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turn of the Calamity-Class Death Knight RAW novel - Chapter (47)
멸망급 데스나이트가 회귀함 47화
47화 연회 (3)
“정말 재미있는 이야기였네.”
데미안의 이야기가 끝나자 코퍼헤드 백작은 무척 흡족한 얼굴로 말했다.
“미안하네만 잠깐 측간에 좀 갔다 오겠네.”
백작이 쑥스럽다는 얼굴로 말했다. 어쩐지 술을 많이 마시더니 신호가 온 모양이었다.
백작은 빠른 걸음으로 천막을 나갔다. 덕분에 데미안은 잠시 숨을 돌릴 수 있었다.
‘피곤하군.’
데미안은 이런 식으로 남을 접대하는 일에 익숙하지 않았다.
아벨만 아니었더라면 상대가 백작이 아니라 왕이었더라도 이 자리를 박차고 나갔을 것이다.
“근데 이놈은 잘하고 있나?‘
데미안은 쓱 아벨이 있는 쪽을 쳐다봤다.
“학센 자작가의 밀밭을 꼭 구경해 보고 싶네요.”
“그, 그러십니까. 그럼 가을에 제가 초, 초초, 초대를 해, 해도 될지…….”
“당연히 환영이죠.”
데미안의 노력이 헛되지 않았는지. 관계가 제법 진척이 된 모양이었다.
‘그래, 잘한다.’
아벨과 올리비아 영애의 사이도 금방 가까워졌고, 가장 큰 걸림돌인 코퍼헤드 벡작의 호감도 샀다.
아직까지는 모든 일이 순조롭게 풀리고 있었다.
“학센 자작가에 방문하면 학센 자작님과 부인께 인사를 드려야겠네요. 두 분께서는 어떤 선물을 좋아하시나요?”
“그, 그렇게 신경 쓰실 것 없습니다. 방문해 주시는 것만으로도 기쁜 일인 걸요.”
데미안은 흐뭇한 얼굴로 두 사람을 지켜봤다.
* * *
소피아 러셀은 코퍼헤드 백작의 옆에 앉은 데미안 학센에게서 시선을 뗄 수 없었다.
‘오귀스트가 만든 활이라고? 나한테는 아무것도 준 게 없으면서 그렇게 귀한 걸 홀랑 가져다 바친단 말이야?’
코퍼헤드 백작이 망설임 없이 옆에 앉힐 정도로 오귀스트가 제작한 활은 엄청난 물건이었다.
하지만 소피아 러셀이 짜증을 내는 진짜 이유는 그것 때문만이 아니었다.
‘나한테 미련이 남아 있는 게 아니었어?’
소피아 러셀은 데미안 학센이 자신에게 아직 마음이 남아 있다고 확신했다.
그 확신이 지금 흔들리고 있었다.
‘이래서야 꼭…… 올리비아한테 구애하러 온 것 같잖아.’
소피아 러셀은 질투심 가득한 눈빛으로 올리비아 코퍼헤드를 노려봤다.
‘저딴 여자가 뭐가 예쁘…… 예쁘긴 하지…….’
질투심에 눈이 멀었음에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을 정도로 올리비아 코퍼헤드는 아름다웠다.
심지어 얼굴만 아름다운 게 아니었다. 코퍼헤드 백작가라는 강력한 배경까지 가지고 있었다.
‘그래도 몸은 내가 더 좋은데.’
소피아 러셀은 자신의 몸을 내려다봤다.
육감적인 존재감을 드러내는 자신과 달리 올리비아 코퍼헤드는 나무토막처럼 밋밋했다.
소피아 러셀은 질투에 몸을 떨고 있을 때였다.
“미안하네만 잠깐 측간에 좀 갔다 오겠네.”
코퍼헤드 백작이 자리에서 일어나더니 연회장 밖으로 나갔다.
홀로 남겨진 데미안 학센은 아벨 학센과 올리비아 코퍼헤드를 가만히 바라봤다.
‘왜 올리비아 코퍼헤드한테 말을 걸지 않는 거지?’
올리비아 영애에게 청혼을 하러 왔다고 보기에는 거리감이 있었다.
“학센 자작가에 방문하면 학센 자작님과 부인께 인사를 드려야겠네요. 두 분께서는 어떤 선물을 좋아하시나요?”
“그, 그렇게 신경 쓰실 것 없습니다. 방문해 주시는 것만으로도 기쁜 일인 걸요.”
데미안 학센이 가만히 있는 동안 아벨 학센은 올리비아 영애와 가까워지고 있었다.
‘설마…… 본인이 아니라 동생을 올리비아 영애와 이어 주려는 거야?’
아무리 살펴봐도 그 추측이 맞는 듯했다.
“휴우…… 그런 거였어? 난 또 괜히 걱정했네.‘
소피아 러셀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러다 문득 떠올렸다.
‘……아니야, 이런 쓸데없는 생각하지 마. 나한테는 잭슨이 있잖아.’
소피아 러셀은 고개를 붕붕 흔들었다. 그러다 순간, 데미안 학센과 시선이 마주쳤다.
