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turn of the Calamity-Class Death Knight RAW novel - Chapter (77)
멸망급 데스나이트가 회귀함 77화
77화 그녀 (2)
그렇다고 베로니카 산체가 순순히 데미안과 동행한 것은 아니었다.
“앗! 저기 인기척이 느껴져! 도적이 분명해! 찾아내서 죽이고 올게!”
“슬슬 저녁 시간인데 사냥감이라도 잡아 올까? 멧돼지 통구이 어때?”
“나 볼일 좀 보고 올게! 큰 거야! 금방 나올 것 같아!”
온갖 이유를 대면서 달아나려고 했다. 그때마다 번번이 데미안에게 다시 잡혀 왔지만 말이다.
“왜 자꾸 붙잡히는 거야!”
“네가 약해서 그렇지. 그러게 누가 사람 죽이는 것만 연구하라고 했냐.”
“사람 죽이는 거랑 내가 도망 못 치는 게 무슨 상관인데!”
“반항적인 걸 보니 아직 교육이 덜 됐군.”
“헉…… 아냐! 괜찮아!”
머리를 몇 대 더 얻어맞고 나서야 베로니카 산체는 고분고분해졌다.
데미안이 베로니카 산체를 데리고 다니는 이유는 확실하게 갱생시키기 위함이었다.
‘인격교정자의 방침이었지. 갱생시켰다고 해서 방심해서는 안 된다고.’
인격교정자 역시 범죄자와 한동안 동행하며 갱생 여부를 지속적으로 확인했었다.
‘갱생이 정 안 될 것 같으면 바로 죽여 버려야겠다.’
롱귀스트 산맥을 탐사하는 동안 베로니카 산체를 계속 지켜볼 생각이었다.
“나보고 야영 준비를 하라고? 난 그냥 나뭇가지 위에서 자면 되는데?”
“너 말고 내 잠자리를 말한 건데?”
“그건 네가 할 일이잖아!”
“허드렛일하면서 너의 잘못을 반성하라는 의미지.”
“싫어! 네가 해! 난 안 할…….”
데미안이 몽둥이를 들어 올렸다. 베로니카 산체가 부리나케 야영 준비를 하러 달려갔다.
‘이거 상당히 편한걸.’
덤으로 베로니카 산체 덕분에 데미안은 귀찮은 일들에서 해방될 수 있었다.
* * *
후안과 용병대원들도 야영 준비를 시작했다.
한쪽에서는 식사 준비를 하고, 침낭을 깔기 위해 땅바닥을 다지고 있었다.
그중에서 후안은 식사 준비를 맡은 쪽이었다. 모닥불 외에 무쇠솥을 올리고 각종 재료를 넣고 푹 끓였다.
뭉근해진 채소들을 국자로 휘저으며 뭉개고 있을 때였다.
“대장, 잠깐 시간 좀 내줄 수 있으십니까?”
브레드가 슬쩍 다가오더니 후안에게 물었다.
“요리 중인 거 안 보이냐. 여기서 말해라.”
후안이 국자로 재료들을 휘저으며 말했다.
요리는 정성이 핵심이었다. 한 시라도 자리를 비울 수 없었다.
“저 빅터라는 남자, 대체 정체가 뭡니까?”
“나도 잘 모른다. 의뢰인에 대해서 묻지 않는 게 우리의 원칙이잖냐.”
용병들 사이에서 내려오는 몇 가지 수칙이 있었다.
그중 중요한 하나는 돈만 받으면 장땡.
의뢰인에 대해선 먼저 호기심을 가지지 말라는 뜻이었다.
“그럼 질문을 바꾸겠습니다. 원래 기사라는 놈들은 다 저렇게 대단한 겁니까?”
브레드가 꿈꾸는 듯한 얼굴로 말했다.
“대장도 낮에 겪어 보셨잖습니까. 저 기사가 훈수를 두니까 모든 게 달라졌습니다.”
