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turn of the Calamity-Class Death Knight RAW novel - Chapter (81)
멸망급 데스나이트가 회귀함 81화
81화 불청객 (2)
리암 블루그린.
애플 왕국의 명문 기사 가문으로 유명한 블루그린 후작가의 가주.
동시에 애플 왕국에 단 세 명밖에 없다는 하이클래스로서 오직 왕가에만 충성을 바치는 인물이었다.
그 외에 데미안이 리암 블루그린에 대해서 알고 있는 정보는 많지 않았다.
데미안이 데스나이트로 개조되어 활동할 당시에는 이미 고인이 되어 버렸기 때문이다.
“그렇게 대단하신 분께서 왜 이런 짓을 벌이신 겁니까.”
저쪽에서 정체를 밝힌 이상, 하대를 할 수는 없었다.
대신 데미안은 최대한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얼굴로 리암 블루그린을 쳐다봤다.
“자네의 진짜 실력을 확인해 보고 싶었다네.”
“그럼 대련이라도 시키지 그러셨습니까.”
“‘진짜’ 실력이라고 하지 않았나. 대련 같이 미적지근한 걸로는 진짜 실력을 알 수 없는 법이지.”
어처구니없는 소리에 데미안의 미간이 더욱 좁아졌다.
“그래서 가족들을 인질로 삼는 척하는 촌극을 벌이신 겁니까?”
“너무 화내지 말게. 자네 부친께 다 설명을 드리고 허락까지 받았으니까.”
그 말에 데미안은 자신도 모르게 손바닥으로 얼굴을 쓸었다.
“그러다 수하가 죽으면 어쩔 뻔하셨습니까.”
“그래서 내가 적절할 때 끼어들지 않았나. 걱정할 건 아무것도 없다네.”
리암 블루그린이 생글생글 웃으며 말했다. 데미안은 실소가 새어 나오려는 것을 꾹 참아야 했다.
이 자는 알까. 데미안이 마음만 먹었으면 리암 블루그린이 나서기 전에 수하를 죽일 수 있었다는 사실을 말이다.
“그리고 이 녀석은 수하가 아닐세. 내 아들이자 수제자라네. 워낙 튼튼한 놈이라 어지간해서는 죽지 않아.”
리암 블루그린은 껄껄 웃으며 남성을 향해 말했다.
“도베르, 그렇지 않느냐?”
그러나 남성은 아무 말 없이 몸만 부르르 떨었다. 그제야 리암 블루그린은 뭔가 이상하다는 것을 눈치챘다.“
“도베르?”
“아, 아버지…… 포, 포션 좀…… 꿰엑!”
남성은 간신히 한 마디를 내뱉고 고개를 떨궜다.
“아, 아니 이 녀석이 갑자기 왜 이래. 도베르! 정신 차려라!”
리암 블루그린은 황급히 품에서 포션을 꺼내 남성의 입에 흘려보냈다.
그걸로도 부족하다고 판단했는지 남성의 몸을 주무르며 마력을 주입했다. 추궁과혈이라 부르는 치료법이었다.
“이, 이 녀석아. 왜 이렇게 정신을 못 차려!”
그래도 남성의 혈색은 정상으로 돌아오지 않았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데미안은 복부를 걷어차는 순간, 마력을 방출해서 내부까지 타격을 입혔다.
죽지는 않겠지만 완치되려면 적어도 몇 주는 요양해야 할 부상이었다. 쉽게 나을 리가 없었다.
한참 뒤에야 남성은 정신을 차리고 몸을 일으켰다. 고개를 들자마자 자신을 빤히 쳐다보고 있던 데미안과 눈이 마주쳤다.
“인사드리겠습니다! 도베르 블루그린이라고 합니다!”
그 즉시 도베르는 허리를 꾸벅 숙였다. 완전히 달라진 태도에 데미안은 어안이 벙벙했다.
“험하게 말해서 죄송합니다! 아버지께서 데미안 경을 최대한 도발하라고 말씀하셔서요!”
도베르가 순진한 얼굴로 뒷머리를 긁적였다.
“이 녀석아, 그렇게 쉽게 지면 어떻게 하냐. 이 아비의 체면이 뭐가 되냔 말이야.”
“면목 없습니다! 앞으로 더 열심히 수련에 매진하겠습니다!”
“당연히 그래야지. 강도를 두 배로 높일 테니까 그렇게 알아라.”
“옙!”
도베르가 큰소리로 대답했다. 이름 그대로 커다란 개가 떠오를 정도로 활기찬 모습이었다.
“그럼 데미안 경, 자네의 실력도 확인했으니…… 본격적인 이야기를 시작해 볼까?”
