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turn of the Calamity-Class Death Knight RAW novel - Chapter (54)
멸망급 데스나이트가 회귀함 54화
54화 계략 (4)
“데, 데미안!”
소피아는 데미안을 향해 달려왔다.
“이, 이렇게 빨리 만나게 되어서 다, 다행이에요. 다, 당신밖에 의지할 사람이 없어요.”
소피아의 얼굴에는 두려움이 가득했다. 소피아는 몸을 덜덜 떨며 데미안에게 말했다.
“교단에서 잭슨을…… 아, 아니 잭슨 커터를 심문하기 시작하면 분명히 저도 잡아갈 거예요.”
이곳에서 소피아 러셀만큼 잭슨 커터와 깊은 관계를 맺은 사람은 없었다.
교단에서 소피아 러셀을 가만히 내버려 둘 리가 없었다.
“하, 하지만 전 결백해요. 아무것도 몰랐어요. 재, 잭슨 커터한테 그런 팔찌가 있다는 것도 처음 알았다고요!”
소피아 러셀은 데미안의 팔에 매달렸다.
“저, 절 도와줄 사람은 당신밖에 없어요. 제발 절 지켜주세요. 이, 이렇게 빌게요.”
“내가 왜 널 도와줘야 하는데?”
데미안으로서는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소피아 러셀은 데미안에게 일방적으로 파혼을 선언한 것도 모자라서 학센 자작가를 모독하기까지 했다.
지금 두 사람은 남보다 못한 사이였다. 그런데 어떻게 이렇게 쉽게 도움을 요청한단 말인가?
“도, 도와준다면 다, 당신이 원하는 걸 이루어 줄게요!”
“내가 원하는 거라고?”
소피아 러셀이 마른침을 삼켰다. 계속 불안감에 젖어있던 얼굴에 천천히 미소가 그려졌다.
“다시 당신의 여자가 될게요.”
소피아 러셀이 자신감에 가득 찬 얼굴로 말했다.
데미안이 자신의 제안을 반드시 받아들일 것이라 확신하고 있는 듯했다.
“필요 없는데?”
데미안이 황당하다는 얼굴로 말했다. 그러자 소피아 러셀은 한숨을 깊이 내쉬며 데미안을 질책했다.
“데미안…… 아무리 화가 많이 나도 그렇지 아직까지 꽁해 있으면 어떻게 해요.”
“뭐?”
“여자가 이렇게 고개를 숙이고 들어오면 못 이기는 척 받아 주는 맛도 있어야죠.”
“지금 뭐라고 지껄이는…….”
“알겠어요. 제가 다시 사과할게요. 제가 다 잘못했어요. 그러니까 이제 그만 화를 풀고 절 받아 주세요.”
데미안은 회귀한 이후, 처음으로 말문이 막히는 것을 느꼈다.
그와 동시에 이런 상황에 처했음에도 변함없는 소피아 러셀의 태도에 진절머리가 났다.
“데미안, 다 알고 있어요. 당신은 아직 절 원하고 있다는 걸요. 그러니까 처음에 절 봤을 때, 모르는 척 연기를 한 거잖아요. 제 관심을 끌려고.”
소피아 러셀이 확신에 찬 어조로 말했다.
“올리비아 영애의 옆자리를 계속 아벨에게 양보한 것도 저 때문이잖아요. 숨기려 했겠지만 전 일찌감치 눈치…….”
“너무 어이가 없어서 대체 어디서부터 오해를 풀어야 할지 모르겠군.”
데미안이 냉담한 어조로 말했다.
“아직도 화가 안 풀렸어요? 제가 얼마나 사과를 해야…….”
“아니, 아무것도 필요 없다. 난 네가 필요 없다. 아무 관심도 없어.”
데미안이 딱 잘라서 말했다.
“부탁인데 개소리는 그만 집어치우고 내 눈앞에서 꺼져라.”
“데, 데미안…….”
“혹시라도 내 경고를 어기고 다시 내 눈앞에 나타나서 지금 같은 헛소리를 지껄인다면 혓바닥을 잘라 버리겠다.”
자신의 의사를 확실하게 전달하기 위해서 데미안은 살기까지 일으켰다.
소피아 러셀의 안색이 하얗게 질렸다.
