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turn of the Calamity-Class Death Knight RAW novel - Chapter (212)
멸망급 데스나이트가 회귀함 212화(212/225)
멸망급 데스나이트가 회귀함 212화
212화 헬리안 경연 (1)
경연 당일이 되자 수도의 모든 시민이 콜로세움으로 모여들었다.
수만 개가 넘는 좌석이 순식간에 가득 찼다. 음식과 음료를 파는 상인들이 곳곳에서 호객행위에 여념이 없었다.
“역시 가장 강력한 우승 후보는 아치볼트 아니겠어?”
관객들은 곧 열릴 경연을 기대하며 열띤 토론을 벌였다.
가장 뜨거운 화제는 바로 마스터클래스 종목에서 누가 우승하냐는 것이었다.
“아치볼트는 지난번 경연에서 결승전까지 올라갔어. 패배하기는 했지만 간발의 차이였지.”
우승자는 같은 종목에 또 참가할 수 없다.
그러니 지난번 경연 때 2등을 한 아치볼트가 사실상 1등이 아니냐는 게 그의 주장이었다.
“그것 또 모를 일이지. 그때는 브레들리 히스가 없었잖아.”
옆자리에 앉은 남자가 반론을 꺼내 들었다.
헬리안 경연은 4년 주기로 개최되었다. 지난번 경연 때, 브레들리 히스는 하이클래스였기에 마스터클래스 종목에 참가하지 못했다.
경연이 끝난 이후, 브레들리 히스는 마스터클래스에 올랐다. 아치볼트보다 훨씬 이른 시기였다.
브레들리 히스의 재능이 아치볼트보다 뛰어나다는 것에 의심의 여지는 없다. 그렇기에 남자는 브레들리 히스를 우승 후보라고 생각했다.
“어허, 브레들리 히스가 천재기는 하지만 마스터클래스로서 경력은 아치볼트가 훨씬 길어.”
“자네는 경연을 한두 번 구경하나? 재능이 뛰어난 기사가 선배를 뛰어넘는 경우가 얼마나 많은데.”
두 사람은 열을 올려가며 싸웠다. 그때, 앞자리에 앉아 있던 사내가 두 사람을 돌아보며 말했다.
“두 분께서는 소문이 늦으시군요.”
“넌 또 누구야?”
“제가 누군지가 중요합니까. 우승 후보로 아치볼트랑 브레들리를 거론하셨는데. 저는 생각이 다릅니다. 최근에 아주 엄청난 기사가 나타났거든요.”
두 사람은 사내의 말에 귀를 쫑긋 세웠다.
“우승 후보라니?”
“그 기사는 무려 20대 초반이라는 나이에 마스터클래스에 올랐다고 합니다.”
“뭐? 20대 초반?”
두 사람은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방금 두 사람이 논하고 있던 브레들리 히스가 20대 후반이라는 나이에 마스터클래스에 올랐다.
그러고도 브레들리 히스는 몇십 년 만에 제국에 나타난 신성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었다.
그런 브레들리 히스보다 더 이른 나이에 마스터클래스에 오른 사람이 있다니?
“애플 왕국에서 온 데미안 학센이라는 기사가 그렇다고 하더군요.”
하지만 애플 왕국이라는 말에 두 사람은 떨떠름한 표정을 지었다.
“애플 왕국? 제국의 기사가 아니잖아.”
“다른 왕국의 기사 따위가 우승 후보라고? 그런 멍청한 소리는 처음 들어보는군!”
헬리안 경연은 종목을 불문하고 대부분 제국의 기사들이 우승을 해 왔다.
그만큼 제국의 기사들은 다른 왕국의 기사들보다 수준이 높았기 때문이다.
이는 제국민들의 자부심이기도 했다. 제국의 기사가 대륙 최강이라는 뜻이었으니 말이다.
“아무튼 우승자는 아치볼트가 될 거야!”
“무슨 소리! 브레들리 히스라니까!”
두 남성이 다시 목소리를 높이며 싸우기 시작했다. 사내는 쯧쯧 혀를 차며 다시 시선을 앞으로 돌렸다.
