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turn of the Calamity-Class Death Knight RAW novel - chapter (279)
멸망급 데스나이트가 회귀함 279화(279/300)
멸망급 데스나이트가 회귀함 279화
279화 악마 (5)
바헬은 흔들리는 눈동자로 장벽이 사라지는 모습을 지켜봤다.
오대성인 중 최강이라는 청염을 줄곧 가두고 있었던 만큼 저 장벽은 평범한 것이 아니었다.
분신의 힘을 무려 반이나 뚝 잘라서 만든 것이었다. 그런 장벽이 모래성처럼 허물어지고 있었다.
“악마는 격이 높은 상대에게 반항할 수 없다…….”
바헬이 멍한 얼굴로 중얼거렸다.
“격이 낮은 권능은 격이 높은 권능에게 대항할 수 없기 때문이지…….”
바헬이 지옥에서 절대권력을 누릴 수 있는 것도 그 덕분이었다.
공작급 악마인 바헬과 맞설 수 있는 권능은 존재하지 않았으니까.
그 말인 즉 데미안 학센이 사용한 권능이 바헬보다 훨씬 격이 높다는 뜻이었다.
“역시 내가 잘못 본 게 아니었어! 네놈이 가지고 있는 그것은 진짜였구나! 진짜 왕들의 권능이었어! 인간 따위가 그걸 어떻게…….”
“뭐라고 지껄이는 것이냐.”
청염이 숨을 크게 내뱉으며 신성력을 끌어올렸다. 푸른 불꽃이 청염의 몸을 휘감았다.
“아직 정신을 못 차린 모양인데…… 정신이 번쩍 들게 해주마.”
청염의 등 뒤에서 폭발이 일어났다. 다음 순간, 청염의 주먹이 바헬의 얼굴에 꽂혔다.
“……!”
고막이 터질 듯한 소리와 함께 바헬의 몸이 멀리 날아갔다. 물수제비처럼 바닥에 몇 번이고 튕겼다.
바헬은 곧바로 몸을 일으켰다. 얼굴의 한쪽에 균열이 가 있었다.
“하하핫! 역시 대단하군! 널 가둔 건 탁월한 선택이었어!”
바헬이 큰소리로 웃었다. 청염은 주먹을 탁탁 털며 말했다.
“일격에 대가리를 터트리려고 했는데. 더럽게 단단하군.”
“그쪽 주먹도 만만치 않게 단단한걸.”
“그럼 이제부터 부서질 때까지 두들겨 패 주마.”
또다시 푸른 폭발이 일어났다. 바헬은 즉시 권능을 발현했다. 여러 겹의 장벽이 바헬의 앞을 가로막았다.
“엄청 빠르기는 하지만 직선으로밖에 못 움직이지?”
바헬이 이미 알아봤다는 듯이 소리쳤다.
그 말대로 청염은 최속의 권사라는 이명을 가지고 있었지만 직선으로만 움직일 수 있었다.
그때, 다시 폭발이 일어났다.
청염의 모습이 사라졌다. 직선으로 달리다 말고 방향을 꺾은 것이다.
바헬은 재빨리 청염을 따라 시선을 옮겼다. 그러자 청염은 또 폭발을 일으키며 가속했다.
사방팔방에서 폭발이 일어났다. 청염의 잔상이 바헬의 주변을 가득 채웠다.
“대체 이 속도는…….”
바헬의 얼굴에 미소가 지워졌다. 비로소 깨달은 것이다.
방향의 단순함 따위는 청염에게 조금도 문제가 되지 않는다는 것을 말이다.
“이러면 나도 방어가 아니라 공격에 집중해야겠는걸?”
바헬이 밟고 있는 땅에서 얇은 사각기둥들이 무수히 솟아났다. 마치 기병의 돌격을 막으려는 장창처럼 보였다.
“함부로 들다가는 온몸이 뚫려서 죽을지도 모를…….”
그 순간, 청염의 잔상이 뚝 끊어졌다.
그와 동시에 바헬이 만들었던 사각기둥들이 모조리 박살 났다.
사각기둥을 뚫고 돌진한 청염이 주먹을 내질렀다. 바헬의 얼굴에 다시 주먹이 꽂혔다.
그릇이 깨지는 소리와 함께 바헬의 얼굴 반쪽이 날아갔다. 왼쪽 눈과 머리가 파편이 되어서 흩어졌다.
“크아아악!”
바헬이 비명을 내질렀다. 이것만은 참기 힘들다는 듯 손으로 상처 부위를 감쌌다.
