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turn of the Calamity-Class Death Knight RAW novel - Chapter (321)
멸망급 데스나이트가 회귀함 321화(321/327)
멸망급 데스나이트가 회귀함 321화
321화 악마 공작 (2)
일곱 개의 권능을 합치면 시간을 되돌릴 수 있다.
데미안도 어떤 원리로 이런 일이 가능한지 전혀 몰랐다. 단지 사용법만 알고 있을 뿐이었다.
‘결국 내 손으로 이걸 선택하게 될 줄이야.’
데미안은 데스나이트의 운명을 움켜잡은 채 표정을 일그러트렸다.
데스나이트 시절, 데미안은 도르고의 노예가 되어서 입에 담을 수 없는 끔찍한 일들을 저질렀다.
가족들을 자신의 손으로 죽이고, 수십만 명이 넘는 병사들을 학살했다. 온 세상을 비탄과 절규에 잠기게 했다.
지금 데미안은 그 시절로 되돌아가려고 하는 것이다.
어쩔 수 없는 일이라고 하지만 달갑지 않은 일이었다. 다 썩어 가는 거름 구덩이에 맨몸으로 들어가는 기분이었다.
아니, 그보다 훨씬 기분이 나쁘고 역겨웠다. 거부감이 치밀어 올랐다.
하지만 참을 수밖에 없었다. 바헬은 그 정도의 강적이었으니까.
‘내 기분을 더럽게 만든 대가는 몇 배로 받아 내 주마.’
데미안은 모든 권능을 발동시켰다.
일곱 개의 권능이 하나로 이어졌다.
* * *
-데미안, 왜 가만히 있는 거냐. 이러면 재미가 없잖아.
갑자기 데미안이 조용해지자, 바헬이 섭섭하다는 듯이 말했다.
-무슨 일인지 모르겠지만 한 대 때리면 정신이 번쩍 들겠지.
그럼 방금 전처럼 재미있는 전투를 즐길 수 있을 것이다. 바헬은 그리 생각하며 발을 내딛었다.
그 순간, 불길한 예감이 바헬의 뒷덜미를 스치고 지나갔다.
무척 짧았지만 너무나 강렬했다. 바헬의 얼굴에 웃음기가 사라질 정도로 말이다.
바헬은 그 자리에 멈춘 채 데미안을 응시했다.
아무리 봐도 달라진 점이 없었다. 그럼에도 바헬의 본능이 경고하고 있었다. 섣불리 건드리지 말라고 말이다.
단순한 착각일 수도 있었다. 하지만 바헬은 자신의 본능을 결코 무시하지 않았다.
-한번 확인해 봐야겠어.
별안간 바헬의 눈동자가 변했다.
붉은색을 띠고 있던 눈동자가 분열되기 시작했다. 이윽고 잠자리와 같은 겹눈으로 변했다.
눈동자가 변형되자 바헬이 보는 시야도 달라졌다.
현실이 아닌 다른 것이 보였다. 검은 배경에 수많은 빛덩어리가 떠올랐다. 꼭 은하수처럼 아름다웠다.
하지만 바헬은 그 아름다움에 취하지 않았다. 오히려 원수를 만난 것처럼 매섭게 노려봤다.
-어서 내게 보여다오.
공작급 악마인 바헬은 운명을 볼 수 있는 권능을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운명의 흐름은 오래전부터 헝클어졌다. 어느 누구도 명확하게 볼 수 없는 수준에 이르렀다.
그게 꼭 나쁜 것은 아니었다.
운명이 헝클어졌다는 것은 어떤 일이 벌어질지 모른다는 뜻이었다.
덕분에 바헬은 도르고를 꼬드겨서 지상에 나올 수 있었다.
원래 이는 바헬에게 허락되지 않은 운명이었다.
한참 동안 운명을 들여다보던 바헬이 딱딱한 어조로 중얼거렸다.
-……내 운명이 보이지 않아.
원래 바헬은 자신의 운명을 또렷하게 관찰할 수 있었다.
운명의 흐름이 헝클어졌다지만 본인의 운명 만큼은 눈부신 빛을 발했다.
앞으로 어떤 일이 발생하던 바헬 만큼은 건재하다는 뜻이었다. 그렇기에 바헬은 항상 자신감을 가지고 살아갈 수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달랐다. 바헬의 운명까지 보이지 않았다.
