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turn of the Calamity-Class Death Knight RAW novel - Chapter (308)
멸망급 데스나이트가 회귀함 308화(308/327)
멸망급 데스나이트가 회귀함 308화
308화 과거의 힘 (4)
“나부터 치워 버리겠다고?”
바헬은 치밀어 오르는 웃음을 꾹 참았다.
악마인 자신에게 인간 따위가 이렇게 위세를 부릴 수 있다니.
재미있는 것은 이 행동이 허세로 느껴지지 않는다는 점이었다.
지금 데미안 학센에게서 느껴지는 기세는 공작급 악마인 자신조차 경시하기 힘들 정도였으니까.
신하들이 침묵하고 있는 것도 그런 이유 때문이었다.
다들 내색하지는 않았지만 데미안 학센을 경계하고 있었다.
“역시 재미있는 녀석이야.”
바헬은 오랜 세월 동안 지옥을 탐사하고, 지상을 훔쳐 봤다. 그만큼 많은 악마와 인간을 만나봤다.
하지만 데미안 학센처럼 흥미로운 존재는 처음이었다.
“아스타, 그러게 내가 방심하지 말라고 했잖냐.”
바헬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말했다.
“알았으면 이제 얌전하게 돌아오도록 해라.”
그런데 대답이 들려오지 않았다. 아스타는 여전히 얼굴을 바닥에 처박고 있을 뿐이었다.
“……아스타?”
재차 불렀음에도 아스타는 반응하지 않았다. 그제야 바헬은 아스타가 기절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후작급 악마가 일격에 기절했다?
전혀 예상치 못한 사태에 바헬은 전신에 희열이 번지는 것을 느꼈다.
다른 존재도 아닌 자신이, 공작급 악마인 자신이 데미안 학센의 실력을 착각하고 말았다.
“이렇게 재미있는 녀석일 줄은 몰랐는데.”
바헬의 얼굴에 웃음기가 사라졌다. 반면 두 눈동자는 어린아이처럼 반짝였다.
이대로 데미안 학센과 싸우면 어떻게 될까? 바헬은 머릿속으로 승패를 가늠했다.
질적으로 보나 양적으로 보나 바헬이 유리했다. 하지만 데미안 학센이 보여 준 의외성이 바헬의 발목을 붙잡았다.
게다가 지금 악마들은 지상에 적응할 필요가 있었다. 맹약은 해제되었지만 지옥과 지상은 너무나도 다른 세상이었으니까.
“데미안 학센, 이번에는 내가 졌다.”
바헬이 어깨를 으쓱하며 말했다.
“그러니 오늘은 이만 물러나도록 하마. 다음에 다시 만나자꾸나. 너희들은 여기 널브러져 있는 것들을 챙겨라.”
바헬이 수하들에게 아스타와 도르고, 나머지 언데드들을 맡기고 물러나려 할 때였다.
“그건 곤란하지.”
데미안 학센이 단호하게 말했다.
“도르고는 이곳에 놓고 꺼져라.”
“까칠하게 굴지 마. 너도 많이 지쳤잖아? 그러니까 오늘은 이대로 헤어지는 게 서로한테 좋을…….”
데미안 학센이 살기를 폭발시켰다.
지면에 칼자국이 빼곡하게 새겨졌다. 유형화된 살기가 사물을 베어 낸 것이었다.
“두 번 말하지 않겠다. 도르고를 내놔라.”
데미안 학센이 분노를 억누르는 듯한 얼굴로 말했다.
그런 데미안 학센의 태도에 바헬은 심통이 났다. 애초에 악마란 남의 말을 듣는 존재가 아니었다.
“싫다면?”
“그럼 도르고를 강제로 데리고 가겠다.”
“흠, 싸우는 것도 싫은데. 이를 어쩐다…….”
바헬의 입가에 슬며시 장난스러운 미소가 떠올랐다.
“미그매그! 차원문을 열어라! 우리는 여기서 도망친다!”
바헬의 옆에 있던 악마가 쇠지팡이로 땅을 찍었다.
그러자 아스타와 4대 마왕이 누워 있는 지면에 차원문이 열렸다.
데미안 학센이 반사적으로 에레보스를 내리쳤다. 아스타의 목을 베기 위함이었다.
하지만 이미 아스타는 차원문 속으로 빨려 들어간 뒤였다.
