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turn of the Calamity-Class Death Knight RAW novel - Chapter (53)
멸망급 데스나이트가 회귀함 53화
53화 계략 (3)
교단의 등장에 마상시합장은 찬물을 끼얹은 것처럼 조용해졌다.
귀족들은 흑마력을 봤을 때보다 교단의 등장에 더 큰 공포를 느꼈다.
흑마법에 관련된 일이라면 교단은 미친개처럼 날뛴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비, 빌어먹을!”
가장 먼저 침묵을 깬 사람은 잭슨 커터였다.
잭슨 커터는 이대로 있다가는 좋을 게 없다는 사실을 깨닫고 도망치려 했다.
하지만 데미안이 손목을 놓아주지 않았다.
“이거 놓지 못…… 컥!”
잭슨 커터가 반항하려는 순간, 교단의 성기사들이 달려들었다.
칼자루로 뒤통수를 후려쳐서 억지로 말에서 떨궜다. 그리고 양쪽 팔을 꺾었다.
잭슨 커터가 제압당하는 사이, 남은 성기사가 데미안을 향해 인사했다. 얼굴이 보름달처럼 크고 통통한 남성이었다.
“데미안 경, 반갑습니다. 교단의 2급 성기사 토마스라고 합니다.”
성기사는 일반 기사들과 달리 급수로 자신들을 나타냈다. 2급 성기사라면 미들클래스와 동급의 기사였다.
‘과연 인맥이 좋긴 좋아.’
데미안은 어젯밤 빅터를 시켜서 인근 도시에 있는 교단에 연락을 넣었다.
데미안이 넣은 연락이란 마상시합장에 이단자가 모습을 드러낼 것 같으니 성기사를 파견해 달라는 것이었다.
덤으로 이단자 중에는 미들클래스의 기사도 있으니 그에 걸맞은 실력자를 보내 달라고 했다.
교단은 데미안의 부탁을 바로 들어준 것은 물론이고, 진짜로 미들클래스에 대항할 수 있는 전력을 보냈다.
덕분에 직접 힘을 쓰지 않고도 현재 상황을 처리할 수 있을 듯싶었다.
이독제독(以毒制毒)이나 다름없었다.
“데미안 경의 말대로 정말로 더러운 이단자가 있었군요.”
그 말에 잭슨 커터가 발악하듯 소리쳤다.
“누, 누가 이단자라는 거냐! 나는 아무 잘못도 없…….”
성기사 중 한 명이 검집으로 잭슨 커터의 입을 내리찍었다. 무언가 으스러지는 소리가 들려왔다.
“흑마법을 사용한 이단자 주제에 말이 많군.”
“우리의 귀를 더럽히지 말고 가만히 있어라.”
성기사들은 잭슨 커터를 금방이라도 죽일 것처럼 으르렁거렸다.
그 살기에 잭슨 커터가 몸을 움츠리는 게 보였다.
“그런데 데미안 경, 다른 이단자는 어디에 있습니까?”
데미안 손가락을 들어서 관중석을 가리켰다.
그곳에는 자크 누아레가 앉아 있었다.
“저 남자가 제가 말한 미들클래스 이단자입니다.”
자크 누아레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그와 동시에 토마스가 자크 누아레를 향해 달려들었다.
* * *
마상시합이 막 시작되었을 때만 하더라도 자크 누아레는 아무 걱정도 하지 않았다.
잭슨 커터에게 건넨 팔찌는 보통 물건이 아니었다. 악명이 대단한 흑마법사가 심혈을 기울여 만든 물건이었다.
자크 누아레가 로우클래스였을 때, 저 팔찌 덕분에 몇 번이고 목숨을 건졌다.
생명력과 마력을 소모한다는 큰 단점이 아니었다면 항상 착용하고 다녔을 것이다.
마상시합이 시작되고, 데미안 학센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말 한 마리로 기사들을 때려눕히는 데미안을 보며 자크 누아레는 기대감을 느꼈다.
데미안 학센이 어떤 기연을 얻었는지는 자크 누아레도 몰랐다.
하지만 몇 달 만에 데미안 학센을 로우클래스의 경지에 올려놓은 것으로 보아 분명히 대단한 기연일 듯싶었다.
오늘 데미안 학센을 죽임으로서 자크 누아레는 코퍼헤드 백작가와 기연을 둘 다 손에 넣을 수 있었다.
실로 기념할 만한…….
