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turn of the Calamity-Class Death Knight RAW novel - chapter (296)
멸망급 데스나이트가 회귀함 296화(296/300)
멸망급 데스나이트가 회귀함 296화
296화 장애물 (2)
불의 정령왕이 내뱉은 불길이 들판을 뒤덮었다. 마치 불의 강이 흐르는 것 같았다.
열기로 인해서 하늘을 날아가던 새들이 잿더미로 변해 땅으로 떨어질 정도였다.
데미안은 두 손을 앞으로 내밀었다. 홍련의 기사에게서 습득한 기술을 사용해서 불길을 제어하기 시작했다.
들판을 달리던 불길이 쫙 갈라졌다. 데미안과 일행들을 피해서 좌우로 흘러가도록 만들었다.
다음으로 화염을 자신의 몸속으로 흡수시켰다.
숨을 쉴 때마다 전신의 구멍으로 빨려 들어갔다. 데미안은 끊임없이 화염을 흡수했다.
화옥정(火獄井)
홍련의 기사가 터득했던 경지의 이름이었다.
그는 평상시 몸속에 화염을 저장해 놓은 뒤, 전투 시에 꺼내서 사용했다.
덕분에 홍련의 기사는 걸어 다니는 화산이나 다름없었다. 그가 나타난 전쟁터는 삽시간에 용암이 들끓는 땅으로 변했을 정도였다.
“……정령왕의 불길을 제어하는 것도 모자라서 흡수해?”
만염의 지배자가 어이없다는 얼굴로 데미안을 바라봤다.
“위험한 녀석이군. 살려 둬서는 안 되겠어.”
만염의 지배자가 주먹을 들어 올렸다. 그러자 불의 정령왕이 입을 다물었다. 들판을 불태우던 불길도 뚝 끊어졌다.
“카르타. 불의 밀도를 높여라. 저 녀석이 화염을 제어할 수도, 흡수할 수도 없도록 막아.”
카르타가 두 손을 들어 올렸다. 그러자 허공에서 불꽃이 피워 올랐다.
그 속에서 화염으로 이루어진 뱀들이 튀어나왔다. 뱀들은 서로 뒤엉키며 하늘 높이 치솟아 올랐다.
“이건 어떻게 대처할 수 있는지 보겠다.”
하늘 높이 날아올랐던 불의 뱀들이 데미안을 향해서 낙하했다. 수십 개의 불줄기가 떨어지는 것 같았다.
데미안은 불줄기와 엘프들을 번갈아 쳐다봤다.
‘귀찮은 전투가 되겠어.’
정령왕을 다루는 만염의 지배자를 상대로 엘프들을 지키면서 싸워야 하는 상황이었다.
아무리 데미안이라 해도 까다로운 상황이었다.
그렇다고 다른 선택지가 있는 것은 아니었다. 엘프들을 죽게 내버려 둘 수는 없었으니까.
데미안이 결심을 굳힌 순간, 불의 뱀들이 데미안을 덮쳤다.
만염의 지배자가 말한 대로 이전처럼 제어할 수가 없었다. 데미안은 즉시 여명으로 불의 뱀을 베어 냈다.
뱀의 길쭉한 몸체가 쫙 갈라지며 화염이 쏟아졌다. 구심점을 잃은 탓인지 이 화염들은 데미안의 제어가 통했다.
데미안은 곧바로 화옥정으로 화염들을 흡수했다. 혹시라도 엘프들이 다치는 상황을 방지하기 위함이었다.
뒤이어서 불의 뱀들이 데미안을 공격했다. 데미안은 뱀들이 다가오는 족족 여명으로 베어 냈다.
“보아하니 엘프들을 지키느라 제대로 움직이지 못하는군. 그럼 이렇게 하면 어떨까.”
만염의 지배자가 손짓했다. 그러자 엘프들의 등 뒤로 불의 뱀들이 나타났다.
“판데모니엄의 기둥이라 불리는 분께서 치사한 짓을 벌이는군.”
데미안이 조롱을 담아서 말했다. 그러자 만염의 지배자는 실소를 흘렸다.
“판데모니엄의 기둥이니 이 정도 악랄함은 보여 줘야 하지 않겠나.”
만염의 지배자는 데미안의 조롱을 아무렇지도 않게 받아넘기며 명령했다.
“카르타. 불태워 버려라.”
불의 뱀이 엘프들을 향해 달려들었다. 엘프들이 팔로 얼굴을 가리며 비명을 질렀다.
“후우.”