“알아들었으면 이만 꺼져라.”
* * *
데미안은 소피아 러셀을 지나쳤다.
소피아 러셀은 석상처럼 우두커니 서 있기만 할 뿐, 데미안을 붙잡을 생각조차 못 했다.
데미안은 올리비아를 데리고 마상시합장으로 향했다.
마상시합장에 남아 있는 성기사들을 만나기 위해서였다.
그런데 무언가 이상했다.
마상시합장에 모여 있는 성기사들의 분위기가 굉장히 어두웠던 것이다.
“데미안 경, 돌아오셨군요.”
성기사 토마스가 말했다. 침통한 얼굴로 데미안에게 말했다.
“자크 누아레를 놓치고 말았습니다.”
“그게 정말입니까?”
“실력을 감추고 있었습니다. 거기에 또 다른 흑마법 도구를 사용하는 바람에…….”
토마스가 이를 갈며 말했다. 눈앞에서 이단자를 놓쳐버렸으니 그만큼 분통이 터지는 모양이었다.
“자크 누아레…… 소문대로 대단한 실력자였군요.”
데미안이 잔뜩 굳은 얼굴로 말했다.
하지만 표정과 달리 데미안은 딱히 놀라지 않았다.
‘역시 도망쳤나.’
데미안은 토마스를 처음 봤을 때부터 상황이 이렇게 될 것을 예측했다.
자크 누아레에 비해서 토마스의 실력이 너무 부족했던 것이다.
아마 자크 누아레가 마음만 먹었다면 토마스를 간단하게 죽일 수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교단의 성기사를 죽였다가는 더 큰 후폭풍이 들이닥치지.’
적을 죽일 수도, 살릴 수도 없는 상황.
그렇다면 도망치는 것만이 유일한 방법이었다.
‘표식을 미리 붙여놓길 잘했군.’
어젯밤, 데미안은 빅터를 도시로 보낸 뒤, 자크 누아레의 숙소를 찾아갔다.
자크 누아레의 마력을 기억하고 있었기에 그리 어렵지 않았다.
미들클래스의 감각을 속이는 것 역시 데미안에게는 간단한 일이었다.
데미안은 숙소에서 잠자고 있는 자크 누아레 몰래 옷자락에 위치를 파악할 수 있는 표식을 그려 놓았다.
“토마스 경, 너무 상심하지 마십시오. 신께서 토마스 경을 돕고 계시니 언제든지 자크 누아레를 잡을 기회를 얻을 수 있을 겁니다.”
데미안은 토마스를 위로했다. 토마스는 감격에 겨운 얼굴로 데미안을 바라봤다.
“데미안 경…… 이런 상황에서도 믿음을 놓지 않으시다니…… 역시 아그네스 님의 말씀대로 경이야말로 성기사의 귀감입니다!”
데미안은 토마스와 슬쩍 거리를 벌렸다.
역시 이 광신도들은 봐도 봐도 익숙해지지 않았다.
* * *
다음날부터 마상시합장은 소란스럽게 흘러갔다.
교단에서 도착한 후발대가 마상시합장에 있는 귀족들을 모두 조사하기 시작한 것이다.
“이봐! 나는 잭슨 커터란 놈이란 아무 관계도 없어!”
“내가 교단에 한 해에 내는 성금이 얼마나 많은 줄 알아? 이런 대접은 용납할 수 없어!”
귀족들은 항의했으나 씨알도 먹혀들지 않았다.
교단은 귀족들을 한 명씩 면담하며 조사했다.
다행히 잭슨 커터가 다른 사람들과 적극적으로 교류하지 않았던 탓에 조사는 귀족들은 금방 풀려날 수 있었다.
“말해라. 이 팔찌를 누가 줬지?”
“자, 자크 누아레! 자크 누아레가 줬어! 이, 이것만 있으면 데미안 학센을 주, 죽일 수 있을 거라고…… 끄아아악!”
“데미안 경을 죽이려 했다고? 그 계획에 찬동한 사람이 또 있나.”
“코, 코퍼헤드 백작! 코퍼헤드 백작이 같이 있었어!”
사건의 당사자인 잭슨 커터는 이단심문관이 직접 심문했다.