그때, 데미안 학센이 잭슨 커터의 손목을 움켜잡더니, 곧이어 팔찌가 박살이 났다.
“……?”
사방으로 흑마력이 자욱하게 번졌다.
전혀 예기치 못한 사태에 자크 누아레의 머릿속이 혼란으로 가득 찼다.
하지만 혼란을 정리하기도 전에 더 충격적인 일이 발생했다.
관중석에 앉아 있던 성기사들이 모습을 드러낸 것이다.
“……!”
자크 누아레는 놀랄 수밖에 없었다. 바로 지척에 성기사들이 있었음에도 조금도 감지해 내지 못했다.
성기사들이 로브를 벗고 나서야 그 존재를 느낄 수 있었다.
저들이 입고 있던 로브는 보통 물건이 아니었다. 교단에서 잠행할 때 사용한다는 특수한 성물이었다.
교단의 성기사들은 곧바로 잭슨 커터를 제압했다.
혼란의 혼란이 겹치자 자크 누아레는 잠시 아무 생각도 할 수 없었다.
“저 남자가 제가 말한 미들클래스 이단자입니다.”
데미안 학센이 자신을 가리킬 때까지 말이다.
성기사가 자신을 향해 돌진했다. 자크 누아레를 향해 칼날을 내리쳤다.
자크 누아레는 반사적으로 팔뚝을 세워서 공격을 막아 냈다.
팔뚝에 착용하고 있던 보호구와 칼날이 서로 부딪히며 날카로운 소리를 냈다.
“꺄아악!”
“끼아악!”
두 미들클래스의 격돌은 엄청난 충격을 발생시켰다. 주변에 앉아 있던 사람들이 밀려날 정도였다.
“정말로 미들클래스의 이단자가 있었구나!”
성기사의 두 눈이 불길처럼 이글거렸다.
“신의 축복으로 얻은 재능으로 흑마법 따위에 손을 대다니! 내 오늘 네놈을 갈기갈기 찢어서 신께 바치겠다!”
“광신도라 그런지 생각이란 게 없는 수준이군. 개소리를 아무렇지도 않게 지껄이는 걸 보니 말이다.”
자크 누아레가 담담한 목소리로 말했다.
하지만 말투와 달리 머릿속에서는 오만가지 생각이 다 떠오르고 있었다.
교단은 제국 만큼이나 강대한 세력이었다. 대륙 전역에 교단의 힘이 닿지 않는 곳이 없었다.
자크 누아레가 아는 한 교단과 대적하고 살아남은 이는 거의 없었다.
“이단자 주제에 멋대로 지껄이지 마라!”
토마스의 몸에서 하얀빛이 터져 나왔다. 기이하게도 빛이 뿜어져 나오고 있음에도 눈이 부시지 않았다.
신성력.
신을 믿고 섬기는 자들만이 사용할 수 있는 기적이 발현되었다.
“지금 당장 네놈의 골통을 쪼개 주마!”
토마스가 팔에 힘을 주었다. 칼날을 더욱 밀어붙였다.
자크 누아레는 저항하지 않았다. 오히려 토마스의 힘을 역이용해서 관중석 뒤로 날아갔다.
“어딜 도망치려는 것이냐!”
토마스가 고성을 내지르며 자크 누아레를 뒤쫓았다. 마상시합장 뒤에서 격한 소리가 연달아 들려왔다.
“역시 교단이군.”
그 모습을 바라보며 데미안은 감탄했다.
흑마법을 상대하기에 이만한 곳이 없었다.
“음……?”
그때, 데미안의 시야에 무언가 들어왔다.
코퍼헤드 백작이 새하얗게 질린 얼굴로 마상시합장을 벗어나고 있었다.
* * *
“이, 이럴 수가…… 내, 내 영지에서 이런 일이 벌어지다니……!”
걸음을 옮기는 내내 코퍼헤드 백작은 금방이라도 쓰러틸 것처럼 식은땀을 흘렸다.
“자, 자크 누아레! 이 멍청한 인간이 내 땅에서 흑마법을 사용할 줄이야!”
교단의 이단심문관들은 집요하고 잔인했다.
이번 일을 자크 누아레와 잭슨 커터의 일탈로 끝내지 않고 광범위하게 조사해 관련된 자도 색출해 낼 게 분명했다.
“내, 내가 그놈들과 거래를 하려고 했다는 게 밝혀지면…… 아, 아니다. 난 모르는 일이야. 난 모르는 일이었어!”
