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turn of the Calamity-Class Death Knight RAW novel - Chapter (44)
멸망급 데스나이트가 회귀함 44화
44화 잭슨 커터 (2)
두 사제를 따라가는 동안 소피아 러셀은 큰 혼란을 느끼고 있었다.
‘……정말 그게 데미안 학센이란 말이야?’
처음에는 잘못 본 줄 알았다. 너무 많이 달라진 탓이었다.
원래 데미안 학센은 운동을 좋아하지 않아서 온몸이 삐쩍 말라 있었다.
그런 주제에 매일 술까지 마시는 바람에 얼굴이 누렇게 떠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어떤가.
잘 단련된 대흉근이 안쪽에서부터 옷을 밀어내고 있었다.
소매는 금방이라도 터질 것처럼 팽팽했고, 반듯하게 벌어진 어깨는 위압적이기까지 했다.
무엇보다 많이 변한 것은 눈빛이었다.
신경질적이고, 음습했던 두 눈동자가 지금은 예리한 안광을 내뿜고 있었다.
변한 것은 겉모습만이 아니었다.
‘데미안 학센이…… 잭슨을 쓰러트렸어? 이게 말이 돼?’
잭슨 커터는 강자였다.
이는 옆에서 지켜본 소피아 러셀이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혼자서 오우거를 사냥할 정도로 뛰어난 힘과 기술을 겸비하고 있었다.
여태까지 많은 결투를 벌였지만 단 한 번도 패배한 적이 없었다.
데미안 학센은 그런 잭슨 커터를 장난감처럼 가지고 놀았다.
‘혹시 내가 꿈을 꾸는 걸까?’
소피아 러셀은 뺨을 꼬집었다. 볼이 새빨개질 정도로 세게 꼬집었지만 깨어나지 않았다.
즉, 현실이라는 뜻이었다.
‘……그런데 왜 날 알아보지 못한 척을 한 거지?’
두 사람이 파혼한 건 불과 몇 달 전 일이다.
그 짧은 시간 동안 얼굴을 까먹었을 리가 없다.
하물며 데미안 학센은 소피아 러셀에게 매달릴 정도로 집착하고 있었다.
‘설마…… 나한테 삐진 거야?’
두 사람의 마무리는 그리 좋지 못했다.
소피아 러셀은 데미안 학센에게 일방적으로 파혼을 선언했다.
그것도 모자라서 잭슨 커터에게 부탁해서 데미안 학센을 폭행하기까지 했다.
‘그래, 삐진 게 분명해. 그래서 알아보지 못한 척한 거야.’
소피아 러셀은 피식 웃음을 터트렸다. 데미안 학센이 하는 짓이 귀여웠기 때문이다.
이런 식으로 자신이 삐졌다는 걸 표현하는 이유가 무엇이겠는가?
아직 소피아 러셀에게 마음이 남아 있다는 뜻이었다.
그래서 관심을 끌기 위해서 이런 유치한 짓을 벌인 게 분명했다.
‘하여간 남자들이란…….’
그래도 나쁜 기분은 아니었다.
과거가 어쨌든 간에 데미안 학센은 굉장히 뛰어나고 유명한 기사가 되었다.
그런 남자가 자신을 신경 쓰고 있으니 기분이 좋을 수밖에 없었다.
‘그래 봤자 소용없어. 나한테는 잭슨이 있으니까.’
소피아 러셀은 고개를 들어서 잭슨 커터를 쳐다봤다.
그런데 어째서일까.
아까까지만 해도 그렇게 넓게 느껴지던 등이 갑자기 볼품 없어 보였다.
데미안 학센과는 너무 다른…….
‘앗, 내가 무슨 생각을…… 나한테는 우리 자기밖에 없어!’
소피아 러셀은 고개를 붕붕 흔들며 잡념을 떨쳐 냈다.
* * *
“스승님, 한 번만 더 기회를 주세요.”
천막으로 돌아가는 내내 잭슨 커터가 애원하듯 말했다.
“포기해라. 데미안 학센은 너보다 강하다.”
“방금 전에는 그냥 방심한 것뿐입니다. 제대로 붙으면 이길 수 있습니다.”
“내 판단을 못 믿겠다는 것이냐?”
자크 누아레의 목소리가 낮아졌다. 잭슨 커터는 냉큼 입을 다물었다.
“날 자극하지 마라. 내 명령을 어기고 데미안 학센과 접촉한 것을 생각하면 이 자리에서 네놈의 팔을 뽑아도 시원찮으니까.”
