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turn of the Calamity-Class Death Knight RAW novel - Chapter (122)
멸망급 데스나이트가 회귀함 122화(122/175)
멸망급 데스나이트가 회귀함 122화
122화 원수 (4)
‘불사르는 자’와 ‘눈부신 고통’은 근처의 건물을 골라잡았다.
다행히 대부분의 건물은 멀쩡했기에 조금만 정비하면 금방 다시 사용할 수 있었다.
“…….”
데미안은 복도에 선 채 창밖을 내다보고 있었다. 얼굴은 무표정했으나 내면은 그렇지 못했다.
‘아까는 너무 흥분했다.’
흑마법사와 연관되기만 하면 평정심을 유지할 수가 없었다.
‘불사르는 자’에서 넘어가 줘서 다행이지, 잘못했으면 큰 갈등으로 번질 뻔했다.
‘난 회귀한 이후에도 계속 그놈들한테 묶여 있군.’
이래서 하루 빨리 강해지려는 것이다. 도르고를 죽여야 데미안은 비로소 평온을 되찾을 수 있을 테니까.
“데미안 경, 여기 계셨습니까.”
뒤에서 소리가 들려왔다. 아그네스가 김이 모락모락 올라오는 머그잔을 들고 있었다.
“요기 좀 하시라고 끓여 왔습니다. 곡물가루를 물에 넣고 끓인 죽입니다.”
데미안은 감사를 표하며 머그잔을 받았다. 죽을 한 모금 마셨다. 고소한 맛이 입 안 가득 퍼졌다.
아그네스도 데미안의 옆에 와서 섰다. 데미안처럼 머그잔을 홀짝였다.
“이제 진정이 좀 되신 겁니까?”
머그잔이 빌 때쯤, 아그네스가 데미안에게 말했다.
“예전부터 느꼈지만 데미안 경은 흑마법사를 크게 증오하고 계신 것 같습니다.”
“이 세상에 그 오물들을 증오하지 않는 자가 있겠습니까.”
데미안이 농담을 섞어서 말했다. 하지만 아그네스의 표정은 영 펴지지 않았다.
“그건 그렇지만…… 데미안 경은 그것과는 조금 다른 것 같습니다.”
“무엇이 다르다는 말씀이십니까?”
“그게…….”
아그네스가 말꼬리를 흐렸다. 적당한 문장을 만들기 위해서 고민 중인 듯했다.
그때, 데미안의 감각에 무언가가 걸려들었다. 데미안은 창문 밖을 가만히 쳐다봤다.
“아그네스 경.”
“예?”
“습격입니다. 가서 성기사들을 깨우십시오.”
데미안이 창문을 열고 밖으로 뛰쳐나갔다.
그 순간, 정면에서 검은 탄환들이 무수히 쏟아졌다.
데미안은 여명을 뽑아들고 마력을 불어넣었다.
푸른 오러가 순식간에 여명을 물들였다. 그 속도에 데미안은 감탄할 수밖에 없었다.
이전에 사용했던 하급 성검도 뛰어난 마력전달률을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그 검도 여명에 비하면 거북이 수준이었다.
데미안이 여명을 휘둘렀다. 오러가 흩뿌려지며 탄환들을 모조리 지워 버렸다.
“멋지군,”
데미안은 여명을 내려다보며 말했다. 여명이 몸을 떨었다.
지이이잉!
마치 그걸 이제 알았냐고 항의하는 듯했다.
여명을 조금 더 칭찬해 주고 싶었지만 그럴 상황이 아니었다.
데미안은 정면을 쳐다봤다. 로브를 뒤집어 쓴 무언가가 데미안을 바라보고 있었다.
정체를 알아볼 수는 없었다. 하지만 밖으로 튀어나와 있는 손에 흑마력이 응어리져 있었다.
흑마법사라는 증거였다.
“습격입니다! 빨리 일어나십시오!
“뭐? 습격이라고?”
“내 무기, 무기 어디에 있어!”
건물이 내부가 소란스러워졌다. 곧이어 두 사람이 데미안의 옆에 내려앉았다.
“갑자기 이게 무슨 일이야.”
“흑마법사로군요. 꽤 위계가 높아 보입니다.”
파라몬과 세르보였다.
“본부를 습격한 그놈들인가?”
“성기사를 기습할 흑마법사들은 그리 많지 않죠. 아마 맞을 것 같습니다.”
“2인조라고 들었는데. 한 명이 보이질 않는데.”
지부를 습격한 흉수는 두 명이었다.
하지만 흑마법사만 보일 뿐, 암흑기사가 보이지 않았다.
“숨어서 기회를 노리고 있는 것 같습니다.”
