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turn of the Calamity-Class Death Knight RAW novel - Chapter (23)
멸망급 데스나이트가 회귀함 23화
23화 증명 (1)
골드픽시 공작가의 가신들은 혼란과 공포에 빠져 있었다.
이들은 3개월에 한 번 있는 대회의를 위해서 공작가에 모여 있었다.
공작과 함께 사업에 관련된 회의를 진행하던 도중 공작성이 습격당했다는 소식이 들려왔던 것.
외성이 습격당했다고 하면 충격을 받았을 망정 공포에 휩싸이지는 않았으리라.
하지만 습격을 당한 곳은 외성이 아니라 내성이었다.
이것만으로도 큰일인데 별안간 공작이 침입자를 만나기 위해서 자리를 비우기까지 했다.
호위기사인 가올 하임리히 경을 놔두고 혼자서 말이다.
“공작가가 습격을 당하다니…… 대체 누가 이런 짓을 저질렀단 말입니까.”
“한밤중도 아니고 대낮에 공작가를 공격하다니…….”
가신들은 불안감에 휩싸인 채 웅성거렸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이 회의장에 가올 하임리히가 있다는 사실이었다.
가올 하임리히는 애플 왕국에서 단 세 명밖에 없는 하이클래스다.
습격자가 누구든 간에 가올 하임리히라면 능히 제압할 수 있을 테니 말이다.
그때였다.
“기다리게 해서 미안하군!”
회의장 문이 벌컥 열리며 공작이 들어왔다.
혼자서 회의장을 나섰을 때와 달리 지금은 인원이 두 명이나 늘어나 있었다.
한 명은 가신들도 잘 알고 있는 기사, 에른스트 호위츠였다.
그러나 다른 한 명은 아예 처음 보는 얼굴이었다.
“저 청년은 누구죠?”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잘생긴 편이긴 한데. 눈매가 좀 더럽군요.”
가신들은 청년을 두고 소곤거렸다.
“갑작스럽지만 소개할 사람이 있네.”
공작은 그런 가신들의 앞에 청년을 내보이며 말했다.
“방금 전까지 공작가를 공격했던 습격자가 바로 이 친구라네.”
웅성거리는 소리가 순식간에 잦아들었다.
가신들은 믿기지 않는다는 얼굴로 공작과 데미안 학센을 바라봤다.
“안녕하십니까. 데미안 학센이라고 합니다.”
데미안은 고개를 까딱이며 인사했다. 무척이나 건방지고 무례한 태도였다.
하지만 가신들은 데미안의 태도보다는 이름에 집중했다.
“데미안 학센? 설마 그 망나니?”
“라이언블룸 후작가의 이공자를 쓰러트리고, 랜드워크 도시의 거대 조직을 박살 냈다던 그놈이잖습니까.”
데미안 학센에 대한 소문은 공작가까지 들려올 정도로 유명했다.
하지만 그 소문을 믿는 사람은 단 한 명도 없었다. 진실이라고 여기기에는 너무 허무맹랑했던 것이다.
“그 망나니가 공작가를 습격한 범인이라고?”
“소문이 다 가짜인 줄 알았는데…… 사실 진짜였던 건가?”
“말도 안 됩니다. 어떻게 저런 망나니가…….”
가신들은 크게 동요했다. 현실을 부정하는 사람도 더러 찾아볼 수 있었다.
“이 친구가 성을 습격한 이유가 걸작이라네. 내가 운영하는 사업체에 돈을 빌려는데 갚을 돈이 없다지 뭔가?”
그런 가신들의 속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공작은 신이 나서 떠들어댔다.
“그래서 돈을 갚는 대신 결투에 참가할 생각으로 왔는데. 병사들이 들여보내 주지 않아서 무작정 쳐들어왔다더군.”
가신들은 어이없다는 얼굴로 데미안을 쳐다봤다.
침입자의 배후에 누가 있을까 골머리를 앓고 있었는데, 설마 저런 무식한 이유일 줄은 몰랐던 것이다.
“심지어 나한테 뭐라고 했는지 아는가? 미하엘 라이언블룸을 꺾고 승리를 바치겠다고 하더군.”
가신들 사이에서 실소가 터져 나왔다.
미하엘 라이언블룸이 어떤 인물이던가.
멀지 않은 미래에 마스터의 경지에 오를 것이라 평가받는 희대의 천재다.
골드픽시 공작가가 모든 인맥과 자원을 동원했음에도 대적자를 찾지 못했을 정도다.
그런 미하엘 라이언블룸을 꺾겠다? 승리를 바치겠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가신들의 얼굴에 떠오른 비웃음을 줄어들기 시작했다.
