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turn of the Calamity-Class Death Knight RAW novel - Chapter (60)
멸망급 데스나이트가 회귀함 60화
60화 토벌대 (1)
신성교단이라는 이름을 들었을 때, 사람들이 가장 먼저 떠올리는 것은 딱 세 가지였다.
광신, 신성력, 그리고 무구.
교단은 인간만을 위한 종교가 아니었다. 다른 이종족들도 신앙심만 있다면 교인으로 받아들였다.
교단에 가장 먼저 입교한 이종족은 드워프였다.
드워프는 대장장이 신의 후손이라 불릴 만큼 손재주가 뛰어난 이종족이었다.
교단에 입교한 드워프는 자신들의 기술과 지식을 아낌없이 풀어놓았다. 덕분에 교단의 단조술은 급격하게 발전했다.
병사들에게 지급되는 무구들도 품질이 굉장히 뛰어났다.
성기사를 위해 특별히 제작되는 무구는 명품이라는 칭찬이 부족할 정도였다.
이렇듯 명성이 높은 신성교단의 무구들 중에서도 더욱 특별한 것이 있었다.
성검(聖劍).
드워프의 비전과 수많은 레어메탈 그리고 성직자들이 몇 년 동안 신성력을 불어넣음으로써 완성되는 무기.
성검은 복잡한 제작 과정만큼이나 대단한 능력을 발휘했다.
“……이게 진짜 성검이란 말입니까?”
데미안조차 어린애처럼 가슴이 뛸 정도였다. 성검은 그 정도로 엄청난 물건이었다.
“내가 뭐 하러 거짓말을 하겠어? 아, 물론 상등품은 아니야. 따지자면 하등품이지.”
성기사도 아닌 데미안에게 높은 등급의 성검을 줄 리가 없었다.
그렇다고 섭섭하게 생각할 필요는 없었다. 하품의 성검이라 할지라도 명검 중의 명검이니까.
데미안은 천을 풀었다. 그러자 목재 검집에 수납되어 있는 성검이 보였다.
특별한 장식은 없었다. 폼멜은 둥글었으며, 크로스 가드 일자형이라 밋밋했다.
그러나 성검을 뽑는 순간, 수수하다는 생각은 머릿속에서 말끔하게 사라졌다.
육각형의 칼날은 마치 은을 녹여서 만든 것처럼 매끄러운 광택을 내뿜고 있었다.
중심이 절묘하게 잡혀 있어서 꼭 한 몸인 것처럼 편안했다.
무엇보다 놀라운 것은 검자루를 통해서 전달되고 있는 신성력이었다.
몸에 스며든 신성력은 훈련의 피로를 씻은 듯이 날려 줬다.
성검이라는 이름에 걸맞게 이 검은 스스로 신성력을 발산하고 있었다.
“……굉장하군요.”
데미안은 진심을 담아서 말했다.
데미안은 데스나이트 시절에 교단의 오대성인들과 싸우면서 최상급 성검들을 직접 본 적이 있었다.
가볍게 휘두르기만 해도 수만 마리의 언데드가 소멸하는 등, 신이 강림한 게 아닐까 싶을 정도로 무시무시한 무기들이었다.
그런 물건에 비하면 데미안이 받은 성검이 가진 힘은 티끌에 불과했다.
하지만 어디까지나 그런 성검들과 비교했을 때 이야기였다.
이만한 명검은 이 세상 어디에서도 구할 수 없었다.
데미안이 주무기로 사용 중인 천리검조차 이 성검에 비하면 장난감에 불과했다.
“아그네스한테 고마워해야 한다? 원래 본단에서는 성검을 내줄 생각이 전혀 없었는데. 저 녀석이 박박 우겨서 받아 낸 거거든.”
“사저, 괜한 소리는 하지 마십시오.”
“야, 원래 잘한 일은 동네방네 떠들어야 하는 법이야. 아니면 아무도 몰라준다?”
아그네스가 무서운 눈초리로 마르가타를 노려봤다. 그제야 마르가타는 알겠다며 물러났다.
“아그네스 경, 감사드립니다.”
데미안이 진심을 담아서 말했다. 이에 아그네스는 헛기침을 하며 답했다.
