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turn of the Calamity-Class Death Knight RAW novel - chapter (242)
멸망급 데스나이트가 회귀함 242화(242/300)
멸망급 데스나이트가 회귀함 242화
242화 블랑카 로쉐 (1)
“놀라지 않는군.”
블랑카가 쓴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그 말대로 데미안의 표정은 별반 달라지지 않았다.
“혹시 장난이라고 오해한 건가? 내가 말한 것은 사실이라네. 슬라는 오래전부터 아카데미에 있었지. 줄곧 자네를 지켜보고 있…….”
“알고 있다.”
데미안이 딱딱한 목소리로 말했다.
“애초에 내가 아카데미 온 이유도 슬라를 죽이기 위해서니까.”
슬라는 누구로든 변할 수 있고, 누구든 자신의 편으로 만들 수 있었다. 이 정도로 놀라서야 슬라를 죽일 수 없었다.
“그 괴물을 죽이기 위해서 왔다고? 어이가 없군. 가당치 않은 목표야.”
“누가 슬라인지 찾고 있었는데. 설마 댁이 슬라와 손을 잡았을 줄은 몰랐어.”
“말과 달리 그리 충격받은 눈치가 아니네만. 설마 날 의심하고 있었나?”
“의심했다기보다는 그 누구도 믿지 않았을 뿐이지.”
아카데미에 들어온 순간부터 데미안은 자신과 만나는 모두를 믿지 않았다. 어느 누가 슬라일지 모르는 상황이었기 때문이다.
“언제부터 슬라의 편이었지?”
“자네를 만나기 한참 이전부터.”
“그럼 내게 접근한 것도 슬라의 명령이었겠군.”
블랑카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자네의 상황, 행동, 목적, 그런 것들을 알아 오는 게 내 역할이었다네.”
“올리버와 페넬로페를 납치하자는 의견을 낸 것도 너냐?”
블랑카는 쓴웃음을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데미안의 목덜미에 혈관이 도드라졌다.
“자네가 그 두 아이에게 특별히 애정을 쏟는 게 보였거든.”
“그 두 녀석을 어떻게 했지?”
“걱정 말게. 둘 다 무사하니까. 아직은.”
데미안은 가슴 속에서 끓어오르는 분노를 꾹 눌러 참았다.
분노를 터트리는 것은 어렵지 않다. 하지만 아직은 블랑카에게 들어야 하는 이야기가 많았다.
“어째서 슬라의 말을 듣고 있는 거냐.”
“그건 굳이 말하고 싶지 않군. 개인적인 이유가…….”
“설마 아들 때문이냐?”
정답이었는지 찔렸는지 블랑카는 입을 꾹 다물었다.
“슬라의 요구를 들어주면 아들을 살려 준다는 말이라도 들었나 보군. 슬라는 광분학파니까 그 정도 불치병은 쉽게 치료할 수 있겠지.”
아니, 치료가 아니라 아예 새로운 몸을 만들 수도 있으리라.
슬라 정도의 흑마법사에게 그 정도는 무척 쉬운 일이었다.
문제는 그 행위를 위해서 죽어야 할 사람들의 숫자였다.
“슬라가 흑마법을 사용하기 위해서 얼마나 많은 사람이 죽을지 알고 있는 거냐? 너는 아들을 살리고자 다른 이들을 희생시키려는 거다.”
“상관없네.”
블랑카가 조금도 고민하지 않고 말했다.
“가엘을 살리기 위해서라면 그 정도 죗값을 짊어질 수 있다네.”
“헛소리.”
데미안이 경멸스럽다는 듯이 말했다.
“죗값을 짊어진다고? 무슨 수로? 슬라에게 희생된 자들의 괴로움을 네가 어떻게 책임지겠다는 거냐?”
데미안의 비난에 블랑카의 표정이 굳었다.
“함부로 말하지 말게. 자네는 이해하지 못할 테니까. 하루하루 고통받는 그 아이를 지켜봐야 하는 내 심정이 얼마나…….”
“함부로 말하는 건 네 년이야!”
데미안이 버럭 고함을 내질렀다.
“흑마법사한테 농락당한 영혼이 어떤 꼴을 당하는지 알고 그딴 소리를 하는 거냐!”