그 말은 즉, 바헬이 죽을지도 모른다는 뜻이었다.
바헬의 얼굴에서 표정이 사라졌다. 웃음기가 전혀 보이지 않았다.
방금 전까지 그의 심장을 달구고 있던 전투의 흥분은 완전히 식어 버렸다. 바헬은 더 이상 이곳에 있는 게 즐겁지 않았다.
-위험한데.
운명이 보이지 않는다고 해서 반드시 죽는 것은 아니었다. 바헬의 행동에 따라서 얼마든지 달라질 수 있었다.
특히 바헬은 공작급 악마였다. 지옥은 물론이고 지상에서도 그를 상대할 수 있는 존재는 없었다.
하지만 바헬은 자신의 목숨을 가지고 도박을 할 생각이 전혀 없었다.
설령 그 도박이 이길 가능성이 무척 높다고 해도 말이다.
바헬의 눈동자가 원래대로 돌아왔다. 은하수가 아닌 데미안 학센의 모습이 보였다.
-어떻게 일개 인간 따위가 내 운명에 영향을 끼치는지 모르겠지만…….
바헬은 데미안 학센을 향해서 손을 뻗었다.
목숨이 걸린 이상 놀이는 끝났다. 바헬은 데미안 학센의 숨통을 바로 끊으려 했다.
하지만 권능을 발현하려 하자 불길함이 급격하게 커졌다.
바헬은 차마 권능을 발현하지 못했다. 이 선택이 자신의 운명에 어떤 영향을 끼칠지 몰랐기 때문이다.
그때였다.
바헬의 정신에 무언가가 전해졌다.
-각하, 큰일 났다.
환상향에 남겨두고 온 라리아가 멀리서 말을 전해온 것이다.
-무슨 일이냐.
-도르고가 탈출했다.
그 말에 바헬의 표정이 와락 일그러졌다.
-어쩌다 놈을 놓친 거지? 도르고한테 탈출할 만한 능력은 없을 텐데?
-놈의 자식들이 도르고를 탈출시켰다.
바헬은 빠득 이를 갈았다.
도르고는 결코 만만한 존재가 아니었다. 운 좋게 쉽게 잡을 수 있을 뿐이었다.
-라리아, 내가 제대로 지키라고 말하지 않았나?
-미안하다.
-미안하면 단 줄 알아! 도르고 만큼은 절대로 놓치지 말라고 했잖아!
-면목 없다.
-젠장, 지금 당장 가겠다.
바헬은 라리아와의 통신을 끊었다. 그리고 데미안을 바라보며 갈등에 빠졌다.
데미안의 위험성을 생각하면 이대로 내버려 둘 수 없었다. 하지만 건드리기에는 너무 불안한 점이 많았다.
게다가 지금은 도르고가 더 급했다. 그 녀석을 내버려 뒀다가 무슨 일이 벌어질지 몰랐다.
-……위험한 걸 굳이 내 손으로 건드릴 필요는 없지.
바헬은 권능을 발현했다. 데미안 학센을 중심으로 벽이 생성되더니 사각형의 공간을 만들어 냈다.
바헬이 진력을 쏟아 부어서 만든 고립 공간이었다. 어떤 악마도 이 공간을 부수지 못했다.
-데미안, 다음에 상대해 주마.
그리 말하며 바헬은 몸을 돌렸다. 환상향을 향해 달려갔다.
* * *
저 멀리 도망치는 바헬을 바라보며 데미안은 어리둥절할 수밖에 없었다.
“그런다고 놔줄 것 같으냐.”
시간역행을 발동할 준비는 이미 끝났다. 데미안은 일곱 개의 권능을 동시에 발현했다.
그 직후, 데미안의 전신에서 상처가 새겨졌다.
몸통, 팔다리, 얼굴.
부위를 가리지 않고 살이 갈라졌다. 갈라진 상처에서 피가 터져 나왔다.
“……!”
극심한 고통에 비명조차 지를 수 없었다. 데미안은 그 자리에 무릎을 꿇었다.
하지만 고통은 멈추지 않았다.
상처가 계속 늘어났다. 기존의 상처가 더욱 깊어졌다. 급기야 내장까지 닿았다.
데미안은 황급히 권능의 발동을 멈췄다. 그러자 상처도 더 이상 늘어나지 않았다.