아스타뿐만이 아니었다. 4대 마왕들도 모두 사라져 있었다.
바헬의 뒤에도 차원문이 열렸다. 수하들이 먼저 차원문 안으로 우르르 들어갔다.
“그럼 도르고, 우리도 가 볼까?”
바헬은 도르고의 덜미를 움켜잡고 차원문으로 들어갔다.
“놓고 가라고 했을 텐데!”
데미안이 분노를 토해 내며 차원문으로 뛰어가려 했다. 그때, 바헬이 손가락을 까딱거렸다.
그 순간 ‘고립’의 권능에 의해서 만들어진 벽이 데미안의 앞을 가로막았다.
“바헬!”
데미안이 에레보스를 휘둘러 벽을 부쉈으나 몇 초를 낭비해 버렸다. 그사이 차원문은 거의 닫힌 뒤였다.
“그럼 다음에 또 보자.”
아직 닫히지 않은 틈새로 바헬은 손을 흔들며 말했다. 그 말을 끝으로 차원문이 완전히 닫혔다.
“후, 무서운 친구였어. 그렇지 않아?”
바헬이 악마들을 돌아보며 말했다.
“미그매그, 방금 전에는 아주 훌륭했어. 감탄이 나올 정도로 빠르던걸?”
-과찬이오. 그리 대단하지 않았소.
등이 굽은 악마가 노쇠한 목소리로 말했다.
“에이, 겸손도 지나치면 얄미운 법이야. 내가 봤을 때 이 정도 속도면…….”
그때, 본능이 경고를 했다. 바헬은 반사적으로 뒤를 돌아봤다.
그 순간, 허공을 가르며 참격이 날아들었다.
바헬은 반사적으로 팔뚝을 들어서 공격을 막았다. 하지만 팔뚝은 참격을 조금도 막아 내지 못했다.
팔뚝을 절단한 참격이 그대로 바헬의 목까지 베어 냈다.
목이 갈라지며 피가 뿜어져 나왔다.
* * *
데미안은 차원문이 닫힌 자리를 더듬었다. 오만의 권능으로 차원문을 열기 위해서였다.
하지만 4대 마왕이 만든 차원문과 달리 좌표를 찾을 수가 없었다.
악마가 차원문을 닫자마자 좌표를 흩트려 놓았기 때문이다. 악마의 솜씨가 4대 마왕보다 월등히 뛰어나다는 증거였다.
“바헬! 이 씹어먹어도 시원찮을 새끼가!”
극심한 분노로 인해서 눈앞이 벌겋게 물들었다. 전신에서 혈관이 도드라졌다.
또 방해를 받고 말았다. 또 도르고를 죽이지 못했다. 감정이 너무 격해져서 미칠 것만 같았다.
하지만 데미안은 그 모든 감정을 억눌렀다. 지금은 감정을 표출할 때가 아니었다.
“이대로 도망치게 놔둘 것 같으냐……!”
데미안은 흑마력을 에레보스에 응집시켰다. 칠흑 같은 오러블레이드가 에레보스의 검신을 뒤덮었다.
멸망전쟁 말기.
데미안은 도르고를 죽이기 위한 일념으로 한 가지 경지를 만들어 냈다.
도르고는 리치였기에 자신의 영혼을 라이프베슬이라 불리는 구슬에 넣고 다른 곳에 보관하고 있었다.
하지만 도르고에게 지배당하고 있는 데미안이 그 구슬을 찾을 방법은 없었다.
그렇기에 데미안은 자신이 훔쳐낸 모든 경지를 합쳐서 새로운 경지를 만들어 냈다.
검신(劍神).
검신의 능력은 다른 경지에 비하면 무척 간단했다.
베어 낸다.
그게 무엇이든 상관없었다. 형체가 없더라도, 이 자리에 없더라도, 반드시 베어 낸다.
오직 도르고를 죽이기 위한 일념으로 만들어 낸 데미안만의 경지가 검신이었다.
데미안은 에레보스의 칼자루를 두 손으로 잡았다. 에레보스에 맺힌 오러블레이드가 위협적으로 진동했다.
허공을 향해서 에레보스를 휘둘렀다.
에레보스의 칼날이 차원의 벽을 파고들었다.
* * *
목이 깊이 베이며 피가 뿜어져 나왔다. 명백한 치명상이었음에도 바헬은 상처를 틀어막지 않았다.
