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turn of the Calamity-Class Death Knight RAW novel - Chapter (32)
멸망급 데스나이트가 회귀함 32화
32화 이파리 평원 (2)
후작은 재빨리 손을 뻗어서 미하엘의 손을 붙잡으려 했다.
하지만 그보다 먼저 미하엘의 손을 막은 이가 있었다.
데미안 학센이 손을 뻗어서 미하엘의 손목을 움켜잡은 것이다. 그 바람에 미하엘은 칼을 뽑지 못했다.
미하엘은 당황한 얼굴로 검 자루와 데미안 학센을 번갈아 쳐다봤다.
“성질 한번 급하군.”
데미안 학센이 미하엘 라이언블룸을 내려다보며 말했다.
“호승심이 강한 모양인데. 아무리 그래도 지금은 칼을 뽑을 만한 자리가 아니지 않나?”
그제야 미하엘은 주변을 돌아봤다. 그제야 인상을 쓰고 있는 공작의 얼굴이 보였다.
“라이언블룸 후작, 이게 무슨 짓이지?”
공작이 가시 돋힌 어조로 말했다.
후작은 손바닥으로 얼굴을 쓸었다.
“……내 아들이 어리석은 행동을 저질렀군. 그대의 기사를 해하려는 의도는 전혀 없었네.”
“그런 말로 넘어갈 수 있는 일이 아니라는 걸 잘 알 텐데?”
날선 비난에 후작은 식은땀만 흘렸다.
공작은 후작의 초대에 응해서 이 자리에 나왔다. 그런 자리에서 미하엘 라이언블룸이 무기를 뽑으려 했다.
이는 보통 일이 아니었다. 잘못하면 후작가의 명성이 곤두박질칠지도 몰랐다.
‘연기에 소질이 좀 있네.’
데미안은 그런 공작을 재미있다는 얼굴로 바라봤다.
데미안은 일찌감치 공작이 진심으로 화나지 않았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후작의 약점을 잡아서 즐거워하고 있었다. 살짝 휘어 있는 눈초리만 봐도 알 수 있었다.
“생각 같아서는 이 자리를 박차고 떠나고 싶지만…… 결투가 남아 있으니 참도록 하지.”
“……아량에 감사하네.”
“대신 결투의 보상으로 몇 가지 조건을 더 걸어야겠네.”
후작은 침음을 흘렸다.
“……조건을 말해 보게.”
“이번 결투에서 우리가 승리하면 금광과 인접한 토지의 소유권을 가져가도록 하겠다.”
이번 결투의 발단은 공작가와 후작가의 영지 경계선에 금광이 발견되었기 때문이다.
공작은 결투에서 이기면 그 경계선의 영지를 모두 받아 가고자 했다.
“그거면 되겠나?”
“한 가지 더, 우리가 결투에서 승리한다면 여기 있는 데미안 학센 경에게 후작가의 비고를 한번 열어 주게.”
공작이 데미안 학센의 등을 두드리며 말했다.
데미안은 놀란 얼굴로 공작을 쳐다봤다.
비고라는 것은 평범한 창고가 아니다. 가문에서 대대로 모아 온 보물들을 쌓아 놓는 곳이다.
그런 곳을 한번 개방하라는 것은 데미안 학센에게 후작가의 보물을 하나 내주라는 소리였다.
“……버거운 조건들을 내거는군.”
“대신 결투에서 승리해야 한다는 조건이 붙어 있잖나.”
후작은 잠시 고민하다가 말했다.
“좋아. 그 조건들을 모두 받아들이도록 하지.”
* * *
대화는 그것으로 끝났다.
후작과 공작은 각자의 진영으로 돌아갔다.
“……미하엘.”
돌아가는 길에 후작은 원망스럽게 아들의 이름을 불렀다.
“어쩌자고 그 자리에서 칼을 뽑은 것이냐. 방금 너는 우리 가문을 무너뜨릴 뻔…….”
“아버지, 봤어요? 그 자식, 내가 칼을 뽑을 걸 알고 있었어요.”
