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turn of the Death Knight RAW - chapter (150)
악신. 태초의 뱀과의 결전이 있은 지. 벌써 3년의 세월이 지났다.
그동안 세계의 모습은 많이 바뀌었다.
“리. 리치가 나타났다!”
사람들이 허공을 둥둥 떠다니는 해골 무리를 가리키며 소리 질렀다.
그 목소리는 공포에 질려있… 지 않았다. 오히려 그 반대였다.
“사진 한 번만 같이 찍어주세요!”
“우리 애가 데미안 님 팬인데 싸인 하나만 부탁드려요!”
인파가 몰려들었다. 흡사 연예인을 보는 팬 행렬이었다.
“크흠흠. 줄을 서시오. 넘어지지 않게 조심하고.”
데미안이 젠틀하게 말했다. 그를 따르는 리치들이 팔짱을 낀 채 그를 쳐다봤다.
“데미안 님. 영웅 취급받는 게 완전히 익숙해졌군.”
“후우. 죽음의 사도였던 우리가 어쩌다 이런 꼴이 되었는지.”
리치들이 투덜거렸다.
“리치님들! 여기 잠깐만 봐주세요!”
그때 군중 사이에서 카메라가 등장했다. 그러자 리치들은 갑자기 허리춤에 손을 얹고 턱을 약간 들며 자세를 취했다.
“흠. 그래도 인간들의 숭배를 받는 게 나쁘진 않잖소?”
“큼. 그렇긴 하지.”
“우매한 인간들. 우리의 본성도 모르고 찬양하는 꼴이라니.”
치직.
리치의 어깨에 달린 무전기에서 소리가 흘러나왔다.
-대한민국 강서구 한마음 유치원에서 빌런 출현. 위험도 최소 레벨 4입니다. 지원 바랍니다.
“뭐?”
무전을 들은 리치의 고개가 훼까닥 돌아갔다.
“이 빌런 씨발 새끼들이 어린이를 건드려?”
“가봐야겠소. 싸인은 다음에 해드리리다. 가자.”
“넷!”
데미안은 유성 매직을 놓고 리치 군단을 이끌었다. 리치들은 눈에 형형한 안광을 불태우며 그 뒤를 따랐다.
*
“데미안 팀이 출동했습니다. 마일스 수호자님.”
“데미안 팀이요? 그럼 안심해도 되겠네요.”
마일스가 의자 등받이에 몸을 묻으며 말했다.
3년 전. 그는 우진이 사라지며 남은 수호자 자리를 이어받았다.
“그 사람들. 처음엔 사악하게 생겨서 좀 찝찝했는데, 지금은 누구보다 믿음직하다니까요.”
“하하. 그러니까 말입니다. 덕분에 한동안 평화로울 수 있었어요.”
“데미안 씨뿐만이 아니죠. 바다의 수호자 레비아탄. 성검의 천사 레고스. 아폴리온의 황금 기사단. 게다가 공중기지 베히모스까지….”
마일스가 중얼거리는 순간. 땅이 울리며 커다란 울음소리가 흘러나왔다.
-그오오오오!
마일스는 그 소리를 듣고 웃음을 머금었다.
“들렸나 보군요. 귀가 좋다니깐.”
그가 있는 곳은 바로 신(新) 수호자 본부. 베히모스의 등 위에 있는 시설이었다.
“모두 김우진 형님께서 남겨주신 이들이죠. 덕분에 저처럼 부족한 사람이 수호자 일을 할 수 있는 거고요.”
“….”
마일스의 말에, 그의 보좌관이 어처구니가 없다는 듯 이맛살을 좁혔다.
‘세계 랭킹 1위 헌터가 부족한 사람이라고?’
마일스는 우진이 사라지고 난 뒤. 레고스와 함께 전 세계를 누비며 사람들을 구하고 평화를 지켰다.
그 공로와 능력을 인정받아서 그는 세계 랭킹 1위 자리에 올랐다.
‘하긴. 비교 대상이 김우진 님이라면 어쩔 수 없나.’
보좌관이 쓴웃음을 흘렸다.
지구의 영웅이자, 뱀의 목을 쥐어뜯고 신으로 승천한 자. 영웅신 김우진과 비교할 수 있는 사람이 어디에 있겠는가.
“…아. 슬슬 도착했나 보군요.”
마일스는 베히모스가 점점 고도를 낮추는 것을 보고 손목시계를 확인했다.