“돈 거실 분 계세요? 우승자를 예측하고 자신의 안목과 운을 시험해 보세요!”
그때, 한 소년이 간이 매대를 목에 건 채 돌아다니고 있는 게 보였다.
“얘야, 이리 와볼래?”
“예! 돈 거실려구요?”
“그래.”
사내는 금화를 꺼내 매대에 올려놓았다.
“데미안 학센한테 금화 다섯 닢.”
상당한 거금이었지만 사내의 얼굴에는 망설임이 없었다.
* * *
“이렇게 보니까 제국의 기사들이 다르긴 다르네요.”
콜로세움 내부에 마련된 대기실.
미하엘 라이언블룸은 다른 기사들을 둘러보며 말했다.
“같은 갑옷을 입혀 놔도 구분이 될 것 같아요. 제국의 기사들 쪽이 훨씬 기세가 강합니다.”
대기실에는 경연에 참가하는 기사들이 마구 뒤섞여 있었다.
물론 모든 기사가 이곳에 있는 것은 아니었다. 제국의 기사들 중에서도 권세 있는 가문의 출신들은 개인실을 제공받았다.
“제국에는 오래된 가문이 많으니까.”
데미안이 관심 없다는 투로 말했다.
제국의 기사들이 더 뛰어난 건 딱히 놀랄 만한 일이 아니었다.
오래된 가문들은 그만큼 수준 높은 마나연공법과 검법을 보유하고 있었다.
게다가 제국에는 대륙의 모든 부와 재물이 모여들었기에 효과가 뛰어난 영약을 아주 쉽게 구할 수 있었다.
“그리고 뭔 약한 척이냐. 내가 모를 줄 알아? 죄다 네 아래로 보고 있잖아?”
데미안의 말에 미하엘은 뒷머리를 긁적였다.
미하엘은 원래 굉장히 오만한 기사였다. 하늘 아래에 자신보다 뛰어난 천재는 없다고 확신했을 정도였다.
데미안을 만나면서 달라지긴 했지만 그 성격이 완전히 사라질 리가 없었다.
“솔직히 말해서 레이첼 영애만 아니면 다 이길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별장에서 머무는 동안 미하엘은 종종 레이첼과 대련을 했다.
결과는 미하엘의 전패였다. 심지어 제대로 싸워 보지도 못하고 패배했다.
검후의 재능을 생각하면 당연한 일이었다. 전생에서도 미하엘은 단 한 번도 검후를 이기지 못했다.
“그래서 순순히 져줄 생각이냐?”
“그럴 리가 있겠습니까. 반드시 설욕할 생각입니다.”
미하엘의 눈동자가 날카롭게 변했다.
데미안은 쓴웃음을 지었다. 그의 예상으로는 이번에도 미하엘이 패배할 확률이 높았다.
하지만 세상일이란 어떻게 될지 모르는 법. 게다가 미하엘의 재능도 결코 얕잡아볼 수 없었다.
“근데 경연이 어떻게 진행이 된다고 했지?”
“종목별로 하루에 여섯 번씩 진행이 된다고 합니다.”
참가자가 많은 만큼 하루에 진행되는 경기의 횟수도 많았다.
“미들클래스 쪽은 걱정 없겠네요. 저 녀석보다 강해 보이는 사람은 한 명도 없으니까요.”
미하엘은 베로니카를 쳐다보며 말했다.
제국은 물론이고 다른 왕국의 기사들 중에서도 베로니카보다 강해 보이는 사람은 없었다.
다만, 마냥 방심할 수는 없는 상황이었다.
“하아…… 심심하다.”
베로니카가 창가에 몸을 기댄 채 중얼거렸다.
“귀랑 코를 잘라서 둥글게 만들고 싶다…… 피부 밑에 칼날을 집어넣고 쫙쫙 뜯어내고 싶다…….”
며칠째 사람을 죽이지 못한 탓에 베로니카의 정신 상태는 조금 위험한 수준까지 왔다.
사람을 죽여야 정신 상태가 안정이 된다니. 아무리 봐도 쓰레기 같은 천성이었다.