하지만 청염의 공격은 여기서 멈추지 않았다.
푸른 폭발이 연속적으로 일어났다. 그럴 때마다 사방에서 튀어나온 청염이 바헬의 몸을 두들겨 팼다.
주먹으로 옆구리를 강타하고, 팔꿈치로 명치를 찍었다. 무릎으로 가슴을 꿰뚫기도 했다.
사람이 눈을 한 번 깜빡일 정도로 짧은 시간 동안 수백 번의 공격이 가해졌다.
“칵! 카아악! 컥!”
공격이 가해질수록 바헬의 몸은 곳곳이 깎여 나갔다.
“정말 엄청나네.”
데미안은 멀리서 바헬이 속수무책으로 당하고 있는 모습을 지켜봤다.
청염이 나선 순간부터 데미안이 할 일은 사라졌다. 그저 멀리서 지켜보는 것밖에 없었다.
“그렇죠?”
고개를 옆으로 돌리자 광명의 모습이 보였다.
고립에서 해방되었는지 앞을 제대로 보고 있었다.
“같은 오대성인이지만 저분을 보고 있으면 벽이 느껴진다니까요.”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오대성인들이 아무리 강해 봤자 마스터클래스에 불과했다.
하지만 청염은 무려 그랜드마스터의 경지에 오른 인물이었다.
데미안이 아는 한 이 시점에서 그랜드마스터에 도달한 인물들은 네 명밖에 없었다.
제국제일검, 용병왕, 청염 그리고 판데모니엄의 수장.
그랜드마스터는 온전하게 소환된 후작급 악마와도 견줄 수 있는 존재였다.
공작급 악마라 해도 분신이 어쩔 수 있는 존재가 아니었다.
그렇기에 바헬도 권능을 이용해서 청염을 가두는 데 그친 것이다.
“아하하핫!”
그때, 바헬이 큰소리로 웃음을 터트렸다. 몸의 면적이 반 이상 날아갔지만 그래도 얼굴에 미소가 사라지지 않았다.
“이러면 나도 방식을 바꿔야겠는데?”
바헬의 몸에서 어둠이 흘러나왔다.
데미안은 바헬이 무슨 짓을 하려고 하는지 금방 눈치챌 수 있었다.
자신에게 했던 것처럼 청염의 감각을 ‘고립’시킬 생각이었던 것이다.
‘잘못된 판단을 내렸군.’
데미안의 추측대로 흘러갔다.
청염이 ‘멸격’으로 바헬의 어둠을 강타했다. 어둠이 흩어지며 권능이 소멸되었다.
“……어?”
바헬의 얼굴에 의문이 떠올랐다. 그 순간, 청염이 손날을 내질렀다.
“이제 끝이네요.”
광명이 그렇게 말한 순간, 청염의 손날이 바헬의 몸통을 꿰뚫었다.
바헬은 놀랍다는 눈빛으로 자신의 몸통에 박힌 관수를 내려다봤다.
청염이 손날을 뽑았다. 바헬은 비틀거리며 몇 걸음 뒤로 물러났다.
“이야…… 엄청 강하네. 아무리 분신이라지만 이렇게 속수무책으로 당할 줄이야.”
이런 상황에서도 바헬은 끝까지 미소를 잃지 않았다.
“그런데 이해가 가지 않는단 말이지. 강하긴 하지만 부족해. 어떻게 이런 인간들에게 우리 선조들은 패배한 걸까?”
“뭐라고 지껄이는 것이냐.”
“하하핫, 승자를 앞에 두고 혼잣말이 길었군.”
바헬의 몸이 조금씩 무너져 내리기 시작했다. 분신이 완전히 망가진 탓에 지옥으로 되돌아가고 있는 것이다.
“두 번 다시 인간의 땅을 더럽히지 마라.”
“그건 안 되겠는걸? 우리 악마들의 숙원이 지상을 되찾는 것이라 말이야.”
“헛소리. 이곳은 우리의 땅이었다.”
청염의 일갈에 바헬은 소리 없이 웃었다. 마치 재미없는 농담을 들은 것 같은 반응이었다.
“조금 아쉽군. 확인해 보고 싶은 게 있었는데.”
바헬의 시선이 데미안 학센에게 향했다. 그 순간, 데미안에게 바헬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데미안 학센, 그 권능은 어떻게 손에 넣었지?
지금 바헬은 영혼을 통해서 말을 걸고 있었다. 그 탓에 오대성인들은 바헬이 무슨 말을 하는지 듣지 못했다.
