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turn of the Calamity-Class Death Knight RAW novel - Chapter (20)
멸망급 데스나이트가 회귀함 20화
20화 빚쟁이 (2)
“한심한 새끼. 목숨을 구걸해도 모자랄 판에 아직도 허세를 부리다니.”
올란 드미시가 손가락을 까딱거렸다. 경호원 세 명이 칼을 빼들었다.
“정신이 번쩍 들게 해 줘라. 죽이지는 말고.”
경호원들이 실실 웃으며 데미안을 포위했다.
세 명 모두 빈틈이 많았다. 그리 실력이 뛰어난 편은 아닌 듯했다.
그와는 별개로 살기가 묵직하고 끈적거렸다.
사람을 한두 명 죽여서는 얻기 힘든 살기였다.
“어이, 도련님. 죽이기 전에 진귀한 구경이나 시켜 줄까?”
경호원 한 명이 얼굴 앞에 칼날을 세웠다.
시퍼런 오러가 칼날을 뒤덮었다. 경호원은 데미안의 앞에 대고 칼을 흔들며 자랑했다.
“이거 보여? 이게 오러라는 거야. 구경이나 해 봤을 라나 모르…….”
데미안이 칼을 휘둘렀다. 아래에서 위로 끌어올리며 사선을 그었다.
장검이 경호원의 목을 베고 지나갔다. 머리가 땅으로 툭 떨어졌다.
머리를 잃고도 몸통은 한동안 계속 서 있었다. 이윽고 바닥으로 허물어졌다.
다들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알아차리지 못했다.
심지어 죽은 경호원조차.
“적을 코앞에 두고 방심하면 쓰나.”
데미안은 장검을 허공에 휘둘렀다. 핏자국이 땅바닥에 흩뿌려졌다.
“이, 이 자식이!”
상황을 파악했는지 다른 경호원이 분노를 터트렸다.
“주, 죽여 버리겠어!”
경호원이 칼을 높이 치켜든 채 달려들었다.
이대로 단숨에 데미안의 정수리를 쪼갤 생각인 듯했다.
데미안은 무심하게 칼을 휘둘렀다.
가장 먼저 위로 들어 올린 두 팔을 절단했다. 곧이어 가슴을 베었다. 마지막으로 허리를 끊어 놓았다.
세 번의 칼질.
경호원은 그중에 단 하나도 보지 못하고 절명했다.
“굼뜨고 느리군.”
데미안은 시선을 돌려서 마지막으로 남아 있는 경호원을 쳐다봤다.
경호원의 눈동자가 마구 흔들렸다.
“으, 으아아악!”
경호원은 검을 내던지고 몸을 돌렸다. 창문으로 몸을 날리려고 했다.
하지만 그보다 먼저 데미안이 땅을 박찼다. 경호원을 스치고 지나갔다.
경호원의 목에 혈선이 그어졌다. 그대로 머리가 땅에 떨어졌다.
“겁쟁이면 아예 검을 잡지 말았어야지.”
데미안은 그리 말하며 올란 드미시를 돌아봤다.
올란 드미시는 완전히 넋이 나가 있었다.
“마, 말도 안 돼…… 어, 어떻게 학센 자작가의 마, 망나니가…… 이, 이런 실력을…….”
데미안은 올란 드미시에게 다가갔다.
그제야 올란 드미시는 정신을 차리고 비명을 질렀다.
“으, 으아악! 아아악!”
올란 드미시는 의자에 앉은 채로 발버둥을 쳤다. 그 바람에 등받이 뒤로 홀라당 넘어갔다.
올란 드미시는 바닥에서 허우적거렸다. 간신히 손으로 땅을 짚고 몸을 일으키려 했다.
그 순간, 손목을 향해 장검이 떨어졌다. 칼날이 손목을 절단했다.
“……아.”
올란 드미시는 믿기 힘들다는 얼굴로 줄어든 손목을 쳐다봤다.
“아악! 으아악! 내, 내 손! 내 소오…… 컥!”
데미안이 올란 드미시의 턱을 걷어찼다.
입이 닫히면서 비명이 뚝 끊어졌다. 올란 드미시는 입을 붙잡고 신음했다.
“닥쳐라. 시끄럽다.”
데미안은 올란 드미시의 목에 칼날을 바짝 붙였다.
올란 드미시의 얼굴이 사색이 되었다.
“데, 데미안 하, 학센! 아니, 아니 데, 데미안 님!”
죽음에 대한 공포가 고통을 억눌렀다. 올란 드미시는 데미안의 앞에 바짝 엎드렸다.
