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turn of the Death Knight RAW - chapter (124)
어두운 동공, 후드 달린 망토로 전신을 가린 사람이 책을 읽으며 알 수 없는 주문을 중얼거렸다.
저벅.
그의 뒤로 누군가 다가왔다. 새빨간 피부의 거한을 가진 악마였다. 몸에서는 푸른 불꽃이 활활 타올랐다.
“어인 일로 여기까지 오셨습니까?”
후드 안에서 낮은 남성의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시선은 여전히 책에 고정하고 있었다.
“평소에는 시체 냄새가 난다면서 거리를 두시더니.”
남자가 키득거렸다. 거한의 푸른 불꽃이 일렁거렸다.
“내보냈던 악마들이 전멸당했다.”
“아. 유감이군요.”
“애초에 시간을 끄는 용도기는 했지만, 적어도 도시 하나는 정복할 수 있을 줄 알았는데 말이야.”
반대로 몰살당했다.
예상하지 못한 결과였다.
“그것 때문에 저를 찾아오신 겁니까? 아쉽지만 악마는 언데드로 되살릴 수 없답니다.”
남자가 농담스레 말했다. 거한은 고개를 저었다.
“그런 건 바라지도 않는다.”
“그럼 용건이 무엇입니까?”
“봐라.”
거한이 손짓했다. 그러자 반투명한 홀로그램이 형성됐다.
그건 전장의 풍경을 나타내고 있었다.
언데드와 악마가 뒤섞인 군대. 그리고 그를 상대하는 인간들.
그 모습에 남자도 흥미를 보였다.
“호오? 이 언데드를 보니… 헌터들을 되살리는 계획은 성공했나 보군요.”
“아마도.”
“생각보다 일렀군요.”
“아무래도 교주님께서 개입하신 것 같다.”
“교주님이요?”
“그래. 현장에서 교주님을 목격했다는, 인간 측의 정보를 입수했다.”
남자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하지만 교주님은 지금 힘을 비축하고 계시지 않으십니까?”
“잠깐 여유를 내신 것 같다. 그만큼 우리 하는 모습이 답답했다는 거지.”
거한은 그리 추측하면서도 홀로그램을 가리켰다.
“그보다 중요한 건 이 부분이다.”
홀로그램이 번쩍거리며 빛을 터트렸다. 빛에 휘감긴 언데드들이 하나둘 신성력을 받아들였다.
그들은 곧 악마에서 인간의 편으로 돌변했다. 마치 인간성을 되찾은 것처럼.
“이건…!”
후드 속에서 놀란 신음이 터져 나왔다.
거한이 팔짱을 꼈다.
“언데드가 갑자기 우리를 배신했다. 게다가 신성력을 받아들이기까지 했지.”
“신성력을 쓰는 언데드…? 그런 게 가능할 리가.”
“하지만 실제로 일어난 일이다.”
“….”
남자는 홀로그램의 한 부분을 바라봤다. 빛의 진원지. 김우진이 있는 곳이었다.
“이 자는…?”
“김우진. 1년 전부터 우리를 끈질기게 방해한 숙적이다.”
“김우진…? 혹시 그도 언데드입니까?”
“응? 아니. 그럴 리가. 인간이다.”
“…그렇군요.”
“신의 총애를 받는 용사고, 또 너와 같은 사령술사이기도 하지.”
“하. 사령술사가 용사라니. 제가 온 곳에선 상상도 못 할 일이네요.”
남자가 헛웃음을 흘렸다. 거한 악마는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
“언데드의 배신 때문에 우리는 큰 피해를 보았다. 앞으로도 이런 문제가 생긴다면, 너를 불러온 이유가 없다. 게다가….”
“알고 있습니다.”
남자가 그의 말을 끊었다.
“하지만 안심하시죠. 놈이 아무리 뛰어난 사령술사라 한들, 제가 되살린 언데드까지 빼앗지는 못할 겁니다.”
“자신만만하군.”
“물론이죠. 저야말로 모든 사령술의 정점.”
