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turn of the Calamity-Class Death Knight RAW novel - Chapter (107)
멸망급 데스나이트가 회귀함 107화
107화 축하연 (1)
축하연 당일.
“여보, 손님들이 오고 있어요.”
학센 부인이 창문 밖을 내다보며 말했다. 그 말에 다른 가족들도 창문으로 모여들었다.
손님들을 태운 마차가 속속들이 스프링 성으로 들어서고 있었다.
그들을 바라보는 가족들의 표정은 영 어두웠다.
“오늘 잘할 수 있겠죠?”
“당연한 소리를 하고 있군. 당신도 잘 알지 않소. 우리가 얼마나 열심히 준비했는지.”
학센 백작이 아내를 위로했다. 하지만 그의 목소리도 떨리기는 마찬가지였다.
학센 가문은 지금까지 이런 커다란 연회를 열어 본 적도, 참석해 본 적도 없었다.
그런 마당에 연회의 주인이 되어서 손님들을 맞이해야 한다니?
부담이 심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후우우…….”
“아벨, 걱정하지 마세요. 제가 도와줄게요.”
긴장하기는 아벨도 마찬가지였다. 그나마 이런 일에 익숙한 올리비아가 아벨을 격려했다.
“심장이 마구 뛰네.”
언제나 나긋나긋하던 루이즈도 오늘만큼은 표정이 굳어 있었다.
그러다 문득, 루이즈는 느긋하다 못해서 나른한 얼굴로 앉아 있는 데미안을 발견했다.
“데미안, 너는 긴장되지 않는 모양이구나?”
“긴장할 필요 있겠습니까. 그냥 사람들 얼굴만 보는 건데.”
데미안이 대수롭지 않게 말했다.
“그 손님들의 평판에 따라서 우리 가문의 명예가 달라지잖니.”
“그거라면 걱정하실 필요 없습니다.”
“응? 그건 왜?”
“우리 가족들에 대해서 안 좋게 말하는 놈들이 있으면 그 자리에서 제가 직접 버르장머리를 고쳐놓겠습니다.”
“아하핫, 농담도 참.”
루이즈는 꺄르륵 웃으며 손을 흔들었다.
하지만 데미안의 눈빛이 한없이 진지한 것을 보고 웃음을 멈췄다.
“……진심으로 하는 소리구나?”
“당연하죠. 그러니까 누님께서도 걱정하지 말고 편하게 즐기세요.”
루이즈는 어이없다는 얼굴로 데미안을 바라봤다. 그러다 이내 실소를 터트렸다.
“그래, 우리 동생만 믿을게.”
* * *
서부의 귀족들은 속속들이 가르가리 평야로 모여들었다.
개인 마차를 타고 오는 이들도 있었지만 긴밀한 관계를 맺고 있는 귀족들은 함께 마차에 탑승했다.
“드디어 오늘이군요. 학센 자작가가 얼마나 한심한 모습을 보일지 기대가 됩니다.”
“그거야 뻔하지 않습니까. 학센 자작가의 역량이야, 별 볼 일 없을 테니까요.”
이들은 ‘고원한 사나이들’이라는 모임에 속해 있는 귀족들이었다.
‘고원한 사나이들’은 서부 귀족 중 교양과 학식이 풍부한 자들만 가입할 수 있는 사교회였다.
학센 가문이 백작 가문이 되었음에도 이들은 굳이 자작가라고 불렀다.
학센 백작가를 절대로 인정하지 않겠다는 나름의 의사표현이었다.
“그런데 왜 학센 영지가 아니라 가르가리 평야로 오라고 했을까요?”
“그러게 말입니다. 저도 그곳에서 축하연을 열 줄 알았습니다.”
“가르가리 평야에 뭐가 있다고 이곳에서 축하연을 연답니까?”
귀족들은 다들 의아해했다. 그중 한 명이 곰곰이 생각하다가 중얼거렸다.
“설마…… 에이, 아니겠지.”
“응? 사우스오던 공, 뭔가 알고 계시는 거라도 있습니까?”
“가르가리 평야 근처에 왕가에서 지은 성이 있다고 듣기는 했는데…… 아닐 겁니다.”
‘고원한 사나이들’의 회원들이 대화를 나누는 동안 마차는 가르가리 평야를 가로질렀다.
평야를 내다본 귀족들은 다들 감탄할 수밖에 없었다.
“소문으로 많이 들었지만 이렇게 넓을 줄은 몰랐습니다.”
“평야 한가운데를 강이 관통하고 있군요. 농수 걱정은 없겠군요.”
“이 땅이 그렇게 기름지다죠? 뭘 심어도 풍년이라던데요.”
