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turn of the Calamity-Class Death Knight RAW novel - Chapter (27)
멸망급 데스나이트가 회귀함 27화
27화 가짜 (2)
과거에 데미안이 싸웠던 마스터 중에 검악가(劍樂家)라는 인물이 있었다.
다른 마스터들과 비교했을 때, 그리 대단한 실력자는 아니었다.
순위를 매기면 마스터 중에서 하위권에 불과했다.
그럼에도 검악가는 데미안에게 깊은 인상을 남겼다.
‘대규모 전투에서 빛을 발하는 마스터였지.’
검신이 진동하면서 내는 소리를 검명(劍鳴)이라고 한다.
검악가는 이 검명에 오러를 담아 퍼트리는 특이한 기술을 가지고 있었다.
검명이 울려 퍼질 때마다 사람의 몸이 터지고, 사물은 파괴되었다.
‘그 기술 때문에 언데드 군단의 발을 일주일이나 묶어 놓을 수 있었고.’
도르고가 진격시킨 수만 명의 언데드 군단이 검악가의 검명을 뚫지 못하고 멈춰 섰다.
이는 어떤 마스터도 해내지 못한 전공이었다.
결국 도르고는 데미안을 보낼 수밖에 없었다. 데미안은 한 시간 동안 검악가와 겨룬 끝에 승리를 거두었다.
“특이한 검이지 않슴니까?”
어느새 브로디가 다가와서 말을 건넸다.
“예전에 공작가에 고용되었던 기사가 주문했던 물건임니다. 검이 완성되기 전에 급한 사정이 생겼다면서 떠나는 바람에 주인의 손에 쥐어지지 못했슴니다.”
“혹시 그 기사가 향공철(響共鐵)을 주고 제작을 부탁하지 않았나?”
“엇? 어떻게 알아보셨슴니까?”
특수한 성질을 가진 금속을 레어메탈이라고 한다.
마력을 증폭시키는 성질을 가진 아다만트, 스스로 냉기를 발산한다는 빙백철 등등.
이 세상에서 신병이라 불리는 무기들은 모두 레어메탈로 제작되었다.
‘역시 검악가의 독문병기가 맞았군.’
향공철은 레어메탈로서 마력을 주입하면 파동을 일으키는 성질을 가지고 있었다.
이 특수한 성질이 오러의 형성을 방해하기 때문에 기사들은 향공철로 무기를 만들지 않았다.
딱 한 명, 검악가를 빼고 말이다.
‘근데 나랑 싸웠을 때, 검악가가 썼던 무기는 이게 아니었던 것 같은데.’
당시 검악가가 사용했던 애병은 드워프가 만든 것이었다.
눈앞에 있는 검보다 향공철의 함유량이 훨씬 높은데다 다른 레어메탈도 많이 섞여 있었다.
‘끝끝내 찾아가지 못하고, 다른 무기를 만들었나 보군.’
검악가는 평범한 검을 가지고도 기술을 사용할 수 있었다.
하지만 향공철로 제작된 무기를 사용했을 때, 기술의 위력이 배가 되었다.
‘검악가가 공작가를 거쳐 갔던 것인가?’
데미안은 검악가에 대해서 잘 몰랐다.
그나마 알고 있는 것이라고는 평생을 방랑기사로 살아갔다는 것뿐이었다.
“이 검을 가져가겠다.”
데미안은 망설임 없이 검을 집어 들었다.
브로디가 깜짝 놀라서 데미안을 말렸다.
“향공철이 어떤 금속인지 아시면서도 그 검을 고르시는 검니까?”
“그래, 이 검을 고르겠다.”
데미안은 검악가의 기술과 경지 역시 사용할 수 있었다. 그렇기에 잘 알고 있었다.
검악가는 마스터 중에서 약체였으나 그의 기술은 달랐다.
다수의 적을 상대하기 용이할 뿐만 아니라 공방을 동시에 해결할 수도 있었다.
다방면으로 활용도가 높기에 꼭 한번 연구해 보고 싶었다.
“혹시 이 검에 이름이 있나?”
“제작을 맡기셨던 기사님은 천리검(千里劍)이라고 부르겠다 하셨슴니다.”
데미안은 이름을 기억하며 천리검을 챙겼다.
* * *
데미안 학센은 천리검 외에도 은닉하기 편한 단검과 비도 몇 자루를 챙겼다.
무장을 고른 뒤, 공방을 나올 때였다. 한 여성이 데미안의 앞을 가로막았다.
여성은 한 명이 아니었다. 전사로 보이는 남성 두 명을 대동하고 있었다.
“마음에 드는 무기를 찾으셨나요?”
여성이 산뜻한 미소를 머금은 채 말했다. 데미안 학센은 고개를 삐딱하게 기울인 채 여성을 쳐다봤다.
