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turn of a Crazy Genius Composer RAW novel - chapter (77)
망나니 천재 작곡가 회귀하다-77화(77/482)
김 실장은 첫 배틀 라운드가 진행될 수련회관으로 HS를 직접 운전하며 데려다주는 중이었다.
“이야, 이렇게 촬영장 데려다주니까 로드매니저 때 생각나네.”
현승은 추억에 잠긴 듯한 김 실장을 바라보며 물었다.
“한… 20년 전?”
“뭐, 인마?”
“그럼 30년 전?”
“이놈이?”
“헐, 40년 전?”
김 실장은 “운전 중만 아니었으면….”라고 중얼거리며 핸들을 꽉 쥐었다.
그리고는 머지않아 곁눈질로 현승을 한번 살피고는 넌지시 물었다.
“현승아, 로드 매니저 하나 붙여 줄까?”
그 물음에 현승은 아주 단호한 투로 답했다.
“아뇨, 제겐 김 실장님이 있는 걸요.”
“내가 네 로드 매니저야?”
“간만에 추억 되새기고 좋잖아요.”
김 실장은 능글스럽게 어깨를 들썩이는 현승을 보며 으름장을 놨지만….
“넌 정말 도착해서 보자.”
“논 종말 도촥해숴 보좌.”
“따라하지 마!”
“따롸하쥐 마!”
결국 휘둘려지는 건 자신일 따름이었다. 작게 한숨을 푹 내 쉰 김 실장은 다른 말로 화제를 돌렸다.
“아, 혹시 저번 본선 라운드 심사하면서 윤제이 말고 눈에 들어오는 사람은 없었어?”
“왜요?”
“아니, 네가 보기에도 괜찮은 애라면 영입하려고 그러지.”
그 물음에 현승은 잠시 고민에 빠져들었다.
이내.
무미건조한 투로 무심히 내뱉었다.
“강하준.”
“강하준?”
현승이 한차례 고개를 끄덕이자 김 실장은 흥미가 동했다는 듯 “오.”하는 감탄사와 함께 물었다.
“어떤 점이 마음에 들었는데?”
그 물음에 현승은 강하준의 지난 본선 라운드의 무대를 상기시켰다. 첫 등장때부터 확실히 눈에 띄는 참가자이긴 했다.
장인이 정성스럽게 땀을 흘려 가며 빚어 놓은 듯한 외모.
시원하게 뻗은 기럭지.
여유와 자신감이 줄줄 흘러넘치는 특유의 분위기까지.
강하준이라는 인물은 남녀노소 첫 만남부터 호감을 갖고 바라볼 만한 인물이었다.
무엇보다.
한 번 더 눈길이 갔던 이유는 강하준이 자신의 개인앨범 타이틀곡인 을 선곡한 까닭이었다.
물론 오디션인 만큼 폭발적인 가창력이나 폭넓은 음역대를 선보이기에는 더할 나위 없이 좋은 곡이랄 수 있었지만….
‘왠지 의외라고 느껴졌지.’
현승이 보기에 강하준은 보컬보단 퍼포먼스에 초점을 맞춰 무대를 선보일 것 같은 참가자였다.
그래서 짐짓 아닌 척했지만, 반주가 흘러나오자 헬멧 안에서 작게 놀란 표정을 지어 보였더랬다.
‘맞아, 선입견이었지.’
비록 타고난 소리나 실력이 좋지 않다는 건 무대가 시작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바로 알 수 있었지만.
진심 어린 눈빛과 표정으로 자꾸만 시선을 끌어당기고, 불안정하지만 호소력 짙은 목소리가 귀를 사로잡았다.
그래.
그 순간만큼은 이 강하준의 곡마냥 느껴졌을 따름이었다.
‘처음이었어….’
더군다나 다른 사람이 부르는 을 들으며 문범재와 비교하지 않고 들었던 건 처음이었다.
뭐랄까….
문범재는 자신의 인생을 노래하는 느낌이라면 강하준은 한 편의 뮤지컬처럼 보였달까?
‘강하준, 강하준, 강하준….’
전생의 기억을 아무리 곱씹어 봐도 K-싱어스타에서 강하준이라는 참가자에 대한 기억은 아예 없었다. ‘Dear my Beethoven’라는 곡이 존재하지 않았을 테니 당연한 걸까?
“음….”
악기로서 좋은 소리를 타고났다고는 할 수 없었지만, 잘만 조율한다면 꽤 보기 좋고 듣기 좋은 악기로 거듭날 수 있어 보였다.
그런 모종의 이유로 말이 길어지다 보니 남들 귀에는 악평을 쏟아 내는 것처럼 들렸을 수도 있겠지만….
“그냥요.”
