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turn of the Calamity-Class Death Knight RAW novel - Chapter (86)
멸망급 데스나이트가 회귀함 86화
86화 은밀한 외출 (2)
“저하의 명을 따르겠습니다!”
제임스 존 경은 큰소리로 외쳤다. 굉장히 믿음직스러운 모습이었다.
반면 데미안은 피곤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왕자 교육시키기만으로도 바빠 죽겠는데. 불필요한 충돌을 일으키고 싶지 않았다.
“난 저하의 검술지도역을 맡고 있는 데미안 학센이라고 한다. 저하께 해를 끼칠 생각은 없으니 비켜라.”
“아니야! 거짓말이야! 속지 마! 저딴 폭력배가 검술지도역은 무슨!”
올리버 애플이 발작하듯이 소리쳤다. 데미안은 왕자에게 짧게 말했다.
“저하, 세 시간으로 늘리겠습니다.”
그러자 왕자의 두 눈동자가 크게 흔들렸다.
“데미안 학센이라고?”
데미안이 이름을 밝히자 제임스 존이 두 눈동자를 빛냈다.
“설마 소문으로만 듣던 그 데미안 학센은 아니겠지?”
“아마 맞을걸.”
“으하핫, 소문으로만 듣던 유명인을 직접 만나게 돼서 영광인걸. 안 그래도 네놈의 실체가 무지하게 궁금했거든!
그 말에 데미안은 한숨을 내쉴 수밖에 없었다.
“이봐, 그러지 말고 그냥 앉아서 술이나 마시는 게 어때.”
데미안이 제임스 존의 어깨를 두드리며 말했다. 그 행동에 제임스 존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었다.
“내 몸에 함부로 손대지…….”
제임스 존이 데미안의 손목을 움켜잡았다. 그런데 뭔가 이상했다.
아무리 힘을 줘도 데미안의 손은 어깨에서 떨어질 생각을 하지 않았다.
“앉으라니까.”
데미안이 손에 힘을 줬다. 제임스 존은 자신도 모르게 다시 의자에 주저앉고 말았다.
“이, 이 자식이……!”
제임스 존이 몸을 일으키려 했다. 하지만 어깨를 누르고 있는 데미안의 손을 좀처럼 밀어낼 수 없었다.
“으, 으으윽!”
제임스 존이 전신에 힘을 주었다. 눈동자에 핏발이 섰다. 그래도 몸은 미동조차 하지 않았다.
‘힘이 강해지긴 했군.’
데미안은 고통을 흘리고 있는 제임스 존을 내려다보며 생각했다.
원래 기사들은 평범한 인간들보다 훨씬 근력이 뛰어났다. 체내에 담고 있는 마력이 그들의 육체를 변화시키기 때문이다.
미들클래스쯤 되면 마력을 사용하지 않은 순수한 신체능력만으로도 맹수를 때려잡을 수 있는 수준에 이른다.
그런 미들클래스를 힘싸움만으로 몰아붙이고 있었다. 알렉토의 로열젤리 덕분이었다.
상황이 이쯤 되자 제임스 존의 얼굴에 낭패감이 떠올랐다. 데미안과의 격차를 깨달은 것이다.
“제임스 존 경! 힘내세요!”
“저딴 놈은 단숨에 때려눕히란 말이야!”
하지만 ‘진짜 사나이’에 속해 있는 귀족들은 제임스 존의 속마음도 알아차리지 못한 채 응원하기 시작했다.
사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제임스 존이 누구던가, 수도에 소속되어 있는 미들클래스 중에서도 제법 인정받고 있는 거물이었다.
그들의 입장에서는 이제 막 미들클래스가 된 데미안보다 제임스 존이 더 강하게 보일 수밖에 없었다.
“……젠장!”
제임스 존은 일행들의 기대를 뿌리치지 못했다. 자존심 때문에라도 뭔가를 보여 줘야 하는 입장이었다.
제임스 존이 마력을 일으켰다. 전신에서 용력이 샘솟았다.