그러나 미하엘은 후작의 마음은 조금도 생각하지 않았다.
“제가 무슨 행동을 취할지 다 읽고 있었다는 소리예요. 이런 상대는 난생 처음이에요!”
미하엘은 어린아이처럼 기뻐했다. 그 순수한 미소에 후작은 표정이 진지해졌다.
“……데미안 학센이 그렇게 마음에 들었느냐?”
“예! 아버지 말이 맞았어요! 데미안 학센은 저랑 대등하게 싸워 줄지도 몰라요!”
미하엘 라이언블룸은 마스터급 재능을 지니고 있음에도 적수가 없었기에 권태에 빠져 있었다.
그랬던 아들이 지금 데미안 학센이라는 적수를 만났다.
꿈에 그리던 적수의 등장에 미하엘 라이언블룸의 눈동자를 뒤덮고 있던 권태는 완전히 사라졌다.
잠자고 있던 재능이 다시 눈을 뜨기 시작한 것이다.
“……네가 만족했다면 됐다.”
후작의 얼굴에도 미소가 떠올랐다.
어차피 공작가가 내건 조건은 결투에서 이겨야 의미가 있는 것이다.
미하엘 라이언블룸이 있는 이상 결투에서 패배할 리는 없다.
* * *
“출발부터 운이 좋군.”
진영에 도착하자 공작이 말을 꺼냈다.
“결투에서 이기기만 하면 완벽하겠어. 그렇지 않나?”
데미안을 돌아보며 말하는 공작의 입가엔 미소가 가득 피어나 있었다.
“각하, 왜 그런 조건을 내건 것입니까?”
“뭘 말인가? 비고 말인가?”
데미안이 고개를 끄덕였다. 공작은 별거 아니라는 식으로 말했다.
“미하엘의 검을 막은 사람은 자네가 아닌가? 만약 미하엘이 검을 완전히 뽑았다면 그 자리는 완전히 파토가 났을 것일세.”
“그러면 공작가에도 이득이 아닙니까.”
“공작가에는 이득이지만 나한테는 아니야. 본인은 이런 예기치 못한 사태로 후작에게 이기고 싶지 않다네.”
공작의 표정이 진지해졌다.
“본인은 저 남자가 싫다네. 언젠가 반드시 짓밟아 주겠노라고 다짐했지. 그 기회가 눈앞에 왔는데 놓칠 수는 없지 않나?”
그제야 데미안은 공작의 마음을 이해했다.
자존심이 강하기에 허무한 결말을 허락할 수 없는 것이다.
“그리고 남의 돈으로 생색낼 기회가 아닌가? 놓칠 수는 없지.”
공작이 크게 웃었다. 이내 고개를 주억거리며 말했다.
“그나저나 이상한 일이로군. 미하엘 라이언블룸이라면 지독한 게으름뱅이로 유명한데. 어째서 칼을 뽑은 것이지?”
공작은 물음에 데미안은 어깨를 으쓱했다.
“심심했나 보죠.”
말과 달리 데미안은 미하엘 라이언블룸의 충동적인 행동을 이해하고 있었다.
‘어린 나이지만 벌써 육감을 개화한 모양이군.’
마스터 중에는 특별한 재능을 가진 이가 굉장히 많다.
절대음감을 가진 검악가도 그중 한 명이라고 할 수 있었다.
그리고 미하엘 라이언블룸 역시 그런 특별한 재능을 가지고 있었다.
시각, 청각, 미각, 촉각, 후각.
이 다섯 가지 감각과는 전혀 다른 여섯 번째 감각인 초감각을 보유하고 있는 것이다.
전생에 미하엘은 초감각 덕분에 예기치 못한 위험을 감지해 내거나 적의 숨겨진 한 수를 읽어 내고는 했다.
‘이러면 기대할 만하겠어.’
미래에 미하엘 라이언블룸은 마스터의 경지에 오른다. 하지만 지금은 로우클래스에 불과했다.
