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turn of the Calamity-Class Death Knight RAW novel - Chapter (82)
멸망급 데스나이트가 회귀함 82화
82화 왕세자 (1)
그렇게 데미안의 수도행이 결정되었다.
“내 아들이 전하의 부름을 받고 수도로 올라가게 되다니!”
“여보, 정말 기쁜 날이에요.”
아버지와 어머니의 반응은 엄청났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학센 자작가는 대대로 국왕을 지지하는 가문이었다.
대대로 충성을 바치던 당사자에게 선택을 받은 상황이니 기뻐하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
“데미안! 가서 열심히 하고 와야 한다! 다른 사람도 아닌 왕세자 저하를 가르치는 일이지 않느냐!”
무엇보다 역사적으로 새로운 국왕이 왕위에 올랐을 때, 그 스승이 실세를 차지했던 경우가 많았다.
그러한 이유로 왕세자의 지도 역할은 누구나 탐을 내는 자리였다.
부모님은 그런 정치 셈법을 이미 알고 있었으니 더 기뻐하고 있었다.
“예, 뭐, 열심히 하도록 하죠.”
정작 당사자인 데미안은 시큰둥했지만.
데미안에게 이번 일은 가문을 위해서 일을 하는 것일 뿐이었다.
딱히 국왕에게 충성을 바칠 생각이 없었기에 별다른 감흥이 없었다.
“데미안, 몸조심해야 해. 타지에 가면 물이나 음식이 몸에 맞지 않는다던데. 음식을 잘 가려서 먹어야 하고.”
“누님, 형님이 애도 아니고 다 알아서 하시겠죠.”
“아주버님, 잘 다녀오세요.”
루이즈와 아벨, 그리고 제수인 올리비아 코퍼헤드와 인사를 나눈 뒤, 데미안은 기사단과 함께 왕성으로 떠났다.
* * *
데미안은 기사단과 함께 말을 타고 왕성으로 향했다.
백마 기사단이라는 이름과 달리 단원들이 타고 있는 말들은 색이 제각각이었다.
“데미안 경, 올리버 저하에 대해서 얼마나 알고 있나?”
계속 말을 타는 것이 무료했는지. 리암 블루그린이 데미안에게 물었다.
“많이 알고 있지는 못합니다.”
사실 이름만 아는 수준에 불과했지만 대놓고 그렇게 말할 수는 없었다.
“하긴 수도의 사람이 아닌데. 그 이상을 알고 있는 건 힘든 일이지.”
리암 블루그린은 턱수염을 매만지며 말을 이어 나갔다.
“올리버 저하께서는 국왕 전하의 젊은 시절을 꼭 빼닮은 분이라네. 짙은 갈색 머리카락에, 금색 눈빛…… 심지어 장난스러운 입매마저 쏙 빼닮았어.”
리암 블루그린의 눈동자가 살짝 몽롱해졌다. 과거를 추억하는 듯했다.
“그뿐만이 아니야. 총명함까지 그대로 물려받으셨다네. 아무리 두꺼운 책이라 해도 두세 번만 보면 모든 내용을 암기하시더군. 심지어 모든 내용을 완벽하게 이해한 채로 말이야.”
“그렇다면 지도하는 게 어렵지 않겠군요.”
머리가 좋은 것과 몸을 쓰는 것은 별개의 일이었다.
그래도 영리한 사람은 이해력도 뛰어난 편이니 검술을 가르치기는 쉬울 듯했다.
“글쎄 과연 그럴까.”
리암 블루그린이 묘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데미안 경, 자네가 마음에 드니까 미리 경고해 두는 거시네만…… 마음 준비를 단단히 하는 게 좋을 걸세.”
“예?”
“자네가 물었지. 수도에도 검술교사들이 많은데 왜 굳이 전하께서 자네를 불렀냐고. 거기에는 다 그만한 이유가 있는 법이지.”
리암 블루그린의 입가에 떠오른 미소가 더더욱 짙어졌다.
“대체 저하께서 어떻기에 그런 말씀을 하시는 겁니까?”
“그건 미리 말해 두면 재미가 없지. 그렇지 않나?”
그리 말하며 리암 블루그린이 한쪽 눈동자만 깜빡였다.
데미안은 어이없다는 얼굴로 리암 블루그린을 쳐다봤다.
“어허, 더 이상 물어보지 말게. 나는 즐거움을 빼앗는 그런 나쁜 사람이 되고 싶지 않으니 말이야.”
리암 블루그린이 단호한 어조로 말했다. 데미안은 더더욱 어이가 없어졌다.
상대방이 저렇게 나오는데 데미안이라고 뾰족한 수가 있는 건 아니었다.
무엇보다 악착같이 대답을 듣고 싶을 만큼 궁금한 거도 아니었다.
‘애플 왕국의 왕세자라…….’
과거의 기억을 더듬어 봐도 생각이 나는 게 별로 없었다.
‘뭐, 마음에 안 들면 몽둥이라도 들면 되겠지.’