남자가 서서히 몸을 돌렸다. 거한은 그를 바라봤다. 후드 안의 어둠에서 그의 얼굴이 희미하게 드러났다.
“사령왕이니까요.”
후드 안에 있는 것은 해골이었다. 두개골은 불길한 기운이 서린 보석으로 장식되어 있었다.
“어떻게 이런 잔재주를 부리는지 모르겠지만, 이 정도로는 위협이 되지 않을 겁니다.”
그의 안광이 번뜩였다.
악마들이 시간을 끌어준 덕분에, 모든 준비는 끝났다.
사령왕이 위를 올려다봤다. 동공의 벽은 생명체의 내장처럼 부드러운 질감에 혈관이 튀어나와 있었다.
꿈틀.
혈관이 미미하게 떨렸다. 검은 기운이 혈관을 타고 퍼졌다.
사령왕이 턱을 딱 마주치며 웃었다.
“이제 곧 ‘베히모스’가 눈을 뜰 테니까요.”
*
이번 대규모 악마 침공 사태는 전국적으로 회자됐다.
악마가 과거에 전사한 헌터들을 언데드로 일으켰다. 끔찍한 사건이었다.
하지만 그렇게 되살아난 이들의 마음속에는 인간성이 남아있었다. 정의의 불씨가 살아있었다.
그들은 신성력을 받아들이고 악마의 지배에서 풀려났다. 인간의 편에 서서 함께 싸웠다.
-옛 영웅이 평화를 지키기 위해 돌아왔다.
-불사신이 인류를 수호한다.
사람들은 열광했다.
그들의 본질은 어차피 언데드라고? 중요하지 않았다.
사람들은 보았다. 그들이 신성력을 받아들이는 모습을.
빛이 등불처럼 퍼져나가듯이, 먹구름이 걷히고 태양 빛이 쏟아졌다.
비록 언데드일지라도, 그들은 명백한 정의의 편이었다.
“경의를 담아서 이모탈(Immortal) 부대라고 부르는 모양이더군요.”
마일스가 환한 얼굴로 말했다.
“잘 어울리는 이름이네요.”
우진이 맞장구를 치며 커피잔을 기울였다.
‘내 예상보다 더 인기가 뜨겁군.’
계획을 세운 건 악마 무리를 조우한 순간이었다.
즉석에서 러프하게 세운 계획이었는데, 생각보다 더 잘 먹혔다.
거기에는 이유가 있었다.
이모탈 부대의 구성원은 대부분 영웅이라 해도 과언이 아닌 헌터들이었다. 대격변 때나 그 이후에, 사람들을 구하기 위해 목숨을 바친 이들이었다.
그들에게 구해진 사람이 있다. 그들과 함께 싸운 사람도 있다.
과거의 추억에만 묻어뒀던 옛 영웅과 옛 전우가 돌아온 것이다.
열광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우스갯소리긴 하지만, 자기가 아는 헌터가 되살아나지 못한 게 아쉽다는 이야기도 나오고 있지.’
그만큼 이모탈 부대는 사람들에게 깊은 인상을 남겼다.
마일스가 고개를 우진 쪽으로 숙였다.
“그때는 정말 대단했습니다. 적이라고 생각했던 언데드가 하나둘 우리 편으로 돌아서는 게…. 아직도 눈앞에서 아른거릴 정도예요. 참 기적이란 그런 거구나, 싶더라고요. 존경스럽습니다.”
“제가 한 건 아무것도 없습니다. 단지 그들이 눈을 뜰 수 있게 도와드렸을 뿐.”
우진이 겸손하게 대답했다.
진정한 업적은 겸손으로 가려지지 않는 법이다. 마일스는 존경의 시선을 거두지 않았다.
“역시 겸손하시네요.”
그때 익숙한 인기척이 느껴졌다.
“우진 형님.”
“아… 진해철 씨. 다른 분들도 계시군요.”
진해철과 김민서, 서지현 등. 오윤아와 함께 이번 전투에 참여한 헌터들이었다.
