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turn of a Crazy Genius Composer RAW novel - chapter (98)
망나니 천재 작곡가 회귀하다-98화(98/482)
한편.
현승은 제이블이 자신을 바라보며,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지 꿈에도 모르는 채 오만상을 찌푸리고 있었다.
‘귀가 좀 간지럽네.’
그저 헬멧 때문에 귀를 긁지 못하는 게 답답한 까닭이었다.
“멘토님….”
그때 구석으로 향했던 윤제이가 다시금 제 곁으로 다가와 자신을 조심스레 불러 세웠다.
“제가 이런다고 정말 결승전에 진출할 수 있을까요?”
“난 또 뭐 물어보려고 왔나 했네.”
“유주의 무대가 워낙 강렬하고 좋았으니까, 대중들은 아무래도 보는 맛도 있는 그런 무대를 더 선호할 테고….”
그래.
이유주의 무대? 이목을 단박에 끌 정도로 강렬했다. 편곡 또한 뻔하지 않고 흥미롭게 잘 뽑혔다. 많은 공을 들인 듯한 화려한 퍼포먼스와 연출에서 노력마저 엿보였다.
하지만.
‘딱 거기까지.’
제이블이 많이 애쓴 모양이지만, 그래봤자 악기가 별로였다. 이유주는 가지고 있는 소리의 통도 작고 폭도 좁았다. 그만큼 연주할 수 있는데 한계가 있었을 터.
아마 제이블도 그걸 알고 있으니, 최대한 편곡과 연출을 화려하게 뽑아서 시선을 분산시키려 했을 거다. 물론 경연인 만큼 그런 퍼포먼스에 사람들은 환호하기도 하지만….
‘그래 봤자지.’
이런 무대는 강렬한 만큼 쉽게 잊힌다.
그래.
이제 곧 시작될 강하준의 무대를 보고 나면 금세 잊어버리겠지.
“아… 강하준 무대 곧 시작할 건가 봐요.”
윤제이는 대답이 없는 현승을 보며 이유주의 무대가 좋다는 제 말에 동의하는 것이라 여기고, 화제를 전환 시켰다.
“어, 그러네.”
현승이 무심히 대답하며 무대 위로 시선을 옮겼다.
“헛소리 그만하고, 그럼 강하준 무대나 봐.”
“네….”
한참 세팅이 진행되고 있는 무대 중앙은 정신이 없어 보였고, MC는 시선 및 시간 끌기용으로 사이드에 강하준과 나란히 서서 인터뷰를 진행하고 있었다.
“이번 라운드는 이영아 심사위원과 함께 준비하셨는데, 어떠셨나요?”
“정말 보컬의 신이라고 불리시는 분인 만큼 많은 도움이 되었습니다.”
강하준은 확실히 무대 체질이었다. 탐미적인 외모와 유려한 말솜씨, 타고난 센스까지.
그가 입을 열 때마다 방청석에서 “꺄아-!”하는 환호성이 터져 나오는 것만 봐도 그의 반짝이는 스타성에 이미 많은 이들이 빠져든 모양이었다.
“하준 씨는 대중들한테 인기가 진짜 많은 것 같아요.”
“얼굴을 좀 봐. 당연히 많겠지.”
“아, 그렇기는 하죠. 성격도 좋고, 노래도 잘하고….”
“사전투표도 매번 1위라며?”
“네, 팬클럽 회원 수도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고 있다던데….”
현승이 재차 말끝을 흐리며 말하는 윤제이에게 한마디 하고자 입술을 열려던 찰나였다.
짝짝짝짝짝-!
때마침 무대 위로 암전이 찾아왔고, 힘찬 박수갈채와 함께 은은한 스포트라이트가 강하준의 머리 위로 쏟아져 내렸다.
꿀꺽.
이내 옆에 서 있던 윤제이의 침 삼키는 소리가 들릴 만큼 갑자기 고요한 정적이 찾아왔다.
무대 전광판에 강하준의 얼굴이 클로즈업되어 떠오르자, 모두 숨을 죽인 채 집중한 까닭이었다.
얼굴만으로도 시선을 끌어당기는 힘.
가수라면 응당 타고난 소리나 실력 또한 중요하지만, 요즘 가요계는 사람의 시선을 끌어당기는 외모 또한 강력한 힘으로 적용된다.
강하준은 그 힘을 가졌다. 단순히 잘생겼다는 말이 아니다. 수려한 외모와 호감을 불러일으키는 분위기가 잘 조화를 이루며 압도적인 스타성을 품고 있었다.
아마.
