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turn of the Calamity-Class Death Knight RAW novel - Chapter (180)
멸망급 데스나이트가 회귀함 180화(180/225)
멸망급 데스나이트가 회귀함 180화
180화 악연 (2)
가끔 꿈이라는 사실을 알면서도 깨어나기 싫을 때가 있다.
“아버지! 저 구름 좀 보세요! 늑대랑 똑같이 생겼어요!”
칼 호퍼에게는 지금이 바로 그러했다.
칼 호퍼는 아버지의 목말을 탄 채 하늘을 가리켰다.
“네 말이 맞구나. 정말 잘생긴 늑대인걸.”
아버지가 하늘을 올려다보며 감탄했다. 아버지는 칼이 떨어질까 봐 두 다리를 꼭 잡고 있었다.
“아버지는 아주 오래 사셨으니까 멋진 구름도 많이 보셨겠죠?”
“당연하지. 사자를 닮은 구름을 본 적도 있단다.”
“우와아아!”
칼은 감탄사를 터트렸다.
해 질 무렵에 아버지와 함께 하늘을 구경하는 것은 칼이 가장 좋아하는 시간이었다.
“칼.”
문득, 아버지의 목소리가 진지해졌다. 심상치 않은 분위기에 칼은 긴장할 수밖에 없었다.
“너는 내 아들이니 아주 오랜 시간을 살 거란다.”
칼의 아버지는 드래곤이었다.
아주 오래된 역사책과 동화책에서만 등장하는 지상 최강의 생물.
처음에 칼은 아버지의 말을 믿지 않았다. 이 세상의 누가 부모가 드래곤이라는 말을 덥석 믿겠는가.
하지만 아버지가 한쪽 팔을 용의 것으로 바꾸는 것을 보여 줬을 때, 칼은 믿을 수밖에 없었다.
“긴 수명은 감정을 마모시키고, 이성을 앗아 간다. 너는 앞으로 망각과 싸워야 할 거다.”
어린 나이였지만 칼은 진지한 얼굴로 아버지의 말을 경청했다.
아버지가 자신과 함께 있는 이유가 바로 이런 가르침을 내리기 위함이라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망각과 싸우기 위해서는 욕망을 표출하는 게 가장 좋단다. 그러니 너도 네 욕망을 자각하고, 그걸 채우기 위해서 노력하렴.”
칼은 고개를 끄덕였다. 이내 장난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물었다.
“알겠으니까 본체를 한 번만 보여 주시면 안 돼요? 드래곤으로 변한 아버지의 모습을 보고 싶어요!”
“이 녀석아, 내가 말하지 않았더냐. 그건 맹약 때문에 불가능하다고.”
“잠깐 보여 주는 것도 안 돼요? 아주 조금만요.”
칼이 몸을 마구 흔들며 아버지를 조르고 있을 때였다.
별안간 발끝에서부터 오한이 차올랐다. 등골이 오싹해졌다.
위험하다.
마치 누군가 자신의 목에 칼을 들이밀고 있는 것 같았다.
위협에 대비해야 한다는 생각이 치밀어 올랐다. 칼은 근육을 바짝 조인 채 주변을 경계했다.
“아들아? 왜 그러는…….”
아버지의 목소리가 순식간에 멀어졌다. 하늘을 가득 채우고 있던 노을도, 아버지가 밟고 있던 들판도 모조리 사라졌다.
“아버지! 아버지!”
아직 꿈에서 깨어나고 싶지 않았기에 칼은 연신 아버지를 불러댔다.
하지만 소용없는 짓이었다.
위기감을 느낀 육체가 칼의 정신을 몽환에서 끄집어냈다. 칼은 순식간에 현실로 되돌아왔다.
눈을 떴을 때, 칼은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자신의 천막이 아니라 낯선 풍경이 눈에 들어 왔기 때문이었다.
“……이게 어떻게 된 일인지 모르겠군.”
칼 호퍼.
용병왕은 몸을 일으키다 주변을 쓱 둘러보며 중얼거렸다.
“섬뜩한 기분이 들어서 일어났는데…….”
폐허가 된 세상에 데미안 학센과 낯선 남녀 두 명이 서 있었다.
“데미안 학센, 이게 어떻게 된 일이냐?”
* * *
‘왜 하필 지금 깨어난 거지?’
데미안은 용병왕을 보고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유물의 영향력에서 완전히 벗어나지 못하였으니, 그를 잠에서 깨우기 위해선 목숨을 위협하는 무언가가 필요했다.
이 세상에 용병왕을 위협할 수 있는 존재는 그리 많지 않았다. 마스터클래스인 발렌티노의 살기조차 용병왕을 깨우지 못했을 정도였다.
그랬던 용병왕이 왜 하필 지금 깨어난단 말인가.
‘……나 때문이군.’
데미안은 곧바로 원인을 깨달았다. 자신이 해방시킨 살기에 반응해서 깨어난 게 분명했다.
‘젠장.’
데미안은 욕지거리를 내뱉으며 팔찌에서 손을 놓았다.
용병왕이 깨어난 이상, 흑마력을 해방시킬 수는 없었다. 데미안이 흑마법을 사용할 줄 안다는 사실을 숨겨야 했으니 말이다.
