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turn of the Death Knight RAW - chapter (107)
와르르!
검은양의 동상이 무너졌다. 우진은 동상에서 얻은 영혼을 갈무리했다.
“방금까지 검은양이 직접 빙의해있어서 그런가, 훨씬 효과가 좋네.”
성장은 순조로웠다. 전성기의 힘을 회복하는 것도 그리 오래 남지 않았다.
‘아니지. 그 이상을 노릴 수도 있겠어.’
그때와는 다르다. 우진은 언데드의 한계에서 해방됐다. 빛의 여신과 계약했고, 수많은 협력자를 얻었다. 인망도 출중했다.
게다가 세계 유일의 수호자이기까지 하니, 무력과 명성, 그리고 권력 모두를 갖춘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역시 착하게 살면 복을 받는 법이군.”
=그렇죠. 맞습니다. 네.=
에아는 고개만 끄덕였다. 이젠 반박하기도 지친 것이다.
-생존자는 이 정도인가.
그러는 동안, 아바돈은 자기 부하들을 확인하고 있었다.
정신지배에서 풀려난 아폴리온 족(族)은 아바돈 앞에 부복했다.
숫자는 많지 않았다. 갑작스럽게 쫓기고 사냥당하는 처지에 놓였으니 당연했다.
하지만 희망은 있었다. 그들 가운데 알을 짊어진 이들도 있었던 것이다.
-훌륭하군. 피난 중에도 나라의 미래를 구한 것인가.
아바돈이 흡족하게 말했다.
우진은 눈을 가늘게 뜨며 그들을 둘러봤다.
“그런데 애들 상태가 별로 좋아 보이지 않는걸.”
그는 생명력을 감지할 수 있었다. 그런데 아폴리온 족의 생명력은 기력이 쇠하기라도 한 것처럼 희미했다.
-아아…. 오랜 기간 동면을 한 탓인 것 같다.
아바돈이 긍정했다.
“흠.”
우진은 팔짱을 꼈다. 씨익. 그의 입술에 미소가 번졌다.
“좋은 생각이 났어.”
그들을 치료해주는 한편, 유용하게 써먹을 수 있을 만한 방법이었다.
“에아.”
우진이 에아를 돌아봤다. 에아가 눈을 깜빡였다.
=네?=
“쟤네랑 계약 좀 해줘라.”
=네???=
에아가 경악하며 아폴리온 족을 쳐다봤다. 우글거리는 거대 딱정벌레가 더듬이를 부딪쳤다.
=으.=
그녀가 인상을 찡그렸다.
=아무리 그래도 벌레는 좀….=
“뭐 어때. 만지라는 것도 아닌데.”
=그것보다 더한 것입니다만? 우진. 계약이란 곧 새로운 가족을 들이는 것과 마찬가지란 말입니다. 당신은 바퀴벌레를 가족으로 들일 수 있습니까?=
에아가 정색하며 쏘아붙였다. 그만큼 싫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상대를 잘못 골랐다.
“그게 왜?”
우진은 이미 아바돈을 권속으로 삼고 있었다.
무엇보다, 시체 사이에서 수십 년간 생활한 그가 고작 벌레 가지고 혐오감을 느낄 리가 없었다.
“그리고 신이라는 놈이 외모 가지고 사람 차별해도 되냐?”
=…사람이 아니잖아요. 애초에.=
“듣는 사람 서운하겠다.”
=사람 아니라니깐요.=
에아가 항변했다.
‘어지간히 하기 싫은가 보네.’
우진은 성좌의 입장에서 계약이 어떤 의미를 가졌는지 모른다.
하지만 저렇게 고집을 꺾지 않는 걸 보면, 정말 싫은 듯했다.
그래봤자 그녀의 의지는 중요하지 않았다.
“그래서 안 할 거야?”
=윽….=
에아는 우진의 명령을 거스를 수 없었다. 그런 약속이었으니까.
-부탁한다. 빛의 여신이여.
거기에 아바돈까지 고개를 숙였다.
-내 백성이 못난 지도자 때문에 죽어가고 있다. 그들에게 도움을 주면 내 평생 은혜를 잊지 않겠다.
아바돈이 간절한 목소리로 부탁했다. 그러자 에아가 앓는 소리를 냈다.
=하아. 그러면 제가 나쁜 것 같잖아요…. 알겠어요. 하겠습니다.=
-고맙다.
아바돈은 화색이 됐다.
계약이 진행되는 과정은 우진이 겪었던 것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물론 그 세부적인 조항은 매우 달랐겠지만.
아무튼 아폴리온 족은 본능적으로 그 뜻을 이해하고 수락 의사를 표했다.
그와 함께, 여신의 치유력이 그들에게 깃들었다. 은은한 신성력이 딱정벌레의 주위를 감돌았다.
‘신성력을 쓸 수 있게 됐으니, 활용할 곳이 더 많겠지.’
우진이 턱을 매만졌다.
단순 치료가 목적이라면, 그가 직접 해주면 그만이다.
신성력뿐만 아니라 흑마법으로도 생명력을 회복시킬 수 있으니까.