데미안 학센은 정확히 소피아 러셀을 응시하고 있었다.
그 눈빛에 소피아 러셀은 자신도 모르게 심장이 뛰는 것을 느꼈다.
‘이 많은 사람 중에서 날 찾아냈어…….?’
데미안 학센은 자신에게 미련이 남아 있는 게 분명했다.
그 사실을 확인하자 얼굴이 순식간에 달아올랐다.
소피아 러셀은 데미안 학센의 시선을 애써 외면하며 손부채질을 했다.
* * *
데미안이 아벨과 올리비아의 대화를 지켜보고 있을 때였다.
관중들 사이에서 불쾌한 시선 하나가 자신을 쏘아보고 있는 것이 느껴졌다.
만약 데미안이 평범한 로우클래스 기사였다면 느끼지 못했으리라.
하지만 데미안의 감각은 로우클래스를 한참 초월한 지 오래였다.
‘대체 누구야.’
데미안은 시선의 주인을 찾기 위해서 고개를 돌렸다.
그러자 귀족들 사이에서 자신을 노려보고 있는 소피아 러셀을 발견할 수 있었다.
‘쟤는 또 뭐 하는 거지?’
소피아 러셀의 얼굴을 보고 있자니 서서히 기분이 불쾌해졌다.
데미안은 이제 소피아 러셀에게 어떤 감정도 남아 있지 않았다.
과거에는 자신이 매달렸을지 몰라도 이제는 애정도, 증오도 남아 있지 않았다.
하지만 가족들이 당한 모독을 생각하면 분노가 치밀어 올랐다.
‘나중에 두고 보자.’
지금은 아벨의 연애 사업이 우선이었다.
데미안은 나중을 기약하기로 했다.
* * *
잭슨 커터는 데미안 학센이 코퍼헤드 백작의 옆에 앉는 모습을 멍한 표정으로 지켜봤다.
자신이 내밀었던 선물은 이미 잊혀진 지 오래였다.
백작도, 연회의 참가자들도 모두 데미안 학센만을 칭송하고 있었다.
‘데미안…… 데미안 학센……!’
데미안 학센만 아니었더라면 저 자리는 자신의 것이었을 것이다.
백작과 사람들의 관심을 빼앗길 일도 없었을 것이다.
‘망나니였던 주제에…… 감히 날 이렇게 물 먹여? 이 치욕은 반드시…… 반드시 갚아 주마……!’
이 순간, 잭슨 커터는 다짐했다.
데미안 학센에게 자신이 느꼈던 것보다 더 큰 절망을 안겨주겠다고 말이다.
* * *
제자와 마찬가지로 자크 누아레 역시 데미안 학센을 지켜보고 있었다.
‘……오귀스트가 제작한 활을 가지고 올 줄이야.’
자크 누아레는 원래 활력농축의 비약을 내놓을 생각이 없었다.
그의 비원을 위해서는 최대한 많은 비약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백작에게 비약을 바친 이유는 잭슨 커터로 하여금 백작의 호감을 사게 만들기 위해서였다.
하지만 데미안이 내놓은 물건이 너무 대단했던 탓에 백작의 관심을 모조리 빼앗겨 버렸다.
‘곤란하군. 아주 곤란해.’
자크 누아레가 마상시합에 참가한 이유는 자신의 비원을 성공시키기 위한 디딤돌을 마련하기 위함이었다.
자크 누아레의 비원이란 바로 마스터의 경지에 오르는 것.
마스터.
진정한 초인이라 불리는 경지.
오르기만 하면 역사책에 이름을 남길 수 있다.
그 경지에 오르기 위해서는 마스터 클래스가 남긴 지식과 많은 비약이 필요했다.
그리고 저것들을 얻기 위해서는 많은 돈이 필요했다.
자크 누아레는 이 비용을 마련하기 위해서 온갖 불법을 저질렀다.
그러다 큰 사건을 저지르는 바람에 만다린 왕국에서 쫓겨나다시피 도망쳤다.
자크 누아레가 만다린 왕국에서 한참 떨어진 애플 왕국에 온 건 이런 사건들과 전혀 상관없는 곳에 가기 위함이었다.
애플 왕국에 정착한 자크 누아레는 만디란 왕국 때와 달리 최대한 온건한 방법으로 비용을 마련하고자 했다.
그렇다고 다른 가문에 소속되어 일할 생각은 전혀 없었다.
그렇게 얻는 쥐꼬리만 한 봉급으로는 자신이 원하는 것들을 단 하나도 구할 수 없었다.
그래서 자크 누아레가 선택한 것이 바로 혼사를 미끼로 부유한 가문을 집어삼키는 일이었다.
잭슨 커터를 제자로 들인 것도 바로 그 때문이었다.
반반한 외모와 적당한 재능.
귀족 가문에서 군침을 질질 흘릴 법한 사윗감이었다.
잭슨 커터가 소피아 러셀과 사귀게 된 것도 사실은 자크 누아레가 의도한 일이었다.
덕분에 자크 누아레는 러셀 가문의 전폭적인 지원을 받을 수 있었다.