눈 밑에 검은 그늘이 짙게 껴 있어서 어딘가 음울해 보이는 여성이었다.
“누구지?”
“처음 뵙겠습니다. 첼시 골드픽시 대공녀님을 모시고 있는 레베카라고 합니다.”
여성은 가슴에 손을 얹고 다소곳이 고개를 숙였다.
“대공녀님께서 데미안 학센 경께 만남을 청하셨습니다. 괜찮으시다면 시간을 내어 주시겠습니까?”
안 그래도 첼시 골드픽시가 흑마법과 연관이 있는지 알아보기 위해서 한 번쯤 직접 만나보려고 했다.
설마 그 기회가 이렇게 빨리 찾아올 줄은 몰랐다.
“내가 그쪽과 할 이야기는 없는 거 같은데.”
하지만 데미안은 곧바로 제안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저쪽의 속내를 떠보기 위해서 한 번 거절했다.
“그건 또 모를 일이죠.”
레베카는 여전히 미소를 띤 채로 말을 이어 나갔다.
“첼시 대공녀님께서는 많은 것을 가지고 계십니다. 진득하게 대화를 나누다 보면 데미안 학센 경께 필요한 것을 얻으실 수 있을지도 모릅니다.”
돌려서 말하기는 했지만 결국 데미안을 회유하려는 것이었다.
공작의 편에 선 기사에게 이렇게 당당하게 회유를 종용할 줄이야.
데미안은 강한 호기심을 안은 채 말했다.
“좋아. 안내하도록 해.”
* * *
레베카가 데미안 학센을 안내한 곳은 한적한 곳에 있는 식당이었다.
그렇게 큰 식당은 아니었다. 층수는 겨우 1층밖에 되지 않았다.
“첼시 아가씨께서 직접 운영하시는 식당입니다. 예약제로 운영되며 귀족들만 이용할 수 있습니다.”
식당의 복도를 걸으며 레베카가 설명했다.
“오늘은 데미안 학센 경과의 자리를 마련하기 위해서 식당 전체를 비워 놨습니다.”
레베카의 걸음이 멈춰 섰다.
대형 홀에 식탁이 딱 하나 놓여 있었다. 그곳에 익숙한 얼굴의 여인이 앉아 있었다.
첼시 골드픽시.
그녀가 와인잔을 들어 올리며 말했다.
“조금 늦었네? 어서 와서 앉도록 해.”
레베카는 더 이상 안으로 들어가지 않았다. 데미안 혼자서 들어가서 홀 안으로 걸음을 내딛었다.
그리고 안으로 들어간 순간, 데미안은 느낄 수 있었다.
대형 홀 내부를 가득 채우고 있는 흑마법을 말이다.
‘이거야 원, 첼시 골드픽시를 조사하려고 왔는데.’
조사할 필요도 없이 벌써 증거를 잡았다.
데미안은 식탁까지 걸어가면서 흑마법을 분석했다.
‘숨을 쉴 때마다 흑마력이 유입된다. 호흡을 통해서 영향을 끼치고 있어.’
데스나이트였던 시절의 기억과 경험 덕분에 데미안은 흑마법에도 굉장히 정통해 있었다.
‘매혹향이었군.’
흑마법을 통해서 거짓된 호감을 불러오고, 그것을 이용해서 사람을 마음대로 조종하는 흑마법이었다.
‘이 정도 농도라면 1시간 이내에 노예가 되어 버리겠는걸.’
숨쉴 때마다 흑마법이 체내로 유입되었다. 그 농도가 굉장히 진했다.
‘매혹향처럼 고난이도의 흑마법을 사용하고도, 따로 은폐까지 시켜놨다. 엄청나게 수준 높은 흑마법사가 있어.’
이만한 흑마법을 도시 한 가운데에서 펼치고도 들키지 않은 이유는 식당 전체를 뒤덮고 있는 은폐용 흑마법 덕분이었다.
아무래도 첼시 골드픽시 뒤에 있는 흑마법사는 보통 인물이 아닌 듯했다.
어지간한 기사들은 모두 이 매혹향이 굴복했으리라.
하지만 데미안은 예외였다. 그에게는 전생에 도르고가 새겨 놓은 일곱 개의 권능이 있었다.
그렇기에 대부분의 마법과 흑마법은 데미안에게 통하지 않았다.
‘탐욕의 권능이라면 문제없이 분해하겠군.’
데미안은 호흡으로 흡입한 흑마법을 탐욕의 권능으로 분해했다.
흑마법을 분해함으로써 얻은 흑마력은 체내 어딘가에 차곡차곡 저장해 놓았다.
“날 왜 불렀지?”
