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turn of the Calamity-Class Death Knight RAW novel - Chapter (1)
멸망급 데스나이트가 회귀함 1화
1화. 재능이 있었다
내게는 재능이 있었다.
“정녕 네가 미쳤구나! 술집에서 난동을 피우다가 쫓겨나? 네놈 때문에 우리 가문의 명예가 얼마나 실추되었는지 아느냐?”
가문의 명예를 더럽히는 재능이 있었다.
아들이 저지른 사고를 처리하느라 아버지께서는 밤잠을 이루지 못하셨다.
“형님! 대체 왜 라이언블룸 후작가의 소공자에게 손찌검을 한 겁니까! 그걸 어떻게든 해결해 보겠다고 누님께서 그 더러운 망나니에게 끌려갔잖습니까!”
가족의 미래를 짓밟아 버리는 재능이 있었다.
라이언블룸 후작가의 분노를 피하기 위해서 누님은 원치 않은 결혼을 할 수밖에 없었다.
“데미안…… 대체 왜 가문의 땅을 담보로 돈을 빌린 거니? 네가 돈을 빌린 곳은 공작가의 사업체야. 이번만큼은 이 어미도 도와줄 수 없구나.”
집안의 재산을 말아먹는 재능도 있었다.
학센 자작가의 얼마 되지 않는 재산은 모두 내 손에 사라졌다.
“떠나라.”
결국 참다못한 아버지께서 날 내치셨다.
평소에는 날 감싸주던 어머니도 이번에는 입을 다무셨다.
동생은 진작 이래야 했다며 기뻐했다.
“데미안…… 이 돈이라도 가져가렴.”
유일하게 누님만이 날 걱정했다.
못난 동생 때문에 사랑하는 약혼자와 이별하고, 본인의 인생이 망가졌음에도 그러했다.
“부디 행복해야 한다.”
그날 처음으로 죄책감과 수치심이 뭔지 알게 됐다.
나는 도망치듯이 가문을 뛰쳐나왔다.
* * *
가문에서 쫓겨난 뒤, 나는 정처 없이 떠돌았다.
한평생 집안의 피를 빨아먹으며 살아온 얼간이에게 특별한 재주가 있을 리가 없었다.
가진 돈은 순식간에 사라졌다. 굶어 죽지 않으려면 무슨 짓이든 해야 했다.
구걸은 예사였으며 하루가 멀다 하고 시비가 붙었다.
“어이구, 자작가의 도련님이라고 하더니. 아주 콧대가 하늘을 찌르시는구먼.”
“뒤지고 싶어서 환장하셨네. 어디 소원대로 해 드릴까?”
그리고 놀랍게도 나는 새로운 재능을 발견할 수 있었다.
“내 팔…… 내 팔이……!”
“누, 누가 포션 좀…… 내 다리가 움직이질 않아!”
“제, 제발 하, 한 번만 살려 주십쇼!”
내게는 검술의 재능이 있었다.
뒷골목에서 주운 녹슨 단검으로 열 명이 넘는 깡패들을 쓰러트렸을 때, 비로소 내 재능을 자각할 수 있었다.
가문에 있을 시절에는 방탕하고 게으른 시간을 보내느라 칼을 한 번도 잡아보지 않았다.
그래서 내게 이런 재능이 있다는 사실을 알지 못했다.
“뭐? 용병이 되고 싶다고? 그 비실비실한 몸으로 괜찮겠어?”
“……허, 보기와는 다르게 칼을 쓰는 솜씨가 귀신같구먼.”
“이 정도 실력이면 어디 가서 죽지는 않겠어. 우리 용병단에 입단한 걸 축하하네.”
용병으로 일하면서 알게 되었다.
내 재능이 생각보다 훨씬 대단하다는 사실을 말이다.
어떤 검술이든 금방 습득했다. 검뿐만 아니라 다른 무기들도 곧잘 다뤘다.
“설마 했지만 진짜로 기사를 이길 줄이야!”
“네가 아니었으면 우리 모두 죽었을 거다!”
“형님! 저는 앞으로 형님만 믿고 가겠습니다!”
