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turn of the Calamity-Class Death Knight RAW novel - Chapter (55)
멸망급 데스나이트가 회귀함 55화
55화 자크 누아레 (1)
해가 질 무렵, 데미안은 마차를 멈추고 야영을 준비했다.
“다들 와서 식사하시지 말입니다.”
저녁 식사는 빅터가 준비했다.
일행은 빅터가 만든 음식으로 배를 채운 뒤, 잠자리에 들었다.
만일을 대비하여 올리비아는 마차 안에서 재우고, 나머지 세 명은 밖에서 침낭을 깔고 누웠다.
그렇게 밤이 깊어졌을 때였다.
검은 그림자가 야영장에 다가왔다. 발걸음 소리조차 나지 않을 정도로 은밀한 움직임이었다.
야영장의 어느 누구도 괴한의 접근을 알아차리지 못했다. 단잠에 빠져 있을 뿐이었다.
괴한은 천천히 단검을 빼들었다. 새하얀 칼날이 달빛에 섬뜩하게 빛났다.
괴한은 칼을 휘두르기 전에 야영장에 누워 있는 사람들을 한 명씩 세었다.
마차에 한 명, 밖에 두 명.
……두 명?
“기다리느라 심심해 죽는 줄 알았다.”
위에서 목소리가 들려왔다. 괴한은 재빨리 위를 올려다봤다.
마차 위에 누군가가 앉아 있었다.
“자크 누아레, 그렇게 날 죽이고 싶었나?”
밤하늘을 배경 삼아 데미안 학센이 조소를 지었다.
* * *
“내가 온다는 것을 어떻게 알고 있었지?”
자크 누아레가 평탄한 어조로 말했다. 허를 찔렸음에도 딱히 놀란 것 같지 않았다.
“남의 비밀을 그렇게 쉽게 알려고 하면 쓰나.”
“영리하군. 남에게 자신을 드러내서 좋을 건 없지.”
자크 누아레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그 모습에 데미안은 의아함을 느꼈다.
“이상하네. 내 얼굴을 보자마자 화를 내면서 날뛸 줄 알았는데.”
“내가 어째서 너한테 화를 내야 하는 거지?”
되돌아오는 질문에 데미안은 이상하다는 듯이 대답했다.
“나 때문에 교단에 쫓기게 됐잖아.”
“아, 그거 말인가. 네 말대로 화가 나기는 했지만 잊기로 했다. 교단에게 수배를 당한 건 귀찮지만 얼굴을 바꾸고, 대륙 외곽지역으로 도망치면 될 일이니까.”
데미안의 미간이 살짝 좁아졌다.
자신의 이름과 신분을 이렇게 쉽게 버리겠다고 말하다니.
호흡과 말투로 보아서 거짓말은 아니었다. 자크 누아레는 진심으로 말하고 있었다.
처음 봤을 때부터 느껴지던 위화감의 정체를 이제 알 것 같았다.
자크 누아레는 인간으로서 어딘가 결락되어 있는 인간이었다.
“그럼 날 왜 쫓아온 거지?”
“네가 가지고 있는 기연을 얻기 위해서다.”
“……기연?”
데미안이 미간이 더더욱 좁아졌다. 생뚱맞은 소리를 들은 탓이었다.
“숨겨도 소용없다. 너는 틀림없이 마스터 클래스가 남긴 물건을 손에 넣었을 거다. 그 물건에 담겨 있는 기억과 지식을 통해서 이토록 강해진 것이겠지.”
“그런 적 없는데?”
데미안이 무슨 개소리냐는 얼굴로 말했다.
“거짓말해도 소용없다. 기연이 아니라면 네놈의 급격한 실력 향상을 어떻게 설명할 생각이냐?”
“내가 좀 천재거든.”
두 사람 사이에 잠시 침묵이 흘렀다.
자크 누아레는 짧게 혀를 찼다.
“이토록 철저하게 빈틈을 숨기다니. 영리하군. 너무 영리해서 슬슬 짜증이 날 정도야.”
“아니, 진짜라니까?”
“원래는 기연을 넘겨받는 조건으로 널 살려 줄까 했지만…… 네가 이렇게 나온다면 어쩔 수 없지. 널 죽이고 기연을 가져가겠다.”
자크 누아레가 단검을 버렸다. 그리고 허리에 매달고 있던 검을 천천히 뽑았다.
평범한 검과 달리 칼날이 물결처럼 구불구불했다.
“보물은 자격이 있는 사람의 손에 들어와야 하는 법이다.”
자크 누아레가 칼날을 한 바퀴 회전시켰다. 기이한 소리와 함께 칼날의 잔상이 남았다가 사라졌다.
“그러니 얌전히 기연을 내놓아라.”
데미안은 비웃음을 머금으며 천리검을 쥐었다.
“지랄하네.”
* * *
데미안과 자크 누아레는 거의 동시에 돌진했다.
두 개의 검이 허공에서 충돌했다. 양쪽 다 한 치의 물러남도 없었다.
두 사람은 거의 동시에 뒤로 물러났다. 거리를 벌리자마자 자크 누아레가 다시 앞으로 튀어 나갔다.