흑마력은 인간의 영혼이 고통 속에서 몸부림칠 때만 만들어진다.
그래서 흑마법사들은 대량의 흑마력을 얻기 위해서 수많은 사람을 학살하고는 했다.
흑마법사에게 살해된 사람들은 죽어서도 평화를 얻지 못했다. 흑마법사들에게 고문을 받으며 영혼이 소멸될 때까지 흑마력을 토해 내는 신세가 되었다.
“네년이 협력한 상대는 슬라다! 판데모니엄의 거악이라고! 그 여자 때문에 죽거나 고통받은 사람이 얼마나 되는지 알기나 하는 거냐!”
데스나이트 시절, 데미안은 도르고의 명령을 거역할 수 없는 신세였다.
도르고는 한낱 유희를 위해서 데미안의 손으로 직접 가족들을 죽이게 만들었다.
데스나이트로 변한 데미안을 본 가족들은 큰 충격 속에서 목숨을 잃었다.
하지만 데미안의 가족들은 죽어서도 고통받았다.
데미안의 가족이라는 희귀성이 수많은 흑마법사의 탐욕을 불러온 것이다.
흑마법사들은 도르고에게 가족들의 영혼을 요구했다. 그중에서 슬라도 있었다.
-데미안 경? 보이시나요?
슬라는 누님인 루이즈의 영혼을 받아갔다. 그리고 어느 날 갑자기 나타나 데미안에게 루이즈를 보여줬다.
-당신의 누나예요. 이 영혼을 어떻게 할까 고민이 참 많았는데.
작은 유리병.
그 안에는 루이즈의 영혼이 담겨 있었다.
-이렇게 박제한 채 구경하기로 했어요. 생각보다 재미있지 않아요?
유리병 안에는 루이즈만 있는 게 아니었다. 악령들로 가득했다.
루이즈의 영혼은 악력들에게 붙잡힌 채 온갖 끔찍한 능욕을 당하고 있었다.
-당신한테 이지가 없다는 게 너무 아쉽네요.
유리병 속에서 루이즈가 가지고 있던 존엄성이 짓밟히고 있었다.
인간으로서, 여자로서, 생명으로서 가지고 있던 자존심이 박살이 나고 있었다.
차라리 살아 있었으면 나았으리라. 고통 속에서 미쳐서 죽어 버렸을 테니까.
하지만 영혼은 자살할 수 없었다. 흑마법사에게 혹사당하다 소멸되는 것 외에는 말이다.
“멍청한 년. 넌 지금 최악의 선택을 한 거다! 자식을 살리기 위해서라고? 넌 그 행동 때문에 오히려 자식을 잃게 될 거다! 흑마법사란 족속들은 원래 그런 쓰레기들이니까!”
데미안이 분노를 담아서 소리쳤다.
하지만 데미안의 울분은 블랑카에게 조금도 닿지 않았다.
“……부모도 아닌 너한테 떠들어봤자 내 입만 아플 뿐이지.”
블랑카 로쉐에게도 사정이 있었으니까.
“이제 결정해라. 슬라의 요구를 따르겠나? 만약 거절하면 두 학생의 생명은 보장할 수 없다.”
데미안은 여명을 뽑아 드는 것으로 대답을 대신했다.
“……그 아이들의 안전은 안중에도 없다는 거냐?”
“쓰레기 주제에 주절거리지 마라.”
데미안의 전신에서 살기가 터져 나왔다.
13반 학생들을 위협할 때 내뿜던 살기와는 차원이 달랐다.
“이 자리에서 네 년을 죽이고, 그 다음에 아이들을 구하러 가면 되니까.”
“혈기가 넘치는군. 하지만 날 죽여 봤자 아이들이 있는 장소는 알아내지 못할 걸세.”
“다 지껄였나? 그럼 이만 닥쳐라. 더 들어주기 힘드니까.”
데미안은 마력을 끌어올렸다. 데미안이 밟고 있던 바닥이 거미줄처럼 갈라졌다.
“혈기가 넘치는군.”
블랑카가 아공간을 열고 그 안에서 한 자루의 창을 꺼냈다.
