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turn of a Crazy Genius Composer RAW novel - chapter (96)
망나니 천재 작곡가 회귀하다-96화(96/482)
요 며칠 강하준은 우울감에 시달리고 있었다.
“휴….”
잡념을 떨쳐 내기 위해 연습실에 틀어박혀 땀을 진탕 흘릴 만큼 연습에 몰두하다 보니 어느새 아침이 밝아 왔다.
하나, 우울감까지 보태진 탈력감은 실로 말할 수 없이 온몸을 뒤덮어 손 하나 까딱할 수 없게끔 만들었다.
“더 연습해야 하는데….”
결국 연습실 바닥에 대자로 누워 천장을 멍하니 바라보다 눈을 감았다.
아, 정신 차려야 하는데.
마음과 달리 눈꺼풀이 쉽게 떠지지 않았다. 이렇게 된 김에 그냥 잠시 눈을 감고 쉬었다가 할까.
아니, 아니지… 경연까지 며칠 안 남았잖아.
며칠 뒤 치러질 TOP 5: 준결승 라운드는 심사위원과 짝을 지어 무대를 함께 준비하는 방식이다.
수많은 무대 경험이 있는 뮤지션의 코칭을 받을 수 있으니, 참가자에겐 아주 좋은 기회랄 수 있었다.
하나.
자신이 원하던 심사위원이 아니라는 게 못내 아쉬웠다.
‘나도 작곡가님이랑….’
그래, 강하준이 느끼고 있는 우울의 뿌리는 바로 ‘HS’였다. 그에게 코칭을 받고 싶었는데 엇갈렸다는 사실이, 또다시 자신이 아닌 윤제이가 그 기회를 가져갔다는 사실이 강하준을 무기력하게 만들었다.
‘잠깐-!’
강하준은 용수철이 튀어 오르듯 상체를 벌떡 일으켰다. 오늘 할당의 녹음 파일을 아직 안 보낸 게 떠오른 까닭이었다.
‘이럴 때가 아니지.’
맞다, 어차피 자신은 그의 곡을 녹음할 기회를 이미 거머쥔 사람이 아니던가?
좀 아쉽기야 하지만….
단순 코칭보다 훨씬 더 값진 기회였다. 그에게 밀착 디렉팅을 받을 수 있을 테니까.
“얼른 해야지.”
강하준은 얼른 HS에게 카똑을 보내 줘야 한다는 생각에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분명 내 녹음 파일을 애타게 기다리고 계실 거야…!’
깊은 우울은 해결했지만….
깊은 오해에 빠진 듯했다.
* * *
폭풍 같은 생방송 라운드를 두 번이나 치렀지만, 단 한순간도 숨 돌릴 틈은 없었다.
생방송으로 진행되는 만큼, 경연이 끝나면 다음 경연까지 연습할 시간은 고작 6일.
다음 라운드에 진출했다는 안도감에 잠겨 기뻐하고 있을 여유 시간 따위는 없었다.
벌써 6일 중 3일이 흘렀으니까.
“휴….”
윤제이는 어김없이 기타 가방을 둘러멘 채로 지하철에 몸을 실었다. 저번 시내에서 있었던 일이 떠올라, 오늘은 마스크에 모자까지 푹 눌러쓴 채였다.
‘너무 오바했나?’
하지만 혹시나 또 그런 일이 생기게 되면 HS와 한 약속 시간에 늦어지게 될 수도 있을 테니, 그 사태만은 막아야 했다.
머지않아.
내려야 하는 역에 당도했고, 빠르게 걸음을 옮겨 출구로 나오니 바로 건너편에 압도적인 규모를 자랑하는 건물이 보였다.
쿵쾅, 쿵쾅-.
건물을 발견하자 심장이 거세게 요동치기 시작했다.
‘얼핏 봐도 LS 엔터테인먼트 사옥이네….’
이제 자신의 소속사이기도 하지만 실제로 와 본 적이 없었기에, 아직 제대로 실감이 나지는 않았다.
“와….”
LS 엔터라는 이름에 걸맞게 한강 반대편에서도 보일 만큼 웅장한 사옥을 올려다보며 혀를 내둘렀다.
그렇게 한참 사옥 규모에 압도당해 있기도 잠시.
지이잉-!
HS로부터 문자가 한 통 도착했다.
[ 구세주: 게이트에서 네 이름 대면 됨. ] [ 구세주: 구역 엘베타고 2층. ] [ 구세주: 맨 안쪽 작업실로 오면 됨. ]요즘 다음 라운드 준비를 위해 HS와 연락을 오간 결과, 한가지 알게 된 사실이 있다.
