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turn of the Calamity-Class Death Knight RAW novel - Chapter (2)
멸망급 데스나이트가 회귀함 2화
2화. 복수하러 왔다 (1)
“내게 무슨 일이 생긴 거지?”
데미안 학센은 들판 위에 누운 채로 중얼거렸다.
아크리치 도르고를 죽이고 자살했다. 저승으로 가서 가족들에게 사죄하고자 했다.
그런데 정신을 차려보니 과거로 회귀해 있었다.
“설마 꿈을 꾸고 있는 건가?”
사람은 죽을 때 일생이 주마등처럼 눈앞을 스치고 지나간다고 한다.
어쩌면 자살에 성공해서 지금 죽어 가는 중이고 주마등을 보고 있는 걸지도 몰랐다.
“아니면…… 반대로 그 모든 것이 꿈이었던 건가?”
가문에서 쫓겨나고, 용병이 되고, 아크리치를 만나고, 데스나이트가 되어 결국 모든 인간을 멸망시켰다.
어쩌면 그 모든 게 꿈속에서 벌어진 일들은 아니었을까.
“……확인해 보면 알겠지.”
전생에 데미안 학센은 무수히 많은 강자와 싸우면서 그들의 기술과 경지를 자신 것으로 삼았다.
만약 꿈이었다면 그 모든 지식도 허상일 것이다. 하지만 꿈이 아니라면…….
데미안은 바닥에 굴러다니고 있는 나뭇가지를 집어 들었다.
그리고 들판 위에 놓여 있는 바위 쪽으로 다가갔다. 바위는 무척 단단해 보였다.
“이 정도면 딱 적당하군.”
데미안이 싸웠던 상대 중에 ‘성벽파괴자’라 불리던 기사가 있었다.
그는 ‘쇄파(碎波)’라는 경지에 도달한 마스터였다.
쇄파는 타격을 통해 전달되는 충격을 몇 배로 증폭시키는 경지였다.
이 경지에 도달한 덕분에 성벽파괴자는 워해머 한 자루로 성벽을 유리창처럼 부수고 다닐 수 있었다.
데미안 학센은 성벽파괴자와 20분을 겨룬 끝에 그의 모든 기술과 경지를 흡수하고 승리를 거뒀다.
“꿈이 아니라 현실이라면…… 이 정도 바위는 쇄파로 쉽게 부술 수 있을 거야.”
데미안 학센은 나뭇가지로 바위를 겨누었다.
앞으로 튀어 나가며 팔을 내질렀다. 나뭇가지의 끝으로 바위의 중심을 찍었다.
그러자 충격을 견디지 못하고 나뭇가지가 으스러졌다.
데미안은 부서진 나뭇가지를 망연히 바라보다가 나지막이 중얼거렸다.
“……미치겠군.”
바위의 중심부에서 실금이 번져 나가기 시작했다.
실금은 거미줄처럼 바위 전체를 뒤덮었다.
이윽고 바위가 유리처럼 산산이 부서지며 무너져 내렸다.
“……꿈이 아니었어.”
이걸로 확실해졌다.
머릿속에 있는 기억과 지식들은 허상이 아니었다.
데미안 학센은 정말로 과거로 거슬러 올라온 것이다.
아직 가족들이 살아 있는 시기로, 아직 잘못을 바로잡을 수 있는 시간대로.
“……하핫.”
데미안 학센은 수년 만에 웃음을 터트렸다.
웃음은 이윽고 울음으로 변했다.
손으로 가슴을 움켜쥐었다. 그래도 감정을 억누를 수 없었다.
데미안 학센은 바닥에 웅크린 채 한참 동안 눈물을 흘렸다.
* * *
“어떻게 과거로 돌아오게 된 거지?”
울음이 멈추자 의문이 떠올랐다.
하지만 고민해 봤자 답이 나올 리가 없었다.
과거로 회귀하다니. 그야말로 신의 기적이라고밖에 표현할 수 없었다.
“가족들에게 사죄하고 싶다고 생각하기는 했지만…….”
설마 그 사죄를 이승에서, 그것도 과거에서 하게 될 줄은 몰랐다.
“전생의 나는 자신밖에 모르는 이기적인 놈이었지.”
가족들의 헌신을 알아보지 못하고 멋대로 행동했다.
가족들에게 상처를 입히고 결국에는 존속살해라는 끔찍한 죄악을 저질렀다.
하지만 이번에는 다를 것이다.
가족을 위해서 살겠다.
오직 그들의 행복과 미래만을 생각하며 살아야겠다.
“그렇게 어려운 목표는 아니야.”
데미안 학센에게는 재능이 있다.
모든 왕국을 멸망시키고도 끝을 알 수 없었던 재능이 있었다.
이 재능이라면 무엇이든 해낼 수 있다.
데미안 학센이 결심을 굳혔을 때였다.
“아이고! 도련님!”
저택에서 남자 하인 한 명이 다급하게 달려왔다.
체력이 그리 좋지 못한지 데미안 학센 앞에 도착하자마자 숨을 헐떡였다.
