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turn of the Calamity-Class Death Knight RAW novel - Chapter (28)
멸망급 데스나이트가 회귀함 28화
28화 폭로 (1)
“첼시 대공녀님!”
데미안 학센이 나가자마자 레베카가 달려와서 첼시 골드픽시를 부축했다.
“레, 레베카…… 봤어? 저, 저 자식이 나한테 무슨 짓을 했는지?”
“예, 봤어요. 아주 끔찍한 남자였어요.”
“바, 반드시 죽여 버릴 거야. 그, 그래서 나한테 한 짓을 후회하게 만들 거라고…….”
첼시는 몸을 덜덜 떨며 작게 중얼거렸다. 별안간 그녀의 두 눈동자에 분노가 차올랐다.
“머스탱 퓨리!”
첼시 골드픽시가 벌떡 일어나며 소리쳤다. 그러자 옆방으로 통하는 문에서 한 남성이 헐레벌떡 뛰어왔다.
“예, 예! 머스탱 퓨리, 부름을 듣고 달려왔습니다!”
나이는 대략 중년 정도일까. 뱃살이 무척 두툼한 남성이었다.
“이게 어떻게 된 거야! 어째서 매혹향이 통하질 않는 건데!”
“저,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가, 가끔 흑마법에 강한 면역을 가진 사람이 있는데. 그런 경우가 아닐까 추측…….”
“이런 무능력한 머저리가!”
첼시가 탁자 위에 놓여 있던 찻잔을 집어던졌다. 찻잔은 머스탱 퓨리의 이마를 정통으로 가격했다.
“그 자식…… 절대로 살려 둘 수 없어. 반드시 죽여 버릴 거야. 그래서 오늘 나한테 그딴 개소리를 한 걸 후회하게 만들어 줄 거야!”
첼시 골드픽시의 두 눈동자가 표독스럽게 빛났다.
“기욤 블랙윙은? 걔는 어디에 있어?”
“기, 기욤이라면 지금 술집에 있습니다. 오늘 있었던 일 때문에 화를 풀어야겠다면서…….”
“내일이 결투인데 술집에서 술이나 퍼마시고 있다고?”
첼시 골드픽시의 눈빛이 살기로 번들거렸다.
머스탱 퓨리는 연신 식은땀을 흘리며 첼시의 눈치를 살폈다.
“당장 내 눈앞에 데려와! 가만 놔두지 않겠어!”
“고, 공녀님. 진정하십시오! 제, 제가 잘 말해 놓겠습니다!”
그 말에 첼시는 억지로 화를 억눌렀다.
“……정발로 기욤 블랙윙이 데미안 학센을 이길 수 있는 거 맞아?”
“다, 당연합니다! 기욤 블랙윙이 누굽니까. 저희 유란의 걸작입니다! 그 녀석보다 더 흑마법 적성이 뛰어난 기사는 보지 못했습니다.”
“그런 놈이 낮에 데미안 학센한테 그 망신을 당해?”
“그건 예상치 못한 상황이라…… 무기가 있으면 결과가 완전히 달라질 겁니다.”
머스탱 퓨리가 자신 있는 목소리로 말했다.
“공녀님, 조금만 참아 주십시오! 저희 유란이 공녀님의 손에 공작가를 쥐어 드리겠습니다!”
머스탱 퓨리의 호언장담에 첼시가 표독스러운 얼굴로 말했다.
“그 말…… 꼭 지키는 게 좋을 거야. 아니면 너희들부터 죽을 테니까.”
머스탱 퓨리의 얼굴이 창백하게 질렸다.
* * *
‘역시 흑마법사가 숨어 있었군.’
식당의 지붕.
데미안 학센은 몸을 최대한 낮춘 채 첼시와 흑마법사들의 대화를 엿듣고 있었다.
식당을 나간 데미안 학센은 곧바로 지붕 위로 뛰어올랐다.
그리고 마력으로 청각을 증폭시킨 뒤, 식당 내부에 귀를 기울였다.