“저 남자가 미하엘 라이언블룸을……?”
“마냥 불가능한 소리도 아닙니다. 공작가의 경비를 돌파하지 않았습니까.”
“공작가의 기사들도 다 쓰러트렸구요.”
“젊은 기사 중에 이만한 실력자가 있던가?”
데미안이 보여 준 실력을 생각하면 미하엘 라이언블룸과 비교해도 부족함이 없었다.
“본인은 데미안 학센이 원하는 대로 해 줄 생각일세. 대표자로 선출하여 미하엘 라이언블룸과 대적시킬 것일세.”
공작이 가신들을 둘러보며 말을 이어 나갔다.
“혹시 다른 의견을 가지고 있는 사람 있는가?”
다들 조용했다. 긍정의 의미였다. 공작은 알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반대의견은 없는 모양이군. 그럼 데미안 학센을 대표자로 선출…….”
“각하! 그 결정을 재고해 주십시오!”
그때, 누군가 큰 소리로 외쳤다. 모두의 시선이 소리가 난 쪽으로 향했다.
에른스트 호위츠가 분노한 얼굴로 서 있었다.
“데미안 학센은 공작가를 습격하고, 기사들을 공격했습니다! 당장 처벌을 내려도 모자랄 판에 대표자로 세우는 것은 말이 되지 않는 일입니다!”
에른스트 호위츠의 말에 몇몇 가신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공작의 뜻이 확고한 듯하여 아무 말도 하지 않았지만, 사실은 마음에 안 들었던 것이다.
공작가를 공격한 사람을 대표자로 세우는 것이 말이다.
“데미안 학센이 공작가의 이름을 다소 더럽히긴 했지. 하지만 이만한 실력자는 찾아보기 힘들지 않은가.”
“실력을 논하기 이전에 자격이 없습니다! 가문을 습격한 사람을 대표자에 세운다? 이 일이 알려지면 다른 사람들이 얼마나 비웃겠습니까!”
에른스트 호위츠의 말에 동의하는 가신들이 점점 더 많아졌다.
“데미안 학센이 아니면 미하엘 라이언블룸을 상대할 기사가 없네.”
“지금은 그렇습니다! 하지만 아직 첼시 대공녀님이 남아 계시지 않습니까!”
첼시 대공녀라는 말에 공작이 아주 잠깐 인상을 찌푸렸다.
“첼시 대공녀님께서 미하엘 라이언블룸를 상대할 기사를 찾았다며 떠나신 지 한 달이 지났습니다. 이제 곧 돌아오실 때가 되었습니다!”
“첼시는 그 기사가 누구인지 내게 알리지 않았네. 누구를 데려올지 확실치 않은데. 그 아이만 믿고 데미안 학센을 내치란 말인가?
“첼시 대공녀께서 각하를 실망시킨 적이 있습니까? 총명하고 유능한 분이시니 이번에도 각하의 기대를 만족시킬 것입니다!”
그 말에 가신들이 웅성거리기 시작했다.
“맞는 말이오. 첼시 대공녀님은 각하의 시험을 매번 훌륭한 성적으로 통과하지 않았소.”
“그런 분이니 이번에도 분명히 뛰어난 기사를 데려올 것입니다.”
“첼시 대공녀님이라면 믿을 수 있죠.”
가신들의 의견은 점차 첼시 대공녀 쪽으로 기울기 시작했다.
이에 공작 역시 팔짱을 끼며 고민에 잠겼다.
“에른스트 호위츠 경의 주장들도 다 일리가 있군.”
공작은 데미안 학센을 향해 말했다.
“데미안 학센, 미안하게 되었네. 자네를 대표자로 세우는 것은 조금 뒤로 미뤄야겠어.”
그 말에 에른스트 호위츠의 얼굴이 눈에 띄게 밝아졌다.
반대로 데미안은 짜증이 밀려왔다.
‘오크가 씹다 뱉은 뼈다귀 같이 생긴 놈이 막판에 초를 치는군.’
데미안은 단순히 빚을 갚기 위해서 이곳에 온 게 아니다.
후작가는 공작가와의 결투에서 승리한 것을 계기로 세력이 크게 강해진다.
데미안 학센은 그 미래를 막고자 이곳에 왔다.
‘첼시 대공녀가 누구를 데려오든 미하엘 라이언블룸을 이길 수는 없다.“
공작가가 결투에서 이기기 위해서는 데미안 학센이 미하엘 라이언블룸을 맡아야 했다.
그렇기에 데미안은 고심 끝에 입을 열었다.
