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turn of the Calamity-Class Death Knight RAW novel - Chapter (19)
멸망급 데스나이트가 회귀함 19화
19화. 빚쟁이 (1)
망나니로 지내던 시절, 데미안 학센은 가족들에게 많은 죄를 지었다.
술집에서 난동을 피우다 쫓겨나서 가문을 놀림감으로 만들었다.
후작가의 소공자를 건드리는 바람에 누님인 루이즈를 희생시켰다.
그럼에도 가족들은 데미안을 버리지 않았다. 가족이라는 이유로 계속 데미안을 감싸줬다.
그랬던 가족들의 인내심이 바닥을 드러낸 사건이 있었다.
바로 데미안이 가문의 땅을 담보로 공작가의 대부업체에 돈을 빌린 일이었다.
“데미안 이노오옴!”
학센 자작이 분노를 토해 냈다. 얼굴에 불에 달군 것처럼 시뻘겋게 변해 있었다.
“네놈이 그럼 그렇지! 바뀌었을지도 모른다고 일말의 기대를 품었던 내가 멍청이였다! 오늘 널 죽이고, 나도 목숨을 끊으마! 함께 저승으로 가서 선조들께 잘못을 고하자꾸나!”
학센 자작은 벽에 걸려 있는 장식용 도끼를 움켜잡고 데미안에게 달려들었다.
“여, 여보! 진정하세요!”
“데미안을 진짜 죽일 생각이세요!”
“아, 아버지, 일단 그 도끼부터 내려놓고 이야기하세요!”
어머니와 누님, 심지어 동생인 아벨까지 아버지를 말렸다.
아그네스는 자신이 낄 자리가 아니라고 생각했는지. 조용히 밖으로 나갔다.
“이거 놓으시오! 오늘은 정말로 끝장을 봐야겠소!”
가족들이 모두 나섰음에도 학센 자작을 진정시킬 수 없었다.
데미안은 착잡한 심정으로 분노한 아버지를 바라봤다.
“데미안! 당장 목을 내놓지 못하겠느냐!”
사태를 수습하기 전에 우선 아버지를 진정시킬 필요가 있어 보였다.
데미안은 천천히 바닥에 무릎을 꿇었다. 학센 자작과 가족들의 눈동자가 휘둥그레졌다.
“아버지, 또 이렇게 기대를 저버리게 되어 죄송합니다.”
데미안은 나직한 목소리로 말했다.
“이번 일은 죽음으로 사죄를 드려도 모자랍니다. 하지만 우선은 이 일을 수습하는 게 먼저가 아니겠습니까.”
회귀했을 때, 데미안은 다짐했다.
이번에는 전생처럼 살지 않겠다고.
반드시 가족을 행복하게 해 주겠다고.
“한 번만 더 저를 믿어 주세요. 제가 책임지고 해결해 놓겠습니다.”
데미안은 진심을 담아서 말했다.
이에 학센 자작의 얼굴에 망설임이 떠올랐다.
“……정말 해결할 수 있겠느냐?”
“예, 아버지.”
학센 자작은 잠시 고민하다가 도끼를 내려놓았다.
“……지금까지 보여 준 것들이 있으니 한 번만 더 믿어 보겠다.”
데미안은 고개를 숙이며 감사를 표했다.
그런 뒤, 즉시 공작가의 손님이 기다리고 있다는 응접실로 향했다.
응접실 안으로 들어가자 가장 먼저 정장을 차려입은 남자가 보였다.
남자는 혼자가 아니었다. 경호원 세 명과 함께 하고 있었다.
“오, 데미안 님 안녕하십니까.”
남자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포마드를 발라서 단정하게 빗어넘긴 머리카락이 빛에 반들거렸다.
“대쉬 앤 캐쉬의 서부지점장 올란 드미시라고 합니다.”
남자가 서글서글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예의 바른 말투와 달리 고개를 숙이지는 않았다.
* * *
올란 드미시.
데미안은 이 남자를 곧바로 기억해 내지 못했다.