데미안의 얼굴을 노리고 칼을 찔러넣었다.
데미안은 예상했던 듯, 손쉽게 칼을 쳐 내며 상대의 목을 노렸다.
그러나 자크 누아레 역시 데미안의 공격을 매끄럽게 흘려 냈다.
두 사람의 검이 충돌할 때마다 굉음과 함께 주변의 나무들이 흔들렸다.
‘최상위 미들클래스답군. 힘의 낭비가 없어.’
일전에 싸웠던 유란의 대장은 미들클래스급 흑마법사였다. 주먹을 휘두를 때마다 지진이 일어나고 지형이 박살 났다.
겉보기에 자크 누아레의 공격은 그 흑마법사에 비해서 부족했다. 하지만 실제로는 전혀 그렇지 않았다.
자크 누아레는 마음만 먹으면 그보다 더한 파괴력을 끌어낼 수 있었다. 하지만 그 힘을 모두 칼에 응축시키고 있었다.
그 증거가 바로 자크 누아레의 검이 주변에 이따금씩 남기고 있는 흔적이었다.
칼날이 나무 기둥에 스칠 때마다 나무 전체가 통으로 잘려 나갔다. 잘려 나간 단면은 거울로 쓸 수 있을 정도로 매끈했다.
오러를 일으키지 않았음에도 이 정도의 절삭력을 발휘하고 있는 것이다.
‘애들한테 미리 흑마법을 걸어놓길 잘했어.’
데미안은 바닥에 누워 있는 일행을 살피며 생각했다.
이런 소란 속에서도 일행은 단잠에 빠져 있었다. 깊은 잠에 빠지게 만드는 흑마법 덕분이었다.
데미안은 귀찮은 일을 피하기 위해서 당분간 자신의 경지를 숨길 생각이었다.
그렇기에 일행에게 자크 누아레와 싸우는 모습을 보여 주고 싶지 않았다.
‘장소를 옮겨야겠어.’
이곳에서 계속 싸웠다가는 일행이 휘말릴 가능성이 높았다.
데미안은 자크 누아레의 검을 쳐 내며 옆으로 내달렸다.
“어딜 가는 거지?”
자크 누아레가 데미안을 뒤쫓았다. 두 사람은 숲길을 질주하며 칼을 휘둘렀다.
한 호흡에 수십 번도 넘는 공방이 오고 갔다. 공기를 가르는 소리가 끊임없이 들려왔다.
‘굉장히 음습한 검이로군.’
데미안은 전투가 시작된 이후로 줄곧 자크 누아레의 검술을 분석했다.
정면에서 상대방의 기술을 파훼함으로서 승리를 거두는 정직한 검술이 아니었다.
상대방의 급소를 노리고, 약점을 집요하게 물고 늘어지는 검술이었다.
그리고 이는 단순히 자크 누아레의 성향 때문이 아니었다.
자크 누아레가 익히고 있는 검술이 담고 있는 요체 때문이었다.
‘음?’
자크 누아레의 마력이 크게 변동하는 것이 느껴졌다. 무언가 기술을 준비하고 있다는 증거였다.
“제법이군. 하지만 이제 끝이다.”
자크 누아레가 일직선으로 검을 내리쳤다.
검에 담긴 힘과 마력은 무지막지했으나 동작이 커 어렵지 않게 막을 수 있을 듯했다.
하지만 데미안은 검을 막지 않았다. 오히려 자신의 머리를 베도록 내버려 뒀다.
자크 누아레의 검이 데미안의 머리에 닿자, 놀랍게도 허상이 되어서 사라졌다.
그 직후, 데미안의 목을 노리고 참격이 들이닥쳤다.
데미안은 이미 첫 번째 공격이 속임수고 두 번째 공격이 진짜인 걸 눈치 채고 있었다.
데미안은 칼날을 세워서 공격을 막았다. 강맹한 힘에 몸이 뒤로 쭉 밀려 나갔다.
자크 누아레는 공격을 멈추고 거리를 벌렸다. 놀랍다는 얼굴로 말했다.
“……믿어지지 않는군. 로우클래스 따위가 내 공격을 이렇게까지 받아치다니.”
미들클래스는 로우클래스와 차원이 다르다.
신체 능력은 물론이고 마력량까지 압도적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하지만 두 경지를 가르는 결정적인 차이는 그런 것들이 아니었다.
바로 기술의 깊이였다.
깨달음을 얻은 미들클래스의 기술은 로우클래스보다 훨씬 심오했다.
일반적인 경우, 로우클래스가 미들클래스와 이렇게 오랫동안 공방을 나누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그것도 모자라서 절기까지 간파를 할 줄이야.”
방금 전에 자크 누아레가 보여 줬던 환영은 평범한 기술이 아니었다.
자크 누아레가 익히고 있는 검술의 절기에 속한 기술이었다.
환검.
마력을 이용해 허상을 만들어 내서 상대방의 허를 찌르는 검술의 종류였다.
더불어 검술 중에서 가장 익히기 까다롭고, 활용하기도 어려웠다.