“그 결정에는 따를 수 없습니다.”
공작을 비롯한 모두의 시선이 데미안 학센에게 쏟아졌다.
“저는 빚을 갚는 것 외에도 미하엘 라이언블룸과 싸우기 위해서 왔습니다. 그러니 대표자 자리를 양보할 생각은 없습니다.”
외부인이 공작의 결정을 단칼에 거부했다. 당연히 가신들의 반응은 그리 좋지 못했다.
“저저…… 실력 좀 있다고 해서 눈에 뵈는 게 없군요!”
“감히 각하의 결정에 불만을 가지다니!”
“당장 잡아들여서 벌을 내려야 합니다!”
가신들 중에서도 특히 에른스트 호위츠의 분노가 거셌다.
“……이 애송이가 지금 뭐라고 지껄인 거냐.”
에른스트 호위츠가 이를 빠득빠득 갈며 뇌까렸다.
뼈가 아려올 정도로 지독한 살기가 데미안에게 쏟아졌다.
“각하, 명령을 내려 주십시오. 당장 저놈의 머리통을 붙잡아서 무릎을 꿇리겠습니다!”
하지만 공작은 에른스트 호위츠의 부탁에 응하지 않았다.
공작은 분노하기는 흥미롭다는 얼굴로 데미안을 바라보고 있었다.
“데미안, 그대에게는 미안하다고 생각하고 있네. 하지만 가신들의 의견이 이러하니 내가 뭘 어쩌겠는가.”
공작이 어깨를 으쓱했다.
태도는 과장되고, 눈빛에는 기대감이 가득했다.
거기서 데미안은 공작의 속내를 대강 눈치챌 수 있었다.
‘내가 이 상황을 어떻게 대처할지를 기대하고 있군.’
그러고 보니 전생에 들은 적이 있다.
골드픽시 공작은 지독한 능력주의자라서 가신들을 계속 시험하길 좋아한다고 말이다.
그리고 시험에 통과하는 가신만을 총애하며, 그렇지 못한 가신은 내치기까지 한다고 했다.
‘상사로 모시기에는 귀찮은 유형의 인간이야.’
공작의 시험에 통과하기 위해서는 가신들을 설득해야 했다.
하지만 데미안은 굳이 귀찮게 가신들을 설득할 생각이 전혀 없었다.
말이 아니라 행동으로 직접 보여 줄 생각이었다.
자신이 어떤 존재인지. 너희가 날 왜 붙잡아야 하는지.
“다들 굉장히 큰 착각을 하고 계십니다.”
방침을 정한 뒤 데미안 학센이 입을 열었다.
“결투에서 이기고자 한다면 반드시 절 대표자에 앉혀야 합니다. 첼시 대공녀가 누굴 데려오든 간에 저와는 비교조차 할 수 없을 테니까요.”
“허언이 심해서 역겨울 정도로군. 첼시 대공녀께서 누굴 데려올 줄 알고 그딴 망발을 지껄이는 거냐.”
에른스트 호위츠가 조소하며 말했다.
데미안 학센은 그런 에른스트 호위츠를 가리키며 말했다.
“그 증거로 에른스트 경의 일격을 막아 보도록 하겠습니다.”
지금 저놈이 뭐라고 말한 거지?
가신들은 자신들의 귀를 의심했다. 그럴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에른스트 호위츠는 미들클래스다.
그것도 미들클래스에 오른 지 시간이 꽤 오래 지났으며 경험과 실적을 충분히 쌓았다.
그런 인물의 공격을 막아 내겠다고?
“아, 일격이라고 말했지만 어떤 기술을 써도 좋습니다. 속임수를 섞어도 되고, 절기를 꺼내도 문제없습니다.”
데미안 학센의 말이 이어질수록 가신들은 경악을 금치 못했다.
보통 상위 기사와 하위 기사가 싸울 때는 상위 기사에게 여러 가지 페널티를 주기 마련이다.
그런데 지금 데미안 학센은 페널티를 주기는커녕 다 풀어놓자고 말하고 있었다.
“기왕이면 절기가 좋겠군요. 그걸 막아 내면 제 실력을 더욱 확실하게 보여 드릴 수 있을 테니까요.”
데미안 학센의 말이 멈췄다.
에른스트 호위츠에게서 쏟아지는 무시무시한 살기 때문이었다.
“따라나와라. 네놈의 얼굴에 구멍을 뚫어 주마.”
에른스트 호위츠가 데미안 학센을 향해 으르렁거렸다.
* * *
데미안과 에른스트 호위츠는 그 길로 바로 훈련장으로 향했다.