현실에서는 몇 달 전의 일이겠지만 데미안의 입장에서는 수십 년 전 일이다.
이 남자에 대한 것은 이미 기억의 저편에 묻어둔 지 오래였다.
“대출받으실 때 이후로 처음 뵙는군요.”
하지만 그 말을 듣는 순간, 잊었던 기억이 슬며시 떠올랐다.
-어디서 오신 분이라고 하셨죠? 아아, 학센 자작가의 장남이시라고요. 어쩐지 품위가 남다르시더라.
-저는 대쉬 앤 캐쉬의 서쪽 지부를 담당하는 올란 드미시라고 합니다. 데미안 님과 달리 천출이라 굳이 이름은 기억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서류를 가져올 때까지 시간이 좀 걸리는데 차라도 한잔하시겠습니까? 술도 있습니다.
-기왕이면 가문의 땅을 담보로 잡으시는 게 어떻겠습니까? 그럼 더 많은 돈을 융통해 드릴 수 있습니다.
-이자가 너무 높다고요? 이건 형식에 불과합니다. 돈을 그냥 빌려드릴 수는 없으니까요.
-가문의 땅이라고 해서 걱정하실 필요 하나도 없습니다. 어떻게 저 같은 천민이 귀족님의 담보를 빼앗을 수 있겠습니까.
데미안을 꼬셔서 가문의 땅을 담보로 잡게 만든 사람이 바로 이 남자였다.
“약속하셨던 상환일이 오늘이라 이렇게 찾아뵙게 되었습니다. 빌려 가신 돈 20골드에 이자까지 합쳐서 30골드를 상환해 주셔야겠습니다.”
30골드.
아기토의 현상금이 100골드였으니 그 돈을 받았으면 무난하게 갚을 수 있는 금액이다.
하지만 그 100골드는 연공법으로 바뀐 지 오래였다.
‘그렇다고 연공법을 줄 수도 없지.’
교단의 호의가 담긴 선물이니 함부로 처분할 수도 없었다.
“알고 계시겠지만 오늘 내로 돈을 갚지 못하신다면 담보로 잡으신 땅은 저희 대쉬 앤 캐쉬의 소유가 됩니다.”
“형식적인 것이라고 하지 않았나?”
과거의 기억을 따라서 물었다.
그 물음에 올란 드미시는 슬며시 비웃음을 지었다.
“그럼요. 저 같은 천민이 어떻게 귀족 님의 담보를 빼앗겠습니까? 하지만 어쩌겠습니까. 골드픽시 공작가에서 빚은 반드시 받아 내라고 해서요. 귀족, 천민을 가리지 말고요.”
올란은 골드픽시 공작가라는 말을 유독 강조했다.
데미안이 돈을 빌린 대쉬 앤 캐쉬라는 대부업체는 골드픽시 공작가가 운영하고 있는 사업체였다.
골드픽시 공작가는 옛날부터 사업을 통해서 부와 명성을 쌓은 가문이었다.
대쉬 앤 캐쉬 이외에도 수많은 사업체를 가지고 있었다.
“아시겠으면 어서 돈을 가져오시지요. 아니면 혹시…… 갚으실 돈이 없으신 겁니까?”
올란 드미시가 간신배처럼 웃었다. 데미안은 팔짱을 낀 채 고민에 잠겼다.
‘전생에서는…… 결국 땅을 빼앗기고 가족 전체가 거리에 나앉을 위기에 처했지.’
다행히 누님인 루이즈가 어윈 라이언블룸에게 돈을 빌림으로써 땅과 영지를 지킬 수 있게 된다.
다만, 그 부탁을 대가로 루이즈는 평생 동안 어윈 라이언블룸에게 끌려다니게 되었다.
‘누님이 또 그런 일을 겪게 할 수는 없다.’
하지만 데미안이라 할지라도 지금 당장 30골드를 가져올 방법은 없다.
상환을 늦추거나 빚을 없앨 수 있는 다른 방법을 찾아내야 했다.