그래서 결투가 금방 끝나면 어떻게 하나 걱정했는데. 다행히 데미안의 걱정은 기우로 끝날 듯했다.
“각하, 후작가 쪽에서 전령이 오고 있습니다.”
가올 하임리히가 공작에게 말했다.
말을 타고 온 전령이 공작에게 말했다.
“후작 각하의 전언입니다! 첫 번째 결투를 시작하자 하셨습니다!”
“빨라서 좋군.”
공작이 한쪽 입꼬리를 올리며 중얼거렸다.
“첫 번째 결투인 만큼 기선제압이 중요하겠지. 누굴 내보내면 좋겠는가?”
공작이 기사들을 돌아보며 물었다.
대답이 들려오지 않자 공작은 데미안 학센을 돌아봤다.
“데미안 경, 최근에 후보 기사들과 자주 어울렸다고 하던데.”
“예, 대련을 좀 했습니다.”
“추천할 만한 기사가 있는가?”
공작의 물음에 데미안은 파벨 버몬드를 떠올렸다. 그와 함께 대련한 기사 중에서는 단연 파벨이 최고였다.
“각하, 제가 먼저 추천을 드려도 되겠습니까?”
그때, 누군가 입을 열었다. 데미안은 자연스럽게 그 기사를 쳐다봤다.
세바스찬 빈센조.
결투기사들을 훈련시키는 일을 맡았던 미들클래스 기사였다.
“결투 기사들을 훈련 시키는 일은 저, 세바스찬 빈센조가 맡은 일입니다. 데미안 경보다는 제가 훨씬 적합한 인재를 추천드릴 수 있을 것입니다.”
그리 말하며 세바스찬 빈센조는 데미안을 쓱 돌아봤다.
호의적인 눈빛은 아니었다. 굳이 말하자면 적개심으로 가득했다.
‘속이 좁은 사람이야.’
일전에 데미안은 세바스찬 빈센조와 한번 충돌한 적이 있었다.
결투기사 몇 명이 데미안과 대련한다는 소식을 듣고 공작에게 항의를 한 것이다.
-상관없지 않나? 기사들도 데미안 경과 대련하다 보면 배우는 것이 있을 텐데.
물론 공작은 데미안의 편을 들었다.
그때의 일을 지금 앙갚음하려는 듯했다.
“흠, 세바스찬 경의 말도 일리가 있군. 그럼 누굴 추천할 생각인가?”
“제 아들 파비앙 빈센조를 추천하겠습니다.”
모든 결투기사가 데미안과 대련을 한 것은 아니었다. 그렇지 않은 결투기사들도 있었다.
그 결투기사들은 모두 빈센조에게 훈련을 받았다.
“세바스찬 경의 자식이라…… 안 그래도 재능이 무척 뛰어나다고 들은 적이 있네.”
“예, 각하. 빈센조 가문의 모든 것을 물려받은 아이입니다. 첫 승을 가져올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좋네. 그대의 아들을 출전시키도록 하지.”
세바스찬 빈센조가 손짓했다. 창을 들고 있는 기사가 앞으로 걸어 나왔다.
“각하를 실망시키지 않겠습니다!”
그리 외친 뒤, 파비앙 빈센조가 중앙으로 향했다.
* * *
파비앙 빈센조는 아버지가 자신을 내보낸 의도를 정확하게 알고 있었다.
‘데미안 학센, 그 촌놈이 감히 아버지의 자리를 위협하다니.’
공작가의 기사들에게 데미안 학센은 눈엣가시와도 같았다.
어느 날 갑자기 홀연히 나타나서 가문의 대표자 자리를 꿰차질 않나, 공작의 총애를 독점하질 않나.
‘그놈만 없었어도 대표자 자리는 내 것이 되었을 텐데.’
파비앙 빈센조는 불만스럽게 생각했다.
‘이번 결투에서 멋지게 승리해서 각하의 인식을 바꿔놓겠어.’
파비앙 빈센조는 후작가의 기사와 마주 봤다. 등에 걸어놓은 창을 꺼내 들었다.
