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turn of the Calamity-Class Death Knight RAW novel - Chapter (332)
멸망급 데스나이트가 회귀함 332화(332/352)
멸망급 데스나이트가 회귀함 332화
332화 부모자식 (3)
눈을 떴을 때, 데미안은 기이한 공간에 와 있었다.
“여긴 어디지?”
주변을 둘러 보자 피처럼 새빨간 궁전이 보였다.
“뭐 이딴 곳이 다 있어?”
더욱 이상한 것은 궁전의 크기였다.
천장이 절벽을 연상시킬 정도로 높았다. 아무리 봐도 인간이 살 수 있을 만한 사이즈가 아니었다.
“이봐, 어딜 보는 거야.”
그때, 익숙한 목소리가 들렸다. 데미안은 시선을 정면으로 돌렸다.
그러자 바헬의 모습이 보였다.
분명히 육체를 터트려서 죽여 버렸을 텐데 눈앞에 있는 바헬은 너무 멀쩡했다.
데미안은 바헬을 빤히 쳐다보다가 입을 열었다.
“넌 바헬의 사념체로군.”
강대한 존재는 누구나 사념을 남긴다.
데미안이 바헬을 죽였을 때, 그의 사념 중 일부가 흘러 들어온 것이다.
데미안의 지적에 바헬의 사념체는 아쉽다는 듯 어깨를 으쓱했다.
“금방 눈치 채니까 재미없네.”
“찌꺼기 주제에 이게 무슨 수작이냐.”
데미안의 목소리에 살기가 담겼다. 그러자 바헬은 두 팔을 뻗으며 손사래를 쳤다.
“너무 흥분하지 마. 어차피 난 네가 마음만 먹으면 사라질 놈이잖아.”
아무리 공작급 악마가 남긴 사념체라 해도 그랜드마스터의 정신에 영향을 끼치는 건 불가능했다.
그의 말처럼 데미안이 마음만 먹으면 지금이라도 당장 없애버릴 수 있었다.
“그리고 난 널 위해서 이 자리를 마련한 거야.”
“그건 또 무슨 개소리냐.”
“일단 좀 앉지.”
바헬이 손가락을 튕겼다. 그러자 두 사람 사이에 탁자와 의자가 나타났다.
바헬은 자연스럽게 의자에 앉았다. 데미안은 바헬을 노려보다가 똑같이 맞은편에 앉았다.
“이야기가 길어질 것 같은데 뭐라도 좀 먹을까?”
바헬이 다시 손가락을 튕겼다. 그러자 텅 비어 있던 테이블에 음식들이 나타났다.
음식을 본 데미안은 단번에 인상을 구겨했다.
몸이 토막 난 채 펄떡이고 있는 내장, 눈이 일곱 개 달린 생선, 짐승 머리처럼 생긴 과일까지.
보기만 해도 입맛이 뚝 떨어지는 음식들이었다.
데미안과 달리 바헬은 망설임 없이 음식을 입에 넣었다. 음식을 씹을 때마다 끔찍한 비명소리가 터져 나왔다.
“응? 입맛이 없나 봐?”
“그게 문제가 아니지. 이딴 걸 어떻게 먹으라는 거냐.”
데미안이 식기로 접시를 툭 치며 말했다. 바헬은 커다란 눈알을 입에 넣고 으적으적 씹으며 말했다.
“이딴 거라니. 어디서도 맛 볼 수 없는 지옥의 고급 요리인데.”
“할 말이나 끝내라. 아니면 그냥 가겠다.”
“성격 한번 급하네.”
바헬은 냅킨으로 입을 닦아냈다. 입 주변에 흥건했던 피가 순식간에 사라졌다.
“데미안, 도르고를 조심해라.”
* * *
두 사람 사이에 잠시 침묵이 흘렀다. 데미안은 바헬을 노려보며 물었다.
“갑자기 무슨 소리냐.”
“카론산에서 너와 싸웠을 때, 내가 갑자기 돌아갔지? 그건 도르고가 도망쳤다는 보고 때문이었어.”
바헬은 조용히 말을 이어 나갔다.
“수하를 시켜서 차원문의 흔적을 조사해 보니 제국으로 떠났다고 하더군. 그래서 제국으로 갔는데…… 막상 와 보니 그 녀석의 흔적이 보이질 않았어.”
도르고가 제국으로 왔다면 흔적이 남아야 정상이었다.
하지만 바헬의 감각에는 어떤 흔적도 보이지 않았다.
“그 짧은 시간 동안 흔적을 감췄을 리는 없지. 즉 그 녀석은 제국에 온 적이 없다는 뜻이야. 그렇다면 한 가지 의문이 생기지. 왜 내 수하는 도르고가 제국으로 갔다고 판단했을까.”