창대와 창날이 모두 하나의 금속으로 만들어져 있었다. 전체적으로 푸른빛을 띠는 것이 평범한 창이 아니었다.
“블랑카 로쉐. 백혈기사단장이자 한때, 적광이라 불렸지.”
블랑카 로쉐가 자세를 잡으며 말했다.
“이런 식으로 자네와 맞서게 되어 유감일세.”
“지랄.”
그 말을 끝으로 두 기사가 동시에 땅을 박찼다.
* * *
두 사람의 몸이 사라지는가 싶더니 허공에서 충돌했다. 칼날과 창대가 부딪혔다.
날카로운 소리와 함께 두 사람의 몸이 뒤로 튕겨져 나갔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두 사람은 다시 충돌했다.
여명과 적색의 창이 허공에서 연달아 부딪혔다. 고막이 터질 듯한 소리와 함께 불똥이 허공에 튀었다.
‘이 몸을 상대로 조금도 밀리지 않다니. 대단한 실력이로군.’
데미안 학센과 무기를 부딪힐 때마다 블랑카는 감탄할 수밖에 없었다.
반응속도, 민첩성, 기술.
어느 것 하나 빠지지 않는 점이 없었다. 자신과 대등하게 맞서고 있었다.
‘이게 정말 신인의 실력이란 말인가?’
헬리안 경연의 우승자라는 경력은 분명 대단한 것이었다.
하지만 경험의 차이 역시 무시할 수 없었다. 블랑카 로쉐는 마스터클래스로서 벌써 두 번째 벽을 내다보고 있는 강자였다.
헬리안 경연의 우승자라 해도 신참 마스터클래스 따위에게 질 실력이 아니었다.
‘아쉽군. 이런 상황이 아니었다면 기사로서 깊은 교류를…….’
블랑카 로쉐가 그렇게 생각했을 때였다.
“어울리지 않는 헛된 생각을 품고 있는 모양이군.”
별안간 데미안 학센이 입을 열었다. 두 눈동자에 강한 경멸을 담은 채 말이다.
“흑마법사 따위한테 아이들을 팔아넘긴 쓰레기가 그딴 눈빛으로 날 쳐다보지 마라. 구역질이 나니까.”
데미안의 분노 어린 한 마디 한 마디가 블랑카 로쉐의 기분을 바닥까지 끌어내렸다.
틀린 말은 하나도 없었다. 블랑카 로쉐는 지금 아들을 살리고자 기사로서의 긍지와 어른으로서의 의무를 모두 내팽개쳤으니까.
“……맞는 말이로군. 이제부터 자네를 쓰러트리는 것만 생각하도록 하겠네.”
“아니, 그럴 필요 없다. 이제 다 읽었으니까.”
읽다? 뭘?
의문을 품은 순간. 데미안 학센의 움직임이 달라졌다.
몸을 회전시키며 블랑카가 내지른 창을 피했다. 그리고 단숨에 거리를 좁혀 왔다.
“뭐?”
블랑카는 재빨리 창을 회수하여 반격하려 했다. 하지만 그보다 먼저 데미안 학센이 블랑카의 복부를 걷어찼다.
묵직한 충격이 아랫배를 강타했다. 블랑카를 피를 토해 내며 뒤로 날아갔다.
벽과 등이 부딪혔다. 벽이 박살이 나며 블랑카의 몸이 건물 밖으로 튀어나갔다.
블랑카는 바닥을 구르며 재빨리 일어났다. 그 순간, 코앞에 있는 데미안 학센을 보게 되었다.
‘대체 언제 쫓아온…….’
데미안 학센이 블랑카를 향해 칼을 내질렀다. 블랑카는 황급히 창대를 세워서 칼날을 막아냈다.
칼날의 궤적이 살짝 비틀렸다. 옆으로 밀려 나간 칼날이 블랑카의 목덜미를 스치며 지나갔다.
“큭!”
날카로운 통증에 블랑카는 신음했다. 하지만 상처를 보듬을 여유 따위는 없었다.
데미안 학센이 다시 공격을 시작했기 때문이다.
수많은 참격이 기괴한 각도를 그리며 들어왔다. 블랑카는 창으로 간신히 검격을 받아쳤다.
