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turn of the Calamity-Class Death Knight RAW novel - Chapter (10)
멸망급 데스나이트가 회귀함 10화
10화. 흑마법사 (3)
흑마법사가 팔찌를 벗자마자 토굴 전체가 흑마력으로 뒤덮였다.
바닥도 천장도 벽도 온통 새까맣다. 마치 밤하늘에 휘감긴 것 같았다.
“젠장.”
이만한 흑마력을 해방시키고도 흑마법사는 영 탐탁지 않은 얼굴이었다.
“교단을 상대할 비장의 무기였는데.”
까득, 흑마법사는 이를 갈며 데미안 학센을 노려봤다.
“이렇게 된 이상, 곱게 죽을 생각은 하지 마라! 제발 죽여 달라고 애원하게 만들어 주마!”
데미안 학센은 흑마법사의 경고를 조금도 귀담아듣지 않았다.
흑마법사가 벗은 팔찌에 모든 신경이 집중되어 있었다.
‘저렇게 많은 양의 흑마력을 담고 있었는데도 내가 눈치채지 못하다니.’
마력이란 많은 양을 저장할수록 감추기 힘든 법이다.
쌓이면 쌓일수록 존재감이 강해지기 때문이다. 이는 흑마력도 마찬가지였다.
그런데 저 팔찌는 데미안 학센조차 감지하지 못할 정도로 완벽하게 마력을 감추고 있었다.
‘설마 유물인가?’
유물, 혹은 아티팩트.
까마득한 과거에 존재했다는 고대문명의 유적지에서만 발견할 수 있다는 귀물.
현재보다 월등히 뛰어난 기술로 제작되었기에 하나 같이 대단한 기능을 가지고 있다고 한다.
“그런 걸 들고 다니는 걸 보니 보통 흑마법사가 아니로군. 너야말로 대체 누구냐.”
“자기 정체도 안 밝히는 놈한테 해 줄 말은 없다.”
이번에도 흑마법사는 대답을 거부했다.
“……라고 말하고 싶지만 나는 너처럼 예의도 모르는 무뢰한이 아니거든.”
흑마법사가 자신의 손목을 걷었다.
팔뚝에 하얀 꽃이 문신으로 그려져 있었다.
“유란(Yulan)의 간부 아기토라고 한다.”
* * *
흑마법사들은 토벌의 대상이다.
그들의 사용하는 흑마법은 사람의 영혼과 시체를 농락한다. 신성교단은 이러한 흑마법사들의 행태를 눈감아 주지 않았다.
흑마법사들을 이단으로 규정하고 그들을 없애기 위해서 일 년에도 몇 번씩 소탕작업을 벌일 정도였다.
그렇다고 흑마법사들도 가만히 당해 준 것은 아니다.
신성교단에 대항하고자 서로 정보를 교환하고, 도움을 주고받으면서 조직을 형성했다.
때때로 이 조직은 큰 악명을 얻고 교단도 처치하기 곤란할 만큼 성장하기도 했다.
“유란의 간부라고?”
‘유란’도 그런 흑마법사의 조직 중 하나였다.
그것도 데미안 학센이 알고 있을 정도로 유명했다.
비교적 최근에 탄생한 신생 조직으로 흑마법을 이용한 청부살인을 주력으로 삼았다.
그 탓에 수많은 사건에 연루되어 있지만 여태까지 신성교단이 토벌하지 못했다.
그만큼 구성원 전체의 전투력이 높았기 때문이다.
그런 대단한 집단 소속이니 저 흑마법사 아기토의 실력이 어떨지는 굳이 가늠할 필요도 없었다.
“그런 놈이 왜 검은뱀 따위에 고용된 거지?”
“몸을 숨길 필요가 있어서 잠시 의탁했을 뿐이다. 고용된 적 없어!”
“몸을 숨겨……? 아, 신성교단 때문이로군.”
유란 정도 되는 집단의 간부가 이렇게까지 은밀하게 몸을 숨겨야 할 때는 신성교단이 움직일 때뿐이었다.
“최근에 신성교단에서 흑마법사들을 소탕 중이라는 말을 들어 본 적이 있어. 그걸 피하느라 삼류 흑마법사 행세를 하고 있었군.”
아기토가 까득 이를 갈았다.
“그래, 네 말이 맞다. 젠장, 용돈이나 벌려고 맡은 의뢰에서 너 같은 놈을 만날 줄이야.”
아기토가 욕지거리를 내뱉으며 물었다.
“내 이름을 듣고도 네 정체를 숨길 작정이냐?”