리암 블루그린의 눈빛이 진지해졌다.
역시 하이클래스씩이나 되는 인물이 순수하게 데미안의 실력을 확인해 보기 위해서 행차했을 리가 없다.
“일단 안으로 들어가서 이야기하도록 하지.”
데미안은 두 사람과 함께 응접실로 돌아왔다.
응접실 내부의 분위기는 방금 전과는 완전히 달랐다.
가족과 괴한들이 서로 자리에 앉아서 차와 디저트를 먹으며 담소를 나누고 있었다.
“오, 데미안. 왔느냐.”
아버지가 손을 흔들며 말했다. 데미안은 그런 아버지를 흘겨봤다.
“아버지, 아들을 걱정시켜 놓은 거 치곤 팔자 한번 좋으십니다.”
“너만 하겠느냐. 이 아비를 속이고 밖으로 나돌아다녔으면서.”
그 말에 데미안은 말문이 막혔다. 잘잘못을 따지자면 데미안 쪽이 훨씬 불리했던 것이다.
“……이번에는 제가 이해하고 넘어가겠습니다.”
“헛소리하지 말고 앉기나 해라.”
데미안은 빈자리에 엉덩이를 붙이고 앉았다. 리암 블루그린과 도베르도 의자에 앉았다.
“리암 경, 볼일은 끝나셨습니까.”
“학센 공 덕분입니다. 아까 보니까 연기력이 수준급이던데요. 수도 극단의 배우들도 학센 공 앞에서는 한 수 접어야겠습니다.”
두 사람은 그리 말하며 큰소리로 웃었다. 데미안은 어처구니가 없다는 얼굴로 두 사람을 쳐다볼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본론이 뭡니까.”
“참, 깜빡할 뻔했군.”
데미안의 물음에 리암 블루그린이 찻잔을 내려놓으며 말했다.
“데미안 경, 백마 기사단에 입단하지 않겠나?”
* * *
기사단이란 기사들로만 이루어진 전투 집단을 뜻했다.
기사 한 명을 키우는 데 들어가는 비용과 절차를 생각한다면, 개인이나 민간 단체가 기사단을 운영하기엔 까다로운 점이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그런 이유로 골드픽시 공작가, 라이언블룸 후작가 같은 대귀족이 아니고서는 기사단을 운영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라는 게 상식이었다.
그중 백마 기사단은 애플 왕국에서 직접 운영 중인 왕립기사단으로 오랜 역사를 가지고 있다.
또한 애플 왕국의 핵심 전력으로 그만큼 많은 지원을 받는 곳이기도 했다.
어렸을 때부터 무(武)에 뜻을 두었던 애플 왕국의 기사들이라면 누구나 입단하기를 희망하는 꿈의 기사단이었다.
“죄송하지만 사양하겠습니다.”
그러나 데미안은 일말의 고민도 하지 않고 거절했다.
거절은 상정하지 못했는지. 리암 블루그린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었다. 다른 가족들도 똑같은 반응이었다.
“이유를 물어봐도 되겠나?”
“아직은 어디에도 소속되고 싶은 생각이 없습니다.”
그렇게 말하기는 했지만 사실 백마 기사단에 큰 흥미를 느끼지 못했기 때문이다. 입단한다고 해도 데미안에게 메리트가 될 만한 것도 없었다.
“하하핫, 이거야 원…… 거절 당할 줄은 몰랐군. 자네를 설득하게 될 줄은 더더욱 몰랐어.”
리암 블루그린이 당황스럽다는 듯 볼을 긁적였다.
“백마 기사단은 애플 왕국 최고의 기사단이라네. 입단하게 되면 그만큼 많은 혜택을 받을 수 있게 되지. 무구는 물론이고 영약까지 지급받을 수 있다네.”
영약.
지금 데미안에게 있어서 가장 필요한 물건이었다.
하지만 필요할 뿐, 절실하지는 않았다. 영약을 구할 수 있는 방법은 굉장히 많았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지금 데미안에게는 신성 교단의 비고를 들릴 수 있는 기회가 남아 있었다.
교단의 비고는 억만금을 줘도 구할 수 없을 만큼 대단한 영약들이 가득 쌓여 있는 곳이었다.
그걸 생각하면 기사단에서 지급될 영약 따위는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이것 외에도 자네가 기사단에 입단해야 할 이유는 하나 더 있다네.”
리암 블루그린이 진중한 어조로 말을 이어 나갔다.