“원래 성갑도 받아 오고 싶었는데. 본단에서 그건 절대 안 된다고 못을 박아서…….”
성갑이라는 말에 데미안은 질겁했다.
성갑도 성검처럼 복잡한 과정을 통해서 탄생하는 교단의 보물이었다.
실력과 신앙심을 인정받은 극소수의 성기사들만이 성갑을 지급받을 수 있었다.
그런 걸 받았다가는 성기사가 되어야 한다고 강요받게 될지도 몰랐다.
“성갑까지는 필요 없습니다.”
“부담스러워하실 필요 없습니다. 제가 반드시 데미안 경에게 성갑을…….”
“정말 필요 없습니다.”
데미안의 단호한 거절에 아그네스의 어깨가 살짝 내려갔다.
***
“시체놀음의 던전은 남부의 노프리 산맥에서 있어.”
마차를 타고 이동하는 동안 마르가타가 데미안에게 현재 상황에 대해서 설명했다.
“노프리 산맥 인근의 영주는 노프리 산맥의 화전민이랑 약초를 자주 거래하는 사이였대. 그런데 어느 날부터 연락이 뚝 끊어졌다는 거야.”
데미안은 마차에 앉은 채 마르가타의 말을 들었다.
“영주가 이를 이상하게 여기던 도중, 산에서 화전민 한 명이 내려왔대. 처음에는 못 알아봤다더라. 아무리 봐도 인간의 형상이 아니었거든. 짐승들의 신체가 덕지덕지 기워진 몸에 사람의 머리만 달려 있었대.”
상상만 해도 징그러운지 마르가타가 인상을 살짝 찌푸렸다.
“화전민은 산에 시체놀음이 있다는 말을 남기고 그 자리에서 죽었어. 영주는 이 사실을 본단에 알렸고. 그 덕분에 본단에서는 시체놀음의 위치를 파악하게 된 거야.
이야기를 마친 마르가타가 데미안을 바라보며 물었다.
“그래서 어떻게 생각해?”
“수상하군요.”
데미안은 곧바로 대답했다.
“시체놀음이 그렇게 쉽게 실험체를 놓쳤을 것 같지 않습니다. 그랬다면 여태까지 꼬리가 드러나지 않았을 리가 없죠.”
시체놀음이 세간에 모습을 드러낸 적은 딱 한 번뿐이었다.
자신의 이름을 알리기 위해서 마을 하나를 통째로 언데드 소굴로 만들었을 때 말이다.
그 이후로 시체놀음은 단 한 번도 흔적을 드러낸 적이 없었다.
그랬던 시체놀음이 화전민을 놓친다? 그건 말이 되지 않았다.
“네 말이 맞아. 본단에서도 함정이 아닐까 의심하고 있어.”
“그런데도 토벌대를 보낸단 말입니까?”
“흑마법사들은 세상의 섭리를 어지럽히고, 신을 모독한 죄인들이야. 신을 섬기는 우리가 그런 머저리들이 무섭다고 피할 수는 없잖아?”
마르가타가 사납게 웃으며 말했다.
호쾌한 겉모습과 달리 내면에는 성기사다운 광신을 품고 있었다.
“무엇보다 시체놀음은 본단에서도 위험하게 생각하는 흑마법사야. 나중에 대마도사급으로 성장할 가능성이 있다고 보고 있어.”
이는 교단의 판단이 정확하다고 볼 수 있었다.
실제로 시체놀음은 대마도사가 되어서 도르고의 든든한 전력이 되니까 말이다.
“교단에서는 이 던전이 함정일지라도 진입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하고 있어. 시체놀음을 처단할 수 있으면 좋고, 그게 아니더라도 시체놀음을 뒤쫓을 수 있는 단서를 찾고 싶어하지.”
간신히 드러난 흔적인 만큼 교단에서도 놓치기 아깝다고 판단한 모양이다.
“본단에서도 생각 없이 토벌대를 파견하려는 건 아니야. 던전이 함정이라는 가정하에 토벌대의 전력을 높게 잡고 있지. 이번 던전을 위해서 세 개의 종파가 모였어.”