“다행히 시간에 딱 맞췄네요. 오는 김에 일본 쪽 균열까지 해결하느라 늦을 뻔했는데.”
마일스가 베히모스 외곽으로 걸음을 옮기면서 말했다. 곧 베히모스의 몸이 구름을 뚫고 내려가며, 지상이 모습을 드러냈다.
대한민국. 김우진의 고향이자, 그가 악신을 쓰러트린 곳이었다.
보좌관이 마일스에게 경례했다.
“다녀오시죠. 이곳은 제가 지키고 있겠습니다.”
“네. 수고스럽겠지만 부탁드립니다.”
마일스가 경례를 받았다. 그는 옆에 널려있는 넓적한 타원형 물체들에 대고 말했다.
“자. 출발하죠.”
그 순간, 타원형 물체가 꿈틀거리더니, 날개를 펼치며 날아올랐다. 그 정체는 바로 몸을 말고 있던 갑충이었다.
그들은 아폴리온의 황금 기사단이었다. 아바돈과 우진의 의지를 받들겠다며 수호자의 일원이 된 이들이었다.
-타라.
그들 중 하나가 마일스 앞에 몸을 숙였다. 마일스는 묵례로 에를 표하며, 그 위에 올라탔다.
파다닥!
마일스는 갑충 틈에 섞여서 지상으로 내려갔다. 그러자 녹색 피부의 오크가 두 팔을 벌리며 그를 맞이했다.
“마일스 아우. 드디어 왔구먼. 기다리다 목 빠지는 줄 알았잖나.”
“진해철 형님. 오랜만입니다.”
마일스가 갑충에서 내리며 인사했다. 진해철이 반갑게 어깨동무했다.
“그러게 말이야. 아우님 얼굴 보기가 참 힘들어.”
그가 농담조로 말했다. 아닌 게 아니라, 마일스는 거의 1년 365일을 수호자 업무에 매진했다. 전투 외에는 베히모스 위에서 내려오는 일이 없을 정도다.
“하하. 우진 형님이 저를 믿고 성검까지 맡겨주셨는데, 쉴 수가 있겠습니까.”
마일스가 허리춤에 찬 성검을 두드렸다. 성검에서 흘러나온 빛이 거대한 늑대 형상으로 변했다.
-좀 쉬면 안 되냐? 가만 보면 우리 주인님보다 더한 것 같아.
레고스가 툴툴댔다. 이미 체면 같은 건 버린 모습이었지만, 마일스는 껄껄 웃을 뿐이었다.
“하하. 성검의 천사님. 언제나 말씀드리지만, 그렇게 저를 시험하지 않으셔도 괜찮습니다. 저는 언제나 최선을 다해 그분의 뜻을 이어갈 테니까요. 물론 제 판단으로 말이죠.”
마일스가 맑은 눈을 빛내며 말했다.
-아니, 시험이…. 에효. 됐다.
레고스가 한숨을 내쉬며 앞발을 도리도리 저었다.
“그보다 이곳에 오는 것도 오랜만이네요.”
마일스가 주변을 둘러보며 말했다.
“원래는 황무지였는데, 완전히 달라졌네요.”
그가 있는 곳은 바로 과천 대공원이었다. 악신과의 결전으로 황무지만 남은 땅이었지만, 지금은 으리으리한 테마파크가 들어섰다.
익숙한 모양새의 놀이기구도 보였다. 레비아탄 후룸라이드. 크로아지즈 백룡열차. 아바돈 범퍼카. 언데드 귀신의 집 등등…. 김우진과 관련된 놀이기구였다.
“신수철 그 양반이 세계 최고의 테마파크로 만들겠다고 온갖 난리를 쳤잖나. 청천 그룹의 메인 프로젝트로 밀어붙였다는군. 김우진 헌터에게 진 빚을 갚을 기회라나.”
“빚이요?”
“그래. 뭐. 둘 사이에 무슨 계약이라도 있었나 보지.”
진해철은 자기도 자세한 건 모르겠다며 고개를 저었다.
“이름은 영웅의 전당이라 짓기로 했다는군.”
“영웅의 전당이요? 테마파크치고는 꽤 거창한데요.”
“그렇긴 하지. 그래도 이곳에 ‘그들’을 모셔두지 않았나.”
“아… 그래서군요.”