가르가리 평야를 바라보며 ‘고원한 사나이들’의 회원들은 부러움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
이곳은 서부에서 가장 농사가 잘되기로 유명한 땅이었다.
모두가 군침을 흘리고 있지만 왕가의 땅이라 흑심을 품을 수조차 없던 곳이었다.
그런 땅을 학센 가문이 전부 얻게 될 줄은 몰랐다.
“학센 자작가 따위가 분수에 넘치게 좋은 땅을 받았군요.”
“제 말이 그 말입니다.”
회원들은 애써 부러움을 감추며, 겉으론 그들을 까 내리기 바빴다.
그러면서 오늘은 더 이상 학센 가문을 부러워할 일이 생기지 않으리라 생각했다.
하지만 스프링 성에 도착했을 때, 귀족들은 생각을 바꿀 수밖에 없었다.
“세상에…… 이렇게 아름다운 성이라니.”
“이곳에서 축하연을 연단 말입니까?”
귀족들의 입에서 자신들도 모르게 경탄의 말이 나오고 있었다.
가르가리 평야는 서부 지역에서도 외진 곳에 있었다.
그래서 대부분의 귀족은 스프링 성을 직접 본 적이 없었다.
성벽과 첨탑은 온통 새하얀 벽돌로 지어져 있었다. 값이 무척 비싸다는 백면석인 듯했다.
지붕은 그와 대비되는 검은색이었다. 검은 석재는 희귀한 점토를 구울 때만 만들어지는 것으로 백면석 못지않게 귀하다고 알려져 있었다.
말 그대로 그림처럼 아름다운 성이었다.
“학센 자작가가 어떻게 이런 성을…….”
마차에서 내리는 내내 귀족들은 경탄을 멈출 수 없었다.
스프링 성은 밖에서 봤을 때도 훌륭했지만, 안으로 들어와서 보니 아름다움은 절정을 이루고 있었다.
특히 성문을 지키고 있는 두 개의 석상이 예술적이었는데, 보물로 지정해도 무방할 듯한 아름다움을 가지고 있었다.
마차에서 내린 귀족들은 시종의 안내를 받으며 연회장으로 향했다.
“이런 장소가 있어서 축하연을 열겠다고 나선 것이었군요.”
“하긴, 제정신이라면 원래 설단 저택을 연회 장소로 정하지는 않겠죠.”
‘고원한 사나이들’의 회원들은 학센 가문을 무시하는 말을 계속 내뱉었다.
부러움을 내색하지 않기 위한 나름의 방법이었다.
“중요한 건 장소가 아니라 음식과 음악 아니겠습니까.”
“촌뜨기가 제대로 된 사람들을 고용했는지 모르겠습니다.”
회원들은 껄껄 웃으며 연회장 안으로 들어섰다. 그리고 또다시 경악할 수밖에 없었다.
연회장으로 들어오자마자 웅장한 음악이 그들을 반겼다. 스무 명이 넘는 인원으로 구성된 악단이 음악을 연주하고 있었다.
많은 인원이 연주하고 있음에도 실수하는 이가 없고, 음색이 굉장히 부드러웠으며 상황에 알맞기까지 했다. 실력 있는 악단이라는 증거였다.
“크, 크흠…… 제법 괜찮은 악단을 고용했군요.”
“그, 그러게 말입니다.”
그때, 연회장 안으로 시종들이 들어오면서 분주하게 음식들을 놓기 시작했다.
연회용 음식으로 한 손으로 집어먹기 편하게 만들어진 것들이었다.
갓 만들어졌는지 모든 음식에서 먹음직스런 냄새가 풍겨오고 있었다.
킁킁.
냄새를 맡는 순간, 귀족들은 극심한 허기를 느꼈다.
식욕을 자극하다 못해 협박하는 게 아닐까 싶을 정도로 좋은 냄새였다.
음악과 비슷하게 음식도 냄새만으로 만든 사람의 솜씨를 알 수 있었다.
연회장의 음식들은 모두 일류 요리사가 만든 것이 분명했다.
“으, 으으음.”
“크흠! 크흐흐음.”
‘고원한 사나이들’의 회원들은 갑자기 조용해졌다. 학센 가문을 헐뜯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나름대로 귀족으로서 많은 연회를 겪어 왔기에 느낄 수 있었다.
오늘 준비된 연회의 수준이 보통이 아니라는 것을 말이다.
분명 막대한 비용과 최고의 실력자들을 끌어모아서 준비했으리라.
“손님들께서 오셨구려.”