“루이즈 아가씨께서 들어오라고 하셨는데. 왜 여태 안 오신 겁니까! 가주님의 분노가 극에 달하셨습니다요!”
데미안 학센은 남자 하인의 얼굴을 빤히 바라봤다.
분명 익숙한데 기억이 잘 나지 않았다.
“……빅터.”
그러다 불현듯 떠올랐다. 이 남자 하인의 이름이.
“맞아. 빅터라는 이름이었어.”
“예? 제 이름은 갑자기 왜 부르시는 겁니까요?”
“아무것도 아니다.”
망나니처럼 살던 시절, 데미안 학센의 뒤치다꺼리를 담당했던 하인이 빅터였다.
“가주님께서 다리몽둥이를 분질러서라도 도련님을 꼭 데려오라고 하셨습니다!”
“아버지께서 화가 많이 나신 모양이군. 내가 무슨 짓을 저질렀기에 그러시는 거지?”
데미안 학센의 말에 빅터는 어처구니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데미안 학센으로서는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자신이 정확히 어느 시간대로 회귀했는지 전혀 몰랐기 때문이다.
“며칠 전에 술집에서 시비가 붙었다가 거기 직원들한테 된통 얻어터지셨잖아요. 그거 때문에 화가 나신 겁니다.”
잊고 있었던 기억의 단편이 되살아났다.
다만 왜 술집에 갔는지는 기억이 나지 않았다.
딱 한 가지, 그 술집에서 바가지를 씌우는 바람에 난동을 피웠다가 개처럼 얻어맞고 도망친 기억은 났다.
“그래서 아버지께서 화가 많이 나셨군.”
“많이 나신 정도가 아닙니다. 그 소문이 지금 쫙 퍼져서 학센 자작가의 위상이 땅에 떨어졌습니다요. 그걸 아시고 노발대발하고 계셔요.”
영지도 작고, 힘도 약하다지만 학센 자작가는 엄연한 귀족이다.
그런데 장남이라는 놈이 술집에서 평민들에게 얻어터지고 쫓겨났다.
망신도 이런 망신이 없었다.
“일단 아버님께 가 봐야겠구나.”
“가서 뭘 어쩌시려구요?”
“네가 가 봐야 한다지 않았더냐.”
“그렇게 말씀드리긴 했지만…… 어디 숨어 있다가 가주님의 분노가 잠잠해지길 기다리는 게 낫지 않을까 싶습니다요.”
그 말에 데미안 학센은 고개를 저었다.
“그럴 수는 없지.”
“예?”
“이번 생에는 가족들에게 부끄러운 짓을 하지 않기로 결심했거든.”
순간, 빅터의 얼굴이 멍해졌다.
데미안 학센이 이런 말을 하는 것이 무척 낯설다는 듯이 말이다.
“그럼 나는 아버지께 가 보마.”
데미안 학센은 빅터의 어깨를 두드리며 저택으로 향했다.
* * *
“이노오옴!”
영주실에 들어오자마자 칼이 날아들었다.
아버지가 롱소드를 내려친 것이다.
데미안 학센은 피하지 않았다.
칼날의 궤도로 보아하니 자신을 죽일 생각이 없어 보였다.
아니나 다를까 롱소드는 데미안 학센의 머리 옆을 스치고 지나가서 문에 박혔다.
“여보! 진정하세요!”
“아버지! 제발 그만하세요!”
누님과 어머니가 황급히 달려와서 아버지의 양팔을 붙잡았다.
하지만 아버지의 분노는 누그러들 기색을 보이지 않았다.
“정녕 네가 미쳤구나! 술집에서 난동을 피우다가 쫓겨나? 그것도 모자라서 우리 가문의 이름을 팔아먹어? 네놈 때문에 우리 가문의 명예가 얼마나 실추되었는지 아느냐?”
아버지는 씩씩거리며 문에 박힌 롱소드를 뽑으려 했다.
누님과 어머니가 필사적으로 아버지를 말렸다.
“이거 놓으시오! 내 오늘 저놈의 머리통을 깨 버려야겠소!”
“안 돼요! 진짜 데미안을 죽일 생각이세요!”
“아버지! 우리 이성적으로 생각해요! 이러다 큰일 나겠어요!”
세 사람이 옥신각신 다투기 시작했다.
그러나 정작 사건의 주범인 데미안 학센은 감회에 젖어 있었다.
‘아버지께 혼나는 게 얼마만이지?’
과거에는 그토록 아버지를 싫어했다.
고리타분하고 꽉 막혀 있는 인간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제 와서 생각해 보면 아버지는 언제나 데미안 학센을 걱정했었다.
사건이 터질 때마다 금방 알아차리는 게 그 증거였다.
“젠장! 알겠으니 이만 놓으시오!”
결국 실랑이 끝에 승리한 것은 어머니와 누님이었다.
아버지는 벽에 꽂힌 롱소드를 손에서 놓았다.
그리고 근처에 있는 의자에 털썩 주저앉았다.
“왜 말이 없느냐! 변명이라도 해 보란 말이다!”