이영아도 알고 있을 터였다. 그러니 무대 연출은 심플하게 하고, 굳이 전광판에 영상을 전시하는 대신 강하준이 노래하는 얼굴을 클로즈업으로 띄우는 방식을 선택했겠지.
더욱 그의 노래에 몰두하게 될 테니까.
‘좋은 시작인걸.’
그가 짧게 숨을 내뱉자 반주가 흘러나왔다.
─ 우리가 헤어지게 된 이유를 도무지 알 수가 없어.
전통적인 발라드곡에 흔한 편곡 방식이었지만, 항상 오리지널은 잘 먹히는 법이다.
강하준은 처음 봤을 때보다 훨씬 성장한 실력으로 곡의 서사를 몰입도 있게 끌고 나갔다.
“허업-.”
옆에 서 있던 윤제이는 입을 벌리다 못해 두 손으로 제 입을 틀어막은 채 무대를 끈덕지게 바라보았다.
“숨은 좀 쉬어 가면서 봐.”
“아, 아니….”
“아주 노래 듣다가 울겠다.”
“너무 잘하잖아요.”
“확실히 잘하긴 하네.”
단 일주일 만에 강하준이 더욱 짜임새 있는 발성과 호흡을 구사할 수 있게 된 걸로 보아, 발라드의 여제라 불리는 이영아에게 제대로 된 코칭을 받은 모양이었다.
“멘토님….”
다시금 옆에서 자신을 맥 빠지게 부르는 소리에 고개를 돌려 보니, 윤제이가 무대에 시선을 고정해 둔 채로 말을 이었다.
“물론 제가 최선을 다하겠지만, 결승에 못 올라도 절대 멘토님 탓이 아니에요.”
“어?”
“알겠죠? 그냥 제가 너무 부족한 거예요….”
무슨 이야기를 하려나 하고 들어 보고 있노라니 별 쓸데없는 말들이었다. 아무래도 이유주와 강하준의 무대를 연달아 지켜보며 기가 죽은 거겠지.
조금 전부터 계속 불안정한 말들과 우중충한 분위기를 풍기더니, 이제는 자신의 탈락을 겸허히 받아들일 마음의 준비를 하고 있는 듯 보였다.
아주 쓰잘머리 없는 걱정을 하고 있네.
“윤제이, 오늘 너 안 떨어져.”
“그걸 어떻게 확신해요.”
“적어도 결승전은 갈 거야.”
그래.
현승은 확신할 수 있었다. 윤제이가 제 목소리를 한계까지 끌어 올려 사용할 수 있도록 몇 번의 편곡을 거치고, 집착적으로 코칭을 이어 왔다.
하물며 자신조차 윤제이의 본 무대가 기대될 정도인데.
‘떨어진다는 건 말도 안 될 일이지.’
물론.
프로그램 특성상 객관적인 실력을 측정하여 1위를 시켜 주는 게 아니니, 1위까지는 확답을 못 하겠지만 함께 준결승전을 준비하며 윤제이란 악기가 가진 소리에 여러 번 놀랄 정도였다.
설령, 떨어진다고 하더라도….
그건 윤제이의 실력이 부족해서도, 다른 사람의 실력이 더 뛰어나서도 아니라 단순히 운이 안 좋아서다.
“강하준은 확실히 위협적인 존재겠지. 대중들의 지지도 높고, 점차 실력도 좋아지고 있으니까.”
그래, 현실적으로 보자면 오늘 1위는 강하준이 차지할 확률이 더 높았다. 대중이 참여하는 투표율이 압도적인 편이었으니까.
다만.
앞으로 가요계에 뛰어들게 되면 실력이 없는 자는 점차 기억 속에서 사라지고, 특출난 실력을 지닌 사람만이 살아남을 거다.
가요계에서 잊히지 않고 오래 버틸 힘이 되어 주는 건….
일시적인 인기 따위가 아니라, 가수가 지닌 고유의 소리다. 그 고유의 소리가 막강한 힘을 지닌 것이야말로 가수로서 가장 강력한 무기랄 수 있으니까.
“하지만, 가수로선 타고난 소리보다 강력한 힘은 없어.”
그 말을 토대로라며, 이미 윤제이는 아주 막강한 무기를 지니고 있었고.
“그리고 이유주는 급이 안 맞으니까 신경도 쓰지 말고.”
“네?”
“아이돌 스타 할 거라면 몰라도, 가수로선 급이 안 맞는다고.”
분명 가요계에서 한 획을 그을 것이라 장담했다.