그때, 목소리가 들려왔다. 귀족들은 고개를 들었다. 저 앞에서 학센 가문의 사람들이 다가오고 있었다.
“허어…….”
“이럴 수가…….”
그들을 본 순간, 귀족들을 경탄할 수밖에 없었다.
이들은 이미 학센 가문에 대해서 조사를 마친 상황이었다. 그래서 학센 가문의 사람들이 다들 외모가 뛰어나다는 사실도 알고 있었다.
다만, 과장이 조금 섞였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게 아니더라도 뛰어나 봤자 얼마나 뛰어나겠냐는 생각도 있었다.
하지만 막상 직접 본, 학센 가문의 사람들은 이들의 예상을 뛰어넘고 있었다.
“장녀가 가장 외모가 뛰어나다더니…… 저렇게 아름다운데 어째서 여태까지 알려지지 않았나 모르겠습니다.”
“저 청년이 차남인 아벨인 모양입니다. 학센 가문의 남자들 중에서 가장 잘생겼다고 들었습니다.”
“저쪽 숙녀는 올리비아 코퍼헤드…… 아니, 이제는 올리비아 학센이죠. 서부의 꽃이라 불렸다던데. 과연 대단합니다.”
안 그래도 다들 외모가 뛰어난데 입고 있는 옷들도 보통이 아니었다.
회원들은 저마다 수근거렸다.
모두가 뛰어났지만 그중에서도 가장 이목을 끌고 있는 사람은 데미안 학센이었다.
학센 가문의 구성원답게 데미안 학센 역시 상당한 미남이었다.
하지만 귀족들이 압도당하고 있는 것은 외모 때문만은 아니었다.
나른한 표정.
하지만 정체를 알 수 없는 위압감이 느껴지고 있었다.
마치 절대자를 마주하고 있는 듯한 착각까지 들 정도였다.
“본인이 테오도르 학센이오. 축하연에 참가해 줘서 정말 감사하오.”
그리 말하며 학센 자작은 ‘고원한 사나이들’의 귀족들과 한 번씩 악수를 했다.
“변변찮은 연회지만 다들 즐기다 갔으면 하오.”
* * *
그 뒤로도 손님들은 계속 도착했다.
“…….”
“…….”
‘고원한 사나이들’의 귀족 회원들은 연회를 좀처럼 즐기지 못했다. 말없이 구석에 앉아 있을 뿐이었다.
학센 백작가가 축하연을 제대로 준비했을 리 없으니 실컷 비웃어 주겠다는 그들의 계획은 시작부터 어긋나고 말았다.
축하연은 모든 것이 완벽함, 그 이상이었다. 트집을 잡을 만한 구석이 없었다.
그들이 촌뜨기라 깔봤던 학센 가문은 이미 훌륭한 백작가였다.
“……다들 이대로 가만히 있을 생각입니까?”
회원 중 한 사람이 말했다. 모두의 시선이 그에게 집중되었다.
“이대로 학센 가문을 인정할 생각이냔 말입니다.”
귀족이 강한 어조로 말했다. 하지만 ‘고원한 사나이들’의 회원들은 시선을 피할 뿐이었다.
다들 이미 전의까지 상실한 것이다.
“……아직 희망을 잃기는 이릅니다.”
처음에 말을 꺼냈던 회원이 비장한 표정을 지었다.
“뭔가 대책이라도 있습니까?”
“대책이랄 건 없지만…… 사전에 들은 정보가 하나 있습니다.”
그 말에 귀족들이 모여들었다. 귀를 쫑긋 세우고 다음에 나올 말을 기다렸다.
“이번 연회에 그분께서 참가하신다고 합니다.”
“그분?”
“그분이 누구요?”
“토피칸 공 말입니다.”
이름이 나온 순간, 귀족들의 얼굴이 순식간에 밝아졌다.
토피칸 자작.
토피칸 자작가의 가주로서 대대로 서부에 큰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는 인물이었다.
토피칸 가문은 자작가였으나 대단히 넓은 영지를 소유하고 있었다. 그만큼 막대한 재산을 보유하고 가신들까지 거느리고 있어, 신분 이상의 영향력을 갖춘 가문이란 건 공공연한 사실이었다.
“토피칸 공께서는 학센 백작가를 가만 놔두지 않겠다고 단단히 벼르고 계십니다.”
이렇게 강대한 세력을 소유했음에도 토피칸 자작가는 대귀족이라 불리지 못했다.
바로 코퍼헤드 백작가 때문이었다.
코퍼헤드 백작가가 떡하니 버티고 있었기에 토피칸 자작가는 대귀족의 지위는커녕 백작위조차 얻지 못했다.