“보면 모르십니까.”
복수를 방해받았다는 생각에 데미안의 말이 저절로 거칠어졌다.
“저 여자가 당신을 데려가려고 계략을 꾸민 겁니다.”
데미안이 슬라를 가리키며 말했다. 슬라를 발견한 용병왕의 눈썹이 치켜 올라갔다.
“슬라. 네년의 얼굴을 또 보게 될 줄은 몰랐군.”
“저번에 제국에서 본 이후로 오랜만이지?”
슬라가 친근한 어조로 말했다. 두 사람 모두 서로 구면인 모양이었다.
“이 친구의 말이 사실인가?”
“어…… 그럴 생각이었는데. 일이 좀 꼬인 것 같네.”
슬라는 여전히 미소를 짓고 있었다. 하지만 입가가 살짝 굳어 있었다.
거악 슬라.
판데모니엄의 여제.
그런 수식어들은 모두 용병왕의 앞에서 아무짝에도 소용이 없는 것이었으니 말이다.
“이 몸에게 수작을 부리다니. 간도 크군. 후환이 두렵지 않은 것인가?”
“그런 걸 신경 쓰면 마법을 발전시킬 수 없는 법이지.”
“즉, 이 몸을 겨우 마법 실험 재료로 사용할 생각이었다는 소리로군?”
그 말에 분위기가 싸늘하게 가라앉았다. 슬라는 어색하게 웃으며 용병왕의 눈치를 살폈다.
“판데모니엄의 창녀 주제에 주제 넘는 짓을 저질렀군. 지금 당장 그 대가를 치르게 해 주마.”
용병왕이 앞으로 걸어 나왔다. 그러자 발렌티노가 슬라를 보호하기 위해서 앞으로 나섰다.
“귀찮게 굴지 말고 꺼져라, 애송아.”
“애송이이~? 그렇게 불릴 시기는 지난 지 오래인데~?”
발렌티노의 말에 용병왕이 노골적인 조소를 지었다.
“이제 막 솜털을 벗은 주제에 하늘 높은 줄 모르는군. 팔 하나라도 뜯어야 정신을 차릴 생각이냐?”
“오, 무서워라~ 마침 나도 비슷한 생각을 했는데~ 아주 잘됐네~.”
발렌티노가 양팔을 벌렸다. 팔뚝에 휘감겨 있던 쇠사슬이 풀리더니 아래로 축 늘어졌다.
“후배한테 한 수 양보해 주는 게 어때~?”
“마음대로 해라. 곧 죽을 놈이니 그깟 소원 하나 못 들어주겠느냐.”
용병왕의 말에 발렌티노의 실소를 흘렸다.
“이야~ 눈물 나게 고마운 걸~? 그럼 고맙게 받아들이도록 할게~.”
그 순간, 발렌티노의 몸이 사라졌다.
어떤 전조 증상도 없었다. 소리도 들려오지 않았다. 마치 처음부터 이 자리에 없었던 것 같았다.
데미안의 감각으로도 발렌티노의 움직임을 포착할 수 없었다. 그 정도로 은밀하고 신속했다.
하지만 용병왕은 달랐다. 고개를 들어서 하늘을 올려다보고 있었다.
데미안은 용병왕이 바라보고 있는 방향을 쳐다봤다. 하늘 높은 곳에 발렌티노가 떠 있었다.
발렌티노가 용병왕을 향해서 손을 뻗었다.
그 순간, 쇠사슬이 분열했다. 수백 개가 넘는 쇠사슬이 용병왕이 있는 장소를 향해서 떨어졌다. 마치 장대비가 떨어지는 것 같았다.
‘역시 정신 나간 놈이로군.’
데미안은 속으로 경탄했다.
지금 하늘에서 떨어지는 쇠사슬들은 모두 진짜 쇠사슬이 아니었다. 진짜였다면 한 개였던 쇠사슬이 분열할 리가 없으니 말이다.
저건 쇠사슬이 아니라 발렌티노가 만들어 낸 오러블레이드였다.
오러블레이드로 진짜와 흡사한 쇠사슬을 구현한 뒤, 그것을 쏟아 내고 있는 것이다.
가늠할 수 없을 정도로 방대한 흑마력과 고도의 기술이 더해진 결과였다.
수백 개의 오러블레이드가 떨어지고 있음에도 용병왕은 다급해 보이지 않았다.
심지어 데미안을 살펴보는 여유까지 부리고 있었다.
“단단히 겁에 질려 있을 줄 알았건만…… 멀쩡하군.”
용병왕이 흡족한 표정을 지으며 덧붙였다.
“그래, 모름지기 남자란 그 정도 기개가 있어야지.”
그리 말하며 용병왕이 하늘을 향해 손을 휘둘렀다.
파리라도 쫓는 것처럼 가벼운 동작이었다. 그 직후, 하늘에서 눈부신빛이 터져 나왔다.
뇌력이 하늘을 물들였다. 발렌티노가 만든 쇠사슬을 모조리 소멸해 버렸다.
“…….”
가공할 만한 광경에 데미안은 혀를 내둘렀다.