마침 살망귀 베로니카 산체를 갱생시킬 때 사용했던 몽둥이가 아공간에 남아 있었다.
왕세자한테 사용하기에는 조금 무시하게 생기긴 했지만 조금 다듬으면 될 일이었다.
‘그보다 문제는 왕성 습격을 어떻게 막느냐는 건데.’
기이하게도 왕성 습격에 관해서는 알려진 바가 거의 없었다.
가뜩이나 목격자들도 적은데. 애플 왕가에서 모든 것을 은폐했기 때문이다.
‘검술 교사 노릇보다는 이쪽이 골치 아플 것 같단 말이지.’
데미안은 말 위에서 생각에 잠겼다.
* * *
일주일을 꼬박 이동한 끝에 데미안과 백마 기사단은 왕성이 있는 수도에 도착할 수 있었다.
“데미안 경! 수도에 입성한 걸 축하하네!”
리암 블루그린이 말 위에서 양팔을 벌리며 소리쳤다. 그 호쾌한 목소리에 지나가던 사람들의 시선이 집중되었다.
“살면서 수도에 와 본 적이 있는가?”
“아뇨, 처음입니다.”
어디까지나 이번 생에는 처음이라는 소리였다. 저번 생에 딱 한 번 방문한 적이 있었다.
“하핫, 그렇군. 와 보니 어떠한가? 정말 대단하지 않은가?”
데미안은 고개를 들어서 수도의 거리를 둘러봤다.
성문에서 이어지는 대로는 대단히 넓었다. 좌우로는 3~4층의 건물들이 즐비하게 서 있었다.
지나가는 사람은 얼마나 많은지 마치 개미 떼를 보는 것 같았다.
“…….”
문득 전생에 봤던 풍경이 떠올랐다.
데스나이트 시절, 데미안은 도르고의 명령에 의해서 손수 이 거리를 박살 냈다.
언데드들에게 명령을 내려서 시민들을 학살했으며, 오러블레이드를 방출해 건물들을 모조리 무너뜨렸다.
거리를 피와 비명으로 물들이며 왕성으로 진격했다.
“데미안 경? 갑자기 표정이 안 좋군.”
리암 블루그린이 걱정스럽게 말했다. 그 말에 데미안은 퍼뜩 정신을 차렸다.
“아무것도 아닙니다.”
“흐음…… 몸이 안 좋으면 빨리 말하게나. 병은 놔두면 더 커지는 법이야.”
데미안은 심호흡을 했다. 맑은 공기를 들이마시고 나니 정신이 조금 맑아졌다.
* * *
왕성에 도착한 데미안은 곧바로 국왕을 알현하게 되었다.
“아니, 그냥 이렇게 전하를 뵈어도 되는 겁니까?”
그것도 여행복을 입은 상태 그대로 말이다.
“하하핫, 걱정 말게. 전하께서는 그런 걸 문제 삼는 분이 아니니 말이야.”
데미안은 영 못마땅한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리암 블루그린에게는 씨알도 먹혀들지 않았다.
“그럼 전하를 뵈러 갑세. 이 시간쯤이면 아마 서재에서 독서를 즐기고 계실 거라네.”
리암 블루그린은 데미안을 데리고 왕성 내부를 이동했다.
한참을 이동하다가 기사 두 명이 지키고 있는 문 앞에 섰다.
“전하, 리암 블루그린입니다. 데미안 경과 함께 귀환했나이다.”
리암 블루그린이 문을 두드리며 말했다. 잠시 침묵이 감돌았다.
“들어오게.”
허락이 떨어지자 두 사람은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갔다.
안으로 들어가자 가장 먼저 천장에 닿을 정도로 높은 책장들이 눈에 들어왔다.
책장들은 한두 개가 아니었다. 방 전체를 가득 채우고 있었다.
그 한가운데.
넓고 거대한 책상에 통통한 체형의 노인이 앉아 있었다.
“오, 리암 경! 먼 길을 다녀오느라 고생이 많았네! 힘들지는 않았는가?”
국왕이 자리에서 일어나며 말했다. 얼굴과 목소리에서 반가움이 묻어나왔다.
국왕의 환대에 리암 블루그린의 얼굴에도 웃음꽃이 활짝 피어났다.
“고생이라니요. 전혀 아닙니다. 전하의 명을 따를 수 있는 것만으로도 저에게는 행복한 일입니다.”
“리암 경은 정말이지 내게 과분한 기사일세.”
국왕과 리암 블루그린은 서로를 바라보며 크게 웃었다.
한참을 웃던 국왕은 이내 데미안 학센을 발견했다.
“설마 이쪽이…….”
“예, 맞습니다. 데미안 학센 경입니다.”
“자네가 데미안 경을 데려왔다는 소리는…… 소문대로 미들클래스가 맞다는 소리로군?”
“예, 전하. 데미안 경에 대한 소문은 사실이었습니다. 아니, 오히려 부족한 감이 있더군요.”
