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turn of the Calamity-Class Death Knight RAW novel - Chapter (18)
멸망급 데스나이트가 회귀함 18화
18화. 경고 (4)
잘려 나간 팔이 하늘 높이 떠올랐다가 땅에 떨어졌다.
곧이어 어깨의 단면에서 피가 터져 나왔다.
뒤늦게 찾아온 격통에 게릭은 몸을 웅크린 채 신음을 토해 냈다.
“끄, 끄윽…….”
검사에게 목숨보다 소중한 오른팔을 잃었다.
이제 기사로의 삶은 끝났다고 봐도 무방했다.
하지만 지금 게릭의 머릿속을 가득 채운 것은 상실의 괴로움이 아니라 의문이었다.
“어, 어떻게…….”
데미안은 게릭의 비전을 단 한 수에 파훼했다.
아니, 그냥 파훼한 수준이 아니었다.
데미안이 장검을 내지르자 마력의 흐름이 깨졌다. 동시에 대검이 파괴되었다.
“마, 말해라! 무, 무슨 기술을 쓴 것이냐! 대체 그게 무엇이기에……!”
청염 브리건딘.
교단의 오대성인 중 한 명으로 권법에 관해서는 비할 자가 없는 인물이다.
마스터로서 브리건딘이 도달한 경지는 ‘멸격(滅格)’이라 불렸다.
멸격에 도달하면 외부의 충격을 이용해서 사물의 구조를 무너뜨리는 것이 가능했다.
이것으로 브리건딘은 적이 사용하는 기술과 무기, 심지어 마법까지 부수고 다녔다.
한 번은 도르고가 수년간 공을 들여서 발현한 멸망진을 없애버린 적도 있었다.
“그런 걸 물어볼 땐가?”
데미안이 장검을 들어서 게릭의 목을 겨누었다.
게릭의 얼굴이 새하얗게 질렸다.
“사, 살려다오.”
“애원할 거면 진즉에 했어야지. 이미 늦었어.”
칼끝이 살짝 피부를 파고들었다.
게릭의 얼굴이 더더욱 새하얗게 변했다.
“이, 이렇게 빌겠다. 제, 제발…….”
게릭이 바닥에 무릎을 꿇었다.
하나만 남은 팔로 땅을 짚었다.
그렇게 기세등등하던 모습은 온데간데없었다.
“살려 달라?”
데미안이 장검으로 게릭의 목을 겨누었다.
게릭의 두 눈동자가 마구 떨려왔다.
“가족들에게 행패를 부리고, 내 시종을 저런 몰골로 만들었으면서 살려 달라?”
“내, 내가 잘못했다! 그, 그 일은 사과할 테니…….”
“사과할 대상을 착각하고 있군.”
그리 말하며 데미안은 가족들을 돌아봤다.
가족들은 놀라움과 안도가 뒤섞인 얼굴로 데미안을 바라보고 있었다.
데미안의 실력이 상당하다는 사실은 이미 알고 있었다.
하지만 로우클래스를 압도할 정도로 강하다는 것은 몰랐기에 나오는 반응이었다.
“크, 크윽!
게릭은 마력을 일으켜서 어깨의 상처를 막았다.
명색에 로우클래스답게 마력을 이용해서 혈관을 모두 막은 것이다.
그리고 덜덜 떨리는 몸을 억지로 일으켜서 학센 자작에게 다가갔다.
“하, 학센 경! 내, 내가 잘못했소! 그, 그대에게 저지른 무례를 모두 사과하오……!”
게릭이 무릎을 꿇으며 말했다.
학센 자작은 처음에는 당혹스러워 했으나 이내 분노한 얼굴로 외쳤다.
“내 아들을 핍박하려 했으면서 그런 말 한마디로 떼울 생각인가?”
학센 자작의 분노는 쉽게 가라앉지 않았다.
“만약 내 아들에게 이만한 힘이 없었더라면 우리 영지는 박살이 나고, 내 아들은 후작가로 끌려가서 고초를 겪었겠지!”
애당초 게릭의 사과는 진심에서 우러나온 것이 아니었다.
살고 싶어서 발악하는 것에 불과했다.
그러니 학센 자작의 분노가 풀어질 리가 없었다.
“이, 이렇게 빌겠소!”
게릭은 아예 땅에 머리를 박았다.
한 번으로는 부족하다 생각했는지 여러 번 찍었다.
“부, 부디 자비를 베풀어 주시오!”
아버지는 한참 동안 게릭을 노려보았다.
이내 데미안을 바라보며 고개를 저었다.
죽이지 말라는 뜻이었다.
데미안은 순순히 장검을 집어넣었다.
‘어차피 나도 죽일 생각은 없었다.’