“이, 이 천한 것이 모, 목숨 아까운 줄 모르고 하, 함부로 떠들어댔습니다!”
지금 이 순간, 올란 드미시의 머릿속에는 살아남아야 한다는 생각밖에 떠오르지 않았다.
“제, 제발 모, 목숨만은 살려 주십시오! 이, 이렇게 애원하겠습니다!”
“아니지. 살고 싶으면 다른 말을 해야지.”
데미안이 칼날을 바짝 붙였다. 피부가 베이며 피가 흘러내렸다.
올란 드미시는 필사적으로 머리를 굴렸다.
눈 깜짝할 사이에 수천 가지 생각이 머릿속을 스치고 지나갔다.
“……고, 공작가까지 최선을 다해서 모시겠습니다!”
올란 드미시가 필사적으로 소리쳤다.
“똑똑한 녀석이군.”
그제야 데미안은 칼을 거둬들였다.
* * *
데미안을 보낸 뒤, 학센 자작은 한시도 자리에 앉아 있지 못했다.
방안을 빙글빙글 돌며 한숨만 푹푹 내쉬었다.
학센 자작뿐만 아니었다. 막내아들인 아벨 또한 아버지와 똑같이 행동하고 있었다.
“하아.”
“하아.”
두 부자가 똑같이 한숨을 내쉬었다. 누가 부모와 자식 아니랄까 봐 표정이 똑같았다.
“여보, 이만 앉아서 쉬세요. 그러다 땅 꺼지겠어요.”
“아벨, 너도 이리 와서 앉아 있어.”
학센 부인과 장녀 루이즈가 말했다.
부자와 달리 모녀는 여유로운 태도로 티타임까지 즐기고 있었다.
“부인, 어떻게 앉아서 쉴 수 있겠소. 가문이 몰락할지도 모르는데.”
“누님, 맞습니다. 가문의 운명이 걸려 있는데 어떻게 가만히 있을 수 있단 말입니까.”
두 사람의 항변에 학센 부인과 루이즈가 평온한 얼굴로 말했다.
“데미안이 알아서 잘하겠다고 말했잖아요.”
“맞아요. 지금은 데미안을 믿고 기다리도록 해요.”
학센 자작과 아벨은 황당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당신은 어떻게 그렇게 여유로울 수 있는 게요?”
“누님, 형님의 그 말을 믿으시는 겁니까?”
학센 부인은 차를 한 모금 머금었다. 향을 즐긴 뒤에 입을 열었다.
“지금까지 데미안이 나서서 실패한 적이 있었나요? 없었잖아요.”
“그건 데미안에게 범상치 않은 검술 실력이 있어서 가능했소. 하지만 검술 실력과 협상 능력은 별개요.”
분명 데미안은 엄청난 실력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실전에서 통하는 것이었다.
눈치와 말솜씨가 중요한 협상의 자리에서는 아무짝에도 쓸모없었다.
“아버지, 지금이라도 형님께 한번 가 보죠.”
아벨의 말에 학센 자작은 마음이 혹했다.
그래, 지금이라도 가서 데미안을 돕는 게…….
“데미안을 믿겠다고 말했으면서 도우러 가겠다고요?”
“아버지, 안 그러시는 게 좋을 것 같아요.”
두 모녀의 지적에 학센 자작은 흠칫했다.
믿고 맡기겠다고 말했으면서 갑자기 개입한다?
데미안을 완전히 무시하는 행위였다.
학센 자작이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있을 때였다.
방문이 벌컥 열리며 데미안이 들어왔다.
“아버지, 다녀왔습니다.”
데미안의 등장에 모든 가족이 반색했다.
특히 아버지는 한걸음에 달려갈 정도였다.
“데미안! 어떻게 되었느냐? 잘 해결되었느냐?”
“예, 해결됐습니다. 저쪽에서 더 이상 빚을 묻지 않겠다는 확답까지 받아 냈습니다.”
학센 자작의 얼굴에 환한 미소가 떠올랐다.
그러다 문득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협상 결과가 좋아도 너무 좋았던 것이다.
상환일을 늦추는 것도 아니고, 빚을 감면받는 것도 아닌 아예 묻지 않겠다니?
“그게 정말이냐?”
“예, 안 그래도 못 믿으실 것 같아서 본인을 직접 데려왔습니다.”
데미안이 손짓했다. 문 너머에서 한 남성이 걸어들어왔다.
잘 차려입고 있었으나 옷은 헤집어져 있고, 머리는 헝클어져 있어서 초라해 보였다.