‘단순한 협력관계가 아니군. 첼시 골드픽시가 흑마법사들을 종처럼 부리고 있어.’
대화만 들으면 그랬다. 하지만 데미안 학센은 어딘가 석연치 않았다.
‘흑마법사 같은 인간말종들이 저렇게 쉽게 복종할 리 없다.’
데미안이 알고 있는 흑마법사들은 피 대신 독이 흐르는 독종들이었다. 저렇게 쉽게 굴복할 리 없었다.
무엇보다 흑마법사들이 속한 단체가 문제였다.
‘머스탱 퓨리라고 했나. 저놈이 방금 똑똑히 말했지. 유란이라고 말이야.’
유란.
이전에 검은뱀의 사주를 받고 학센 영지에 저주를 내렸던 흑마법사가 속해 있던 집단이었다.
유란은 교단에서 기를 쓰고 추적할 정도로 위험한 흑마법사 집단이다.
그런 곳의 흑마법사들이 첼시 골드픽시 같은 풋내기에게 복종한다?
‘대체 무엇을 노리는 거지?’
문득 데미안의 머릿속에서 한 가지 대화가 떠올랐다.
-흑마법사들이 가장 간절하게 바라는 게 무엇인지 아느냐? 한 자리에 정착하는 것이란다.
전생에 도르고가 데미안에게 했던 말이었다.
엄밀히 따지자면 대화라고 할 수 없었다. 그 당시 데미안은 말을 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으니까.
게다가 도르고는 데미안이 이지를 완전히 상실한 줄 알고 있었다.
즉, 도르고가 일방적으로 떠들어댄 것에 불과했다.
-흑마법사들의 인생은 떠돌이로 요약할 수 있지. 사람들의 시선을 피해서 숨어야 하고, 교단의 추적을 피해서 도망쳐야 해. 그렇게 시간이 지나다 보면 모두가 간절하게 바라게 된다. 정착할 수 있는 곳을 말이야.
흑마법사들이 유독 사회에 스며들려고 발악하는 것도 바로 그 때문이라고 했다.
안전하게 살아갈 수 있는 장소를 얻기 위해서 말이다.
‘유란의 속셈이 무엇인지 알겠군. 첼시 골드픽시를 앞세워서 공작가를 지배하려는 거야.’
교단의 주목을 받은 흑마법사들 중에 살아남은 이는 거의 없다.
그렇기에 유란에서는 자신들을 보호해 줄 강력한 방패를 원하고 있을 것이다.
그래서 선택한 게 첼시 골드픽시인 듯했다. 그녀를 이용해서 공작가를 손에 넣을 생각임이 틀림없었다.
‘버러지 같은 것들이 주제 넘는 짓을 벌이는군.’
공작가를 지배하려는 유란의 작태가 마치 전생에 자신을 노예로 부렸던 도르고의 행태와 겹쳐 보였다.
‘그 계획, 철저하게 짓밟아 주마.’
데미안의 눈동자가 섬뜩하게 빛났다.
* * *
데미안은 그 길로 귀빈실로 돌아왔다.
귀빈실에 도착한 뒤, 데미안은 우선 체내에 저장해 뒀던 흑마력을 팔찌에 주입시켰다.
‘보면 볼수록 쓸모가 많단 말이지.’
유란의 간부 아기토를 죽이고 얻은 이 팔찌는 어떤 기운이든 저장하고, 은폐하는 능력을 가지고 있었다.
덕분에 데미안은 흡수한 흑마력들을 감쪽같이 숨길 수 있었다.
‘마음 같아서는 흑마법을 모두 버리고 싶다.’
데미안은 흑마법사도, 흑마법도 모두 증오스러웠다. 이 세상에서 모두 지워 버리고 싶을 정도였다.
그럼에도 흑마력을 모으는 이유는 만일에 대비하기 위함이었다.
‘삶이란 어떤 일이 벌어질지 모르지.’
용병으로서 승승장구하던 데미안은 도르고라는 악마를 만나서 인생이 망가졌다.