살기가 듬뿍 담긴 목소리에 잭슨 커터는 몸을 살짝 떨었다.
그의 스승은 허튼 소리를 하지 않았다. 한다고 하면 진짜로 하는 남자였다.
“예상외의 변수로군. 데미안 학센이 저런 실력자일 줄이야. 이대로 가면 우승을 차지하기 힘들 텐데…….”
자크 누아레가 혼잣말로 중얼거렸다.
그 말을 들은 잭슨 커터의 표정이 한껏 구겨졌다.
‘젠장, 내가 왜 데미안 학센한테 안 된다는 거야.’
잭슨 커터는 데미안 학센이 자신보다 강하다는 사실을 인정할 수도, 믿을 수도 없었다.
이전보다 실력이 좋아진 건 맞긴 했다. 한 방 먹은 것은 사실이었으니까.
하지만 무기를 들고 제대로 붙으면 이길 수 있다고 확신했다.
‘마상시합 때 증명해 주겠어.’
어차피 데미안 학센과는 마상시합에서 싸우게 되어 있었다.
잭슨 커터는 마싱시합에서 데미안 학센을 꺾고 증명할 생각이었다.
데미안 학센 따위는 자신의 상대가 안 된다는 것을 말이다.
“그나저나 도통 이해를 할 수가 없군. 몇 달 사이에 어떻게 그렇게 강해진 거지?”
자크 누아레가 중얼거렸다. 이건 잭슨 커터도 궁금했다.
어쨌거나 데미안 학센이 로우클래스의 경지에 오른 것은 확실했다.
몇 달이라는 짧은 시간에 로우클래스에 오르는 것은 말이 안 되는 일이었다.
“……혹시 천재인 겁니까?”
잭슨 커터의 물음에 자크 누아레가 멈칫했다.
“불가능한 것은 아니지. 제국제일검은 검을 잡고 1년이 되기도 전에 로우클래스의 경지에 올랐다고 하니까.”
“그, 그럼 데미안 학센이 제국제일검이랑 동급의 천재라 보시는 겁니까?”
“네가 보기에는 데미안 학센이 그런 천재일 것 같으냐?”
잭슨 커터는 고개를 저었다.
자신한테 얻어터지고 목숨이나 빌던 얼간이가 천재라고? 그럴 리가 없었다.
“내 생각에는 기연을 얻은 것 같다.”
과거 어떤 사람이 마스터 클래스의 사념이 담긴 무기를 얻은 적이 있었다.
그 사람은 무기를 통해서 마스터 클래스의 기술과 지식을 이어받음으로써 단숨에 엄청난 경지에 올랐다고 했었다.
물론 마스터의 기억을 물려받는다고 해서 똑같이 마스터가 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로우클래스에 오르는 것은 쉬웠다.
데미안 학센도 그런 전설같은 기연을 얻은 게 분명했다.
“잭슨, 목표를 하나 더 추가해야겠다.”
자크 누아레가 잭슨 커터를 돌아보며 말했다. 잭슨 커터는 황급히 표정을 풀었다.
“목표라뇨?”
“데미안 학센이 얻은 기연을 가져와야겠다.”
다음 순간, 잭슨 커터는 전신에 소름을 돋는 것을 느꼈다.
스승인 자크 누아레의 입가에 미소가 번지기 시작한 것이다.
마치 인형이 웃는 것처럼 소름 끼치는 광경이었다.
“보물은 가치를 알아보는 사람이 가져야 하는 법이지.”
* * *
“형님, 벌써 아버지와 한 약속을 어기시면 어떻게 합니까…….”
천막으로 돌아오자마자 아벨이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난 죄없어. 전부 상대방이 먼저 시비를 걸었잖냐.”
데미안 학센은 뻔뻔한 얼굴로 말했다.
아벨은 따지려 했으나…… 포기했다.
따지고 보면 데미안의 말이 맞기도 했고, 주위에서 시비를 걸면 가만히 있을 데미안이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그래도 잘하셨습니다.”
“뭐가? 잭슨 커터를 손봐 준 거?”
“예, 솔직히 말해서 저도 그 두 사람이 마음에 안 들었거든요.”
아벨의 눈빛이 어둡게 가라앉았다.
러셀 가문은 일방적으로 파혼을 선언한 것도 모자라서 학센 자작 전체를 모독했었다.
아무리 유순한 아벨이라 해도 화가 날 수밖에 없었다.
“기특한 녀석. 이 형을 편들어 주는 거냐?”