“가능성이 있군. 마법사를 전위에 내세워서 방심시키는 전술도 있으니까.”
본래 마법사나 흑마법사는 후위를 담당하는 게 원칙이었다.
하지만 간혹, 그런 상식을 역전시킴으로써 빈틈을 노리는 자들도 있었다.
“어리석기는. 1급 성기사가 두 명이나 있는데 그딴 전략을 사용해?”
그런 전략은 상대를 봐 가면서 사용해야 하는 법이었다.
“흉계를 사용하지 못하도록 저놈부터 죽인다.”
“찬성입니다.”
파라몬과 세르보가 신성력을 일으켰다. 나딘과 대립했을 때보다 더욱 흉폭했다.
나딘을 상대로는 힘과 감정을 조절할 필요가 있었지만 적을 상대로는 그럴 필요가 없었다.
두 사람이 흑마법사를 향해 돌진했다. 마치 섬광처럼 보일 정도로 빠른 속도였다.
파라몬이 머리를 향해서 주먹을 내질렀다. 세르보도 같은 지점을 노리고 메이스를 휘둘렀다.
그 찰나였다.
갑자기 로브에서 한 쌍의 손이 더 튀어나왔다. 양손에는 쌍검이 쥐어져 있었다.
“뭣?”
“엇?”
갑작스러운 상황에 두 사람은 미처 대응하지 못했다.
아니, 대응하려 해도 소용없었다. 거리가 너무 가까웠다.
쌍검을 쥔 손이 움직였다. 쌍검의 표면에 시커먼 오러가 덧씌워졌다.
검은 참격이 두 사람의 몸을 절단했다.
* * *
그 직전, 데미안이 두 사람의 목덜미를 잡아당겼다.
두 사람의 몸이 뒤로 확 빠졌다. 간발의 차이로 칼날이 배를 스치고 지나갔다.
두 사람의 등을 타고 식은땀이 흘렀다. 데미안이 아니었다면 분명히 목숨을 잃었을 것이다.
하지만 두 사람의 머릿속에는 다행이라는 생각보다 의문만이 떠올랐다.
대체 사람의 몸에 팔이 한 쌍이 더 있는 거지?
“에이, 쉽게 처리할 수 있었는데.”
“여보, 저 녀석 때문이에요. 저놈이 성기사들을 채어 가는 바람에 놓쳤어요.”
흑마법사에게서 두 개의 목소리가 들렸다. 남녀의 목소리였다.
흑마법사가 로브를 벗어던지자 기괴한 모습이 나타났다.
어깨를 중심으로 팔이 두 개씩 달려 있었다.
몸통 곳곳에 수술 자국이 가득했다. 주먹만 한 크기의 검은 마석이 가슴 한가운데에 박혀 있었다.
가장 기괴한 것은 머리였다. 남자와 여자의 얼굴이 앞뒤로 붙어 있었던 것이었다.
충격적인 모습에 파라몬과 세르보는 경악한 얼굴로 행거 부부를 쳐다봤다.
반면 데미안은 조금도 동요하지 않았다. 이미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행거 부부는 인간이 아니었다.
정확히 말하자면 한때는 인간이었지만 도르고에 의해서 개조되어 버린 실험체였다.
본래 행거 부부는 두 명이 아니라 네 명이었다. 쌍둥이들로 이루어진 부부였다.
쌍둥이 형제는 암흑기사였으며 쌍둥이 자매는 최고위 흑마법사였다. 네 명은 서로 뭉쳐 다니며 악명을 떨쳤다.
그들에게 주목한 사람이 바로 도르고였다. 도르고는 당시에 어떤 실험을 진행 중이었고 그 일환으로 네 명을 데려다가 실험 재료로 사용했다.
그리하여 탄생한 것이 바로 눈앞에 보이는 이형의 괴물이었다.
“아, 누가 끝낼지 ‘형’이랑 내기했는데. 이러다 우리가 지는 거 아니야?”
“저도 ‘언니’한테 호언장담했는데 만약 늦게 끝나면…… 언니가 얼마나 놀릴지 생각하기도 싫어요!”
말하는 것을 들어보면 여기 있는 행거 부부가 ‘동생들 쪽’인 듯했다.
“내기에서 지는 건 싫으니까 힘 좀 내볼까.”
“냉큼 죽이고 돌아가기로 해요!”
두 사람의 대화에 파라몬과 세르보는 어이없어했다.
“우리를 너무 우습게 보는데?”
“머리는 두 개인데 별로 똑똑하지는 않은 모양입니다.”
파라몬과 세르보가 적의를 불태웠다.
방금 전에는 방심하다 당할 뻔했지만 이제는 어림도 없었다.