그런 예기치 못한 사태를 막기 위해서 흑마력을 저장하고 있는 것이다.
팔찌에 흑마력을 모두 저장한 뒤, 데미안은 천리검을 꺼내 들었다.
‘귀찮게 공작을 찾아가서 설명하는 것보다 직접 보여 주는 게 낫겠지.’
데미안의 계획은 간단했다.
기욤 블랙윙의 몸에 자리 잡고 있는 흑마법을 박살 낼 생각이었다.
흑마법이 망가지면 흑마력이 외부로 방출되면서 흑마법의 존재가 만천하에 공개될 것이다.
‘마침 검악가의 경지가 그런 일에 적합하기도 하고.’
데미안은 손가락으로 가볍게 천리검의 날을 튕겼다.
우웅.
살짝 충격을 준 것만으로 검이 사납게 진동했다.
데미안은 천리검에 마력을 주입시킨 뒤, 한 번 더 검신을 튕겼다.
우우웅.
진동이 한층 더 강해졌다. 그와 동시에 근처에 있는 창문 하나가 깨졌다.
‘역시 쉽지 않군.’
데미안은 불만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원래 데미안은 창문이 아니라 의자를 부수려고 했다.
하지만 음을 제대로 조절하지 못해서 창문이 깨지고 말았다.
‘검악가는 이걸 어떻게 조절했던 거지?’
검악가는 검뿐만 아니라 음에 대한 재능을 가지고 있었다.
흔히 말하는 절대음감을 타고난 이가 바로 검악가였다.
데미안에게는 검악가와 같은 음감이 없었다.
그렇기에 기술과 경지를 이해하고 있을 뿐, 곧바로 능숙하게 사용할 수 없었다.
‘내일 결투에서 사용하려면 연습이 좀 필요하겠어.’
데미안은 밤새도록 검명을 울렸다.
* * *
이튿날, 결투 당일이 되었다.
공작가의 가신들은 시간에 맞춰서 훈련장으로 모여들었다. 오늘 있는 결투를 구경하기 위해서였다.
그중에는 공작가의 기사들도 다수 섞여 있었고, 이번 후작가의 결투에 참가하게 되는 기사들도 있었다.
“파벨 형님께서는 누가 이길 것 같으십니까?”
후보 기사 중 한 명이 체구가 땅딸막한 기사에게 물었다.
작은 체구의 기사, 파벨은 턱을 긁적이며 고민에 잠겼다.
“단순히 명성만 생각하면 기욤 블랙윙이 이기겠지.”
먼 타국의 기사긴 하지만 기욤 블랙윙의 명성은 이곳까지 알려졌을 정도로 대단히 유명했다.
“그, 그럼 드디어 데미안 학센, 그 악마 같은 놈한테서 해방될 수 있는 겁니까?”
후보 기사가 몸을 부르르 떨며 물었다.
최근 며칠 동안 결투 기사들은 데미안 학센에게 훈련을 빙자한 구타를 당했다.
저항해 봤자 무참히 당할 뿐이다. 도망치려 하면 붙잡으러 왔다.
특히나 결투기사들을 괴롭게 만든 것은 데미안 학센의 기괴한 타격술이었다.
대체 무슨 짓을 벌였는지 데미안 학센이 아무리 세게 때려도 몸에 상처가 남지 않았다.
그래서 결투기사들은 윗사람에게 고발조차 할 수 없었다.
“기욤 블랙윙 경이 이긴다면 그렇게 되겠지.”
이렇게 크게 충돌했으니 패배한 쪽이 공작가를 떠나게 될 것이다.
데미안 학센이 패배한다면 결투기사들도 그 끔찍한 나날에서 해방되겠지만…….
“근데 나는 어째 그 인간이 지지 않을 것 같단 말이지…….”
파벨 버몬드는 데미안 학센을 떠올렸다.
기기괴괴한 검술과 속마음을 잃는 듯한 심계, 마지막으로 잔인한 손속까지.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오금이 저려올 정도로 무시무시한 인간이었다.
