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turn of the Calamity-Class Death Knight RAW novel - Chapter (79)
멸망급 데스나이트가 회귀함 79화
79화 은닉처 (2)
아크리치 도르고는 인간 사회를 멸망시키기 위해서 많은 준비를 해 왔다.
능력 있는 흑마법사들을 포섭해서 대륙 각지에 혼란을 일으켰으며, 오랜 시간에 걸쳐 강력한 언데드 군단도 만들어 냈다.
심혈을 기울여 그동안 모은 역량을 총동원해 수십 번에 시술 끝에 데미안 학센을 데스나이트로 개조했다.
그 외에 또 한 가지 도르고가 중요하게 생각하던 계획이 있었다.
바로 마검 에레보스의 복원이었다.
에레보스는 출신이 불분명한 마검이었다. 이 세상 어디에도 기록이 남아 있지 않았다.
오직 교단에서만 에레보스의 조각을 발견할시 철저하게 봉인해야 한다며 언급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런 교단조차 에레보스가 어떤 물건인지 제대로 알지 못했었다.
‘아마 도르고는 에레보스에 대해서 잘 알고 있었을 거다. 그러니 악착같이 찾았겠지.’
도르고는 멸망 전쟁 도중에서도 에레보스의 조각을 찾으려고 혈안이 되어 있었다.
그랬던 도르고조차 에레보스를 완벽하게 복원하지 못했다.
도르고가 복원한 에레보스는 약 70% 정도였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도 에레보스는 무시무시한 위력을 발휘했다.
우연찮게 에레보스의 조각을 손에 넣은 시골 농부가 폭주하여 날뛰다가 하이클래스를 죽인 사례가 있을 정도였다.
‘에레보스에게 인정받지 못했다면 난 죽었을 거다.’
에레보스는 강력할 뿐만 아니라 자신이 직접 주인을 선택하는 까다로운 마검이었다.
처음에는 데미안을 주인으로 인정하지 않았다. 데미안이 마스터 클래스를 경시할 정도로 강해져도 마찬가지였다.
그러다 제국제일검과 싸우기 직전, 비로소 에레보스는 데미안을 주인으로 인정했다.
‘어마어마한 전투였지.’
제국이 대륙 최강이라는 것을 생각하면 제국제일검은 사실상 인류 최강이었다.
제국제일검은 그에 걸맞은 무시무시한 괴물이었다. 데미안조차 위기감을 느낄 정도였다.
무엇보다 제국제일검에게는 신검 ‘엘 데’가 있었다.
어느 날 하늘에서 뚝 떨어진 엘 데는 이 세상 어떤 무구보다 강력한 힘을 가지고 있었다. 교단에서 만든 최고의 성검조차 신검에는 한참 못 미쳤다.
만약 데미안에게 에레보스가 없었더라면 제국제일검과 엘 데에 의해서 목숨을 잃었으리라.
‘……차라리 그게 나았을지도 모르지. 제국제일검의 손에 죽었더라면 도르고의 야망도 저지되었을 테니까.’
제국제일검까지 데미안의 손에 목숨을 잃자, 제국은 가파르게 무너져 내렸다.
그리고 도르고는 제국을 무너뜨림으로써 인류를 멸망시키겠다는 숙원을 이루는 데 성공했다.
‘이걸 어떻게 한담…….’
에레보스는 너무 위험한 물건이었다. 그렇다고 파괴할 수도 없었다.
에레보스의 파편은 어떤 방법을 사용해도 파괴할 수 없었다. 오죽하면 교단에서도 파괴가 아니라 봉인을 하라고 명령을 내렸을까.
‘일단 내가 가지고 있어야겠군.’
그리 생각하며 데미안이 에레보스를 집어 들었을 때였다.
에레보스의 칼자루와 날이 연기로 변하더니 데미안의 몸속으로 흡수되었다. 그리고 손목에 에레보스 형태의 문신이 생겨났다.
“뭐?”
데미안은 한 번 더 놀랄 수밖에 없었다. 이 현상은 에레보스에게 인정을 받았다는 증거였다.
“이럴 리가 없는데…….”
데스나이트 시절, 데미안은 에레보스에게 좀처럼 인정을 받지 못했다.
수많은 마스터들을 죽이고, 독보적인 경지에 올랐음에도 그러했다.
그렇게 까탈스러웠던 에레보스가 이번에는 너무나도 쉽게 데미안을 주인으로 인정했다.
당황스럽긴 했지만 나쁜 일은 아니었다. 도르고의 강력한 전력 중 하나를 빼앗은 셈이니 말이다.
“뭐, 흑마법도 사용하는데. 마검이라고 사용하지 못할 이유도 없지.”