“쿨럭, 쿨럭.”
데미안은 무릎을 꿇은 채 피를 게워 냈다.
핏속에서 내장 부스러기가 흘러나왔다. 상처가 직접적으로 내장에 닿았다는 뜻이었다.
데미안은 아공간을 열어서 여명과 치료약을 꺼냈다.
여명은 데미안의 몸 상태를 알아차리고 신성력을 발휘했다. 하지만 상처가 심해서 쉽게 낫지 않았다.
데미안은 치료약을 연거푸 들이켰다. 세계수의 묘목을 이용해서 회복력을 높였다.
“……알겠다.”
상처가 회복되는 도중, 데미안은 문득 깨달았다. 이 상처들이 어떤 의미를 지니고 있는지.
“이건 시술을 받았을 때, 도르고가 손을 댔던 자리들이야.”
도르고는 데미안을 데스나이트로 바꾸기 위해서 수많은 시술을 가했다.
전신의 근육을 도려내서 다른 것으로 대체하기도 했고, 장기를 꺼내서 바꾸기도 했다. 온갖 종류의 마도구를 삽입했다. 괴상한 시약을 주입하기도 했다.
“권능만 발동한다고 능사가 아니었어.”
데스나이트의 육체를 재현한다.
그걸 위해서는 데미안이 받았단 시술을 그대로 재현해야 했다.
즉, 당시 데미안이 느꼈던 고통과 절망을 견뎌야 한다는 뜻이었다.
“대가 한번 지독하군.”
데미안은 실소를 흘렸다.
하지만 웃고 있는 입가와 달리 두 눈은 무척 어두웠다.
* * *
바헬은 눈 깜짝할 사이에 환상향으로 되돌아왔다.
환상향 안으로 들어오자 가장 먼저 박살난 성이 보였다. 그 중심에 라리아가 서 있었다.
-라리아, 아주 난장판을 쳐놨구나.
-미안하다.
순간, 분노가 들끓었다. 바헬은 반사적으로 라리아를 걷어찼다.
라리아의 거구가 벽에 처박혔다. 바헬은 으르렁거리며 말했다.
-제자리로.
라리아는 즉시 원래 서 있던 자리로 돌아왔다. 바헬은 이를 갈며 물었다.
-도르고의 자식들이 이 소동을 피웠다고?
-그렇다.
-넌 대체 뭘 했지? 설마 그 조잡한 언데드한테 지기라도 한 거냐?
-면목 없다.
바헬이 라리아를 다시 후려치려던 찰나였다.
활짝 열려 있던 차원문으로 미그매그가 나타났다.
미그매그의 뒤에는 알터와 아스타가 기절한 채 둥둥 떠 있었다.
-각하, 무슨 일입니까?
-도르고가 도망쳤다. 놈들이 어디로 사라졌는지 당장 추적해라.
미그매그의 눈동자가 화등잔만 하게 커졌다.
놀란 기색이 역력했지만 미그매그는 즉시 바헬의 명령을 따랐다.
미그매그가 쇠지팡이의 끝으로 땅을 찍었다. 그러자 보이지 않는 파동이 사방으로 퍼져나갔다.
-각하, 찾았습니다.
-어디로 갔지?
바헬이 가시 돋힌 말투로 물었다. 미그매그는 즉시 입을 열었다.
-놈들은 제국의 수도로 갔습니다.
미그매그의 말에 바헬는 인상을 찌푸릴 수밖에 없었다.
-제국? 제국이라고?
도무지 이해를 할 수 없는 선택이었다.
그렇기에 바헬은 더욱 경계할 수밖에 없었다.
그가 아는 도르고라면 절대 허투루 이런 선택을 하지 않았을 테니까.
-설마 우리와 제국을 싸우게 만들 생각인가?
-각하,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바헬은 잠시 고민에 빠졌다.
본래 바헬은 당장 정체를 드러낼 생각은 없었다. 인간은 두렵지 않았지만 만약의 사태라는 게 있었으니까.
인간 전체와 싸우다 어떤 일이 벌어질지 몰랐다. 만전을 기하기 위해서 최대한 숨어 다녔던 것이다.
-우리도 제국으로 간다.
하지만 도르고는 너무 위험했다. 이대로 자유롭게 내버려둘 수 없었다.
-미그매그, 차원문을 열어라. 우리는 이제부터 제국으로 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