용병왕은 데미안이 기개가 있어서 발렌티노의 기술에 겁을 먹지 않았다고 여겼지만 실제로는 조금 달랐다.
데미안은 용병왕을 믿고 있었다.
비록 여자에게 홀려서 납치를 당할 뻔한 멍청한 인간이지만 그 실력만큼은 의심의 여지가 없었으니 말이다.
하늘을 물들였던 뇌력이 사라졌다. 이윽고 하늘에서 무언가가 떨어졌다.
바로 새카맣게 타 버린 발렌티노였다.
발렌티노는 거의 숯처럼 변해 있었다. 생사여부를 확인하기 힘들 정도였다.
그때, 발렌티노의 옆에 슬라가 나타났다.
“역시 아직은 칼한테 안 되는구나.”
슬라는 안타깝다는 얼굴로 발렌티노를 바라봤다.
“그래도 다행히 죽지는 않았구나. 발렌티노, 걱정하지 마렴. 내가 더 강한 육체로 만들어 줄 테니까.”
슬라가 발렌티노를 향해 손을 뻗었다. 그러자 손이 거대한 입으로 변하더니 발렌티노를 꿀꺽 삼켜 버렸다.
슬라는 체내에 아공간을 만들어서 물건을 보관할 수 있는 능력이 있었다.
발렌티노가 죽지 않았으니 데려가서 치료할 생각인 모양이었다.
“칼, 아직은 너랑 싸울 때가 아닌 것 같아. 나중에 기회가 되면 다시 보도록 하자.”
“누가 도망치게 내버려 둔다고 했나?”
용병왕이 가시 돋친 목소리로 말했다. 그러자 옆에 있던 슬라가 웃으며 말했다.
“칼, 네가 강하기는 하지만…… 내가 작정하고 도망치면 잡기 힘들걸?”
“건방진 소리를 지껄이는군. 지금 당장 네년의 두 다리를 분질러 주마.”
용병왕의 몸이 사라지는가 싶더니 슬라의 코앞에 나타났다.
슬라를 움켜잡기 위해서 손을 뻗었다. 그 찰나, 슬라의 몸이 크게 부풀어 올랐다.
슬라의 몸이 풍선처럼 터졌다. 수천 개의 살점이 사방으로 튀었다.
용병왕이 재빨리 뇌력을 일으켰다. 뇌력이 사방으로 퍼지며 살점들을 모조리 불태워 버렸다. 하지만 일부 살점들은 놓치고 말았다.
“내가 놓칠 것 같으나!”
용병왕이 연달아 뇌력을 방출했다. 뇌력이 수십 차례 쏘아지며 살점을 불태웠다.
-휴우, 하마터면 진짜로 죽을 뻔했네.
별안간 허공에서 슬라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칼, 다음에 다시 보자. 그때는 오늘이랑 많이 다를 거야.
슬라의 제자인 루비아는 육체가 산산이 흩어졌음에도 조각을 끌어모아서 몸을 재생시켰다.
슬라도 용병왕이 놓친 파편을 모아서 자신의 몸을 재생시킨 게 분명했다.
-그리고 데미안 학센이라고 했지?
슬라는 데미안에게도 잊지 않고 말을 건넸다.
-너처럼 내 가슴을 뛰게 만든 남자는 오랜만이었단다. 나중에 자리를 마련할 테니 그때 서로 진득하게 대화를 나눠 보자.
그 말에 데미안의 얼굴에 미소가 번졌다.
안 그래도 죽이지 못해서 속내가 비틀려 있었는데. 저쪽에서 먼저 찾아와 주겠다니. 이렇게 기쁠 수가 없었다.
‘다시 만나면 그때는 진짜로 죽여 주마.’
데미안의 머릿속에는 광분학파의 흑마법에 관한 지식도 가득 담겨 있었다.
용병왕과 달리 슬라를 놓치지 않고 확실하게 죽일 자신이 있었다.
“젠장, 놓치고 말았군.”
용병왕이 굴욕적이라는 듯이 중얼거렸다.
“그나저나 재수 없게 되었구나. 하필이면 슬라의 관심을 끌게 되다니.”
용병왕이 딱하다는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어쨌거나 고맙게 되었다. 네 덕분에 저 징그러운 년한테 잡혀가지 않을 수 있었다.”
그 자존심 강하던 용병왕이 순순히 데미안에게 감사를 표했다.
“그런데 왜 너 혼자 있는 게냐? 아테나는? 다른 녀석들은 어디로 간 것이냐?”
용병왕으로서는 의아할 수밖에 없으리라.
파프니르 용병대는 보이지 않고 데미안 혼자만 있으니 말이다.
“이럴 때가 아닙니다. 빨리 돌아가셔야 합니다.”
“무슨 일이라도 생긴 게냐? 이상하구나. 내 아이들은 쉽게 위기에 빠지지 않을 텐데.”
고개를 갸웃거리는 용병왕을 향해 데미안이 말했다.
“용병대는 분열되기 직전이고, 아테나는 감옥에 잡혀 있습니다.”
그 말에 용병왕의 눈동자가 빠질 듯이 커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