“……저대로 경연에 내보냈다가 누구 죽이면 큰일 나는 거 아닙니까.”
경연에 참가하는 기사들은 대부분 제국이나 왕국 출신의 기사들이었다. 방랑기사들도 있기는 하지만 극소수에 불과했다.
“걱정 마라. 나한테 다 생각이 있으니까.”
“역시 형님이십니다.”
“베로니카, 일로 와 봐라.”
부름을 들은 베로니카가 데미안을 향해 터벅터벅 걸어왔다.
“왜.”
“이번 경연에서 사람 죽이지 마라. 칼로 상처를 입혀도 안 돼.”
“뭐, 노력해 볼게.”
굉장히 무성의한 태도였다. 아무래도 데미안의 충고를 진지하게 받아들일 생각이 없는 듯했다.
미하엘은 데미안이 또 매타작을 벌이나 싶어서 기대하는 표정을 지었다.
“저번에 미하엘보다 하이클래스가 먼저 되면 소원을 들어주기로 했지?”
“그랬지. 실패했지만.”
“내가 말한 규칙들을 어기지 않고 경연에서 우승하면 네 소원대로 날 벨 수 있게 해 주마.”
하지만 다음에 이어지는 말에 베로니카의 눈동자가 번쩍 뜨였다.
“……정말?”
“그래, 정말이다.”
“진짜지? 그 말 어기면 화낼 거야?”
“그럼, 그럼.”
베로니카의 눈동자가 의욕으로 불타오르기 시작했다.
그러자 미하엘이 걱정스러운 얼굴로 속삭였다.
“……형님, 정말 들어주실 생각이십니까?”
“뭐, 벨 수 있게 해 준다고 했지 얌전히 베인다는 말은 안했으니까.”
“……예?”
“안 피한다는 말은 안 했잖아?”
데미안의 말에 미하엘의 표정이 잠시 멍해졌다.
“곧 미들클래스 종목이 시작됩니다! 베로니카 산체 경께서는 경기장으로 나와 주십시오!”
제국의 관료가 크게 소리쳤다. 베로니카는 희희낙락하며 밖으로 뛰쳐나갔다.
그리고 시작하자마자 승리를 거머쥐었다.
상대 기사의 공격을 받아치면서 목에 칼을 들이댄 것이다.
“우, 우와아아! 방금 뭐였지? 어떻게 한 거야?”
“잠깐, 저 여자는 어디서 온 거지?”
“방금 애플 왕국이라고 했어.”
깔끔한 한 수에 관중들은 충격먹은 얼굴로 손뼉을 쳤다.
하지만 베로니카는 관중들의 관심에는 별반 관심이 없었다.
“데미안 학센! 약속 지켜야 해!”
대기실을 향해 그렇게 소리칠 뿐이었다.
* * *
그 뒤로도 미들클래스 경기가 몇 번 더 이어졌다. 경기가 끝날 때마다 관객석에서 환호성이 터져 나왔다.
“형님, 다음은 제 차례입니다.”
“오냐, 열심히 하고 와라.”
데미안은 딱히 조언을 건네지 않았다. 미하엘의 능력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데미안의 예상대로 미하엘은 손쉽게 적을 이기고 돌아왔다.
대검으로 무기를 부수는 것으로 상대 기사의 투지를 꺾어버린 것이다.
“무, 무기라는 게 원래 저렇게 쉽게 부셔지는 건가?”
“그럴 리가 있나. 정말 엄청난 강검이로군.”
“저 기사도 애플 왕국 출신이라는데.”
“애플 왕국? 원래 한 번도 경연에서 두각을 드러내지 못한 곳인데?”
관중들은 환호성을 보내면서도 미하엘에 대해서 수군거렸다.
-30분 뒤에 다음 종목이 시작됩니다!
콜로세움의 곳곳에 서 있던 병사들이 관객들을 향해 소리쳤다.
-다음 종목은 마스터클래스입니다!
-브레들리 히스 경과 울레마 호플리테 경의 경기가 진행됩니다!
마침내 사람들이 가장 기대하던 경기가 시작되었다.
* * *
브레들리 히스는 경기장 위로 올라왔다.