분명 이번 프로그램을 통해 큰 화제를 불러일으킬 만한 참가자라는 건 확실했다.
“우리 사이에 좀 말해 주면 어디가 덧나냐? 내가 계속 모든 내용을 방송으로 체크를 해야겠어?”
“응당 시청자라면 다음 화를 인고하며 기다리거늘, 자꾸 아시려고 한다면 다른 시청자들을 기만하는….”
“아, 됐다, 됐어!”
작게 “흥!”하는 소리까지 낸 김 실장은 금세 궁금증을 못 이기고 재차 되물었다.
“그럼 다음 라운드 미션곡은 뭘로 정했어? 그건 말해 줘도 되잖아.”
“음…. 같이 걷자요.”
배틀 라운드 선곡을 같이 걷자로 했다는 현승의 말에 김 실장 의아하다는 듯 물어 왔다.
“같이 걷자? 왜?”
현승은 뭐라고 설명해야 할지 고민에 빠져들었다.
“왜라…….”
서지니의 ‘같이 걷자’는 광고 삽입곡으로 쓰이며 타이틀곡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인지도가 높은 곡이랄 수 있었지만, 이런 오디션에서 경연곡으로 쓰일 법한 곡은 아니었다.
하지만.
편곡만 잘 해낸다면 되레 뻔하지 않은 무대를 꾸밀 수 있고, 곡이 지닌 특유의 박자감이 생각보다 소화하기 어렵다 보니 기본적인 리듬감이 없는 사람을 가려낼 수 있으리라고 판단했다.
무엇보다.
윤제이가 이번 배틀 라운드에서 누구를 택할지까지는 알 수 없었지만, 만약 그녀가 자신을 선택한다면 ‘같이 걷자’를 누구보다 잘 소화해 낼 거란 확신도 있었다.
하나, 현승은 이런 속내를 숨긴 채 짤막하게 답할 뿐이었다.
“요즘 차트에서 좀 떨어진 것 같길래요.”
“얼씨구? 네가 언제부터 그런 거에 연연했다고?”
“저 되게 연연해요.”
“결과를 만드는 건 회사가 할 몫이라고 하던 네가?”
“그 말도 맞긴 하죠.”
한차례 “어휴, 뻔뻔해라.”하고 한숨을 폭 내쉰 김 실장은 자동차 내부에 감도는 적막을 깨우기 위해 노래를 재생시켰고.
때마침.
스피커에서 흘러나오는 Dear my Beethoven의 선율에 현승이 능글스럽게 물어 왔다.
“맨날 제 노래 듣고 사시나 봐요?”
“아냐, 딱 타이밍이 그런 거야.”
“하필 또 타이밍이 참 절묘하네요.”
김 실장이 머쓱한 마음에 다급히 다음 곡으로 넘겼지만…
다음 노래도….
“이건 정말, 진짜, 진심으로 우연일 뿐이야.”
그 다음 노래도….
“하필 오늘의 스트리밍 순서가 이런 거라고!”
다음, 다음 노래도….
마치 HS 모음집이라도 틀어 놓은 것마냥 모조리 현승의 곡일 따름이었다.
“잠깐만요.”
재차 다음 곡으로 넘겨 버리기도 잠시.
“날도 좋은데 이건 듣죠.”
현승의 요청으로 김 실장의 손이 뚝 하고 멈췄다.
“그래, 이건 듣자.”
이내 ‘벚꽃 한 줌’의 따스한 선율이 차 안을 가득 채웠다.
스르륵-.
별안간 좋아진 기분을 더욱 만끽하기 위해 창문을 열어젖히자, 살랑거리는 봄바람과 함께 정아린의 목소리가 제 귓가를 살살 간지럽혔다.
“진짜 들을 때마다 느끼는 건데, 이 곡 아린이가 부르길 참 잘한 것 같아.”
“예, 그런 것 같아요.”
“그 소식 들었어? 아린이 벌써 이 곡으로 음방 삼사에서 트리플 1위 했다더라.”
“오, 잘됐네요.”
“지금 페스티벌부터 온갖 대학교에서 축제 섭외가 들어온 것 같더라고?”
“이야, 잘나가네요.”
“이거 봐, 이거 봐! 또 남의 집 얘기 듣는 것마냥 시큰둥하면서 무슨 연연을 해?”
“크나큰 오해십니다.”
이내 김 실장은 로봇같이 대답하는 현승을 보곤 피식 웃음을 터트렸다.
“아무튼 오늘 나오는 길에 차트 확인해 보니까 금방 1위 할 기세더라.”
현승이 대수롭지 않은 일이라는 양 끄덕이곤 창가에 머리를 기대자, 김 실장은 핀잔을 주듯 “재수 없어.”하고 중얼거렸다.
“음, 음-.”