“지금 애플 왕국에는 자네를 의심하는 사람들이 굉장히 많아. 나만 해도 그랬지. 물론 한 번이라도 자네를 겪어 본다면 납득하겠지만…… 소문이란 생각보다 느리게 퍼지는 법이라네. 믿기 힘든 소문은 특히 더 그렇고.”
데미안의 성장 속도를 생각하면 누구라도 의심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검을 잡은 지 몇 달이 채 되기도 전에 미들클래스라는 경지에 올랐으니 말이다.
“자네를 시험하려는 자, 시기하는 자, 이용하려는 자…… 온갖 귀찮은 벌레들이 꼬일 걸세. 그들을 털어내는 것도 쉽지 않을 일일 테지.”
공감한다는 듯 데미안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 행동을 본 리암 블루그린의 표정이 밝아졌다.
“내 말을 이해한 모양이군. 그럼 백마 기사단에 입단하는 것으로 알겠네.”
“아뇨, 그럴 생각은 없는데요.”
데미안의 말에 리암 블루그린이 앓는 소리를 냈다.
“다시 설명해 줘야 이해할 생각인가?”
“리암 경의 말씀은 다 이해했습니다. 그래도 저는 조직에 소속되는 것이 영 끌리지 않는군요.”
조직의 지원을 받는다는 것은 편리한 만큼 의무와 책임이 뒤따르기 마련이다.
데미안에게는 도르고의 계획을 막아야 한다는 중요한 사명이 있었다. 애플 왕국에 얽매여 있을 수는 없었다.
“벌레들이 꼬일 것을 걱정하셨죠. 그건 좀 귀찮겠지만 감당 못할 것도 없습니다.”
몇 놈 쥐어패다 보면 사람들도 납득하기 시작할 것이다.
데미안 학센에 관한 소문이 가짜가 아니라 진짜라는 것을 말이다.
“허헛, 이거 골치 아프게 되었군. 대박이 확정된 복권을 낼름 집어삼킬 수 있는 기회라고 생각했는데.”
데미안의 말에 리암 블루그린은 턱을 매만지며 고민에 잠겼다.
“알겠네. 기사단에 가입하면 내 모든 것을 전수해 주도록 하겠네. 이래도 입단할 생각이…….”
“없습니다.”
데미안의 단호한 대답에 리암 블루그린은 큰 충격에 빠진 표정을 지었다.
“자네…… 혹시 모르는 건가? 나는 하이클…….”
“알고 있습니다. 그래도 생각은 없습니다.”
연이은 거절에 리암 블루그린은 더더욱 충격받은 표정을 지었다.
“……그래도 안심했네. 자네가 다른 기사단에 들어갈 생각도 없는 것 같아서 말이야.”
데미안 같은 인재를 놓치는 것은 애플 왕국으로서도 뼈 아픈 손실이었다.
하지만 데미안이 어디에도 소속되지 않는다면 최소한 손해를 보지는 않을 수 있었다.
“그럼 데미안 학센, 애플 왕국의 기사로서 국왕 전하의 명을 받을 생각은 있는가?”
“생각이야 하고 있습니다.”
데미안은 두루뭉술하게 대답했다.
조건만 맞으면 들어주지 못할 것도 없었다. 반대로 말하자면 조건이 맞지 않으면 할 생각이 없었다.
“사실 국왕 전하께서 자네에게 꼭 맡기고 싶다고 의견을 피력하신 임무가 하나 있다네. 그래서 이번에 내게 반드시 자네를 데려오라고 하셨지.”
“전하께서요?”
굳이 데미안을 콕 집었다는 점에서 불길한 예감이 살짝 들었다.
데미안은 내색하지 않고 리암 블루그린의 말에 집중했다.
“원래대로라면 자네를 기사단에 입단시키고 이 임무를 맡길 생각이었네만…….”
그 말에 데미안은 자신도 모르게 인상을 찡그렸다.
기사단에 입단시키자마자 일을 맡길 생각이었다니. 역시 입단하지 않은 게 현명했다.
“일이 이렇게 됐으니 임무만이라도 맡아줬으면 하는군.”
“대체 무슨 임무인데 그러시는 겁니까?”
“왕세자 저하의 검술지도역을 맡아 줄 수 있겠나?”
순간, 데미안은 귀를 의심했다. 너무 의외의 단어가 튀어나왔던 것이다.
“검술…… 뭐라고요?”
“검술지도역. 간단히 말해서 검술 교사일세. 당분간 왕성에 머무르면서 왕세자 저하를 지도해 주기만 하면 끝이지.”
생각보다 너무 쉬운 임무였다. 하지만 데미안은 석연치 않은 느낌을 받을 수밖에 없었다.