나는 순식간에 용병단의 에이스가 되었다.
어떤 적도 두렵지 않았다. 기사조차 내 상대가 아니었다.
얼마 가지 않아서 나는 내가 가지고 있는 재능이 한계가 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리 달갑지 않은 방식으로 말이다.
-싱싱한 시체들이 제 발로 걸어 들어왔구나!
별생각 없이 맡았던 임무에서 우리 용병단은 리치와 마주치게 되었다.
리치(Lich)
죽음을 피하고자 스스로를 언데드로 바꾼 흑마법사.
최상위 흑마법사만이 리치가 될 수 있었으며 그 능력은 생전 이상이라고 한다.
심지어 용병단이 마주친 리치는 평범한 리치가 아니었다.
리치들의 정점이라 불리는 아크리치(Arclich)였다.
용병단은 아크리치의 흑마법에 모두 무력화되었다.
나도 예외는 아니었다.
-오오? 이렇게 놀라운 일이 있나. 인간 주제에 이렇게 거대한 재능을 품고 있다니. 내 마안으로도 한계를 가늠할 수 없어!
아크리치는 감탄과 함께 온갖 칭찬을 늘어놓았다.
-하지만 재능의 발달이 안쓰러울 정도로 미비하군. 이 정도 재능이면 조금만 칼을 휘둘러도 능히 달인의 경지에 오를 수 있을 텐데 말이야.
날 다시 관찰하던 아크리치가 손뼉을 쳤다.
뼈밖에 남지 않은 몸이라 딱딱한 소리가 났다.
-오호라, 이제 알겠다. 영혼의 빛이 나약할 대로 나약한 것으로 보아 천성적인 게으름 때문에 재능을 썩히고 있었구나!
아크리치는 나라는 인간에 대해서 정확히 짚어냈다.
-쯧쯧, 이렇게 안타까울 수가 있나. 하지만 걱정하지 마라. 이제부터 내가 네 재능을 활짝 꽃피워 줄 테니.
그 후로 지옥 같은 시간이 이어졌다.
아크리치는 내 몸에 이루 말할 수 없는 끔찍한 짓들을 저질렀다.
수십 가지 약물을 투여당했다.
장기가 다른 생물의 것으로 교체되었고, 온갖 종류의 마도구까지 삽입되었다.
그렇게 10년이라는 시간이 지났을 때, 나는 더 이상 인간이 아니었다.
-드디어 완성되었다!
데스나이트.
흑마법사가 기사의 영혼을 타락시킬 때만 탄생한다는 최고위 언데드가 되어 있었다.
아크리치는 자신의 모든 지식과 자원을 끌어모아 날 데스나이트로 만들었다.
내게는 이 상황이 조금도 달갑지 않았다. 하지만 불만을 표출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
데스나이트로 변이시키는 과정에서 아크리치는 내 이지를 완전히 말살시켰다.
자신에게만 충실한 노예로 만들기 위함이었다.
하지만 어찌 된 영문인지 내 이지는 모두 소멸되지 않고 남아 있었다.
다만, 내 뜻대로 몸을 움직일 수는 없었다. 마치 내 몸속에 갇혀 있는 기분이었다.
-이제 세상에 네 힘을 보여 주자꾸나.
날 완성시키자마자 아크리치는 인간들과 전쟁을 시작했다.
놀랍게도 나는 첫 번째 전투에서 천 명이 넘는 병사를 홀로 학살했다.
데스나이트의 강력한 신체와 강제로 주입된 막대한 흑마력, 마지막으로 내 재능이 더해진 결과였다.
-그야말로 인간들이 벌레처럼 죽어 가는구나!
아크리치는 기꺼워하며 날 더 많은 전쟁터에 투입시켰다.
베고, 베고, 또 베었다.
그럴수록 내 재능은 가파르게 발전했다.
어느 순간부터 나는 타인의 검술을 한 번 본 것만으로 완벽하게 이해하고 모방할 수 있게 되었다.
이윽고 나는 모방을 넘어서 창조하는 경지에 이르렀다.
나는 습득한 검술을 모두 하나로 합쳐서 새로운 검술을 만들어 냈다.
