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turn of the Calamity-Class Death Knight RAW novel - Chapter (26)
멸망급 데스나이트가 회귀함 26화
26화 가짜 (1)
방금 무슨 일이 벌어졌는가.
가신들은 당혹스럽다는 얼굴로 두 사람을 쳐다봤다.
서로 손을 맞잡는가 싶더니 기욤 블랙윙이 땅에 고개를 처박았다.
다들 결과만 봤을 뿐, 중간 과정을 본 사람은 한 명도 없었다.
‘……훌륭하다.’
딱 한 명, 가올 하임리히는 달랐다. 데미안 학센이 어떤 묘기를 부렸는지 똑똑히 목격했다.
‘상대방의 힘을 역이용해서 제압할 줄이야.’
기욤 블랙윙은 데미안 학센의 손을 잡자마자 꺾어서 부러트리려 했다.
데미안 학센은 그 힘을 교묘하게 이용하여 도리어 기욤 블랙윙을 땅바닥으로 내동댕이쳤다.
기술적으로 데미안 학센이 기욤 블랙윙보다 한참 앞서 있다는 뜻이었다.
‘기술만 뛰어난 게 아니다. 신체능력도 훨씬 뛰어나다.’
단순히 근력만 따지자면 기욤 블랙윙이 더 강할 것이다.
하지만 순발력, 민첩성 같은 다른 부분들은 데미안 학센이 더 뛰어났다.
그렇기에 기욤 블랙윙은 데미안 학센이 기술을 걸자마자 당해 버린 것이다.
‘그 잠깐 사이에 육체적으로 엄청난 성장을 이루었다.’
가올 하임리히는 데미안 학센을 처음 봤던 날을 떠올렸다.
메마르고, 연약한 몸이었다. 아무리 봐도 기사의 육신이 아니었다.
하지만 지금은 달랐다. 전신에 보기 좋게 근육이 붙어 있었다. 체격도 훨씬 커졌다.
‘균형환을 완전히 흡수한 모양이군.’
데미안 학센은 굉장히 기묘한 기사였다.
실력은 대단히 뛰어났으나 체력과 마력이 너무 부족했다.
그 때문에 부족한 체력과 마력을 기술로 보완해 왔다.
하지만 이제는 다르다. 부족했던 체력까지 어느 정도 보완했다.
그것만으로도 데미안 학센에서 느껴지는 위압감이 완전히 달라졌다.
‘마력이 부족하다는 단점까지 해결된다면 얼마나 더 강해질지 예상이 되지 않는군.’
가올 하임리히는 살면서 미하엘 라이언블룸 같은 괴물은 두 번 다시 보지 못할 줄 알았다.
그런데 얼마 지나지 않아서 그에 비견되는 괴물을 또 보게 되었다.
가올 하임리히는 하이클래스임에도 등골이 오싹해지는 것을 느꼈다.
“어깨뼈를 뽑아 버리려고 했는데 멀쩡하게 잘 붙어 있네? 내 생각보다 튼튼한 모양이야.”
별안간 데미안 학센이 기욤 블랙윙을 내려다보며 말했다.
“근데 왜 이렇게 조용하실까? 아까는 내 팔을 뽑아 버리겠다고 잘난 듯이 떠들어대더니 말이야.”
데미안 학센의 조롱에 가올 하임리히는 쓴웃음을 지을 수밖에 없었다.
‘실력은 뛰어난데. 뒤끝이 좀 심하군.’
에른스트 호위츠 때도 그랬지만 데미안 학센이라는 남자는 당하면 반드시 되갚아줘야 직성이 풀리는 듯했다.
‘겸손함까지 갖추고 있으면 더 좋았으련만.’
가올 하임리히가 아쉬움을 느끼고 있을 때였다.
“이…… 새끼가…….”
기욤 블랙윙이 나지막이 중얼거렸다. 분노와 증오가 단단히 응어리진 목소리였다.
“감히…… 내게…… 이딴…… 망신을…… 줘?”
기욤 블랙윙의 전신에서 수증기 같은 것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마력을 일으킬 때 생기는 특유의 현상이었다.
“이…… 비틀어 죽일 새끼가!”
기욤 블랙윙이 고함을 내질렀다. 동시에 마력이 폭발했다. 거친 파동이 사방으로 퍼져 나갔다.
“당장 그 골통을 쪼개 주마!”
기욤 블랙윙이 등에 달아놓은 도끼를 거칠게 뽑아 들더니, 그대로 데미안 학센을 향해 도끼를 내리찍었다.
아니, 내려찍으려 했다.
회의장 한쪽에서 거대한 마력이 퍼져 나갔다. 방대한 마력에 의해 회의장의 공기가 밀려 나가며 강풍이 불었다.