원래 낮에 있었던 전투는 도적의 숫자가 너무 많아 후안의 용병대로는 이길 수 없는 싸움이었다.
그런데 데미안이 조언을 시작하자마자 전황이 달라졌다.
“그것뿐입니까? 그 이상한 여자도 단숨에 제압했잖습니까.”
롱귀스트 산맥에는 수많은 범죄자가 모여들었다.
그중에서 고슴도치는 특히 실력이 뛰어났으며, 주변 도적들을 통합해 큰 세력을 거느리고 있었다.
특히 작년에 도적들을 토벌하러 온 로우클래스 기사 두 명을 시체로 만들어 버린 일은 도적들 사이에 전설처럼 내려오고 있었다.
그런 실력의 고슴도치를 베로니카 산체라는 여자는 너무나도 손쉽게 죽여 버렸다.
검술에 무지한 말단 도적이 봐도 압도적인 실력 차였다.
그리고 그 여자를 데미안은 어린애처럼 가지고 놀며 제압했다.
“대장은 기사 훈련생이었으니까 기사들에 대해서 잘 알 거 아닙니까.”
브레드가 말한 대로 후안은 기사훈련생 출신이었다. 재능이 부족해 쫓겨나기는 했지만 1년 정도는 훈련받은 경험이 있었다.
당시 후안을 비롯한 훈련생들을 가르쳤던 교관은 준기사였다. 이따금씩 정식 기사들이 와서 훈련생들을 가르치기도 했다.
그때 봤던 정식 기사들은…….
“그럴 리가 있겠냐.”
후안을 가르쳤던 기사들은 뜬구름 같은 소리만 했다. 지도가 아니라 자기자랑만 하다 사라지는 족속들이었다.
그에 비해서 저 기사는 꼭 필요한 조언을 적절할 때 해 줬다.
그 조언을 따르는 것만으로도 실력이 확 뛰어오르는 게 느껴질 정도였다.
“저 기사가 대단한 거다.”
후안이 무쇠솥을 내려다보며 짧게 말했다.
* * *
이튿날, 데미안은 다시 이동하기 시작했다.
어제와 달리 가는 내내 도적들과 마주치지 않았다.
“그 사이에 고슴도치가 죽었다는 소문이 쫙 퍼진 모양이오.”
산등성이를 오르며 후안이 말했다.
“저 처자한테 단칼에 죽기는 했지만 고슴도치는 롱귀스트 산맥에서 꽤 악명 높았던 놈이거든.”
강한 놈이 죽었으니 밑에 있던 놈들이 알아서 기는 모양이었다.
덕분에 데미안은 전투 한 번 치르지 않고 롱귀스트 산맥 깊숙한 곳에 도달했다.
잠깐 앉아서 쉬고 있을 때였다. 데미안은 그루터기에 앉아서 지도를 펼쳤다.
“물.”
데미안이 손을 내밀며 말했다. 그러자 베로니카 산체가 벌레 씹은 얼굴로 수통을 내밀었다.
“너…… 널 하녀처럼 취급하는데…… 내가 언제까지 가만히 있을 줄 알아……!”
데미안이 옆에 세워 둔 몽둥이를 천천히 집어 들자, 베로니카 산체가 부리나케 도망쳤다.
데미안은 물을 홀짝이며 지도를 살펴봤다.
유란의 대장에게서 은닉처에 대한 기억을 얻기는 했지만 불확실한 부분이 많았다. 때문에 계속 지도를 확인해 줘야 했다.
“빅터, 설마 안쪽으로 더 들어갈 생각이오?”
“그렇다.”
데미안의 대답이 후안의 표정이 굳었다.
“으음…… 빅터, 더 이상 진입하는 건 위험하우. 저 안쪽은 금지라고 불리면서 도적들도 기피하는 곳이오.”
“금지?”
“저 안으로 들어간 사람 중에 살아서 돌아온 놈이 없수. 심지어 고슴도치처럼 기사 출신들도 돌아오지 못했소.”