그러던 도중, 코퍼헤드 백작가에 큰 변란이 생기는 바람에 세력이 크게 약화되었다.
토피칸 자작으로서는 놓칠 수 없는 기회였다. 이번에야말로 코퍼헤드 백작가를 억누르고, 대귀족이 될 계획을 세우고 있었다.
그러던 찰나에 학센 자작가가 대뜸 백작위에 올라 버렸다.
토피칸 자작으로서는 뚜껑이 열릴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그분께서 오시면 학센 백작가도 더 이상 여유를 부리지 못할 것입니다!”
그때였다.
갑자기 연회장에 웅성거리는 소리가 퍼지기 시작했다.
‘고원한 사나이들’은 소리가 나는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곧이어 회원들의 표정이 모두 밝아졌다.
연회장 안으로 한 사내가 여러 명의 귀족을 대동한 채 들어오고 있었다.
잔뜩 구겨져 있는 미간.
쭉 찢어진 두 눈. 굳게 다물어진 입가. 반쯤 벗겨진 머리.
서부의 영원한 2인자라 불리는 토피칸 자작이었다.
“학센 자작은 어디에 있지?”
연회장 안으로 들어온 토피칸 자작이 목소리를 높여서 말했다. 그러자 멀리서 학센 백작이 걸어왔다.
“토피칸 공, 방문을 환영합니다.”
학센 백작의 말에 토피칸 자작이 입꼬리를 비틀었다.
“내 영역에 설치고 있는 주제에 뻔뻔하군.”
“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알아들었으면서 모르는 척하지 마라. 짜증 나니까 말이다.”
토피칸 자작의 당당한 태도에 ‘고원한 사나이들’의 귀족들은 속으로 환호성을 질렀다.
학센 자작을 몰아붙이는 저 모습이야말로 이들이 바라던 것이었다.
“나는 연회를 즐길 생각으로 온 게 아니다. 여기 있는 놈들에게 경고를 하려고 왔다.”
토피칸 자작이 연회장의 귀족들을 돌아보며 소리쳤다.
“생각을 잘하는 게 좋을 거다. 나와 학센 자작, 둘 중에 어디에 붙을지 말이야!”
* * *
토피칸 자작의 태도에 아벨은 분노할 수밖에 없었다.
다짜고짜 찾아와서 분위기를 망치면서 하는 소리가 저것이라니.
게다가 꼬박꼬박 아버지를 학센 자작이라 부르는 것도 마음에 들지 않았다.
마치 학센 자작가가 백작가가 된 것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것처럼 들렸다.
하지만 아벨은 분노를 잠시 묻어 두기로 했다. 지금 자신은 폭탄을 제어해야 했다.
“형님! 나서시면 안 됩니다! 토피칸 자작은 서부에서 굉장히 영향력 있는…….”
그러나 아벨은 곧 깨달았다. 데미안 학센이 너무나도 평온한 표정을 짓고 있는 것을 말이다.
“형님?”
“왜 그러냐?”
“화, 화 안 나십니까?”
“당연한 걸 묻고 있구나. 당장 저 자식의 상판을 갈아 버린 다음에 토피칸 자작가를 박살 내고 싶구나.”
얼굴은 굉장히 평화로운데 하는 말은 살벌했다.
“그, 그런데 왜 가만히 계시는지…….”
“굳이 내가 나설 필요까지도 없어서 말야. 슬슬 올 때가 되었거든.”
“예?”
아벨이 되물었을 때였다. 토피칸 자작이 다시 목소리를 높였다.
“난 빈말 따위는 하지 않는다! 뇌리에 똑똑히 새겨 넣어라! 나는 학센 자작가와 전쟁도 불사할…….”
“학센 공! 늦어서 미안하오!”
그때, 누군가 토피칸 자작의 말을 끊더니, 학센 백작에게 다가와서 두 손을 맞잡았다.
“이렇게 얼굴을 직접 보는 것은 처음이군! 하여간 백작위로 승격된 것은 정말 축하하오!”
토피칸 자작이 인상을 찌푸렸다. 남성의 어깨를 움켜잡으며 소리쳤다.
“지금 이 몸이 말하고 있는 게 보이지 않는 게냐!”
토피칸 자작이 남성의 어깨를 확 잡아당겼다. 그리고 남성의 얼굴을 본 순간, 토피칸 자작은 그 자리에서 얼어붙고 말았다.
“고, 고고고, 고고고고고고!”
좀처럼 말이 나오지 않았다. 토피칸 자작은 마른침을 삼킨 뒤에야 제대로 된 말을 내뱉을 수 있었다.
“공작 각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