가족을 언급했던 것을 생각하면 이 자리에서 수십 토막을 내도 화가 풀리지 않았다.
하지만 여기서 게릭을 죽이게 되면 라이언블룸 후작가와의 관계가 최악으로 치닫게 된다.
‘나 혼자서는 얼마든지 후작가와 싸울 수 있다.’
숨어다니면서 후작가의 약점만 물어뜯어도 된다.
수틀리면 후작가의 적대세력에 투신하면 된다.
하지만 가족들을 생각하면 그럴 수 없었다.
아무리 데미안이라 해도 현재의 수준으로는 가족들을 지키면서 라이언블룸과 싸울 수 없다.
‘무엇보다 너무 힘든 길이야.’
회귀했을 때, 다짐했다.
더 이상, 가족들에게 괴로운 일을 겪게 하지 않겠다고.
‘그렇다고 이대로 순순히 돌려보낼 수도 없지.’
이공자는 물론, 정식기사마저 패배했다.
이 수치를 라이언블룸 후작가에서 그냥 넘길 리 없다.
분명 가까운 시일 내에 보복이 들어오리라.
‘다행이군.’
사실 데미안은 미리 대비책을 세워놓았다.
라이언블룸 후작가에서 기사가 왔다는 소리를 들었을 때부터 말이다.
‘교단과 연줄을 만들어 놓길 잘했어.’
데미안 그렇게 생각했을 때였다.
“이게 무슨 일입니까!”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아그네스와 조사단이 이쪽으로 다가오고 있었다.
* * *
데미안의 앞에 도착한 아그네스는 놀란 얼굴로 주변을 살펴봤다.
망가진 사물들, 처참하게 박살 난 땅, 곳곳에 흩뿌려져 있는 혈흔.
“이건…….”
아그네스의 시선이 게릭에게서 멈춰 섰다.
“저 갑옷의 문양은…… 라이언블룸 후작가의 것이 아닙니까?”
“예, 이놈이랑 저기 누워 있는 두 놈. 모두 라이언블룸 후작가의 기사입니다.”
그 대답에 아그네스의 눈동자가 살짝 커졌다.
“후작가의 기사들이…… 영지를 공격했단 말입니까?”
“예, 그렇게 됐습니다.”
아그네스는 게릭을 다시 쳐다봤다. 정확히는 게릭의 어깨로 시선이 향했다.
멀쩡히 서 있는 데미안에 비해서 게릭은 팔이 잘린 채 무릎을 꿇고 있었다.
누가 승자고, 누가 패자인지 명백하게 드러나는 구도였다.
“……라이언블룸 후작가의 기사라면 뛰어나기로 유명한데. 그들을 세 명이나 동시에 상대하셨단 말입니까?”
“세 명이라 해 봤자 둘은 준기사라서 별 볼 일 없었습니다. 저놈 한 명만 정식기사였죠.”
그 말에 아그네스의 눈동자가 더욱 커졌다.
아기토를 혼자서 참살했으니 정식기사 이상의 실력을 가지고 있으리라 예상은 했다.
하지만 이렇게 압도적인 격차로 승리할 줄은 몰랐다.
“봉변을 당하지 않으셔서 다행입니다.”
“다행이라…… 지금은 당하지 않았지만 앞으로는 어떻게 될지 모르겠군요.”
데미안의 말에 아그네스가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저들이 제게 패배했다는 소식을 듣게 된다면 라이언블룸 후작이 어떻게 행동할지 걱정입니다.”
그리 말하며 데미안은 슬쩍 아그네스를 살폈다.
아그네스는 무언가를 잠시 고민하다 입을 열었다.
“그런 고민이라면 제가 도와드릴 수 있습니다.”
“묘안이라도 있으십니까?”
데미안의 물음에 아그네스가 고개를 끄덕였다.
“학센 자작가 덕분에 교단에서는 처음으로 유란의 간부를 죽이는 데 성공했습니다. 이 정도 공로면 학센 자작가를 협력가문으로 지정할 수 있습니다.”
협력가문이란 교단과 긴밀한 관계를 맺는 가문을 뜻하는 말이었다.
이런 가문은 대귀족이라 해도 쉽게 건드릴 수 없었다. 그랬다가는 교단에서 나설 테니 말이다.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염치없지만 부탁드리겠습니다.”
데미안이 노리던 것이 바로 이것이었다.
교단의 위세를 빌려서 라이언블룸 후작가의 행동을 억제하는 것 말이다.
“당신, 이름이 뭡니까?”
아그네스가 게릭을 향해 물었다. 게릭은 조십스럽게 입을 열었다.
“……게릭 하워드라고 한다.”