신을 섬기는 교인이라면 누구나 신성력을 사용할 수 있다.
그중 극히 일부는 새로운 권능에 눈을 뜨기도 했다.
아그네스가 사용하는 ‘푸른 불꽃’이 바로 그것이었다.
이렇듯 새로운 권능을 개방한 사람들끼리 모여서 이룬 집단을 종파라고 불렀다.
교단을 이끌어 나가는 핵심 집단은 종파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어느 종파에서 모였습니까?”
“우리 ‘불사르는 자’랑 ‘뒤섞인 눈보라’, ‘눈부신 고통’이 함께하기로 했어.”
“오대성인의 종파 중 세 곳이 모였군요.”
종파의 수는 무수히 많았다.
그렇기에 종파라고 해서 모두 동등한 위치에 있지 않았다. 세력의 크기도, 영향력도 모두 달랐다.
오대성인은 교단의 성기사 중에서도 가장 강한 다섯 명을 통칭하는 단어로, 그들이 속한 종파는 막강한 힘과 영향력을 가지고 있었다.
“종파의 일개 성기사들이 모인 것도 아니야. 종파 내에서도 오대성인의 제자들을 파견하기로 했어. 나랑 아그네스처럼 말이야.”
심지어 이번 토벌에 투입되는 인원은 오대성인의 제자였으니, 얼마나 강한지 굳이 설명할 필요도 없었다.
“그런데 왜 제게 도움을 청하신 겁니까? 그만한 전력이면 토벌대로는 충분해 보이는데요.”
데미안의 물음에 마르가타가 곤란하다는 듯 뺨을 긁적였다.
“이번 토벌이 너무 갑작스럽게 결정이 되는 바람에 우리 ‘불사르는 자’에서는 전력을 모으지 못했어. 나랑 아그네스 둘이 전부지.”
종파는 교단의 핵심 전력이었다.
권능을 각성한 성기사는 그렇지 못한 성기사보다 훨씬 강했다.
때문에 맡아야 할 일들도 그만큼 많았다. 인력 부족에 시달리는 것도 이해가 갔다.
“원래 스승님께서는 이번 토벌대에 우리를 보내지 않으려고 하셨어. 둘로는 너무 위험하다는 게 이유였지. 그래서 원래는 다른 종파에서 참가하려고 했는데…….”
“제가 반드시 참여하고 싶다고 스승님께 부탁을 드렸습니다.”
아그네스가 마르가타의 말을 이어받아서 설명했다.
“데미안 님께 말씀드렸다시피 저는 시체놀음을 뒤쫓고 있습니다. 이번 기회를 놓칠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스승님께서는 조건을 내걸었어. 외부인이라도 좋으니까 지금보다 전력을 강화시키라고. 그래서 아그네스가 널 찾아온 거야.”
마르가타가 팔짱을 끼며 말했다.
“네가 이번 제안을 받아들이지 않았더라면 나도 아그네스의 참가를 허락하지 않았을 거야.”
“데미안 경 덕분에 시체놀음을 죽일 수 있는 기회를 얻었습니다.”
다시 한번 더 감사한다고 말하며 아그네스가 고개를 숙였다.
“나도 고맙게 생각하고 있어. 네 덕분에 이단자를 때려죽일 수 있는 기회를 얻었잖아?”
마르가타가 섬뜩하게 웃으며 말했다.
“유란의 간부를 죽인 솜씨를 이번에도 남김없이 발휘해 줘.”
* * *
마차는 달리고 달려서 노프리 산맥에 도착했다.
산맥의 기슭에는 이미 교단에서 구축해놓은 진지가 자리 잡고 있었다.
병사들의 숫자는 그리 많지 않았다. 하지만 다들 눈빛이 매섭고, 근육질의 몸이었다.
아마 교단에서 특별히 육성 중인 정예 병사들인 모양이었다.
그 외에도 다수의 성기사가 눈에 띄었다. 권능을 개방하지 못한 일반 성기사들이었다.
일반 성기사라고 했지만, 다들 로우클래스에 맞먹는 실력자들이었다.
교단에서 작정하고 토벌을 준비 중이라는 게 느껴졌다.
