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turn of the Calamity-Class Death Knight RAW novel - Chapter (128)
멸망급 데스나이트가 회귀함 128화(128/175)
멸망급 데스나이트가 회귀함 128화
128화 달갑지 않은 손님 (3)
그렇다고 당장 발라드 위고의 뒷조사에 돌입할 수는 없었다.
그는 휴가차 학센 백작가를 방문해 며칠 동안 이곳에 머물 예정이었다.
발라드 위고가 학센 백작가에서 시간을 보내는 동안, 데미안도 휴식을 취했다. 가족들에게 교단의 비고에서 얻은 팔찌를 나눠 주는 것도 잊지 않았다.
“며칠 동안 정말 감사했습니다.”
떠나는 날이 되자 발라드 위고는 백작가의 사람들에게 고개를 숙이며 감사를 표했다.
“우리들 사이에 감사할 필요가 있나.”
“맞아. 이제 곧 한 가족이 될 사이잖니?”
가족들은 웃는 얼굴로 발라드 위고를 배웅했다.
발라드가 떠나자마자 데미안과 루이즈는 곧바로 행동에 착수했다.
가족들에게는 수도의 공연을 구경하러 간다는 핑계를 대고, 발라드를 뒤쫓아 오세안 도시로 향했다.
* * *
오세안 도시에 도착하자 바다냄새를 듬뿍 머금은 바람이 두 사람을 맞이했다.
회귀를 한 이후 데미안이 바다를 보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하지만 아쉽게도 바다를 감상할 여유 따위는 없었다. 발라드가 성 안으로 들어가고 있었기 때문이다.
두 사람은 발라드 위고가 알아채지 못하도록 조심스럽게 뒤를 밟았다.
“아! 발라드 씨!”
발라드가 대로를 걷고 있을 때였다.
길거리에서 꽃을 팔고 있던 소녀가 반갑다는 얼굴로 달려왔다.
“벌써 휴가가 끝나신 거예요? 학센 자작가는 잘 다녀오셨구요?”
“플루 양, 오랜만이에요. 아, 그리고 이제 학센 자작가가 아니라 백작가예요.”
“제가 깜빡했네요!”
소녀는 발라드를 붙잡고 한참 재잘거렸다. 발라드는 귀찮은 기색도 없이 소녀의 수다를 모두 받아 줬다.
“이만 가 볼게요. 바로 출근해야 하거든요.”
“아직 궁금한 게 많은데…….”
“다음에 또 이야기해요.”
발라드가 그리 말하며 자리를 떠나자, 꽃집 소녀는 아쉽다는 표정을 지었다.
발라드를 붙잡은 사람은 꽃집 소녀뿐만이 아니었다.
“어머, 발라드 씨!”
잡화점의 젊은 여주인이 발라드를 알아보고 말했다.
“요즘 왜 이렇게 우리 가게에 안 찾아오는 거예요.”
“저번에 사 간 양초가 아직 남아 있어서요.”
“금방 닳아서 없어지는 걸로 줄 걸 그랬네. 그래야 발라드 씨 얼굴을 자주 보지.”
이게 끝이 아니었다.
이 뒤로도 비슷한 일이 두세 번 더 반복되었다. 그 광경을 지켜보던 데미안은 떨떠름한 기분이 들었다.
“누님의 말씀대로…… 정말 인기가 많네요?”
“그럼 여태까지 내 말을 안 믿은 거야?”
루이즈가 짐짓 화난 표정을 지었다.
“서부에 있을 때, 발라드한테 매달리는 여자가 얼마나 많았는지 알아? 내가 치열하게 싸우지 않았으면 발라드를 빼앗겼을 거야. 그때만 생각하면 아직도 악몽을 꾼다니까.”
루이즈의 말에 데미안은 큰 혼란을 느꼈다.
‘누님이 저놈한테 매달렸단 말이야?’
데미안으로서는 믿기 힘든, 아니 믿기 싫은 현실이었다.
이렇게 잘난 누님이 저런 남자한테 목매였다니 말이다.
“이래서 발라드가 이 도시로 오는 걸 원치 않은 건데…….”
루이즈가 한탄하는 사이, 발라드 위고는 도시의 관청 안으로 들어갔다.
“이걸 어떻게 하지. 안으로 들어갈 수도 없고…….”
루이즈가 발을 동동 굴렀다. 데미안은 주변을 두리번거리다가 루이즈에게 물었다.
“몇 층에서 근무하는지 알고 계십니까?”
“응? 아마 3층일 걸?”
데미안이 루이즈를 끌어안았다. 그리고 관청의 3층과 높이가 비슷한 건물의 옥상으로 뛰어올랐다.
“어머, 우리 동생 진짜 대단하네.”
“이 정도야 쉽죠.”
두 사람은 관청의 창문을 들여다보며 발라드가 나타나기를 기다렸다.