데미안이 아벨의 목에 팔을 둘렀다. 아벨은 데미안에게서 벗어나기 위해 버둥거렸다.
그때, 천막을 젖히고 빅터가 들어왔다.
“도련님, 한 시간 뒤에 연회가 열린다고 합니다.”
“오, 그러냐?”
데미안 학센은 잭슨 커터에 대해서는 잠시 잊기로 했다.
지금부터 진짜 중요한 일을 해결하러 가야 했다.
바로 아벨과 코퍼헤드 영애를 이어 주는 일.
“아벨, 나갈 준비하자.”
“예.”
아벨은 여행용 가방을 열어서 연미복을 꺼냈다.
연미복을 보자마자 데미안은 인상을 찌푸렸다. 대체 언제 구입했는지 모를 정도로 낡고 볼품 없었던 것이다.
“야, 그 낡은 연미복은 뭐냐? 설마 그걸 입으려고?”
“낡다니요…… 아버지께 빌린 겁니다.”
“뭐 하러 그런 옛날 옷을 빌린 거야.”
“……가문에 돈이 없잖습니까.”
아벨이 데미안을 원망스럽게 쳐다봤다. 그 시선에 데미안은 자신의 말실수를 깨달았다.
과거에 데미안 학센이 연이어 저지른 사고들을 수습하느라 학센 자작가의 재정 상태는 크게 악화되어 있었다.
그 바람에 아벨 역시 새로운 연미복을 구하지 못하고 아버지에게 얻어 온 것이다.
“공작한테 받은 사례금을 드린다는 걸 깜빡했군…….”
데미안은 뒷머리를 긁적이며 말했다.
“걱정하지 마라. 이 형님이 옷을 새로 사 왔으니 말이다.”
“사 오셨다고요?”
데미안 학센이 큼직한 가방을 열었다. 가방 안에는 형형색색의 연미복이 가득 담겨 있었다.
옷감을 물들인 색조가 무척 아름다울 뿐만 아니라 디자인까지 세련되었다.
딱 봐도 쉽게 구하기 힘든 고급스러운 옷이었다.
“형님, 이런 옷은 대체 어디서 구하신 겁니까?”
“랜드워크 도시에 달빛파도라는 의상실이 있잖냐? 거기 가서 사 왔지.”
“정말이십니까?”
아벨 학센은 놀랄 수밖에 없었다.
달빛파도는 서부에 모르는 귀족이 없을 정도로 유명한 의상실이었다.
의상 제작을 맡기려면 최소 3년은 기다려야 한다는 말이 있을 정도였다.
“대체 언제 그곳에 예약을 하신 겁니까? 예약하기도 보통 까다로운 게 아니라고…….”
“예약 안 했는데?”
“그럼 어떻게 옷을 받아오신 겁니까?”
“다른 귀족들이 주문한 옷을 사 왔지. 아, 치수는 걱정 마라. 네 체형을 말해 주고 조절해 왔으니까.”
“…….”
아벨은 황당함에 할 말을 잃었다. 데미안이 걱정하지 말라는 듯 덧붙였다.
“설마 내 눈썰미를 못 믿는 거야? 인마, 이 형의 감각이 얼마나 예리한데. 네 사이즈 정도는 정확하게…….”
“아, 아니 형님! 예약되어 있는 옷을 멋대로 구입해 오면 어떻게 하십니까!”
아벨의 항의에 데미안이 심드렁한 얼굴로 답했다.
“인마, 누가 보면 억지로 뜯어온 줄 알겠다. 제작비의 다섯 배를 주고 받아 온 거야.”
제작비의 다섯 배를 지불하겠다고 나서자 오히려 사장이 다른 옷들을 권할 정도였다.
데미안에게는 공작에게 받은 사례금이 한가득 쌓여 있었기에 옷값을 지불하는 데 전혀 문제가 없었다.
“아무리 그래도…….”
“그럼 저 낡은 연미복을 입고 들어가던지.”
데미안이 아벨의 연미복을 가리키며 말했다.
아벨은 낡은 연미복과 데미안이 사 온 연미복을 번갈아 쳐다봤다.
오래전에 제작되어 유행이 한참 지난 옷과 유명한 의상실에서 심혈을 기울여 제작한 옷.
차이가 극명하게 날 수밖에 없었다.
“……감사하게 잘 입겠습니다.”
“그래, 잘 생각했다.”
데미안이 환하게 웃으며 아벨에게 연미복을 건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