하지만 중요한 건 그들이 신성력을 쓸 수 있게 되었다는 사실이다.
‘대충 봤을 때, 아폴리온 족의 평균 등급은 C 정도였어. 좀 애매하지.’
불사의 군단의 잡졸도 그 정도 전투력은 갖고 있다.
하지만 신성력을 갖게 되면 이야기는 좀 달라진다.
‘사제나 성기사는 유용한 전력이니까.’
괜히 만신전이 국제적으로 지부를 갖출 만큼 광범위한 조직을 갖췄겠는가. 그만큼 힐러 계열 직업이 귀하다는 뜻이었다.
언데드는 여신의 계약자가 될 수 없지만, 아폴리온 족은 언데드가 아니다. 그럼 그들을 계약자로 만든다면?
‘내 뜻대로 움직이는 힐러 군단을 운영할 수 있다는 말이지.’
이왕 아폴리온 족을 구출한 거. 최대한 가치 있게 다뤄야 하지 않겠는가.
‘이젠 내가 얘네 주인이니까.’
황금왕이라는 쪽팔리기 짝이 없는 이명은 마음에 들지 않았지만 말이다.
-오오.
아바돈은 아폴리온 족이 생명력을 회복하는 것을 보고 경탄했다.
=이제 됐습니까?=
-그렇다. 진심으로 감사를 표한다.
아바돈이 고개를 숙였다. 그러자 그를 따라서 아폴리온 족도 예를 갖췄다.
-약속하마. 여신의 은혜를 기억하며 후손 대대로 길이 전하겠다. 또한 여신의 제단을 설립하여 그대의 은혜를 기리겠다.
아바돈이 청산유수처럼 말했다.
=흠. 신을 섬길 줄 아는군요.=
에아는 흡족한 듯 팔짱을 끼었다. 그러면서 곁눈질로 우진을 쳐다봤다.
=이게 바로 신을 대하는 올바른 모습이라고요. 아시겠나요?=
에란델에서 교단이 멸망한 이후, 오랜만에 받는 신 대접이었다.
어떻게 벌레와 계약하냐며 질색하더니, 꽤 만족스러운 듯했다.
하지만 다음 순간이었다.
-그리고 이분이야말로 우리의 영원한 주인. 나의 주군이자 우리의 모든 권리를 쥐고 계신 분이다.
아바돈이 그리 말하며 우진을 향해 엎드렸다.
-주군이 아니었다면 우리는 이렇게 다시 만나지 못했을 것이며, 자유를 되찾지도 못했을 것이다. 너희는 누구보다 큰 충성을 그분께 바쳐라.
넙죽.
아바돈의 연설과 함께 아폴리온 족 전원이 우진에게 고개를 조아렸다.
에아에게 보였던 것보다 더한 예의를 갖춘 것이다.
“확실히 누굴 더 높게 대해야 하는지, 잘 알고 있군.”
=….=
우진이 말했다. 에아는 반박하지 못했다.
*
고비사막 필드에서의 일이 일단락되었다.
그러나 우진의 일은 끝나지 않았다.
“다른 곳에서도 같은 일이 벌어지고 있단 겁니까?”
징첸이 고개를 끄덕였다.
“네. 세계 각지에서 악신교의 준동이 감지되었습니다. 확인해보니, 이번처럼 악신 간의 내분이 일어나고 있더군요.”
“그렇습니까.”
우진이 자료를 확인했다.
세계지도 곳곳에 표시가 그려져 있었다. 악신교끼리 전투를 벌인 장소와, 그 피해의 규모를 표시한 것이었다.
여러 나라에서 크고 작은 피해를 보았다. 어떤 나라는 나름대로 대처했지만, 어떤 나라는 괴멸에 가까운 상황에 부닥쳤다.
특히 악신교가 뿌리 깊게 자리 잡은 곳일수록 피해가 큰 경향이 있었다.
“중국도 여기저기서 사건이 터졌습니다. 나름 토벌한다고 했는데도… 부끄럽네요.”
징첸이 씁쓸하게 웃었다.
“그런 의미에서 한국은 참 부럽습니다. 단 한 번의 사건도 접수되지 않았으니까요.”
대한민국은 전 세계가 혼란에 빠진 가운데에서 아무 피해도 보지 않았다.
그럴 수밖에 없다. 대한민국은 악신교 청정구역이었으니까.
모두 김우진 덕분이었다. 그를 두려워한 악신교는 한국에 발도 붙이지 않았다. 한국에서 활동하던 이들도 전부 해외로 도망치거나 붙잡혔다.
그러니 소요 사태 자체가 일어날 수 없었다.
“아. 한국만큼은 아니지만 미국에서도 잘 방어하고 있다고 들었습니다.”
징첸이 첨언했다.
“미국 만신전 지부가 설립한 조직 덕분이라 하더군요. ‘크루세이더’라는 이름으로 기억합니다. 악신에 대항하기 위해 설립했다고 합니다.”
크루세이더 팀 덕분에 미국은 이번 사태를 적은 피해로 해결할 수 있었다.