갈라진 틈새로 보이는 데미안 학센의 모습 때문이었다.
데미안 학센은 금방이라도 미칠 것 같은 표정으로 자신을 노려보고 있었다.
틈새는 곧바로 닫히고 말았다. 그럼에도 바헬은 허공에서 시선을 떼지 못했다.
-바헬 님! 상처가 깊습니다!
-지금 당장 치료하겠습니다!
수하들이 황급히 달려왔지만 바헬은 손을 들어서 막았다.
“하하핫!”
그리고 상처를 매만지며 큰 소리로 웃었다.
“이 몸에 상처가 난 게 얼마 만인지 모르겠구나!”
데미안 학센은 자신의 팔뚝을 절단하고, 목까지 베어 냈다.
상처가 조금만 더 깊었으면 분명 목숨을 잃었으리라. 그 정도로 위협적인 공격이었다.
“재미있어. 역시 재미있어.”
바헬은 도르고를 들어 올려 눈높이를 맞췄다.
“도르고, 저건 대체 뭐냐? 무엇인데 이토록 날 재미있게 하는 것이냐!”
“……알 거 없다.”
“오, 순순히 말해 주지 않을 생각이냐? 그렇다면 나도 거친 방법을 사용할 수밖에 없지.”
바헬이 손짓을 했다. 그러자 모기처럼 길쭉한 주둥이가 달린 악마가 다가왔다.
그 악마를 보자마자 도르고의 안광이 크게 흔들렸다.
“바헬, 이 미친 놈이!”
“라리아, 도르고의 모든 기억을 긁어내라. 폐인이 되어도 상관없다.”
-알겠다.
“아, 대신 죽여서는 안 돼. 데미안 학센을 끌어낼 미끼로 써야 하거든.”
바헬은 악마에게 도르고를 던졌다. 악마는 네 개의 팔로 도르고를 움켜잡았다.
“아, 안 돼! 그만! 이 녀석 만큼은 안 돼!”
도르고가 기겁을 하며 소리쳤다. 하지만 바헬은 매정하게 몸을 돌렸다.
“바헬! 말하겠다! 전부 말할 테니…… 컥!”
악마가 도르고의 머리에 주둥이를 박아 넣었다.
단말마와 같은 비명소리가 길게 이어졌다.
* * *
쾅.
데미안은 주먹으로 땅을 내리쳤다.
한 번으로는 화가 풀리지 않았다. 연신 주먹을 내리쳤다.
“빌어먹을……!”
손맛이 애매했다. 바헬의 목을 완전히 베어 내는 데 실패했다는 뜻이었다.
눈을 벌겋게 뜨고 도르고를 놓쳤다. 그 사실이 데미안을 분노하게 만들었다.
“데미안…….”
그때, 나지막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데미안은 고개를 돌렸다. 그러자 바닥에 쓰러져 있는 제국제일검이 보였다.
상처가 너무 심한 탓에 제국제일검은 금방이라도 죽을 것 같았다.
데미안은 분노를 눌러 참았다. 죽어 가는 사람을 보고도 감정에 휩쓸릴 수는 없었다.
“지금 당장 상처를 치료하겠습니다.”
데미안은 아공간에서 포션과 여명을 꺼냈다. 하지만 제국제일검은 고개를 저었다.
“아니, 그보다 중요한 일이 있어.”
제국제일검이 손가락으로 하늘을 가리켰다. 데미안은 고개를 들었다.
하늘을 뒤덮은 세계수의 가지가 회색으로 물들고 있었다.
가지뿐만이 아니었다. 저 멀리 보이는 줄기도 검게 변질되고 있었다.
섬을 가득 채우고 있던 세계수의 기운도 급속도로 약해지고 있었다.
데미안은 경악한 얼굴로 그 광경을 바라봤다. 지금 세계수는 죽어 가고 있었다.
“어째서? 이미 권능은 정지시켰을 텐데?”
“역시 악마의 권능을 막은 게 그대였군.”
제국제일검은 안타까운 얼굴로 세계수를 바라보며 말했다.
“그대의 잘못이 아니야. 맨 처음에 권능이 발동했을 때, 세계수가 입은 피해가 너무 컸던 거야. 그래서 수복하지 못하고 죽어 가고 있는 거지.”
제국제일검은 힘겹게 몸을 일으키며 말했다.
“데미안, 부탁이네. 날 세계수로 데려다주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