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turn of the Calamity-Class Death Knight RAW novel - Chapter (182)
멸망급 데스나이트가 회귀함 182화(182/225)
멸망급 데스나이트가 회귀함 182화
182화 악연 (4)
용병왕의 귀환으로 파프니르 용병대는 그야말로 발칵 뒤집혔다.
“이런 추잡한 살덩어리를 나로 착각하다니!”
돌아온 용병왕은 가장 먼저 가짜 육체부터 불태워 버렸다.
“이 눈 뜬 장님들 같으니! 차라리 두 눈을 떼고 다녀라! 그게 더 나을 것 같으니까!”
하필이면 흑마법사 따위가 만든 인형에 모든 용병이 속아 넘어갔으니 그의 분노는 극에 달했다.
그중에는 용병왕이 그렇게 자랑스럽게 여기던 성혈들도 포함되어 있었다.
용병왕의 인생에서 이보다 더 큰 굴욕은 존재하지 않았다.
“네놈들의 어미를 모두 불러와라! 단 한 명도 빠짐없이!”
다음으로 용병왕은 파벌의 주축을 이루고 있는 여자들을 모조리 한 곳에 모았다.
“내가 쓰러지자마자 권력을 놓고 다퉈? 감히 이런 주제 넘는 짓을 벌이다니! 그동안 너희들을 너무 자유롭게 내버려둔 것 같구나!”
용병왕은 그들에게 제공되던 지원들을 모조리 끊으라 지시했다.
사치품은 물론이고, 시녀들도 모두 거둬들였다. 오로지 자신들의 힘으로 생활을 지속해 나가도록 했다.
“너희들도 부끄러운 줄 알아! 아무리 어미가 하는 말이라지만 거기에 끌려가? 이런 머저리들 같으니!”
성혈들도 용병왕의 분노를 피해갈 수 없었다. 전부 처벌이라는 명목 하에 가혹한 임무를 배정받았다.
그렇게 한껏 날뛴 뒤에야 용병왕은 데미안을 불러들였다.
* * *
“정말 고맙다.”
용병왕이 가장 먼저 꺼낸 말은 그것이었다.
말로만 감사를 표한 것이 아니었다. 그 자존심 강하던 인간이 데미안의 손을 꼭 잡고 고개를 숙이기까지 했다.
“네가 아니었다면…… 슬라에게 붙잡혀서 어떤 일을 당했을지 모른다.”
무력화된 채 흑마법사들의 실험체가 된다?
그들의 악명을 생각하면 용병왕조차 간담이 서늘해질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네가 날 구해 준 덕분에 용병대의 분열도 막을 수 있었다.”
데미안이 용병왕을 제때 구해 오지 못했다면 파프니르 용병대는 권력을 놓고 다투다가 내전이 시작되었을 것이다.
“그것뿐만이 아니지…… 아테나를 잃을 뻔한 것도 막을 수 있었다.”
용병왕이 데미안의 손을 강하게 움켜쥐었다. 그가 얼마나 고맙게 여기고 있는지 절절하게 느껴졌다.
“해야 할 일을 했을 뿐입니다.”
“아니다. 너는…… 너무나도 큰일을 해 줬다. 네 입장에서 보면 결국 남의 일이거늘…… 거기에 네 목숨을 걸지 않았더냐.”
아니었다.
데미안이 파프니르 용병대를 도운 이유는 순전히 자신의 목적 때문이었다.
도르고를 죽이고 멸망전쟁을 막는다.
만에 하나 멸망전쟁을 막지 못할 때를 대비하여 전력을 모은다.
두 가지 목적 때문에 파프니르 용병왕과 아테나를 구한 것뿐이다.
그렇기에 데미안은 자신이 용병왕의 감사를 받을 자격이 없다고 생각했다.
“이번 일에 가담한 자들은 어떻게 하실 생각이십니까.”
화제를 돌리기 위해서 데미안은 용병왕에게 질문을 건넸다.
“생각 같아서는 모조리 내쫓고 싶지만…… 어쩌겠느냐. 미우나 고우나 내 가족들인 것을.”
용병왕이 착잡한 표정으로 말했다.
“대신 두 번 다시 똑같은 일이 생기지 않도록 단단히 감시할 생각이다.”
데미안이 전생에 들은 바에 의하면 파프니르 용병대의 분열은 용병왕의 호색한 기질 때문이었다.