“에이, 아무리 그래도 기욤 블랙윙이 이기는 게 당연하지 않겠습니까.”
동료 기사가 웃으며 말할 때였다. 훈련장에 한 남성이 기합을 지르며 올라왔다.
“흐아아압!”
엄청난 거구인데다 근육질의 사내였다. 특히 두 팔이 길고 두꺼웠다. 마치 통나무를 보는 듯했다.
“저 남자가 기욤 블랙윙…….”
파벨 버몬드는 신기하다는 얼굴로 그를 쳐다봤다.
한눈에 보자마자 알 수 있었다. 비록 경지는 같을지언정 기욤 블랙윙이 훨씬 강하다는 것을 말이다.
“데미안 학센! 어서 올라와라! 오늘이야말로 박살을 내 주마!”
훈련장에 올라온 기욤 블랙윙이 고함을 내질렀다.
기사가 아니라 검투사를 연상시키는 행동에 파벨 버몬드는 인상을 찌푸릴 수밖에 없었다.
실력은 확실하지만 교양과 품위라고는 조금도 없는 인간이었다.
“형님, 그 인간입니다.”
그때, 기사가 파벨 버몬드의 팔을 흔들며 어딘가를 가리켰다.
데미안 학센이 막 훈련장에 모습을 드러냈다.
“용케 도망치지 않았구나!”
데미안 학센을 발견한 기욤 블랙윙이 사납게 웃으며 말했다.
반면 데미안 학센은 늘어지게 하품을 했다.
“아우, 어제 잠을 못 잤더니. 어깨가 뻐근하네.”
데미안 학센은 한쪽 어깨를 매만지며 목을 좌우로 꺾었다.
투지와 긴장감은 조금도 찾아볼 수 없었다. 그 태도에 기욤 블랙윙이 빠득 이를 갈았다.
“아주 죽여달라고 발악을 하는구나.”
기욤 블랙윙에게서 사나운 기세가 번져 나오기 시작했다. 그 거친 기운에 파벨 버몬드는 마른침을 삼켰다.
자신이 생각했던 것보다 기욤 블랙윙은 더 강했다.
기욤 블랙윙은 금방이라도 달려들 것처럼 데미안 학센을 노려봤다.
하지만 실제로 전투는 벌어지지 않았다.
“아무래도 내가 늦은 듯하군.”
훈련장에 들어온 공작 때문이었다.
“데미안 경, 어젯밤에는 잘 잤나?”
“뭘 좀 연습하느라 한숨도 못 잤습니다.”
“저런. 뭐에 그리 열중했는지는 모르겠지만 잠은 빼먹지 말게나. 잠이야말로 영약이라네.”
공작은 데미안에게 정겹게 인사를 건넨 뒤, 기욤 블랙윙에게 다가갔다.
“기욤 블랙윙.”
“……예, 각하.”
기욤 블랙윙은 공작 옆에 있는 가올 하임리히를 곁눈질하며 대답했다.
“깔끔하게 승패애 굴복하길 바라네.”
이미 결과가 정해져 있다는 듯한 말투에 기욤 블랙윙의 얼굴이 험악해졌다.
“……예, 그렇게 하겠습니다.”
하지만 가올 하임리히가 있기에 성질을 폭발시키지는 못했다.
“그럼 뭐, 오래 끌 거 없지. 결투를 시작하도록 하겠네.”
공작의 선언이 떨어졌다.
* * *
결투가 시작되자마자 기욤 블랙윙이 훈련장을 질주했다.
두 자루의 손도끼를 각각 한 손에 들었다. 도끼에는 시뻘건 오러가 맺혀 있었다.
“데미안 학세에에에에엔!”
격정을 참지 못하고 기욤 블랙윙이 큰소리로 외쳤다. 그 소리에 데미안 학센은 인상을 찌푸렸다.
‘시끄러운 자식.’
불쾌함과는 별개로 데미안 학센은 반사적으로 기욤 블랙윙에 대해서 분석했다.
