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turn of the Calamity-Class Death Knight RAW novel - Chapter (33)
멸망급 데스나이트가 회귀함 33화
33화 이파리 평원 (3)
“파벨 버몬드라.”
공작은 결투에 참가하는 기사들의 이름과 실력을 모두 알고 있었다.
그렇기에 파벨 버몬드라는 이름을 들었을 때, 그가 어떤 기사인지 곧바로 떠올렸다.
“결투 후보 기사들 중에서는 꽤 뛰어난 편이라고 들었네.”
“아마 제대로 들으신 게 맞으실 겁니다.”
“데미안 경이 추천할 정도라면 실력이야 확실하겠지만…….”
공작이 말끝을 흐렸다.
파비앙 빈센조의 결투에서 드러났다시피 후작가의 기사들은 공작가의 기사들보다 실력이 월등히 뛰어났다.
파벨 버몬드를 내보내도 승리를 확신할 수 없기에 공작으로서는 망설일 수밖에 없었다.
“각하, 공작가의 기사들이 강하기는 하지만 그래 봤자 같은 로우클래스입니다. 불리할 이유가 없습니다.”
데미안 학센은 그런 공작을 설득하기 시작했다.
“파벨 버몬드 경은 이번 결투를 위해서 저와 많은 준비를 했습니다. 어떤 상대든 패배하지 않을 것입니다.”
이번에 내보내는 기사가 진다면 패배가 확정된다.
자칫 잘못하면 패배의 원흉으로 몰릴지도 모르는 상황이건만 데미안 학센은 전혀 신경 쓰지 않는 듯했다.
그 태도가 공작에게 묘한 믿음을 불러왔다.
“그대의 말을 믿어 보도록 하지. 파벨 버몬드는 앞으로 나오도록 하라.”
공작의 명령에 파벨 버몬드가 걸어 나왔다. 잔뜩 긴장한 탓에 얼굴이 새파랗게 질려 있었다.
“파벨 버몬드. 데미안 학센 경은 그대를 추천했다. 이 기대에 부응할 자신이 있는가?”
파벨 버몬드는 섣불리 대답하지 못했다. 잠시 고민하다 이내 입을 열었다.
“……예, 제 목숨을 바쳐서라도 승리를 가져오겠습니다.”
그 대답에 공작이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었다.
“좋다. 가서 싸우고 오도록 하라.”
파벨 버몬드이 검을 들고 평원으로 나갔다.
* * *
파벨 버몬드가 걸어 나올 때까지 후작가의 환호성은 계속 이어지고 있었다.
파벨 버몬드가 평원 중앙에 마련된 결투장에 도착하자 후작이 주먹을 높이 쳐들었다.
병사들의 환호성이 뚝 끊어졌다. 놀라운 장악력이었다.
잠시 후, 후작가의 진영에서 기사 한 명이 걸어 나왔다.
잘생긴 외모에 구릿빛 피부를 가진 기사였다.
등에는 대검을 걸치고 있었으며 얼굴에는 자신감으로 가득했다.
‘……나보다 강하다.’
기사를 보자마자 파벨 버몬드는 본능적으로 깨달았다. 이 기사가 자신보다 강하다는 사실을 말이다.
“나는 휴이 셀렉션이라고 하는데. 그쪽은?”
후작가의 기사가 파벨을 향해 물었다. 파벨 버몬드는 숨을 고른 뒤 대답했다.
“……파벨 버몬드라고 한다.‘
이름을 듣자마자 휴이 셀렉션이 길게 한탄을 했다.
“뭐야, 처음 듣는 이름이잖아. 내 상대는 좀 유명한 놈이길 바랐는데. 너 같은 건 이겨 봤자 아무도 알아주지 않을 거 아니야.”
휴이 셀렉션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처음에 나왔던 기사와 달리 언행이 무척 가벼웠다.
“너 말고 데미안 학센은 안 되냐? 그놈은 제법 유명한 게 싸울 맛이 날 것 같던데.”
데미안 학센.
그 이름이 거론되자 파벨 버몬드는 자신도 모르게 피식 웃고 말았다.
그러자 휴이 셀렉션이 고개를 주억거리며 물었다.
“뭘 쪼개는 거야?”
“들개가 호랑이를 언급하고 있으니 우스울 수밖에.”
휴이 셀렉션은 강하다. 하지만 데미안 학센만큼은 아니다.
데미안 학센의 강함은 상식 수준을 벗어나 있었다. 그런 괴물이 또 있을 리 없었다.