“브레들리 히스!”
“제국의 신성!”
“반드시 이겨라!”
관객들의 환호성이 쏟아졌지만 브레들리 히스는 무덤덤했다.
다른 곳에 모든 신경이 집중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브레들리 히스는 대기실을 쳐다봤다. 정확히는 대기실의 창가에 서 있는 데미안 학센을 노려봤다.
-넌 얘 못 이겨.
그날 이후, 브레들리 히스는 훈련의 강도를 높였다. 매일 자신을 한계까지 몰아붙였다.
데미안 학센에게 이기기 위해서?
그럴 리가 있겠는가. 브레들리 히스는 자신이 데미안 학센보다 강하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럼에도 브레들리 히스가 훈련에 매진한 이유는 검성 때문이었다.
아무리 검성이 제국의 영웅이라고 하지만 그런 말을 듣고도 참을 수는 없었다.
압도적인 실력으로 경연에서 승리함으로써 검성에게 보여 줄 생각이었다.
당신의 안목이 틀렸다고.
나는 이렇게 강하다고 말이다.
“반갑군.”
맞은편에서 목소리가 들려왔다. 상대인 울레마 호플리테가 자신을 빤히 쳐다보고 있었다.
울레마는 양손에 손도끼를 들고 있었다. 두 자루의 도끼가 울레마의 주무기였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내게 가르침을 청했던 젊은이가 마스터클래스가 되어서 나와 싸우다니. 참으로 신기한 기분이야.”
하이클래스였던 시절, 브레들리 히스는 울레마에게 대련을 청한 적이 있었다. 마스터클래스에 도달하기 위한 깨달음을 얻기 위해서였다.
“어지간하면 이번에도 자네에게 가르침을 내리고 싶네만…… 나도 사정이 급해서 말이지.”
울레마는 올해로 40세였다. 이번 경연에서 탈락하면 더 이상 기회가 없었다.
“이해합니다. 그저 최선을 다해 주길 바랄 뿐입니다.”
“그렇게 말해 줘서 고맙군.”
울레마 호플리테가 웃음소리를 흘렸다.
“그럼 시작하겠습니다.”
“잘 부탁하겠네.”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두 기사가 서로를 향해서 달려들었다.
쌍도끼와 주먹이 허공에서 여러 번 충돌했다. 그럴 때마다 옅은 기파가 터져 나왔다.
놀랍게도 브레들리는 맨주먹으로 도끼를 모조리 막아 내고 있었다. 주먹과 팔뚝을 감싸고 있는 오러블레이드 덕분이었다.
“놀랍군! 그 짧은 시간 동안 오러블레이드를 이 정도 수준까지 단련시킬 줄이야!”
오러블레이드는 훈련을 거듭할수록 강해진다.
브레들리의 오러블레이드는 울레마와 비교해도 부족함이 없을 정도로 견고했다.
“아무래도 쉽게 끝나지는 않을 것 같군.”
헬리안 경연은 기간이 몹시 길기 때문에 체력 안배도 무척 중요했다.
그렇기에 울레마는 이 결투를 오래 끌 생각이 전혀 없었다.
“브레들리. 재미있는 걸 보여 주마.”
별안간 울레마의 팔이 늘어나기 시작했다.
두 개였던 것이 네 개로, 여덟 개로, 열여섯 개로 숫자를 늘려 나갔다.
투박한 겉모습과 달리 울레마는 환검의 사용자였다.
허초를 이용해서 상대방의 눈과 감각을 속임으로써 허를 찌르는 것이 주요 기술이었다.
“지난번에는 자네에게 가르침을 내려야 해서 이 기술을 사용하지 않았지. 과연 이걸 자네가 막을 수 있을까.”
수십 개의 팔이 동시에 오러블레이드를 방출했다.
엄청난 숫자의 오러블레이드가 브레들리를 향해서 쏟아졌다.
“…….”
브레들리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무엇이 환상이고 무엇이 진짜인지 찾으려는 듯했다.
그 모습을 본 울레마는 남몰래 미소를 지었다.
가짜와 진짜가 섞여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모두 진짜였다.