그 거대한 기운에 기욤 블랙윙의 몸이 덜컥 굳어 버렸다.
“각하의 앞에서 함부로 무기를 휘두르다니.”
작은 목소리가 들려왔다. 기욤 블랙윙의 고개가 녹슨 경첩처럼 천천히 돌아갔다.
공작의 오른편.
갑옷을 차려입은 노기사가 싸늘한 눈빛으로 기욤 블랙윙을 노려보고 있었다.
“죽고 싶은 것이냐?”
가올 하임리히의 두 눈동자가 섬뜩하게 빛났다.
* * *
‘과연 대단하군.’
가올 하임리히의 기세에 데미안은 속으로 감탄했다.
‘어째서 공작이 있는 곳에 무기를 들고 와도 되는지 궁금했는데.’
가올 하임리히가 있는 이상 어느 누구도 공작을 해할 수 없다는 자신감 때문이었다.
“끄, 끄으으윽…….”
기욤 블랙윙은 곧 죽을 사람 같은 얼굴로 식은땀을 쉴 새 없이 흘리고 있었다.
아무리 유명한 기사라지만 겨우 로우클래스다. 하이클래스의 압박을 견뎌 낼 수 있을 리가 없었다.
“첼시 대공녀님의 체면을 생각해서 한 번은 넘어가 주겠다. 하지만 두 번의 기회는 없다는 사실을 명심하도록 해라.”
가올 하임리히가 기세를 거둬들였다. 그제야 기욤 블랙윙은 숨을 가쁘게 내쉬었다.
“사사로운 소동이 좀 있었군.”
짝.
공작은 손뼉을 치는 것으로 사람들을 주목시켰다.
“보아하니 대표자 자리는 계속 유지하는 게 좋겠어. 본인은 기욤 블랙윙 경보다 데미안 경이 훨씬 믿음직스럽거든.”
그리 말하며 공작이 자리를 파하려던 찰나였다.
“각하! 이는 공정하지 못한 승부입니다!”
누군가 공작을 향해 소리쳤다. 다름 아닌 에른스트 호위츠였다.
“기욤 블랙윙 경은 여행으로 인한 피로를 모두 해소하지 못했습니다. 이는 데미안 학센에게 훨씬 유리한 승부였습니다!”
에른스트 호위츠가 기욤 블랙윙을 변호했다. 하지만 그 말에 귀 기울이는 가신은 한 명도 없었다.
“어찌 됐건 기욤 블랙윙의 동의하에 이루어진 대결이 아닙니까?”
“여행의 피로 때문에 졌다고 하기에는 너무 속수무책으로 당했습니다.”
곳곳에서 들려오는 소리에 에른스트 호위츠의 얼굴이 새빨갛게 달아올랐다.
“무엇보다 기욤 블랙윙 경은 무기를 사용하는 기사입니다! 맨손으로는 제대로 된 실력을 확인할 수 없습니다!”
하지만 굴하지 않고 꿋꿋하게 소리쳤다.
“에른스트 경의 말이 맞습니다.”
그러자 기다렸다는 듯이 첼시 골드픽시가 입을 열었다.
“이런 어린애 장난이 아니라 정식 결투를 통해서 두 기사의 실력을 비교하는 것이 옳다고 생각합니다.”
“본인은 그런다고 해서 결과가 달라질 것 같지 않군.”
공작의 반응은 영 시큰둥했다. 첼시 골드픽시는 입술을 물었다.
“각하! 그건 너무 성급한 결정입니다! 기욤 블랙윙 경은 외국에서 이미 명성이 자자한 기사로…….”
“첼시, 억지는 그만 부리도록 해라.”
공작이 딱 잘라 말했다.
“각하!”
“내게 너의 무능함을 그만 자랑하라는 소리다.”
그 싸늘한 말투에 첼시 골드픽시는 물론이고 다른 가신들 역시 놀랄 수밖에 없었다.
“……결례를 저질렀습니다.”
첼시 골드픽시는 급히 사죄하며 물러났다.
“각하, 한 마디만 드려도 되겠습니까.”
그때, 누군가 손을 들어 올렸다.
“첼시 대공녀의 제안을 받아들이도록 하겠습니다.”
데미안 학센의 말에 모두의 눈동자가 휘둥그레졌다.
* * *
사실 데미안 학센이 결투를 받아 준 데에는 다른 이유가 있었다.
‘분명히 기욤 블랙윙에게서 흑마력이 느껴졌다.’
기욤 블랙윙이 마력을 일으켰을 때, 데미안 학센은 똑똑히 느낄 수 있었다.
그의 체내에서 작동하고 있는 흑마법을 말이다.
철저하게 감춰져 있었기에 데미안 학센조차 자세 살펴봐야 했을 정도였다.
‘설마 가짜기사를 이렇게 빨리 보게 될 줄이야.’