“왜 굳이 저를 초빙하시는 겁니까? 수도라면 뛰어난 교사가 많을 텐데요.”
“여기부터는 좀 비밀스러운 이야기라…… 외부인에게 말하기는 곤란하군.”
즉, 더 듣고 싶으면 임무를 수락하라는 뜻이었다.
데미안이 더더욱 의심스럽다는 얼굴로 리암 블루그린을 쳐다봤다.
“아, 그렇지. 이걸 빼먹을 뻔했군. 자네가 검술 교사직을 수락한다면 국왕 전하께서 그에 합당한 보답을 하실 거라네.”
“보답이요?”
리암 블루그린의 입에서 나온 말 중에서 유일하게 귀가 솔깃해지는 단어였다.
“원래 자네가 기사단에 입단을 하게 되면 전하께서 학센 자작가에 백작위를 내리실 계획이셨다네.”
그 말에 되레 학센 자작이 깜짝 놀라서 리암 블루그린을 쳐다봤다.
애플 왕국은 왕권이 제법 강한 국가였다. 왕이 내리는 작위에 따라서 귀족들의 권리도 조금씩 달라졌다.
특히 백작위는 남작, 자작과 달리 권리가 대폭 확대되는 굉장히 이름 높은 작위였다. 그만큼 백작의 작위를 가진 귀족은 흔치 않았다.
괜히 대귀족들 모두가 백작이라는 지위를 가지고 있는 게 아니었다.
“물론 자네는 기사단에 가입할 생각이 없지. 하지만 검술 교사직을 수락한다면 내가 전하께 말씀드려서 백작위를 하사받을 수 있도록 하겠네.
백작위.
사실 냉정하게 따지고 보면 데미안에게 직접적으로 이득이 되는 것들은 아니었다.
하지만 가족들에게 이득이 되는 것만은 확실했다. 그것만으로도 이 제안을 수락할 가치는 충분했다.
문제는 국왕 쪽에서 왜 굳이 이런 조건을 내걸었냐는 점이었다.
‘애플 왕국의 왕세자라…… 아마 이름이 올리버 애플이었나?’
과거의 기억을 더듬어 봤지만, 딱히 생각이 나는 게 없었다.
망나니 시절에는 유흥을 즐기느라 관심을 두지 않았고, 거지로 살 때는 구걸을 하느라 정신이 없었다. 용병일 때는 너무 바빴다.
그래서 데미안은 애플 왕가에 대해서 아는 것이 별로 없었다.
하지만 딱 하나, 애플 왕가에서 벌어지는 사건 하나는 알고 있었다.
‘분명히 이 시기에 왕성이 습격을 당했지.’
외부에서 적이 쳐들어온 게 아니었는데 갑자기 왕성이 공격을 받는 사태가 발생했다.
왕성에 있던 사용인들은 급히 밖으로 도망쳤고, 기사들과 병사들만 남아서 침입자들과 싸웠다고 한다.
‘왕가에서는 침입자들을 몰아내기는 했지만, 국왕이 사망하고 말았고.’
선왕이 사망하게 되고, 그 뒤를 이어서 왕위에 오른 것이 지금의 왕세자 올리버 애플이었다.
리암 블루그린에게 천재라고 평가받는 것과 별개로 올리버 애플은 국정을 제대로 보지 못했다.
‘아마 너무 갑작스럽게 왕위를 물려받아서 그랬겠지.’
준비되지 않은 젊은 국왕은 애플 왕국을 크게 피폐하게 만들었다.
그 탓에 훗날 도르고와의 전쟁에서 애플 왕국은 큰 힘을 쓰지 못하고 순식간에 함락당했다.
‘다른 나라면 몰라도 애플 왕국이 흔들리는 건 곤란하지.’
데미안은 딱히 미래에 벌어지는 모든 사건을 막을 생각은 없었다. 그럴 만한 사명감도 없을 뿐만 아니라 불가능한 일이기도 했다.
하지만 애플 왕성의 습격은 달랐다. 애플 왕국은 가족들이 터를 잡고 있는 곳이었다.
왕국이 흔들린다는 것은 가족들이 고통받는 것과 똑같았다. 가만히 지켜볼 수는 없었다.
‘단순하게 생각해 보면 그냥 검술 교사로 불려가는 것뿐이니까 그리 어렵지 않을 거야.’
사실 어려워도 상관없었다. 지금 데미안에게는 사람을 갱생시킬 수 있는 좋은 대화 수단이 있지 않던가.
“리암 경, 국왕 전하의 뜻을 받들겠습니다.”
데미안의 대답에 리암 블루그린이 씩 웃었다.
“왕성으로 오게 된 걸 축하하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