그때부터 내 적수는 없었다.
수많은 기사가 내게 살해당했다.
그중에는 용병왕도 있었고, 검성도 있었다. 제국제일검이라 불리는 자도 있었다.
아무도 날 막을 수 없었다.
심지어 나 자신조차.
“데미안! 왜 네가 아크리치와 함께 있는 것이냐! 대체 그 모습은 뭐고!”
전쟁터에서 만난 아버지의 심장에 칼을 꽂을 때도 그랬다.
“형님! 대체 왜 이러시는 겁니까! 멈추세요! 제발 멈추시란 말입니다!”
내 동생의 목을 베어 낼 때도 마찬가지였다.
“살아 있었던 거니? 하지만 그 모습은…….”
가문을 불태우며 어머니를 죽일 때도 똑같았다.
“데미안…… 행복하지 못했나 보구나.”
라이언블룸 후작가를 공격했을 때도 해골 병사들이 누님을 참살하는 것을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널 내쫓은 가족들을 직접 죽인 기분은 어떠했느냐? 내 너를 위해서 특별히 준비했느니라.
가족을 모두 죽이고 돌아온 내게 아크리치가 말했다.
그는 모든 것을 알고 내게 학센 자작가와 라이언블룸 후작가를 공격하라 명한 것이었다.
-하핫, 물론 아무런 생각도 안 들었겠지. 하지만 나는 참으로 즐거웠느니라. 구경하는 재미가 쏠쏠했지.
그때만큼 아크리치를 증오했던 적이 없었다.
이때만큼 내 재능이 원망스러웠던 적이 없었다.
그럼에도 나는 계속 아크리치를 위해서 싸워야 했다.
그리고 결국 그의 소망대로 모든 왕국을 무너트리는데 성공했다.
-드디어! 온 세상이 내 앞에 무릎을 꿇었다!
끈질기게 버티던 제국이 결국 무너진 그날, 아크리치는 날 크게 치하했다.
-이게 모두 네 덕분이다! 네가 없었다면 이런 날은 오지 않았을 게다. 아니지, 널 찾아낸 것은 나니까 결국 내 공로가 가장 큰 셈이구나. 으하하핫!
그렇다.
이 세상에서 오로지 아크리치만이 내 재능을 정확하게 알아봤다.
그래서 세상은 나라는 재앙을 맞닥트리게 되었다.
하지만 아크리치조차 예상치 못한 일이 있었다.
내 재능은 이미 아크리치의 계산을 초월해 있던 것.
아크리치가 강탈해 간 육체의 지배권을 되찾을 정도로 말이다.
승전을 축하하는 날.
내 정신이 되돌아왔다.
* * *
지옥과도 같은 광경이었다.
성벽은 무너졌다. 건물들은 모두 파괴되어 불타고 올랐다.
거리에서는 학살이 자행되고 있었다.
“아아악!”
“도망쳐! 절대로 붙잡혀서는 안 돼!”
학살을 당하고 있는 쪽은 인간이었다.
본래 이 성 안에 살고 있던 사람들의 피가 흩뿌려지고 있었다.
학살을 벌이고 있는 쪽은 인간이 아니었다.
반쯤 썩어버린 좀비, 살점을 뭉뚱그려 만든 미트골렘, 뼈만 남은 채 움직이는 본오우거.
그 외에 수많은 언데드가 인간을 죽이고 있었다.
“제발 제 아들만큼은 살려 주세요!”
“엄마! 엄마아아아!”
언데드들은 이성이 없기에 일말의 자비도 베풀지 않았다.
사람들은 잔인하게 도륙당했다.
-하하핫, 아하하하핫!
그런 광경을 바라보며 누군가 웃음을 터트렸다.
이 지옥에 어울리지 않게 고급 모피 코트를 걸치고 있는 남성이었다.
아니, 남성이 맞기는 한 걸까.
온통 뼈만 남아 있기에 정확한 성별을 알아볼 수가 없었다.
-좋구나! 아주 좋아! 내가 기대했던 그대로야!
두개골이 턱을 딱딱 부딪치며 연신 웃음소리를 냈다.