데미안은 첼시의 맞은편에 앉으며 말했다. 첼시는 와인을 내려놓으며 말했다.
“성질 한번 급하네. 요리가 나오면 식사하면서 이야기를 나누는 게 어때?”
이미 흑마법을 감지한 데미안으로서는 저 말이 배려가 아니라 같잖은 수작으로밖에 보이지 않았다.
“쓸데없이 시간을 낭비하고 싶지 않다. 그냥 지금 말해라.”
데미안의 거절에 첼시의 눈썹이 살짝 꿈틀거렸다.
“정 그렇다면 어쩔 수 없지. 내 요구사항은 딱 하나야. 대표자 자리에서 사퇴하도록 해.”
첼시의 요구에 데미안은 별 감흥을 느끼지 못했다. 어차피 그녀가 요구할 내용이야 뻔했던 것이다.
“기욤 블랙윙을 믿지 못하는 모양이지?”
“착각하지 마. 기욤 블랙윙이 도끼를 들면 너 같은 건 아무것도 아니니까.”
첼시 골드픽시가 딱 잘라 말했다. 목소리에 강한 확신이 담겨 있었다.
“다만, 후작가와의 결투를 대비해서 힘을 온전히 비축해두고 싶어서 이런 요구를 하는 거야. 괜히 결투 같은 걸 했다가 상처라도 입으면 곤란하잖아?”
나름 일리가 있는 판단이었다.
한쪽의 실력이 압도적으로 뛰어나지 않고서야 결투 도중에 반드시 피를 보게 되어 있다.
“내가 왜 그쪽의 부탁을 들어줘야 하는 거지? 나한테 무슨 이득이 있다고?”
“대표자에서 사퇴하기만 한다면 네가 바라는 모든 것을 이뤄 주겠어.”
그 대답에 데미안은 헛웃음을 터트렸다.
“내가 바라는 게 뭔 줄 알고 그런 소리를 하는 거지?”
“너 같은 시골 기사가 원하는 거야 뻔하지. 돈, 명예, 그런 거 아니야?”
첼시가 가소롭다는 듯 한쪽 입꼬리를 올렸다.
이 대화를 통해서 데미안은 첼시 골드픽시가 어떤 인물인지 얼추 파악할 수 있었다.
‘재수 없을 만큼 오만한 년이로군.’
남을 멋대로 판단하고, 함부로 결론을 내린다.
오만하지 않고서야 할 수 없는 행동이었다.
‘어찌 보면 자기 아버지를 쏙 빼닮았군.’
공작은 남을 시험하기를 즐겨하는 고약한 취미를 가지고 있다.
자신이 남을 판단해도 될 만큼 우월한 인물이라는 사고방식을 가지지 않고서야 할 수 없는 행동이었다.
다만, 공작은 첼시 골드픽시처럼 자신의 오만함을 직접적으로 표출하지는 않았다.
‘오만한데다 무능력한 년이로군.’
데미안은 첼시 골드픽시에 대해서 그렇게 결론을 내렸다.
“돈이랑 명예라고 했나? 그런 건 공작이 더 잘 챙겨줄 것 같은데.”
“당장은 그렇게 보이겠지. 하지만 잘 생각해 봐. 공작가는 조만간 내가 물려받게 될 거야. 미래의 공작한테 잘 보이는 게 훨씬 이득이 크지 않겠어?”
“헛물을 들이키는군. 공작이 저렇게 정정한데 말이야.”
“앞날은 어떻게 될지 아무도 모르니까. 아버지보다 더 유능한 사람이 나타나서 그 자리를 대체하게 될지 누가 알아?”
굉장히 위험한 발언이었다.
데미안은 미간을 좁힌 체 첼시 골드픽시를 응시했다.
문득, 데미안은 첼시 골드픽시의 앞에 작은 모래시계가 놓여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매혹향이 영향력을 발휘하는 시간을 계산하려고 놔둔 건가?’
이제 남은 모래는 얼마 되지 않았다. 첼시는 모래시계를 힐끔 쳐다본 뒤, 데미안에게 말했다.
“알아들었으면 가서 아버지께 말씀드려. 대표자에게 물러나겠다고 말이야.”
첼시가 명령조로 말했다.
데미안 학센이 자신의 말에 당연히 따르리라는 강한 확신이 담겨 있었다.
이에 데미안은 즉시 대답했다.
“싫다면?”
첼시 골드픽시의 표정이 무너져 내렸다.
* * *
“뭐, 뭐? 이, 이럴 리가 없는데.”
첼시가 당황해서 소리쳤다. 데미안은 의자에 몸을 기대 물었다.
“뭐가 이럴 리가 없다는 거지?”
“아, 아니 그게 아니라…… 대, 대체 왜 거절하겠다는 건데? 내가 말했잖아. 네가 바라는 건 모두 이뤄 주겠다고!”