국왕은 놀란 얼굴로 데미안을 바라봤다. 이윽고 감격스럽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데미안 경, 자네 같이 뛰어난 기사가 백마 기사단에 합류해 줘서 얼마나 기쁜지…….”
“전하, 사실은…… 기사단 합류는 불가하다고 합니다.”
“응? 그럼 왜 온 거야?”
“그것이…….”
리암 블루그린이 국왕의 귓가에 작은 목소리로 속삭이기 시작했다. 말이 길어질수록 국왕의 눈동자가 커졌다.
“……뭐, 기사단에 입단하지 않은 건 좀 아쉽네만 어쨌든 만나게 되어서 정말 반갑네.”
국왕이 다가와서 데미안에게 손을 내밀었다. 데미안은손을 맞잡으며 고개를 숙였다.
“뵙게 되어 영광입니다.”
“나야말로 영광이지. 역사에 이름을 새길지도 모르는 인재와 한자리에 있지 않나.”
데미안은 국왕을 바라보며 신기함을 느꼈다.
국왕이라는 지위에 있으면서도 권위나 허물이 느껴지지 않았다. 마치 친근한 이웃을 마주하고 있는 듯했다.
“데미안 경, 리암 경의 말을 들어보니 기사단에 입단은 하지 않더라도 내 부탁을 들어줄 생각인 것 같네만…… 맞는가?”
“그렇습니다.”
“허허헛, 이렇게 기쁜 소식이 있나…… 일단 앉아서 이야기하도록 하지.”
국왕은 책상 맞은편에 있는 의자에 두 사람을 앉혔다.
“데미안 경, 사실 본인은 그대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을 때부터 꼭 왕성으로 초청하고 싶었다네.”
상상치도 못한 고백에 데미안은 조금 당혹감을 느꼈다.
“자네 입장에서는 불쾌할지도 모르는 소리네만…… 얼마 전까지만 해도 평판이…… 그리 좋지 못했다고 들었거든.”
“사실 그리 좋지 못한 수준이 아니라 최악이었죠.”
데미안이 웃으며 말하자 국왕도 큰소리로 웃었다.
“그런데 불과 반년이 채 지나기도 전에 이렇게 훌륭하게 바뀌었지.”
“노력을 좀 했습니다.”
“본인이 그대에게 기대하는 게 바로 그것이라네.”
뜬금없는 소리에 데미안은 의뭉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자네가 달라질 수 있었던 방법을 우리 왕세자에게…… 그러니까 왕세자를 좀 바꿀 수 있도록…….”
국왕의 설명이 이어지려던 찰나였다.
-리암 경이 돌아왔다면서? 옆에 무슨 이상한 놈을 데리고서!
-저하! 이러시면 안 됩니다! 지금 전하께서는 손님을 맞이하고 계십니다!
-놔! 막지 마! 어디서 감히 내 몸에 손을 대!
갑자기 밖이 소란스러워졌다. 거친 발걸음 소리와 다수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다 들었어! 걔가 이번에 아버지가 새로 고용한다는 검술 교사잖아! 내가 그 꼴을 두고 볼 줄 알아!
목소리가 가까워질수록 국왕의 얼굴이 참담해졌다.
쾅,
문을 걷어차는 소리와 함께 서재의 문이 벌컥 열렸다. 열린 문으로 청년 한 명이 모습을 드러냈다.
앳되어 보이는 외모와 달리 수염이 듬성듬성 자라 있고, 옷매무새도 지저분했다.
설상가상으로 청년에게서 이상한 냄새가 풍겨오기까지 했다.
‘술 냄새랑 분 냄새…… 방금 전까지 즐기다 왔구먼.’
데미안에게는 익숙한 냄새들이었다. 문제는 저 냄새를 왜 왕성에서 풍기고 있냐는 것이었다.
“아버지! 내가 말했잖아요! 더 이상 아무 교사도 들이지 말라고!”
청년이 서재 안으로 성큼성큼 들어왔다. 불쾌한 냄새가 더욱 커졌다.
“이게 무슨 교양 머리 없는 행동이냐! 이러고도 네가 한 나라의 왕세자라고 할 수 있느냐!”
국왕이 격노하며 소리쳤다. 그러나 청년은 조금도 겁먹지 않았다.
“말 돌리지 마시라고요! 대체 왜 또 내 말을 무시하시냔 말이에요!”
“이 녀석이 그래도!”
국왕과 청년은 서로 목소리를 높이며 싸우기 시작했다.
두 사람을 가만히 지켜보던 데미안이 리암 블루그린에게 물었다.
“설마…… 아니죠?”
“맞다네.”
항상 생글생글 웃던 리암 블루그린의 얼굴이 지금 만큼은 깜짝 놀랄 정도로 굳어 있었다.
“저분이 바로 올리버 애플 왕세자 저하이시네.”
리암 블루그린은 잠시 고민하다가 한 마디를 덧붙였다.
“보다시피…… 망나니 같은 분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