“게릭 하워드. 가서 라이언블룸 후작에게 전하십시오. 학센 자작가는 교단의 비호를 받고 있습니다. 만약 또 다시 무력을 행사하려 한다면 교단의 분노를 감당해야 할 것입니다.”
아그네스의 경고에 게릭이 무겁게 고개를 끄덕였다.
“저기 엎어져 있는 쓰레기들을 데리고 빨리 꺼져.”
데미안의 으름장에 게릭은 냉큼 움직였다.
타고 온 말 위에 두 사람을 올려놓고 영지를 떠났다.
“도움에 감사드립니다.”
데미안이 아그네스에게 말했다. 아그네스는 별일 아니라고 답했다.
“데미안.”
게릭이 떠나자마자 학센 자작이 와서 말했다.
“……앞으로 어떻게 하면 좋을지. 회의를 열어야겠다.”
아버지의 명령에 데미안은 군말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 * *
그렇게 즉석에서 가족회의가 열리게 되었다.
참석자는 데미안과 학센 자작, 어머니, 누나, 동생, 집사, 그리고 아그네스였다.
“그럼 회의를 시작하겠소. 논할 주제는…… 다들 알겠지만 라이언블름 후작가와의 은원을 처리할 방법을 찾는 것이오.”
학센 자작의 말에 막냇동생인 아벨이 손을 들며 말했다.
“교단의 비호를 받기로 하지 않았나요? 그런데 왜 은원을 해결해야 하는 거죠?”
“아벨, 그건 교단에 중재까지 기대할 수 없기 때문이란다.”
“예?”
아벨이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학센 자작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루이즈의 말이 맞다. 교단은 귀족들에게 그렇게까지 깊이 개입하지 않는다.”
안 그래도 교단은 이단심판이라는 명목하에 여기저기를 들쑤시고 다닌다.
그런 마당에 귀족 사이에서 발생한 사건까지 개입하는 것은 선을 넘는 행위였다.
“하지만…… 어쨌거나 후작가에서는 우리를 건드리지 못하니까. 문제없는 거 아닌가요?”
“후작가의 권력은 무력에만 있지 않다. 그들이 마음만 먹으면 우리 학센 자작가 같은 작은 귀족 가문을 짓밟을 방법은 널려 있다.”
학센 자작가의 주 수입원인 밀의 수출을 방해한다거나, 식료품의 구입을 막는다거나.
혹은 왕궁을 통해 직접 압박을 넣을 수도 있었다.
“그래서 은원을 해결해야 한다고 말한 게다. 그래야 학센 자작가가 무사할 수 있다.”
아버지의 설명을 듣고 나서야 아벨은 학센 자작가가 처한 상황을 이해했다.
“지금 당장 떠오르는 방법으로는 후작가에 배상을 하거나 다른 대귀족의 밑에 들어가는 것뿐이구나.”
하지만 현실적으로 배상은 불가능했다.
후작가에서 엄청난 금액을 요구할 테니 말이다.
“남은 건 대귀족의 밑으로 들어가는 일뿐인데…….”
“한 가지 방법이 더 있습니다.”
줄곧 조용하던 아그네스가 입을 열었다.
학센 자작이 반색하며 물었다.
“그게 뭡니까?”
“데미안 학센 님이 성기사가 되는 겁니다.”
아그네스가 말했다.
“그럼 이 일은 교단의 일이 되니 중재할 명분이 생깁니다.”
가족들은 모두 데미안을 쳐다봤다.
하지만 데미안은 고개를 저었다.
“싫습니다.”
학센 자작은 다시 아그네스를 돌아봤다.
“데미안이 싫다고 하니 그 방법은 안 되겠습니다.”
“……알겠습니다.”
아그네스가 시무룩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이제 다른 방법을 고민…….”
“아버지! 왜 그렇게 쉽게 납득하시는 건데요?”
그때, 아벨이 벌떡 일어나며 소리쳤다.
“형님께서 성기사가 되면 끝날 일이잖아요! 말씀하세요! 얌전히 성기사가 되라고요!”
아벨이 데미안을 손가락질하며 말했다. 학센 자작이 조용히 타일렀다.
“자리에 앉아라.”
“아버지! 이 모든 게 누구 때문에 일어난 일인데요! 형님 때문이잖아요! 전부 형님께서 책임지실 일입니다!”
“아벨.”
학센 자작이 목소리를 뇌까렸다.
그 묘한 압박감에 아벨은 말을 멈출 수밖에 없었다.
“내가 앉으라고 하지 않았더냐.”
아벨은 입술을 깨물며 도로 앉았다.
학센 자작은 여전히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네 말대로 후작가와의 갈등을 유발시킨 것은 데미안이다. 하지만 마냥 데미안의 잘못으로 볼 수도 없는 일이다.”
