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turn of the Calamity-Class Death Knight RAW novel - Chapter (56)
멸망급 데스나이트가 회귀함 56화
56화 자크 누아레 (2)
“재미있기는 한데 별거 아니로군.”
데미안의 말을 들었을 때, 자크 누아레는 미약한 분노를 느꼈다.
그가 사용하고 있는 검술은 로우클래스 따위가 얕잡아볼 수 없는 고등한 검술이었다.
위진포영검(僞眞泡影.劍).
백 년 전에 활약했던 소드마스터 신기루(蜃氣樓)가 주력으로 삼았던 검법.
신기루는 당대에 굉장히 유명한 소드마스터였다. 마스터가 산더미처럼 쌓여 있다는 제국에서도 경계할 정도로 말이다.
위진포영검의 검법서를 손에 넣었을 때, 자크 누아레는 기뻐서 이성을 잃어버릴 정도였다.
하지만 기쁨은 오래가지 않았다. 위진포영검은 대부분 유실된 상태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자크 누아레는 위진포영검을 포기할 수 없었다. 그만큼 신기루라는 존재가 가진 이름값은 어마어마했다.
자크 누아레는 완벽하게 복원된 위진포영검을 익히면 자신 역시 마스터의 경지에 오를 수 있으리라 생각했다.
그래서 평생에 걸쳐서 위진포영검에 매달렸다.
자크 누아레가 각고의 노력을 기울여 이뤄 낸 복원율은 겨우 30% 남짓, 하지만 그것만으로도 진짜 같은 허상을 만들어 낼 수 있었다.
“그 검법에 굉장한 자부심을 가지고 있는 모양인데.”
그렇기에 데미안 학센의 말 한마디 한마디가 거슬릴 수밖에 없었다.
위진포영검은 자크 누아레의 모든 것이자, 자신을 마스터의 경지로 이끌어 줄 인도자였다.
“그 환상을 깨 주지.”
데미안 학센이 들고 있던 검이 검명을 토해 내기 시작했다.
그 모습을 본 자크 누아레는 불길함을 느꼈다.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검명을 증폭시키는 검법은 본 적이 없었다.
데미안 학센이 검신을 손가락으로 튕겼다. 그 직후, 검명이 사방으로 퍼져 나갔다.
소리의 폭풍이 주변을 휩쓸었다. 데미안 학센을 향해 돌진하던 잔상들이 먼지가 되어 사라졌다.
아니, 돌진하는 잔상들 뿐만이 아니었다. 자크 누아레가 만들어 놓은 모든 잔상이 깨끗하게 사라지고 자크 누아레 혼자만 남게 되었다.
“…….”
예기치 못한 장면에 자크 누아레는 머릿속이 텅 비어버렸다.
위진포영검으로 만든 환영은 이렇게 쉽게 지워지지 않는다.
검으로 베거나 찔러도 사라지지 않는다. 일반인이나 로우클래스로선 도달할 수도 없는 일정량 이상의 충격이 축적되어야만 소멸이 가능했다.
괜히 마스터가 주력으로 사용했던 검법이 아닌 것이다.
그런데 겨우 소리 따위에 잔상이 모두 지워지다니?
“이게 환검의 아주 큰 단점이지. 장점만큼이나 약점이 명확하거든.”
데미안 학센이 검을 고쳐잡았다. 자크 누아레의 본능이 경보를 울렸다.
“이제 내 차례지?”
데미안 학센이 자크 누아레를 향해 달려들었다.
그 모습에 자크 누아레는 정신을 차렸다. 아직 전투는 끝나지 않았다.
“……기껏해야 잔상을 지운 주제에 기고만장해하지 마라!”
로우클래스 따위가 미들클래스에게 선공을 시작하다니.
가당치 않은 일이었다. 자크 누아레는 분노를 느꼈다.
두 사람이 서로를 향해 검을 휘둘렀다.
수십 개의 궤적이 서로 부딪혔다가 사라졌다. 쇠가 부딪히는 소리가 연달아 울려 퍼졌다.
“데미안 학센! 이제부터 정신 똑바로 차리는 게 좋을 것이다! 너에게 환검의 진수를 보여 주마!”
자크 누아레가 데미안 학센을 향해 검을 뻗었다. 동시에 두 개의 잔상을 만들어 냈다.
세 명의 자크 누아레가 동시에 칼을 내질렀다. 세 개의 검이 각각 다른 급소를 노렸다.
그 순간, 데미안 학센이 손바닥으로 검신을 쓸었다. 검명이 울려 퍼졌다.