마일스가 납득했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진해철은 그의 등을 손바닥으로 팡 쳤다.
“자. 그보다 곧 준공 기념행사가 시작된다네. 가세나. 오랜만에 보는 얼굴들이 많을 거야.”
진해철의 말대로였다. 기념행사에 초대받은 이들은 전부 우진과 깊은 관련이 있는 관계자들이었다.
“어, 마일스 씨. 오랜만에 뵙네요.”
VIP석 테이블에서, 서지현이 가볍게 손을 들어 인사했다. 같은 테이블에 앉아있던 강시우가 허겁지겁 자리에서 일어나서 허리를 숙였다.
“헉. 수호자 마일스…. 마, 만나 뵈어서 영광입니다. 강시우입니다.”
“아. 불카누스의 사도, 강시우 장인이십니까? 명성이 자자하시던데, 저도 만나 봬서 영광입니다.”
그때 김하린이 팔꿈치로 강시우의 팔을 때렸다.
“야. 호들갑 좀 그만 떨어. 사람 한 명 올 때마다 무슨 난리야?”
“그. 그치만 다들 유명한 사람들이잖아.”
“너도 이젠 유명인이거든? 죄송해요. 얘가 좀 오바가 심해요. 아, 전 김하린입니다.”
“알고 있습니다. 마도공학의 선구자 아니십니까. 우리 본부에서 쓰는 장비도 다 하린 씨가 제작한 것들입니다.”
“뭐. 전부 다 우리 사장님의 통 큰 지원 덕분이죠.”
그러면서 김하린이 오윤아의 어깨에 몸을 기댔다. 그러자 오윤아가 흠칫 놀랐다.
“어? 아아. 마일스 씨 오셨네요.”
오윤아는 그제야 그가 온 걸 눈치챈 듯했다. 김하린이 그녀의 얼굴을 바라봤다.
“언니. 아까부터 멍해 보이는데. 괜찮아?”
“그냥 피곤해서 그래. 저 인간이 식은 시작도 안 했는데 일장 연설을 늘어놓잖아.”
오윤아가 그리 말하며 단상 쪽을 째려봤다.
“에. 저랑 김우진 헌터가 만난 것은 바로 이런 화창한 날씨였죠. 그를 처음 보는 순간, 저는 느꼈습니다! 그야말로 진정한 난세의 영웅이 되리라고! 그리고 이건 제가 군산 마켓에 있었을 때의 일입니다만….”
신수철이 마이크를 잡고 열변을 토했다. 그런데 이야기가 끝이 나질 않았다. 처음에는 박수 치며 들어주던 사람들도 슬슬 지친 기색이 묻어나왔다.
“그것 때문만은 아닐 텐데.”
서지현이 턱을 괴며 장난스럽게 말했다.
“어떤 사람이 생각나서 그런 거 아냐?”
“…그런 거 아니거든.”
“아니긴. 얼굴에 다 쓰여 있는데.”
“…됐어.”
오윤아가 벌떡 일어났다. 그녀가 행사장 바깥쪽으로 몸을 돌렸다.
“어디 가? 이제 행사 시작할 텐데.”
“사람 많은 곳은 역시 힘들어. 바람이나 쐬다가 행사 끝날 때쯤 다시 올게.”
오윤아는 그렇게 말하며 행사장을 빠져나왔다. 마일스가 서지현 옆자리에 앉으며 물었다.
“피곤해 보이시네요.”
“항상 저러니까 신경 쓰지 마세요. 요즘 따라 더 심해졌다니까요.”
서지현이 그녀의 뒷모습을 보며 어깨를 으쓱였다.
그런데 그때였다.
지직!
-수, 수호자님!
마일스가 귀에 찬 단말기에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보좌관으로부터 온 연락이었다.
“무슨 일이죠?”
-가. 갑자기 마력 파장이 감지되었습니다. 균열 같습니다.
“균열? 위험도 레벨은?”
-가. 감지할 수 없습니다! 아무래도 이레귤러 같습니다!
“뭐?”
마일스가 다급하게 일어났다. 그의 표정이 당혹감으로 물들었다.
“대체 뭐가 넘어온 거야?”
*
행사장에서 빠져나온 오윤아는, 산책하듯 한적한 테마파크를 거닐었다.
“후우. 이제 좀 살 것 같네.”
오윤아가 심호흡했다. 그녀의 발걸음이 어떤 곳 앞에서 멈췄다.