데미안은 크게 숨을 들이마셨다. 내부의 마력을 끌어올렸다.
“이륜(二輪).”
데미안의 몸속에서 두 개의 원이 완성되었다. 그 순간, 두 눈동자에서 시퍼런 안광이 뿜어져 나왔다.
칼자루를 두 손으로 붙잡으며 허리를 비틀었다. 여명을 크게 휘둘렀다.
오러블레이드가 파문처럼 넓게 퍼졌다. 엘프들을 덮치려던 불의 뱀들이 모조리 잘려 나갔다. 이윽고 화염이 쏟아지며 들판을 불태웠다.
“…….”
만염의 지배자는 말문이 막힌 얼굴로 데미안을 바라봤다.
정령왕이란 정령들의 정점이요, 존재 자체가 재앙이나 다름없는 초월적인 존재다.
그런 초월적인 존재가 사용한 기술을 이렇게 간단하게 파훼하다니?
두 눈으로 직접 보고 있음에도 도무지 믿을 수 없었다.
“이봐.”
그때, 데미안이 입을 열었다. 만염의 지배자는 그제야 충격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아무리 썩은 내를 풍기는 쓰레기라 해도 어느 정도 격식을 갖출 줄 알아야지. 저 녀석들을 노리는 건 너무 치졸한 짓이었어.”
어조는 차분했으나 만염의 지배자는 느낄 수 있었다.
눈앞의 남자가 적잖게 화가 났다는 사실을 말이다.
“더 이상 개수작 부리지 못하도록 지금 당장 네놈의 숨통을 끊어 주마.”
들판을 불태우고 있던 화염들이 데미안의 몸속으로 흡수되기 시작했다.
그런데 범위와 속도가 심상치 않았다. 들판 전체의 화염이 한순간에 모조리 빨려 들어간 것이다.
만염의 지배자는 잠시 자신의 눈을 의심했다.
처음보다 화염을 제어하는 영역과 속도가 월등히 늘어났다.
“……설마 실력을 숨기고 있었던 거냐?”
“숙달된 덕분이지.”
그 말에 만염의 지배자는 눈살을 찌푸렸다.
숙달? 저게 무슨 소리지? 설마 전투 도중에 성장하기라도 했다는 소리인가?
“제법 혓바닥을 놀릴 줄 아는군. 날 이토록 혼란에 빠트릴 줄이야.”
“마음대로 생각해라.”
그리 말하며 데미안은 흡수한 화염을 해방시켰다.
화옥정으로 흡수한 화염은 단순히 방출하는 것 이외에도 다양한 방식으로 활용할 수 있었다.
화염과 마력이 서로 어우러지면서 더욱 강해졌다. 데미안이 내뿜는 기운이 증폭되었다.
“아직 밑바닥을 드러내지 않았다 이거냐?”
만염의 지배자는 짧게 감탄했다.
“좋구나. 안 그래도 카르타의 힘을 한계까지 발휘할 상대를 찾고 있었다.”
만염의 지배자가 다시 명령을 내렸다. 카르타는 즉시 화염을 일으켰다.
검붉은 불길이 만염의 지배자가 서 있는 땅을 뒤덮었다.
“너와 나, 둘 중에서 누가 더 화염에게 사랑받는 사람인지 겨루어 보자!”
만염의 지배자가 호승심 가득한 얼굴로 소리쳤다.
“목이 마르군.”
그때, 낯선 목소리가 들려왔다.
만염의 지배자도, 데미안도 놀란 얼굴로 들판의 한 가운데를 바라봤다.
그곳에는 어느새 한 남성이 서 있었다.
색소가 옅은 피부, 시뻘건 두 눈동자.
그 남자의 얼굴을 확인한 순간, 만염의 지배자가 분노를 담아서 소리쳤다.
“……에오스!”
제국제일검.
인류최강이 만염의 지배자를 향해서 손을 흔들며 말했다.
“레오스, 헤어스타일이 참 멋있구나.”
* * *
“……개소리를 지껄이는 버릇은 여전하군.”
만염의 지배자가 증오를 담아서 말했다.
데미안은 만염의 지배자와 제국제일검을 번갈아 쳐다봤다.
이렇게 놓고 보니 확실하게 알 수 있었다. 두 사람의 얼굴은 판에 찍어 낸 것처럼 똑같았다.
“머리 색이 나랑 다른데 설마 염색도 한 게냐?”
“시끄러우니까 이만 닥쳐.”
제국제일검은 어깨를 으쓱하며 데미안을 돌아봤다.