‘……잠깐만 조만간 골드픽시 공작가랑 라이언블룸 후작가 사이에서 결투가 벌어졌던 걸로 기억하는데.’
불현듯 생각났다.
금광의 소유권을 두고 벌어졌던 두 가문의 기사결투.
골드픽시 공작가는 그 결투에서 패배하여 금광의 소유권을 빼앗긴 것은 물론이고 명예까지 잃어버리게 된다.
‘결투에서 승리한 덕분에 라이언블룸 후작가에서는 엄청나게 강성해졌지.’
현재 학센 자작가는 라이언블룸 후작가의 원한을 샀다.
라이언블룸 후작가의 영향력이 커져서 좋을 게 하나도 없었다.
“돈은 마련하지 못했다.”
그 말에 올란의 비웃음이 더욱 강해졌다. 마치 예상이라도 했다는 듯이 말이다.
“그럴 거면 돈을 빌리지 말았어야지.”
올란은 의자에 털썩 주저앉았다. 다리를 꼬며 데미안을 깔보듯이 쳐다봤다.
“귀족이면서 그런 기본적인 상식도 갖추지 못한 건가? 아니면 망나니로 살다 보니 잊어버렸나?”
데미안에게 상환 능력이 없다는 사실을 알자마자 올란 드미시의 태도가 갑자기 달라졌다.
그러나 데미안은 그럴 줄 알았다는 듯 그다지 놀라지 않았다. 이미 전생에 경험해 봤던 일이었다.
“대신 다른 방법으로 빚을 갚겠다.”
“오, 그거 다행이군. 그런데 무슨 수로 30골드라는 거금을 갚으시려고?”
“이제 곧 라이언블룸 후작가와 금광을 놓고 결투를 벌이지 않나?”
“벌써 여기까지 소문이 퍼졌나?”
“그래서 공작가에서 실력 있는 기사들을 모집하고 있다던데.”
올란이 그게 너랑 무슨 상관이냐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
“날 공작가에 추천해라. 빚을 갚는 대신 골드픽시 공작가에 승리를 안겨주마.”
* * *
“푸하하핫.”
웃음이 터져 나왔다.
올란 드미시는 오랜만에 체면을 잊고 상스럽게 웃어댔다.
“지금 뭐라고 했지? 공작가에 승리를 안겨주겠다고?”
얼마나 웃기던지 뱃살이 땡겨 왔다. 고통스러웠지만 웃음은 멈추지 않았다.
“푸흡.”
“풋.”
그의 뒤에 서 있던 경호원들도 마찬가지였다.
미처 참지 못한 비웃음이 입술 사이를 비집고 튀어나왔다.
“으하하핫, 과연 대단한 자신감이야. 역시 라이언블룸 후작가의 이공자를 쓰러트리고, 랜드워크 도시의 폭력 조직을 몰아내신 기사님다워.”
데미안 학센에 대한 소문이라면 올란 드미시도 이미 알고 있었다.
모를 수가 없었다. 요즘 사람들이 둘 이상 모이면 항상 그 이야기를 하고 있으니 말이다.
“그런데 그런 거짓말이 나한테 통할 거라고 생각한 거야? 이러면 좀 화가 나는데.”
하지만 올란 드미시는 그런 헛소문에 속지 않았다.
그는 데미안 학센이 어떤 인간인지 잘 알고 있었다. 두 눈으로 직접 본 덕분이었다.
귀족이라는 점만 빼면 아무것도 없는 멍청이.
별 볼 일 없는 주제에 자존심만 앞서는 얼간이.
주제 파악도 못 하고 날뛰는 애송이.
그게 데미안 학센이었다.
“라이언블룸 후작가의 이공자한테는 독같은 것을 먹여서 이겼을 것이고, 랜드워크의 폭력 조직은 교단이 다 소탕한 걸 수저만 얹었을 게 뻔해.”
올란 드미시는 눈물을 닦아내며 말을 이어 나갔다.
“이봐, 그런 식으로 날 속이려 들지 마. 돈이 없으면 솔직하게 와서 빌어. 아, 그냥 비는 걸로는 부족하군.”
