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turn of the Death Knight RAW - chapter (109)
오윤아를 바래다주고 돌아가는 길이었다.
-주인.
레비아탄이 의지를 전달했다.
‘찾았냐?’
물론 여신의 몸에 대한 이야기였다.
-신호, 가까워졌다. 근데 문제 생겼다.
‘문제?’
이번엔 또 뭘까.
‘무슨 문제인데?’
-그게….
하지만 질문에 대한 답을 듣기도 전이었다.
건물에 설치된 전광판에서 뉴스가 흘러나왔다.
아나운서가 심각한 표정으로 말하고 있었다.
-현재 미국 로스앤젤레스 인근 바다에서 정체불명의 괴생명체가 탐지되었습니다. 미 당국은 헌터를 파견하여 혹시 모를 사태를 대비하고 있습니다.
그때 레비아탄이 말을 이었다.
-인간들이 앞을 막는다. 치워버려도 되나?
‘안 돼.’
누구 매장시킬 일 있냐.
아무래도 레비아탄이 발견한 여신의 몸은 태평양 건너, 미국 쪽에 있는 것 같았다.
‘일단 기다리고 있어. 내가 곧 갈 테니까.’
-알겠다. 기다리겠다. 나 말 잘 듣는다.
레비아탄이 장담했다.
‘크로아지즈. 갈 데가 생겼다.’
수호자가 되기 전이었다면 모를까. 이제는 복잡한 절차를 밟거나 몰래 이동할 필요가 없었다.
그렇다면 지체할 이유가 없다. 우진은 곧장 크로아지즈를 타고 레비아탄 쪽으로 향했다.
비행기로 갔다면 10시간도 넘게 걸렸을 거리였다. 하지만 크로아지즈는 순식간에 태평양을 횡단했다.
“아. 저기인가.”
하늘에서도 우진은 레비아탄의 위치를 정확히 파악할 수 있었다.
왜냐하면 그 주변으로 전투함이 잔뜩 깔려있었기 때문이다.
우진은 천천히 고도를 낮췄다. 그러자 저쪽에서도 그를 발견했다.
“저 해골 드래곤은…. 설마 김우진인가?”
“그가 왜 여기에 있는 거지?”
전투를 준비하던 헌터들이 소란스레 외쳤다.
쿵! 그때 크로아지즈에서 뛰어내린 우진이 그들 앞에 착륙했다.
“여기 지휘관은 어디에 있습니까?”
그가 당당하게 물었다.
“자. 잠깐만 기다려주십쇼.”
우물쭈물하던 헌터들이 무전을 키며 어딘가로 연락했다.
그러더니 곧 고개를 끄덕이며 안쪽을 가리켰다.
“…이쪽입니다.”
전투 직전에 난입한 불청객이 달가울 리가 없다. 거기에 다짜고짜 지휘관을 만나겠다고 하면 더 그럴 테지.
하지만 우진의 이름은 그 모든 걸 상쇄하고도 남았다.
“와우. 정말 김우진이잖아?”
“발견된 괴생명체가 혹시 악마인가?”
“가능성 있어.”
“동양인치고 몸이 좋군.”
우진이 나아갈 때마다 시선이 집중되었다. 동경과 선망, 시기와 부러움의 감정이 뒤섞였다.
“부팀장님.”
마침내 우진을 안내하던 헌터들이 멈추어 섰다. 그들은 앞에 있는 헌터를 올려다보며 보고했다.
“그를 데려왔습니다.”
“음.”
보고를 들은 헌터가 몸을 돌렸다.
전신 갑옷을 입은 헌터였다. 투구를 쓰고 있어서 얼굴은 보이지 않았다.
온몸을 가리는 새하얀 갑옷을 입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우람한 체구는 가릴 수 없었다.
키도 2m가 좀 안 될 것만 같았다.
평범한 사람이라면 앞에 서는 것만으로도 주눅이 들 테였다.
물론, 우진은 평범한 사람이 아니었다.
“당신이 여기 지휘관입니까?”