잠시 후, 발라드 위고가 모습을 드러냈다.
‘누님은 보기 힘드실 것 같은데.’
관청과 건물 사이의 거리가 제법 멀었다. 데미안이라면 모를까, 일반인인 루이즈는 관찰하기 힘들 것 같았다.
“누님, 불편하지는 않으십…….”
옆을 쳐다보자, 쌍안경을 꺼내고 있는 루이즈가 보였다.
“응? 왜?”
시선을 알아차린 루이즈가 고개를 갸웃거리며 물었다. 데미안이 당황한 목소리로 물었다.
“……그건 언제 준비하신 겁니까?”
“이런 일이 있을까 싶어서 미리 사 놨지. 아, 마도구라서 대화도 들을 수 있다?”
데미안은 살짝 두통을 느꼈다. 대체 저 남자가 뭐라고 루이즈가 이렇게까지 행동한단 말인가.
“……준비성이 철저하시네요.”
“그치?”
두 남매는 옥상에 엎드린 채 발라드의 모습을 관찰했다.
발라드는 어디선가 산더미처럼 쌓인 서류를 가져오더니 책상에 올려놓고 업무를 시작했다. 창가에 앉아 있었기에 옆모습이 그대로 보였다.
그때, 누군가가 발라드에게 다가왔다. 입고 있는 옷으로 봐서는 관청에서 일하는 하녀인 듯했다.
-발라드 씨! 돌아오셨으면 왔다고 말해 주셨어야죠! 얼마나 기다렸는데요!
-아, 에밀리. 미안합니다. 밀린 일거리가 많아서요.
발라드가 웃는 얼굴로 하녀를 맞이했다. 굉장히 화기애애한 분위기였다.
-양이 되게 많네요. 이걸 다 발라드 씨가 처리해야 한단 말이에요?
-쉬었으니 그만큼 일을 해야죠. 그래도 오늘 저녁까진 끝낼 수 있을 듯합니다.
-대단하시네요!
하녀가 손뼉을 치며 감탄했다. 그러다 문득 하녀의 눈빛이 끈적끈적하게 변했다.
-그러면…… 저녁에 시간이 남으시겠네요?
하녀가 슬쩍 발라드의 허벅지에 손을 올렸다. 그 광경을 본 순간, 데미안은 격한 분노를 느꼈다.
“저 개자식이?”
누님의 추측이 맞았다. 양다리를 걸치고 있는 게 분명했다.
하늘 같은 누님을 내버려 두고 저런 짓을 벌이고 있었다니.
“누님, 여기서 기다리고 계세요. 가서 저 자식의 다리를 분질러 놓고 오겠습니다!”
“데, 데미안! 진정해! 조금만 더 지켜보자, 응?”
“뭘 지켜본단 말입니까! 모든 게 확실해졌는데!”
루이즈는 데미안을 붙잡았다. 두 사람이 투닥거리고 있을 때였다.
-에밀리 양, 죄송하지만 그건 힘들 것 같습니다. 저녁에는 따로 잡힌 약속이 있거든요.
발라드가 하녀의 손을 들어서 옆으로 옮겼다. 그러자 하녀가 심통한 표정을 지었다.
-……알겠어요. 그럼 열심히 일하세요.
하녀는 화를 내며 의자에서 일어났다.
그 모습에 데미안의 행동이 우뚝 멈췄다. 타올랐던 분노가 방향을 잃고 흩어졌다.
“……발라드!”
루이즈가 감격한 얼굴로 그 광경을 바라보고 있었다.
“쳇.”
데미안은 아쉽다는 얼굴로 혀를 찼다.
* * *
그 뒤로 시간을 흘러서 점심시간이 되었다.
발라드 위고도 식사를 하기 위해서 밖으로 나왔다.
“누님, 따라가죠.”
“알겠어.”
두 사람은 냉큼 발라드의 뒤를 밟았다. 발라드는 구석에 있는 식당으로 들어갔다.
데미안과 루이즈는 식당의 창문으로 다가갔다. 고개를 빼꼼 내밀고 내부를 들여다봤다.
“엇, 발라드잖아!”
의자에 앉아 있던 여급이 발라드를 보자마자 반색을 하며 뛰쳐나왔다.
“그동안 왜 이렇게 안 왔어? 우리 식당 음식이 맛이 없었던 거야?”
“그럴 리가요. 휴가를 갔다 오느라 자리를 비웠어요.”
“휴가? 그럼 말이라도 해 주지. 내가 얼마나 널 기다렸는데.”
여급이 발라드의 팔뚝을 찰싹 때리며 말했다.
“어서 앉아. 요리는 뭘 내줄까? 매번 먹던 거?”
“그렇게 해 주세요.”
“알겠어. 아빠! 발라드가 왔어! 정식 하나만 만들어 줘!”