“나는 빈센조 자작가의 온 파비앙이라고 한다! 이름을 밝히도록 해라!”
파비앙 버논의 외침에 후작가의 기사가 말했다.
“로버트. 성은 없다.”
“뭐? 성이 없다고? 평민이란 말이냐?”
파비앙 빈센조는 곧바로 얼굴을 구겼다.
기사는 주로 기사 가문에서 육성된다. 기사에 걸맞은 예절과 지식을 습득하고, 가문의 비전을 익혀야 완성되는 것이다.
평민 따위가 감히 넘볼 수 있는 자리가 아니었다.
“평민 따위가 나와 대적하려 하다니.”
하필 첫 상대가 평민이라는 사실에 파비앙 빈센조는 실망할 수밖에 없었다.
“시끄럽기도 하군. 공작가의 기사들은 모두 계집처럼 혓바닥으로 싸우는 모양이지?”
로버트의 조롱에 파비앙 빈센조는 미간을 구겼다.
“이런 건방진 놈. 지금 당장 네놈에게 격을 차이를 알려 주마!”
파비앙이 창을 들고 돌진했다. 결투를 단숨에 끝내겠다는 결의가 느껴졌다.
“오오, 파비앙 경이 공격한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공작가의 병사들이 일제히 환호성을 질렀다.
멀리 있어도 느낄 수 있었다. 파비앙이 내뿜고 있는 투지가 말이다.
반면 후작가의 기사에게서는 아무런 기세도 느껴지지 않았다.
이대로 쉽게 첫 번째 결투가 끝날 것 같아 보였다.
하지만 이윽고 시작된 결투는 예상과는 전혀 다르게 흘러갔다.
후작가의 기사는 파비앙이 내지르는 공격들을 손쉽게 막아 냈다.
“핫! 흐압! 핫!”
파비앙은 더욱 크게 고함을 내질렀다. 하지만 아무리 시간이 지나도 결과는 달라지지 않았다.
“이…… 평민 따위가!”
공격이 계속 막히는 것이 분했는지. 파비앙의 동작이 커졌다.
그 순간, 후작가의 기사가 움직였다.
파비앙이 내리치는 창을 가볍게 쳐내고 거리를 좁혔다. 그리고 파비앙의 몸을 걷어찼다.
“으헛!”
파비앙은 그대로 뒤로 넘어졌다. 그런 파비앙의 목덜미에 칼날이 닿았다.
어느새 다가온 후작가의 기사가 칼을 내밀고 있었다.
“패배를 인정하겠나?”
후작가의 기사가 담담히 물었다. 파비앙은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져, 졌다.”
파비앙이 패배를 시인한 순간, 후작가의 진영에서 환호성이 터져 나왔다.
반면 공작가의 진영은 무거운 침묵이 감돌았다.
* * *
“……병사들을 보내서 파비앙 빈센조를 데려오도록 해라.”
공작은 명령을 내린 뒤, 세바스찬 빈센조를 돌아봤다.
“세바스찬 경, 내가 지금 무엇을 본 것이지?”
공작의 물음에 세바스찬은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가, 각하…… 그, 그것이…….”
“빈센조 경을 믿고 기사들의 훈련을 맡겼더니 이런 식으로 보답을 하는군.”
세바스찬 빈센조가 변명하려는 듯 입을 열었다. 공작이 싸늘한 눈빛으로 말했다.
“부탁이니 지금은 부디 조용히 있도록 하게.”
세바스찬은 곧바로 입을 다물었다.
“기사들의 수준 차이가 이렇게 많이 날 줄은 몰랐군.”
공작이 턱을 매만지며 고민에 잠겼다.
“이래서야 데미안 학센 경이 이겨도 결투에서 패배하는 게 아닌가?”
공작가 진영에 감도는 침묵이 더욱 무거워졌다.
“각하, 한 말씀드려도 되겠습니까?”
그때, 데미안 학센이 입을 열었다.
“말해 보게.”
공작의 말에 데미안이 말했다.
“두 번째 기사로 파벨 버몬드를 추천하고자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