“어디 보자. 회의장은 안쪽에 있다고 했는데.”
마르가타는 데미안과 아그네스를 데리고 진지 안쪽으로 향했다.
“아, 찾았다.”
진지의 중앙에 사면이 개방된 천막이 설치되어 있었다.
천막 중앙에는 거대한 탁자가 놓여 있었다. 탁자 주변에는 사람들이 앉아 있었다.
“다들 여기 모여 있었네? 오랜만에 보니까 반가운걸.”
마르가타가 남은 탁자에 앉으며 말했다.
“마르가타, 또 늦었군.”
신경질적으로 생긴 남성이 입을 열었다. 대단히 못마땅한 어조였다.
“어딜 좀 들렸다 오느라 늦었어. 다음부터는 안 그럴게.”
“너랑 만날 때마다 그 소리를 들었다. 맹세를 지킬 생각이 있는지 의심이 되는군.”
“가말, 넌 항상 신경질적인 게 문제야. 그렇게 계속 인상을 쓰고 있으면 이마에 주름 생긴다?”
“사과를 해도 모자랄 판에 헛소리나 지껄이고 있군. 역시 ‘불사르는 자’다운 행동이야. 무식하기 짝이 없어.”
남성, 가말의 말에 마르가타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가말, 말조심해. 날 욕하는 건 상관없지만 우리 종파는 욕하지 마.”
“내가 틀린 말이라도 했나? 종파의 가르침이 제대로 되었다면 네가 이딴 식으로 행동하지 않았을 게 아니냐.”
마르가타의 얼굴에서 미소가 사라졌다.
“만나자 말자 이러기야? 아무리 흑설께서 우리 스승님한테 죽기 직전까지 얻어터졌다지만 이렇게 구는 건 너무 속 좁은 거 아니야?”
“……우리 스승님께서 언제 죽기 직전까지 얻어맞았다는 거냐!”
가말이 발끈해서 소리쳤다.
“어라? 그게 아니라 한대 얻어맞고 패배를 시인했던가? 어쨌든 흑설께서 진 건 사실이잖아. 우리 스승님한테.”
“그때, 스승님께서는 중대한 임무를 완수하고 오시느라 크게 지쳐 계셨다.”
가말이 마르가타를 죽일 듯이 노려봤다. 금방이라도 싸움이 벌어질 것 같았다.
“저 남자는 누구입니까?”
데미안이 아그네스에게 물었다. 아그네스가 작은 목소리로 속삭였다.
“흑설의 제자이자 ‘뒤섞인 눈보라’ 소속 2급 성기사인 가말이라고 합니다.”
‘뒤섞인 눈보라’.
오대성인 흑설의 종파 중 하나로 빙속성 신성력을 다루는 곳이었다.
데미안은 데스나이트 시절에 ‘흑설’과도 직접 싸워봤다.
한여름에 바다를 빙원으로 만들어 버리는 정신 나간 능력을 가지고 있었다.
“양쪽 종파끼리 서로 안 좋은 것 같습니다.”
“사이가 안 좋은 게 아니라. ‘뒤섞인 눈보라’ 쪽에서 일방적으로 시비를 거는 것뿐입니다.”
아그네스가 단호한 어조로 말했다.
종파들은 신성력의 성질뿐만 아니라 사상이랑 교리가 조금씩 달랐다.
그래서 서로 앙숙인 종파들도 심심찮게 찾아볼 수 있었다.
“얼마 전에 흑설이 저희 스승님께 패배했거든요.”
다만, 불사르는 자와 뒤섞인 눈보라의 대립은 단순한 자존심 싸움인 듯했다.
“여러분들~ 싸우지 마세요~”
마르가타와 가물 사이에 앉아 있던 여인이 느릿한 말투로 말했다.
“지금 분노를 낭비하면 안 돼요~ 여러분들의 분노는 던전 안에 숨어 있는 추잡한 흑마법사들을 찢어 죽이는 데 사용해야죠~.”
온화한 얼굴과 달리 내뱉는 단어들은 살벌하게 짝이 없었다.
“광명의 제자이자 ‘눈부신 고통’ 소속인 2급 성기사 사누스입니다.”