그는 아까와 똑같이 평이한 어조로 물었다.
철컹.
그러자 하얀 갑주의 헌터가 쇳소리를 내며 몸을 돌렸다.
“…김우진.”
투구를 쓰고 있어서 그런지, 목소리가 낮게 울렸다.
과연 지휘자다운 카리스마가 느껴졌다.
“신이시여, 맙소사! 내가 진짜 김우진을 만나다니!”
아니었다.
하얀 갑주를 입은 헌터가 두 팔을 과장되게 벌리며 기뻐했다.
그 모습은 연예인을 만나서 흥분한 어린아이 같았다.
카리스마 같은 건 쥐뿔도 찾아볼 수 없었다.
“언젠가 한 번 만나 뵙고 싶다고 생각했는데, 설마 이렇게 꿈을 이룰 줄은 몰랐습니다. 아. 혹시 꿈을 꾸고 있는 건 아니겠지?”
“예. 현실입니다.”
“세상에.”
“그보다 논의하고 싶은 사항이 있어서 찾아왔습니다만.”
“아. 그렇죠. 이거 실례했습니다.”
우진의 말에 간신히 흥분을 가라앉힌 걸까. 그가 차분한 어조로 말하더니 투구 가리개를 젖혔다.
그러자 드러난 건 금발에 푸른 눈을 가진, 전형적인 서구인 모습의 청년이었다.
“미국에 오신 걸 환영합니다.”
그가 악수를 건네며 말했다.
“저는 크루세이더 팀의 부팀장인 마일스 밀러라고 합니다. 이 구역은 저희 크루세이더 팀의 관할입니다만, 팀장님이 부재중이신지라 제가 임시로 지휘를 맡고 있습니다.”
크루세이더?
어디선가 들어본 이름이었다.
‘아. 미국에서 악신에게 대적하기 위해 만든 조직이라고 했던가.’
최근 혁혁한 전과를 올리며 주가를 갱신하고 있는 집단이었다.
우진은 그가 내민 손을 붙잡았다.
“김우진입니다. 이미 아시는 모양이지만.”
“알다마다요. 제 우상이십니다.”
마일스가 열띤 목소리로 말했다.
거짓말은 아닌지, 그 태도는 시종일관 호의적이었다.
“음. 하고 싶은 말은 많지만, 다음으로 미뤄야겠네요. 바쁜 용건이 있으신 듯하니까요.”
“이해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아마 저 물밑에 숨어있는 괴생명체에 대한 이야기겠죠.”
마일스가 흥분을 진정시키며 말을 이었다.
“수호자가 직접 나섰다면… 저것의 정체가 악마인 겁니까? 아니면 악신 숭배자의 비밀 병기?”
“둘 다 아닙니다. 레비아탄에 대해서는 알고 계시겠죠.”
“네? 아아. 설마?”
우진 혼자서 레비아탄을 토벌한 건 미국에서도 유명한 이야기였다.
공략이 불가능하다고 여겨졌던 몬스터를 혼자서 잡아버렸으니까.
마찬가지로, 우진이 레비아탄을 권속으로 되살린 것도 유명한 이야기였다.
“괴생명체의 정체가 레비아탄이었던 겁니까? 그렇다면 어째서….”
말끝을 흐렸지만, 그 의미는 알 수 있었다.
‘왜 레비아탄을 여기에 보냈냐는 뜻이겠지.’
물론 우진이 의도한 건 아니었다. 그냥 여신의 몸이 우연히 이쪽에서 발견됐을 뿐.
“중요한 물건을 탐색하고 있습니다. 악신 숭배자의 손에 들어가면 안 되는 물건이죠. 그러다 보니 이쪽까지 오게 된 겁니다.”
굳이 숨기거나 속일 것도 없는 일이었다. 우진은 여신의 몸에 대한 것만 빼고 정직하게 대답했다.
“아아. 그런 사정이 있었군요.”
“레비아탄이 이곳까지 올 줄은 몰랐네요. 미리 알려드리지 못해서 죄송합니다.”