말을 하는 동안 바헬은 접시 위에 놓인 음식을 식기로 마구 헤집어놓았다. 음식은 어느새 형체를 알아보기 힘들 정도로 엉망이 되었다.
“생각해 보면 이상한 일이지. 도르고는 대체 어떻게 도망친 걸까? 수하는 방심하다가 놓쳤다고 했지만 그럴 놈이 아니었거든.”
바헬의 손이 멈췄다. 천천히 데미안을 응시했다.
“데미안, 도르고는 무언가를 꾸미고 있어. 그 여자를 상대하려면 만반의 준비를 갖춰야 할 거다.”
데미안은 말없이 바헬을 바라봤다. 그러다 천천히 입을 열었다.
“그런데 단어를 하나 헷갈린 것 같은데.”
“내가 단어를 헷갈렸다고?”
“그 여자가 아니라 그 남자라고 말해야지.”
데미안의 말에 바헬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지금 무슨 말을 하는지 이해가 안 되는데.”
“도르고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는데 여자라는 단어가 왜 나오냔 말이다.”
바헬이 멈칫했다. 혹시나 하는 얼굴로 물었다.
“……설마 도르고가 여자라는 사실을 몰랐던 거야?”
그 말에 데미안의 미간이 확 구겨졌다.
“뭔 개소리를 하는 거냐. 그놈이 왜 여자야.”
“여자 맞아. 루인의 연인이었잖아.”
“……루인의 연인이었다고?”
데미안은 머릿속이 멍해지는 것을 느꼈다.
그 해골바가지가 사실은 여자였다고? 심지어 루인의 연인이었다고?
“……설마 여태까지 모르고 있었던 거야?”
바헬이 황당하다는 얼굴로 되물었다. 데미안은 괜히 억울해졌다.
도르고는 해골이라 성별을 특정하기 어려웠다. 게다가 맨날 칙칙한 로브만 입고 다녔다.
게다가 목소리는 또 어떻던가? 돌판에 갈아놓은 것처럼 걸걸했다.
“……이건 나중에 고민하도록 하지.”
데미안은 고민하던 것을 멈췄다. 정신을 유지하기 위해서 잠시 잊은 것에 가까웠다.
“지금의 나는 도르고가 전혀 무섭지 않다.”
지금 데미안은 전생보다 더 강력한 힘을 손에 넣었다. 그런 마당에 도르고 따위가 위협이 될 리가 없었다.
“그 녀석은 원래 악마였어.”
그런 데미안을 향해서 바헬이 짧게 말했다.
“그런데 어떤 악마인지 기억이 나질 않아. 그 비밀을 캐 보려고 했지만 아무것도 알아내지 못했지. 그 녀석한테는 무언가 거대한 비밀이 있는 게 분명해.”
데미안은 전생을 떠올렸다.
데스나이트 시절, 데미안은 항상 도르고의 옆에 있었다.
그럼에도 도르고가 어떤 인물인지, 어떤 과거를 가지고 있는지 전혀 알지 못했다.
“게다가 도르고는 너에게 집착하고 있다. 어떤 대가를 치르더라도 널 손에 넣고 싶어 하지.”
바헬의 목소리가 스산하게 변했다.
“그런 녀석이 널 가만히 놔둘 리 없다. 분명 상상하기 힘들 정도로 끔찍한 일을 벌일 거야.”
바헬의 몸이 손가락 끝에서부터 타오르기 시작했다.
더 이상 사념체를 유지하지 못하고 붕괴하기 시작한 것이다.
“어째서 내게 이런 말을 해 주는 거지?”
“응? 그거야 자존심 상할 거 아니야.”
바헬이 웃으며 말했다.
“날 죽인 놈이 도르고 따위한테 당하는 꼴은 못 보지.”
그 말을 끝으로 바헬의 사념체는 완전히 소멸했다.
* * *
바헬의 사념체가 소멸한 직후, 데미안은 천천히 눈을 떴다.
“일주일이 넘게 지났는데 왜 아직도 깨어나질 못하는 게냐!”
잠에서 깨어난 데미안이 가장 먼저 본 것은 마법사에게 화를 내고 있는 황제의 모습이었다.
“저, 저도 원인을 모르겠습니다…….”
“모르겠다는 말만 반복하고 있군!”
“소, 송구스럽습니다!”
“시끄럽다. 가서 산의 심장과 바다의 눈물을 가져오도록 해라!”
“어, 어제도 두 개를 사용하지 않으셨습니까? 이제 남은 양도 얼마 되지 않습니다. 제국의 역사 동안 극소량만 확보한 보물들을 이렇게 허비하시는 건…….”
“지금 제국의 영웅이 깨어나질 않고 있는데 그딴 보물이 중요하단 말이냐? 당장 가져와라! 목이 떨어지고 싶지 않으면!”
“아, 알겠습니다!”