“난 숨긴 적 없다.”
“하, 아직도 날 병신으로 보고 있네.”
아기토의 얼굴에 노기가 서렸다. 그의 감정에 맞춰서 흑마력이 요동치기 시작했다.
“이제는 못 들어도 상관없어.”
술식을 구축하지 않았음에도 흑마력이 형태를 이루었다.
바닥에서 통나무처럼 굵은 촉수가 우후죽순 돋아났다.
“그대로 으스러져서 죽어라.”
촉수들이 데미안 학센을 휘감았다.
가공할 만한 힘이 데미안 학센을 조였다.
“버러지 같은 자식. 저승에서 실컷 후회해라.”
승리하였음에도 아기토는 크게 기뻐하지 않았다.
애초에 유란의 간부인 그가 본 실력을 드러낸 시점에서 승리는 당연한 것이었다.
제국에서 암약하고 있다는 거대 흑마법사 조직 ‘만마전’에 비할 바는 아니지만 유란도 제법…….
그때였다.
촉수의 표면에 균열이 생기기 시작했다. 균열은 순식간에 촉수 전체로 번져 나갔다.
유리창이 깨지는 소리와 함께 촉수들이 산산이 부서졌다.
흑마법이 분해되면서 흩어진 흑마력이 폭풍처럼 휘몰아치기 시작했다.
“뭔가 대단한 흑마법을 쓰는가 싶었는데.”
그 중심에서 데미안 학센이 심드렁한 목소리로 말했다.
“생각보다 별거 없군.”
* * *
“이건…… 말도 안 돼!”
아기토는 절규하듯이 소리쳤다.
“이 마법은 내가 평생 동안 개량해 온 거야! 이 세상에서 오직 나밖에 못 쓴다고! 그걸…… 네가! 네가 어떻게……!”
데미안 학센에게 탐욕의 권능이 있는 한 아기토가 어떤 흑마법을 사용해도 소용없었다.
“평생? 그런 것치고는 많이 조잡하더군. 더 노력해야겠어.”
물론 데미안 학센은 그 사실을 알려 주지 않았다. 오히려 아기토를 도발했다.
“너…… 너만큼은 절대로 살려 두지 않겠어. 반드시 죽여 주마……!”
아기토의 얼굴에 수치심과 분노가 동시에 떠올랐다.
아기토가 팔찌에서 해방된 흑마력들을 모조리 흡수하기 시작했다.
막대한 양의 흑마력이 그의 몸속으로 주입되었다.
“끅, 끄윽.”
쉽지 않은 일이었는지 아기토는 금방이라도 토할 것처럼 안색이 창백해졌다.
“힘들면 그만두지 그러나.”
아기토는 대답하지 않았다. 아니, 대답할 여력이 없어 보였다.
로브 밖으로 드러나 있는 피부에 새까만 선이 그려지기 시작했다.
“마법진?”
데미안 학센은 곧바로 저 선의 정체를 알아봤다.
아기토는 지금 흑마력을 이용해서 자신의 몸에 마법진을 그리고 있었다.
아기토는 여기서 멈추지 않았다. 품에서 단검 한 자루를 꺼냈다.
“젠장, 이 마법까지 쓰게 될 줄이야!”
아기토는 단검으로 자신의 손목을 베었다. 손목의 상처에서 핏줄기가 터져 나왔다.
핏줄기는 땅에 닿자마자 재가 되어 흩어졌다.
그 직후, 아기토의 머리 위에 녹색 불길이 일어났다.
녹색 불길은 마치 뱀처럼 길게 늘어지며 아기토의 주변을 부유했다.
데미안 학센은 이 불길의 정체를 바로 꿰뚫어 봤다.
“악마의 힘을 빌려왔군.”
실력이 뛰어난 흑마법사들은 악마에게 재물을 바침으로써 그 힘을 빌릴 수 있었다.
아기토는 흑마력과 자신의 피를 제물로 악마의 불길을 빌려온 것이다.
“그래! 네 말대로 이건 악마의 힘이다! 지옥의 불길이지!”
녹색 불길은 불길하기 짝이 없었다.
살짝 닿은 것만으로 흙이 녹아내렸다. 용암이 되어 물줄기처럼 흘렀다.
“이것만큼은 너도 해제할 수 없을 거다! 이건 흑마법이 아니라 악마의 힘이니까 말이야!”
아기토가 데미안 학센을 향해 손을 뻗었다.
“가라! 저놈을 불태워 버려!”
악마의 불길이 데미안 학센을 덮쳤다.
마치 불이 아니라 파도가 몰려오는 것 같았다.