“아뇨! 워낙 바쁘신 분인데 어쩔 수 없죠.”
마일스가 손을 저었다.
“이해해주시니 감사하네요. 탐색만 좀 하고 돌아가겠습니다.”
“네. 그러면 일단 배를 물리….”
“잠깐.”
그때 누군가의 목소리가 둘의 대화를 가로막았다.
갈색 머리카락을 길게 기른 남자였다. 그는 아무것도 없는 허공을 밟으며 둘에게 다가왔다.
“아. 카일 팀장님?”
마일스가 눈을 동그랗게 떴다.
“분명 용건이 있으시다고….”
“미국 시민의 안전을 지키는 것보다 더 중요한 용건이 어디 있겠나. 이다음부터는 내가 이야기하지.”
카일은 마일스에게 말을 하면서도 시선만은 우진에게 고정하고 있었다.
“이거 별로 유쾌하지 못한 일이군요. 설마 미국 시민들을 두려움에 떨게 한 범인이 당신이었을 줄이야.”
경쟁적인 눈이었다. 마치 소년 만화에서 라이벌이 주인공을 보며 지을 법한 표정이었다.
다만 다른 건, 라이벌을 의식하는 주인공과 달리 우진은 그에 대해 아무 감정도 없다는 것이다.
당연하다. 애초에 방금 얼굴을 처음 본 거였으니까.
저쪽에서 일방적인 경쟁심을 불태울 뿐이었다.
카일이 가슴팍에 손을 올리며 자신을 소개했다.
“크루세이더 팀장 카일입니다. S급 성기사이며, 본 작전의 총책임자를 맡고 있죠.”
“안녕하십니까. 제 소개는 뭐. 따로 필요할 것 같진 않군요.”
“…큭.”
카일이 기분 나쁜 듯 미간을 찌푸렸다. 하지만 반박할 수 없었다. 동시대를 살아가는 인물이라면, 카일은 몰라도 우진은 알고 있을 테니까.
실제로 카일은 우진에 대해 알고 있었다. 그것도 아주 잘.
‘…저게 바로 만신전 게이트에서 발견한 성검인가.’
그는 우진의 허리춤에 찬 검을 곁눈질하며 침을 꿀꺽 삼켰다.
“크흠.”
카일이 헛기침하며 욕망을 숨겼다. 그가 우진의 말에 대답했다.
“물론입니다. 소개할 필요가 어딨겠습니까. 유일한 수호자이신데. 그렇지만 짚고 넘어가야 할 것은 확실히 짚고 넘어가야겠죠.”
“어떤 것 말씀이죠?”
“전부 다입니다.”
카일은 손바닥을 쫙 펼치며 과장된 제스쳐를 취했다.
“아무 고지도 없이 레비아탄이 미국 영해를 침범한 것. 그래서 사회의 혼란을 초래한 점. 그뿐만이 아닙니다. 이 모든 소동이 당신에게 필요한 물건을 찾기 위해 일어난 일 아닙니까? 수호자의 지위를 사적으로 이용하고 있다는 의심을 제기할 수밖에 없군요.”
그때, 가만히 듣고 있던 마일스가 손을 들며 조심스레 의견을 제기했다.
“팀장님. 하지만 그 물건도 악신 숭배자의 손에 들어가면 안 되는 물건이라 회수하는 거라 하셨는데요.”
“그렇지. 그리고 지금 내가 입고 있는 레어 아이템도 악신에게 넘어가면 놈들의 힘을 키워주겠지. 그럼 이 아이템도 회수해야겠네?”
카일이 빈정댔다. 마일스는 덩치에 어울리지 않게 풀이 죽어서 고개를 움츠렸다.
“즉, 너무 자의적인 판단이란 거군요.”
우진이 그의 말을 정리했다.
“네. 맞습니다. 이해가 빠르시네요.”
카일이 만족스럽게 웃었다.
“그래서 저는 당신이 미국 영해에서 활동하는 것이, 수호자 활동과는 하등 관계가 없다고 판단했습니다.”