그는 주로 단답과 읽씹을 하는….
아니, 아니지.
소문보다 더 무뚝뚝하다는 거였다.
물론.
덤덤하게 위로를 건넬 줄 아는 따듯한 사람이라는 것 또한 알고 있다.
그리고….
자신이 그토록 동경하고 좋아하던 곡을 만든 사람이 HS라 다행이었다.
터벅, 터벅-.
이내 윤제이는 바삐 움직이는 사람들 사이를 가로질러 사옥 안으로 걸음을 향했다. 정문을 통해 들어오자 탁 트인 로비 안쪽으로 게이트가 보였다.
“윤, 윤제이라고 하는데요.”
HS의 말대로 제 이름을 대자 보안요원은 서류 판을 한번 확인하더니, 금세 게이트를 지나갈 수 있도록 열어 주었다.
고작 게이트 하나 넘어갔을 뿐인데….
LS 엔터의 사람이 되었다는 게 아주 조금씩 실감이 나기 시작했다. ‘이번 생은 망했다.’라는 말처럼 자신은 운이 지지리도 없는 사람인 줄 알았는데, 이렇게 거대한 행복이 연달아 찾아오려고 아껴 둔 모양이었다.
“여기인가…?”
상념에 잠겨 걸음을 옮기다 보니, 어느새 ‘HS’라는 명패가 달린 작업실 앞에 다다랐다.
“후-하.”
윤제이는 숨을 크게 한번 몰아쉬고는, 바들바들 떨리는 손을 들어 작업실 문을 두들겼다.
똑, 똑, 똑-!
머지않아 안에서 “열려 있어.” 하는 목소리가 들려왔고, 문을 열고 들어가자 헬멧을 쓴 HS의 뒷모습이 보였다. 그는 콘솔 앞에 앉아 키보드를 두들기고 있는 채였다.
‘헬멧은 컨셉이 아니라, 매일 착용하는 액세서리 같은 걸까…?’
개인 작업실에서조차 빈틈없이(?) 헬멧을 뒤집어쓴 그를 보고 있노라니 어떠한 벽이 느껴지는 듯했다. 더군다나 그는 고개 한번 돌려 보지 않았다.
“저, 저기….”
한참을 덩그러니 서 있던 윤제이가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작곡가님 바쁘시면, 저 잠시 나갔다가 다시 올까요?”
“아니야, 잠깐 거기 앉아 있어 봐.”
아무래도 그가 말하는 ‘거기’는 아마 소파일 터였다. 주변에 앉을 만한 곳이라고는 두 사람은 거뜬히 누워도 될 만큼 긴 소파 하나가 다였으니까.
얼마나 지났을까?
HS가 드디어 바삐 움직이던 손을 멈추고 소파에 앉아 있는 윤제이 쪽으로 의자를 돌려 앉았다.
“준비됐지?”
“네? 무슨….”
“촬영 준비.”
그리고는 대뜸 촬영 준비가 됐냐는 물음과 함께 셀프캠을 꺼내 테이블 위에 올려놨다.
셀프캠을 빤히 내려다보던 윤제이는 무언가 알아차렸는지 작게 탄식을 내뱉었다.
“아….”
그래, 보통 이런 오디션 프로그램이라면 이렇게 연습하는 과정을 촬영하기 마련이다.
합숙 생활을 할 적에도 숙소 내부 곳곳에 카메라가 설치되어 연습하는 과정을 지켜봤다.
그러나 오늘 작업실 내부에는 카메라 한 대 없이, 두 사람뿐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항상 스태프들과 촬영 장비들로 복잡했는데, 유난히 쾌적하다고 느낀 이유도 그 때문이었다.
“그럼 오늘은 이 셀프캠으로 멘토님께 코칭 받는 과정을 촬영하면 되는 건가요?”
윤제이의 질문에 HS는 고개를 한번 끄덕이더니 무심한 투로 “카메라 부담되잖아.”하고 중얼거렸다.
일순 윤제이는 가슴 깊은 곳에서부터 뭉클함이 밀려왔다. 카메라 앞에 서면 더욱 위축되는 자신을 배려하여 일부러 촬영팀을 부르지 않은 모양이었다.
‘정말 자신이 동경하던 HS가 이런 사람이라 너무 다행이야.’
정작 HS가 촬영팀을 부르지 않은 이유는 단순히 자신이 귀찮고 부담스러워서였지만….