“네가 직접 말씀드려라.”
“예, 예!”
데미안의 말에 남자는 벌벌 떨며 고개를 끄덕였다.
“하, 학센 자작님이시죠? 처, 처음 뵙겠습니다. 대쉬 앤 캐쉬의 서부지점장을 맡고 있는 올란 드미시라고 합니다.”
“그, 그렇소만…….”
학센 자작은 크게 당황했다. 뭔가 자신이 기대했던 것과는 크게 달랐다.
“빚을 묻지 않겠다고 했는데…… 그게 정말이오?”
“저, 정말입니다! 오늘 이후로 돈 문제로 학센 자작가를 귀찮게 할 일은 일절 없을 겁니다! 예, 없고말고요!”
올란 드미시가 큰 소리로 외쳤다. 학센 자작의 당혹감은 더욱 커졌다.
“데미안이 대체 무슨 말을 했기에…… 그걸 허락한 거요?”
“이, 이제 곧 공작가와 후작가 사이에 기사 결투가 열립니다! 데미안 학센님께서는 빚을 갚는 대신 그 결투에서 참전하기로 하셨습니다!”
공작가와 후작가 사이에서 벌어지는 결투라면 학센 자작도 일찍이 들어봤다.
금광에 가문의 명예까지 걸려 있기에 공작가로서도 절대로 패배해서는 안 될 중요한 결투였다.
“설마 그런 조건을 걸었을 줄이야…….”
즉, 데미안은 자신의 무력을 팔아서 빚을 갚으려는 셈이었다.
이러면 학센 자작도 납득할 수밖에 없었다.
“데미안…… 정말 약속대로 네 혼자서 해결했구나.”
“말씀드렸잖아요. 믿어 달라고.”
학센 자작은 머쓱한 표정을 지었다. 사실 데미안을 완전히 믿지 못했기 때문이다.
“수고 많았다. 이만 들어가서 쉬도록…….”
그때, 학센 자작의 시야에 이상한 것이 들어왔다.
올란 드미시의 손목에 붕대가 감겨 있었던 것이다. 피가 새어 나온 탓에 붕대는 빨갛게 물들어 있었다.
“……데미안?”
“왜 그러세요?”
“혹시나 싶어서 물어보지만…… 저 손목은 네가 그런 것이냐?”
“협상 도중에 의견충돌이 조금 있어서 어쩔 수 없었습니다.”
갑자기 현기증이 느껴졌다. 학센 자작은 이마에 손을 얹었다.
“아, 그리고 하인들을 보내서 응접실을 청소하셔야 할 것 같습니다.”
“왜, 왜? 또 무슨 일인 것이냐.”
“의견충돌을 해결하는 과정에서 이놈의 경호원들이랑 부딪혀서요.”
데미안이 손날로 목을 긋는 시늉을 했다.
“응접실을 좀 더럽히고 말았습니다.”
학센 자작은 두 손바닥으로 얼굴을 쓸었다.
숨을 크게 들이마신 뒤 소리쳤다.
“데미아아안! 또 무슨 짓을 저지른 거시냐아아아!”
* * *
데미안은 학센 자작에게 자세한 사정을 설명했다.
처음에는 분노했던 학센 자작이지만 올란 드미시가 루이즈를 희롱했다는 소리에 반응이 완전히 달라졌다.
-이런 죽일 놈을 봤나!
길길이 날뛰는 학센 자작을 가족들이 말렸다. 덕분에 올란 드미시는 무사할 수 있었다.
-그럼 아직 빚이 없어진 것은 아니구나.
올란 드미시는 지점장일 뿐이었다. 데미안이 협상을 할 진짜 상대는 공작이었다.
-네 실력이야 두말할 것도 없이 뛰어나다만…… 공작이 널 상대해 줄지 모르겠다.
학센 자작이 걱정하는 것도 당연했다.
공작의 곁에는 내로라하는 기사들이 모여 있을 게 분명했다.
결투에 참가하기 위해서는 그들을 뛰어넘어야 했다.
-자신 있느냐?
학센 자작의 물음에 데미안은 망설임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 * *
그렇게 이튿날이 되었다.
데미안은 여행을 떠날 채비를 갖추고 밖으로 나왔다.
가족들과 아그네스가 영지 입구에서 데미안을 기다리고 있었다.
“아그네스 님, 여러 가지로 도움을 주셔서 감사했습니다.”
데미안은 우선 아그네스에게 감사 인사를 했다.
아그네스는 후작가와의 전쟁을 막아 줬을 뿐만 아니라 빅터까지 치료해 줬다.