아그네스가 미리 설명을 덧붙였다.
심상치 않은 기운이 느껴진다 싶었는데. 역시 저 여자도 2급 성기사였다.
데미안은 오대성인 ‘광명’과도 싸워 본 적이 있었다.
종파 ‘눈부신 고통’은 신성력을 통해서 다양한 것을 강화시킬 수 있는 학파였다.
오대성인 ‘광명’은 수백 개가 넘는 기적으로 자신을 강화시켜서 싸웠다.
그야말로 걸어 다니는 요새라는 말이 딱 어울리는 인물이었다.
“사누스, 가만히 있어라. 오늘 마르가타의 버르장머리를 고쳐야겠다.”
“너처럼 비리비리한 약골이 날 감당할 수 있겠어? 그러다 역으로 얻어터지면 어떻게 하려고?”
두 사람이 으르렁거렸다.
사누스라는 두 사람 사이에서 어쩔 줄 몰라했다.
데미안은 세 사람을 관찰했다.
전생에 던전에서 살아남은 성기사가 했던 말을 다시 한번 상기했다.
‘배신자가 있다면 이 세 명일 확률이 크다.’
전생에 토벌대는 배신자로 인해서 전멸한다.
아무리 배신을 당했다지만 이만한 규모의 토벌대가 생존자 한 명 남기지 못하고 전멸하는 것은 뭔가 이상했다.
심지어 성기사는 신성력 덕분에 생존력이 강하기로 유명하지 않던가.
배신으로 인한 파급 효과가 그만큼 컸다는 뜻일 테니, 그 조건을 만족하는 인물은 이 세 명뿐이었다.
‘없을 수도 있지. 이번 토벌은 전생보다 이른 시기에 구성이 됐으니까.’
물론 시기가 달라졌으니 토벌대의 구성원도 달라졌을 수 있고, 배신이 발생하지 않을 수도 있었다.
그렇다고 마냥 낙관적으로 생각할 수는 없었다.
전생에 토벌대가 전멸한 사건 때문에 교단은 엄청난 손실을 입게 되고, 결국 도르고와의 전쟁에서도 패배했으니 말이다.
모든 가능성을 생각해 놓아야 했다.
‘어쨌든 내가 할 일은 똑같아.’
시체놀음을 죽인다.
토벌대의 전멸을 막는다.
설사 배신자가 있다 해도 상관없다. 자신이 막으면 되니까.
“그런데 저 남자는 누구지? 성기사로 보이지는 않는데.”
그때, 가말이 데미안을 쳐다보며 물었다. 마르가타가 뽐내는 듯한 얼굴로 말했다.
“데미안 학센이야.”
“뭐? 유란의 간부를 처단했다는 그 기사 말인가?”
“흑마법사 둘을 동시에 처단했다는 그 데미안 학센이요?”
가말과 사누스는 깜짝 놀란 얼굴로 데미안을 바라봤다.
“대단하지? 우리 아그네스가 직접 찾아가서 영입해 왔어. 쑥맥인 줄 알았는데. 남자를 꼬시는 재주가 제법이지 뭐야.”
“…….”
아그네스가 살기 가득한 눈빛으로 마르가타를 노려봤다. 하지만 마르가타는 꿈쩍도 하지 않았다.
“마르가타 경, 잠깐만요.”
그때, 가말의 옆에 앉아 있던 청년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아직 소년티가 남아 있는 청년이었다.
“지금 외부 전력을 토벌대에 합류시키겠다는 겁니까?”
“외부 전력 아니야. 데미안 경은 본단에 공훈도 많이 세웠고, 협력자로 지정되어 있어.”
“결국 외부인이 아닙니까.”
청년이 납득할 수 없다는 얼굴로 말했다.
“가족이라 할지라도 항상 경계하고, 대비하고, 의심하라. 누구든지 이단자가 될 수 있으니. 그것이 본단의 가르침이 아니었습니까.”
“디오니시오 경, 지금 데미안 경을 의심하는 것입니까?”
아그네스가 날선 어조로 말했다.
“아그네스 누나, 나는 단지 위험 가능성 말하는 것뿐이야.”