마스터클래스쯤 되면 환상에도 마력을 담을 수 있었다. 즉, 환상이 실체가 되는 것이다.
그때, 브레들리가 몸을 웅크렸다. 전신의 근육이 수축되는 것이 보였다.
그 모습에 울레마는 불길함을 느꼈다. 불길함의 원인을 찾기도 전에 브레들리가 앞으로 튀어 나갔다.
브레들리가 오러블레이드의 다발 속으로 몸을 던졌다. 그리고 찰나의 순간, 전신을 오러블레이드로 감쌌다.
울레마가 발산한 오러블레이드들이 모조리 박살이 나 버렸다.
“……이런 식으로 막아 낸다고?”
권사라 해도 오러블레이드로 전신을 둘러싸는 것은 무척 힘들었다.
그렇기에 브레들리는 찰나의 순간에만 오러블레이드를 펼쳤다.
사실 정신 나간 짓이었다. 조금만 실수해도 몸이 찢겨나갈 테니까.
하지만 어쨌든 브레들리는 성공했다. 그리고 무모한 도전의 대가는 달콤했다.
브레들리는 순식간에 울레마의 앞에 도달했다. 동시에 울레마를 향해서 주먹을 내질렀다.
놀란 나머지 울레마는 미처 반응하지 못했다. 피할 틈도 없이 가슴을 얻어맞고 말았다.
“커헉!”
울레마가 피를 토해 내며 뒤로 밀려 나갔다. 브레들리는 울레마를 뒤쫓았다.
브레들리의 주먹이 쉴 새 없이 쏟아졌다. 울레마는 도끼를 휘두르며 저항했지만 소용없는 짓이었다.
방금 전, 가슴을 얻어맞은 탓에 점차 손이 느려졌다. 권격을 막기에 급급했다.
“……내, 내가 졌네.”
결국 울레마는 항복을 선언했다. 그 즉시 심판이 브레들리의 승리를 선언했다.
-브레들리 히스 경의 승리입니다!
승패가 결정되자마자 관객들이 일제히 환호성을 토해 냈다.
“내가 뭐랬어! 우승 후보는 브레들리 히스라고 했지!”
“와아아아! 브레들리 히스! 제국의 신성!”
관중들의 반응은 어마어마했다. 다들 브레들리의 이름을 울부짖으며 환호했다.
브레들리 히스는 양팔을 한껏 벌린 채 관중들의 호응을 만끽했다.
“……제국의 신성이라더니 과연 대단하군.”
울레마 호플리테는 씁쓸한 얼굴로 그 모습을 지켜보다가 경기장에서 내려왔다.
* * *
관중들의 환호성은 좀처럼 끝날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그럼 다음 경기를 진행하도록 하겠습니다.
결국 심판이 나서서 진정시킬 수밖에 없었다. 일정상 다음 경기를 진행해야 하기 때문이었다.
-호세 브렌든 경과 데미안 학센 경께서는 경기장 위로 나와 주십시오.
심판의 말에 데미안은 경기장 위로 올라왔다.
주변을 둘러보자 빽빽하게 채워져 있는 관객들이 보였다.
시선을 조금 더 옮기자 특등석이 보였다.
콜로세움에서 가장 좋은 위치에, 호화스럽게도 테이블과 탁자까지 마련되어 있었다.
거기에 금발의 남성이 피곤한 얼굴로 앉아 있었다.
‘하워드 아델라이트.’
데미안은 속으로 남성의 이름을 중얼거렸다.
제국의 황제, 황금의 축복을 받은 남자.
데미안은 전생에 딱 한 번, 저 남자를 본 적이 있었다.
다름 아닌 도르고를 죽일 때, 옆에 있었던 남자였다.
“내 생각보다 훨씬 더 젊은 친구로군.”
낯선 목소리가 들려왔다. 고개를 돌리자 다부진 체격의 사내가 보였다. 데미안의 상대인 호세 브렌든이었다.
“이제 막 마스터클래스가 된 모양인데…… 하필 이 몸을 상대로 만나다니.”
호세 브렌든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묘하게 짜증이 나는 행동이었다.