해골만 남아 있기에 표정을 알아볼 수는 없다.
하지만 누가 봐도 해골은 크게 기뻐하고 있었다.
-옛말에 복수란 기다림이 클수록 기쁜 법이라고 하더군. 500년 전에 다짐했던 일을 이제야 완수한 지금 내가 느끼는 기쁨이 얼마나 클지 예상이 가나?
대답은 들려오지 않았다.
그러자 아크리치 도르고는 몸을 돌리며 다시 물었다.
-왜 대답이 없나? 이 몸이 묻고 있지 않나.
도르고가 돌아본 곳에는 해골병사들이 한 중년 남성을 움켜잡고 있었다.
잘 익은 호박처럼 샛노란 머리카락과 가슴까지 올 정도로 풍성한 수염.
제국의 황제 하워드 아델라이트였다.
하워드 아델라이트는 해골병사들에게 붙잡힌 채 도르고에게 소리쳤다.
“이노옴! 감히 짐의 백성들을 모두 죽이다니! 이 지옥에 떨어져도 모자랄 더러운 악마 같으니!”
지금의 도르고에게 황제의 저주는 아무짝에도 소용없었다.
오히려 감미롭기까지 했다.
도르고는 황제의 분노를 음미하다가 입을 열었다.
-그래 이제 할 말은 끝났나? 그럼 슬슬 즉위식을 진행해도 되겠어.
“그게 무슨 가당찮은 소리냐! 네놈 따위가 즉위식이라니!”
-허어, 그거야 당연히 이 몸의 즉위식이지. 나는 역사상 최초로 대륙통일을 실현시켰다. 그러니 황제라 불려도 부족함이 없지 않겠나.
도르고는 웃음을 터트렸다.
황제는 두 눈을 질끈 감았다.
저 언데드는 대체 어디까지 인간을 모독할 생각이란 말인가.
-자, 그럼 황관을 가지고 오도록 해라.
언데드 군단들 사이에서 검은 갑옷을 입고 있는 언데드가 걸어 나왔다.
그 언데드를 본 순간, 황제는 안색을 굳힐 수밖에 없었다.
데스나이트 데미안 학센.
무수히 많은 기사가 저 데스나이트에게 목숨을 잃었고 수십만이 넘는 병사도 학살을 당했다.
도르고가 대륙을 정벌할 수 있었던 것은 오로지 저 데스나이트 덕분이었다.
-오오, 이 몸의 가장 충성스러운 기사여.
도르고는 애정이 듬뿍 담긴 눈빛으로 데스나이트를 바라봤다.
-그대 덕분에 나는 이 자리에 오를 수 있었다. 이 공로를 대체 어떻게 치하해야 할꼬?
데스나이트는 황관을 든 채 가만히 서 있을 뿐이었다.
그 모습에 도르고는 웃음을 흘렸다.
-어리석은 질문이었군. 그대는 이 몸의 노예. 이 몸을 섬기는 것이야말로 가장 큰 기쁨일진데.
도르고의 웃음소리가 점점 더 커질 때였다.
대뜸 데스나이트가 황관을 머리 뒤로 집어 던졌다.
난데없는 행동에 도르고의 웃음소리가 뚝 멈췄다.
-응? 뭐냐? 나는 그런 명령은 내린 적이 없…….
데스나이트가 등에 메고 있던 대검을 움켜쥐었다.
한 걸음 내딛는 것과 동시에 칼을 휘둘렀다.
도르고는 반사적으로 흑마법을 펼쳤다.
검은 방벽이 그의 앞을 가로막았다.
하지만 데스나이트의 참격은 너무나도 쉽게 방벽을 찢었다.
동시에 도르고의 몸을 반으로 절단했다.
-이, 이게 어찌된 일…….
데스나이트가 투구를 벗어 던졌다. 앳된 얼굴이 드러났다.
틀림없는 인간의 얼굴이었다.
하지만 데스나이트로 변한 영향 때문에 피부가 온통 회색으로 물들어 있었다.
“드디어…… 내 의지대로 움직이는군.”