하지만 실제로 데미안이 본 것은 조금 달랐다. 용병대가 분열된 직접적인 이유는 파벌 간의 갈등 때문이었다.
어쩌면 전생에 용병왕은 스스로 오명을 뒤집어쓰길 자처한 게 아닐까?
가족들에게 향해야 할 비난을 본인이 감내한 것이 아닐까.
물론 그 미래는 없어졌으니 어디까지나 추론의 영역일 뿐이었다.
“설마 맨입으로 끝내실 생각은 아니죠?”
데미안이 장난스러운 어조로 말했다. 데미안 딴에는 농담 삼아 말한 것인데 용병왕의 표정은 무척 심각했다.
“그럴 리가 있겠느냐. 안 그래도 너에게 어떻게 보답해야 할지 계속 고민했다.”
용병왕이 데미안의 앞에 무언가를 내밀었다. 붉은 금속으로 만들어진 철패(鐵牌)였다.
“파프니르 용병대를 상징하는 철패다. 이걸 용병사무소에 가져가면 어떤 용병이든 무급으로 고용할 수 있다.”
데미안의 입장에서는 다소 아쉬운 선물이었다.
데미안은 마스터클래스를 앞두고 있는 강자였다. 용병에게 손을 빌릴 필요가 없었던 것이다.
“참고로 이 ‘어떤’이라는 범주에는 파프니르 용병대와 나도 포함되어 있다.”
그 말에 데미안은 자신이 선물을 과소평가했음을 깨달았다.
파프니르 용병대는 대륙 최고이자 최강의 용병대였다. 고용하기도 어려울 뿐만 아니라, 천문학적인 비용이 들어갔다.
그런 파프니르 용병대는 물론이고, 용병왕까지 고용할 수 있다고?
“횟수 제한도 없다. 언제든지 내킬 때 사용하도록 해라. 물론 너무 자주 사용하면 화낼 거다.”
용병왕이 장난스럽게 덧붙였다.
데미안은 감사를 표하며 용병왕의 증표를 챙겼다.
“이제 떠날 생각이냐.”
“그렇습니다. 가족의 얼굴을 못 본 지 너무 오래 됐거든요.”
가족을 생각하니 저절로 누님이 슬라에게 당했던 일들이 떠올랐다.
루이즈뿐만이 아니었다. 다른 가족들의 영혼도 흑마법사들에 의해서 이루 말할 수 없는 끔찍한 일들을 당했다.
조금 떠올린 것만으로 불쾌감과 분노가 치밀어 올랐다. 데미안은 이를 악물며 어떻게든 감정을 억눌렀다.
“가기 전에 아테나를 보고 가거라. 널 많이 보고 싶어 하더구나.”
“알겠습니다.”
짧게 대답한 뒤, 데미안은 천막을 나갔다.
데미안이 사라지자 용병왕은 아쉽다는 표정을 지었다.
“이대로 놓아 주기 너무 아까운 녀석이로군…….”
용병대에 붙잡아 놓고 싶었지만 명분이 없었다.
“혹시 몰라서 아테나랑 단둘이 임무를 보내 놨더니만…… 딱히 진전도 없는 것 같고…….”
용병왕은 머리를 긁적이다가 침대에 몸을 던졌다.
넓은 침대 위를 데굴데굴 구르며 한탄했다.
“아깝다~ 너무 아까워~.”
* * *
데미안은 아테나를 찾아갔다.
아테나는 용병대 내에 있는 치료실에 누워 있었다.
끊어진 발목 인대를 치유해야 한데다가 쇠약해진 몸을 회복시켜야 했기 때문이다.
“아테나, 몸은 어떠냐.”
데미안이 안으로 들어가며 말했다. 병상에 누워 있던 아테나가 화들짝 놀라며 몸을 일으켰다.
“데미안! 와 줬구나.”
“몸이 괜찮은지 보러 왔다.”
“정말?”
뭐가 그리 좋은지 아테나는 얼굴을 발갛게 물들인 채 헤실헤실 웃었다.
그런 아테나를 바라보며 데미안은 새삼 낯설다는 생각을 떠올렸다.
과거의 아테나는 이렇지 않았다.
잔뜩 화가 난 독사처럼 독기를 품고 있었다. 모든 언행이 거칠고 날카로웠다.
전생의 아테나가 당했을 일을 생각하면 어느 정도 이해가 되었다.
아버지는 실종되고, 용병대에서 쫓겨나고.