-그건 마왕들께서 하사받은 권능이다. 어떻게 인간이 그걸 하나도 아니고 두 개나 몸에 지니고 있는 거냐.
그 말에 데미안은 인상을 쓸 수밖에 없었다.
도르고가 데미안에게 이 권능을 이식할 때는 고대신의 권능이라 말했었다.
그런데 마왕의 권능이라니?
-너도 모르는 눈치 같군. 잘 간직하고 있어라. 언젠가 되찾으러 올 테니까.
이윽고 바헬의 육체가 완전히 무너졌고 목소리도 더 이상 들려오지 않았다.
* * *
“결국 역소환되었군.”
연구실에 도착하자마자 도르고가 작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그 말을 귀신같이 알아들은 이오타가 의아한 얼굴로 물었다.
-어머니, 그게 무슨 소리야? 아직 소환 시간은 한참 남아 있잖아? 그 괴물을 누가 부수기라도 했다는 거야?
“과정까지는 나도 모르지. 어쨌건 놈이 역소환된 것만은 확실해.”
소환자였기에 소환물의 상황 정도는 알 수 있었다.
다만 한 가지 이해가 되지 않는 것이 있었다.
“오대성인 두 명이서 어떻게 바헬을 상대한 거지?”
청염은 고립된 상태였으니 오대성인 두 명에서 바헬을 상대했을 것이다.
하지만 도르고가 파악하고 있는 오대성인들의 실력으로는 바헬을 상대로 이렇게 빨리 승리를 거두는 것은 불가능했다.
-남자 한 명이 더 있다고 하지 않았어? 세 명에서 뭔가 했겠지.
이오타가 대수롭지 않게 말했다.
그러나 도르고는 여전히 불만스러운 표정을 짓고 있었다.
-어머니, 왜 그래? 마음에 안 드는 거 있어?
“아니, 아니다…….”
마음에 안 드는 일이 있을 리가 없었다.
원래 목적대로 권능이 담긴 악마의 진력을 손에 넣었으니까.
“왠지 그 자리에 남아 있어야 했을 것 같다는…… 아쉬움이 강하게 남아서 말이야.”
그 순간, 두통이 밀려왔다. 이오타는 두 손으로 머리를 붙잡았다.
“윽.”
요즘 들어서 두통이 잦아졌다.
두통이 찾아올 때마다 도르고는 새로운 영감과 지식을 얻을 수 있었다.
하지만 갈증도 커져 갔다. 무언가 잊고 있는 게 있다는 불길함이 도르고를 괴롭혔다.
-어머니, 또 머리가 아파?
“아니, 됐다. 이제 괜찮아.”
도르고는 그리 말하며 탁자 위에 구체를 올려놓았다. 이 안에는 악마의 진력이 가득 담겨 있었다.
“일정을 맞추려면 앞으로 바빠지겠어.”
그리 말하며 도르고는 탁자에 깔려 있는 커다란 종이를 쳐다봤다.
종이에는 제국제일검 살해 계획이라고 적혀 있었다.
구체를 가만히 바라보던 도르고는 문득 바헬에게 받은 또 다른 물건을 떠올렸다.
도르고는 바헬에게 받은 반쪽짜리 열쇠를 꺼냈다.
낡은 열쇠는 연구실에 박힌 전등에 의해서 빛나고 있었다.
“멍청한 놈. 이걸 나한테 줘?”
도르고는 아공간을 열었다. 그 속에서 열쇠의 나머지 반쪽을 꺼냈다.
두 열쇠는 자석이라도 된 것처럼 달라붙었다. 그리고 온전한 열쇠로 바뀌었다.
“앞으로 어떤 일이 생길지 모른다고 했었지? 헛소리하고 있네.”
도르고가 오랜 세월 동안 이 구질구질한 목숨을 붙잡고 있는 이유는 다름이 아니었다.
복수.
자신과 연인을 배신한 제국에게.
진정한 영웅이 누군지 잊어버린 인간들에게.
복수하기 위해서 가장 더러운 곳에 떨어져서 이 자리까지 기어 올라왔다.
하지만 악마를 소환한다면?
복수할 대상을 빼앗기게 된다. 그것만큼은 용납할 수 없었다.
“내가 이 열쇠를 사용하는 일은 절대 없을 거다.”
그리 중얼거리며 도르고는 열쇠를 아공간의 가장 깊은 곳에 처박아 넣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