“성과를 아주 대대적으로 홍보하고 있더군요. 미국은 크루세이더를 우진 님의 대항마로 내세울 작정인가 봅니다.”
징첸이 못마땅하다는 듯 혀를 찼다.
“쯧. 여전히 미국은 무슨 피해망상에 시달리고 있는 모양이에요.”
미국은 우진이 수호자가 되는 걸 제일 반대한 나라였다. 새로운 독재자의 탄생을 경계한다는 이유였다.
“그런 일도 있었군요.”
우진이 미적지근하게 반응했다.
“…괘씸하지 않은가요? 우진 님의 의도를 제멋대로 착각하고 대항마니 뭐니, 하고 있는데요.”
오히려 분개한 징첸이 머쓱할 정도였다.
“의도는 괘씸할지 몰라도, 결과가 만족스러우니 됐습니다. 나름 악신에 대한 방비를 갖추고 있다는 뜻이니까요.”
우진이 그동안 자작극을 벌이고 쇼를 한 이유가 무엇이던가.
악신의 위협을 알리고 경각심을 주려는 의도였다.
그리고 크루세이더는 그 뜻에 완전히 부합하는 조직이었다.
반긴다면 모를까, 싫어할 이유가 없었다.
‘내 방해만 안 한다면 말이지.’
그렇게 되면 이야기가 좀 달라지겠지만.
“…역시 저랑은 그릇의 크기가 다르시네요.”
징첸이 감탄했다.
“음. 그런데 이건 좀 따른 이야기입니다만.”
그는 멋쩍게 목덜미를 긁으며, 다른 주제를 꺼냈다.
“말씀드렸다시피, 중국의 상황이 좋지 않습니다. 곳곳에서 고비사막 필드와 비슷한 케이스가 일어나고 있어서요. 염치없지만, 조금 더 도와주실 수 있을지….”
징첸이 조심스럽게 말했다.
“음.”
그 정도야 어렵지 않다.
이번에는 ‘교주’라고 하는 놈 때문에 좀 성가시긴 했다.
게다가 악마의 수도 많았고.
사원의 규모가 규모인 만큼, 많은 수를 동원한 것이겠지.
하지만 일반적인 다른 악신교의 사원은 다르다.
당장 파주 필드에 있던 비밀결사 사원을 생각하면 쉽다.
만약 지금 시점의 우진이 그 사원을 공략해야 한다면, 얼마나 걸릴까.
‘순식간에 끝나겠지.’
크로아지즈의 홀리 브레스 한 방을 버틸 수 있을지도 확신하기 힘들었다.
‘게다가, 나에게는 새로운 전력이 생겼으니까.’
우진은 방금 빛의 여신과 계약한 수많은 신성(神聖) 군단을 얻었다.
그들의 힘이 있다면 공략은 더 수월한 걸 넘어 손쉬웠다.
‘작은 곳은 아예 녀석들만 따로 보내도 괜찮겠지.’
불안하면 언데드를 좀 붙여줘도 되고 말이다.
“네. 도와드리도록 하죠.”
우진은 흔쾌히 대답했다. 징첸의 얼굴에 화색이 돌았다.
“아…!”
“그 대신에 받고 싶은 게 있습니다.”
“뭔가요? 말씀만 하시면 제가 당국에 이야기를 전달하겠습니다.”
금룡길드는 그동안 중국 내부에서 세력을 키웠다.
정치계를 좀먹던 악신 숭배자와 그 협력자를 몰아내면서 영향력도 커졌다. 우진과의 친분이 있다는 점도 명성을 굳히는 데에 한몫했다.
그런 만큼, 우진이 뭘 부탁하건 중국 당국에 잘 전달할 자신이 있었다.
“그렇다면… 고비사막 필드의 구역 일부를 관리하고 싶군요.”
“필드요?”
“네. 어렵습니까?”
“그런 건 아닙니다. 말씀드리긴 부끄럽지만, 그곳은 너무 넓어서 사실상 방치 상태거든요. 우진 님이 관리한다 해도 문제는 없을 겁니다. 오히려 반길 수도 있고요. 다만….”
징첸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왜 그런 보상을 원하시는 건지 궁금할 뿐입니다.”
더한 걸 요청해도, 피해를 줄이기 위해서 받아들여야만 하는 입장이다.
그렇게 보면 우진이 바라는 보상은 소박한 편이었다.
“그쪽에 있는 사원에 볼일이 있거든요.”
우진은 그렇게 대충 둘러댔다.
아폴리온의 재건이 성공하면, 그가 부릴 수 있는 힐러 군단은 몇 배로 늘어날 것이다.
아니. 그 도시의 규모를 떠올리면 수백 배까지 늘어날 수도 있었다.
“…그렇군요. 그런 걸로 하겠습니다.”
그런데 징첸은 무슨 오해를 한 걸까. 감격한 듯 입술을 짓씹었다.
“이 은혜는 대체 어떻게 갚아야 할지….”
우진은 그런 징첸의 어깨에 손을 올렸다.
“천천히 하셔도 괜찮습니다.”
오해한다면 나야 좋지.
우진은 선량한 미소를 흘렸다.
108. 맡기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