“유명하지도 않은 게 사람 성질 돋울 줄 아네.”
휴이 셀렉션이 등에 메고 있던 대검을 들어 올렸다.
길고 두터운 대검이 마치 나뭇가지처럼 손쉽게 뽑혀 나왔다.
동시에 휴이 셀력션이 마력을 일으켰다. 강력한 기세가 몰려왔다. 마치 열풍을 맞는 듯했다.
“……젠장.”
파벨 버몬드는 나지막이 중얼거렸다.
혹시나 했는데. 역시 자신보다 강한 남자였다.
과연 싸운다고 해서 이길 수 있을까. 짙은 절망감과 의문이 파벨 버몬드의 가슴을 가득 채웠다.
“이봐, 왜 그렇게 얼 타고 있으면 어쩌자는 거야. 똥꼬에 힘 빡 주고 경계하고 있어야지. 그렇지 않으면…… 이렇게 순식간에 당하거든!”
대뜸 휴이가 땅을 박찼다. 놀라운 속도로 돌진하며 칼자루의 끝으로 파벨 버몬드의 명치를 찌르려 했다.
그 직전, 파벨 버몬드가 롱소드의 검면으로 칼자루를 막아 냈다. 몸이 뒤로 밀려났다.
“오…… 제법 실력이 있나 본데?”
휴이 셀렉션이 감탄하며 말했다. 꼭 윗사람이 아랫사람을 칭찬하는 것 같았다.
“왜 말이 없어? 너무 놀라서 그런가?”
휴이 셀렉션의 말대로 파벨 버몬드는 너무 놀라서 말을 잇질 못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가 놀란 이유는 휴이 셀렉션에게 기습을 당했기 때문이 아니었다.
‘……비슷하다.’
휴이 셀력션이 보여 줬던 기술은 데미안 학센이 사용했던 것과 같았다.
파벨 버몬드가 접근할 때마다 데미안 학센은 툭하면 칼자루로 명치를 강타하고는 했던 것이다.
‘……우연인가?’
칼날이 아니라 칼자루를 활용하는 것 자체는 다른 검술에도 많이 보이는 활용법이다.
그렇기에 파벨 버몬드는 확신을 가질 수 없었다.
“나름대로 즐길 수 있겠는 걸!”
휴이 셀력션이 파벨 버몬드를 향해 돌진했다. 거리를 단숨에 좁히며 대검을 쳐들었다.
휴이 셀렉션이 대검을 내리쳤다. 엄청난 속도에 공기가 찢어지는 소리가 들릴 정도였다.
파벨 버몬드는 반사적으로 뒤로 물러났다. 대검이 아슬아슬한 간격을 두고 땅에 떨어졌다.
대검이 땅을 후려쳤다. 지면이 파헤쳐지며 흙먼지가 두 사람을 뒤덮었다.
“이것도 피할 수 있나 보자!”
그 직후, 흙먼지를 가르며 대검이 튀어나왔다. 횡으로 휘둘러진 대검이 파벨 버몬드의 옆구리를 노렸다.
하지만 파벨 버몬드는 이미 방어자세를 취한 뒤였다. 날아오는 대검을 칼날로 막아 냈다.
“……이것도 막아?”
휴이 셀렉션의 얼굴에 처음으로 당황한 기색이 떠올랐다.
‘……말도 안 돼.’
하지만 그 이상으로 놀란 사람은 파벨 버몬드였다.
‘이것마저도 비슷하다고?’
데미안 학센은 항상 대검을 내려친 뒤, 돌진해서 횡베기를 했다.
대련할 당시에는 바닥이 돌이었던 탓에 흙먼지가 일어나지 않았다.
그럼에도 워낙 많이 당한 기술이었기에 몸이 반사적으로 대응했다.
이쯤 되면 비슷한 정도가 아니었다. 완전히 똑같았다.
‘후작가의 기사들은 사자위검이라는 검술을 익힌다고 들었다…… 데미안 학센은 어떻게 사자위검은 익히고 있었던 거지?’
순간, 파벨 버몬드의 머릿속에 한 가지 가능성이 떠올랐다.
첩자.
어쩌면 데미안 학센은 후작가에서 보낸 첩자가 아닐까?
‘……말도 안 되는 생각을 떠올렸군.’
그러나 파벨 버몬드는 곧바로 그 추측을 부정했다.
이틀 전, 대련이 끝났을 때, 데미안 학센은 결투 기사들에게 이렇게 말했다.
-남은 이틀 동안 쉬면서 내가 가르친 것들을 곰곰이 되짚어 보도록 해라.
