랑 불어오는 바람, 따스한 볕.
전부….
완연한 봄임을 일러주고 있었다.
* * *
드디어 대망의 K-싱어스타 첫 본선 라운드 촬영일이자, 첫 방송 날이 찾아왔다.
띠리리리리릭-.
김 실장은 오랜만에 일찍 퇴근한 뒤 어머니 병원을 들렀다가 곧장 집으로 향했다.
“시간이 벌써 이렇게….”
벽에 걸린 시계를 확인한 김 실장은 서둘러 샤워를 끝내고 편한 복장으로 거실 소파에 앉았다.
치익, 딱-!
캔 맥주 따는 소리가 경쾌하게 거실을 채우고, 이내 TV를 틀자 시끌벅적한 광고가 흘러나왔다.
“이제 곧 시작하겠네.”
김 실장은 K-싱어스타의 첫 방송을 모니터링 하기 위해 태블릿 PC로는 실시간 라이브 챗 창을 띄워놓은 채 맥주로 목을 축였다.
사실 말이 모니터링이지, 지금 그의 마음은 마치 K-싱어스타 참가자의 부모와 같은 마음이었다. 내 새끼 잘하려나, 잘하고 있을까 걱정과 염려와 간절한 응원을 담은 채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