하지만 러셀 가문이 부유해 봤자 작은 가문에 불과해 성에 차지 않았다.
자크 누아레의 비원을 위해서는 더 큰 가문을 먹어 치울 필요가 있었다.
그래서 코퍼헤드 백작가를 선택했다.
잭슨 커터를 마상시합에서 우승시키려는 것도 바로 혼사를 맺기 위해서였다.
‘하지만 데미안 학센이 있어서야 힘들겠군.’
자크 누아레가 봐도 데미안 학센은 잭슨 커터보다 모든 면에서 우월했다.
실력은 말할 것도 없고, 명성, 외모까지 뛰어났다. 심지어 재력까지 갖추고 있었다.
‘그렇다고 코퍼헤드 백작가를 그냥 넘겨줄 수는 없지.’
자크 누아레의 입장에서 코퍼헤드 백작가는 굉장히 매력적인 먹잇감이었다.
먹어 치울 수만 있다면 비원에 한 걸음 더 가까워질 수 있었다.
‘내가 조금 더 적극적으로 나서야겠어.’
몹시 귀찮은 일이었으나 백작가를 빼앗기는 것보다 훨씬 나았다.
‘그래도 마냥 손해 보는 것은 아니겠군.’
계획대로 코퍼헤드 백작가를 먹어 치우고, 데미안 학센이 가지고 있는 기연까지 가질 수 있다면…….
손해는커녕 오히려 남는 장사였다.
‘데미안 학센, 각오하는 게 좋을 거다.’
자크 누아레의 눈빛이 섬뜩하게 빛났다.
* * *
연회는 늦은 시간이 되어서야 끝났다.
“오늘은 이쯤에서 자리를 파하도록 하지. 다들 돌아가서 내일 있을 마상시합을 준비하도록 하게나.”
귀족들은 연회장을 벗어나 자신의 숙소로 향했다.
데미안과 아벨도 똑같이 숙소로 이동했다. 천막에 도착하자마자 아벨은 침대에 몸을 던졌다.
“후아아…….”
아벨은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이제야 안심이 된다는 말이다.
“그렇게 긴장했냐?”
“당연하죠. 올리비아 영애의 앞이잖습니까.”
아벨은 고개를 들며 말했다.
“그래서 만나 보니까 어땠냐?”
“정말 아름답고…… 활발하고…… 유쾌한 분이었습니다.”
아벨이 얼굴을 붉히며 말했다. 대화를 나누는 동안 올리비아 영애에게 더욱 푹 빠진 모양이었다.
“내일은 어떤 이야기를 할지 미리 생각해 놔라.”
“예? 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내일은 올리비아 영애랑 안 만나려고?”
“만나고는 싶지만…… 내일은 마상시합 날이고…… 영애께 사람들이 많이 몰려들 거 아닙니까…… 말을 붙일 시간이 있을지…….”
“야, 이 재미없는 놈아. 기회가 없으면 만들어 내야지.”
데미안이 한심하다는 듯이 말했다.
“걱정 마라. 이 형님이 어떻게 해서든 만들어 줄 테니까.”
데미안이 자신감 넘치는 목소리로 말했다. 아벨은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
“내일 지켜보면 알게 될 거다.”
그 말에 아벨은 가만히 앉아서 데미안을 바라봤다. 데미안은 짧게 혀를 찼다.
“말 안 해 준다고 이러는 거냐? 그걸 또 굳이 캐물어야…….”
“형님, 감사합니다.”
느닷없는 말에 데미안은 멈칫했다.
“절 위해서 선물을 구해다 주시고…… 이런 기회도 마련해 주시고…… 어떻게 보답을 드려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낯부끄럽게 갑자기 왜 이러는 거야?”
“그게…… 죄송해서 그렇습니다. 저는 형님께…… 나쁜 말을 많이 했잖습니까.”
가족 중에서 데미안을 가장 싫어했던 사람이 아벨 학센이었다.
그래서 회귀 이후에 변화된 모습을 봐도 무슨 일만 생기면 데미안 학센을 비난하고는 했다.
사실 그건 아벨의 잘못이 아니었다. 전부 데미안 학센 때문이었다.
그가 못났기에, 한심했기에 매번 동생을 실망시켰다. 동생은 쌓이고 쌓여서 견디다 못해 불만을 표출했을 뿐이었다.
“……신경 쓰지 마라.”
무엇보다 나쁜 짓의 경중을 따지자면 데미안이 저지른 일이 훨씬 무거웠다.
전생에 데미안은 자신의 손으로 직접 아벨을 죽였다.
아직도 아벨의 목을 벨 때의 감촉이 생생하게 남아 있었다.
“형이 동생을 생각하는 건 당연한 거지. 그러니까 넌 그냥 올리비아 영애한테 청혼하는 것만 신경 써라.”
“예, 그렇게 하겠습니다!”
아벨이 큰 소리로 말했다. 데미안은 옅은 미소를 지었다.
행복해하는 아벨의 얼굴을 보고 있으면 과거의 잘못을 조금이나마 용서 받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