문제가 있다면 손잡이만 남아 있어서 무기로 쓸 수 없다는 점이었다.
날이 조금 남아 있기는 했지만 너무 짧아서 단검으로도 사용할 수 없었다.
“창대에 매달아 볼까.”
창대 끝에 매달아 놓으면 그럭저럭 쓸 수 있을 듯했다. 그럼 마검이 아니라 마창이라고 불리게 되겠지만.
“미야, 이제 나가자.”
데미안의 말에 미야가 고개를 끄덕였다.
* * *
데미안은 미야를 트렁크에 집어넣은 뒤, 은닉처 밖으로 나갔다.
“오, 이제 오는구려.”
후안은 용병대와 옹기종기 모여 앉아서 데미안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가 자리에서 일어나자 다른 용병대원들도 모두 일어났다.
“볼일은 잘 해결되었소?”
“그럭저럭.”
“다행이구려.”
후안이 씩 웃으며 말했다. 그 이상은 캐묻지 않았다. 딱 용병의 귀감이었다.
“그 녀석은 어디에 있지?”
“아, 사람 죽이기 좋아하는 처자 말이오? 저기 있소.”
후안이 나무 밑동을 가리켰다. 베로니카 산체는 그곳에서 쭈그려 앉아 있었다.
“나 왔다.”
데미안이 가까이 다가갔다. 베로니카 산체가 멍한 얼굴로 데미안을 쳐다봤다.
“……나한테 인사하지 마.”
별안간 베로니카 산체가 쌩뚱맞은 소리를 해 댔다.
“갑자기 뭔 개소리냐.”
“약해…… 나는 약해…… 네 인사를 받아 줄 자격도 없어…….”
데미안이 지금까지 들어본 논리의 순환 중에서 제일 괴상했다.
“헛소리하지 말고 일어나라. 이제 돌아가야 한다.”
“날 내버려 두고 가…… 난 약해 빠져서 동행할 자격이 없어…….”
이쯤 되니 데미안도 슬슬 짜증이 나기 시작했다.
“맞고 갈 테냐 그냥 갈 테냐.”
“그냥 때려…… 나 같이 약한 놈은 얻어맞는 것밖에 할 수 없어…….”
데미안은 혀를 찼다.
기운이 넘치는 베로니카 산체도 귀찮았지만 기운이 없는 베로니카 산체는 더 귀찮았다.
“네가 한 가지 오해하고 있는 게 있군. 넌 약하지 않다.”
“거짓말…… 거짓말이야…….”
“네가 상대했던 플레시 골렘은 마력을 흡수하는 능력을 가지고 있었다. 칼로 베면 벨수록 마력을 빼앗기게 되어 있지. 그래서 네가 밀렸던 거다.”
베로니카 산체는 그게 무슨 상관이냐는 얼굴로 쳐다봤다.
“네가 놈에게 진 이유는 그런 특성을 빨리 파악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네가 약해서 진 게 결코 아니야.”
솔직히 말해서 그 정도 통찰력도 없으니 플레시 골렘 하나 상대하지 못한 게 맞긴 했다.
하지만 지금은 베로니카 산체의 뭉개진 자존심을 되살리는 게 중요하니 참아야 했다.
“네가 도적들을 죽일 때 보여 줬던 검술은 굉장히 훌륭했다. 나조차 몇 번이고 머릿속으로 되새겼을 정도였지.”
연이은 칭찬에 베로니카 산체의 귀가 쫑긋 했다.
“그런 검술을 가진 네가 약할 리가 없지. 네가 조금만 언데드에게 익숙해지면 그 정도 플레시 골렘은 네가 사람을 베듯 쉽게 벨 수 있을 거다.”
“……정말?”
“그래, 그러니까. 이제부터 사람을 죽이는 것에만 열중하지 말고 다양하게 노력해 봐라.”
데미안이 줄곧 하고 싶었던 말이었다.
“검술의 영역은 굉장히 넓다. 너 정도 되는 천재가 살인에만 몰두하는 건 아까운 일이지.”
이것만큼은 데미안의 진심이었다.
베로니카 산체는 데미안이 인정할 만큼 재능이 뛰어난 인물이었다.
다만, 그 재능이 오로지 사람을 죽이는 데에만 집중되어 있는 게 문제였다.
그 관심을 다른 곳으로 돌릴 수만 있다면, 그래서 인류를 위해서 싸우게 할 수만 있다면 엄청난 전력을 얻는 셈이었다.
“너…… 이름이 뭐야.”
베로니카 산체가 데미안을 쳐다보며 물었다.
데미안은 잠시 고민했다. 원래 데미안은 계속 정체를 숨기고 있었다.