교단 이단심문관의 심문은 특히 악독하기로 유명했다.
원하는 정보를 모두 얻을 수 있도록 고문 방법이 매년 발전된다는 소문이 공공연히 퍼질 정도였다.
식사 시간에도, 취침 시간에도 잭슨 커터의 비명소리는 그칠 줄 몰랐다.
이단심문관은 잭슨 커터의 사소한 비밀까지 모두 듣고 나서야 심문을 멈췄다.
이단심문관은 다음으로 소피아 러셀과 코퍼헤드 백작을 불러들였다.
“아, 백작님은 결백합니다. 절 죽이려고 한 건 맞는데. 흑마법에 대한 건 전혀 몰랐더군요.”
데미안은 약속대로 백작을 옹호했다.
말을 하면서도 데미안은 조금 걱정을 했다. 이단심문관들이 얼마나 집요한지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알겠습니다. 소피아 러셀만 불러들이겠습니다.”
“……어, 제 말을 믿어 주시는 겁니까?”
“당연합니다. 데미안 경께서 교단에 이바지한 일이 얼마나 많습니까.”
이단심문관은 싱거울 정도로 쉽게 데미안의 말을 믿어줬다. 그 때문에 소피아 러셀만 끌려갔다.
“저, 저는 진짜 몰라요! 저한테는 아무 이야기도 하지 않았단 말이요!”
소피아 러셀은 자신의 결백함을 주장했다.
하지만 이단심문관은 그녀의 말을 조금도 믿지 않았다.
잭슨 커터의 연인인 만큼 숨기고 있는 사실이 많다고 판단했다.
소피아 러셀이 끌려간 지 얼마 되지 않아서 귀가 찢어질 듯한 날카로운 비명소리가 터져 나왔다.
* * *
일주일이 지나서야 교단은 조사를 끝냈다.
교단에서는 잭슨 커터 이외에 어떤 용의자도 없다고 결론을 내렸다.
그제야 귀족들은 시합장에서 풀려날 수 있었다.
아직 마상시합이 마무리되지 않았지만 귀족들은 앞다투어 마상시합장을 벗어났다.
영지로 돌아가려는 귀족들의 행렬이 길게 이어졌다.
“데미안 경께서도 떠나시려는 겁니까?”
데미안도 다른 귀족들처럼 자작가로 돌아갈 준비를 하고 있었다.
그런데 데미안에게 토마스와 성기사들이 찾아왔다.
“예, 가족들이 걱정하고 계실 테니 빨리 찾아뵙고자 합니다.”
“으음…… 저로서는 조금 더 머무시는 걸 추천드리고 싶습니다.”
토마스가 걱정스럽다는 얼굴로 말했다.
“자크 누아레, 그자가 데미안 경을 노릴지도 모릅니다.”
마상시합장에 교단을 불러들인 장본인은 데미안이었다. 자크 누아레가 원한을 품고 있을 확률이 높았다.
“현재 교단에서 자크 누아레를 수배 중입니다. 행적이 파악될 때까지만이라도 이곳에 계시는 게 어떻겠습니까?”
신경 써 주는 것은 고마운 일이었으나 데미안은 이 제안을 받아들일 생각이 전혀 없었다.
데미안의 실력으로도 자크 누아레는 충분히 상대할 수 있었다.
오히려 데미안은 자크 누아레가 자신을 찾아와 주기를 바라고 있었다.
무엇보다 고리타분한 성기사들과 동행하는 것은 죽어도 사양하고 싶었다.
“말씀은 감사합니다만 사양하도록 하겠습니다. 저 한 사람 때문에 토마스 경의 발이 묶이는 것은 안 될 일입니다.”
2급 성기사쯤 되면 교단에서도 흔치 않은 전력이었다.
맡고 있는 일도, 맡아야 하는 일도 많을 터였다.
“게다가 하늘에 계신 위대한 분께서 절 지켜보고 계시는데. 어찌 그런 사특한 자가 절 해할 수 있겠습니까.”
데미안의 말에 감동을 받았는지. 토마스는 조용히 성호를 그었다.
“무엇보다 교단에서 수배령을 내렸으니 자크 누아레는 정신이 없어서 절 노릴 틈도 없을 겁니다.”