후안의 말에 데미안은 오히려 미소를 지었다.
장소를 정확하게 찾아왔다는 증거였다.
“난 저 안쪽에 볼일이 있다. 위험하다고 판단하면 더 이상 따라오지 않아도 된다.”
데미안의 말에 후안은 한숨을 푹 내쉬었다.
“받은 돈이 있는데 의뢰인을 두고 갈 수야 없지.”
휴식을 마친 뒤, 데미안과 용병대는 다시 안으로 이동했다.
“대, 대장 어째 좀 추운 것 같지 않아?”
어느 정도 안으로 들어가자 용병대원 중 한 명이 말했다. 덩치가 가장 큰 밥이었다.
“나도 좀 어째 으스스하네.”
“이 더운 날씨에 뭔가 이상한걸.”
밥뿐만 아니라 다른 대원들도 이상증세를 호소했다.
“약골들 같으니. 야, 봤어? 저런 게 약한 거지, 난 약한 게 아니야!”
반면 베로니카 산체는 여전히 팔팔했다.
‘지역 전체에 저주가 깔려 있군.’
이들은 추위를 호소하는 이유는 저주 때문이었다.
쇠약의 저주가 지속적으로 용병대를 괴롭히고 있었다. 유란에서 외부인의 침입을 막기 위해 설치한 저주가 분명했다.
‘안쪽으로 들어갈수록 저주가 점점 더 강해지고 있다.’
이곳이 금지 구역이라 불리게 된 이유는 이 저주 때문인 듯했다.
데미안은 탐식의 권능을 발휘했다. 권능을 사용하자 주변에 맴돌고 있던 저주가 사라지기 시작했다.
“어? 갑자기 몸이 편해지는 것 같은데.”
“갑자기 날씨가 따뜻해지는 것 같은데요.”
용병들의 표정이 한층 밝아졌다.
‘그런데 로우클래스도 돌아오지 못했다는 게 좀 신경 쓰이는군.’
용병들과 달리 로우클래스인 베로니카 산체는 저주의 영향을 전혀 받고 있지 않았다.
그렇다면 로우클래스를 죽일 만한 무언가가 따로 있다는 뜻이었다.
데미안이 의문을 품었을 때, 저 앞에서 무언가가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반쯤 썩어 버린 육체, 녹슨 병장기, 느릿한 움직임.
“……조, 좀비다! 좀비야!”
후안이 당황해서 소리쳤다. 용병대는 황급히 무기를 빼들었다.
좀비는 흑마법에 의해서 움직이는 시체를 말했다, 하급 중에서도 하급인 언데드라 크게 위험할 건 없었다.
“대, 대장! 이놈들 한두 마리가 아닙니다!”
문제는 숫자였다. 어느새 수십 마리가 넘는 좀비가 일행을 포위하듯 몰려오고 있었다.
아마 금지에 들어왔다가 죽은 용병들이 모두 좀비로 변한 모양이었다.
“경험 쌓기에 딱 적당한 상황이군.”
데미안의 말에 용병들이 놀라서 데미안을 쳐다봤다. 데미안은 근처의 나뭇가지 위로 뛰어오르며 말했다.
“뭐 하나? 가서 싸우지 않고. 죽을 것 같으면 도와줄 테니까 걱정 말고.”
데미안의 말에 용병대가 울며 겨자 먹기로 달려 나갔다.
“이쪽으로 모여라! 나무를 등지고 싸운다! 움직임이 느리니까 겁먹지 마라!”
후안과 용병들은 평소의 전략대로 싸우려 했다. 그들에게 데미안이 말했다.
“좀비들을 상대로 한곳에 머무르는 건 자살 행위다. 계속 움직이면서 싸워라! 놈들을 떨쳐 내!”
용병대는 곧바로 데미안이 말한 대로 전략을 바꿨다.