그렇다고 화까지 누그러든 것은 아니었다.
아버지의 호통에 데미안 학센은 곧바로 대답했다.
“없습니다.”
“그래! 없겠지! 입이 있으면…… 뭐. 뭐? 없다고?”
아버지가 당황해서 되물었다.
당연한 반응이었다.
과거의 데미안 학센은 항상 변명과 자기변호를 일삼는 한심한 놈이었으니까.
“제 실수로 학센 자작가의 명예를 더럽히고 말았습니다. 변명의 여지가 없는 제 잘못입니다.”
하지만 지금의 데미안 학센은 달랐다.
그는 가족의 앞에서 부끄러운 짓을 하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그, 그래 알기는 제대로 알고 있구나.”
아버지가 떨떠름한 표정을 지었다.
데미안 학센이 곧바로 잘못을 인정하자 당혹감에 화를 낼 수가 없는 상황이었다.
“여보, 보세요. 저 아이도 잘못했다고 말하고 있잖아요. 이만 용서해 주세요.”
“아버지, 제가 책임지고 혼낼게요. 다시는 이런 일이 없도록 할 테니까…….”
어머니와 누님이 아버지를 달래기 시작했다.
데미안 학센은 그리움 가득한 얼굴로 그 모습을 바라봤다.
언제나 이랬다.
자신이 잘못을 저지르면 아버지는 화를 내었고 어머니와 누님이 자신을 옹호해 줬다.
그때는 두 사람의 행동이 귀찮기만 했다.
자신을 애 취급한다고 느꼈다. 실제로는 전혀 그렇지 않았는데.
“아뇨. 용서해 주실 필요 없습니다.”
하지만 이제는 저 두 사람의 도움을 받아서는 안 됐다.
“죄를 저질렀으니 벌을 받겠습니다.”
데미안 학센의 돌발선언에 어머니와 누님의 눈동자가 커졌다.
“이노옴!”
사그라지던 아버지의 분노가 다시 거세게 타올랐다.
“네놈이 아직도 정신을 못 차렸구나! 빌어도 모자랄 판에 감히 자존심을 세워?”
아버지 입장에서는 데미안 학센이 대든다고 받아들여진 모양이다.
이것도 데미안 학센의 잘못이었다.
망나니 시절의 그는 툭하면 아버지와 맞먹으려 들었다.
“이놈이 아직 정신을 못 차렸구나! 오냐! 네놈에게 벌을 내려 주마! 내 절대로 이번 일은 그냥 넘어가지 않을…….”
“하지만 그전에 제가 저지른 일을 수습하고 오도록 하겠습니다.”
“뭐, 뭣?”
아버지가 눈동자를 동그랗게 떴다.
망나니 시절의 데미안 학센은 단 한 번도 자신의 잘못을 책임지려 하지 않았다.
그랬던 자식의 입에서 ‘수습’이라는 말이 나오니 놀랄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벌은 그때 제대로 받도록 하겠습니다.”
데미안 학센은 공손하게 인사한 뒤, 영주실을 나갔다.
“…….”
아버지는 천천히 고개를 돌려서 아내와 딸을 바라보며 물었다.
“혹시 그날 너무 얻어맞아서 머리라도 다친 걸까?”
* * *
영주실을 나왔을 때였다.
데미안 학센은 복도에 서 있는 한 소년을 마주하게 되었다.
“…….”
두 사람은 한동안 말없이 서로를 바라봤다.
데미안 학센은 감격스러웠기 때문이었고, 소년 쪽은…….
“형님, 대체 언제까지 가문에 폐를 끼칠 생각이십니까?”
데미안 학센을 경멸했기 때문이었다.
“아버지와 어머님, 누님께서 형님 때문에 얼마나 마음고생을 하고 계신지 모르시겠죠. 아신다면 그렇게 행동할 수 없을 테니까요.”
동생 아벨 학센은 데미안 학센과 달리 똑 부러지고 능력이 넘치는 아이였다.
학센 자작가의 자랑이자 희망이라고 불릴 정도였다.
부끄럽게도 데미안 학센은 그런 동생을 질투했다.
“아벨.”
“왜요. 또 무슨 변명을 하시려고요. 이제 형님의 변명을 듣는 것도 질린…….”
“그동안 미안했다.”
아벨 학센의 눈동자가 커졌다.
너무 놀란 나머지 한 번도 눈을 깜빡이지 않았다.
“이번 일은 내가 책임지고 해결하도록 하마.”
데미안 학센은 걸음을 내딛었다.
동생의 어깨를 한번 두드린 뒤, 밖으로 나갔다.
밖으로 나오자 빅터가 놀란 얼굴로 데미안 학센에게 물었다.
“어? 도련님? 왜 멀쩡하신 겁니까? 전 틀림없이 영주님께 얻어맞으실 줄 알았습니다.”
“시답잖은 소리는 그만하고 마차나 끌고 와라.”
“예? 마차는 왜요?”
그 물음에 데미안 학센이 대수롭지 않게 말했다.
“당한 만큼 되갚아 주러 가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