그리고는 언제 그랬냐는 듯 콧소리로 벚꽃 한 줌을 흥얼거렸다.
문득.
얼마 전 자신이 USB를 분실하며 벌어졌던 ‘1팀 표절 사건’이 머릿속에 떠올랐다.
하마터면 이런 곡을 빼앗길 뻔했던 거구나 –라는 생각까지 미치자 눈앞이 아찔해졌다.
물론.
절대 현승이 만든 곡을 빼앗겨선 안 될 일이라지만….
“풉.”
사실 이런 곡 하나 빼앗긴다고 해도 현승은 몇 번이고 유사한 수치의 성적을 내는 곡을 찍어 낼 수 있으리라는 생각도 공존하며 웃음이 터져 나왔다.
“왜 웃으세요?”
그래, 자신을 의아하다는 양 바라보는 이 천재가 이번 K-싱어스타에서는 어떤 음원을 만들어 내고, 어떤 화제를 불러일으킬지 벌써 기대가 앞섰다.
“아니, 아니야.”
“시시하게….”
“아 참, 아린이가 고맙다고 밥 한번 산다는데?”
“그럼 매년 밥 사야겠네요.”
현승이 넌지시 중얼거리고는 다시금 고개를 돌렸다.
‘예쁘네.’
창밖으로 만개한 벚꽃이 시야에 가득 차오르기를 잠시.
─ 살랑이는 봄바람과 함께 불어온 벚꽃 잎을….
차 스피커를 통해 흘러나오는 벚꽃 한 줌의 선율.
눈 앞에 펼쳐진 봄의 절경.
두 가지가 묘하게 들어맞으며 짜릿한 전율이 일었다.
그래.
이번 ‘벚꽃 한 줌’은 자신이 만들어 갈 계절 앨범 프로젝트의 첫 번째 장으로서 완벽한 시작을 알렸다.
여름, 가을, 겨울….
시간이 흐르는 걸 인식해 본 적도 없는 자신이 이젠 다가올 계절이 기다려졌다.
다만.
지금 당장은 K-싱어스타에서 조우한 두 악기를 얼른 연주해 보고 싶다는 마음이 더욱 앞섰다.
“실장님, 달려-.”
“얘가 갑자기 왜 이래.”
“오빠, 달려-.”
“징그러워! 하지 마!”
둘이 한바탕 낄낄거리기도 잠시.
“거의 다 왔다.”
탐스러운 악기를 만날 시간이 다가오고 있었다.
* * *
한편.
강당 내부는 미션이 공개되면서 충격에 빠져든 상태였다.
“아무리 오디션이라지만 너무한 거 아니냐?”
“너 이 곡 알아? 나 처음 들어 봐.”
“3시간 만에 어떻게 바로 부르라는 거야?”
“이럴 줄 알았으면 제이블 줄에 섰지.”
이곳저곳에서 시작된 웅성거림은 곡소리가 되어 퍼져 나갔고, 그러기도 잠시.
“자자, 여러분!”
김성준의 우렁찬 외침에 의해 점차 잦아들었다.
“별안간 치르게 될 배틀 미션에 놀라셨으리라는 건 압니다만, 아까 말했다시피 이곳은 사력을 다해 전투를 벌여야 하는 전쟁터입니다.”
이내 잠잠해진 장내를 한번 훑어보고는 말을 덧붙였다.
“그러니 준비되지 않은 사람은 살아남을 수가 없겠죠?”
참가들은 입꼬리를 말아 올려 보이는 김성준의 얼굴이 마치 악마처럼 보일 따름이었다.
아니….
정말 악마가 맞을지도 모르지.
강하준은 고개를 주억거리며 상념에 빠져들었다.
‘참 잔인하네.’
수만 명에 달하는 경쟁자를 뚫고 살아남은 100인의 참가자들이 오늘 여기로 걸음 할 때는 분명 희망을 품었을 거다.
자신이 일등을 할지도 모른다는, 방송을 타고 나면 유명한 스타가 될지도 모른다는 허무맹랑한 희망이나 설렘 따위 말이다.
하나.
도착한 이곳은 무기만 없는 전쟁터에 불과하다는 걸 확인했으니 희망으로 타오르던 심지는 이미 꺼졌을 터.
더군다나 합숙까지 하면서 제 옆에 자던 사람이 쫓겨나듯 탈락하는 모습을 실시간으로 지켜봐야만 했다.
아마 남은 이들이 압박감을 느끼고 필사적으로 매달릴 수밖에 없는 환경에 노출시켜 놓으려는 거겠지.
제작진 쪽에서야 전쟁터로 계속 몰아넣어 자극적인 영상만 뽑아낼 수 있다면 그걸로 된 거일 테니까.
특히나.