“데미안 학센, 그대를 여기서 보게 될 줄은 몰랐다.
“……오랜만에 뵙습니다.”
“참, 오늘은 우산을 챙길 필요가 없겠어. 당분간 계속 맑거든. 그런 운명이 느껴져.”
영문을 알 수 없는 헛소리가 이어졌다.
데미안은 어처구니없다는 얼굴로 제국제일검을 쳐다봤다.
원래 이런 인간이라는 사실은 알고 있었지만 아무래도 적응이 되지 않았다.
“용케 엘프헤임을 찾아왔군. 뱃멀미는 심하지 않았나?”
“그런 건 나중에 물어보고 저쪽이나 해결하시죠. 금방이라도 공격할 것 같은데.”
데미안이 만염의 지배자를 가리키며 말했다. 데미안의 말대로 만염의 지배자에게서는 지독한 살기가 계속 뿜어져 나오고 있었다.
“레오스, 오늘은 이만 물러나도록 하지. 슬슬 저녁 시간이잖나.”
“하핫, 물러나? 물러나자고? 네놈답지 않은 말이구나! 아무리 너라도 정령왕은 부담스러운 모양이지?”
만염의 지배자가 득의양양한 얼굴로 말했다. 그러자 제국제일검이 불의 정령왕을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물었다.
“말뚝이 저렇게 박혀 있으면 아프겠는걸.”
“내 말에 대답이나 해!”
“아아, 그래. 무섭냐고 했나? 그건 아니다.”
제국제일검이 어딘가를 가리켰다. 데미안은 그쪽으로 시선을 옮겼다.
그러자 익숙한 기운이 느껴졌다. 여기서 한참 떨어진 장소에 판데모니엄의 수장이 서 있는 게 보였다.
그녀는 금방이라도 달려들고 싶다는 듯이 거친 기운을 내뿜고 있었다. 제국제일검은 그녀를 향해서 손을 흔들었다.
“레오스, 네가 물러나지 않으면 나와 저 여자가 싸우게 된다.”
“그게 뭐 어쨌다는 거냐? 우리는 자신 있다.”
“너희들은 그걸 바라지 않을 텐데.”
그 말에 만염의 지배자가 멈칫했다.
“그런 운명이 느껴졌다. 너희들은 지금 나와 싸우고 싶어하지 않아. 그리고 그건 나도 마찬가지다. 이곳에는 내가 지켜야 할 이들이 너무 많아.”
제국제일검은 데미안의 뒤에 있는 엘프들을 힐끔 쳐다봤다.
“결정해라. 여기서 물러날지. 아니면 결판을 낼지.”
만염의 지배자는 잠시 고민에 빠졌다. 이내, 이를 갈며 정령왕의 소환을 해제시켰다.
“……다음에 볼 때는 반드시 죽여 버리겠다.”
“이해해 줬군. 참, 마지막으로 할 말이 있다.”
“뭐냐.”
“저녁 식사는 적게 해라. 그래야 소화가 빨리 돼서 잠이 잘 온다.”
“헛소리 좀 그만하랬지!”
만염의 지배자는 성을 낸 뒤, 몸을 화염으로 바꾸며 사라졌다.
제국제일검은 만염의 지배자가 사라진 자리를 한참 동안 바라봤다.
그러다 다시 데미안을 돌아봤다.
“데미안 학센, 엘프헤임의 방문을 환영한다. 어려운 시기에 잘 찾아와 줬군.”
“어떻게 찾아왔는지 안 물어보시는 겁니까?”
“밀레느 님께서 이미 말씀해 주셨다. 자네가 방문할 것이라고 말이지.”
그래서 제국제일검은 데미안을 보고도 딱히 놀라지 않은 모양이었다.
“한 가지 물어볼 게 있습니다. 어째서 당신과 만염의 지배자의 얼굴이 똑같은 겁니까?”
“그게 궁금했나? 별거 아니다.”
제국제일검이 정말로 대수롭지 않다는 표정으로 말했다.
“만염의 지배자는 내 동생이다.”
데미안은 자신의 귀를 의심했다.
“동생이라고요? 만염의 지배자는 귀가 뾰족했는데요? 그에 비해 당신은 둥글잖아요.”
“우리 형제는 하프엘프다.”
데미안은 놀라서 말을 잇지 못했다. 그런 데미안에게 만염의 지배자가 덧붙였다.
“나는 인간의 특징을, 내 동생은 엘프의 특징을 강하게 물려받았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