“네 도움 따위는 필요 없다.”
“서, 설마 아버지한테 충성맹세라도 한 거야? 너 실수한 거야. 아버지가 얼마나 잔인한 인간인지 알아? 그 인간은 나랑 내 어머니를…….”
데미안은 손을 들어서 첼시 골드픽시의 말을 끊었다.
“너희 두 사람의 가정사 따위에는 조금도 관심 없으니 그만 말해라.”
데미안은 그저 공작가를 이용해서 후작가를 견제할 수만 있으면 그만이었다.
공작이 어떤 인물인지는 조금도 관심이 없었다.
“일단 한번 들어봐! 들으면 너도 알 거야. 아버지가 얼마나 못 믿을 인간인지…….”
“애초에 내가 원하는 건 네가 이뤄 줄 수 없다.”
“뭔데? 네가 바라는 게 뭔데 그래!”
“가족의 행복.”
데미안의 대답에 첼시 골드픽시는 멍한 표정을 지었다.
“……뭐, 뭐?”
“가족의 행복, 평화, 안녕, 전부 네가 이뤄 줄 수 없는 것들이지.”
가족을 지키기 위해서는 후작가를 견제해야 했다.
그리고 그걸 위해서는 데미안 학센이 결투에 참전해서 미하엘 라이언블룸을 쓰러트려야 했다.
아니, 그런 이유가 아니었더라도 데미안은 첼시 골드픽시의 요구를 들어줄 생각이 전혀 없었다.
빌어먹을 만큼 가증스러운 흑마법사와 결탁했으니 말이다.
“나는 이만 가 보도록 하지. 기욤 블랙윙에게 전해라. 결투 준비 잘하라고 말이야.”
데미안은 의자에서 일어났다. 몸을 돌려 홀을 나가려 했다.
“……가족들이 무척 소중한 모양이네?”
첼시 골드픽시의 말에 데미안이 멈칫했다.
“그럼 다른 식으로 말해 볼까? 대표자에서 사퇴해. 그렇지 않으면 사람을 보내서 학센 자작가를 모조리 짓밟아 버릴…….”
첼시 골드픽시는 말을 다 마칠 수 없었다.
느닷없이 튀어나온 데미안의 손이 그녀의 목을 움켜잡은 것이다.
“가, 감히 내 몸에…… 커흑!”
데미안이 손아귀에 힘을 주었다. 사람 손이 아니라 철근에 죄이는 듯한 압력이 그녀의 목을 옭아맸다.
“컥! 커윽! 커어억!”
첼시 골드픽시는 숨을 쉬지 못하고 괴로워했다.
데미안은 그런 첼시 골드픽시를 무감정하게 바라봤다.
마치 죽어 가는 모습을 관찰하려는 듯이.
그때였다.
“첼시 대공녀님!”
“감히 어디서 공녀님께 손을 대는 것이냐!”
입구를 지키고 있던 기사 두 명이 이변을 알아차리고 데미안을 향해 달려들었다.
기사 둘이 들이닥치고 있음에도 데미안 학센의 시선은 오로지 첼시 골드픽시에게 고정되어 있었다.
“그 손 놓지 못할까!”
두 기사가 칼자루를 움켜잡았다. 칼을 뽑아서 데미안을 베려고 했다.
데미안이 첼시의 목을 놓았다. 동시에 식탁에 놓여 있던 식기를 집어 들었다.
기사들을 향해 식기를 휘둘렀다. 고기를 자를 때 사용하는 무딘 나이프가 두 기사의 목을 스치듯 지나갔다.
두 기사의 목에서 피가 터져 나왔다. 두 기사는 목을 붙잡은 채 몸을 비틀거렸다.
“얇게 베었으니 지금 당장 포션을 바르면 죽지는 않을 거다.”
그리 말한 뒤, 데미안은 다시 첼시 골드픽시를 돌아봤다.
첼시 골드픽시는 바닥에 주저앉은 채 가쁘게 숨을 내쉬고 있었다.
“첼시 골드픽시.”
첼시 골드픽시는 깜짝 놀라서 데미안을 올려다봤다. 데미안의 싸늘한 시선에 서서히 몸을 떨기 시작했다.
“내가 이 자리에서 널 죽이지 않은 이유는 공작가의 보복이 무서워서가 아니다.”
방금 전, 데미안은 속으로 무수한 갈등을 했다.
생각 같아서는 이 자리에서 첼시 골드픽시의 목을 베고 싶었다.
하지만 그건 너무 자비로운 처벌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기대하도록 해라. 내일 너한테 어떤 끔찍한 일이 벌어질지 말이야.”
데미안은 그 말을 남긴 채 식당을 걸어 나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