그 얼굴에서 목소리가 흘러나오자 도르고는 더더욱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어, 어떻게 말을 하고 있는 거지? 분명 이지를 모조리 말살시켜 놨는데?
“말살된 것처럼 보였을 뿐이지. 나는 완전히 사라지지 않았다. 내 몸속에 갇혀서 모든 것을 지켜보고 있었다.”
데스나이트.
아니, 데미안 학센은 반만 남은 도르고의 상반신을 집어 들었다.
얼굴은 무감정했으나 두 눈동자에서는 증오와 분노가 타오르고 있었다.
그것을 알아본 도르고가 미소를 지었다.
-오오…… 화가 많이 난 모양이구나. 이해한다. 나라도 그랬을 게야.
위험한 순간임에도 도르고는 여유가 넘쳤다.
리치는 라이프베슬이라 부르는 마력저장고에 자신의 영혼을 보관한다.
라이프베슬을 파괴하지 않는 한 리치는 죽지 않는다.
아크리치인 도르고도 마찬가지였다.
-너의 공을 생각해서 오늘만큼은 특별히 분풀이를 허락해 주마. 내가 다시 널 제어할 방법을 찾을 동안만 말이다.
도르고는 예비용 육체를 여러 개 만들어 놨다.
육신이 파괴당하면 곧바로 예비용 육체에 정신을 옮긴 뒤, 다시 데미안 학센을 지배할 생각이었다.
-자, 어서 행동하거라. 이 몸을 가루가 되도록 부숴도 좋고, 욕을 퍼부어도 좋…… 우웨에에엑!
별안간 도르고가 입에서 검은 마력을 토해 냈다.
입뿐만이 아니었다. 전신에서 검은 마력이 뿜어져 나왔다.
라이프베슬에 보관되어 있던 흑마력과 영혼이 밖으로 역류하고 있었다.
-마, 말도 안…… 우웨에엑!
라이프베슬은 멀쩡했다.
그럼에도 도르고는 실시간으로 죽어 가고 있었다.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일이었다.
“오랜 세월 동안 널 죽일 방법을 고민했다.”
리치는 라이프베슬을 파괴하지 않으면 죽지 않는다.
하지만 도르고의 지배를 받는 상황에서 라이프베슬을 찾는 것은 불가능했다.
“오로지 널 죽이기 위해서 영혼까지 같이 베어 내는 검술을 만들어 냈다.”
-그, 그런 검술이 있을 리가…….
“왜 없을 거라고 생각하지?”
데미안 학센은 도르고의 목덜미를 더욱 강하게 틀어쥐며 말했다.
“내가 누군지 벌써 잊은 거냐? 날 앞에 두고 항상 자랑스러워하지 않았나! 네놈이 만들어 낸 최고의 걸작품이라면서 말이야!”
데미안 학센.
수많은 강자를 먹어 치우며 성장한 그의 재능은 신적인 영역에 닿아 있었다.
검만 있으면 무엇이든 해낼 수 있었다.
불가능이란 단어는 그에게 통용되지 않았다.
-마, 막아라! 당장 이놈을 막아!
당황한 도르고가 언데드 군단을 향해 명령했다.
해골병과 골렘들이 데미안 학센에게 달려들었다.
데미안 학센이 대검을 크게 휘두르자 시커먼 오러가 해일이 되어서 언데드 군단을 덮쳤다.
검은 해일은 군단을 으스러트리고 찢어발겼다.
언데드들은 저항 한번 못 해 보고 모조리 쓸려 나갔다.
-아, 안 돼…….
어처구니없는 광경에 도르고는 할 말을 잃었다.
적이 되고 나니 뼈저리게 와 닿았다.
그가 만든 데스나이트가 얼마나 규격 외의 괴물인지.
더 이상 도르고의 몸에서 흑마력이 새어 나오지 않았다.
도르고는 느낄 수 있었다. 죽음이 다가왔다 사실을.
-사, 살려 줘…… 제, 제발……!
데미안 학센은 입꼬리를 비틀며 말했다.
“지옥에나 떨어져라.”
도르고의 해골 속 안광이 사라졌다. 영혼이 완전히 소멸해 버린 것이다.