방패를 든 용병들이 길을 뚫고 창을 든 용병들이 좀비들을 견제했다.
“내가 가서 좀 도와줄까?”
똑같이 나무 위로 올라온 베로니카 산체가 데미안에게 물었다.
“네가 상대해야 할 놈은 따로 있다.”
“응? 뭔데? 뭔데? 너? 너지?”
데미안은 손가락을 들어서 어딘가를 가리켰다. 좀비 무리의 뒤쪽에서 거체의 괴물이 모습을 드러냈다.
-우워어어어!
트롤.
하지만 평범한 트롤은 아니었다. 머리가 두 개에 팔은 네 개였다.
저런 모습의 트롤리 있을 리가 없었다. 자세히 보면 몸 중앙에 재봉선 같은 게 존재했다.
바로 플레시 골렘이었다.
익숙한 느낌이 드는 것으로 보아, 시체놀음이 만들어 전해 준 걸로 보였다.
‘유란의 은닉처가 있는 게 확실하다.’
저 플레시 골렘이야말로 이곳에 유란의 은닉처가 있다는 증거였다.
“와 이상하게도 생겼네. 당장 죽이고 올게!”
“응? 설명은 듣고 가는 게…….”
“필요 없어!”
베로니카 산체가 쌍검을 들고 플레시 골렘에게 달려들었다. 데미안은 혀를 찼다.
‘그렇게 만만한 놈이 아닐 텐데.’
유란의 은닉처를 지키고 있는 곳이다. 시체놀음이 허투루 만들었을 리가 없었다.
“죽어! 죽어어!”
그녀는 신이 나서 쌍검을 휘둘렀다. 오러가 실린 참격이 플레시 골렘의 팔뚝에 틀어박혔다.
오러는 플레시 골렘의 살점을 손쉽게 갈랐다. 그러나 점점 속도가 느려지더니 결국 멈춰 섰다.
“어? 어어?”
베로니카 산체의 오러는 사람의 몸을 뼈와 근육째로 가를 정도로 날카로웠다.
플레시 골렘의 팔뚝이 두껍다지만 이렇게 잘라 내지 못하고 멈추는 것은 이상한 일이었다.
-우워어어!
플레시 골렘이 베로니카 산체에게 주먹을 휘두르려 했다. 베로니카 산체는 칼을 뽑을 틈도 없이 뒤로 피했다.
“뭐, 뭐야! 왜, 왜 안 베이는 거야?”
처음 겪는 일이었는지. 베로니카 산체는 당혹감에서 벗어날 줄 말랐다.
“무슨 일인지 모르겠지만…… 한 번으로 안 되면 여러 번 베어 버리면 되지!”
베로니카 산체가 바닥에 떨어진 다른 칼을 주었다. 좀비가 사용하던 것이었다.
베로니카 산체는 바쁘게 움직이며 플레시 골렘을 난도질하기 시작했다. 플레시 골렘의 몸에 수많은 상처가 생겨나기 시작했다.
하지만 얼마 가지 못해서 베로니카 산체의 움직임이 눈에 띄게 느려졌다.
“헥! 헤엑! 헥!”
지쳤는지 베로니카 산체가 숨을 헐떡이기 시작했다.
명백하게 이상한 일이었다. 로우클래스가 이렇게 빨리 지칠 리 없으니 말이다.
‘저 플레시 골렘, 마력을 흡수하는 능력을 가지고 있군.’
그 때문에 오러로 벨 때마다 마력을 빼앗겨서 빨리 지치고 만 것이다.
처음에 베로니카 산체의 검이 깊이 파고들지 못한 이유도 마력을 급격하게 흡수당해서 오러가 사라진 탓인 듯했다.
‘오러를 정면으로 받아치는 건 힘들지. 그래서 저런 편법을 마련한 거야.’
마법사의 강함은 기사에 미치지 못한다. 하지만 마법사의 교활함은 기사를 능가한다.