“내 이름은 호세 브렌든. 부끄럽지만 철벽이라는 칭호로 불리고 있다네.”
호세 브렌든이 자신의 무기를 들어 보였다.
거구를 가릴 정도로 커다란 대방패와 날이 짧은 칼이 보였다.
“이게 내 주특기지.”
호세 브렌든이 대방패를 들었다가 땅바닥으로 내려찍었다.
그러자 회색의 오러블레이드가 대방패를 물들였다.
‘대단한데?’
데미안은 전생에 호세 브렌든이라는 마스터클래스를 만나 본 적이 없었다.
그렇다고 호세 브렌든의 실력이 별 볼 일 없다는 뜻은 아니었다.
저렇게 넓은 면적을 오러블레이드로 물들이는 것만 봐도 실력이 상당했다.
“내 방패를 뚫을 수 있겠나?”
호세 브렌든이 도발적인 어조로 말했다. 데미안은 실소를 흘렸다.
“뚫는 건 힘들고, 부수는 건 될 것 같은데.”
“하하핫, 재미있는 친구로군.”
호세 브렌든이 큰소리로 웃었다. 아무래도 데미안의 말을 농담으로 생각하고 있는 듯했다.
“못 믿겠으면 보여 줘야지.”
데미안은 숨을 길게 들이마셨다. 호흡과 함께 전신으로 마력을 퍼트렸다.
벌성지광약으로 강화된 신체는 이전보다 훨씬 마력에 민감하게 반응했다.
전신에 미증유의 힘이 차올랐다. 데미안은 무릎을 살짝 굽혔다. 전신에 차올랐던 힘이 들끓기 시작했다.
무릎을 펴며 땅을 밀어냈다. 그 순간, 각력에 의해서 지면이 박살이 났다.
데미안의 몸이 빛살이 되어서 쏘아졌다. 눈을 깜빡이기도 전에 호세 브렌든의 코앞에 도달했다.
“뭣?”
호세 브렌든의 얼굴에 당혹감이 떠올랐다. 그러거나 말거나 데미안이 여명을 휘둘렀다.
“윽!”
호세 브렌든이 황급히 팔에 힘을 줬다. 오러블레이드가 덧씌워진 방패를 앞세웠다.
여명이 대방패를 후려쳤다. 고막이 터질 것 같은 폭음과 함께 대방패가 산산이 부셔졌다.
그 충격으로 호세 브렌든의 몸이 뒤로 튕겨져 나갔다. 밀려나는 정도가 아니라 아예 날아갔다.
“크윽!”
호세 브렌든은 황급히 자세를 고쳐 잡았다. 그리고 정면을 쳐다본 순간, 눈동자가 두 배로 커졌다.
코앞에 데미안 학센이 있었다.
호세 브렌든을 날려 보낸 직후, 곧바로 뒤쫓아온 것이다.
상식을 뛰어넘는 속도였다.
“……미친놈이냐?”
호세 브렌든이 어이없어하는 순간, 데미안 학센이 여명을 휘둘렀다.
호세 브렌든은 황급히 칼날을 세워서 여명을 막았다.
두 자루의 검. 두 개의 오러블레이드가 서로 충돌했다.
여명이 칼날을 파고들었다. 호세 브렌든의 검이 단숨에 절단되었다.
여명은 그대로 호세 브렌든의 목을 베려 했다. 그 직전, 데미안이 여명을 멈춰 세웠다.
오러블레이드가 피부에 닿았다. 피부가 쫙 갈라지며 피가 흘러내렸다.
“내가 이긴 것 같은데. 동의하나?”
호세 브렌든이 멍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제야 데미안은 여명을 거둬들였다.
환호성은 터져 나오지 않았다. 쥐 죽은 듯한 침묵만이 경연장에 내려앉았다.
-……어.
심지어 승리를 선언해야 할 심판조차 마찬가지였다.
-데, 데미안 학센의 승리입니다!
간신히 정신을 차린 심판이 소리쳤다. 그제야 관중석에서 환호성이 터져 나왔다.
경기가 시작되고 1분이 지나기도 전에 데미안 학센의 승리가 결정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