“너는 네가 한 말대로 전력만 기울이면 결승전은 갈 거야. 안 가더라도 뭐 어때? 네가 가수로서 가치를 잃는 것도 아니고.”
현승이 덤덤한 목소리로 진심을 전하자, 윤제이가 금방이라도 울 것 같은 눈망울을 한 채 고개를 끄덕였다.
“네, 최선을 다하고 올게요.”
고글 너머로 보이는 그녀는 정말 제 모든 것을 쏟아 내고 오겠다는 결의가 느껴지는 표정이었다.
짝짝짝짝짝-!
때마침 강하준의 무대가 끝이 나고, 엄청난 박수갈채와 함성이 장내를 가득 채워 나갔다.
* * *
“정말 작곡가님도 최선을 다해서 도와주셨고, 저 또한 그에 보답하기 위해 최선을 다해서 준비했습니다.”
제이블은 사이드 무대에서 인터뷰를 진행하고 있는 윤제이를 올려다봤다.
준결승의 마지막 순서.
주변을 살펴보니 다른 심사위원이나 참가자들도 대기실에서 쉬기보단 스테이지 아래에서 윤제이의 무대를 기다리고 있는 채였다.
아무래도 가장 신경 쓰이는 참가자이니 그럴 수밖에 없겠지.
물론, 자신도 포함이다.
무대가 곧 시작될 건지, 윤제이는 다른 날과 달리 당찬 걸음을 옮겨 무대 중앙으로 걸어 나왔다.
꺄아아아아아-!
그에 보답하듯 관중석에서는 다른 때보다 더욱 뜨거운 환호성이 터져 나왔다. 슬쩍 고개를 돌려보니 그녀를 응원하러 온 팬인 건지, ‘윤블리’라고 적힌 플랜카드를 들고 있는 사람도 여럿 보였다.
‘언제 이렇게 인기가 많아졌지?’
의아함에 고개를 갸웃거리기도 잠시.
쿵, 쿵, 쿵-!
돌연 거친 드럼 비트 소리가 곡의 시작을 알렸다.
뭐지?
리드미컬한 곡을 불러온 윤제이는 맞지만, 이렇게나 에너지틱한 비트에 맞춰 노래를 부른 적이 있던가?
‘분명 유명한 팝송이었던 것 같은데….’
그녀가 노래를 시작하자, 별안간 머릿속에 떠오르던 원곡의 음과 더불어 보컬의 목소리가 지워졌다.
마치 제 한계를 뛰어넘으려 발돋움을 하는 양 빠르고 신비로운 목소리가 비트에 맞춰 휘몰아쳤다.
‘이런, 미친….’
또한 윤제이는 오늘, 마치 다른 사람인 듯 여유로운 제스쳐와 함께 곡에 맞춰 몸을 살랑거렸다.
솟구쳐 오르는 전율에 몸을 떨어 보이기도 잠시.
비단 자신만이 윤제이의 무대를 보고 경악에 빠진 게 아니라는 걸 알게 되었다.
“와, 미쳤다.”
원진섭이 속에 있는 말을 고스란히 뱉어 냈고.
“하, 하하….”
김광진은 마치 헛것이라도 보는 양 헛웃음을 흘려 댔다.
“어….”
이영아는 말문을 잃은 듯 고개를 내저었다.
그리고.
HS는 여전히 팔짱을 끼운 채 미동도 없었다.
‘말도 안 돼.’
윤제이가 목소리를 타고났다는 건 익히 알고 있었다. 뭐, 보컬 실력 또한 확실히 뛰어나다는 것도 알고는 있었다지만….
이 무대는 무엇이란 말인가?
자신이 준비한 이유주의 무대가, 아니, 지난 다른 참가자들의 무대가 마치 모두 윤제이의 무대 앞에서 부속물인 양 느껴졌다.
파격을 뛰어넘어 경악스러움이 느껴지는 곡의 흐름과 완벽히 함께 달려가는 윤제이의 목소리는 일말의 조급함도 없었다.
가히 완벽하다는 말밖에 나오지 않았다.
이런 무대를 앞두고, 1위를 하겠노라 결의를 다지고 확신했었던 자신이 너무 한심하게 느껴졌다.
안일했다.
윤제이는 절대 화려한 무대는 하지 않을 거라고, 못 할 거라고 생각한 건 크나큰 착각이자 실수였다.
할 수 없는 게 아니라, 그저 몰랐을 뿐이었다.
그리고 그걸 알려 준 건 HS겠지. 온전히 윤제이의 실력만으로 만들어 낸 무대는 아닐 터였다. 그래, 이게 바로 HS가 지닌 능력이라는 말인 건가?