발라드는 비어 있는 식탁에 앉았다. 그러자 당연하다는 듯이 여급이 발라드의 옆에 앉았다.
“발라드! 부탁이 하나 있는데. 들어줄 수 있어?”
“무슨 일인가요?”
“저번에 날 데려다준 모래사장에 또 같이 가 줄 수 있어? 바다에 비친 보름달을 한 번 더 보고 싶은데 외곽진 곳에 있다 보니까 혼자 가기 무서워서 그래.”
여급의 말에 데미안의 눈동자가 커졌다.
젊은 남녀가 한밤중에 함께 모래사장으로 간다? 그것도 인적이 한적한 곳으로?
“……누님, 저 여자가 틀림없습니다.”
“어, 데미안?”
“여기 계세요. 당장 저 개자식의 팔다리를 꺾어 놓고 오겠습니다!”
“자, 잠깐 데미안! 조금만 더! 조금만 더 지켜보자!”
루이즈가 필사적으로 데미안을 말렸다. 그러는 사이 발라드가 웃으며 입을 열었다.
“수잔, 미안하지만 힘들 것 같아요.”
“왜? 저번에는 같이 가 줬잖아!”
“그건 도시에 처음 왔을 때, 수잔이 많이 도와줘서 은혜를 갚으려고 한 거죠. 젊은 여자가 남자랑 같이 있으면 안 좋은 소문이 날 거예요.”
발라드의 말에 여급이 우물쭈물하며 말했다.
“……난 안 좋은 소문이 상관없는데.”
“제가 상관이 있어요. 저번에 말했지만 전 정혼한 몸이니까요.”
발라드의 말에 여급은 한숨을 푹 내쉬며 물러났다.
데미안은 슬쩍 옆을 돌아봤다. 아니나 다를까 기뻐하고 있는 루이즈가 보였다.
“발라드……!”
그렇게 기뻤는지 루이즈는 눈물까지 흘리고 있었다.
데미안은 못마땅한 감정을 억누를 수밖에 없었다.
* * *
그 뒤로도 두 사람은 계속 발라드를 관찰했다.
몇몇 여자들이 이전처럼 접근하기는 했지만, 발라드는 그때마다 정중하게 거부하는 일이 계속되었다.
“아무래도 내가 오해를 했던 것 같아.”
해가 질 무렵.
루이즈가 데미안에게 말했다.
“나도 참 나쁜 여자지 뭐니. 발라드를 끝까지 믿지 못했으니 말이야.”
루이즈는 애정이 묻어 나오는 눈빛으로 관청 쪽을 바라봤다. 발라드는 한창 안에서 일을 하고 있었다.
“……아니라니 다행이네요.”
“응? 그런데 왜 그렇게 못마땅한 얼굴이니?”
“아무것도 아닙니다.”
데미안은 속으로 혀를 찼다.
이번 일을 계기로 루이즈에게 더 좋은 사람을 구해 주고 싶었는데 수포로 돌아가고 말았다.
‘그래도 인정할 수밖에 없겠군.’
한편으로는 이번 일 덕분에 발라드 위고를 다르게 보게 되었다.
그렇게 많은 여자가 작업을 거는데 모두 거절하고 루이즈만 바라보고 있으니 말이다.
‘그래, 누님만 행복하면 됐지.’
데미안이 그렇게 생각하고 있을 때였다.
관청의 문이 열리더니 발라드 위고가 걸어 나왔다.
“이제 퇴근하는 모양이네. 많이 힘들었겠다.”
그런데 어찌된 영문인지 발라드는 바로 숙소로 돌아가지 않았다.
그는 관청 입구에 선 채 몇 번이고 회중시계를 들여다봤다.
“발라드!”
그때, 한 여자가 팔을 흔들며 발라드에게 다가왔다.
흑요석처럼 새까만 머리카락에 갈색 피부를 가진 이국적인 미녀였다.
“많이 기다렸어요?”
“아닙니다. 저도 방금 일이 끝났습니다.”
여인이 발라드의 팔뚝을 끌어안았다. 발라드는 너무나도 자연스럽게 팔뚝을 내줬다.
“오늘을 위해서 좋은 술집을 예약해 놨어요. 빨리 가요.”
두 사람은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
“…….”
데미안은 입을 쩍 벌릴 수밖에 없었다.
“누님? 방금 보셨어요?”
옆을 돌아본 순간, 데미안은 화들짝 놀랄 수밖에 없었다.
루이즈가 얼음처럼 싸늘한 시선으로 두 사람을 쳐다보고 있었던 것이다.
데미안은 전신에서 소름이 돋는 것을 느꼈다.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이렇게 무서운 표정을 짓고 있는 루이즈를 보는 것은 처음이었다.
“데미안?”
“어…… 예, 누님.”
“당장 쫓아가자.”
루이즈가 살의가 담긴 목소리로 말했다.
데미안은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