대부분 아직 사회생활도 해 보지 않은 10대나 20대 초반에 어린 참가자들이기에 이 전쟁터가 버겁다 느껴지리라.
‘나만 살아남으면 돼.’
그렇다고 한들, 자신이 누굴 걱정할 처지도 아니고 누군가를 위해 양보할 수도 없는 노릇이지 않나?
‘살아남아서 인정받겠어.’
강하준은 양 뺨을 가볍게 톡톡 치고는 맨 앞에 있는 모니터로 시선을 옮겼다.
「 서지니-같이 걷자 」
모니터 위로는 조금 전 공개된 지정 경연곡이 띄워진 채였다.
“하아….”
강하준은 가볍게 한숨을 내쉬었다. 불과 몇 시간 전까지만 하더라도 자신에게 따듯한 위로를 주던 곡이 이젠 자신을 가차 없이 평가할 미션곡이 된 셈이었다.
더군다나 경연곡으로 쓰이기엔 서지니의 ‘같이 걷자’는 잔잔함이 매력적인 곡인 만큼 가창력을 폭발시킬 수 있는 구간이 없어 다소 아쉬운 선곡이랄 수 있었다.
‘편곡을 기가 막히게 잘 해낸다면 얘기는 달라질 수 있겠지만….’
다만.
참가자들에게 쥐어진 시간은 단 세 시간.
그들이 자신의 역량을 제대로 보여 줄 준비시간이라기엔 턱없이 부족한 시간이었다.
비단 자신뿐만 아니라, ‘HS’ 라인을 선택한 20명의 참가자 전원 모두 같은 생각일 거다.
특히나.
단 4분 남짓의 무대만으로 그 자리에서 탈락자와 생존자로 갈린다는 사실이, 20명 중 단 10명만이 다음 라운드로 향할 수 있다는 사실이, 몇 시간 뒤에는 강당에 모인 100명 중 반은 고스란히 다시 짐을 들고 집으로 돌아가게 될 거란 사실이 문득 섬뜩하게 느껴질 따름이었다.
‘대진표는 언제 나오지….’
강하준이 미어캣마냥 고개를 들자, 구석에 옹기종기 모여 머리를 맞대고 있는 제작진들이 보였다.
“듀엣 미션이 아니라 아쉽지만, 이 둘은 무조건 붙여 놔.”
“예? 그럼 한 명을 여기서 떨구고 가야 하는 건데….”
“그건 나중에 생각해. 지금 당장 시청률 보장수표잖아!”
무슨 말을 하는지까진 들리지 않았지만, 종이 뭉치를 든 채로 열변을 토하고 있는 걸 보면 아직 대진표를 어떻게 할지 결론을 내지 못한 듯 보였다.
그래.
어떻게 배치하느냐에 따라 해당 회차의 시청률이 달라질 테니 쉽게 결정 내릴 사안이 아니겠지.
물론, 자신에게도 무척 중요한 사안이랄 수 있었다.
본인을 제외한 19명 중 누구와 맞붙느냐에 따라 자신이 탈락자가 될 수도, 생존자가 될 수도 있으니까.
‘누가 되었건 지금은 어떻게 편곡할지부터 생각하자.’
그때.
김성준의 목소리가 다시 한번 이목을 끌었다.
“모두 자신들이 선 라인에 모니터를 바라봐 주시길 바랍니다!”
그 말에 모두가 모니터를 향해 시선을 옮겼다.
「 HS팀 1:1 대진표 」
이내 모니터 위로는 일대일 배틀 대진표가 떠올랐으며.
「 고주아 vs 이미연 」
「 김지수 vs 조두진 」
「 유하인 vs 김새별 」
자신의 배틀 상대를 확인한 참가자들의 얼굴 위로는 희비가 교차했다.
“저 사람 올패스 합격자 아냐?”
“아, 진짜 망했어!”
“하필 왜 저 사람이랑….”
이곳저곳에서 곡소리가 터져 나오기를 잠시.
“야, 야, 저기 봐 봐.”
“대박, 대박….”
“어떻게 저 둘이 붙어?”
머지않아 장내의 참가자들은 ‘HS’ 팀 모니터 위로 띄워진 대진표에 시선을 빼앗겼다.
“하늘의 장난도 아니고 하필 저 두 명이 붙냐?”
“우리한테는 잘된 일인 거지.”
이걸 운명이라고 해야 할지, 악연이라고 해야 할지 모르겠지만.
“그렇지? 저 둘 중 하나는 떨어질 테니까.”
“오히려 좋아.”
HS 라인의 모니터 맨 하단에는….
「 윤제이 vs 강하준 」
현장에서 가장 ‘뜨거운 감자’랄 수 있는 두 사람의 이름이 나란히 띄워진 채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