데미안 학센의 조언은 큰 도움이 되었다. 데미안 학센의 동작을 몇 번이고 곱씹은 덕분에 이렇게 휴이 셀렉션의 공격을 피할 수 있었다.
‘적대가문에 비전을 풀어놓는 첩자는 없다.’
그렇다면 가능성은 딱 한 가지뿐이었다.
‘……훔쳐 배운 거다.’
들은 적이 있다.
천재 중에는 상대방의 동작을 눈으로 본 것만으로 곧바로 따라하는 이들이 있다고.
데미안 학센 정도의 천재라면 충분히 가능성이 있었다.
‘아니, 데미안 학센은 단순히 따라한 정도가 아니야…….’
같은 사자위검이지만 데미안 학센 쪽이 훨씬 수준이 높았다. 휴이 셀렉션의 검이 어린애 장난처럼 보일 정도였다.
‘후작가의 비전을 훔쳐서 배운 것도 모자라서, 후작가의 기사들을 능가했다고?’
온몸에 소름이 쫙 돋았다. 그 바람에 파벨 버몬드의 몸이 잠깐 굳었다.
“집중하라고 했지!”
휴이 셀렉션은 그 틈을 놓치지 않았다. 파벨 버몬드의 정수리를 향해 대검을 내리쳤다.
이 역시 데미안 학센에게 숱하게 당해 왔던 기술이었다.
파벨 버몬드는 칼날로 대검을 받아 내며 능숙하게 흘려보냈다.
“이 자식이……!”
휴이 셀렉션이 파벨 버몬드를 더욱 거세게 몰아쳤다. 대검이 쉴 새 없이 움직였다.
그러나 그 어떤 검도 파벨 버몬드에게 통하지 않았다.
파벨 버몬드는 너무 자연스럽게 대검을 피했다. 마지막 공격은 칼로 받아쳤다.
칼날이 서로 맞닿는 날카로운 소리와 함께 대검이 뒤로 튕겨져 나갔다.
“으윽?”
휴이 셀렉션의 얼굴에 당혹감이 떠올랐다. 파벨 버몬드는 그 틈을 놓치지 않았다.
결투가 시작된 이후로 줄곧 물러나기만 했던 파벨 버몬드가 처음으로 앞으로 향했다.
검술을 펼치며 역으로 휴이 셀렉션을 압박하기 시작했다.
“윽, 크윽!”
휴이 셀렉션은 저항은커녕 파벨 버몬드의 공격을 막는 데 급급했다.
하수라고 생각했던 적에게 밀리고 있다.
굴욕감에 휴이 셀렉션의 얼굴이 벌겋게 달아올랐다.
“적당히 하지 못해!”
휴이 셀렉션의 대검에 더욱 힘이 실렸다. 파벨 버몬드는 그 사실을 곧바로 눈치챘다.
장검과 대검이 복잡하게 얽혔다. 파벨 버몬드가 손에 힘을 줘서 대검을 쳐냈다.
대검이 휴이 셀렉션의 손을 빠져나가서 저 멀리 날아갔다.
휴이 셀렉션은 멍한 얼굴로 텅 빈 손을 바라봤다. 그때, 목덜미에 칼날이 닿았다.
“내 승리다.”
파벨 버몬드가 칼을 겨눈 채 담담하게 선언했다.
“와아아아아아!”
“우와아아아아!”
우레와 같은 환호성이 파벨 버몬드를 반겼다.
엄청난 함성에 파벨 버몬드는 온몸이 찌릿찌릿 울리는 것을 느꼈다.
파벨 버몬드는 칼을 거두고 공작가 쪽을 돌아봤다.
그러자 환호성이 더욱 커졌다. 파벨 버몬드는 가슴 속에서 무언가 벅차오르는 것을 느꼈다.
그때, 파벨 버몬드의 시야에 데미안 학센이 눈에 띄었다.
기뻐서 어쩔 줄 몰라하는 공작가의 사람들과 달리 데미안 학센은 지극히 담담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마치 이 결과를 예상하기라도 한 것처럼.
‘데미안 학센…….’
들떴던 기분이 확 가라앉았다.
그 빈자리를 불길함과 공포가 채웠다.
‘당신은 대체…… 정체가 뭐지?’
답을 들을 수 없는 질문을 던지며 파벨 버몬드는 몸을 떨었다.
* * *
“파벨 버몬드 경이 이렇게 멋지게 승리할 줄이야.”
골드픽시 공작이 입을 열었다.