데미안 학센은 도르고의 해골을 바닥에 내동댕이쳤다.
그리고 가루가 될 때까지 짓밟았다.
-우워어어어!
-크어어어!
황궁 밖에 남아 있는 언데드들이 괴성을 지르기 시작했다.
주인이 사라지자 폭주하기 시작한 것이다.
“닥쳐라.”
데미안 학센은 흑마력을 퍼트려서 언데드들을 다시 지배했다.
언데드 군단은 순식간에 침묵했다.
전쟁이 길어지면서 도르고는 데미안 학센에게 흑마법의 지식을 주입시켰다.
그 때문에 데미안 학센은 군단 내에서 도르고 다음으로 뛰어난 흑마법사였다.
“모두 자괴해라.”
데미안 학센의 명령에 군단은 스스로를 파괴하기 시작했다.
수십만이 넘는 언데드 군단이 순식간에 모조리 사라졌다.
“그, 그대는 대체……?”
황제는 놀란 얼굴로 데미안 학센을 바라봤다.
하지만 데미안 학센은 그에게 전혀 관심이 없었다.
“……드디어 끝났다.”
데미안 학센은 바닥에 주저앉았다.
언데드임에도 불구하고 짙은 피로감이 그의 몸을 집어삼켰다.
“아니지, 아직 끝나지 않았어.”
데미안 학센은 칼날을 역으로 움켜쥐었다.
칼끝을 자신의 가슴에 가져다 댔다.
이 피부 아래에는 데미안 학센을 데스나이트로 가동하게 만드는 동력원이 존재한다.
이것을 파괴하면 데미안 학센은 진정한 죽음을 맞이할 수 있다.
“아직…… 할 일이 남아 있다.”
가족들의 얼굴이 떠올랐다. 웃고 있는 얼굴은 떠오르지 않았다.
자신은 언제나 가족들을 화나게 만들었으니까.
“사과해야지. 죄송하다고, 미안하다고.”
데미안 학센은 망설임 없이 자신의 가슴에 칼을 박아 넣었다.
고통은 없었다.
짙은 어둠만이 그의 시야를 가렸을 뿐이었다.
그리고…….
“데미안?”
어둠 속에서 목소리가 들려왔다.
“데미안, 왜 이런 곳에서 자고 있는 거니? 어서 일어나렴.”
꿈에 그리던 누님의 목소리였다.
다행히 지옥에 떨어지기 전에 누님을 만날 수 있었다.
“아버지께서 찾고 계셔. 화가 단단히 나셨던데. 이번에는 대체 무슨 짓을 저지른 거야?”
역시 아버지께서도 화가 많이 나신 모양이다.
어서 아버지를 찾아뵈어야 한다.
그래서 자신이 저지른 모든 죄를 고백하고 용서를 빌어야 했다.
데미안 학센은 결심을 굳히며 눈을 떴다.
밝게 내리쬐는 햇볕과 누님의 얼굴이 보였다.
“……어?”
마지막으로 봤던 누님의 얼굴보다 한참 어렸다.
데미안 학센은 너무 놀라서 누님에게 말했다.
“……누님, 왜 이렇게 어려지신 겁니까?”
“어머, 갑자기 웬 아부니. 알겠다. 아버지께 혼날 때 편들어 달라고 이러는 거지?”
누님은 꺄르륵 웃었다.
너무 오랜만에 들어보는 웃음소리에 데미안 학센은 멍한 표정을 지을 수밖에 없었다.
“알겠어. 이 누나만 믿으렴. 그럼 옷매무새만 다듬고 빨리 와야 한다?”
누님은 먼저 걸음을 옮겼다.
누님이 향하는 곳에는 학센 자작가의 저택이 보였다.
“……저택은 분명히 내 손으로 파괴했을 텐데?”
데미안 학센은 자신의 몸을 내려다봤다.
데스나이트 때와 달리 혈색이 흐르는 뽀얀 피부가 보였다.
“……나한테 무슨 일이 일어난 거지?”
조금 더 시간이 지난 뒤에야 데미안 학센은 비로소 깨달았다.
자신이 과거로 회귀했다는 것을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