하지만 지금 가명을 댄다면 베로니카 산체와의 인연이 완전히 끊어지게 된다.
“데미안 학센이라고 한다.”
고심 끝에 데미안은 본명을 대기로 했다. 베로니카 산체의 눈동자가 휘둥그레졌다.
“들어 본 적 있어…… 이번에 마상시합에서 우승했다는…… 네가 그 데미안 학센이었구나…….”
베로니카 산체의 표정이 몽롱해졌다.
“가장 죽이고 싶었던 사람이 너였는데…… 이렇게 만나게 될 줄은 몰랐어.”
그런데 어째 베로니카 산체의 반응이 이상했다.
“나는 네 덕분에 부족한 점을 깨달았어…… 이걸 극복하고 나면 나는 더…… 훨씬 더 강해질 거야…….”
말이 이어지면 이어질수록 베로니카 산체의 눈빛이 변하기 시작했다.
무기력했던 눈동자에 살기가 번졌다. 밝았던 눈동자가 어둡게, 질척질척하게 변했다.
“가장 죽이고 싶었던 상대한테 가르침을 얻다니…… 이건 운명이야! 하늘이 나한테 목표를 내려 주신 거야! 바로 널 죽이라고 말이야!”
마치 베로니카 산체가 살심에 물들었을 때랑 똑같았다. 그걸 본 순간, 데미안은 직감했다.
집착의 대상이 살인에서 데미안으로 바뀌었다는 것을 말이다.
“네가 나한테 깨달음을 준 것도 그것 때문이지? 날 더욱 강하게 만들어서 널 죽이라는 거야! 그치?”
“뭔 헛소리를…….”
“알겠어! 다른 것도 벨 수 있도록 노력할게! 지금보다 더 강해져서 다시 한번 더 너한테 도전할게!”
베로니카 산체가 주먹을 불끈 쥐며 말했다.
“반드시 널 죽일 테니까 날 지켜봐 줘!”
* * *
베로니카 산체와의 짧은 소동 이후에 데미안은 산맥을 내려가기 시작했다.
“넌 이제 가도 된다.”
가는 도중 데미안은 베로니카 산체를 풀어주기로 했다.
집착의 대상이 살인에서 데미안을 죽이는 것으로 바뀌었으니 괜찮을 것이라는 판단이 섰다.
“혹시 몰라서 말해 두는데 재미로 사람 죽이지 마라. 널 공격하는 놈들만 죽여.”
“아하! 네가 아니라 다른 사람을 죽일까 봐 걱정되는구나. 그렇지?”
그 말에 피로감이 몰려왔다. 베로니카 산체는 싱글벙글 웃으며 두 손을 흔들었다.
“걱정하지 마! 나한테는 너밖에 없어! 꼭 다시 죽이러 올게!”
그 말을 남기고 베로니카 산체는 산맥을 넘어서 도망쳤다.
“어…… 축하드리오?”
옆에서 있던 후안이 데미안에게 말했다. 데미안은 후안을 노려봤다.
“쓸데없는 소리는 그만하고 내려가자.”
“아, 알겠소.”
올라오는 것보다 내려가는 게 더 빨랐다.
서두른 덕분에 일행은 해가 저물기 때쯤에 올드 마을에 도착할 수 있었다.
“약속했던 돈이다.”
데미안은 약속대로 후안과 용병대에게 금화를 추가로 지급했다.
원래 한 닢을 더 주길 했지만 두 닢을 줬다.
“이건…… 너무 많소. 한 명당 금화 세 닢이라니.”
후안의 말에 데미안은 웃기만 했다.
산맥을 탐사하는 동안 데미안은 용병대와 함께 할 수 있어서 행복했다.
후안과 용병대는 데미안이 알던 그대로였다. 성실하고, 의리 있고, 정직했다.
“과하다 생각하지 마라. 이번 일은 나한테 정말 중요했으니까.”
“우리는 딱히 한 것도 없는데…….”
“왜 한 게 없나. 길잡이 역할을 훌륭하게 수행해 준 덕분에 산맥에 머물 시간이 짧아졌는데.”
데미안이 계속 권유하자 후안은 마지못해서 금화를 받았다. 용병대 전체의 얼굴에 함지박한 미소가 벌어졌다.
“그리고 이건 추가 보수다.”
데미안이 후안에게 두툼한 종이를 내밀었다. 산맥을 오르는 도중에 틈틈이 작성한 것이었다.
“이게 뭐요?”
“마나연공법과 검술이다.”
후안의 얼굴에 당혹감이 떠올랐다.
“이걸 대체 왜…….”