조사단에 속해 있던 사제가 사용해 준 성법 덕분에 빅터는 큰 부상에서 회복될 수 있었다.
“당연히 해야 할 일이었습니다.”
데미안의 감사에 아그네스가 대수롭지 않게 말했다.
“조사가 얼추 끝났으니 저희는 내일모레 돌아갈 계획입니다.”
데미안은 오늘 떠난다. 둘이 만나는 것은 오늘이 마지막이었다.
“데미안 님의 여행에 축복이 깃들기를 바라겠습니다.”
아그네스가 성호를 그었다. 데미안도 똑같이 행동했다.
“아, 그리고 생각이 바뀌신다면…….”
“성기사 할 생각 없습니다.”
안 그래도 저 소리가 나올 것 같았기에 데미안이 칼같이 끊었다.
아그네스의 얼굴이 저절로 시무룩해졌다.
“그럼 잘 다녀오겠습니다.”
다음으로 데미안은 가족들에게 인사를 했다.
“데미안, 이걸 가져가렴.”
어머니가 데미안에게 무언가를 내밀었다. 금테가 둘려져 있는 포션이었다.
“예전에 운 좋게 얻은 상급 포션이란다. 목숨이 위험할 정도로 위급한 상처들도 금방 치료가 된다더구나. 잘 가지고 있다가 위험해지면 사용하거라.”
어머니의 설명이 길게 이어졌다.
하지만 데미안의 귀에는 어느 것도 들어오지 않았다.
아크리치 도르고의 명령에 의해 동생을 죽였을 때, 이 포션을 본 적이 있었다.
목이 잘려 나간 동생의 시체를 붙잡고 어머니는 이 포션을 부었다.
어머니의 절규와 원망이 아직도 귀에 선했다.
“……,”
달갑지 않은 기억에 묻어 두었던 감정들이 떠올랐다.
도르고에 대한 증오심이, 무력했던 자신에 대한 분노가, 끔찍한 현실에 대한 절망이.
스멀스멀 데미안의 마음을 지배했다.
“데미안?”
어머니의 목소리에 데미안은 퍼뜩 정신을 차렸다. 포션병을 소중히 품에 넣으며 말했다.
“……감사합니다. 이 포션은 돌아와서 꼭 돌려드리도록 하겠습니다.”
데미안은 마지막으로 루이즈와 아벨을 돌아봤다.
누님은 걱정스러운 표정을 짓고 있었다. 아벨은 데미안의 시선을 외면 중이었다.
“데미안, 꼭 몸조심해야 한다. 알았지?”
데미안은 고개를 끄덕인 뒤, 동생을 쳐다봤다.
동생은 데미안의 시선을 애써 외면했다.
“아벨.”
“……왜요.”
“돌아오면 활쏘기나 연습하자.”
난데없는 말에 아벨의 얼굴에 의문이 떠올랐다.
데미안은 아벨의 귓가에 속삭였다.
“코퍼헤드 백작가의 영애가 사냥을 좋아하지 않느냐. 가서 잘 보이려면 활을 잘 쏠 줄 알아야지.”
그 말에 아벨의 얼굴이 시뻘겋게 물들었다.
“혀, 형님이 어, 어어, 어떻게 그걸 알고…….”
전생에 용병으로 일하면서 데미안은 계속 학센 자작가에 대한 정보를 계속 모았다.
그중에 아벨이 코퍼헤드 백작가의 영애에게 청혼을 했다가 실패했다는 내용도 있었다.
심지어 돈도 없고, 지위도 낮다는 이유로 백작에게 큰 모독을 당했다고 들었다.
“다 아는 방법이 있지.”
당황해 하는 아벨을 내버려 둔 채 데미안은 마차로 다가갔다.
“오, 오셨습니까.”
올란 드미시가 하나만 남은 손으로 마차의 문을 열었다.
“마차가 꽤 넓군.”
데미안은 마차의 내부를 들여다보며 말했다.
“제, 제가 불편한 자리는 못 참아서 일부러 비싼 물건으로 장만했습니다.”
“이런 마차라면 여행길을 기대해도 되겠군. 그렇지?”
“다, 당연합니다! 마 마차뿐만 아니라 다른 불편사항이 없도록 각별히 신경 쓰겠습니다.”
올란 드미시는 애써 웃으며 말했다.
“좋은 마음가짐이야.”
데미안은 올란 드미시의 머리를 톡톡 두드리며 마차에 올랐다.
빅터도 냉큼 데미안을 따라서 마차 위에 올라갔다.
마차가 대로를 달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