“말했잖아. 천재라고.”
데미안은 칼등으로 어깨를 톡톡 두드리며 말했다.
전투 도중에 자크 누아레의 자세와 마력의 흐름을 보고 일찌감치 환검이라는 것을 간파했다.
간파했다면 막는 것은 쉬웠다. 눈이 아니라 다른 감각에 의지하면 될 일이니까.
“이봐?”
자크 누아레가 아무 말도 하지 않자 데미안이 의아한 얼굴로 되물었다.
“……이제 알겠다.”
한참 고민하던 자크 누아레가 고개를 천천히 끄덕였다.
“기연을 통해서 얻은 지식이 그만큼 대단했던 거야. 경지는 로우클래스지만 기술적으로는 미들클래스에 도달한 것이지.”
“아직도 그 타령이냐?”
“필경 대단한 기연을 얻었겠지. 대체 어떤 기연일지 기대가 되는구나.”
자크 누아레의 얼굴에 미소가 떠올랐다. 석상이 억지로 웃는 것 같아서 기분이 나빴다.
“이렇게 들뜬 적은 오랜만이다. 어서 네가 얻은 기연을 보고 싶구나.”
자크 누아레가 마력을 일으켰다. 그가 쥐고 있는 검신에 오러가 덧씌워지기 시작했다.
“로우클래스와 미들클래스를 나누는 결정적인 차이가 뭔지 알고 있나?”
로우클래스의 오러는 아지랑이와 비슷했다.
미들클래스의 오러는 그보다 훨씬 짙었다. 꼭 연기를 두르고 있는 것 같았다.
“바로 오러의 의념화다. 오러를 발현하는 것을 넘어서 오러를 변형시키는 경지. 그게 바로 미들클래스지.”
자크 누아레가 걸음을 옮겼다.
그가 지나간 자리에 수많은 잔상이 남았다. 놀랍게도 잔상들은 남아 있는 것에서 멈추지 않았다.
제각기 다른 방향으로 달려 나갔다. 어떤 것은 왼쪽으로, 다른 것은 오른쪽으로, 하늘로 뛰어오르기도 했다.
튀어 나간 잔상은 어느 정도 이동하다가 공기 중으로 흩어져서 사라졌다.
자크 누아레가 데미안의 주위를 맴돌았다.
수십 개의 잔상은 데미안 학센을 포위하여 빠져나갈 구멍이 전혀 보이지 않았다.
“너에게 내 의념을 보여 주마.”
잔상 중 하나가 데미안을 향해 돌진했다.
데미안은 눈에 의지하지 않았다. 다른 감각을 끌어올려서 판단했다.
활성화된 감각들이 말했다. 허상이 아니라 진짜라고 말이다.
데미안은 칼을 들어서 진짜를 막아 냈다. 묵직한 충격이 들이닥쳤다.
그러나 진짜인 줄 알았던 자크 누아레는 그대로 흩어졌다.
“음?”
데미안이 놀랄 틈도 없이 이번에는 뒤에서 또 다른 잔상이 돌진했다.
이번에도 그의 감각이 진짜라고 말해 줬다.
데미안은 몸을 돌리며 목을 베었다. 하지만 이번에도 환상이었다.
“……오?”
데미안은 신기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이렇게 자신의 감각을 감쪽 같이 속일 줄은 몰랐다.
전생에 상대했던 기사 중에 환검사가 없었던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이렇게 특이한 환검은 본 적이 없었다.
“대단하지 않느냐? 이 검법은 내가 평생에 걸쳐서 복원한 것이다.”
잔상들 틈에서 자크 누아레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잔상들은 끊임없이 움직이며 데미안의 눈을 현혹시켰다.
“이것들은 모두 가짜이되 진짜. 너의 감각으로는 무엇이 진짜인지 알 수 없을 것이다.”
잔상들이 일제히 데미안을 향해 칼날을 겨누었다.
“이게 마지막이다.”
수십 개의 잔상이 동시에 데미안 학센에게 달려들었다.
그 광경을 보며 데미안은 실소를 흘렸다.
“재미있기는 한데 별거 아니로군.”
환검을 처음 본 사람들은 압도될 수밖에 없다. 환상을 실체로 만드는 신묘한 기술에 현혹이 되는 것이다.
하지만 실제로 환검은 그리 대단한 검이 아니었다. 강검에 비해서 파괴력이 부족했고, 쾌검에 비해서 느렸다.
허를 찌르는 공격.
그것만을 주력으로 삼는 검법이 바로 환검이었다.
마침 데미안에게는 환검을 파훼할 수 있는 아주 좋은 기술이 있었다.
“그 검법에 굉장한 자부심을 가지고 있는 모양인데.”
데미안이 손바닥으로 천리검을 쓸었다. 천리검이 진동하며 검명을 토해 내기 시작했다.
“그 환상을 깨 주지.”
데미안이 손가락으로 천리검을 튕겼다.
악검 – 살벌지성(殺伐之聲)
귀가 찢어질 듯한 검명이 공간을 집어삼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