“보니까 다들 마나연공법을 익히고 있더군.”
그 말에 후안의 얼굴에 떠오른 당혹감이 더욱 커졌다.
“그, 그걸 어떻게…….”
“다들 미약하게 마력을 운용하고 있는데 어찌 모를까. 하지만 그 양이 너무 미약하더군. 아마 불완전한 마나연공법을 익히고 있었겠지.”
전생에 후안은 자신이 알고 있던 마나연공법을 동료들에게 알려 줬다.
문제는 그 마나연공법은 후안이 기사훈련생 시절에 배운 기초 중의 기초라는 데에 있었다.
그렇게 수준 낮은 마나연공법은 아무리 익혀도 한계가 있었다.
전생의 데미안은 재능이 워낙 뛰어났기 때문에 후안이 알려 준 마나연공법으로도 기사를 이길 수 있었지만.
“지금 익히고 있는 건 버리고 그걸 익히는 게 좋을 거다.”
사실 데미안이 건넨 마나연공법은 후안에게 배운 것을 기본으로 만든 것이었다. 그래서 바꿔서 익혀도 전혀 문제가 없었다.
“……호의는 고맙소만 이건 받을 수 없소.”
후안이 종이를 다시 내밀었다. 경계심 가득한 태도였다.
현명한 자세였다. 마나연공법은 금화 수십 개가 있어도 살 수 없는 물건이었다.
그걸 이렇게 턱 내미는 사람이 정상일 리 없었다. 나쁜 꿍꿍이가 있을 게 분명했다. 의심해야 옳았다.
‘난 순수한 호의지만.’
데미안은 쓴웃음을 지었다. 후안의 현명함이 언젠간 독이 되어 돌아올 수도 있었지만, 변치 않고 올곧은 모습에 데미안은 그들을 좋아했다.
“공짜로 주는 건 아니다. 너희들에게 부탁할 게 하나 있다.”
“부탁?”
“일단 내 정체를 비밀로 해 줄 것, 두 번째로 의뢰를 하나 더 받아 주길 바란다.”
“정체라니?”
“난 빅터가 아니라 데미안 학센이다.”
그 말에 후안의 몸이 덜컥 굳었다. 믿기 힘들다는 얼굴로 데미안을 가리켰다.
“빅터가 아니라…… 데미안 학센? 설마 그 데미안 학센?”
“그 데미안 학센이 맞다.”
“세상에…… 그렇다면 다 납득이 가지…… 그 실력도, 성검도…… 소문대로 대단한 천재였구려.”
후안은 양 손바닥으로 자신의 볼을 팡팡 때렸다.
“그래서 두 번째 의뢰란 무엇이오?”
“데번 호수를 알고 있나?”
“애플 왕국 남부에 있는 호수가 아니오. 엄청 크고 넓다던데.”
“만약 그곳에서 실종 사건을 조사해 달라는 의뢰를 발견하면 즉시 학센 자작가에 와서 내게 알려라.”
전생에 데미안은 용병대와 그 실종 사건을 조사하러 갔다가 도르고를 만났다.
그럼에도 데미안이 데번 호수를 조사하지 않은 이유는 아직 때가 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도르고는 한 장소에 머무르지 않고 계속 유랑했다. 지금 가 봤자 소용이 없었다.
“겨우 그 정도 의뢰를 해결하는 대가로 마나연공법을 주겠단 말이오……?”
“겨우 그 정도가 아니다. 내게는 무엇보다 중요한 의뢰다.”
데미안이 진지한 목소리로 말했다.
데미안은 용병이 아니기 때문에 용병 사무소에 이런 부탁을 할 수 없었다.
그렇다고 다른 용병에게 의뢰할 수도 없었다. 돈만 받고 잊어버릴 게 분명했다.
그러나 후안이라면 믿을 수 있었다. 맡은 의뢰를 어떻게 해서든 완수하려고 하니까 말이다.
“무슨 사정인지는 모르겠지만…… 그런 이유라면 받아들이겠소.”
후안이 종이를 챙기며 말했다. 데미안은 안도의 미소를 지었다.
“열심히 익히도록 해. 어지간한 것들보다 훨씬 뛰어나니까.”
이틀 동안 급하게 만들어 내긴 했지만 완성도에는 자신 있었다.
스승이 없어도 익힐 수 있을 만큼 최대한 단순하게 만들었다.
그러면서 위력은 어느 무기술과 비교해도 부족함이 없도록 했다.
“혹시 익히다가 막히면 학센 자작가로 와라. 내가 도와주마.”
데미안은 마지막으로 그런 말을 남긴 뒤, 후안의 용병대와 헤어졌다.
이제 집으로 돌아갈 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