하지만 베로니카 산체가 지고 있는 가장 큰 단점은 따로 있었다.
바로 사람을 베는 데에만 익숙하기 때문이었다.
“으, 으아앗! 살려 줘! 살려 줘어!”
결국 베로니카 산체는 마력이 거의 고갈되었는지. 플레시 골렘의 공격을 피해서 도망치기 시작했다.
데미안은 쯧쯧 혀를 차며 철검을 뽑았다. 그리고 플레시 골렘의 앞을 가로막았다.
-우워어어!
플레시 골렘이 고함을 내지르며 주먹을 휘둘렀다. 그 광경에 베로니카 산체가 소리쳤다.
“야! 조심해! 이 녀석 뭔가 이상해! 오러가 잘 통하지 않…….”
데미안은 플레시 골렘의 주먹을 피하며 철검을 두 번 휘둘렀다. 두꺼운 손목이 절단되어 땅으로 떨어졌다.
“……어?”
오러가 실리지 않은 검으로 트롤의 손목을 베어 내는 광경에 베로니카 산체는 크게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우워어어!
고통을 느낄 수 없기에 플레시 골렘은 손목이 잘려 나간 것도 아랑곳하지 않고 달려들었다.
데미안이 철검을 양손으로 잡고 크게 두 번 휘둘렀다. 플레시 골렘의 몸통에 두 개의 혈선이 교차했다.
이윽고 플레시 골렘의 몸이 나뉘며 바닥으로 허물어졌다.
“……”
그 광경에 베로니카 산체의 입이 서서히 벌어졌다.
“쉬고 있어라.”
데미안은 짧게 말한 뒤, 후안의 용병대가 있는 곳으로 달려갔다.
베로니카 산체는 한참 동안 플레시 골렘과 데미안을 번갈아 쳐다봤다.
* * *
데미안은 그 뒤로도 후안의 용병대를 도와서 좀비 떼를 섬멸했다.
직접적으로 도운 것은 아니었다. 일행에게 조언을 해 주며 경험을 쌓을 수 있도록 도왔다.
한바탕 전투가 끝나고, 일행은 한곳에 모여서 휴식을 취했다.
“덕분에 또 살아남았구려.”
후안이 물을 마시며 데미안에게 말했다. 이번에도 데미안의 조언이 없었더라면 위험한 상황에 처할 뻔했다.
“그런데 저 처자는 왜 이렇게 조용한 거요?”
후안이 베로니카 산체를 가리키며 물었다. 플레시 골렘과 싸운 이후부터 베로니카 산체는 아무 말도 없이 허공만 쳐다보고 있었다.
“고민거리가 있는 모양이지.”
데미안은 대수롭지 않게 말했다.
“그나저나…… 대체 산맥에서 뭘 찾고 있는 거요? 언데드까지 나오는 걸 보면 단순한 보물을 찾고 있는 건 아닌 것 같은데.”
아무리 후안이 과묵하다 해도 이런 상황에서는 질문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언데드는 쉽게 볼 수 있는 괴물들이 아니었다. 몬스터와 달리 흑마법에 의해서만 발생했기 때문이다.
데미안은 잠시 고민했다.
후안의 입이 무거운 편이긴 하지만 솔직하게 말하는 것은 위험했다.
이럴 때는 설득보다는 직접 보여 주는 게 효과적일 터.
데미안은 아공간을 열었다. 처음 보는 현상에 후안의 눈동자가 휘둥그레졌다.
“그, 그게 뭐요? 서, 설마 마법사였던 거요?”
“마도구일 뿐이니 진정해라.”
데미안은 아공간에서 성검을 꺼냈다. 성검을 뽑자 환한 빛이 뿜어져 나왔다.
빛을 쬐인 모든 사람은 체력이 순식간에 차오르는 기적을 맛봤다. 그 현상에 후안이 놀라서 말했다.
“시, 신성력……? 서, 설마…… 성기사인 거요?”