하지만 모두 막아 낼 수는 없었다. 이따금씩 빈틈을 찌르고 들어온 공격이 블랑카의 몸 곳곳을 베어 냈다.
공방이 이어질수록 블랑카의 몸에 상처가 늘어났다. 어느새 옷이 피로 흥건하게 물들었다.
‘이게 정말 신인의 실력이란 말인가……?’
처음에 블랑카가 느꼈던 놀라움은 경악으로 바뀐 지 오래였다.
데미안 학센의 완벽하게 자신을 압도하고 있었다. 반격의 여지조차 없을 정도였다.
‘이대로는 진다……!’
거기까지 생각이 미치자 섬뜩함이 차올랐다.
데미안 학센에게 지면 자신은 그냥 제국의 배신자로 처형당할 뿐이다.
아니, 그건 상관없다. 블랑카가 무엇보다 참을 수 없는 것은 아들을 구할 수 없게 된다는 사실이었다.
블랑카는 이를 악물었다. 그것만큼은 용납할 수 없었다. 이제 전력을 다할 때였다.
블랑카가 창날로 땅바닥을 그었다. 창날이 바닥을 스치며 불똥이 튀었다.
불똥은 곧바로 불길로 변했다. 불길은 범람하여 덩어리를 이루었다.
데미안 학센은 불길을 피해서 뒤로 물러났다. 그리고 놀란 얼굴로 블랑카를 쳐다봤다.
“……특수혈통?”
“바로 알아보는군.”
블라카가 일으킨 불길은 점점 덩치를 키워갔다. 블랑카가 서 있는 땅이 온통 불길로 뒤덮였다.
“우리 가문은 대대로 화속성 마력을 타고 났다네.”
블랑카가 창을 움직일 때마다 불길이 살아 있는 것처럼 일렁거렸다.
“되도록 자네를 멀쩡한 모습으로 데려가고 싶어서 자제했지만…… 그런 걸 따질 상황이 아니로군.”
블랑카가 자세를 잡으며 말했다.
“조심하게. 로쉐 가문의 적염은 무척 사나우니까.”
블랑카가 데미안을 향해서 창을 휘둘렀다.
블랑카를 휘감고 있던 적염이 거대한 짐승이 되어서 데미안 학센을 덮쳤다.
* * *
적염(赤炎).
로쉐 가문이 만들어 내는 화염은 평범한 불꽃과는 달랐다.
특수혈통 덕분에 선천적으로 타고난 화속성 마력과 이를 극대화해 줄 수 있는 마나연공법.
두 가지가 더해지면서 탄생한 적염은 작은 호수 정도는 순식간에 증발시킬 정도의 화력을 발휘했다.
어지간한 적들은 적염과 제대로 맞서지 못했다. 무기는 녹아내리고, 순식간에 잿더미가 되어서 죽었다.
그렇기에 블랑카 로쉐는 적염을 사용하면서도 망설일 수밖에 없었다. 이 일격으로 데미안 학센이 죽으면 아들을 살릴 수 없었으니까.
하지만 그건 기우에 불과했다. 아니, 오산이었다.
“일환(一環).”
데미안 학센이 낮게 읊조렸다. 데미안 학센의 몸에서 공진음이 터져 나왔다.
그 직후, 데미안 학센의 몸이 분열되었다. 잔상들이 동시에 칼을 휘둘렀다.
수십 차례 쏟아진 참격이 적염을 갈기갈기 찢어발겼다. 적염이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
블랑카 로쉐의 눈동자가 커졌다.
적염의 불길을 막아 내거나 베어 내는 기사는 몇 번 본 적이 있었다.
하지만 통째로 소멸시킨 기사는 단 한 번도 본 적이 없었다.
“과연 슬라가 탐낼 만하군……!”
블랑카는 크게 감탄하며 다시 창날로 땅을 그었다. 적염이 다시금 타올랐다.
그때였다.
“이환(二環).”
공진음이 증폭되었다. 동시에 데미안 학센의 몸이 사라졌다.
다음 순간, 블랑카 로쉐의 몸이 반으로 나뉘며 피가 뿜어져 나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