검명이 잔상을 지웠다. 진짜 자크 누아레만 노출이 되었다.
“뭣?”
방금 전과 비교했을 때 터무니없이 작은 검명이었다. 그것만으로 잔상이 사라졌다.
자크 누아레가 당황한 찰나, 데미안이 칼을 휘둘렀다. 뺨에 길게 상처가 났다.
로우클래스 따위에게 상처를 허용했다.
고통을 느끼기도 전에 짙은 굴욕감이 자크 누아레의 전신에 퍼져 나갔다. 자크 누아레의 눈동자에 살기가 폭발했다.
“주제 넘게 굴지 마라!”
자크 누아레가 마력을 움직여서 환영을 만들어 냈다.
하지만 마력은 환영을 만들기도 전에 흩어져서 사라졌다. 몇 번을 시도해도 마찬가지였다.
환검의 사용자가 환상을 만들어 낼 수 없는 상황.
당혹스러워하는 자크 누아레에게 데미안이 말했다.
“미들클래스라는 양반이 그렇게 상황 파악을 못 하면 어쩌나.”
그 말을 듣고 나서야 자크 누아레는 깨달았다. 어째서 환영이 막혔는지.
데미안 학센의 검 때문이었다.
저 빌어먹을 검이 내뿜고 있는 검명이 마력의 응집을 방해하고, 환영을 만들어 내지 못하게 막고 있는 것이다.
“이, 이 무슨……!”
위진포영검이 저렇게 단순한 수법에 막히다니.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있어서는 안 되는 일이었다.
“슬슬 끝을 보자.”
별안간 데미안 학센의 속도가 더 빨라졌다. 궤적의 숫자가 더욱 늘어났다.
“마, 말도 안 되는…….”
말을 할 틈도 없었다. 자크 누아레는 필사적으로 데미안 학센의 검을 쳐 냈다.
“어? 그러다 팔 짤린다.”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팔뚝이 화끈거렸다. 데미안 학센의 검이 스치고 지나간 것이다.
“정신 똑바로 차려. 그러다 손목 날아간다.”
이번에는 손목이 베였다. 깊지 않았다. 피부만 살짝 베인 정도였다.
“위만 신경 쓰면 어떻게 해. 아래도 봐야지.”
바지와 허벅지가 동시에 갈라졌다. 이번에도 역시 피부만 베였다.
자크 누아레의 눈동자가 크게 흔들렸다.
미들클래스인 자신이 로우클래스에게 밀리고 있었다. 아니, 이건 밀린다고 말하기도 부끄러웠다.
장난감처럼 농락당하고 있었다.
“이 검이…… 어떤 검법인 줄 아느냐! 너 따위가 어쩔 수 있는 검이 아니야!”
자크 누아레가 절규했다. 그 모습에 데미안 학센이 실소를 흘렸다.
“별것도 아닌 검법을 가지고 되게 시끄럽게 구는군.”
“별것? 멍청한 소리하지…… 컥!”
데미안 학센이 자크 누아레를 걷어찼다. 자크 누아레의 몸이 뒤로 날아갔다.
영 좋지 못한 곳을 얻어맞았다. 자크 누아레는 검을 땅에 꽂은 채 기침을 했다.
“네, 네놈…….”
자크 누아레는 데미안 학센을 노려봤다. 데미안 학센은 멀리 떨어진 곳에 서 있었다.
“널 죽이기 전에 재미있는 걸 보여 주마.”
데미안 학센이 걸음을 내딛었다. 그러자 그가 있던 자리에 잔상이 하나 남았다.
데미안 학센이 걸음을 옮길 때마다 잔상은 하나씩 늘어났다.
수십 개가 넘는 잔상이 땅 위에 남았다.
“너, 너…….”
자크 누아레가 떨리는 손가락으로 데미안 학센을 쳐다봤다.
“어, 어떻게…… 위, 위친포영검을…….”
“보고 배웠지.”
“마, 말도 안 되는 소리를…….”
“참고로 이런 것도 할 수 있다.”
데미안이 손가락을 튕겼다.
별안간 잔상들이 서로를 향해 칼을 휘둘렀다. 칼에 베인 잔상들이 소멸했다.
그 광경을 본 자크 누아레의 입이 쩍 벌어졌다.
자크 누아레는 저렇게 잔상을 정교하게 움직일 수 없었다.
기껏해야 동작 하나를 지시하는 게 고작이었다. 각기 다른 명령을 내리는 것은 꿈도 꿀 수 없었다.