데미안은 손등으로 눈을 비볐다. 자신이 뭘 잘못 봤나 진지하게 고민이 됐던 것이다.
“폐하?”
데미안은 조심스럽게 황제를 불렀다. 목소리가 들리자마자 황제는 황급히 데미안을 돌아봤다.
“데미안 학센! 깨어났구나!”
황제의 얼굴에 함박웃음이 떠올랐다.
“계속 깨어나지 않아서 걱정했다! 다행이야! 정말 다행이야!”
황제는 눈물까지 글썽였다.
데미안은 떨떠름한 얼굴로 황제를 바라봤다. 매번 느끼지만 정말 부담스러운 인간이었다.
“여기는 어디입니까?”
“황궁의 비밀공간이라네. 원래는 극소수의 사람들만이 들어올 수 있는 곳이지.”
그래서 황제와 마법사 한 명씩만 있었던 모양이다.
데미안은 공간을 이리저리 둘러봤다. 비밀공간치고는 꽤 넓었다.
그러다 데미안의 시야에 무언가 들어왔다.
비밀 공간의 한가운데에 칼 한 자루가 꽂혀 있었던 것이다.
칼날은 매끄러웠으나 칼자루는 무척 투박했다. 마치 아무 나무나 끼워놓고 깎은 듯했다.
별 볼 일 없는 검이었다. 하지만 그것을 본 순간, 데미안은 번개에 맞은 것처럼 전율할 수밖에 없었다.
신검.
멸망전쟁 당시, 제국제일검이 사용했던 결전병기가 눈앞에 있었다.
하지만 말도 안 되는 일이었다. 신검은 분명히 멸망전쟁 말기에 갑자기 하늘에서 떨어졌다고 알려져 있었다.
그런 물건이 왜 황궁의 비밀공간에 놓여 있단 말인가.
“……폐하, 저건 뭡니까?”
데미안의 질문에 황제가 곤혹스럽다는 표정을 지었다.
퍽 놀라운 일이었다. 황제는 단 한 번도 데미안을 대할 때 저런 표정을 지은 적이 없었다.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모르겠군…… 저건 제국에서 가장 중요한 비밀이라 말이야.”
“비밀이라고요?”
“저건 초대 황제께서 사용하셨던 검이라네.”
초대 황제.
구원단 소속으로 수많은 무훈을 세웠던 인물이다.
다만, 데미안은 초대 황제의 실체를 알고 있었다. 그는 루인을 배신하고, 그 공적을 빼앗은 배신자였다.
“초대 황제께서는 저 검을 절대로 외부에 공개하지 말라고 하셨지. 그래서 대대로 이곳에 보관하고 있었다네.”
“……그런 곳에 절 왜 데리고 오신 겁니까?”
“저 검은 해로운 것을 무효화시킬 수 있는 능력이 있다네.”
황제의 설명이 조금 더 이어졌다.
“악마와 전투를 치른 자들은 신체에 어떤 저주가 남을지 몰라. 그래서 이번 전투에 참가한 이들을 모두 이곳으로 데려와서 치료했다네.”
무효화 능력.
데미안도 전생에 경험해 봤다. 즉, 저건 데미안이 알고 있는 신검이 맞다는 소리였다.
“좀 더 가까이에서 살펴봐도 되겠습니까?”
“얼마든지.”
제국의 보물임에도 황제는 흔쾌히 허락했다.
데미안은 신검에 가까이 다가갔다. 손을 뻗어서 칼자루를 쓰다듬었다.
-왜 고민하는 거야?
그 순간, 데미안은 칼자루에 담긴 사념을 읽을 수 있었다.
-네가 짐덩이처럼 느껴진다고? 무슨 소리를 하는 거야. 넌 충분히 잘해 주고 있어.
-저번에도 네가 측면을 막아 준 덕분에 전투에서 승리할 수 있었잖아.
-넌 앞으로도 더 강해질 수 있어. 내가 보장할게.
-참, 널 위해서 만들어 봤어. 이건 앞으로 네 검이야.
사념 속에서 데미안은 루인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데미안은 놀란 얼굴로 칼을 바라봤다.
신검은 루인이 자신의 존재를 쪼개서 만든 무기였다. 에레보스의 형제나 다름없는 검이었다.
다음 순간, 사념이 보여 주는 기억이 변했다.
웃고 있는 루인이 사라졌다. 대신 피투성이가 된 채 울고 있는 루인이 보였다.
-대체 왜……?
-제발…… 제발 한 마디만 해 줘.
-왜 내게…… 내게 이런 짓을…….
데미안은 칼자루에서 천천히 손을 떼었다. 그리고 떨리는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초대 황제가 감추려고 했던 치부가 바로 이것이었군.”
구원단이 루인을 배신할 당시, 가장 먼저 심장을 찌른 검이 바로 이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