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turn of the Death Knight RAW - chapter (136)
데미안이 당황했다. 정신지배가 다시 작동한 걸까? 아니. 그럴 리가 없다. 정신지배는 고사하고, 그는 하강하라는 명령도 내리지 않았으니까.
다만 우진이 내려가자고 한 마디 했을 뿐이었다.
‘…설마 그의 말을 따르는 건가?’
마일스가 한 말이 떠올랐다. 등이 깨끗해져서 베히모스가 기뻐하는 것 아니냐. 표현을 좀 저렴하게 해서 그렇지, 일리가 없는 말은 아니었다.
우진은 베히모스의 등에서 악마를 몰아내고, 드라이어드를 심어서 오염된 땅을 정화했다.
신수 베히모스 입장에서는 은인이나 마찬가지였다.
정신지배에서 벗어난 성스러운 짐승은, 김우진을 자신의 주인으로 선택한 것이다.
…비록 그 선택이 옳은 판단이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이제 곧 지상에 내려갈 수 있겠군.”
우진이 중얼거렸다. 그때 그의 귓가에 이명 같은 게 들려왔다.
-….
우진은 귓가를 매만졌다. 그의 입술에 미소가 떠올랐다.
“저는 잠깐 내려가보겠습니다.”
우진은 일행에게 그렇게 말하고는 지하로 발걸음을 옮겼다. 그곳에 오윤아가 있었다.
우진에게 신호를 보낸 것도 바로 그녀였다.
“말씀하신 건 다 끝났어요.”
“고생하셨습니다.”
“정말이요. 무슨 결계를 이렇게 이중삼중으로 만들어놨는지. 해제하는 것도 일이었어요.”
오윤아는 앞을 가리켰다. 거대한 석문이 통로 너머를 가로막고 있었다. 석문에 독특한 문자가 그려진 게 보였다.
“그런데 이 안에는 대체 뭐가 있는 거예요?”
“글쎄요. 저도 이제부터 알아봐야 합니다. 하지만 제 예상이 맞다면, 그게 있겠죠.”
“그거?”
우진이 대답 대신에 어두운 통로 너머로 발걸음을 옮겼다. 오윤아가 조심스레 그의 뒤를 따라왔다.
“이곳에서 교주가 나왔습니다. 그리고 어떻게 얻었는지 모를 힘을 행사했죠.”
“힘?”
“여신께서 말하기를, ‘신격’이라고 하더군요.”
“…신격이라고요? 처음 듣지만 굉장히 상대하기 힘들 것 같은 이름이네요.”
“네. 정말로 그랬습니다.”
우진은 교주와의 일전을 떠올렸다. 자칫 베히모스가 추락하거나, 우진이 죽을 수도 있는 상황이었다. 그 신격이란 규격 외의 힘 때문이었다.
우진은 자신이 느낀 걸 오윤아에게 그대로 전달했다. 오윤아의 안색이 어두워졌다.
“말도 안 돼. 그런 걸 어떻게 상대할 수 있어요? 공격 자체가 먹히지 않는데.”
“그 방법이 이 너머에 있을 겁니다.”
그렇게 말하며 우진이 석문에 손을 댔다. 처음 발견했을 때만 해도 마법으로 굳게 잠겨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달랐다. 우진이 힘을 주자 석문이 서서히 열렸다.
쿠구궁.
묵직한 소리와 함께 석문 너머의 광경이 드러났다. 정육면체 형태의 방이었다. 크지도 작지도 않았다. 게다가 그 물건은 방 정중앙에 있어서, 찾기 어렵지 않았다.
“역시.”
우진이 입꼬리를 씨익 끌어올렸다.
방 한가운데에 사람 크기만 한 은색 금속이 보였다. 그 금속이 어떤 건지 우진은 아주 잘 알고 있었다.
‘여신의 몸.’
지금까지 본 것과는 비교도 할 수 없는 크기였다.
‘아마도 전 세계에 있는 여신의 몸을 전부 찾은 것 아닐까.’
우진이 추측했다.
여신의 몸은 악신들에게도 유용한 물건이었다. 지금 생각하면, 다른 악신교를 공격한 것도 여신의 몸을 빼앗기 위함이 아니었을까?
그런 식으로 뱀교의 교주는 여신의 몸을 모은 것이다.
톡.
우진은 여신의 몸에 손을 올렸다. 속이 텅 빈 것처럼 소리가 울렸다.