“자크 누아레, 정신 차려라. 이 검법은 그리 대단한 게 아니야.”
데미안의 말에 자크 누아레는 천천히 시선을 옮겼다.
“아, 정확히 말하면 꽤 괜찮은 검법인데. 망가져 있어. 이상한 일이지. 기술의 원리는 상당히 수준이 높은데. 정작 그 원리를 이용해서 사용하는 기술들은 형편이 없으니.”
데미안 학센의 말이 이어졌다.
“아마 원본이 되는 검법이 따로 있었겠지. 그걸 네가 멋대로 뜯어고쳤을 거야. 개악(改惡)을 한 셈이지. 멀쩡한 검술을 일부러 망가트렸을 리는 없으니 복원을 하려다 실패했을 수도 있겠군.”
데미안 학센은 단순히 검법을 따라한 정도에서 멈추지 않았다.
모든 것을 속속들이 들여다보고 있었다.
“원리를 파악하면 기술을 만들어 내는 건 쉽지. 아마 원본이 되는 검법은 이런 형태였을 거다.”
데미안 학센의 앞에 잔상이 나타났다.
잔상이 앞으로 걸어 나갔다. 이윽고 잔상은 분열하기 시작했다.
한 명이 두 명으로, 두 명이 네 명으로, 네 명이 여덟 명으로.
어느새 온 세상이 잔상으로 가득 들어찼다.
“……!”
자크 누아레가 복원한 위진포영검은 사용자가 머문 자리에만 환영을 만들어 낼 수 있었다.
그렇기 때문에 자크 누아레는 끊임없이 움직였다. 잔상을 남기기 위해서였다.
하지만 데미안 학센은 가만히 있는 상태에서 환영을 만들어 냈다. 그것도 자크 누아레가 만들 수 있는 개체의 몇 배가 넘는 숫자를 말이다.
이쯤 되면 잔상이 아니었다.
분신이라고 말해야 옳았다.
“위진포영검이라고 했나? 이 검의 원본은 아마 이런 것일 테지.”
자크 누아레는 위진포영검을 복원하기 위해서 신기루에 관련된 일화를 모두 수집했다.
그중에는 신기루라는 마스터가 한 명이 아니라 수십 명이 아니냐는 말들이 많았다.
신기루가 만들어 낸 환영들이 꼭 실제처럼 움직였기 때문이다.
자크 누아레는 그 증언을 실현시키기 위해서 부단히 노력했다.
하지만 자크 누아레는 분신이 아니라 잔상밖에 만들지 못했다.
자크 누아레가 평생에 걸쳐도 복원하지 못했던 것을 데미안 학센은 단 몇 분 만에 완벽하게 복원해 냈다.
“대…… 대체 어떻게…… 위진포영검을…… 복원…… 복원해 낸 것이냐!”
“그냥.”
데미안이 대수롭지 않게 말했다.
“그냥 하니까 되던데.”
그 한마디에 자크 누아레의 눈동자가 어둡게 물들었다.
* * *
어린 시절, 자크 누아레는 자신이 천재인 줄 알았다.
같이 훈련을 받던 동기들은 모두 자신보다 한참 약했다. 남들보다 몇 년은 빨리 로우클래스의 경지에 올랐다.
그러니 착각할 수밖에 없었다. 자신은 ‘천재’라고 말이다.
그 착각이 깨지게 된 것은 로우클래스의 경지에 오른 직후였다.
자신과 마찬가지로 천재라고 불리던 기사와의 결투에서 일격에 패배한 것이다.
처음 겪은 패배.
처음 겪는 당혹감.
처음 겪는 울분.
수많은 감정이 얽혔다. 자크 누아레는 패배를 인정하지 못하고 다시 결투를 청했다.
결과는 더욱 처참했다. 그나마 검을 한 번이라도 휘둘렀던 처음과 달리 이번에는 검조차 휘두르지 못하고 패배했다.
어떻게 자신을 이토록 쉽게 이겼냐는 물음에 그 천재는 이렇게 대답했다.
-그냥.
-그냥 하니까 됐어.
그 한마디가 자크 누아레의 착각을 깨부쉈다.
자크 누아레는 천재가 아니었다. 그저 남들보다 조금 뛰어났을 뿐.
그날 이후, 자크 누아레는 미친 듯이 검에 매달렸다. 모든 쾌락을 내다 버리고 훈련에만 집중했다.
그리하기를 십수 년, 자크 누아레는 미들클래스의 경지에 올랐다.
그리고 ‘진짜’ 천재들은 하이클래스의 경지에 올랐다.