게다가 이곳에 있는 건 두 사람뿐만이 아니었다.
건물에서 남은 성기사들이 우르르 튀어나왔다. 두 종파의 성기사들이 행거 부부를 둘러쌌다.
1급 성기사가 두 명에 2급 성기사가 무려 6명이었다. 여기에 미들클래스인 데미안 학센도 있었다.
명백하게 행거 부부의 열세였다. 그러나 행거 부부의 태도는 시종일관 여유로웠다.
“놈들도 다 모인 것 같은데.”
“발동해도 되겠죠?”
별안간 행거 부부의 가슴에 박힌 마석이 빛나기 시작했다.
마석을 중심으로 검은선이 뻗어나가더니, 순식간에 피부 전체가 모조리 검은선에 뒤덮였다.
“……막아!”
파라몬이 다급하게 소리쳤다. 성기사로 쌓여 온 경험이 위험하다는 것을 경고한 것이다.
하지만 이미 늦었다.
행거 부부가 입을 크게 벌리자 보라색 연기가 뿜어져 나왔다.
성기사들이 피할 틈도 없이 사방으로 연기가 퍼져 나갔다.
* * *
성기사들은 보라색 연기에 닿자마자 쓰러졌다. 숨을 참아도 소용이 없었고, 닿기만 해도 기절을 유발하는 연기였다.
기절한 사람들 중에는 데미안 학센도 있었다.
정신을 차렸을 때, 데미안은 꿈속으로 끌려와 있었다.
어둠만이 가득한 곳이었다. 천장이 얼마나 높은지. 벽은 있는지. 어떤 것도 알아볼 수 없었다.
‘하여간 귀찮은 놈들이야. 이런 마법을 즉발시킬 수 있다니.’
도르고가 행거 부부를 상대로 진행했던 시험이란 바로 사람의 몸을 마도구로 만드는 것이었다.
행거 부부는 몸 전체가 마도구나 다름이 없었다. 악몽살이라는 흑마법을 발동하기 위한 마도구 말이다.
그래서 행거 부부가 발동하는 악몽살은 시전시간이 필요 없었다.
물론 데미안의 지식과 실력이라면 악몽살이 발동되자마자 해제시킬 수 있었다.
하지만 그랬다가는 데미안이 흑마법을 사용할 수 있다는 사실을 성기사들에게 들키게 된다.
하여 데미안도 우선은 순순히 악몽살에 당해 줄 수밖에 없었다.
‘어찌 보면 잘됐네. 보는 눈이 없어졌으니까.’
악몽살은 1급 성기사라 해도 예외 없이 걸려드는 흑마법이었다. 다름 아닌 아크리치 도르고가 직접 만들어 냈기 때문이다.
대신 1급 성기사는 악몽살만으로 죽일 수 없었다. 정신적인 피해도 줄 수 없었다. 악몽의 지속시간도 상대적으로 짧았다.
2급 성기사의 경우에도 마찬가지였다. 1급 성기사보다는 정신적인 피해를 심하게 입겠지만 목숨을 잃을 정도는 아니었다.
성기사들이 악몽을 꾸는 동안 데미안은 행거 부부를 제압한 다음에 도르고에 대해서 추궁할 생각이었다. 그리고 복수를 마무리할 생각이었다.
그때였다.
갑자기 바람을 가르는 소리가 들려왔다. 저 멀리서 수백 개의 화살이 날아왔다.
화살들이 데미안의 몸을 꿰뚫었다. 전신이 고슴도치처럼 변했다.
하지만 데미안은 조금도 고통스러워하지 않았다.
‘이곳은 나의 공간이다.’
악몽살이 끔찍한 광경을 보여 준다지만 결국 꿈의 주인은 자기 자신이었다. 정신만 똑바로 차리면 아무 영향도 없었다.
곧이어 땅에 불길이 치솟았다. 다음으로 냉기를 머금은 바람이 불어왔다.
하지만 그 어떤 것도 데미안에게 고통을 주지 못했다.
‘더 볼 것도 없군.’
데미안이 악몽살을 해제하려던 찰나였다.
갑자기 풍경이 바뀌었다.
어둠으로 가득 찬 공간은 온데간데없었다. 대신 들판이 나타났다.
본래 푸른 잔디가 깔려 있었을 들판이 지금은 검붉은 피로 뒤덮여 있었다. 곳곳에 시체가 놓여 있었다.
데미안은 그 자리에서 얼어붙었다.
단번에 알아 본 것이다. 이 들판이 어디인지, 지금부터 이곳에서 무슨 일이 벌어질지.
“데미안!”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데미안은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바로 앞에 아버지가 있었다.