숨기지 못한 미소가 얼굴에 넘쳐흐르고 있었다.
“데미안 경의 판단이 정확했군.”
“파벨 버몬드 경이 잘해 줬을 뿐입니다.”
“그 파벨 버몬드 경을 알아보고 추천한 사람이 바로 자네가 아닌가.”
공작은 고개를 끄덕이며 덧붙였다.
“안목이 부족해서 일 패를 안긴 누구와 달리 말이야.”
공작의 가시 돋친 말에 세바스찬 빈센조가 고개를 떨구었다.
“그럼 이제 대표자의 결투만 남았군. 자신 있나?”
공작은 물음에 데미안은 대수롭지 않게 말했다.
“뭐, 적당히 하고 오겠습니다.”
* * *
“……죽여 주십시오.”
휴이 셀렉션은 후작의 앞에 엎드린 채 말했다.
“어찌 그런 말을 하는가? 그대는 최선을 다했다. 다만, 저쪽의 기사가 더 강했을 뿐이다.”
후작은 휴이 셀렉션을 위로했다.
가문을 위해서 싸우고 온 기사를 벌주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그리고 너무 상심해하지 말도록. 어차피 승리는 우리의 것이니 말이야.”
후작은 고개를 돌렸다.
조금 떨어진 장소에 미하엘 라이언블룸이 서 있었다.
미하엘 라이언블룸은 가만히 서서 평원을 바라보고 있었다.
“……각하의 말씀이 맞습니다.”
휴이 셀렉션이 존경심 가득한 얼굴로 말했다.
후작가의 기사들에게 미하엘 라이언블룸은 불패의 상징과도 같았다.
“이만 돌아가서 쉬도록.”
휴이 셀렉션은 고개를 숙인 뒤, 물러났다.
후작은 미하엘을 향해 다가갔다.
아버지가 다가왔음에도 미하엘 라이언블룸은 여전히 평원을 바라보고 있었다.
“미하엘.”
후작이 불렀음에도 마찬가지였다. 후작은 긴 한숨을 내쉬었다.
다시 아들의 이름을 부르려던 찰나였다.
“아버지, 이상하지 않아요?”
대뜸 미하엘이 입을 열었다.
“휴이는 공작가의 기사보다 강했어요. 두 수? 아니 세 수 정도는 위라고 자신할 수 있어요.”
후작은 미하엘의 말에 동의했다. 하이클래스인 그의 판단으로도 휴이 셀렉션이 더 강했다.
신체, 마력, 기술, 경험 등등.
공작가에서 난초처럼 자란 별 볼 일 없는 것들과는 격이 달랐다.
“그런데 졌어요. 그냥 진 것도 아니고 압도당했어요.”
공작가의 기사는 휴이 셀렉션의 검을 모조리 막아 냈다. 일방적으로 우위를 점한 뒤, 승리를 가져갔다.
개가 늑대를 잡아먹은 것이나 다름없었다.
“공작가의 기사가 사자위검을 완전히 꿰뚫어 봤다는 뜻이에요. 그런데 참 이상하죠. 그렇게 재능 있는 사람은 아닌 거 같았는데.”
아들의 말에 후작은 고개를 끄덕였다.
“나도 같은 생각이다. 어쩌면 사자위검이 유출되었을지도 모르겠구나. 돌아가면 철저하게 조사를…….”
“아버지, 그게 아니에요.”
미하엘이 후작의 말을 부정했다.
“사자위검은 유출된 게 아니에요. 저 남자가 찾아낸 거예요. 찾아내서 가르친 거예요.”
그제야 후작은 미하엘이 어디를 바라보고 있는지 깨달았다.
데미안 학센.
오로지 그 남자만 바라보고 있었다.
“대단하지 않아요? 사자위검은 절대로 수준 낮은 검술이 아니에요. 역대 조상들이 끊임없이 발전시키고 개량시킨 검술이에요. 그걸 꿰뚫어 본 것도 모자라서 다른 기사들에게 가르치기까지 했어요.”
보통 재능으로는 꿈도 못 꿀 일이다.
어지간한 천재들에게는 불가능한 일이다.
“아버지, 있잖아요. 살면서 이렇게 가슴이 두근거린 적은 처음이에요.”
미하엘은 손을 가슴에 얹었다. 얼굴이 살짝 상기되어 있었다.
“드디어 저와 동류를 찾았어요.”
후작은 복잡한 얼굴로 아들을 바라봤다.
원래는 반드시 승리해야 한다고 신신당부하려고 했다.