“그렇군요.”
우진은 고민하듯 턱을 붙잡았다.
‘흥. 고민해봤자 방도가 있을 것 같냐? 이 구역의 책임자는 나다. 과거라면 모를까. 현재 수호자의 권한으로는 나를 무시할 수 없을 거야.’
이전에 비해 수호자의 권한은 많이 축소되었다. 과오를 반복하지 않기 위함이었다.
카일은 그 권리와 제한에 대해 빠삭하게 꿰고 있었다. 언젠가 이런 일이 있을까 봐 알아둔 것이었다.
‘법률 공부는 처음이라 머리가 꽤 지끈거렸지만, 보람이 있군.’
현장 책임자인 카일이 강력한 거부권을 행사한다면, 수호자라 해도 함부로 움직일 수 없었다.
‘위기 상황이라면 또 모를까.’
하지만 갑자기 위기가 닥치기라도 할 리가 있나.
카일은 기고만장했다. 혹시 우진이 억지를 부리려고 하면 친절히 설명하기 위해, 법조문을 떠올렸다.
‘자. 뭐라도 말해봐라!’
어떻게 하건 카일은 논리적으로, 이성적으로 우진을 압박할 수 있었다.
그 잘나가는 김우진이 자신 앞에서 쩔쩔매는 모습을 상상하면 벌써부터 웃음이 흘러나왔다.
카일이 음습한 기대로 가득 찼을 때였다.
“만신전에서 직위가 어떻게 되십니까.”
“…예?”
우진의 입에서 튀어나온 건 뜻밖의 말이었다.
“크루세이더 팀은 만신전의 산하 조직이라 들었습니다. 맞죠?”
“네… 비슷하긴 한데요.”
“그러면 만신전 내부에서 직위가 있을 것 아닙니까.”
“…그렇죠.”
“뭡니까?”
카일은 더듬더듬 대답했다.
“그. 수석 사제입니다만.”
“그러면 대사제보다 하나 아래네요.”
“….”
그제야 카일도 그가 무슨 말을 하려는지 눈치챘다.
“지금 성좌의 이름으로 임명된 대사제를 의심하는 겁니까?”
감히 수석 사제 따위가?
“아니. 그건 이거랑 관련….”
“어허. 아무리 교구가 달라도 같은 만신전이거늘. 질서 하나 제대로 돌아가는군요. 미국 만신전 제사장님께 안부나 한번 여쭤봐야겠습니다.”
카일의 이마에 땀이 삐질삐질 배어 나왔다.
그는 이 구역의 책임자였지만, 동시에 만신전의 구성원이었다.
크루세이더 팀은 만신전과 미국 정부의 합작품이다. 카일은 정부 쪽과 더 가깝긴 하지만, 만신전을 아예 배제할 수는 없었다. 만신전에게 밉보이면 팀장 자리를 유지하기 어려웠다.
그리고 그가 아는 한, 제사장은 미 정부와 다르게 김우진에게 나쁘지 않은 감정을 갖고 있었다.
김우진이 ‘안부’를 여쭤본다면 그의 말에 귀를 기울일 가능성도 적지 않았다.
그러면 당연히 카일의 점수도 팍팍 깎일 것이다. 당장 자리에서 내치지 않더라도 평판이 나빠질 게 뻔했다.
거기에 우진과 관계가 깊은 한국 만신전까지 이의를 제기한다면?
앞으로 신앙생활이 한층 팍팍해질 것만은 확실했다.
법?
그딴 것보다 인맥이 더 위였다.
카일이 이를 악물면서도 고개를 푹 숙였다.
“…대사제님의 말씀이 옳습니다. 제가 미련했습니다.”
그가 패배를 인정했다.
우진은 그런 카일의 머리에 손을 얹었다.
“하는 수 없죠. 무지한 건 죄가 아니니까요. 용서해 드리겠습니다.”
“…감, 사합니다.”
“별말씀을요.”
알았으면 앞으로 잘해, 임마.
110. 양심의 가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