코퍼헤드 백작은 걸음을 옮기는 내내 몸을 덜덜 떨었다.
올리비아는 그런 백작을 한심하다는 듯이 바라봤다.
평소에는 그렇게 근엄하고 교활하게 행동하던 인간이 진짜 위기에 빠지니까 이렇게 겁에 질릴 줄이야.
“올리비아! 나는 해결책을 고민해야겠다! 교단에서 찾아오면 내가 쓰러졌다고 말하고 시간을 벌어라! 알겠느냐?”
천막에 도착하자마자 백작은 올리비아에게 명령했다.
올리비아는 시큰둥한 얼굴로 말했다.
“그런다고 통할 것 같지 않은데요.”
“하라면 할 것이지 무슨 말이 그렇게 많단 말이냐!”
올리비아의 반문에 코퍼헤드 백작이 소리쳤다.
그에게는 어떻게 해서든 생각을 정리할 시간이 필요했다.
“각하, 어디로 가시나 했더니. 낮잠이라도 주무시려는 겁니까?”
난데없이 들려온 소리에 백작은 깜짝 놀라서 고개를 돌렸다.
바로 뒤에 데미안 학센이 서 있었다.
“……데미안 학센! 무슨 낯짝으로 내 앞에 얼굴을 내민 것이냐!”
성기사들의 태도로 보건데 데미안 학센이 교단을 불러들인 것이 확실했다.
지금 백작에게 데미안은 모든 것을 망친 원수나 다름이 없었다.
“각하와 상의할 일이 있어서 찾아왔습니다.”
“헛소리하지 마라! 기사들은 뭘 하느냐! 저놈을 쫓아내라!”
백작가의 기사들이 데미안을 가로막았다.
“더 이상 접근은…….”
데미안은 손등으로 기사들의 턱을 한 번씩 때렸다. 너무 빨라서 아무도 제대로 보지 못할 정도였다.
기사들은 그대로 혼절했다. 백작은 비명을 질렀다.
“각하, 이러시면 섭섭합니다.”
그리 말하며 데미안은 백작의 멱살을 움켜잡고 들어 올렸다.
“제가 교단을 불러들인 게 마음에 들지 않으신 모양인데…… 각하께서 날 죽이려고 했던 건 까맣게 잊으신 모양입니다?”
데미안이 살기를 흘리자, 백작의 얼굴에 핏기가 완전히 사라졌다.
“안에 들어가서 저와 조용히 상의를 나누시렵니까. 아니면 다른 방식으로 대화를 나누시렵니까?”
“사, 상의를 하겠네! 하겠어!”
백작이 다급하게 소리쳤다. 그제야 데미안은 만족스럽게 웃었다.
“잘 생각하셨습니다.”
* * *
“각하, 실망이 큽니다.”
데미안은 의자에 앉은 채 탁자에 발을 올려놓았다.
백작은 데미안의 태도를 지적할 생각조차 못하고 있었다.
“각하와 꽤 좋은 관계를 맺고 있었다고 생각했는데. 뒤로는 절 죽이려 하시다뇨.”
“자네, 어디서 이상한 소문을 들은 모양이군. 나는 자네를 죽이려 한 적이 없네. 무슨 가당찮은 소리를…….”
“올리비아 영애께서 다 말씀해 주셨습니다. 자크 누아레가 제 목숨을 원했는데. 백작 각하께서 뒤처리를 약속하셨다면서요?”
백작은 올리비아를 노려봤다. 올리비아는 아무렇지도 않게 백작의 시선을 받아 냈다.
“예, 아버지. 제가 말했어요.”
“올리비아! 네년이 미쳤구나! 왜 이딴 짓을…….”
쾅.
데미안이 발꿈치로 탁자를 때렸다. 백작은 다시 입을 다물었다.
“각하, 아직 제 이야기가 끝나지 않았습니다.”
“자, 자네…….”
“제가 백작 각하께서 자크 누아레와 거래하려 했다는 것을 교단에 말하면 어떻게 될 것 같습니까?”
벡작의 얼굴이 흙색을 띄었다.
“나, 나는 몰랐네! 정말 몰랐어! 자크 누아레 그자가 흑마법을 사용하리라고는…….”
“그딴 변명이 교단에게 통할 거라고 생각하십니까?”
교단은 흑마법과 직간접적으로 연관이 된 것들을 조금도 용납하지 않았다.