“그 떡대는 누구입니까?”
진해철이 마일스를 바라봤다.
“마일스입니다. 크루세이더 팀의 팀장이죠.”
우진이 간략하게 소개했다. 마일스가 기다렸다는 듯 고개를 숙였다.
“안녕하십니까, 검귀님.”
“음? 날 아시는가?”
“모를 수가 없죠. 검술의 달인 아니십니까. 저도 보면서 많이 배웠습니다.”
마일스는 그러면서 검을 휘두르는 자세를 취했다. 진해철이 만족스럽다는 듯 고개를 끄덕거렸다.
“기본이 잘 잡혀있군.”
“화려한 기술보다 더 중요한 게 기본기라 하시지 않았습니까. 그 가르침을 따른 것뿐입니다.”
“허허. 요즘 보기 드문 젊은이일세.”
진해철이 흡족한 얼굴로 그의 등을 두드렸다.
“덩치가 둘이나… 으. 보기만 해도 덥네요.”
서지현이 작게 중얼거렸다. 그녀와 김민서도 차례로 마일스와 인사를 나눴다.
“유명한 분들을 한 번에 뵙게 되어 영광이네요.”
마일스가 기쁘게 웃었다. 말치레가 아니라 진심 같았다.
“전투 중에도 큰 도움이 되었습니다. 고맙습니다.”
“으음. 원래부터 전투를 도우려고 왔던 건 아니었지만요.”
김민서가 머쓱하게 말했다. 진해철이 말을 받았다.
“원래는 짐만 옮길 작정이었지. 하는 김에 형님도 좀 뵙고.”
“예? 짐이요?”
마일스가 눈을 동그랗게 떴다.
“네. 마탑주님이 갑자기 마켓에 풀린 약재를 몽땅 사재기하더니….”
“그런 게 있답니다.”
서지현이 김민서의 입을 막으며 적당히 둘러댔다.
“그러고 보니 오윤아 씨는?”
“쉬고 있어요. 마력을 너무 썼다나.”
“그렇군.”
하긴. 한국에서 미국까지 공간을 이었다. 그건 호락호락한 일이 아니었다.
거기에 곧바로 전투까지 치렀으니, 마력이 고갈될 만도 하다.
“저보고 대신 전해달래요. 쾌차하신 거 축하한다고.”
생각났다는 듯 마일스도 입을 열었다.
“아, 저도 아직 경황이 없어서 제대로 말씀 못 드렸군요. 무사히 회복하셔서 다행입니다.”
우진은 병상에서 의식을 회복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때를 떠올리면 아직도 막막합니다.”
“동감이네.”
진해철도 그 말에 동의했다.
“형님을 그런 상태로 만들다니. 그 교주라는 놈이 강하긴 한가 보더군.”
“솔직히 상대하고 싶지 않아요.”
김민서가 어깨를 부르르 떨었다.
“그래도 언젠가 상대해야 할 적이라는 건 변함이 없습니다.”
마일스가 의기 충만한 얼굴로 말했다. 우진은 그 모습을 보며 생각했다.
‘슬슬 역공할 때가 됐나.’
그의 원래 목적은 바다에 있는 ‘여신의 몸’을 찾는 것이었다.
그러기 위해서는 방어로 만족하는 게 아니라, 공세에 나서야 했다.
조건은 충족됐다. 이모탈 부대. 크루세이더 팀. 거기에 일면식 있는 헌터들까지 동원한다면, 대규모 토벌대를 꾸릴 수 있었다.
하필이면 그 장소가 바다 한가운데라는 게 걸리긴 했지만 말이다.
-주인.
그때였다. 레비아탄에게 통신이 들어왔다.
‘왜 그래?’
우진이 물었다. 동시에 마일스의 허리춤에 달린 단말기가 시끄러운 소리를 토해냈다.
서지현이 귀를 틀어막았다.
“이게 무슨 소리죠?”
“크루세이더 팀의 비상 신호입니다.”