가짜기사.
흑마법사들에게 시술을 받음으로써 강해진 기사들을 부르는 별명이었다.
‘흑마법 따위에 기대서 강해진 버러지들이지만 그래도 동급에서 적수를 찾아보기 힘들었다지?’
가짜기사들은 흑마법을 통해서 높은 신체능력과 방대한 마력을 손에 넣었다.
그래서 같은 경지에서는 최강이라고 불릴 정도로 강했다.
그만큼 단점도 컸다.
우선 흑마법의 대가로 본인들의 수명을 지불해야 했다. 데미안이 아는 한 시술을 받고 5년을 넘긴 기사가 한 명도 없을 정도였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흑마법사들은 시술 도중, 기사들에게 몰래 복종의 흑마법을 걸어놓았다.
그 때문에 가짜기사들은 보잘것없는 강함을 손에 넣는 대가로 평생 흑마법사들의 노예가 되어야 했다.
‘가짜기사들은 폭탄과 같다. 조만간 터지게 되어 있어.’
가짜기사들은 머지않아서 탄로가 난다.
교단은 대대적인 수색 작전을 벌여서 가짜기사들을 모조리 잡아들이고 사형에 처한다.
공작가의 경우, 대공녀가 연관되어 있으니 교단의 수색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교단의 수색은 집요하고 잔인하다. 분명히 큰 피해를 입게 될 거야.’
공작가를 이용해서 후작가를 견제하려는 데미안의 입장에서는 그리 달갑지 않은 상황이었다.
‘어쩔 수 없지. 내가 힘을 좀 쓸 수밖에.’
사실 꼭 이런 실리적인 이유 때문에 개입하려는 것은 아니었다.
‘그 더러운 바퀴벌레 새끼들이 내 앞에서 기어 다니는 꼴을 가만히 지켜볼 수야 없지.’
데미안 학센은 흑마법사가 증오스러웠다. 할 수만 있다면 이 세상에서 멸종시키고 싶을 정도였다.
‘그냥 이 자리에서 폭로해 버릴까? 아니야, 그러기에는 너무 일러.’
데미안 학센의 목적은 공작가를 유지시키는데 있다.
그렇기에 첼시 대공녀가 이 사건에 얼마나 깊이 개입하고 있는지 알아내야 했다.
“기욤 블랙윙 경과 결투를 하겠다는 소리인가?”
공작이 도무지 이해할 수 없다는 얼굴로 되물었다.
“저쪽에서 납득을 못한 것 같으니 받아 주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습니다.”
“다른 사람도 아니고 데미안 경의 부탁이니 거절할 수 없군. 결투를 허락하도록 하겠네.”
공작은 흔쾌히 데미안의 소원을 들어줬다.
“가신들은 들으시오. 내일 결투에서 승리하는 기사를 대표자로 선정하도록 하겠소.”
그 선언에 첼시 대공녀의 얼굴에 안도감이 떠올랐다.
“그런데 생각해 보니 데미안 학센 경은 이겨 봤자 별다른 이득이 없군. 자리를 지키는 것뿐이니까.”
공작이 반지를 매만졌다. 아공간을 열고 안에서 무언가를 꺼냈다.
새파란 액체가 담겨 있는 작은 유리병이었다.
“이게 무엇인지 아는가?”
공작이 유리병을 찰랑거리며 말했다. 데미안 학센도, 다른 가신들도 전혀 알아차리지 못했다.
“마력 결정의 비약이라는 물건일세.”
하지만 공작이 그 이름을 말하는 순간, 모두가 기겁할 수밖에 없었다.
연단학파의 수장 아조트 아르켈수스가 독자적으로 만들어 낸 전설적인 비약 중 하나였기 때문이다.
마력을 품고 있는 영초들에게서 추출한 마력을 한 번 더 정제하는 과정을 거쳐서 만들어 낸 비약.
사실 마력 결정의 비약으로 얻을 수 있는 마력량은 그리 많지 않았다. 대략 10년 치에 불과했다.
하지만 저 비약의 진짜 효능은 따로 있었다. 바로 마력 감응력을 높여 준다는 것이었다.
감응력이 높아지면 마력의 운용 능력뿐만 아니라 자연적인 회복 속도 역시 증가했다.
이 전무후무한 효능 때문에 제국제일검이 작성한 반드시 섭취해야 할 12대 영약 중 하나에 당당히 이름이 새겨진 물건이었다.
“내일 결투에서 승리하는 자에게 이 비약을 선사하도록 하지.”
공작의 선언에 가신들이 술렁거렸다.
* * *
공작은 그대로 자리를 파했다.
가장 먼저 첼시 골드픽시가 일행들을 데리고 회의장을 나갔다. 그중에는 에른스트 호위츠도 있었다.