공작과 가신들 역시 두 사람을 따라왔다. 훈련장을 빙 둘러싸고 서서 두 사람을 지켜봤다.
“지금이라도 내 신발을 핥으면 용서해 주마.”
에른스트 호위츠가 창을 붕붕 돌리며 말했다.
데미안은 대답 대신 길게 하품을 했다.
“졸리다. 빨리 끝내자.”
“……아주 죽여 달라고 용을 쓰는구나.”
에른스트 호위츠가 두 손으로 창을 움켜잡았다.
데미안 학센은 아무런 자세도 취하지 않았다.
“뭐 하는 거냐. 어서 준비해라.”
“거 되게 오지랖 넓군. 쓸데없는 걱정은 그만하고 본인이나 알아서 하시지.”
데미안은 칼을 바닥에 꽂았다. 그 위에 두 팔을 올려놓고 몸을 기대기까지 했다.
명백하게 상대방을 무시하는 행위에 에른스트 호위츠의 얼굴 근육에 바짝 힘이 들어갔다.
“아까 말했지만 어떤 공격이든 좋아. 속임수를 써도 좋고, 절기를 꺼내도 상관없다.”
어느새 데미안은 에른스트 호위츠에게 하대하고 있었다.
연이은 도발에 에른스트 호위츠의 눈동자에 핏발이 가득 섰다.
“이…… 찢어 죽여도 시원치 않을 애송이 같으니…….”
에른스트 호위츠가 마력을 끌어올렸다.
미들클래스.
일기당천이 가능한 초인.
그 높은 경지에 걸맞은 강대한 마력이 에른스트 호위츠를 중심으로 소용돌이 치기 시작했다.
“무엇이든 좋으니 일격이라고 했겠다?”
에른스트 호위츠가 들고 있는 창끝에 오러가 피어올랐다.
아지랑이가 아니라 불꽃으로 보일 정도로 선명했다.
“그 재수 없는 낯짝을 꿰뚫어 주마.”
에른스트 호위츠가 발을 들어올렸다. 힘껏 땅을 내려찍었다.
훈련장의 바닥이 박살이 났다. 동시에 에른스트 호위츠의 몸이 앞으로 화살처럼 튀어 나갔다.
엄청난 속도에 공기가 연달아 터졌다. 에른스트 호위츠는 공기의 벽을 뚫고 데미안 학센의 코앞에 도달했다.
에른스트 호위츠가 창을 내질렀다.
폭풍이 몰아쳤다. 그 중심에 감춰져 있던 섬광이 데미안 학센을 꿰뚫었다.
* * *
에른스트 호위츠가 창을 내지르기 전부터 데미안은 이미 궤적을 읽었다.
‘가슴.’
에른스트 호위츠의 자세와 눈빛이 모든 것을 말해 줬다.
얼굴을 뚫어 버리겠다는 말과 달리 에른스트 호위츠가 노린 곳은 심장이었다.
‘정직한 찌르기로군.’
속임수도 섞여 있지 않고, 절기도 아니다. 순수한 찌르기였다.
대신 전력을 다했기에 그 속도와 파괴력은 무시무시했다.
‘너무 심하게 도발했나? 재미없게 되었군.’
데미안의 도발이 기사로서의 자존심을 건드린 듯했다.
이렇게 정직한 공격으로 데미안을 죽이려 드는 것을 보면 말이다.
‘이렇게 훤히 읽히면 대처하는 거야 쉽지.’
에른스트 호위츠가 창을 내질렀다. 데미안은 곧바로 장검을 들어서 창을 막았다.
그 직후, 섬광과도 같은 일격이 검면을 강타했다.
창을 막았는데 바위가 날아와 꽂힌 것 같았다.
전신의 뼈가 삐걱거렸다. 팔다리의 근섬유가 터지는 게 생생하게 느껴졌다.
‘역시 미들클래스야.’
경험과 기술은 데미안이 훨씬 앞서지만 신체능력과 마력은 에른스트 호위츠가 몇 배는 뛰어났다.
사실 이렇게 강력한 공격을 무리하게 막아 내는 것은 데미안 학센의 취향이 아니었다.
하지만 지금 데미안 학센은 로우클래스를 연기해야 했다.
로우클래스가 미들클래스의 공격을 피하거나 흘려보내는 것은 상식적으로 이상한 일이었다.
‘그러니 막을 수밖에 없지.’
공격을 견디지 못하고 두 발이 뒤로 밀려났다. 땅이 파이며 두 개의 고랑이 만들어졌다.
이대로 멈출 수 있었지만 데미안은 그냥 뒤로 밀리도록 내버려 뒀다.