아무렴 어떠하리?
제법 훈훈한 분위기 속에 셀프 촬영이 시작되었다. 이후에는 함께 선정한 곡을 윤제이가 부르면 HS가 듣고 짧게 피드백을 해 주는 형식으로 촬영이 진행됐다.
“끝.”
하나, HS의 말 한마디로 20분도 채 되지 않아 촬영이 종료되었다.
“끝이요?”
윤제이는 놀란 얼굴로 재차 되물었다.
“정말 끝…?
“응, 끝.”
아니, 정말 이대로 코칭이 끝이란 말인가? 아직 시작도 안 했다고 생각했는데….
이내 윤제이는 못내 아쉬운 표정으로 HS의 얼굴(*헬멧)을 지그시 바라봤다.
“그, 그럼 저는 이만 가 보면 될까요?”
“어디를 가는데?”
“네? 아니, 촬영 끝나셨다고 하셔서….”
HS는 답답하다는 양 헬멧 뒤통수를 “드르륵” 소리가 나도록 긁적였다.
“아니, 보여 주기용 촬영만 끝났다고.”
“예?”
“이제 제대로 본 게임 들어가야지.”
그 말을 끝으로 HS는 답답하다는 양 서둘러 헬멧을 벗어 던졌다. 그리고는 잔뜩 흐트러진 머리칼을 손으로 휙휙 내저으며 정돈했다.
“아, 더워 뒤질 뻔했네.”
윤제이는 일순 자신도 모르게 손으로 입을 틀어막으며 “헙-!”하고 숨을 멈췄다.
“너 왜 그러냐?”
“저, 그, 그게….”
처음 마주한 HS의 얼굴에 화들짝 놀란 까닭이었다.
‘커뮤니티에서 본 몽타주보다 훨씬 잘생겼잖아….’
하나.
놀라움은 그리 오래 가지 못했다.
.
.
.
잘생긴 얼굴이 무시무시한 악귀의 형상으로 보인 건 코칭이 시작된 지 약 1시간이 흘렀을 무렵부터였다.
“이 한마디가 제일 중요한 포인트라고 거듭 강조했잖아.”
“너 제대로 집중 안 해? 그냥 너 혼자 할래?”
“저음 구간이라고 힘 빼지 말고, 쓸데없는 호흡 넣지 마.”
“아니, 끝 음은 딱 반 키만 올려야 한다니까?”
꼬박 6시간….
옆으로 찢어진 현승의 사나운 눈매만큼 날카로운 지적들이 윤제이에게 집중 호우처럼 쏟아져 내렸다.
피할 수 없는 소낙비에 그녀의 온 맘이 흠뻑 젖어 내려갈 무렵 즈음이 돼서야 그의 코칭이 끝났다.
“오늘 내가 지적한 포인트들 제대로 숙지해서 경연 때까지 100번, 아니 300번 이상 불러.”
그리고는 계속 제 주머니에서 징징 울려대는 휴대폰을 꺼내 들었다.
[ 13일_연습_녹음.MP4 ] [ 수요팅입니다! ^^ ] [ 오늘 점심에 구내식당 안 오신 것 같던데.. ] [ 작업실로 간식거리라도 사다 드릴까요? ] [ 뭐든 말만 하세요. 언제든 말만 하세요. ] [ 다 사다 드리겠습니다. ] [ 참고로 사양은 사양입니다! ㅎㅎ,, ]오늘도 어김없이 시작된 강하준의 카똑 테러였다. 녹음 파일과 함께 매번 일 분 대기조라도 되는 양 뭐든 말하라는데, 비장함마저 느껴질 정도였다.
“휴….”
현승이 카똑을 확인하며 고개를 내젓기도 잠시.
“아.”
돌연 무언가 떠올랐는지 말을 이었다.
“오늘 편곡한 MR 파일 보내 줄 테니까, 매일 녹음해서 카똑으로 보내.”
그래, 강하준의 다른 카똑은 하등 쓸모없었지만 녹음 파일로 확인하는 방식은 꽤 유용하고 실용적이었다.
이렇게 하면 경연 날까지 만나지 않아도, 연습이 옳은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는지 확인할 수 있을 터였다.
“예? 매일 카똑을 하라고요?”
“제대로 안 들을래?”
“정말 죄, 죄송합니다.”
“연습한 녹음 파일 보내라고.”
현승은 자신을 귀찮게 하는 사람이 하나 더 생겨난다는 생각만으로 머리가 아프다는 양 이마를 짚은 채 덧붙였다.