노력 따위로는 좁힐 수 없는 격차에 자크 누아레는 절망했다.
그때부터였을 것이다. 자크 누아레가 비약과 마스터들의 기술에 집착하기 시작한 것은.
감각을 향상시켜 주는 최상급 비약을 섭취하면 부족한 재능을 채울 수 있으리라 생각했다.
마스터들이 남긴 지식을 통해서 자신은 깨닫지 못한 지식을 얻을 수 있으리라 기대했다.
그렇게 또 십수 년.
자크 누아레는 여전히 미들클래스였다.
남들이라면 포기했으리라, 자신의 부족함을 인정하고 안주했으리라.
하지만 자크 누아레는 포기하지 않았다. 반드시 ‘진짜’ 천재들을 뛰어넘고자 했다.
그런데 오늘 똑같은 말을 들었다.
“그냥 하니까 되던데.”
오랜 세월 동안 겹겹이 쌓여 왔던 감정에 불이 붙었다.
감정은 썩은 기름이나 다름없었다. 불길은 감정을 집어삼키고 거세게 타올랐다.
자크 누아레조차 감당할 수 없을 만큼 커다란 분노가 휘몰아쳤다.
“지금…… 그냥이라고 했나?”
검자루를 쥐고 있는 손에 저절로 힘이 들어갔다.
“그래! 그냥 하니까 됐겠지! 그냥! 그냥! 그 빌어먹을 놈의 그냥!”
저절로 이가 갈렸다. 혈관에 피가 몰려서 금방이라도 터질 것 같았다.
천재들은 항상 그랬다.
자신이 필사적으로 노력한 것들을 아무렇지도 않게 따라잡았다.
그리고 항상 ‘그냥’이라는 말도 안 되는 소리를 내뱉었다.
“기연이 아니었어! 천재, 천재였구나! 데미안 학센! 너도 천재였어!”
자크 누아레가 간헐적으로 웃기 시작했다. 웃음소리에서 광기가 묻어나왔다.
“아니, 그냥 천재가 아니지! 내가 본 어떤 천재도 너처럼 할 수 없었어!
자크 누아레가 겪어 본 그 어떤 천재도 데미안 학센처럼 타인의 검술을 훔치지는 못했다.
그런데 데미안 학센은 검술을 훔쳤을 뿐만 아니라, 완벽하게 다루고, 바로 복원해내기까지 했다.
“됐다. 다 필요 없다. 내 모든 것을 버려서라도 널 죽여 버리겠다!”
마스터가 될 수 없는 인생이라면 다른 것에서 의미를 찾겠다.
지금 이 순간, 자크 누아레는 데미안 학센이라는 희대의 천재가 꽃을 피우기 전에 짓밟아 버리는 것에서 의미를 찾기로 결정했다.
자크 누아레가 가지고 있는 마스터클래스의 기술은 위진포영검만 있는 게 아니었다.
자크 누아레가 손가락으로 자신의 몸 곳곳을 찔렀다.
마력이 흐르는 혈도를 자극했다.
자극된 혈도는 마력을 폭주시켰다. 폭주한 마력은 자크 누아레의 잠력을 끌어냈다.
벌성지광약(伐性之狂藥).
한때 전쟁의 화신이라 불렸던 마스터가 최후의 자신의 몸을 불살랐던 비기.
수준만 놓고 보자면 위진포영검보다 훨씬 더 높지만 목숨을 버려야 하기에 함부로 쓸 수 없는 기술.
동귀어진의 수법이 발현되었다.
온몸의 근육이 팽창했다. 마력이 흉포하게 날뛰었다.
자크 누아레가 검을 들어 올렸다. 거칠게 요동치는 마력이 새빨간 오러를 만들어 냈다.
“죽어라!”
자크 누아레가 검을 내리쳤다. 거대한 참격이 데미안 학센의 몸을 반으로 갈랐다.
“……?”
그런데 뭔가 이상했다. 반으로 나뉘었음에도 피가 나오지 않았다. 잘린 단면이 허여멀건했다.
“설마……?”
반으로 나뉜 데미안의 몸이 허상이 되어 사라졌다.
위진포영검의 기술을 사용해서 자신의 눈을 속인 것이다.
자신의 기술에 자신이 당한 상황.
자크 누아레의 눈동자가 혈관이 도드라졌다. 흰자위가 새빨갛게 물들었다.
“데미안 학센! 이 찢어 죽일…….”
그 순간, 뒤에서 튀어나온 검이 자크 누아레의 목을 베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