아무리 데미안의 근력이 높아졌다지만 마력을 운영하는 미들클래스보다 강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제임스 존이 벌떡 몸을 일으켰다. 즉시 데미안을 향해 주먹을 내질렀다.
“얼굴을 완전히 뭉개 주마!”
데미안은 주먹을 간단히 피했다. 그리고 제임스 존의 복부를 주먹으로 때렸다.
“커흑!”
제임스 존의 몸이 단번에 벽 쪽으로 밀려났다. 등이 벽에 부딪히자 그 반동으로 제임스 존은 앞으로 엎어졌다.
“컥, 커헉.”
제임스 존은 입에서 거품을 토해 냈다. 이미 기절했는지 두 눈동자는 흐리멍덩하게 풀려 있었다.
“다들 얘처럼 되기 싫으면 방 좀 비워 주겠나?”
데미안이 제임스 존을 가리키며 말했다. ‘진짜 사나이’ 회원들은 황급히 밖으로 도망치려 했다.
“같이 데려가야지.”
데미안의 말에 몇 명 회원들이 돌아와서 제임스 존을 데리고 나갔다.
그렇게 귀빈실에는 데미안과 올리버 애플 두 사람만 남게 되었다.
“그럼 저하, 우리 한번 진득하게 이야기를 나눠 볼까요?”
마지막 보루였던 제임스 존마저 저렇게 되자 올리버 애플의 얼굴은 사색이 되었다.
* * *
데미안은 비어 있는 의자에 앉았다.
“저하, 일단 앉으시지요.”
데미안의 말에 올리버 애플은 쭈뼛거리며 조금 떨어진 자리에 앉았다.
“그래서 대체 이건 무슨 모임입니까?”
“지, 진짜 사나이들이라고…… 수도의 귀족들이 주기적으로…… 모여서 우정을 나누는…… 그런 자리입니다.”
“이름이랑 다르게 겁쟁이들밖에 없는 모임이로군요.”
데미안의 말에 올리버 애플이 발끈해서 소리쳤다.
“저는 욕해도 제 친우들은 욕하지 마십시오!”
“저들 중에서 저하를 보호하려고 나선 사람이 제임스 존 말고 더 있습니까?”
데미안의 한 마디에 올리버 애플은 입을 꾹 다물었다.
듣고 보니 그랬다. 항상 자신에게 충성을 바친다고 해놓고 정작 저들 중에 데미안을 막으려 한 사람은 한 명밖에 없었다.
“자리는 누가 마련한 겁니까?”
“이 술집 사장이 내어 줬습니다…… 약속 시간도 사장이 정합니다…… 좋은 술과 여자가 마련되면 사장이 연락을 보내서…….”
이야기를 모두 들은 데미안은 쯧쯧 혀를 찼다.
“저하, 실망이 몹시 큽니다. 저와의 약속을 어기고 이렇게 술을 드시러 오시다니.”
“데, 데미안 경! 사, 살려 주십시오! 다, 다시는 안 그러겠습니다! 그러니까……!”
데미안은 잔 두 개에 술을 따랐다. 그중 하나를 올리버 애플의 앞에 놓았다.
올리버 애플은 이게 뭐냐는 듯한 얼굴로 데미안 학센을 쳐다봤다.
“한잔하시죠.”
데미안이 먼저 술잔을 입에 털어 넣었다. 올리버 애플은 눈치를 보며 조심스럽게 술을 마셨다.
“캬야.”
이런 상황임에도 술은 맛있었다. 딱 한 잔인 게 너무 아쉬웠다.
“한 잔 더 하시렵니까?”
올리버가 눈치를 보며 술잔을 내밀었다. 데미안은 또 술을 따랐다.
올리버는 두 잔째 술을 들이켰다. 술기운이 몸에 쫙 퍼지자 조금씩 용기가 생겼다.
“그…… 화 안 내시는 겁니까?”
“원래는 내려고 했습니다.”
그 말에 올리버의 얼굴이 사색이 되었다.
“그런데 생각을 해 보니. 요 이틀 동안 저하께서 고생을 많이 하셨잖습니까.”