‘이진호 아저씨.’
이진호의 조각상이 보였다. 그는 사상 최악의 빌런이라 여겨졌지만, 김우진은 그가 숨겨진 영웅이었음을 밝혀냈다.
덕분에 오윤아는 그에 대한 뿌리 깊은 원망을 떨쳐낼 수 있었다.
‘그리고….’
오윤아가 시선을 옮겼다. 그곳에는 조각상처럼 움직이지 않는 크로아지즈와 아바돈이 있었다.
보존 마법으로 유지되고 있는 유해였다.
그들이 바로 이 테마파크에 ‘영웅의 전당’이라는 이름이 붙은 이유였다.
자세를 취한 둘은 금방이라도 움직일 것처럼 약동감이 넘쳤다.
“….”
오윤아가 까치발을 들고 둘의 앞에 손을 휘저어봤다. 당연하지만 반응은 없었다.
“하아. 그럼 그렇지.”
오윤아는 그들의 발판 역할을 하는 석단(石壇)에 걸터앉았다.
“다녀오겠다고 했잖아요. 벌써 3년째라고요.”
그녀가 투정하듯 불만스러운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그동안 많은 일이 있었어요. 마일스 씨는 당신이 한 부탁을 지켜야 한다면서 수호자가 됐어요. 덕분에 차원 재해나 몬스터 피해도 많이 줄었고요.”
오윤아가 누군가와 대화하듯 말을 이어갔다.
“삼촌은 국장 자리를 내려놓고, 지금은 세계 여행을 다니는 중이에요. 이제 자기가 없어도 괜찮을 것 같다나. 얼마 전엔 미국 보디빌딩 대회에서 상 탔다고 자랑하더라구요.”
스킬을 사용한 것 아니냐며 논란이 되기도 했다. 하지만 그건 은퇴한 뒤. 오강수가 단련한 그의 순수 육체였다.
오윤아는 그때를 떠올리며 작게 웃음을 터트렸다.
“아참. 시우랑 하린이는 사귀는 것 같더라고요. 말로는 아니라고 하지만요.”
매주 최소 한번은 만나서 놀러 다닌다고 들었다. 게다가 둘 사이에 흐르는 분위기가 심상치 않았다.
“뭐. 어쨌거나 세상은 좀 더 평화로워졌어요. 당신 덕분에 말이에요.”
오윤아가 한쪽 무릎을 올렸다. 얼굴을 묻으며 쓸쓸하게 중얼거렸다.
“이제 당신만 돌아오면 돼요. 신으로 사는 게 의외로 만족스러워서 돌아오지 않는 건 아니겠죠?”
우스갯소리지만, 약간은 불안했다.
전지전능한 신. 그런 힘을 한 번 맛보면 인간으로 사는 데에 만족할 수 있을까.
오윤아는 나지막하게 말을 이었다.
“저희 모두 기다리고 있다고요. 아바돈 씨랑 크로아지즈 님도 분명 그럴 거고요.”
뉘엇뉘엇 노을이 지고 있었다. 석양이 바닥을 붉게 물들였다. 지평선 너머로 떨어지는 태양은 그 어느 때보다 밝았다. 그리고.
“어?”
석양을 등지고 누군가 걸어왔다. 눈부신 햇살 때문에 그 얼굴을 보기 어려웠다.
하지만 오윤아는 그게 누구인지 알 것 같았다.
-그녀의 말이 옳다.
스르륵.
멈춰있던 시간이 움직였다. 크로아지즈의 눈에서 푸른 안광이 타올랐다.
-기다리다 지쳐 죽는 줄 알았다. 우진.
딱.
아바돈이 턱을 부딪쳤다. 황금색 갑각이 햇빛을 튕기며 찬란하게 빛나다.
-동의한다, 주군. 너무 늦게 온 것 아닌가?
피식.
그 말에 석양을 등진 사내가 입꼬리를 끌어올렸다.
“얼굴 잠깐 못 봤다고 아주 풀렸구만. 교육 한 번 다시 해줘?”
오랜만에 듣는. 그렇지만 떠날 때와 전혀 다르지 않은, 당당하면서도 따스한 목소리였다.
“…우진 씨.”
오윤아가 그의 이름을 불렀다.
사내는 손을 들어 올리며 입을 열었다.
“다녀왔어.”
김우진이 밝게 웃었다.