하지만 이렇게 기대감에 가득 차 있는 아들에게 찬물을 끼얹을 수 없었다.
무엇보다 굳이 그런 말을 하지 않아도 될 듯싶었다.
“미하엘, 가서 마음껏 즐기고 오거라.”
후작의 말에 미하엘이 칼을 집어 들었다.
* * *
결투장으로 걸어가는 동안 미하엘 라이언블룸은 자신의 심장이 거세게 뛰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드디어 만났다.’
미하엘 라이언블룸의 인생은 딱 한 단어로 요약할 수 있었다.
지루함.
처음으로 칼을 잡았을 때는 기대감에 벅차올랐다.
아버지에게 처음 검술을 배울 때는 재미있어 미칠 거 같았다.
선배 기사들을 만날 때는 호기심에 돌아버릴 것 같았다.
하지만 칼을 휘두르는 나날이 하루하루 늘어날수록 그 기대와 흥미를 빠르게 식어 버렸다.
요컨데 너무 쉬웠던 것이다.
아버지가 알려 주는 검술은 한 번만 보면 따라할 수 있었다.
자신보다 강하다는 기사들도 막상 싸워 보면 별거 아니었다.
어느 순간부터 미하엘 라이언블룸은 훈련장에 가까이 가지 않았다.
검을 손에서 놓았다. 권태와 무기력증에 시달리기 시작했다.
‘찾았다.’
호적수니 라이벌이니 하는 존재는 영영 나타나지 않을 줄 알았다.
하지만 오늘, 생각지도 못한 장소에서 만나게 되었다.
자신과 맞먹는 재능을 가진 천재를.
자신의 호적수가 되어 줄 기사를.
미하엘 라이언블룸은 데미안 학센의 앞에 섰다.
“난 미하엘 라이언블룸이라고 해.”
미하엘은 기대감을 억누르며 인사를 건넸다. 데미안 학센은 하품을 한 뒤에 말했다.
“데미안 학센이다.”
미하엘 라이언블룸은 웃음이 새어 나오는 것을 느꼈다.
“나는 오랫동안 너 같은 사람을 기다려 왔어.”
마음 같아서는 곧바로 칼을 뽑고 싶었다.
하지만 상대방은 간신히 만난 소중한 맞수였다.
제대로 격식을 차리고 싶었다.
“나와 대등하게 싸워 줄 동류를 말이야.”
미하엘 라이언블룸은 칼자루를 잡았다. 심장이 거세게 뛰고 있었다.
“간절하게 부탁할게. 부디 날 실망시키지 말아 줘.”
미하엘 라이언블룸이 칼을 뽑았다. 칼날이 햇빛이 서늘하게 빛났다.
“대등?”
데미안 학센이 한 마디를 툭 내뱉었다.
“재능을 완전히 개화시키지 못한 건가? 그게 아니라면 그딴 소리가 나올 리가 없는데.”
데미안 학센의 입에서 나온 소리는 미하엘 라이언블룸의 예상을 전혀 벗어난 것이었다.
“어쩔 수 없지. 내가 좀 더 내려와 주는 수밖에.”
무슨 소리를 하려는 거냐.
미하엘 라이언블룸이 그렇게 물으려던 찰나였다.
별안간 뒷골이 오싹해졌다. 마치 거친 손아귀로 뒷덜미를 잡아당기는 것 같았다.
불길함, 위기감, 공포.
그 모든 감정이 폭발적으로 차올랐다.
미하엘 라이언블룸은 자신도 모르게 칼을 뽑았다. 그 끝을 데미안 학센에게 겨누었다.
아니, 겨누려고 했다.
칼끝이 좀처럼 올라가지 않았다. 아래로 향한 채 굳어 버렸다.
칼을 겨누기는커녕 데미안 학센을 제대로 바라볼 수조차 없었다.
전신이 덜덜 떨렸다. 땅 위로 식은땀이 후두둑 떨어졌다.
“미하엘 라이언블룸.”
데미안 학센이 나지막이 말했다.
미하엘 라이언블룸에게는 송곳으로 귀를 찌르는 것 같이 느껴졌다.
“아직도 내가 너와 대등한 존재로 보이나?”
칼이 땅에 떨어졌다.
미하엘 라이언블룸은 자신이 칼을 놓았다는 사실을 인지하기도 전에 땅에 무릎을 꿇었다.
“져…….”
입이 저절로 움직였다. 미하엘 라이언블룸은 자신의 입을 막을 생각조차 못 했다.
“졌습니다…….”
세 번째 결투.
그 승자가 결정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