“데미안 경, 그래도 며칠만이라도 좋으니……”
데미안은 토마스의 말을 몇 번이고 거부했다.
결국 토마스는 자신의 뜻을 접을 수밖에 없었다.
* * *
데미안은 학센 자작가로 출발했다.
올 때와 달리 갈 때는 일행이 한 명 더 늘어 있었다.
바로 올리비아 코퍼헤드였다.
“학센 자작가에 이렇게 빨리 가게 될 줄은 몰랐어요.”
“저, 저도 그렇습니다. 이렇게 빨리 올리비아 영애를 부모님께 소개하게 될 줄은…….”
아벨의 옆에는 올리비아 코퍼헤드가 앉아 있었다.
올리비아는 이미 아버지인 백작과 척을 졌다. 그렇기에 괜히 백작가에 남아 있는 것보다 아벨과 함께 떠나는 것을 선택했다.
“그런데 언제까지 존댓말을 할 생각이에요? 말을 편하게 해도 된다니까요.”
올리비아가 뚱한 얼굴로 말했다. 아벨은 망설이다가 말했다.
“……오, 올리비아.”
“좋아요. 이제부터 꼭 그렇게 편하게 말해 주세요.”
맞은편에 앉아 있던 데미안은 눈꼴시럽다는 얼굴로 두 사람을 쳐다봤다.
둘이 잘되기를 바라기는 했지만 그렇다고 염장질까지 기꺼이 받아 줄 의사는 없었다.
데미안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형님, 어딜 가십니까?”
“밖에 있으려고. 두 사람끼리 재미있게 놀아라.”
데미안은 창문을 열고 마차의 지붕으로 올라갔다. 마부석에 있던 빅터가 어리둥절한 얼굴로 물었다.
“도련님? 불편한 일이라도 있으십니까요?”
“아니, 없다. 마차나 잘 몰아라.”
데미안은 마차 지붕에 앉은 채 아공간을 열었다.
아공간에 손을 넣어서 어떤 물건을 꺼냈다. 바로 마상시합의 우승상품으로 받은 정령의 심장이었다.
상황이 복잡하게 돌아가는 바람에 수상식은 열리지 않았다.
하지만 백작이 약속했다시피 마상시합의 우승자는 데미안 학센이었다.
그 때문에 데미안은 백작에게서 상품을 받아왔다.
“이걸 흡수하는 것도 일이란 말이지.”
정령의 심장은 단단히 응어리진 돌덩이라고 생각하면 편했다.
이 돌덩어리를 녹이지 않으면 흡수할 수 없었다.
지금부터 데미안은 자신의 마력으로 정령의 심장을 자극해서 정령력을 녹여야 했다.
데미안 정도의 능력으로도 쉽지 않은 작업이었다. 대신, 보상은 확실했다.
정령력을 흡수할 수만 있으면 마력은 물론이고 정령의 힘까지 얻을 수 있을 테니 말이다.
‘정령의 힘이라…….’
정령은 굉장히 강대한 생명체였다. 그들이 가진 능력은 셀 수 없을 정도로 많았다.
‘엘프 중에는 정령의 심장을 흡수해서 정령의 특성을 얻은 이가 많았지.’
바람 정령의 심장을 흡수함으로써 초감각을 손에 넣은 엘프도 있었고, 땅 정령의 심장을 흡수함으로써 오러도 막아 내는 견고한 피부를 얻은 엘프도 있었다.
정령의 심장을 흡수한 이들은 단 한 명도 예외없이 미들클래스를 능가하는 강자가 되었다.
‘불의 정령이 남긴 심장을 흡수하면 무슨 특성을 얻더라?’
정령의 심장의 숨은 능력을 알고 있었던 데미안이 놀랐던 또 다른 이유가 여기에 있었다.
불 정령의 능력이 담긴 심장은 그중에서도 희귀하기로 유명했다. 더구나 불 정령의 능력을 얻은 엘프는 한 번도 보지 못했던 것.
그래서 데미안도 예상되지 않았다.
‘일단 흡수하고 볼 일이지.’
데미안은 마차가 이동하는 내내 정령의 심장에 마력을 불어넣었다.
그날 밤.
자크 누아레가 데미안을 습격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