하물며 백작은 흑마법을 이용한 살인 미수 사건에 연루되어 있었다.
교단에 결백을 주장해 봤자 제대로 먹히지 않을 게 뻔했다.
“데, 데미안 경! 미안하네! 내가 잘못했어! 제발 교단에 고발하는 것만큼은…….”
“제가 말을 하지 않아도 어차피 잭슨 커터가 모든 걸 폭로하게 될 겁니다. 이단심문관들의 고문이 얼마나 끔찍한지 잘 알고 계시지 않습니까?”
데미안의 지적에 백작은 온몸의 힘이 쭉 빠지는 것을 느꼈다.
“각하께서 아실지 모르겠지만 저는 나름대로 교단에 연줄이 있습니다. 각하 한 명을 변호하는 것쯤은 쉽지요.”
데미안이 은근한 목소리로 말했다. 백작은 구원자라도 만난 것 같은 표정을 지었다.
“자, 자네…….”
“하지만 몇 가지 조건이 있습니다.”
“마, 말해 보게! 무, 무엇이든 들어주겠네!”
데미안은 손가락을 하나씩 세우며 말했다.
“첫 번째, 제 동생과 올리비아 영애의 교제를 허락해 주십시오.”
“그, 그 정도야 쉽지.”
“두 번째, 절 이번 마상시합의 우승자로 선포하십시오.”
“그거야 당연하지 않겠나!”
데미안이 앞서 말한 두 개의 조건은 굉장히 쉬웠다. 하지만 그다음이 문제였다.
“올해가 넘어가기 전에 올리비아 영애에게 영지의 반을 양도하십시오.”
“그게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인가! 반이라니! 지금 제정신인가!”
백작은 크게 분노했다. 그러자 데미안의 목소리가 날카로워졌다.
“그럼 교단에 끌려가셔서 스스로 결백을 주장하십시오.”
그 경고에 백작은 입을 다물 수밖에 없었다.
“마지막으로 이번 일에 대한 보상으로 학센 자작가에 300골드를 보내십시오.”
“3, 300골드는…….”
“절 죽이려고 하신 것치고는 별거 아닌 금액 아닙니까?”
데미안의 살기 가득한 말에 백작은 다시 침묵할 수밖에 없었다.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자, 잠시 고민할 시간을…….”
“이 자리에서 당장 결정을 내리십시오.”
데미안이 단호하게 말했다. 백작은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그대의 요구를 모두 따르겠네.”
“잘 생각하셨습니다.”
데미안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천막을 떠나기 전, 마지막으로 백작에게 경고했다.
“각하, 혹시 몰라서 말씀드립니다. 만약 오늘 저와 한 약속을 어기거나 계속 미룬다면…….”
데미안이 기세를 해방했다.
마력과 살의가 서로 뒤섞이며 천막 전체를 집어삼켰다.
“…….”
그 가공할 만한 힘에 백작은 완전히 넋이 나가버렸다.
“제가 직접 대가를 받아 내도록 하겠습니다.”
백작의 고개가 천천히 위아래로 움직였다.
* * *
데미안은 올리비아와 함께 천막에서 나왔다.
“정말 괜찮겠나?”
데미안은 걱정스러운 얼굴로 밀었다.
어젯밤 데미안은 올리비아에게 자신이 고발했다는 사실을 말해도 된다는 동의를 구했다.
그 대가가 바로 영지의 반을 얻는 것이었다.
이번 일로 올리비아는 백작과 사실상 절연한 것이나 다름이 없었다.
“그렇게 신경 써 주지 않으셔도 돼요. 전 아무렇지도 않으니까요.”
하지만 올리비아는 눈 하나 까딱하지 않고 그렇게 말했다.
“아버지는 평생 동안 절 도구로 사용하셨어요. 그러니 이번에는 제가 아버지를 도구로 쓸 뿐이에요.”
굉장히 냉정하고, 섬뜩한 말이었다.
이런 여자를 아벨의 반려로 받아들여도 되는 걸까.
데미안은 잠시 고민했다.
‘뭐, 아벨도 약간 어리바리한 면이 있으니까. 나쁘지 않겠지.’
두 사람이 걸음을 옮길 때였다.
저 앞에서 누군가 달려오고 있었다.
“데, 데미안…… 여기 있었군요!”
소피아 러셀이 금방이라도 울음을 터트릴 것 같은 얼굴로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