“하-.”
제이블은 무대 위에서 화려하게 뛰어놀고 있는 윤제이를 바라보며 쓰디쓴 헛웃음을 지었다.
정말.
단단한 착각이었다.
* * *
모든 경연 무대가 끝이 나고, 다섯 명의 참가자가 나란히 무대 위에 올랐다.
마치 무대가 심판대라도 되는 양, 참가자들의 얼굴에는 긴장감이 서려 있었다.
“다들 고생 많으셨습니다. 자, 이제 결과 발표만을 앞두고 있는데요.”
다섯 명의 심사위원들도 모두 원래 위치인 심사위원석으로 돌아가 자리를 꿰차고 앉았다.
“흠.”
제이블은 심사위원석에 앉아 무대를 내려다보며 상념에 잠겼다.
‘이유주….’
자신이 코치한 이유주의 무대도 확실히 대중들의 선택을 받을 만큼 좋았다지만.
‘강하준….’
워낙 강력하고 넓은 팬덤을 확립해 놓은 강하준을 이기기엔 역부족이었다.
‘윤제이….’
더군다나, 예상치 못한 역병처럼 윤제이의 파격적인 무대까지 보태졌다.
이젠 TOP 2에 오를 수 있을지조차 확실하지 않았다.
그렇다고.
아예 희망조차 없는 건 아니었다.
‘이유주도 제법 팬덤이 있으니까….’
비록, 실력은 다소 부족하더라도 예쁘장한 외모로 K-싱어스타 예선부터 화제를 끌어모았던 참가자 중 하나다.
여타 심사위원들 또한 자신과 생각이 비슷한지, 계속 이유주와 강하준 그리고 윤제이 얘기뿐이었다.
“아무래도 저, 세 명이 가장 유력해 보이죠?”
“그러게, 우열을 가려내기가 어렵네.”
“또 셋이 다 스타일이 다른 무대를 보여 줬어.”
원진섭과 김광진은 이미 자신들이 맡은 김석훈과 심다인은 후보에도 끼지 못한다는 걸 직감적으로 알 수 있었다.
“하필 석훈이 다음 차례로 이유주가 나오는 바람에….”
“다인이도 열심히 준비했는데, 하필 첫 번째라….”
둘의 앓는 소리를 듣고 있던 이영아가 마음에도 없는 말로 위로를 건넸다.
“너무 낙담하지 마요. 또 혹시 모르잖아요?”
여유로운 어투였지만, 그녀 또한 강하준이 결승전에 가리라고 확실할 수는 없었다.
오늘 강하준이 잘 해냈다고 하더라도….
이유주와 윤제이가 선보인 파격적인 무대 사이에 껴 있던 만큼, 일부러 보컬에 집중시키기 위해 무난하게 잡은 연출이 자칫 잘못하면 단조로워 보일 수 있었다.
“TOP 2에 진출하여 결승전을 펼치게 될 두 명의 참가자를 바로 공개하겠습니다.”
제이블은 제 턱을 쓰다듬으며 이유주부터 강하준을 거쳐 윤제이의 얼굴을 면밀히 살폈다.
‘아마 이 셋 중 한 명이 내 자작곡을 결승전에서 부르겠지.’
그래.
이유주가 결승에 진출할지는 모르지만, 세 명 중 두 명이 결승전에 오르리란 건 거의 암묵적으로 확정된 약속이었다.
오늘 세 명의 무대가 그럴 만한 가치를 증명해 보였으니까.
‘그렇다면….’
제이블이 시선은 마지막으로 강하준의 얼굴 위로 고정됐다.
‘저 녀석이….’
그리고는 다른 사람이 아닌, 강하준이 제 자작곡을 불렀으면 좋겠다는 생각에 휩싸였다.
‘부르면 참 좋을 것 같은데.’
꽤 준수한 보컬 실력뿐만 아니라, 지닌 능력치의 스펙트럼이 넓은 만큼 제 자작곡도 충분히 제 스타일로 소화할 수 있을 테고.
무엇보다.
윤제이가 같이 결승에 올라 HS의 곡을 부르게 될 경우, 팬덤이 견고한 강하준이라면 충분히 견주어 볼 만하리라 생각했다.
‘그래, 이왕이면 저 녀석이….’
제이블이 속으로 간절한 바람을 토해 내기도 잠시.
“대망의 결승전에 진출할 TOP 2의 얼굴을 바로 공개합니다.”
이윽고.
MC가 날갯짓하듯 전광판을 향해 손을 쫙 펼쳐 보이자, 모두의 시선이 그의 손짓을 따라 움직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