‘뭔가를 단단히 착각하고 있군.’
아기토의 생각과 달리 탐욕의 권능은 악마의 힘이라 할지라도 분해할 수 있었다.
데미안 학센이 불길을 향해 권능을 발휘하려는 찰나 이런 생각이 떠올랐다.
‘……꼭 권능을 사용할 필요는 없지.’
흑마법에 권능이라는 힘까지 가지고 있지만 데미안 학센은 원래 검사다.
데스나이트 시절에도 강적을 상대할 때는 항상 검을 들었다.
‘이만한 양의 흑마력이라면 데스나이트 시절의 검법을 사용할 수 있다.’
전생에 데미안 학센은 강자들과 싸우면서 얻은 기술들을 통합시켜서 한 가지 검법을 만들어 냈다.
그 검법에 자신의 바램을 담아서 절혼검(絶魂劍)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절혼검 덕분에 데미안 학센은 ‘신검(神劍)’의 경지에 도달할 수 있었다.
하지만 이번 생에는 절혼검을 버려야 했다. 흑마력을 기반으로 만들어진 검법이기 때문이었다.
‘흑마력이 없는 몸으로는 절혼검을 구사할 수 없다.’
흑마력과 마력은 근본적으로 다르기에 서로를 대신할 수 없다.
그렇다고 절혼검을 사용하기 위해서 흑마력을 모을 생각은 없었다.
흑마력은 죽음과 시체를 통해서만 얻을 수 있다. 흑마법사들이 괜히 끔찍한 범죄를 저지르는 게 아니었다.
데미안 학센은 흑마법사처럼 행동할 생각이 전혀 없었다.
‘궁금하다. 데스나이트가 아닌 인간의 몸으로 절혼검을 어디까지 구현할 수 있을지.’
데미안 학센은 흑마력을 자신의 몸으로 흡수했다.
흑마력은 마치 자기 집에 들어온 것처럼 자연스럽게 융화되었다.
롱소드의 날에서 칠흑 같은 오러가 치솟아 올랐다.
오러를 본 아기토의 얼굴이 굳었다.
“오러? 너…… 설마 흑마법사가 아니라…….”
연기와 불길처럼 타오르고 있던 오러가 칼날을 중심으로 모여들기 시작했다.
이윽고 오러는 완전한 형태를 이루었다. 빛조차 모조리 빨아들일 것처럼 새까만 칼날이 만들어졌다.
오러블레이드(Aurablade).
마스터의 경지에 오른 자들만이 구사할 수 있다는 기예.
생물의 정점이라 불리는 드래곤조차 참살할 수 있는 무적의 병기.
그 절대적인 힘이 데미안 학센의 손에 구현되었다.
“자, 잠깐만!”
데미안 학센이 검을 들어올렸다.
오러블레이드를 중심으로 공기가 왜곡되는 게 보였다.
“머, 멈춰! 하, 항복할 테니까!”
데미안 학센이 검을 휘둘렀다.
새까만 선 하나가 세상을 반으로 나누었다.
선을 중심으로 녹색 불길이 빨려 들어갔다.
어느새 동굴에는 불똥 하나 남지 않았다.
“학! 흐하아악! 사, 사람 살려! 사람 살려어!”
아기토는 몸을 돌려서 달아나려고 했다.
유일한 입구는 데미안 학센이 막고 있음에도 그리 행동했다.
그때, 아기토의 상반신이 미끄러지더니 땅으로 떨어졌다.
당황한 아기토가 뒤를 돌아봤다.
두 다리가 절단된 줄도 모르고 땅 위에 세워져 있었다.
“악! 아악! 아아악!”
아기토는 잘려 나간 허벅지를 붙잡고 비명을 토해 냈다.
“시끄럽다.”
어느새 가까이 다가온 데미안 학센이 아기토의 얼굴을 걷어찼다.
그 바람에 아기토의 비명소리가 뚝 끊어졌다.
“내, 내 다리…… 내 다리가…….”
“충격이 컸나 보군. 그런데 지금 그걸 걱정할 때가 아닐 텐데.”
데미안 학센이 아기토의 목에 롱소드의 날을 댔다. 아기토의 얼굴에 혈색이 사라졌다.
“사, 살려 줘. 주, 죽고 싶지 않아.”
“살고 싶나?”
데미안 학센이 씩 웃으며 말했다.
“그럼 목숨값 대신에 다른 걸 지불하셔야지.”
* * *
“내, 내가 가지고 있는 물건들은 이게 전부야.”