‘양팔의 근육이 동등하게 발달해 있다. 한손잡이가 아니라 양손잡이라는 뜻이야.’
쌍수 무기를 사용해도 오른손잡이냐 왼손잡이냐에 따라서 기술이 달라진다.
하지만 기욤 블랙윙은 양손잡이였다. 기술에 빈틈이 없다는 뜻이었다.
‘땅을 밟을 때마다 깊이가 달라진다. 마력을 능숙하게 운용하지 못한다는 뜻이야.’
마력을 일정하게 운용하지 못하기에 땅을 밟는 힘이 각기 달라서 깊이에 차이가 발생하는 것이다.
‘이쯤에서 그만해야겠군.’
기껏해야 흑마법으로 경지를 높인 가짜기사다. 데미안이 분석할 가치는 조금도 없었다.
“안 피해? 날 정면에서 막아 보겠다 이거냐?”
코앞까지 다가온 기욤 블랙윙이 손도끼를 번쩍 들어 올렸다.
“그러다 뒤진 새끼들이 한두 명이 아니야!”
기욤 블랙윙의 팔뚝에 힘이 불끈 들어갔다. 두 자루의 도끼가 데미안을 향해 떨어졌다.
데미안은 천리검으로 도끼를 막았다. 도끼와 충돌하자마자 천리검이 무섭게 진동했다.
우웅.
천리검이 파동을 내뿜었다. 데미안을 중심으로 바닥의 표면이 박살이 났다.
파동은 기욤 블랙윙까지 날려 버렸다. 기욤 블랙윙은 허공에서 몸을 회전시키며 땅에 착지했다.
“바, 방금 무슨 짓을…….”
블랙윙은 당혹스럽다는 얼굴로 데미안을 쳐다봤다.
놀라기는 다른 사람들도 마찬가지였다.
“지, 지금 저게 뭐요?”
“저,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소리가 울리더니 갑자기 기욤 블랙윙이 날아가던데요?”
모두 이런 방어술은 본 적이 없었다. 그렇기에 당혹스러워할 수밖에 없었다.
“……저건.”
딱 한 명, 가올 하임리히는 데미안이 사용한 기술을 알아봤다.
공작은 가올 하임리히를 돌아보며 물었다.
“가올 경, 데미안 학센이 사용한 기술에 대해서 알고 있는가?”
“몇 년 전에 공작가에서 고용한 기사가 저것과 비슷한 기술을 사용했습니다.”
가올 하임리히는 놀랍다는 얼굴로 데미안 학센을 바라봤다.
“굉장히 특이한 기술이라 계속 기억이 남아 있었습니다. 설마 그것을 데미안 학센도 사용할 수 있을 줄은 몰랐습니다.”
가올 하임리히는 잠시 기억을 더듬다가 공작에게 말했다.
“제 기억이 맞다면…… 아마 더 재미있는 걸 보실 수 있을 겁니다.”
* * *
“어디서 괴상한 요술을 부리고 자빠졌어!”
기욤 블랙윙이 다시 땅을 박찼다. 데미안을 향해 달려들었다.
데미안은 두 손가락으로 천리검의 칼날을 쓸었다.
칼날이 서서히 진동하기 시작했다. 진동이 커질수록 검명도 커졌다.
검명이 절정에 달했을 때, 데미안 학센이 손가락으로 칼날을 튕겼다.
그 직후, 기욤 블랙윙의 복부에 충격이 가해졌다.
“커억!”
그 순간, 기욤 블랙윙이 괴성을 토해내며 멈춰 섰다. 또다시 혼란스럽다는 얼굴로 데미안을 쳐다봤다.
“이, 이 새끼가…… 자꾸 뭔 이상한 짓을…….”
우웅.
데미안이 다시 칼날을 튕겼다.
이번에는 기욤 블랙윙의 얼굴이 찌그러졌다. 마치 보이지 않는 몽둥이로 얻어맞는 듯했다.
“크악!”