아벨이 무슨 소리냐는 듯이 고개를 쳐들었다.
하지만 학센 자작이 노려보자 다시 고개를 숙였다.
“후작가의 이공자는 루이즈에게 흑심을 품고 있었다. 이공자가 호색한으로 유명한 것은 너도 알고 있겠지. 그런 남자가 데미안이 꼬드김에 넘어가지 않았다고 해서 순순히 루이즈를 포기했을 것 같지 않구나.”
데미안은 고개를 끄덕이며 아버지의 말에 동의했다.
이공자의 성격을 생각하면 어떤 식으로든 사고를 쳤으리라.
“따지고 보면 데미안은 이공자의 수작으로부터 루이즈를 지킨 셈이다. 힘이 없는 이 아비를 대신해서 말이야.”
학센 자작이 루이즈에게 미안하다는 눈빛을 보냈다. 루이즈는 말없이 웃기만 했다.
“오늘 기사들이 온 것도 마찬가지란다. 아무리 데미안이 도발을 했다고 하지만 먼저 결투를 신청하고, 칼을 뽑은 쪽은 이공자다. 후작가는 그건 생각하지 않고 무작정 우리 가문에 책임을 물었지.”
분하다는 듯이 학센 자작이 주먹을 움켜쥐었다.
“데미안.”
“예, 아버지.”
“오늘 정말 잘했다.”
아버지의 칭찬에 데미안의 눈동자가 살짝 커졌다.
“우리 가문이 당한 모독을 참지 않고 잘 되갚아 줬어.”
왜일까.
가슴 속에서 어떤 감정이 북받쳐 올라왔다.
너무나도 강렬한 감정에 데미안은 울음을 터트리지 않기 위해서 참아야 했다.
“당연히…… 해야 할 일이었습니다.”
문득, 전생의 일이 떠올랐다.
망나니짓만 일삼으며 가문에 큰 피해를 입혔다. 누님의 인생을 망쳐 버렸다.
급기야 모든 가족을 자기 손으로 죽여 버렸다.
그 끔찍했던 나날 속에서 데미안이 바랬던 것은 오직 한 가지, 속죄뿐이었다.
아버지의 칭찬을 들은 순간, 데미안은 조금, 아주 조금 속죄를 한 듯한 기분이 들었다.
“그래도 저 때문에 일어난 일이라는 사실은 부정할 수 없습니다.”
데미안은 울음을 억눌렀다. 아직 울기에는 일렀다.
아직 데미안은 가족들에게 완전히 속죄하지 못했다.
“조금만 기다려주십시오. 제가 이 일을 마무리 짓겠습니다.”
“아니다.”
학센 자작이 딱 자라 말했다.
“이 일은 이 아비가 해결하도록 하마.”
“예? 하지만…….”
“이 아비를 너무 무시하는구나. 아는 귀족을 통해서 대귀족에 연을 댈 생각이다. 대귀족의 힘을 빌려서 후작가와의 사이를 중재하면 된다.”
학센 자작이 주먹으로 가슴을 탕 때리며 말했다.
“모처럼 아비다운 모습을 보일 수 있게 해다오.”
“아버지……!”
데미안의 눈동자에 눈물이 맺혔다. 학센 자작은 흐뭇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아버지!”
데미안이 양팔을 벌리고 아버지에게 달려갔다. 아버지는 데미안을 강하게 끌어안았다.
두 부자가 감동적인 시간을 보내고 있을 때였다.
“영주님, 들어가도 되겠습니까?”
집사가 회의실의 문을 두드리며 말했다.
“그래, 들어오거라.”
학센 자작은 데미안을 품에서 떼어놓으며 말했다.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온 집사가 자작에게 고했다.
“밖에 손님이 찾아오셨습니다.”
“손님? 설마 후작가에서 온 것이냐?”
“아닙니다. 골드픽시 공작가에서 사람이 왔습니다.”
골드픽시라는 말에 학센 자작을 비롯한 가족들 모두가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
“골드픽시 공작가에서 무슨 일로 사람이 온 것이냐.”
“그것이 그게…….”
대답하기 곤란했는지. 집사가 말 꼬리를 흘렸다.
“데미안 공자님께서 자작가의 밀밭을 담보로 돈을 빌렸는데…… 기한이 이미 넘었다고 합니다.”
데미안은 아버지를 돌아봤다.
방금 전까지만 해도 온화한 표정을 짓고 있던 아버지의 얼굴에 서서히 분노가 차올랐다.
“데미안! 이 망할 놈의 자식아아아!”
아버지의 호통소리를 들이며 데미안은 한탄했다.
‘……아, 설마 이미 팔아먹은 뒤였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