자연스럽게 성격이 더럽게 변할 수밖에 없었으리라.
“……고마워.”
문득, 아테나가 말했다. 별거 아닌 말이었지만 큰 충격이라도 받은 것처럼 데미안의 눈동자가 커졌다.
전생에 아테나는 아버지의 원수를 갚기 위해서 2대 용병왕이 되어서 데미안과 싸웠다.
결국 아테나는 원수를 갚지 못했다. 데미안에게 패배한 이후, 흑마법사들의 노리개가 되어서 목숨을 잃었다.
그 일은 데미안의 마음속에 죄책감으로 남아 있었다.
아테나뿐만이 아니었다. 데미안은 자신이 불행으로 몰아넣은 모든 사람에게 같은 감정을 품고 있었다.
“네 덕분에 아빠도 구할 수 있었어. 아니었다면 큰일 났을 거야.”
이번 생에는 아테나를 구했기 때문일까.
그녀의 감사에 마음속에 품고 있던 죄책감이 조금이나마 줄어든 느낌이 들었다.
“난 이제 용병대를 떠나려고 한다.”
“어?”
아테나가 당황한 얼굴로 데미안을 쳐다봤다.
“조, 조금 더 있으면 안 될까?”
“너무 오래 가문을 떠나 있었다. 이제 돌아갈 때가 되었어.”
데미안이 단호한 어조로 말했다.
아테나의 얼굴에 무수한 갈등이 떠올랐다. 이내, 아테나가 입을 열었다.
“나, 나중에 찾아가도 돼?”
“얼마든지.”
오는 손님을 막을 정도로 데미안은 매정한 성격이 아니었다.
아테나는 데미안의 눈치를 살피다가 다시 물었다.
“부, 부모님께 인사드려도 될까?”
“당연하지.”
남의 집에 왔으면 당연히 가문의 주인에게 인사를 해야 하지 않겠는가.
데미안은 그런 의미에서 한 말이었다. 그런데 아테나는 조금 다른 의미로 받아들인 듯했다.
“정말? 정말이지?”
아테나가 데미안의 팔뚝을 꽉 잡으며 되물었다. 손아귀의 힘이 보통이 아니었다.
“……그럼 정말이지.”
데미안이 떨떠름한 얼굴로 대답했다. 그러자 아테나가 환호성을 질렀다.
“그 말 절대로 잊으면 안 돼!”
* * *
“에구, 결국 떠나는구나.”
용병왕은 멀어지는 데미안을 바라보며 아쉬워했다. 아테나도 그 옆에 서서 데미안을 지켜봤다.
“그나저나 용케 여기 남겠다고 했구나. 난 분명히 네가 저 녀석을 따라갈 줄 알았는데.”
“저도 따라가고 싶었어요.”
용병왕이 의아한 얼굴로 아테나를 쳐다봤다.
“그런데 생각해 보니 지금 저는 데미안한테 짐밖에 안 될 것 같더라고요.”
데미안이 없었더라면 아테나는 용병대에서 쫓겨나 고통스러운 나날을 보냈을 것이다.
반면, 데미안은 혼자서 모든 역경을 이겨 내고 용병왕을 구해 왔다.
“저는 데미안한테 필요한 사람이 되어 주고 싶거든요.”
아테나는 말없이 데미안을 바라봤다. 두 부녀 사이에 잠시 침묵이 흘렀다.
“그보다 내가 저 녀석 좀 자빠트리라고 같이 임무를 보냈더니만 대체 뭘 한 거냐.”
“설마 그런 목적으로 절 보내셨던 거예요? 어떻게 아빠가 되어서 그럴 수 있어요!”
“네가 저 녀석이 마음에 든다면서!”
두 부녀는 한참 동안 서로를 향해 실랑이를 벌였다.
“걱정 마세요. 아버지가 바라는 대로 됐으니까요.”
“그게 무슨 소리냐?”
“데미안한테 허락을 받았거든요. 다음에 학센 백작가로 가면 부모님께 인사를 드리자고요.”
그 말에 용병왕의 눈동자가 확 커졌다.
부모에게 인사를 드린다는 소리가 무슨 뜻이겠는가.
그만큼 깊은 사이가 되었다는 말이 아니겠는가.
“이, 이 녀석! 결국 해낼 줄 알았다!”
용병왕이 아테나를 끌어안으며 기뻐했다. 아테나는 득의양양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