아기토는 데미안 학센의 앞에 물건들을 늘어놓았다.
데미안 학센은 짜증 섞인 눈동자로 물건들을 살펴봤다.
“겨우 이게 전부라고?”
저주계열 흑마법이 적혀 있는 서적이 한 권.
아기토가 착용하고 있던 유물 팔찌가 하나.
그 외엔 금화가 담긴 주머니가 전부였다.
아기토가 검은뱀에게 받아 낸 재료들은 전투 도중에 모조리 파괴되었다.
“유란의 간부라면서? 근데 왜 이렇게 가난해?”
“교, 교단을 피해서 도망치느라…….”
“이 도움 안 되는 자식. 많이 좀 가져왔어야지.”
데미안 학센이 롱소드로 아기토의 머리를 툭툭 두드렸다.
아기토의 얼굴이 시뻘겋게 달아올랐다.
흑마법 서적은 볼 게 없었다. 데미안 학센은 바로 팔찌를 집어들었다.
사실 이 팔찌 하나만 해도 엄청난 가치가 있었다.
“이 팔찌의 정체는 뭐지? 유물인가?”
“그, 그렇다.”
데미안 학센의 예상대로 팔찌는 보통 물건이 아니었다.
“정확한 능력이 뭐지?”
“어, 어떤 기운이든 담아둘 수 있다. 마, 마력이든 흑마력이든 조, 종류는 상관없이. 그, 그리고 은폐 기능이 있어서 저, 절대로 들키지 않는다.”
“확실해?”
“내, 내가 여태까지 살아 있는 게 그 증거지.”
데미안 학센은 만족스러운 얼굴로 팔찌를 살폈다.
기능은 단순했지만 마음에 쏙 들었다.
‘여기에 흑마력을 담아두면 되겠어.’
오늘 입증이 되었다시피 흑마력을 사용하면 과거의 검법을 재현할 수 있었다.
완전한 위력을 발휘할 수는 없지만 비장의 수단으로는 충분했다.
다만, 흑마력은 들통이 나면 교단에 쫓길 만큼 위험한 힘이다.
이 팔찌가 있으면 그런 걱정에서 자유로울 수 있었다.
‘잘만하면 신검(神劍)을 구현할 수도 있겠어.’
데미안 학센은 강자들과 싸운 뒤, 그들의 기술과 경지를 흡수했다.
그것들을 양분으로 삼아서 도달한 경지가 신검이었다.
전생에 도르고를 죽일 수 있었던 것도 신검에 도달한 덕분이었다.
“근데 진짜 여기서 끝이냐? 더 없어?”
“어, 없어. 진짜야! 진짜니까 제발 그 칼 좀 내려놔!”
데미안 학센은 롱소드를 들어올리며 말했다.
“아니야, 있을 거야. 어떻게든 쥐어 짜내 봐.”
“없는 물건을 어떻게 쥐어 짜낼…….”
그때, 아기토의 얼굴에 희망이 번졌다.
아기토는 주머니를 뒤져서 수첩을 내밀었다.
“이게 뭔데?”
“거, 검은뱀의 보스가 내가 원하는 물건을 구입한 내역을 적은 종이야! 여기 적힌 가게들을 찾아가 보면 확인할 수 있을 거야!”
“오?”
데미안 학센은 수첩을 열어서 내부를 확인했다.
재료의 거래 내역이 빼곡하게 적혀 있었다.
“그, 그게 있으면 거래를 입증할 수 있을 거야. 너도 알다시피 그들과의 거래는 중죄잖아? 잘하면 교단과 검은뱀을 엮을 수 있을 거야!”
“그럼 나는 손도 안 대고 검은뱀을 소탕할 수 있겠군.”
“바로 알아듣는 걸 보니까 제법 똑똑한데.”
두 사람은 큰소리로 웃었다. 아기토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이제 날 살려 줄 거지?”
“아니.”
데미안 학센은 롱소드를 휘둘러 아기토의 목을 베었다.
“난 내 가족을 건드린 놈은 용서하지 않아.”
데미안은 아기토의 머리를 집어 들었다. 근처에 있는 적당한 자루에 집어넣었다.
“그리고 입이 무거운 증거품이 필요하거든.”
수첩만 있어서 무슨 소용이겠는가.
진짜로 흑마법사가 얽혔다는 증거를 가져가야지.
그렇다고 아기토를 살려서 데려가면 데미안 학센에 대해서 떠들 위험이 컸다.
“이제 검은뱀 놈들한테 엿을 날리러 가 볼까.”
그리 말하며 데미안 학센은 토굴을 나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