“비상? 또 뭐가 일어난 건가?”
진해철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었다.
“글쎄요. 한 번 알아봐야….”
“이. 이거 좀 보세요.”
김민서가 스마트폰을 들여다보며 소리쳤다. 화면에 뉴스가 틀어졌다. 카메라가 LA 상공을 비추었다.
동시에 레비아탄이 말했다.
-크다. 엄청.
화면에 보이는 LA 서쪽 바다에, 서서히 무언가가 떠올랐다. 얼핏 보기에는 바위로 이루어진 섬과 같았다.
그 위로는 칠흑의 광물로 만들어진 커다란 요새가 올라가 있었다.
뾰족하게 솟아오른 첨탑 주변에서 거뭇거뭇한 형체들이 날아다녔다.
“…마일스 씨. 원래 여기에 저런 섬이 있던가요?”
“아뇨. 어릴 때부터 살았지만 그런 건 본 적이 없습니다.”
마일스가 심각한 얼굴로 대꾸했다.
“저 성 같은 곳에서 날아다니는 건, 악마인가?”
“그런 것 같습니다.”
“어…. 근데 저만 섬이 움직이는 것처럼 보이나요?”
김민서가 중얼거렸다. 그의 말대로였다. 우진은 레비아탄의 시야로 카메라보다 더 가까운 거리에서 섬을 관찰할 수 있었다.
‘움직이고 있군.’
섬은 수면에 둥둥 떠 오른 채 이동하고 있었다. 그 방향은 육지를 향했다.
“설마 놈들이 지키고 있던 게 이건가.”
우진이 중얼거렸다.
이동하는 요새. 어디서든 보급과 안전을 확보할 수 있는 시설이었다.
“저게 상륙하면 끔찍한 재앙이 벌어지겠군.”
진해철이 굳은 목소리로 말했다.
“움직이는 섬이라니…. 진짜 말이 되는 짓을 해야지. 이건 너무하잖아요.”
서지현도 경악을 숨기지 못했다.
“…응?”
레비아탄의 시선으로 섬을 살피던 우진이 눈썹을 꿈틀거렸다.
“아…. 그렇게 된 건가.”
“네? 그게 무슨 말씀입니까?”
마일스가 우진의 혼잣말에 반응했다.
“이전에 봤던 리치를 기억하십니까?”
“어… 물론이죠.”
갑작스러운 질문이었다. 그건 왜 묻는 걸까.
“그 리치는 자신이 모시는 자가 이곳에 있다고 했습니다.”
우진이 그때를 떠올렸다.
리치는 자신이 모시는 이가 사령왕이라고 했다. 그 진위는 불명이지만, 그만큼 강력한 존재가 저쪽에 있다는 건 분명했다.
“아…! 설마 그자가 마법을 써서 섬을 움직이는 건가요?”
마일스가 추측했다. 리치는 사령술과 더불어 마법에도 능통한 이들이니까.
그러나 우진의 대답은 뜻밖이었다.
“아뇨. 되살린 겁니다.”
“…예?”
마일스가 눈을 끔뻑거렸다. 우진이 이어서 말했다.
“이건 섬이 아닙니다.”
수심이 얕아지며 섬의 밑부분이 점차 모습을 드러냈다.
철썩!
너덜너덜한 물갈퀴가 수면 위로 튀어나왔다. 물갈퀴 달린 다리가 바닷물을 밀어냈다.
마침내 전신의 윤곽이 잡혔다. 그건 마치 거북과 비슷한 생김새였다.
“…맙소사.”
뉴스를 지켜보던 이들이 놀라움에 가득 찬 탄성을 내뱉었다.
우진은 그 정체를 밝혔다.
“섬만큼 커다란 언데드입니다.”
무시무시한 일이었다. 이만한 크기의 언데드를 조종하는 사령술사라니.
헌터들의 얼굴이 더욱 어둡게 물들었다.
하지만.
“….”
마일스는 우진의 표정을 살폈다.
‘…왜 웃고 계시지?’
125. 그 이름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