결국 벽에 등이 부딪혔다. 굉음과 함께 벽이 박살이 났다.
강렬한 충격이 내부 장기에 집중되었다.
데미안 정도의 실력이라면 마력을 이용해서 내부 장기를 보호할 수 있었다.
하지만 데미안은 이대로 내상을 입도록 내버려 뒀다. 좀 더 실감 나는 연기를 위해서였다.
“쿨럭.”
데미안 학센은 입에서 피를 토해 냈다. 일부러 비틀거리며 걸어 나왔다.
시선을 멀리 향하자 충격에 휩싸여 있는 에른스트 호위츠의 얼굴이 보였다.
에른스트 호위츠뿐만이 아니었다. 공작도, 가신들도 같은 표정을 짓고 있었다.
문득 데미안은 손이 가볍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시선을 돌리자 박살 난 롱소드가 보였다.
아버지께 받은 물건이지만 품질이 좋은 것도 아니고, 가보도 아니기에 애착은 없었다.
“각하, 약속드린 대로 에른스트 호위츠 경의 공격을 막아 냈습니다.”
데미안은 롱소드의 손잡이를 바닥에 버리며 말했다.
“이제 대표자 자리는 제 것입니다.”
대답은 들려오지 않았다. 긴 침묵만이 흐를 뿐이었다.
“하,”
침묵을 깨고 공작이 입을 열었다.
“으하하핫! 하하하핫!”
공작은 큰소리로 웃었다. 손바닥으로 허벅지를 팡팡 때렸다.
“버텨 냈다! 미들클래스의 일격을 정말 버텨 냈단 말이야!”
공작은 데미안을 향해 달려갔다. 데미안의 등을 팡팡 때렸다.
“쿨럭.”
그 바람에 데미안은 한 번 더 피를 토할 수밖에 없었다.
연기라고는 하지만 내상을 입은 건 진짜였다.
“으하하핫! 미안하군! 미안해!”
그걸 보고도 공작은 웃음을 멈추지 않았다.
“가신들은 들으라! 데미안 학센은 자신의 실력을 훌륭하게 증명해 냈다! 본인은 약속한 대로 데미안 학센을 대표자로 세우겠다!”
그 순간, 멍하니 서 있던 에른스트 호위츠가 정신을 차렸다.
“가, 각하!”
“조용히.”
공작이 싸늘한 어조로 말했다. 데미안 학센을 대할 때와는 완전히 달랐다.
“지금 본인은 기분이 좋다네. 그걸 망치지 말게나.”
공작의 말에 에른스트 호위츠는 식은땀을 흘리며 고개를 숙였다.
‘실망한 모양이군.’
공작은 지독한 능력주의자다.
그렇기에 자신의 기대에 부응한 데미안 학센은 우대하고, 그렇지 못한 에른스트 호위츠는 홀대하고 있는 것이다.
공작의 호의는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내상을 입은 모양인데. 그냥 두고 볼 수 없군.”
별안간 공작이 오른손에 끼고 있는 반지를 매만졌다. 그러자 허공에 검은 구멍이 나타났다.
‘아공간 마도구?’
공간을 비틀어서 창고로 사용하는 최상급 마도구였다.
공작은 그 안에서 상자 하나를 꺼냈다.
“자네에게 주는 선물일세.”
데미안 학센은 공작이 내민 상자를 받아서 열었다.
뚜껑을 열자마자 청량한 향기가 사방으로 퍼졌다. 안에는 다섯 개의 환단이 담겨 있었다.
“균형환이라는 물건일세. 들어봤나 모르겠군.”
데미안은 귀가 번쩍 뜨이는 것을 경험했다.
어떻게 모르겠는가. 먹기만 해도 신체능력이 상승한다는 비약을 말이다.
과거 병약했던 제국의 황태자가 균형환 스무 알을 섭취하고 황소를 맨손으로 때려잡은 일화가 전해져 내려올 정도였다.
“연단학파에 비싼 값을 치르고 구한 물건이라네.”
심지어 이 균형환은 연단학파에서 제조된 물건이었다.
연단학파는 성장을 위한 비약을 전문적으로 제조하는 연금술사 학파이다.
이곳에서 만들어지는 비약은 다른 학파에서 제조된 것보다 훨씬 뛰어난 성능을 가지고 있었다.
“균형환을 섭취하면 신체가 발달하고, 마력이 차오른다고 하더군. 원래는 기사들이 훈련할 때 섭취하는 물건이지만 내상에도 탁월한 효능이 있다네.”
공작은 데미안 학센의 어깨를 두드리며 말했다.
“앞으로 잘 부탁하겠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