=아아. 이럴 수가.=
에아가 비명처럼 가느다란 신음을 내뱉었다.
=아무것도 느껴지지 않아요. 제가 지니고 있던 신격이. 이 몸이 담고 있던 신격이…. 느껴지지 않아요.=
“역시 그랬군.”
교주가 지닌 신격의 비밀은 바로 이곳에 있었다.
여신의 몸에서 뽑은 신격을 억지로 몸에 이식한 것이다.
분명 태초의 뱀이 그 방법을 알려준 것이리라.
어쩌면 그가 직접 개입했을 수도 있고 말이다.
=제가 에란델의 아이들에게 받은 모든 신앙이…. 수천 년의 기도가 모두 빼앗겼군요. 어떻게 이럴 수가….=
당사자인 에아는 비탄을 참지 못했다.
=그뿐만이 아니에요. 이제 그는 제 신격을 써서 이 세계를 파멸로 몰고 갈 겁니다. 어쩌면 다른 차원까지요. 이건…. 재앙입니다.=
그녀는 벌써 멸망을 눈앞에 둔 것처럼 탄식했다.
“이게… 전부 뭐예요?”
오윤아도 알 수 없는 불길함을 감지했는지 목소리가 떨렸다. 우진은 그녀에게도 에아에게 들은 걸 설명했다.
“…그럼 어떻게 하죠? 여신께서도 힘이 되지 못한다는 거잖아요.”
에아의 몸을 되찾으려 했던 건 그녀의 신격을 키우기 위해서였다. 그럼 지상의 영향력도 커질 테니까.
하지만 여신의 몸에 남아있던 신격은 거의 빼앗겼다. 절망적인 상황이었다.
그러나 우진은 함께 절망하지 않았다.
“신앙이야 다시 모으면 그만 아닙니까. 시우한테 부탁해서 새로 신상을 제작하죠. 그럼 어느 정도 신격이 회복되지 않겠습니까. 여신의 힘이 회복되면 놈한테 대항할 방법이 생길지도 모릅니다.”
“그게 충분할까요?”
“글쎄요. 하지만 해볼 수 있는 건 전부 해봐야죠.”
“교주에게 빼앗긴 신격은요?”
“그놈을 죽여서 도로 빼앗으면 그만 아닙니까.”
오윤아는 말문이 막혔다.
틀린 말은 아니다. 오히려 정론이었다.
하지만 그 정론을 담담히 입에 담을 수 있는 사람이 세상에 몇이나 있을까.
당장 해야 할 업무를 앞에 두고도 눈을 돌리는 게 인간 아니던가.
“…우진 씨는 어떻게 그렇게 태연할 수 있어요?”
“태연한 건 아닙니다. 저 역시 놈이 무슨 짓을 꾸미나 걱정이 되긴 합니다. 그렇지만 한탄해봤자 해결되는 건 없지 않습니까. 지금 중요한 건 최대한의 준비를 갖추는 겁니다.”
“….”
오윤아가 우진의 옆얼굴을 지켜봤다. 우진은 정면만을 올곧게 바라보고 있었다.
‘그러고 보면 이 사람은 항상 그랬지. 남이 알아주지 않더라도, 그저 해야 할 일을 묵묵히 진행할 뿐이었지.’
아무 대가도 바라지 않고 악신교의 사원을 무너트렸다. 처음엔 그것 때문에 욕을 먹기도 했다.
오윤아는 그때 그의 의중을 파악했다. 얼핏 막무가내로 행동하는 것 같은 그의 행동에 명확한 목표가 있다는 걸, 그녀 혼자 짐작했다.
하지만 지금은 그의 행동이 어떤 의미를 가졌는지, 누구나 알게 되었다.
그만큼 선행이란 숨기려 해도 숨길 수 없는 법이었다.
‘그리고 우진 씨는 항상 성공했지. 가끔 시련이 있더라도 결국은 다 좋게 해결했어.’
이번에도 그럴 것이다. 근거없는 비논리적인 믿음이었지만 말이다.
오윤아의 얼굴에서 긴장이 살짝 풀렸다.
“좋아요. 그러면 이 돌덩어리가 우리의 희망인 셈이네요.”
여신의 몸은 신격을 잃었음에도 여전히 영롱하게 빛났다. 이것으로 완성된 조각상은 분명 아름다울 것이다.