데미안이 다시 칼날을 튕겼다. 이번에는 옆구리에 충격이 가해졌다.
“크아악!”
기욤 블랙윙이 양손의 도끼를 마구 휘둘렀다. 하지만 도끼에 걸리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저, 저게 뭐죠? 설마 데미안 경이 마법을 사용하는 겁니까?”
“데미안 경은 기사잖습니까?”
가신들은 그 괴상한 광경에 당황해할 수밖에 없었다.
“이 새끼야! 작작하지 못해!”
기욤 블랙윙이 분노를 토해 내며 손도끼를 휘둘렀다. 붉은 오러가 방출되더니 데미안을 향해 날아갔다.
우우우웅.
그때, 데미안이 울리던 검명이 달라졌다. 방금 전까지는 묵직했다면 이제는 날카로웠다.
날카로운 검명이 울리자마자 기욤 블랙윙이 날린 오러가 반으로 갈라졌다. 오러는 구심점을 잃고 흩어졌다.
“……뭣?”
상상치도 못한 광경에 기욤 블랙윙의 몸이 덜컥 굳었다.
그때를 노리고 데미안이 다시 검명을 울렸다.
그 순간, 기욤 블랙윙이 황급히 땅을 박차고 뛰어올랐다. 훈련장 바닥이 칼로 그은 것처럼 쫙 베였다.
“이, 이런 미친놈이!”
기욤 블랙윙은 당황해하며 데미안을 향해 달려들었다. 데미안은 그런 기욤 블랙윙을 힐끔 쳐다봤다.
‘노는 건 이쯤 해야겠군.’
검악가의 기술을 시험하기 위해서 잠깐 기욤 블랙윙을 데리고 놀았다.
이제 사람들에게 진실을 알릴 때였다.
‘검악가의 무서운 점은 대규모 전투에 능하기 때문이 아니다. 검명으로 내부를 공격할 수 있기 때문이지.’
검악가가 마스터로서 도달한 경지는 ‘공진(共振)’이라고 불렸다.
원래 검악가는 검명을 이용해서 외상밖에 입히지 못했다.
하지만 ‘공진(共振)’에 도달하면서 상대의 신체 내부에 영향을 끼치는 것이 가능해졌다.
검악가가 검명을 울릴 때마다 적들은 내부가 뒤집어지는 고통을 경험해야 했다.
‘마스터에게는 통하지 않는 기술이었지.’
마스터쯤 되면 신체가 극한까지 단련이 된데다 마력 운용 역시 굉장히 촘촘했다.
그렇기에 공진으로 내상을 입히는 게 거의 불가능했다.
‘하지만 유용한 경지라는 것만은 틀림없어.’
데미안이 천리검을 튕겼다. 검명이 은은하게 울리기 시작했다.
진동하는 천리검을 양손으로 붙잡았다. 하늘 높이 들어 올린 다음, 바닥을 향해 힘껏 내리쳤다.
머리가 진탕 흔들릴 정도로 거대한 소리가 회의장을 가득 뒤덮었다.
거대한 파동에 기욤 블랙윙의 몸이 잘게 흔들렸다. 기욤 블랙윙은 그대로 굳어 버렸다.
“너, 너…….”
기욤 블랙윙의 얼굴이 서서히 창백하게 질리기 시작했다.
“우, 우욱……!”
기욤 블랙윙이 입에서 무언가를 토해 냈다.
피는 아니었다. 그보다 훨씬 새까맣고 끈적끈적한 액체였다.
“기, 기욤 경이 왜 저러는 거지?”
“뭔가 이상한데요?”
기욤이 토해 낸 물질이 땅에 닿았다. 그 순간, 기체로 변하며 사방으로 퍼졌다.
새까만 안개가 회의장을 가득 채웠다. 그것을 본 가신들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었다.
“이, 이건 설마…….”
이 세상에서 검은색을 띠는 마력은 단 하나밖에 없었다.
“흐, 흑마력이잖아!”
가신들이 비명을 지르듯이 소리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