“디오니시오 경, 공적인 자리입니다.”
“……아그네스 경, 저는 단지 위험 가능성을 말씀드리는 것뿐입니다.”
디오니시오의 말에 가말도 고개를 끄덕였다.
“내 사제의 말도 일리가 있군. 이번처럼 중요한 일에 외부 전력을 함부로 받아들일 수는 없다.”
“가말, 또 왜 이래?”
“‘또’가 아니다. 본단에서는 데미안 학센을 의심하는 사람들이 제법 많아. 데미안 학센의 경력을 보면 검을 수련한 지 얼마 되지 않아서 아기토를 죽였어. 이건 석연치가 않아.”
아기토.
검은 뱀의 사주로 학센 자작가에 저주를 걸었다가 데미안의 손에 죽은 유란의 간부였다.
“아기토가 누군지 잊은 건 아니겠지? 교단의 추적을 감쪽같이 빠져나가고, 3급 성기사를 두 명이나 죽인 저주술사다. 그런 아기토를 검을 훈련한 지 얼마 안 된 기사가 죽였다?”
가말이 데미안을 쳐다보며 말을 이어 나갔다.
“그뿐만이 아니지. 최근에 흑마법사 둘을 동시에 상대한 일도 의심스러워. 그 현장에는 대규모 흑마법을 전개한 흔적이 남아 있었어. 로우클래스가 상대하기에는 버거운 수준이었지.”
“……그 건은 흑마법사들이 모종의 이유로 흑마법을 강화시킨 것으로 추정됩니다.”
아그네스가 데미안을 옹호했다. 하지만 가말의 태도는 달라지지 않았다.
“결국 고위력의 흑마법을 사용한 것은 맞지 않나? 평범한 기사가 그런 흑마법을 한 명도 아니고 둘이나 동시에 상대했다는 걸 난 믿을 수 없다.”
마르가타가 짜증 난다는 얼굴로 말했다.
“그래서 하고 싶은 말이 뭐야?”
“데미안 학센 경이 다른 의도를 품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거지. 실제로 흑마법사들이 본단에 스파이를 심기 위해서 자작극을 벌인 사례가 있지 않나?”
“말조심해. 넌 지금 선을 넘고 있어.”
마르가타가 으르렁거렸다. 가말도 지지 않고 그녀를 노려봤다.
“사누스! 설마 너도 똑같이 생각하는 건 아니지?”
마르가타가 사누스를 돌아보며 물었다. 사누스가 어색하게 웃으며 말했다.
“나도 가말이랑 의견이 좀 비슷한데…… 검증을 받지 않은 전력을 합류시키는 건 위험하다고 생각해.”
마르가타의 미간이 더더욱 좁아졌다.
“불쾌하군.”
그때, 누군가 입을 열었다.
모두의 시선이 데미안 학센에게 집중되었다.
“날 의심하시는 거야 교단의 방침이니까 그렇다 쳐도…… 의심의 근거가 내 실력을 못 믿어서 그렇다?”
데미안이 나서자 아그네스는 크게 당황했다.
“데미안 경…….”
아그네스가 데미안을 말리려 했다. 하지만 데미안은 그녀를 잠시 외면했다.
데미안에게는 이 토벌에 반드시 참가해야 할 이유가 있었다.
이딴 하찮은 권력 다툼으로 막힐 수는 없었다.
“그렇다. 아무리 생각해 봐도 성기사가 아닌 평범한 로우클래스 기사가 유란의 간부를 죽이고, 흑마법사 둘을 처단하는 것은 납득할 수가…….”
“그거야 그쪽 종파의 성기사들 실력이 다 변변찮아서 그렇지.”
데미안이 디오니시오를 쳐다보며 말했다.
“내가 장담하는데. 그쪽 종파의 3급 성기사가 몇 명이 덤벼도 날 못 이겨.”
쾅.
그 순간, 디오니시오가 주먹으로 탁자를 후려치며 일어났다.
“당장 밖으로 튀어나와라!”
디오니시오가 데미안을 죽일 듯이 노려보며 말했다.
“네놈의 두 팔을 잘라 두 번 다시 검을 잡지 못하게 만들어 주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