“지상에 내려가면 우선 시우랑 조재우 장인님부터 만나야겠군요. 그리고 여신님의 신상을 완성시켜달라 부탁해야죠.”
우진이 앞으로의 구상을 그렸다.
=…어쩌면.=
“음?”
=아니. 아무것도 아닙니다.=
에아는 입을 다문 채 우진과 여신의 몸을 번갈아서 돌아봤다. 복잡한 표정이었다.
꾸궁!
그때였다. 베히모스의 체내가 마구 흔들렸다. 동시에 부유감이 멎었다.
“무슨 일일까요?”
“나가보죠.”
우진과 오윤아가 계단을 지나 지상으로 빠져나왔다. 그러자 보인 것은 하늘이 아니라 드넓은 모래사막이었다.
“어. 여기 어디선가 본 것 같은데.”
우진이 기억을 되짚었다. 정답을 찾는 건 어렵지 않았다. 그가 가 본 사막은 딱 하나였으니까.
“고비사막이군요.”
징첸이 그의 옆에 서서 말했다.
베히모스는 바다 대신 모래사막 위에 착륙한 것이다. 탁월한 선택이었다. 도시나 산골짜기에는 그의 거구를 뉘일 공간이 마땅치 않을 테니까.
“운전 수고했다, 데미안.”
“네… 크흠. 아무것도 아닙니다. 예.”
데미안은 어쩐지 쭈뼛쭈뼛하며 감사를 받았다. 우진은 그에게 큰 신경을 쓰지 않았다.
지평선 너머에서 한 무리의 사람들이 다가오고 있었다.
*
“베히모스가 사막에 착륙했다!”
“제길. 요즘 중국에 망조가 들었나? 왜 이렇게 개 같은 일만 일어나는 거야?”
금룡 길드의 헌터들이 투덜대면서도 급히 이동했다.
중국 헌터안보부가 베히모스의 동태를 유심히 지켜보다 소집령을 내린 것이다.
왕웨이와 그 심복이 악신 숭배자로 밝혀지면서, 헌터안보부 내부는 새로이 개편되었다.
그 과정에서 징첸은 반항하는 악신 숭배자를 때려잡으며 혁혁한 전공을 세웠다. 금룡 길드도 길드장을 따라 성공가도를 달렸다. 중국 내 최대 길드라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하지만 길드의 힘이 강해졌다는 건 그만큼 책임도 커졌다는 뜻이었다.
당장 지금만 해도 그렇다. 이런 위기상황에서 가장 먼저 나서는 건 그들이었다. 그들은 베히모스의 경로에 미리 대기하던 중. 베히모스가 착륙한다는 비보(悲報)를 들었다.
“하필 이럴 때 징첸 대표님이 자리를 비우셔서….”
“소문으로는 김우진 님 구하러 베히모스로 가셨다는데.”
“에이. 그게 말이 돼? 길드장님처럼 냉철한 분이 그런 감정적인 짓을 할 리가.”
금룡 길드 헌터들은 수다를 떨며 긴장을 풀었다.
그들의 목적은 다른 길드에서 지원이 올 때까지 악마의 접근을 저지하는 것.
악마를 상대하면서 얼마나 죽어나갈지 알 수 없다.
“…온다.”
그들의 머리 위에 커다란 그늘이 졌다. 하늘에 뚜껑을 덮은 것만 같은 착각이 들었다. 그만큼 거대한 크기였다.
쿠웅!
마침내 베히모스가 그들 앞에 착륙했다. 어마어마한 질량에 모래가 솟구치며 사방으로 튀었다. 흡사 모래 폭풍처럼 매서운 기세였다.
모래연기가 사방을 노랗게 메웠다. 시야가 제대로 확보되지 않았다.
꿀꺽.
헌터들은 긴장 속에서 베히모스가 착륙한 쪽을 바라봤다. 언제 저 모래연기 사이에서 악마가 뛰쳐나올 지 알 수 없었다.
무기를 꽉 쥐고. 신에게 기도하며. 그들은 전투를 대비했다.
“…?”
“뭐야. 왜 아무것도 안 나와?”
그런데 한참이나 지나도 움직임이 없었다. 맥이 탁 풀릴 정도였다.
“긴장의 끈을 놓지 마. 그걸 노린 걸 수도 있으니까.”