“꼭, 파일만 보내. 말했어.”
윤제이는 도통 영문을 모르겠다는 표정이었지만, 그의 말이니 수긍의 뜻으로 연신 고개를 끄덕여 보였다.
“이제 가 봐도 돼.”
“아… 네!”
윤제이는 이대로 돌아가기 다소 아쉬움이 남았지만, 그의 시간을 더 방해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그럼 준결승 라운드 때 뵙겠습니다.”
이윽고.
그녀가 자리를 털고 일어나려던 찰나였다.
“모쪼록 잘해 봐.”
건조하지만, 이상하리라 만치 힘을 실어 주는 그의 목소리가 다시금 들려왔다.
“결승 라운드에서 부르게 될 곡도 거의 다 완성했으니까.”
윤제이는 별안간 밀려드는 거대한 행복감에 질식할 것 같았다. 결승 라운드에 자신이 진출할 수 있을지 불투명한 상황이지 않던가?
더군다나.
이번 세미 라운드에서 주간 사전투표 결괏값과 심사위원 총점, 실시간 시청자 문자 투표를 모두 합산하여 1위를 해야만 곡을 먼저 선택할 기회가 주어진다.
결국.
자신이 결승 라운드에 진출할 기회가 쥐어졌다 하더라도, 1위로 진출하는 게 아니라면 다른 참가자가 HS의 곡을 먼저 선택할 수도 있다는 말이다.
그때.
별안간 윤제이의 머릿속을 스쳐 지나가는 인물이 있었다.
‘강하준.’
지난 TOP 8라운드에서도 당당히 1위를 차지했고, 대중들의 지지율도 압도적으로 높은 참가자였다.
사전투표나 실시간 문자 투표율을 고려했을 때 자신이 아무리 무대를 잘 해낸다 한들, 총점에서 밀려날 가능성이 농후했다.
하나.
처음부터 끝까지 자신을 믿어 준 HS에게 보답하기 위해서는 꼭 1위로 결승 라운드에 진출해서, 그가 만든 곡을 완벽하게 불러내야만 한다.
꼭 해내야지.
일순 윤제이의 눈동자 위로 이채가 드리웠다.
“네, 정말 잘해 볼게요.”
고개를 푹 숙여 보이며 굳은 심지가 느껴지는 목소리로 재차 덧붙였다.
“꼭 잘해 볼게요.”
이내 작업실 문 쪽으로 걸음을 옮긴 그녀가 문을 활짝 열어젖히던 찰나였다.
우당탕탕-!
무언가 문에 밀려 넘어지며 시끄러운 마찰음이 복도에 메아리처럼 울려 퍼졌다.
“어, 어-?!”
윤제이는 놀란 마음을 진정시킨 뒤 넘어진 형체를 다시 한번 자세히 들여다봤다.
뭐지? 어디선가 자주 본 듯 낯이 익은데….
형체의 주인공은 바로 요즘 매주 얼굴을 마주하고 있는, 자신이 조금 전 1위 후보라고 생각했던….
“강하준 씨?”
뜬금없이 맞닥뜨리게 된 강하준은 바닥에 나둥그러진 채였다.
“괜찮아요? 일어나실 수 있겠어요?”
“네, 괜찮습니다.”
강하준은 머쓱했는지 금세 자리에서 일어나 엉덩이를 털었다. 그 광경을 작업실 안에서 바라보고 있던 현승이 어이없다는 표정을 한 채 물었다.
“너 여기서 뭐 하냐?”
“아, 그게….”
“간식 배달 왔는데요….”
“배달 안 시켰습니다.”
그리고는 매정하게 문을 닫아 버렸다.
쿵-!
닫힌 문밖으로는 윤제이와 강하준이 나란히 서 있었고.
“어….”
둘 사이에는 알 수 없는 뻘쭘함이 감돌았다.
“저는 그럼 이만….”
“예….”
“그, 촬영 날 뵐게요.”
“예…,”
결국 윤제이가 어색함을 이기지 못하고 자리를 먼저 떠버리자, 복도에는 강하준만 덩그러니 서 있었다.
한 손에는 도시락과 샌드위치 같은 음식물이 가득 들어간 봉투 하나를 든 채로….
툭-.
이윽고.
작업실 문 앞에 봉투를 내려놓은 그는 곧장 카똑을 보냈다.
[ 소중한 고객님의 배달 음식을 문 앞에 두고 갑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