“성기사는 아니다. 대신 교단으로부터 성검을 받았지.”
데미안의 말에 후안은 경외롭다는 표정을 지었다.
“이제 보니 교단의 협력자셨군…… 이제 롱귀스트 산맥에 왜 왔는지 알겠소. 언데드를 처리하러 오신 게로군.”
후안은 고개를 끄덕이며 스스로 납득했다.
“내가 이곳에 온 건 비밀로 해 줬으면 하는군. 비밀 임무라서 말이야.”
“알겠소. 절대 말하지 않겠소. 교단의 위대한 계획에 누가 될 수는 없지.”
후안은 팔짱을 낀 채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
* * *
“여기부터는 나 혼자 들어가야겠다.”
휴식이 끝났을 무렵 데미안이 용병대에게 말했다.
“그게 무슨 소리요? 우리도 같이 가겠소.”
“돌아가라는 소리가 아니야. 여기 남아서 기다리라는 뜻이지. 오래 걸리지는 않을 테니까 야영 준비는 하지 말고.”
후안의 얼굴에 망설임이 떠올랐다. 그런 후안에게 데미안이 말했다.
“의뢰인으로서 하는 부탁이야.”
“……알겠소.”
올바른 용병의 자세란 불필요한 참견을 하지 않는 것이다. 후안은 데미안의 부탁을 들어줄 수밖에 없었다.
“이봐.”
데미안은 베로니카 산체에게 다가갔다. 베로니카 산체는 멍한 얼굴로 데미안을 쳐다봤다.
“난 잠깐 안에 들어갔다 나오겠다. 넌 여기서 용병들을 지키고 있어라.”
베로니카 산체는 고개를 끄덕였다. 어째 망가진 기계 같은 반응이었다.
데미안은 일행을 내버려 둔 채 계곡 안으로 진입했다.
도중에 언데드 몇 마리를 더 만났지만 큰 문제는 되지 않았다.
이윽고 데미안은 어느 절벽 앞에 멈춰 섰다.
“분명히 이 앞인데…… 문양의 형태가 뭐였더라.”
데미안은 팔찌의 흑마력을 조금 해방시켜서 몇 가지 문양을 그렸다.
그러자 절벽이 지워지며 커다란 동굴이 나타났다.
“찾았다.”
데미안은 동굴 안쪽으로 들어갔다. 데미안이 들어가자마자 환영이 다시 동굴을 가렸다.
* * *
데미안은 동굴 안쪽으로 계속 걸음을 옮겼다.
어느 정도 걷다 보니 넓은 공동이 나타났다. 공동에는 플레시 골렘 두 마리가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밖에 있던 것과 똑같이 트롤을 이용해서 만들었군.’
데미안이 공동 중앙으로 걸음을 옮겼을 때였다. 별안간 플레시 골렘들이 고개를 들었다.
-인증되지 않은 마력 패턴을 감지.
-침입자 확인. 보안 절차에 따라서 배제한다.
별안간 천장에서 병장기와 뼈가 우수수 떨어졌다. 뼈들은 서로 얽히고설키더니 사람의 골격을 이루었다.
스켈레톤.
사람의 영혼을 뼈에 묶어 놓음으로써 병사로 활용하는 흑마법. 사령학파를 대표하는 흑마법이기도 했다.
“역시 안쪽도 침입자에 대한 대처가 되어 있군.”
데미안은 철검을 뽑으려다가 다시 집어넣고 대신 아공간을 열었다.
그 안에서 가죽으로 된 트렁크를 꺼내 열었다. 내부에는 검은 어둠이 꿈틀거렸다.
“나와라.”
어둠 속에서 무언가 튀어나왔다.
성별을 알아보기 힘든 중성적인 외모.
평균에 못 미치는 작은 체구.
어딘가 이질감이 느껴지는 기이한 분위기.
“미야, 네 실력 한번 보자.”
데미안의 말에 미야가 사납게 웃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