마침 모래연기가 잦아들기 시작했다. 서서히 시야가 확보됐다.
“…응?”
헌터들이 멍청한 소리를 냈다.
“…저 악마. 징첸 대표님을 엄청 닮았네.”
“등신아. 닮은 게 아니라, 징첸 대표님이잖아!”
“아. 아냐. 이것도 속임수일 수도 있어! 왜. 그 다른 사람으로 변신하는 능력이라던가.”
“그럼 저 사람들도 다 속임수야?”
“어?”
이윽고 징첸 말고 다른 사람들도 시야에 들어왔다. 하나하나가 레전드라 해도 과언이 아닌 인물들이었다.
하지만 단연코 가장 눈길을 빼앗는 건, 정중앙에 선 인물이었다.
“…김우진?”
“그. 그럼. 설마 진짜로 베히모스를 점령한 거야?”
믿을 수 없다.
악마의 거점이던 저 재앙의 짐승을 손에 넣었다고?
‘…사람이 맞긴 한 거야?’
그곳에 있는 사람들 모두 그런 생각을 금치 못했다.
그런 사이에 일행은 도열한 금룡 길드의 군대 앞까지 다가왔다. 김우진이 비장하게 입을 열었다.
“사람들을 모아주십쇼. 급하게 전해야 할 말이 있습니다.”
*
잠시 후. 김우진의 요청대로 기자회견 자리가 마련되었다.
세계 곳곳의 기자들이 회견장을 가득 메웠다. 우진의 발언은 생방송으로 전 세계에 송출될 것이다.
“악마들에게서 베히모스를 탈취했다고?”
“김우진이 또 한 건 했군.”
“이번에 기자회견을 연 이유는 뭘까?”
“뭔지 몰라도 중요한 이야기겠지. 그는 괜한 말을 하는 스타일이 아니니까.”
기자들이 저마다 수근거리며 기자회견의 목적을 추측했다. 기자회견은 소음으로 가득 차서 머리가 아플 지경이었다.
“조용! 지금 나온다.”
그때 누군가 외쳤다. 단상 위에 한 사람이 발을 올린 것이다.
“….”
그 순간 방금만 해도 떠들썩하던 기자회견장에 정적이 내려앉았다. 꼭 라디오의 정지 버튼을 누른 것처럼 순식간에 소음이 사라졌다.
꼴깍.
침을 삼키는 소리도 조용히 낼 만큼, 그들은 단상 위의 남자에게 집중했다.
삐익-.
우진이 마이크 앞에 섰다. 카메라가 전부 그를 향했다. 조명이 우진을 비추었다. 잘 빠진 키와 연예인 뺨치는 얼굴 때문에, 언뜻 화보를 찍는 모델 같았다. 그 모습에 몇몇이 넋을 놓고 그를 쳐다봤다.
“이렇게 모여주셔서 감사합니다.”
그가 말문을 열었다. 동시에 청중의 표정이 진지해졌다. 우진의 목소리에서 무게감을 느낀 것이다.
그 예감이 맞았다.
“저는 베히모스 위에서 뱀교의 교주를 만났습니다.”
“….”
교주. 뱀교의 수장이자, 영웅들을 언데드로 되살린 천인공노할 빌런이었다.
“그는 악신을 자기 몸에 품었습니다. 그리고 제 여신님의 힘을 빼앗았죠.”
“뭐? 어떻게 그런 짓을!”
“감히 빛의 여신께…. 불경한 놈!”
몇몇 이들이 참지 못하고 공분을 터트렸다. 그들은 김우진. 그리고 김우진의 성좌인 빛의 여신을 믿는 종교인들이었다. 최근 각지에서 자연발생한 신흥종교였다.
“교주는 다시 돌아올 것입니다. 저희 모두 힘을 모아 마지막 위협에 대비해야 합니다. 누구도 예외는 없습니다. 왜냐하면….”
우진이 눈을 감았다.
그는 교주가 한 말을 떠올렸다.
-이제 알았다. 내 목표를 이루기 위해서는. 세계의 평화를 위해서는 김우진, 네놈부터 죽여야 한다는 것을.
우진이 눈을 떴다. 꽈악. 부르쥔 주먹을 들어올렸다. 호소하는 시선과 목소리로, 전 세계에 선언했다.
“교주의 목적은, 이 세상의 파멸이기 때문입니다.”
137. 이해할 수 있을 리가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