다음으로 가신들이 움직였다. 데미안 학센도 가신들 사이에 섞여서 회의장을 떠나려 했다.
“데미안 경, 잠깐만 기다리게.”
그런 데미안을 공작이 붙잡았다. 데미안은 의아한 얼굴로 공작을 돌아봤다.
“방금 떠올랐네만 자네가 사용하던 롱소드는 저번에 에른스트 경 때문에 망가지지 않았던가?”
“예, 그렇습니다.”
“그럼 내일 결투 때 사용할 무기가 없지 않은가?”
“대충 훈련용 검을 쓸 생각입니다.”
데미안은 대수롭지 않게 말했다. 그의 실력이라면 맨손으로도 얼마든지 기욤 블랙윙을 때려눕힐 수 있었다.
“그건 안 될 말일세.”
하지만 공작은 고개를 저었다.
“모름지기 기사에게 무장이란 얼굴과 같은 법. 결투 같이 공적인 자리에 훈련용 무기를 들고 다니는 것은 자신의 얼굴에 똥칠을 하는 짓이야.”
공작의 말도 일리가 있었다.
기사들이 기를 쓰고 명검을 찾아다니는 데에는 그만한 이유가 있는 법이었다.
“게다가 후작가와 결투를 할 때도 훈련용 무기를 쓸 수는 없지 않은가? 외성에 공작가에서 관리하는 공방이 있다네. 그곳에서 검을 맞추도록 하게나.”
그 말에 데미안은 놀라서 공작에게 되물었다.
“그게 정말입니까?”
“정말이고 말고. 내 미리 말해 둘 터이니 언제든지 들리도록 하게.”
데미안은 가슴이 벅차오르는 것을 느꼈다.
공작가에서 관리하는 공방이니 분명 수준이 굉장히 높을 것이다.
그런 곳에서 무기를 맞출 수 있다니. 기사라면 누구나 기뻐할 수밖에 없었다.
“감사합니다, 각하.”
데미안은 공작에게 감사를 표했다. 공작은 아무것도 아니라는 듯 손을 내저었다.
* * *
공작은 시종을 불러서 데미안 학센을 안내시켰다.
시종을 따라서 공방에 도착한 데미안은 감탄을 흘릴 수밖에 없었다.
“정말 굉장한데.”
담벼락은 높고 길었다. 다섯 개나 되는 굴뚝에서 모두 검은 연기가 피어오르고 있었다.
살면서 이렇게 커다란 공방은 몇 번 보지 못했다.
“선선대 공작께서 공들여서 만든 공방입니다. 당대에 이름난 장인들을 여럿 영입하셔서 기반을 닦으셨죠. 공작가 소속 기사들만 이용할 수 있는 곳입니다.”
시종이 자랑스러운 얼굴로 공방을 소개했다.
더 이상 기다리기 힘들었다. 데미안은 먼저 공방의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갔다.
안에는 많은 장인이 화로 앞에서 쇳덩어리들과 씨름하고 있었다.
“으응? 누가 찾아온 거야?”
“공작가의 사람이잖어?”
몇몇 야장들이 데미안과 시종을 쳐다봤다.
“각하의 명령으로 왔습니다. 이분께서 사용하실 검을 맞추려고 왔습니다.”
시종의 설명에 장인들이 웅성거렸다.
“공작 각하의 손님이면 함부로 할 수 없지.”
“대장! 어디에 있어! 이런 일은 대장이 나서야지!”
장인들 속에서 키가 땅딸막한 남자가 걸어 나왔다.
“브로디라고 함니다. 공방의 장을 맡고 있슴다.”
브로디는 앞서 걸으며 말했다.
“이쪽으로 오시기 바람다. 무기창고로 안내해 드리겠슴니다.”
데미안과 시종은 브로디를 따라서 공방 안쪽으로 향했다.
창고로 들어온 데미안은 한 번 더 놀랄 수밖에 없었다.
‘멋지군.’
곳곳에 완벽하게 단련된 무구들이 걸려 있었다. 어느 것 하나 부족함이 없었다.
데미안은 신이 나서 창고의 내부를 둘러봤다. 모든 무기를 하나하나 살폈다.
‘음?’
무구들을 구경하던 중에 묘한 물건이 눈에 띄었다.
겉보기에는 롱소드와 비슷했다.
하지만 그보다 검신이 조금 더 길었다. 또한 칼날의 중앙이 비어 있었다.
두 개의 검신이 칼자루에서 뻗어 나가서 끝에서 하나로 모여 있는 모양새였다.
누가 봐도 검의 내구성과 성능을 의심할 법한 생김새였다.
‘이것 봐라?’
하지만 데미안의 반응은 달랐다.
‘검악가(劍樂家)의 독문병기가 왜 여기에 있는 거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