고생.
그 말에 올리버는 눈동자를 연신 꿈뻑였다.
그래, 자신은 고생했다. 아주 많이 고생했다. 죽을 만큼 고생했다.
이런 말은 언제 들어 봤을까, 아니 들어본 적이나 있었을까.
그걸 데미안 학센이 알아주는 듯한 말을 하자 묘한 기분이 들었다.
“그동안 열심히 하셨으니 오늘 하루 정도는 회포를 풀어도 될 것 같습니다. 그러니 한 잔 더 하시죠.”
올리버 애플은 다시 술잔을 내밀었다. 세 번째를 들이켰다.
“저하, 또 술이 드시고 싶으면 말씀을 하십시오. 매번 허락해 드릴 수는 없지만 가끔은 눈감아 드리겠습니다.”
“그, 그게 정말입니까?”
“예, 대신에 이런 곳에서 드시는 건 안 됩니다. 여자를 데리고 마시는 것도 안 돼요. 어디까지나 건전하게 술만 드시는 겁니다.”
여자도 안 된다는 말에 올리버 애플은 한 번 더 갈등했다.
술과 여자.
둘 다 올리버 애플의 인생에서 빼놓을 수 없는 것이었다.
그러나 그 두 가지만으로도 채워지지 않는 무언가가 있었다. 그래서 계속 찾지 않았을까. 무엇을 원하는지도 모른 채.
“대답이 안 들리는 것 같습니다.”
“아, 알겠습니다! 그렇게 하도록 하겠습니다!”
“꼭 지키셔야 합니다.”
데미안이 다시 술병을 내밀었다. 올리버 애플은 술을 받아 마셨다.
“데미안 경…… 다, 다시 말씀해 줄 수 있겠습니까.”
“뭘 말입니까?”
“여, 열심히 했다고 하지 않으셨습니까.”
올리버 애플은 쑥스럽다는 감정을 최대한 감추며 물었다. 데미안은 대수롭지 않게 말했다.
“열심히 하셨습니다. 익숙하지 않은 공부를 하시느라 아주 열심히 하셨죠.”
데미안의 말에 올리버 애플은 입가가 지렁이처럼 꿈틀거렸다.
처음 알았다.
남에게 인정을 받는 게 이렇게 기쁜 일이라는 것을 말이다.
* * *
한참 동안 술을 마신 끝에 올리버 애플은 그대로 기절해 버렸다. 소파에 누운 채 완전히 골아떨어져 버렸다.
“술도 약한 인간이 뭘 그렇게 퍼부어 마시는지 이해가 안 가네.”
데미안은 남은 술을 마저 입에 털어 넣었다. 사실 그리 맛있지는 않았다.
올리버 애플의 대작 상대를 해 주느라 억지로 마시고 있었을 뿐이었다.
“이 맛없는 걸 옛날에는 왜 그렇게 좋아했던 거지.”
데미안이 쓴웃음을 지으며 중얼거릴 때였다.
“안으로 들어가도 되겠습니까.”
밖에서 여인의 목소리가 들렸다. 데미안은 술잔을 내려놓으며 말했다.
“마음대로.”
“감사합니다.”
문이 열리며 한 여인이 안으로 들어왔다. 붉은 드레스가 굉장히 잘 어울리는 여인이었다.
“인사드리겠습니다. 이곳의 사장인 카르멘라고 합니다.”
데미안은 자신을 카르멘이라 소개한 여인을 살폈다. 술집 여자라고 하기에는 기품이 넘쳤다. 그렇다고 귀족이라고 하기에는 어딘가 부족했다.
“평범한 술집 사장처럼 보이지는 않는데.”
데미안의 말에 카르멘이 미소를 지으며 답했다.
“이 술집은 제 부업일 뿐, 본업은 따로 있습니다.”
“본업?”
“부족한 몸이지만 ‘녹향’을 맡고 있습니다.”
녹향이라는 말에 데미안은 의외라는 얼굴로 그녀를 바라봤다.