지금보다 훨씬 늙은 모습으로 데미안을 바라보고 있었다.
“데미안! 왜 네가 아크리치와 함께 있는 것이냐! 대체 그 모습은 뭐고!”
그 말에 데미안은 시선을 아래로 내렸다.
어느새 데미안은 검은 갑옷을 입고 있었다. 덩치가 커진 상태로 아버지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아버지가 천천히 데미안에게 다가왔다.
데미안은 오지 말라고 소리쳤다. 하지만 말이 나오지 않았다.
어느새 입은 단단히 닫혀 있었다.
“그동안 무슨 일이…… 컥!”
아버지의 움직임이 우뚝 멎었다. 대검이 아버지의 복부를 뚫고 등까지 튀어나와 있었다.
데미안은 대검의 날을 따라서 천천히 시선을 내렸다. 그 끝에는 자신의 손이 있었다.
“데……미안…….”
아버지의 고개가 천천히 아래로 향했다. 눈동자에서 생기가 사라졌다.
‘아…….’
목소리가 밖으로 나오질 않았다.
‘아아…….’
입조차 열 수 없었다. 괴로움을 표출할 수조차 없었다.
이 몸은 자신의 것이 아니었으니까. 자신은 이곳에 갇힌 채 무력하게 지켜볼 수밖에 없었으니까.
‘아아아……!’
소리 없는 절규와 함께 머릿속이 새하얗게 물들었다.
* * *
보라색 연기를 흡입한 성기사들이 모조리 쓰러졌다.
그들을 내려다보며 행거 부부는 낮게 웃었다.
“멍청하고, 어리석고, 하찮은 것들.”
그분께서 만들어 낸 흑마법은 이토록 위대했다. 지금까지 이 마법을 견뎌낸 사람은 단 한 명도 없었다.
행거 부부는 몸을 파르르 떨었다. 그분만 생각하면 가슴 속 깊은 곳에서 존경심이 우러나왔다.
“그럼 한 명씩 목을 걸어 볼까?”
부부는 네 개의 손을 움직여 허리춤에 있는 새끼줄을 꺼냈다.
줄은 충분히 길어서 여기 있는 성기사들의 목을 모조리 매달 수 있을 것 같았다.
“우선 우리를 방해한 저 재수 없는 남자부터 죽이죠.”
“아주 좋은 생각이야. 저놈은 특별대우를 해 줘야지.”
행거 부부가 데미안 학센에게 가까이 다가갔다. 목을 잡고 들어 올린 다음 새끼줄을 걸기 시작했다.
그때였다.
데미안 학센의 눈동자가 천천히 열렸다. 행거 부부는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뭐, 어떻게 벌써 일어난…….”
“아주 불쾌한 꿈을 꾸었다.”
별안간 남성이 입을 열었다. 목이 붙잡혀 있는 사람이라고는 믿기 힘들 정도로 나른한 말투였다.
“내 손으로 아버지를 죽이는 꿈이었지. 두 번 다시 보고 싶지 않은 광경이었어.”
데미안이 천천히 행거 부부를 쳐다봤다.
“이래서 나는 너희들이 싫다. 너희들은 쥐새끼랑 같아. 보이면 기분이 더럽고, 짜증이 나지. 그렇다고 눈에 보이지 않으면 질병과 오물을 퍼트리고 다녀.”
그 말에 행거 부부가 인상을 썼다.
“이 멍청이가 지금 뭐라고 지껄이는 거야?”
“여보, 그냥 턱을 부셔 버리죠?”
행거 부부가 그 즉시 데미안의 턱을 움켜잡았다. 이대로 턱을 비틀어 버릴 생각이었다.
그 순간, 데미안 학센이 행거 부부의 손목을 움켜잡았다. 손목을 향해 마력을 흘려보냈다.
팔뚝의 근육이 비틀렸다. 혈액과 흑마력이 동시에 들끓었다.
펑.
작은 소리와 함께 팔뚝의 근육이 터졌다. 피와 살점이 사방으로 튀었다.
“크악!”
“아아악!”
두 부부는 비명을 내지르며 데미안의 목을 놓았다. 뼈만 남은 팔뚝을 붙잡고 괴성을 질러댔다.
데미안이 여명을 빼들었다. 시퍼런 오러가 칼날을 뒤덮었다.
“부탁이니 오래 버텨다오.”
데미안의 얼굴이 흉신처럼 일그러졌고 확장된 동공에선 살의가 흘러넘쳤다.
지독한 살기에 숲에 있던 생명체들이 모조리 숨을 죽였다. 벌레가 우는 소리조차 들려오지 않았다.
“너무 쉽게 죽으면 이 더러운 기분이 해소되지 않을 것 같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