올란 드미시가 혓바닥으로 입술을 핥으며 말했다.
“그러고 보니 장녀께서 상당한 미녀시던데. 아니, 상당한 수준을 뛰어넘었어. 보고 눈이 확 뜨였지.”
올란 드미시가 주먹으로 손바닥을 팡팡 때리며 말했다.
“어때? 일주일만 빌려주면 상환일을 두 달 정도 연장시켜 주지.”
올란 드미시는 자신의 뒤에 서 있는 경호원들을 가리켰다.
“참, 나 혼자 쓰는 건 아니야. 여기 뒤에 보이지? 얘들도 함께 할 거거든? 여기저기 망가질지도 모르니까 신중하게 결정…….”
갑자기 들려온 쇳소리에 올란 드미시의 말이 끊었다.
어느새 데미안 학센이 장검을 빼들고 있었다.
* * *
올란 드미시는 자신의 직업이 좋았다.
대쉬 앤 캐쉬.
공작가의 사업체 정도면 어딜 가나 목을 빳빳하게 들어 어깨를 펴고 다닐 수 있었다. 봉급이 높은 것은 말할 것도 없다.
하지만 올란 드미시가 자신의 직업을 사랑하는 진짜 이유는 따로 있었다.
-미, 미안하네! 하, 한 달만 기다려 주게! 도, 돈은 꼭 갚겠네!
잘나신 귀족 나으리들의 한심한 몰골을 구경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 이렇게 빌겠습니다! 제발 저택 만큼은……!
천민으로 태어나서 항상 귀족을 우러러보기만 했다.
귀족이 행차할 때면 고개를 숙여야 했다.
귀족의 그림자조차 함부로 밟지 못했다.
그랬던 자신에게 귀족들이 신발이라도 핥을 것처럼 애원하는 모습은 꽤나 볼 만했다.
-내, 내 딸을? 다, 다른 방법은 안 되겠나? 아, 아니네! 시, 싫은 게 아니라!
-제, 제 몸을요? 자, 잠시만요! 전 남편이 있는 몸이에요!
올란 드미시는 이따금 자신의 은밀한 욕망을 채웠다.
그래도 귀족들은 아무런 저항도 못 했다. 갑은 올란 드미시고, 을은 저들이었으니까.
평범한 사채업이었다면 이런 호사는 누릴 수 없었으리라. 오히려 귀족들에게 돈을 떼먹히지 않으면 다행이지.
하지만 대쉬 앤 캐쉬는 공작가의 사업체였다.
변두리의 약소한 귀족들은 공작가의 권위 앞에 고개를 숙일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올란 드미시는 자신의 직업이 좋았다.
“다시 생각해 보는 게 좋을 거야.”
올란 드미시는 치밀어 오르는 웃음을 참아야 했다.
궁지에 몰린 귀족이 자신을 문다. 올란 드미시가 기대하는 최고의 상황이었다.
“내 뒤에 있는 친구들이 보통 강한 게 아니거든.”
올란 드미시는 언제나 경호원들을 데리고 다녔다.
공작가에서 지원해 준 자들이 아니라 올란 드미시가 직접 뽑은 이들이었다.
실력은 모두 준기사 이상이라 믿음직스러웠다.
“어디 보자…….”
데미안 학센은 손가락으로 올란 드미시와 경호원들을 가리켰다.
“세 놈은 죽이고, 넌 오른쪽 팔만 자르고 살려 두마. 공작가로 안내해 줄 길잡이가 필요하거든.”
올란 드미시와 경호원들은 서로 눈빛을 교환하며 웃었다.
저 얼간이가 지금 뭐라고 지껄이는 거지?
“내게 쓸모가 있는 걸 다행으로 여겨라.”
데미안의 눈동자가 시퍼렇게 빛났다.
어둠 속에서 숨어 있는 맹수의 눈동자를 보는 듯했다.
“난 가족을 욕보이는 개새끼들을 어지간해서는 살려 두지 않거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