녹향이라면 데미안도 전생에 몇 번 들어봤다. 수도에 국한되지 않고 애플 왕국 전역에 널리 퍼져 있던 암흑계 조직이었다.
조직력이 굉장히 치밀하고, 영향력이 커서 귀족 중에도 녹향과 연을 맺고 있는 사람이 많았다.
“대단한 거물이셨군.”
“데미안 님만 하겠습니까.”
카르멘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그래서 왜 이런 자리를 마련한 거지? 모임을 준비하는 데 비용이 만만찮게 들어갔을 텐데.”
이 자리에 있는 술은 흔히 구할 수 있는 물건들이 아니었다.
같이 먹으라고 내온 음식들도 전부 재료가 최고급이었다.
무엇보다 이만한 규모의 고급 술집을 통째로 비워 놓다니 손해가 무지막지할 수밖에 없었다.
“왕세자 저하를 중심으로 한 귀족 모임을 주도하고 싶었습니다. 그 인맥을 관리할 수 있으면 많은 도움이 될 테니까요.”
“순순히 대답하는군?”
“숨길 것도 없는 내용이니까요.”
카르멘이가 아무렇지도 않게 말했다. 데미안은 재미있다는 얼굴로 그녀를 바라봤다.
“오늘 이후로 저하를 부르지 않는 게 좋을 거야.”
“알겠습니다.”
“너무 쉽게 말하는 것 같은데.”
카르멘의 말을 들어보면 왕세자야 말로 모임의 중심이었다. 왕세자가 빠지면 카르멘은 큰 손해를 입는 셈이었다.
그럼에도 카르멘은 불편한 기색 하나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저는 아는 게 없는 여자지만 살아남는 법은 조금 알고 있습니다.”
카르멘의 말에 데미안은 실소를 흘렸다.
그 말대로였다. 만약 거부의 말이 나오면 데미안은 오늘 하루 동안 녹향을 뒤집어 버릴 생각이었다.
“그 약속을 꼭 지켜 줬으면 좋겠군.”
데미안은 왕자를 부축하려다가 문득 떠올랐다는 듯이 말했다.
“혹시 암시장도 열고 있나?”
암시장.
장물이나 마약 같이 떳떳하지 못한 물건들을 거래하기 위해서 열리는 시장이었다.
불법적인 시장이기에 아무나 암시장을 열 수 없었다. 녹향 정도로 규모가 큰 조직에서만 가능했다.
“그렇습니다. 혹시 필요하신 물건이 있습니까?”
지금 데미안에게 필요한 물건은 딱 두 개였다. 영약과 마나연공법 말이다.
이번에 알렉토의 로열젤리를 섭취함으로써 육체적으로 크게 성장했으나 마력은 제자리였다. 지금 데미안에게는 마력을 채울 수 있는 영약이 절실했다.
마나연공법 역시 빼놓을 수 없었다. 데미안이 전생의 경지를 되찾기 위해서는 자신에게 딱 맞는 마나연공법을 만들어 내야 했다.
가급적이면 수준 높은 마나연공법을 많이 얻을 필요가 있었다.
“다음번에 열릴 암시장의 경매장에 참가하고 싶은데.”
불법적인 물건 중에서도 특히 가치가 높은 것들은 암시장 내에서 열리는 경매장에서 소비가 되었다.
어쩌면 데미안이 필요로 하는 물건들을 찾을 수 있을지도 몰랐다.
하지만 그냥 암시장이라면 몰라도 암시장의 경매장은 아무나 참가할 수 있는 곳이 아니었다.
녹향과 아주 긴밀한 관계를 맺고 있으면서 믿을 수 있는 사람들만이 이용할 수 있었다.
“데미안 님께서 원하신다면 다음 경매장이 열릴 때, 초대장을 보내겠습니다.”
하지만 데미안은 녹향의 보스와 직접 얼굴을 맞댄 덕분에 손쉽게 경매장 출입증을 얻을 수 있었다.
“고마운 말이군.”
데미안은 올리버 애플을 등에 업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밖으로 나오니 어느새 해가 떠오르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